김우재의 "파리의 사생활"

행동유전학 분야에서 이름난 실험실에 있는 초파리 연구자가 오랜 초파리 연구의 역사와 흥미로운 실험에 얽힌 이야기들을 풀어놓는다.

[연재] 유전학자 일손 덜어준 고마운 '우렁각시' 염색체

파리의 사생활 (4)

 

 

'밸런서'라는 우렁각시

 

 

생물학 전체의 역사에서 초파리가 갖는 위엄은 대단한 것이다. 비록 많은 것이 잊혀졌지만, 생물학의 역사 이곳 저곳엔 초파리가 다녀간 흔적들이 남아 있다. 그 흔적은 짙은 향기가 되어 쉽사리 지워지지 않는다. 물론 많은 것이 잊혀졌다. 더 이상 대중과 정치인들은 초파리를 이용한 기초과학에 대해 별다른 관심을 보여주지 않는다.

 

어떤 식으로든 과학은 우리의 생활과 연계되어야 한다. 과학도 자본주의의 지배하에 놓여 있으며, 국민의 세금으로 운용되는 과학은 반드시 실용적인 결과를 내어놓아야만 하는 것이다. 노벨상은 이러한 대중과 정치인들의 관심을 극대화하는 상징이다. 문제는 노벨상을 타기 위해서는 기초과학의 기반이 마련되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 아이러니는 쉽사리 풀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기초과학에 대한 연구는 돈벌이와 그다지 관계 없는 경우가 많다.1) 어쩌면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는 일종의 보험과 같은 것이어야 한다.

 

생쥐와 줄기세포와 의약학 연구에 담긴 실생활과의 밀접한 관계에 비해 초파리는 볼품 없어 보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난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 후보 맥케인의 파트너 새라 펄린(Sarah Palin)은 자폐증과 같은 연구에 좀 더 많은 투자를 하기 위해 초파리 연구 같은 불필요한 곳에 투자하지 않겠다고 말했던 것이다(아래 동영상). 많은 사람들이 새라 펄린을 비웃겠지만, 실제로 대한민국의 대중과 정치인들이 과학을 바라보는 시각도 새라 펄린과 크게 다르지 않을지 모른다. 우리는 과학의 결과들이 곧바로 마법이 될 것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기초과학은 보험이다. 그리고 초파리도 보험이다"

 

초파리를 이용한 고전유전학 연구가 유전자라는 추상적 존재를 염색체라는 물리적 실체에 배열했다는 점은 이미 살펴보았다. 실은 이것만으로도 초파리는 많은 기여를 했다. X선과 같은 방사선이 돌연변이를 유도할 수 있다는 사실도 초파리에 의해 밝혀졌다. 모건의 제자 중 한명인 헤르만 조셉 뮬러(Hermann Joseph Muller)는 이 연구로 1946년 노벨상을 수상한다. 유전자의 물리적 실체가 DNA 이중나선이라는 것이 밝혀진 1953년 이후 초파리는 박테리오파지와 박테리아에 그 자리를 잠시 넘겨줘야 했지만, 유전자라는 개념이 생물학자들에게 인식되는 데 초파리의 기여는 기념비적인 것이었다.

 

science3 » 초파리는 여전히 생물학의 기초연구에서 중요한 모델생물이다. 사진은 초파리를 이용한 노화 연구결과를 표지논문으로 실은 <사이언스> 최근호.

초파리 연구의 중흥기는 발생학 분야에서 시작되었다. 1970년대 독일의 뉘슬라인-폴하르트(Christiane Nusslein Volhard)와 에릭 위샤우스(Eric F. Wieschaus)는 초파리의 배 발생을 연구해, 발생과정에서 중요한 주요 신호전달 체계들의 대부분을 발견했다. 이 공로로 그들은 1995년 노벨상을 수상한다.

 

새라 펄린이나 존 맥케인 같은 정치인들에게 초파리 연구의 중요성은 직관적으로 잘 이해되지 않을지 모른다. 실은 그런 느낌은 당연한 것이다. 초파리는 그저 벌레에 불과하니까 말이다. 마법의 줄기세포로 젊음을 되찾고, 앉은뱅이가 일어나는 기적을 바라는 사람들에게 나는 감히 초파리 연구에 투자하라는 주장을 할 수 없다. 비록 많은 연구자들이 초파리를 이용해 줄기세포 뿐 아니라, 알츠하이머나 파킨슨병 같은 퇴행성 신경질환, 우울증, 정신질환, 자폐증, 잠 등을 연구하고 있지만, 그러한 연구 중 무엇이 기적을 일으켜 줄 신비의 묘약이 될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초과학은 보험이다. 그리고 초파리도 보험이다. 보험에 들던 말던 그것은 당사자들의 마음 아니던가.

 

 

자연의 유전자 재조합: '친한 친구끼리 몰려 다니기'?

