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항현의 "사회물리학의 낯선 여행"

원자의 운동과 현상을 설명하고 예측하던 통계물리학은 인간 사회 현상과 사람들의 집합 행동을 설명하고 예측할 수 있을까? 핀란드 알토대학에서 사회물리학을 연구하는 조항현 박사가 물리학 속의 사회, 사회 속의 물리학의 이야기를 찬찬히 들려줍니다.

[연재] '삼각형 연쇄작용' 강한 링크가 일으키는 폭발성

::: 사회물리학의 낯선 여행 (7)


::: 핸드폰 통신의 '폭발성'과 '약한 연결의 힘'을 동시 설명하는 모형은?




00Socph7_2


 

 

쩌다보니 몇 달 정도 연재를 하지 못했습니다. 그 와중에 한국에도 잠시 다녀왔는데요, 일정이 짧아서 핸드폰을 따로 마련하지 않았더니 사람들과 약속을 잡을 때 불편하더군요. 핸드폰이 없던 시절에도 약속 잘 잡고 잘 만나고 다녔는데 이제는 핸드폰이 없으면 불편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럴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해봅시다.


일단 약속 장소로 많이 쓰이는 건축물이나 구조물의 구조가 복잡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장소를 정확히 하기 위해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서울 지하철 종로3가역에서 만나기로 했다고 합시다. 지하철 노선 3개가 만나고 출구만도 10개가 넘는 이 역에서 성공적으로 만나기 위해서는 출구 번호뿐 아니라 때로는 출구 안쪽/바깥쪽까지 명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약속 시간이라는 면에서도 복잡도가 커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약속 장소까지의 이동 경로와 이동할 때 이용하는 교통수단이 얼마나 복잡한지에 따라 도착 시간이 불확실해지겠죠.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출퇴근 시간에는 그런 경향이 더 커질 겁니다. 이렇게 약속 장소와 시간이 복잡해지는 데 따른 불확실성을 효과적으로 줄여주는 수단이 바로 핸드폰 같은 이동통신기기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렇다보니 핸드폰이 없으면 위의 불확실성을 견뎌낼 수밖에 없겠죠.



핸드폰 통신의 두 핵심현상, ‘폭발성’과 ‘약한 연결의 힘’



기가 샜는데요, 오늘은 핸드폰 통신 데이터를 분석하고 이를 모형화한 연구를 소개합니다. 지지난 글에서도 한 사용자의 핸드폰 이용 패턴에서 나타나는 폭발성(burst)을 다룬 적이 있습니다. 핸드폰을 오랫동안 이용하지 않다가도 짧은 시간에 여러 번 통화를 하는 것을 가리켜 폭발성이라고 부른다고 했습니다. 이뿐 아니라 핸드폰 사용자들 사이의 연결망에 관한 연구가 2007년에 발표되었는데, 이 논문에서 그라노베터(M. Granovetter)의 “약한 연결의 힘”을 실증적으로 보여주었다고 합니다. 또한 이 연결망을 간단한 모형으로 재현한 연구도 같은 해에 발표됩니다.


각 사용자의 폭발성과 사용자들 사이의 “약한 연결의 힘” 연결망을 동시에 재현하는 모형이 있다면 핸드폰 통신 데이터를, 더 나아가 인간 행동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여 최근에 저와 동료들이 그런 모형을 만들어 연구해보았습니다.


모형을 소개하기 전에 그라노베터의 “약한 연결의 힘(the strength of weak tie)”이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1) 간단히 말해서, 가까운 친구들(강한 연결)보다 먼 지인들(약한 연결)이 새로운 정보를 제공할 가능성이 높을 때도 있다는 말입니다. 이걸 이해하려면 사회연결망이 어떤 모습인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가까운 친구들로 구성된 집단이 사회를 이루는 한 단위라고 합시다. 이 집단들은 서로 완전히 동떨어져 있다기보다는 느슨하고 약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00Socph7_1 » 그림1. 그라노베터의 “약한 연결의 힘” 구조를 단순하게 표현한 그림.


개인들이 사회적 지지를 얻거나 바로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사람들은 바로 곁에 있는 친구들이므로 강한 연결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서로의 정보를 자주 교환하다보니 특별히 새로운 정보를 원할 때에는 가까운 친구들한테서 얻을 수 있는 정보가 별로 없습니다. 반면에 가끔 연락하는 지인, 즉 약하게 연결된 지인한테 새로운 정보를 얻을 가능성이 높아지며, 바로 이것이 “약한 연결의 힘”으로 불리게 됩니다. 그런데 집단 안에서도 약한 연결이 있을 수 있는데, 이들은 새로운 정보의 통로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지는 않으므로 엄밀하게 말하자면 “집단 사이의 다리 역할을 하는 약한 연결의 힘”이라 불러야 할 것입니다.


