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재의 "파리의 사생활"

행동유전학 분야에서 이름난 실험실에 있는 초파리 연구자가 오랜 초파리 연구의 역사와 흥미로운 실험에 얽힌 이야기들을 풀어놓는다.

[연재] 엔트로피와 싸우는 '파리방'의 분주한 아침 풍경

 
파리의 사생활 (2)

 파리방 사람들

 

       
유전학은 엔트로피와 벌이는 싸움

유전학이란 엔트로피와의 싸움이다. 청소를 하지 않으면 반드시 더러워지는 내 방처럼, 유전학자들은 섞이고 또 섞여버리는 유전자들의 자연스러운 패턴을 막기 위해 노력한다.

 

잘 알려져 있듯이, 엔트로피란 열역학의 전통에서 만들어진 개념이다. 따라서 엔트로피란 고전역학의 관점에선 일로 전환될 수 없는 에너지의 양을, 볼츠만에 의해 정립된 통계역학의 관점에선 계의 통계학적 무질서도를 나타내는 용어다 . 유전학자들의 작업이 엔트로피와의 싸움이라는 말은 유전자의 재조합에서 비롯되는 무질서도의 증가를 나타내는 단순한 비유일 뿐, 실제로 열역학의 이론과 상응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엔트로피라는 개념은 대한민국에서 왜곡되어 있는 대표적인 사례이기도 하다. 제레미 리프킨의 <엔트로피>라는 책은 열역학 제2법칙을 과잉 해석한 악서 중의 악서다. 또한 한국의 과학 대중화 과정에서 베스트셀러로 기록된 이 책 덕분에 그의 "…종말" 시리즈조차 엄청난 판매고를 기록하고 있지만, 과학이론에 관한 왜곡된 해석이 낳은 여파는 쉽사리 치유되지 않는다 . 심지어 엔트로피 법칙은 종종 창조과학자들 혹은 지적 설계론자들에 의해 진화가 불가능하다는 증거의 하나로 제시되기도 하는 촌극이 빚어지기도 한다 .

 

육종가들이 순종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자연계에서 잡종이 우세하기 때문이다. 진화론과 유전학의 종합에서도 순종을 둘러싼 격한 논쟁이 있었지만, 자연은 잡종을 순종보다 더 선호하는 듯 보인다. '잡종강세(heterosis, hybrid vigor or outbreeding enhancement)'라는 현상은 유전학에서는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으로, 영국 왕실의 혈우병이나 근친상간에 대한 금기와 같은 유명한 예들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잡종강세의 더 중요한 유전학적 의미는 우리 모두가 돌연변이라는 사실이다. <돌연변이>의 저자이자 초파리를 이용해 진화발생생물학(Evo-devo: Evolutionary Developmental Biology)을 연구중인 아만드 마리 르로이(Armand Marie Leroi)에 따르면 우리는 태어나면서 평균적으로 약 300개의 심각한 돌연변이를 지닌 채 태어난다 .

 
엔트로피 증가는 유전학의 '잡종강세'? 

물리학은 언제나 '모든 것을 설명하는 통일장 이론'을 꿈꾸지만, 어쩌면 과학 이론이라는 것은 설명의 영역이 제한되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잡종강세는 엔트로피의 증가로 인한 현상이지만, 결국 개체의 생존력을 증가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리프킨의 엔트로피에 대한 해석을 생물학적으로 패러디 해보자면, "유전학적으로 엔트로피의 증가는 결국 이로운 결과를 낳기 때문에 세상의 멸망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쯤이 될 수 있겠다. 물론 과학의 이론에 대한 지나친 과잉 해석은 언제나 주의해야 하는 일임이 분명하다. 패러디란 기법일 뿐, 새로운 이론은 아니다.

