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웅의 "생물진화, 이론과 실제 사이"

150여 년 전에 찰스 다윈은 생물 진화의 이론을 제시했으나 진화는 생물이론을 넘어 여러 다른 이론들에서, 그리고 우리 일상의 사유와 대화에서도 널리 쓰이고 있습니다. 출발이 되었던 생물 진화 이론은 지금 어떻게 어떤 모습으로 연구되고 있을까요?

[연재] 깊고도 드넓은 진화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며

::: 생물 진화, 그 이론과 실제 사이


--- 프롤로그: 진화로의 여행



00sea_life » 놀라운 생물 다양성을 보여주는 바닷속의 미생물들. Census of Marine Life 제공





“저는 진화에 대해서 회의적인데요”.


어느 날 한인 모임에 참여해서 내 연구를 발표할 기회가 있었다. 일반 대중을 상대로 처음으로 발표하는 만큼 열심히 준비해서 내 전공인 비교 유전체학과 새의 진화에 대해서 발표를 했다. 그 후에 쏟아졌던 질문 중 하나가 자신은 진화에 대해서 회의적이라는 말이었다.


사람들은 때때로 내게 “진화가 정말로 일어난다면…”이라는 표현을 쓴다. 또 “저는 진화생물학을 전공합니다”라고 나를 소개하면 잔뜩 미심쩍은 표정으로 “우리 조상이 원숭이라는 게 맞나요?”라고 질문하기도 한다. 진화가 일어난다는 사실이 의심스러운 모양이다.


가끔씩은 진화에 관심이 많은 사람도 만난다. 어떤 사람은 “도킨스의 이론은 이제 죽었어요. 한 때 인기가 많았는데…”라고 말한다. 도킨스는 우리는 유전자가 더 많은 유전자를 만들어내기 위해 만든 매개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그의 가설이 옳은지 나는 잘 모른다. 이런 가설은 보통 증명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과학자로서 내가 해 줄 수 있는 말은 그리 많지 않다. 또 “진화심리학적으로 조혜련보다 김태희에 매력을 느끼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을 하기도 한다. 이 질문의 전제는 “우리의 마음은 후손을 더 잘 낳을 수 있는 방식으로 진화했기 때문에, 인간은 생식 능력이 더 좋아 보이는 배우자를 찾고자 한다”는 것이다. 이 전제가 과연 옳은지 나는 판단이 잘 서질 않는다. 진화심리학은 내 연구 분야가 아니기도 하고, 또 나는 스토리 텔링을 잘 하지 못한다.




갖가지 주제 안고사는 진화 생물학자들


 

를 비롯한 대부분의 진화 생물학자들은 진화가 정말로 일어나는지를 증명할 생각이 별로 없다. 또 도킨스의 주장와 같은 극단적인 환원주의에도 큰 관심이 없다. 진화 심리학은 주로 인간 신경계의 진화를 연구하는데, 진화 생물학이 다루는 범위는 이보다 훨씬 넓다.


그렇다면 나와 같은 진화 생물학자들이 연구하는 분야는 어떤 것인가?


나는 스웨덴의 웁살라대학교 진화생물학센터에서 연구한다. 이 곳에서는 3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생물의 진화가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연구한다. 이들이 어떤 연구를 하고 있는지 간략하게 살펴보자.


나는 게놈 분석을 통해 새가 어떻게 다른 파충류와 다르게 진화했는지를 연구한다. 나와 사무실을 같이 쓰는 동료는 세 사람이다. 스웨덴 사람인 페르는 지난 수만 년 간의 인간 이주 역사를 밝혀주는 방정식을 만들고 있다. 중국에서 온 순유는 곰팡이가 어떻게 성을 갖게 되었는지를 연구한다. 스웨덴 사람 요한은 캘리포니아 반도에 서식하는 도마뱀이 어떻게 갑자기 두 부류로 나뉘게 되었는지 연구한다.


진화생물학센터 안의 다른 사무실 사람들이 연구하는 주제도 살펴보자. 독일인 요헨은 까마귀가 어떻게 더 섹시한 검은색을 만들어 왔는지를 알아본다. 아이슬란드 사람인 오드니는 인간이 어떻게 성인이 되어서도 우유를 섭취할 수 있게 되었는지 연구한다 (원래 젖은 아기의 먹이로 만들어지는 것이므로 성인은 우유를 소화할 수 없다). 미국인 샌디는 다세포 생물의 기원을 찾는다. 또 동물이 식물보다 곰팡이에 더 가깝다는 걸 증명한다. 폴란드 사람인 카타르지나는 기생충이 딱새의 행동을 어떻게 진화시키는지 연구한다. 영국인 조나단은 매년 몇 달 동안 시베리아에 가서 새의 사회성을 관찰하고 온다. 스웨덴 사람인 바르보는 경골어류의 기원을 밝히기 위해 화석을 찾아 다닌다.