그라노베터는 1974년에 쓴 글에서 최근 이직한 사람들이 어떻게 새로운 직장을 알게 되었는지 실증적으로 보여줍니다. 27.8%가 약한 연결을 통해, 16.7%가 강한 연결을 통해, 55.6%가 중간 세기의 연결을 통한다고 합니다. 사실 “약한 연결의 힘”이라고만 하면 약한 연결이 제일 중요한 것처럼 보이는데, 위 비율을 보면 실제로는 약한 연결이 ‘의외로’ 힘을 보여준다는 것이 그라노베터의 주장이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직장의 특성과 직장을 구하려는 사람의 계층에 따라 중요한 역할을 하는 링크의 성질도 달라진다는 사실도 염두에 두어야 하겠습니다.



그라노베터 집단구조: 강한 링크의 집단들을 잇는 약한 링크들



리학자 오넬라(J.-P. Onnela) 등이 발표한 2007년 논문에서는 유럽의 한 통신회사에서 제공받은 500만 명 이상의 핸드폰 사용자들의 통화 데이터를 분석하여 “약한 연결의 힘”을 보였다고 주장합니다.2) 물론 통화내역은 알 수 없고 사용자들의 나이, 성별 등 기본정보만 제외하고 이름을 비롯한 사적인 정보는 모두 익명 처리된 것입니다. 예를 들어, “2007년 2월 19일 낮 11시 5분 27초에 193번 사용자가 1058번 사용자에게 전화를 걸어 1분 23초 동안 통화를 했다”는 식의 정보만이 주어집니다.

 

구체적인 통화내역이 없으므로 실제 어떤 정보가 어떻게 퍼졌는지 모르지만, 두 사용자가 몇 번이나 (또는 얼마나 오랫동안) 통화를 했는지로부터 핸드폰 사용자들의 사회연결망을 추론해낼 수는 있습니다. 두 사용자 사이의 통화 횟수를 그들 사이의 연결, 즉 링크의 세기로 정의하면 앞서 말한 대로 강한 링크로 이루어진 집단들과 이 집단들을 연결하는 약한 링크에 의해 전체 연결망이 만들어진다고 합니다.


이를 편의상 그라노베터 집단구조(Granovetter-type community structure)라 부르겠습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갈 점은 핸드폰 통화가 실제 사회연결망을 온전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자주 만나는 사이에서는 그만큼 핸드폰을 이용할 동기가 줄어듭니다. 또한 핸드폰 이용이 아직 익숙하지 않거나 집전화가 더 편한 사람들 사이의 연결구조가 위 데이터에는 반영되지 않는다는 문제도 있습니다.


늘 그렇듯 현실은 훨씬 더 복잡하지만 일단 세부사항을 무시한 간단한 모형을 통해 그라노베터 집단구조를 재현한 연구를 소개합니다.3)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모형 연구는 현상을 이해하고자 하는 첫걸음으로서 주어진 현상 뒤에 숨어 있는 가장 중요한 메커니즘이 무엇인지 탐구하기 위함입니다. 이 연구자들이 주목한 두 가지 중요한 규칙은 “친구의 친구와 친구 되기”와 “취미나 관심이 비슷한 사람과 친구 되기”입니다. 강한 링크로 형성된 집단 안에서는 친구의 친구가 역시 나의 친구인 삼각형이 많이 발견됩니다. 그리고 이런 삼각형은 시간이 지날수록 강화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구체적인 규칙을 설명하겠습니다. 노드(핸드폰 사용자)를 아무거나 하나 고르는데 이를 갑이라 합시다. 갑은 자신의 이웃 중에 한 명을 선택하는데 지금까지 통화를 많이 하여 가까워진 이웃을 선호한다고 합시다(즉 링크의 세기에 비례하여 선택). 이렇게 선택된 이웃을 을이라고 합시다. 을 또한 갑을 제외한 나머지 이웃 중 한 명을 링크의 세기에 비례하여 고르며, 이를 병이라 부릅니다. 갑과 병이 서로 모르는 사이라면 일정한 확률로 링크를 만들고 그 링크의 세기를 1로 놓습니다. 즉 삼각형이 새로 만들어집니다. 그리고 이렇게 연루된 세 노드 사이의 링크를 강화시키는데, 새로 생긴 링크를 제외한 나머지 링크의 세기를 1씩 늘려줍니다. 여기서 꼭 1이 아니어도 0보다 충분히 큰 값이면 됩니다.