      파리의 문화                                                                                                      
"파리방에서 탄생한 분자생물학의 기초"

모델동물로 초파리를 사용하는 유전학자들은 모두 '파리방(fly room)'이라 불리는 곳에서의 추억이 있다. 일반적으로 파리방이란 토마스 헌트 모건(Thomas Hunt Morgan)이 컬럼비아 대학에서 처음으로 초파리를 연구했던 실험실을 의미한다 . 파리방은 매우 좁아서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거렸고 지저분했으며 외부로부터 격리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좁아 터진 공간 안에서 현대의 유전학과 진화생물학의 근대적 종합, 나아가 분자생물학의 기초가 되는 모든 연구들이 탄생했다. 현대과학은 엄청난 연구비 투자로 유지되는 덩치로 성장해버렸지만, 에드 루이스(E.B. Lewis)가 순수유전학이라 불렀던 기초과학은 쓰레기통에서 주워온 우유병(때때로 훔쳐오기도 했다)과 썩은 바나나를 가지고 시작되었다. 돈이 전부는 아니다.

 

컬럼비아 대학의 파리방은 과학에 담긴 문화적 성격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는 좋은 사례다. 그 곳에는 언제나 대화와 토론이 오갔고, 실험재료들과 결과는 언제나 공유되었다. 때때로 모건은 시끄럽게 토론하는 그의 제자들에게 진저리를 치기도 했지만 초파리 연구자들에게 여전히 전통처럼 내려오는 공유의 정신은 모건의 실험실, 바로 그곳에서 비롯된 것이다. 훗날 시드니 브레너(Sydney Brenner)에 의해 기초가 마련된 예쁜꼬마선충(C. elegans)의 연구자들도 철저한 공유의 전통을 공유하고 있다. 유전학자들은 카피 레프트의 전통을 지니고 있다. 물론 시간이 흐르면 언제나 전통은 흐려지게 마련이지만.

 
'이슬을 사랑하는' 초파리들로 분주한 파리방의 아침

파리방의 아침은 언제나 만원이다. 유전학자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초파리 종의 학명은 Drosophila Melanogaster로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노랑초파리'라고 번역된다. 속을 나타내는 Drosophila는 이슬을 뜻하는 그리스어 drosos와 사랑을 뜻하는 그리스어 philos의 합성어로 직역하면 '이슬을 사랑하는'이라는 뜻이다. 야생에서 초파리는 언제나 동이 트기 전 우화하기 때문에 '이슬을 사랑하는 동물'이라는 학명이 붙여진 것으로 생각된다. 집안에 쓰레기가 넘쳐나게 되면 여기저기서 날아다니기 시작하는 귀찮은 날벌레의 학명이 '이슬을 사랑하는 동물'이라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아침에 보는 초파리는 유전학자들에게는 아름다운 존재다.

      동정녀 초파리를 찾아                                                                              모건의 파리방(fly room) » 1920년 컬럼비아 대학에 꾸려진 모건의 파리방(fly room). 초파리를 유인하기 위해 매달아둔 바나나가 보인다.  

엔트로피 법칙이라는, 유전학과는 별반 상관 없어 보이는 이 개념으로 글을 시작한 이유는 파리방 사람들이 아침마다 하는 일이 바로 '이슬을 사랑하는' 초파리의 습성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파리방 사람들은 아침마다 유전자의 엔트로피를 줄이기 위해 초파리의 숫처녀들을 골라낸다. 형광현미경으로 초파리의 뇌를 관찰하거나, 초파리의 행동을 관찰하거나, 유전자를 클로닝하는 다른 생물학 실험실에서도 일상적으로 행해지는 실험들을 제외한다면, 파리방 사람들이 언제나 몰두하고 있는 일은 처녀를 고르고, 처녀를 수컷과 교배시키는 지루한 작업의 연속이다. …

 
10일만에 알에서 번데기, 성충으로

초파리가 알에서 애벌레로, 애벌레에서 번데기로, 번데기에서 성충으로 우화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10일 정도다. 온도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실험실에서 사용하는 25도 조건에서는 딱 10일이 걸린다. 번데기에서 우화한 암컷 초파리는 8시간 정도까지 수컷의 구애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실제로 초파리들의 세계엔 아동 성폭행범이나 강간범이 존재하지 않는다(물론 때때로 예외는 있지만). 미성숙한 암컷도 수컷을 거부하지만, 수컷과 한번 교미를 한 암컷도 수컷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물론 더욱 중요한 것은 초파리의 암컷은 수컷보다 크고 힘도 세다는 사실이겠다. 암컷이 거부하고 도망 다니는 한, 수컷들은 교미의 기회를 잡을 수 없다.