 

자연선택은 순종을 사랑하지만, 자연은 잡종을 사랑하는 것 같다. 특히 양성생식을 하는 종들은 생식세포를 만드는 과정에서 심하게 카드를 뒤섞는다. 우리 모두는 두 벌의 염색체를 가지고 있다. 그 중 한 벌은 아버지에게서 온 것이고, 나머지 한 벌은 어머니에게서 받은 것이다. 두 벌의 카드는 돋보기로 자세히 관찰하지 않으면 구별할 수 없는 미세한 차이를 지니고 있다. 여러분의 생식세포에서 이 두 벌의 카드는 뒤섞인다. 카지노에서 딜러들이 카드 몇 벌을 뒤섞는 과정과 같다. 다만 생식세포에선 뒤섞는 카드가 두 벌뿐이다.

 

이러한 뒤섞임을 유전자재조합이라고 한다. 모건과 그의 제자 스터티번트가 다양한 돌연변이들을 염색체 위에 가지런히 배열할 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이러한 염색체의 뒤섞임 때문이다. 한 세대 안에서 두 개의 유전자가 얼마나 가까운 거리에 존재하는지에 대한 척도를 센티모건(cM)이라고 부르는데, 1센티모건은 다음 세대에서 두 유전자간에 재조합이 일어날 확률이 1%일 경우를 말한다.

 

유전자 간의 거리에 따라 재조합이 일어날 확률이 다르기 때문에, 유전자재조합 과정을 카드를 뒤섞는 과정에 비유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숙련된 딜러들은 거의 무작위에 가까울 정도로 모든 카드들을 같은 확률로 뒤섞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각각의 카드를 하나의 유전자라고 가정했을 때, 염색체 상의 유전자들은 그런 식으로 마구 뒤섞이지 않는다.

 

실제로 생식세포의 염색체 두 벌간에 일어나는 유전자 재조합 과정은 진주 목걸이 두 개를 뒤섞는 과정과도, 카드 두 벌을 뒤섞는 과정과도 다르다. 아마 이 둘의 중간쯤 되는 형태일 텐데, 이를 적절히 비유하기란 어려운 일일지 모르겠다. 이런 상상을 해보자. 한 초등학교에 '개나리'와 '진달래'라는 두 반이 있다. 이 학교에서는 매해 새 학기가 시작되면 두 반의 학생들에게 '개나리'와 '진달래' 중 한 반을 선택하라고 공지한다. 선택은 학생들의 몫이다. 규칙이 한 가지 있다. 개나리 반에서 누군가 진달래 반으로 옮기겠다고 결정할 경우, 진달래 반에서도 같은 수의 학생이 개나리 반으로 옮겨야만 한다. 이런 식으로 매년 반을 재편할 경우, 친한 친구들끼리 계속해서 몰려다니는 현상이 관찰될 것이다. 별로 친하지 않았던 친구들이 계속해서 같은 반에 있을 확률은 낮아진다.

 

염색체 상에서 가까운 거리에 존재하는 두 개의 유전자는 이렇게 반을 옮겨 다니는 친한 친구인 셈이다. 두 유전자 간의 거리가 짧을 수록, 즉 두 친구가 친할 수록 재조합 과정에서 두 유전자는 함께 옮겨 다닐 확률이 높다. 친한 친구들을 갈라놓기가 어렵듯이, 아주 가까이 붙어 있는 유전자들이 재조합 과정에서 갈라질 확률도 적다. 모건과 스터티번트는 유전자들이 얼마나 친한 사이인지를 밝혀낸 셈이다.

 

 

재미있는 유전자, 중요한 유전자

 

이러한 재조합 과정 덕분에 양성생식을 하는 종들은 유전적 다양성을 획득할 수 있었지만, 재조합은 유전학자들에게는 재앙이기도 하다. 유전학자들은 돌연변이들을 대상으로 연구한다. 한 유전자의 돌연변이가 나타내는 표현형을 따라 그 유전자의 기능을 추측하는 학문이 바로 유전학이기 때문이다. 어떤 돌연변이들은 '우성(dominant)'이고 어떤 것들은 '열성(recessive)'이다. 여기서 우성이란 두 벌의 염색체 중 한 벌에만 돌연변이가 생겨도 표현형이 나타난다는 뜻이고, 열성이란 두 벌 모두에 돌연변이가 생겨야만 표현형이 나타난다는 뜻이다. 또 대부분의 돌연변이는 해롭다. 두 벌의 염색체 모두에 돌연변이가 나타날 경우 개체가 죽는 유전자를 '열성치사유전자(recessive lethal)'라고 부른다. 사는 데는 별 지장이 없는 돌연변이의 경우엔 두 벌 모두에 돌연변이가 생겨도 상관이 없을 수 있다. '우성치사유전자(dominant lethal)'는 기본적으로 연구가 불가능하다. 한 벌의 염색체에만 돌연변이가 생겨도 개체가 죽는다면, 그러한 유전형을 유지할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autosomalrecessive » 우성(dominant)의 돌연변이는 두 벌의 염색체 중 한 벌에만 돌연변이가 생겨도 그 유전형질이 표현되며, 열성(recessive)은 두 벌 모두에 돌연변이가 생겨야 나타난다. 출처: http://georgiahealthinfo.gov