다음으로, 집단 사이의 링크는 얼핏 랜덤하게 보이는 사람들 사이의 연결을 통해 이루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를테면 실제로 만난 적은 없지만 온라인 동호회 활동을 통해 알고 지내는 사람과 전화번호를 주고받고 연락을 하기도 합니다. 이런 링크가 새로운 정보가 퍼질 때 집단 사이의 다리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일단 세부사항은 무시하기로 했으므로, 취미와 관심 등의 요인은 생각하지 말고 그냥 ‘랜덤하게’ 두 노드를 골라서 일정한 확률로 연결한다고 가정합니다.


이 두 가지 규칙을 되풀이 하다보면 우연히 알게 된 이웃을 통해 그 이웃의 이웃도 알게 되고 그런 식으로 삼각형 관계가 만들어지고 강화되며 그러다가 또 우연히 랜덤하게 알게 된 노드와 연결되어 새로운 노드들과 연결되면서 점차 그라노베터 집단구조가 만들어집니다. 그런데 이 두 규칙 모두 링크를 만들기만 할뿐이므로 노드의 개수가 일정하다면 결국 모든 사람이 다른 모든 노드와 연결되는 비현실적인 상황에 도달합니다. 실제로는 핸드폰 사용자의 수도 변하고 또 핸드폰 번호 자체가 생성되기도 사라지기도 하므로 다양한 변화 요인이 있습니다. 하지만 또 이런 요인을 모두 고려하기 힘들므로 모형에서는 편의상 노드의 개수를 고정시키되 일정한 시간마다 노드를 하나 골라서 그 노드에 연결된 링크를 모두 끊고 초기화하는 규칙을 도입합니다.



링크의 생성, 강화, 제거의 역동, 쿰뿔라 모형



노드 사이의 관계를 중심으로 위 이야기를 다시 풀어봅시다. 처음에는 서로 몰랐지만 친구의 친구를 통해 또는 취미나 관심사를 통해 알게 됩니다(링크 생성). 그러다 친해져서 통화를 꾸준히 하다가(링크 강화) 어느 순간 멀어지거나 다른 이유로 인해 연락이 끊기면 잊히는 겁니다(링크 제거/노드 초기화).


00Socph7_2 » 그림2. 쿰뿔라 모형의 결과로 나타난 그라노베터 집단구조. 강한 링크는 두껍게, 약한 링크는 가늘게 표현했습니다. 이 모형의 동영상을 유투브에 올려놓았으니 참고하세요(아래↓)

이 모형을 논문의 제1저자의 이름을 따서 편의상 쿰뿔라(J.M. Kumpula) 모형이라 부르겠습니다. 앞서 말한 세 가지 규칙 외에도 중요한 전제는 링크에 ‘세기’라는 속성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애초에 그라노베터가 강한 연결, 약한 연결을 얘기하면서 이미 연결(링크)의 세기를 도입했기에 이를 설명하기 위해 링크 세기를 당연히 고려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각 링크의 세기가 그냥 하나의 값이 아니라 폭발성을 보이는 통화 패턴의 흔적임을 알고 있습니다. 두 핸드폰 사용자 사이의 링크의 세기가 100이라고 할 때 이는 실제로 데이터가 기록된 기간에 두 사용자가 100번 통화를 했다는 사실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통화를 한 시각들을 시간 축에 눈금으로 표시를 하면 사건 사이 시간의 분포가 거듭제곱 꼴이라는 관찰 결과를 얻기도 합니다. 쿰뿔라 모형은 이러한 요인을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00Socph7_3 » 그림3. 그림1의 각 링크를 시간 축으로 펼쳐서 다시 그린 그림. 링크의 두께(즉 세기)는 통화 횟수이며, 각 통화가 이루어진 시각의 나열로부터 ‘폭발성’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폭발성은 이미 지지난 글에 소개한 대로 바라바시의 ‘우선권을 가진 일들의 목록’에 관한 모형으로 일부 이해되었지만 그건 그라노베터 집단구조와 무관한 행위자 한 명에 관한 모형입니다. 한편 쿰뿔라 모형은 그라노베터 집단구조를 재현하기 위한 모형이지만 폭발성을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실제 핸드폰 통화 데이터에서는 폭발성과 그라노베터 집단구조가 동시에 관찰되며 이 두 가지 측면은 연관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연관을 이해하기 위해 폭발성과 그라노베터 집단구조를 동시에 재현하는 모형을 연구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입니다. 그럼으로써 사람들 사이의 소통, 특히 핸드폰을 이용한 소통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지를 이해하는 데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이제 우리 모형을 소개합니다.4)