이상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진화 생물학자들은 실제로 관찰되는 현상을 통해서 진화의 역사를 재구성한다는 점이다. 아무리 그럴 듯한 가설이 있어도 과학자들은 그걸 증명하기 위한 근거를 현재의 자연 현상을 통해서 찾아야 한다. 그래서 DNA 염기서열 분석도 해야 하고, 정글에 가서 새 소리도 들어야 하고, 화석도 찾아 다녀야 한다. 정교한 실험도 해야 하고, 수심 수십 미터까지 잠수해서 채집도 해야 한다. 또 적절한 통계 분석도 해야 하고, 나처럼 몇 년째 종일 컴퓨터 프로그래밍만 해야 할 수도 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가설에 대한 근거를 찾아낸다.


렇다면 그 가설은 어디에서 오는가? 인류는 지난 수백 년 간 위대한 생물학자를 탄생시켰다. 자연선택론의 다윈, 유전법칙을 밝힌 멘델, DNA의 구조를 밝힌 왓슨과 크릭, 또 진화 현상을 유전법칙과 수학으로 풀 수 있음을 밝힌 피셔 등의 공헌과 또 수많은 생물학자들의 노력이 쌓여 우리는 생명현상이 어떻게 발생하고 어떻게 변하는지에 대한 지식을 축적해 왔다. 하지만 어떤 지식이든 완전한 것은 없다. 특히 생물학에서는 우리가 알고 있는 생명 현상이 과연 얼마나 광범위한 생물종으로부터 관찰되는지를 알아야 하는 경우가 많다. 또 기존의 지식들을 더해서 새로운 가설을 세우는 경우도 있다. 결국 가설은 인류가 그 동안 쌓아왔던 지식에서 온다.


정리하면, 진화 생물학자들의 연구는 두 가지 축으로 이루어진다 (과학의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이지만). 첫째는 기존의 지식에 의해서 만들어진 가설 혹은 예측이고 둘째는 실제로 생명체에서 관찰되는 현상이다.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생명체의 정보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축적되고 있다. 이 정보로부터 어떤 지식은 심각하게 도전을 받고 있고 어떤 지식은 거의 사실로 굳어져가고 있다. 예를 들면 인간이 가진 DNA의 90% 이상이 쓰레기라는 이론은 심각하게 도전을 받고 있다. 반면 생명의 다양성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생물이 이루는 집단의 크기라는 가설은 거의 의심할 바 없는 사실로 굳어지고 있다. 진화 생물학자에게도 가설과 현상, 이 둘을 구분하는 것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어머니의 '바퀴벌레 변화' 관찰기


 

렇다면 독자 여러분은 어떨까? 생명체의 진화를 알아보기 위해 기존의 지식과 실제로 관찰되는 것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알아보는 것은 단지 진화 생물학자의 일일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이는 단지 진화 생물학이 너무나 재미있는 학문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진화라는 테마는 늘 우리 곁에서 호기심을 자극하며, 진화는 나와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설명하는 열쇠가 되곤 하기 때문이다.


내가 어린 시절, 어머니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다. “요즘 집에 보이는 바퀴벌레들이 자꾸 바뀌더라. 몸이 동그란 바퀴벌레들이 갑자기 없어지고 끝이 뾰족한 바퀴벌레들이 보이다가, 또 나중에는….” 어머니께서는 한참을 바퀴벌레 모양의 변천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몇 달 동안 집에 보이는 바퀴벌레들의 모습이 어떻게 변하는지 관심 있게 관찰하셨던 것이다. 아마도 이는 특정한 종류의 살충제에 저항을 가진 바퀴벌레들이 살아남고, 살충제를 바꾸자 살아 남는 바퀴벌레의 유형이 바뀌는 과정이 반복되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많은 사람들은 개나 고양이를 애완 동물로 키운다. 개는 주인을 위해서 충성을 바치지만 고양이는 주인을 친구로 생각한다고 한다. 왜 그럴까? 먼 옛날 인류는 야생 고양이와 개를 길들였을 것이다. 이질적인 개와 고양이가 인간과 어떤 종류의 이익을 주고 받았기에 모두 인간과 친해지게 되었을까?


이종격투기 케이원(K-1)에서 서사모아 출신의 마이티 모라는 선수가 등장한다. 해설자는 서사모아 사람들은 다른 사람보다 골밀도가 높다고 말한다. 또 근처 뉴질랜드 사람들(원주민들)은 중학생만 되어도 덩치가 엄청나게 크다고 덧붙인다. 왜일까? 같은 섬나라라도 필리핀 사람들은 덩치가 작은데 왜 오세아니아의 섬에 사는 사람들은 클까?