 

원하는 유전자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초파리를 만드는 것이 유전학자들의 작업 중 하나다. 바로 그 작업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단 한번도 교미를 하지 않은 처녀 초파리인 셈이다. 수컷은 교미를 했건 안 했건 언제나 고환에 가득 정자를 품고 또 생산하기 때문에 희소성이 없다. 양성생식의 불평등한 진화에서 선택권을 지닌 쪽은 희소성을 지닌 난자 쪽이다. 그리고 이슬을 사랑하는 동물 초파리는 새벽에 깨어난다. 아침이면 파리방 사람들은 이 귀한 처녀들을 골라내기 위해 현미경 앞으로 모여들기 시작한다. 처녀를 고르는 성스러운 작업으로 파리방 사람들은 유전학적 엔트로피를 줄인다.

처녀 초파리의 모습. 배의 오른쪽 위로 태변이 보인다 » 처녀 초파리의 모습. 배의 오른쪽 위로 태변이 보인다  
연구 초년생은 암컷-수컷 구분법부터 배운다

유전학자들이 파리방에서 가장 먼저 배우는 일은 암컷과 수컷을 구분하는 법이다. 다른 유전학적 표식들을 구분하는 일에 비하면 암수 구별은 아주 쉽다. 수컷의 배 아래쪽엔 툭 튀어나온 생식기가 유난히 눈에 띄기 때문이다. 물론 일반적으로 수컷의 몸집이 암컷보다 작다. 그 다음에 배우는 일은 처녀를 구분하는 법이다. 일반적으로 아침의 선별작업에서는 온몸이 우유 빛으로 뽀얗고, 배에 태변(meconium)의 흔적이 있는 암컷만을 고른다. 아침에 성체들을 모두 비운 용기를 25도 배양기에 넣어두고 8시간 후에 다시 암컷을 고르면 이번에는 모든 암컷이 처녀가 된다. 아침부터 8시간 동안에 태어난 암컷들은 수컷과 교미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침 저녁으로 파리방 사람들은 동정녀에 목을 맨다.

 
파리방 사람들의 엔트로피 전쟁 제2막은...

엔트로피와의 싸움이 처녀 고르기에서 그치는 것은 아니다. 인간과 마찬가지로 초파리의 생식세포에서도 끊임없이 유전자 재조합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유전자 재조합은 애써 확립한 유전형을 교란시킨다. 양성생식이라는 전략은 기생생물로부터 숙주를 보호하는 효과적인 기작으로 진화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 부모로부터 물려 받은 두 벌의 염색체로 끝없이 유전형을 변화시키는 전략은 기생생물이 숙주에 안정화될 기회를 줄일 수 있다. 그렇게 진화한 양성생식은 덤으로 엄청난 변이를 양산하고 진화의 속도를 높일 수 있었는지 모른다. 물론 서얼 라이트(Sewall Wright)에 의해 유전자 표류(genetic drift)라고 정식화된 이러한 뒤섞임은 로날드 피셔(Ronald Fisher)가 그토록 강조했던 다윈의 자연선택에 의해 고정되기도 한다. 파리방 사람들의 엔트로피와의 싸움 제 2막은 바로 이 유전자재조합과의 전투다.

 
파리방 사람들의 '대단한 무기' - 깃털과 붓

여담으로 전투 이야기가 나와서 말이지만, 당연히 전쟁에 나가는 군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총이겠다. 파리방 사람들에게 총과 같은 무기는 바로 깃털과 붓이다. 이산화탄소가 아래에서 새어 나오는 하얀 유리판 위에 초파리를 기절시켜 두고, 파리방 사람들은 조심스레 깃털로 초파리들을 모으고, 붓으로 원하는 유전형을 골라낸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지만, 적어도 파리방 사람들에게 칼보다 강하고 중요한 것은 부드러운 하얀 깃털과 붓이다. 파리방에 입문하는 초심자들에게 선임자들이 의식을 행하듯 성스럽게 깃털과 붓을 선물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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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재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연구원, 행동유전학
“생명에 취한 사람, 초파리들의 날개짓 속에 편안함을 느끼는 몽상가.” 초파리를 이용해 행동유전학을 연구하고 있다.
이메일 : heterosis.ki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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