 

열성치사유전자들은 생물학적으로 중요한 기능을 가질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다. 물론 어떤 돌연변이가 개체를 죽이지는 않으면서 특별한 표현형을 나타낸다면 재미있는 일이다. 그런 돌연변이들이 유전학 초창기에 중점적으로 연구되었다. 하지만 발생과정이나 성체에서 정말 중요한 유전자들이라면, 돌연변이는 개체를 죽음에 이르게 만들 것이다. 신기한 표현형을 가진 돌연변이들이 많이 발견되었지만, 역설적으로 그러한 돌연변이들은 유전자들의 네트워크에서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것들일지도 모른다. 돌연변이가 생겨도 개체가 죽지 않고 흥미로운 표현형을 보인다면 연구 자체는 재미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유전체에는 그런 유전자들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너무나 중요해서 돌연변이가 일어나면 개체가 죽어버리는 그런 유전자들도 많다.

 

발생학이 생물학자들의 관심사가 되어갈 수록 유전학자들의 관심도 옮겨가기 시작했다. 발생과정에 관여하는 유전자들은 대부분 중요하다. 발생과정이란 매우 정교하게 조절되는 연쇄과정이며, 아주 조그만 변화도 결국은 재앙으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발생이 일어나는 수정란은 원자로 발전소와 같다. 조금만 일이 꼬여도 원자로는 폭발해 버린다. 재미있는 유전자들을 연구하던 유전학이 중요한 유전자들에 대한 연구로 옮겨 갈 수 있었던 것은 밸런서(balancer) 염색체가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밸런서 염색체의 등장: 도구는 발견을 가능하게 한다

 

과학적 발견들은 언제나 그 발견을 가능하게 한 도구의 발전에 기대고 있다. 산소를 발견하기 위해서 정교한 기체분석 장치가 필요했던 것처럼, DNA 이중나선의 구조를 밝히기 위해서 X선 회절기법이 필요했던 것처럼, 열성치사유전자들의 기능을 밝히기 위해서도 그러한 도구가 필요하다.

 

멘델의 완두콩을 생각해보자. 주름진 완두콩과 정상인 완두콩을 교배하면, 첫 번째 세대의 모든 완두콩은 정상이다. 첫 번째 세대를 자가 수분시키면 두 번째 세대에서는 1:3의 비율로 정상과 주름진 콩이 나타난다. 멘델이 관찰했던 대부분의 유전자들은 열성이었다. 두 벌의 유전자 모두에 돌연변이가 생길 때에만 표현형이 나타난다는 뜻이다. 하지만 열성치사유전자의 경우엔 1:3의 비율이 나타나지 않는다. 두 벌의 유전자 모두에 돌연변이가 생긴 개체는 발생과정 중에 죽어버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두 벌 모두 정상인 개체들과, 한 벌에만 돌연변이가 생긴 개체들이 언제나 섞여 있는 상태가 지속된다. 그리고 언젠가 돌연변이는 개체군에서 사라질 것이다.

 

따라서 열성치사유전자들에 대한 연구는 난관에 봉착한다. 돌연변이를 유지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도 쥐를 이용해 열성치사유전자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매 세대에 태어난 새끼들의 꼬리를 잘라 DNA의 염기서열을 확인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하지만 이건 아주 불편한 방법이다.

 

고전유전학에서 돌연변이들은 두 벌의 유전자 모두에 이상이 생겨도 죽지 않아야 유지가 가능했다. 혹은 한 벌에만 이상이 생겨도 확실히 눈에 띄는 표현형을 지녀야 계대(strain)를 유지할 수 있었다.

 

1918년 열성치사유전자들을 연구하던 헤르만 뮬러가 아주 손쉽게 이러한 돌연변이들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발견했다. 정상적인 개체와 한 벌의 유전자에만 돌연변이가 발생한 개체들이 뒤섞여 있는 상황은 유전학자들에겐 끔찍한 혼돈이다. 이건 마치 집을 오랫동안 청소하지 않아서 칫솔을 찾기 위해 매번 집을 뒤집어야 하는 것과 같다. 항상 집이 정돈되어 있을 수만 있다면, 아주 착하고 성실한 우렁각시가 매일 집을 청소해준다면, 매일 아침 칫솔을 찾기 위해 집 전체를 뒤지고 다닐 필요는 없을 것이다. 뮬러는 유전학자들이 매일 아침 집을 뒤지는 수고를 덜어줄 수 있는 방법을 개발했다. 뮬러 덕분에 유전학자들은 조금 게을러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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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재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연구원, 행동유전학
“생명에 취한 사람, 초파리들의 날개짓 속에 편안함을 느끼는 몽상가.” 초파리를 이용해 행동유전학을 연구하고 있다.
이메일 : heterosis.ki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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