이 모든 관찰이 진화와 관련이 있기 때문에 이에 따르는 의문들도 진화 생물학에 의해서 많은 부분 해결될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의문은 진화 생물학자들도 쉽게 답할 수 없기에 진화 생물학자들에게 도전할 주제를 제공할 수도 있다. 자신이 직접 의문을 해결하고 싶은 어린 학생은 스스로가 진화 생물학자기 되기를 원할 수도 있다. 진화 생물학자뿐 아니라 비전공자들의 관찰과 의문, 통찰은 진화 생물학의 토양이 되고 또 우리 자신 및 다른 생명체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된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세계 유명 대학 대부분에는 진화 생물학 학과 또는 학부가 있지만, 내가 알기론 국내에는 아직 진화 생물학 관련 과가 하나도 없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흔한 진화생물학회도 없다. 왜일까? 진화 생물학이 학문의 영역이라는 인식이 부족해서일까? 아니면 생명체의 진화와 관련된 담론이 너무 협소해서 진화 생물학의 토양이 약하기 때문일까?


는 국제통계기구(ISI)가 운영하는 인용색인 데이터베이스인 '웹 오브 사이언스(web of  science)'라는 이름의 홈페이지에서 1996년부터 2006년까지 각 나라마다 진화라는 주제로 출판된 논문이 전체의 몇 퍼센트를 차지하는지 알아보았다. 우리나라는 진화라는 주제로 6,869 편이 출판되었는데, 전체 논문의 3.97%에 해당한다. 이 비율이 다른 나라와 비교해서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를 알아 보기 위해 우리보다 논문 출판 수가 많은 11개 나라의 비율도 계산해 보았다. 일본을 제외한 9개 나라, 즉 미국, 독일, 잉글랜드, 프랑스, 중국, 캐나다, 이탈리아, 스페인, 호주는 한국보다 진화와 관련된 논문의 출판 비율이 훨씬 높았다 (5.55 ~ 8.88%). 다만 인도는 이 비율이 한국과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 (3.99%). 이상에서 한국에서는 진화가 다른 나라에 비해서 비교적 덜 활발히 연구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비교적 최근인 2009년에는 어떨까? 우리나라는 1,400편의 진화 논문을 냈는데, 이는 앞에서 언급한 나라 중 인도를 제외하고 다른 나라 진화 논문 출판수의 절반에도 미치지 않는다. 우리나라보다 총 논문 출판수가 훨씬 적은 러시아는 2,132편 이상의 진화 논문을 냈으며 인구가 800만도 안 되는 스위스도 1,761편의 진화 논문을 냈다. 인구의 80%가 유대교를 믿는 이스라엘 또한 770만 명의 인구로 771편의 진화 논문을 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중국이 2009년 한 해에만 1만 49편의 진화 논문을 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연구 인력이 비교적 적은데도 열심히 연구하는 우수한 과학자의 노력 덕분에 진화학이 세계와의 격차가 많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진화학이 학문의 영역에서 여전히 소외되어 있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진화 여행의 안내자로 나서며



연재에서 필자는 진화라는 여행의 가이드, 곧 여행 안내자이다. 그래서 “진화는 이렇게 일어나는 것이에요”라고 주장할 생각은 없다. 진화에 대한 편견과 직접적으로 싸움하고 싶은 생각도 전혀 없다. 진화 여행의 가이드는 독자들을 진화 생물학의 주요 영역으로 안내할 것이다. 각 영역마다 지금까지 진화 생물학자들이 만들어 놓은 관념이 무엇인지, 이 관념이 어떻게 지지 혹은 거부되는지를 보여줄 것이다. 독자들은 자신이 갖고 있던 생물에 대한 지식이나 관찰한 바를 통해 글을 읽으면서 스스로 판단하면 된다. 더욱이 여행이 끝난 뒤에(글을 읽은 뒤에) 일상 생활 속에서 진화 현상을 발견하거나 그에 대한 자신만의 통찰력이 생긴다면 가이드로서 나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나는 이 연재를 통해서 진화학의 저변을 넓히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다. 생명체의 진화는 학문의 영역이기도 하지만 누구나 쉽게 관찰하고 통찰력을 발휘할 수 있는 주제이기도 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연재의 처음에는 지구 상의 그 많은 생물 종이 어떻게 발생했는지 논의할 것이다. 그리고 DNA 염기서열과 관련한 논의를 소개할 것이다. 그 뒤에 성, 네트워크, 생명의 다양성 등 진화와 관련된 소주제를 하나씩 소개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인기가 많은 몇몇 환원주의자들의 이론을 소개할 것이다.


진화 생물학의 모든 주요 분야를 다루기엔 나의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래서 몇 분야는 언급되지 않음을 양해해 주기 바란다. 또 가능한 쉽게 쓰기 위해서 노력하겠지만 독자들이 이해가 되지 않은 부분이 있을까 염려스럽다. 그 경우 필자가 알 수 있게 피드백을 주시면 감사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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