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웅의 "생물진화, 이론과 실제 사이"

150여 년 전에 찰스 다윈은 생물 진화의 이론을 제시했으나 진화는 생물이론을 넘어 여러 다른 이론들에서, 그리고 우리 일상의 사유와 대화에서도 널리 쓰이고 있습니다. 출발이 되었던 생물 진화 이론은 지금 어떻게 어떤 모습으로 연구되고 있을까요?

[연재] 결혼의 실패, 그리고 종의 분화

::: 생물 진화, 그 이론과 실제 사이 2


--- 종 탄생의 수수께끼



Greenish_Warbler » 버들솔새의 모습. 출처: wikipedia commons

 

 

빙하기의 이별 ::: 버들솔새 수컷은 울음소리로 암컷을 유혹한다. 수컷은 결혼을 하기 위해 암컷이 듣기에 조금이라도 더 매력적인 울음소리를 내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이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은 자신의 자손을 생산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관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한 그룹의 버들솔새 암컷이 다른 그룹의 수컷의 울음소리에 전혀 매력을 못 느끼는 상황이 발생했다. 따라서 이 두 그룹 사이에서 교미가 일어날 수 없게 되었고 새끼도 낳을 수 없게 되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빙하기 시절 버들솔새는 히말라야 산맥 기슭에만 서식했다. 북쪽의 티베트 고원이나 시베리아는 환경이 너무 척박해서 버들솔새가 살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지구의 평균 기온이 점점 오르기 시작하면서 북쪽 지방도 버들솔새가 살기에 적합한 환경으로 변해갔다. 하지만 히말라야 바로 북쪽에 있는 티벳 고원은 여전히 나무가 자랄 수 없는 혹독한 환경이었기 때문에 한 무리는 동북쪽으로, 또 한 무리는 서북쪽으로 서식지를 넓혀 나갔다. 지구 평균 기온이 점점 더 올라감에 따라 이 두 무리의 버들솔새는 서식지를 점점 더 북쪽으로 넓혀서 마침내 시베리아에서 만났다. 이 순간 이들이 발견한 것은 상대방이 사투리를 너무 억세게 쓴다는 사실이었다.

 

버들솔새의 분포. 아래의 노란색 부분이 버들솔새의 원산지인 히말라야. 북서쪽으로 간 무리는 녹색과 푸른색으로 또 북동쪽으로 간 무리는 주황색과 붉은색으로 표시했다. 빗금친 부분은 이 두 버들솔새가 공존하는 지역이다. 출처:Irwin, D. E., Bensch, S. & Price, T. D. Speciation in a ring. Nature 409, 333-337 (2001) » 버들솔새의 분포. 아래의 노란색 부분이 버들솔새의 원산지인 히말라야. 북서쪽으로 간 무리는 녹색과 푸른색으로 또 북동쪽으로 간 무리는 주황색과 붉은색으로 표시했다. 빗금친 부분은 이 두 버들솔새가 공존하는 지역이다. 출처:Irwin, D. E., Bensch, S. & Price, T. D. Speciation in a ring. Nature 409, 333-337 (2001)



'사투리' 세레나데 ::: 미국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의 어윈은 버들솔새의 이동 경로를 따라서 현재 서식하고 있는 버들솔새의 울음소리를 관찰했다. 그의 연구에 의하면 히말라야에서 사는 버들솔새 수컷은 짧은 소리를 네 번에서 여섯 번 정도 반복하여 암컷을 유혹한다. 하지만 북쪽으로 이주한 버들솔새들은 더욱 더 긴 세레나데를 부르게 되었다. 하지만 그 방식에 차이가 있었다. 서북쪽으로 이주한 버들솔새들은 짧은 소리 대신에 긴 소리를 반복하여 세레나데 길이를 늘렸다. 반면 동북쪽으로 이주한 버들솔새는 짧은 소리를 반복하는 횟수를 여섯 번 이상으로 늘려서 더 긴 세레나데를 불렀다. 시베리아에서 이 두 그룹이 조우했을 때, 동북쪽으로 이주한 버들솔새 암컷은 서북쪽으로 간 수컷의 세레나데에 별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또 서북쪽으로 간 버들솔새 암컷은 동북쪽으로 갔던 수컷이 부르는 구애의 노래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이 두 그룹은 시베리아에 와서 완전하게 두 그룹으로 나뉘어 자기와는 다른 사투리를 쓰는 그룹과는 결혼도 하지 않고 새끼도 낳지 않게 된 것이다.


이들은 어떻게 해서 원래 히말라야에서 쓰던 짧은 세레나데 대신 긴 세레나데를 부르게 되었을까?

 

첫 번째 가능성은 북쪽 지방에서는 긴 세레나데를 쓰는 게 자기 자손을 번식시키는 데 더 유리했기 때문일 수 있다. 짝짓기하는 모든 생명체가 자기 자손을 낳기 위해 필요로 하는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포식자로부터 피하고 영양을 충분히 섭취해서 자기 개체를 잘 보존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배우자를 만나서 자식을 낳는 것이다. 버들솔새들이 생존환경이 좋지 않은 히말라야에서 살 때에는 자기 개체를 보존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더욱 중요했다. 그래서 히말라야에서는 배우자를 유혹하기 위해서 화려한 울음소리를 내는 데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이들이 북쪽으로 진출하면서 먹고 살기가 좀 더 쉬워졌다. 먹이를 구하기 위한 경쟁이 약해졌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살기가 더 수월해졌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이제는 배우자를 구하기 위한 노력을 더 많이 기울여야 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매력적인 울음소리를 내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다 보니 울음소리가 점점 더 길어지게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지난 수만 년 동안 동쪽과 서쪽으로 분리된 채 경쟁한 결과 노래 소리는 점점 이질적으로 변하였고, 이 차이가 다른 그룹의 울음소리를 듣고 매력을 못 느끼게 만든 것일 수 있다.


두 번째 가능성은 자식이 부모의 언어를 부정확하게 습득하는 경우다. 많은 종류의 새는 부모의 울음소리로부터 언어를 배운다. 부모의 소리를 듣고 기억한 후, 이를 재생해 봄으로써 언어를 습득하는 방식이다. 만약 몇몇 자식들이 부모의 언어를 조금 부정확하게 습득한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이들은 자식에게도 부정확한 울음소리를 습득시킬 것이다. 수많은 세대가 지나는 동안, 부정확하게 언어를 습득했던 몇몇 조상에 의해서 새의 언어에 방언이 축적된다. 이런 불완전한 울음소리의 습득이 지난 수만 년 간 두 그룹에서 독립적으로 축적되어 지금은 서로의 언어를 알아들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wingbar » 각각 서북쪽과 동북쪽으로 간 버들솔새들. 붉은 원 안에 있는 흰 무늬가 익선이다. 사진 제공: Dr. Darren Irwin


히말라야에서 분리되어 지금에 이르는 동안 이들의 모습도 조금씩 변해 왔다. 대개 버들솔새는 익선을 1개 갖는데 동쪽으로 간 버들솔새는 익선을 2개 갖게 되었다 (사진 참고). 이 두 그룹의 깃털 색도 조금씩 달라졌다. 동북쪽으로 갔던 무리와 서북쪽으로 갔던 무리 사이에 자식을 낳지 못한다는 것은 이 둘의 중간 형태가 나올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자식의 출생을 통하여 양 부모의 유전자가 섞여야만 유전자가 만들어내는 형질이 중간 형태가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대신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이들의 모습은 점점 더 달라질 것이다. 아마도 울음 소리도 점점 달라지게 될 것이다.


결과적으로 수컷이 암컷을 유혹하기 위해서 쓰는 울음소리의 변화가 축적되어 히말라야에서 살았던 버들솔새 한 종이 시베리아에 와서 두 종으로 분화한 것이다.

 

 

텍사스 필드 귀뚜라미와 루벤스 필드 귀뚜라미. 출처: Cade W. H., Otte D. Gryllus texensis n. sp.: A Widely Studied Field Cricket (Orthoptera; Gryllidae) from the Southern United States. Trans Am Entomol Soc, 126:117-123 (2000), Axelander, R.E, The taxonomy of the field crickets of the eastern United States (Orthoptera: Gryllidae: acheta) Ann Entomol Soc Am, 50, 585-602 (1957) » 텍사스 필드 귀뚜라미와 루벤스 필드 귀뚜라미. 출처: Cade W. H., Otte D. Gryllus texensis n. sp.: A Widely Studied Field Cricket (Orthoptera; Gryllidae) from the Southern United States. Trans Am Entomol Soc, 126:117-123 (2000), Axelander, R.E, The taxonomy of the field crickets of the eastern United States (Orthoptera: Gryllidae: acheta) Ann Entomol Soc Am, 50, 585-602 (1957)

짝을 부르는 박자 ::: 울음소리의 변화로 결혼을 못하게 된 또 다른 예가 있다. 미국에 서식하는 텍사스 필드 귀뚜라미와 루벤스 필드 귀뚜라미가 그것이다. 암컷을 유혹하기 위해 텍사스 필드 귀뚜라미는 느린 박자의 울음소리를 내는 반면 루벤스 필드 귀뚜라미는 빠른 박자를 낸다. 이 텍사스 필드 귀뚜라미와 루벤스 필드 귀뚜라미는 형태는 매우 비슷하지만 서로 결혼은 결코 하지 않는다. 캐나다 브로크 대학의 그레이 박사는 암컷 루벤스 필드 귀뚜라미는 텍사스 필드 귀뚜라미의 느린 박자에 매력을 못 느끼고, 암컷 텍사스 필드 귀뚜라미는 수컷 루벤스 필드 귀뚜라미의 빠른 박자에 매력을 못 느낀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래서 이 두 종류의 필드 귀뚜라미는 자연 상태에서 결혼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실험실에서 인공 수정을 하면 루벤스 필드 귀뚜라미와 텍사스 필드 귀뚜라미 사이에서도 새끼를 낳을 수 있다. 이 교잡종 중 수컷은 이 두 귀뚜라미의 중간 울음소리를 내고, 암컷은 이 중간 소리에 매력을 느낀다. 하지만 이런 교잡종은 실험실에서만 만들어질 뿐 자연 상태에서는 생기지 않는다. 이 두 종이 결혼을 해서 새끼를 낳지 못하는 이유는 단 하나, 한 종의 수컷이 내는 울음소리에 다른 종의 암컷이 매력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둘은 아마 과거에는 같은 종이었을 것이고 그 안에서 자유롭게 결혼을 하고 새끼를 낳았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이유로 말미암아 필드 귀뚜라미에 두 그룹이 생겼고, 수컷이 암컷을 유혹하기 위해 내는 소리가 달라졌을 것이다. 소리가 점점 분화해서 한 그룹의 암컷이 다른 그룹 수컷의 구애에 응하지 않게 되자 두 그룹 사이의 자식을 낳을 수 없게 되었고, 완전히 다른 두 종으로 분화하고 만 것이다.

 

 

성적 매력과 종 분화 ::: 지금까지 과학자들이 기재한 생물종은 150만 종 정도나 된다. 알려지지 않은 생물 종을 합치면 지구 상에 존재하는 생물종은 적게는 200만 종에서 많게는 1억 종 정도 된다고 과학자들은 추측하고 있다. ‘어떻게 이렇게 많은 생물 종이 존재하게 되었을까?’라는 질문은 아직 생물학자들이 풀지 못한 수수께끼다. 앞에서 예를 든 것처럼 단지 성적 매력을 느끼는 매커니즘이 분화했기 때문에 종분화가 일어나는 경우는 드물지 않다. 아래에 보이는 생물들 모두 결혼의 실패로 종분화가 일어난 예다.


결혼을 하지 못해 종분화가 일어난 생물들 » 결혼을 하지 못해 종분화가 일어난 생물들. 출처: wikipedia, 합성


둘 이상의 그룹이 서로 결혼을 하지 못한 채 서로 독립적으로 진화하면 형태가 얼마나 많이 변할 수 있을까? 극단적인 예는 다음 사진과 같다.

 

출처: Hedrick P.W. and Andersson L.,Cause of extreme variation in dog morphology: mutation or selection? Are dogs genetically special? Heredity, 106, 712–713 (2011) » 출처: Hedrick PW, Andersson L., Are dogs genetically special? Heredity, 106, 712–3 (2011)

오른쪽 사진은 미국의 버지니아 폴리텍 연구소의 더닝턴 박사의 연구실에서 한 부모의 닭에서 태어난 새끼중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것끼리만 교배를 시키고, 또 몸무게가 적게 나가는 새끼끼리만 교배시키기를 40 세대 동안 반복한 후 찍은 것이다. 더욱 시간이 흘러 52세대가 지났을 때의 자손 중 가장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닭과 적게 나가는 닭의 몸무게 차이는 무려 13배나 되었다.


여름이 한창인 지금, 나무에서는 수많은 새가 울어댄다. 그 중 상당수는 배우자를 얻기 위해서 수컷이 부르는 처절한 구애의 노래다. 암컷은 어떤 소리에 매력을 느끼고 응답할까? 또 어떤 소리에는 꿈쩍도 안 할까? 밖에 나가서 한 번 관찰해 보길 권한다.



* Special thanks to Dr. Irwin, who permitted to use his pictures on his homepage (http://www.zoology.ubc.ca/~irwin/GreenishWarblers.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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