‘핸드폰 소통의 방식’ 새로운 모형을 만들자



리는 그라노베터 집단구조를 성공적으로 재현한 쿰뿔라 모형의 틀을 그대로 이용합니다. 다만 링크의 세기가 곧 통화 횟수라는 관점에서 링크가 생성되고 강화되는 과정을 더 실제적으로 모형화할 계획입니다.


그럼 “친구의 친구와 친구 되기”를 다시 볼까요? 이를테면 갑과 을은 친구 사이고 을과 병도 친구 사이인데 을을 통해 갑과 병이 소개받아 친구가 되는 경우입니다. 여기에 시간을 고려해 다시 쓰면, 갑과 을이 ‘먼저’ 통화를 한 후, ‘다음으로’ 을이 병과 통화를 하고나서 갑과 병이 통화할 기회를 갖습니다. 갑과 병이 그 전에 통화한 적이 없었다면 이번 통화를 계기로 둘 사이에 새로운 링크가 만들어질 것입니다. 다만 모든 기회가 항상 실현되지는 않으므로, 일정한 확률로만 통화함으로써 새로운 링크가 만들어진다고 가정합니다. 편의상 이 확률을 ‘한곳 연결(local attachment) 확률’로 부르겠습니다.


그런데 을은 새로운 링크를 위한 중개자 역할뿐 아니라 친구들끼리 연락할 일이 있을 때 전달자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갑, 을, 병 모두 친구인 경우에도 갑-을 통화와 을-병 통화가 차례로 이루어진 후 갑-병 통화가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모임 약속을 잡는 등 의견을 모을 일이 있을 때 쉽게 볼 수 있는 패턴이지요. 우리 모형에서는 갑-을 통화 바로 다음에 을-병 통화가 이루어진 경우 그 다음 순간에는 ‘무조건’ 갑-병 통화가 이루어진다는 규칙을 도입합니다. ‘무조건 통화’는 사실 좀 강한 가정인데, 그래서 이를 약하게 만든 모형도 함께 연구했으나 이 글에서는 따로 소개하지 않겠습니다.


다음으로 “취미나 관심이 비슷한 사람과 친구 되기”는 쿰뿔라 모형에서도 말했듯이 두 노드를 랜덤하게 골라 링크를 만드는 규칙으로 표현됩니다. 우리 모형에서도 비슷한 규칙을 이용합니다. 각 노드는 통화할 대상을 먼저 선택합니다. 이웃이 없는 고립된 노드라면 무조건 다른 노드를 랜덤하게 골라 ‘통화할 대상’으로 삼습니다. 고립된 노드가 새 이웃을 만들려면 그 방법밖에 없겠죠. 이웃이 있는 노드라면 이웃 중 한 노드를 통화 대상으로 선택하거나(역시 가까운 이웃을 선호), 또는 아무나 랜덤하게 고르게 합니다. 즉 이웃이 있는 노드는 기존의 이웃을 챙길 의무(?)도 있지만 새로운 노드를 찾아 나설 자유도 있습니다. 통화 대상으로 새 노드를 고를 확률이 커질수록 기존 이웃을 고를 확률이 줄어든다고 가정합니다. 이때 새 노드를 고를 확률을 ‘온곳 연결(global attachment) 확률’로 부르겠습니다. 지금까지는 ‘통화 대상’을 골랐을 뿐 아직 통화가 이루어지지는 않았습니다.


다음으로 통화를 해야 하는데요, 랜덤한 순서로 한 명씩 돌아가며 전화를 걸 기회를 줍니다. 물론 전화를 건다고 무조건 받지는 않으므로, “일단 받고 본다”와 “내가 ‘통화 대상’으로 정한 노드로부터 걸려온 전화만 받는다”는 두 가지 경우를 생각해봅시다. 전자의 경우를 한쪽만 의지가 있어도 통화가 된다는 뜻에서 ‘또는 규약(OR protocol)’이라 부릅니다. 이때 전화를 받는 노드는 원래 자신의 ‘통화 대상’에게 전화할 기회를 잃으며, 전화를 건 노드에게 전화를 걸려고 했던 다른 노드 역시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 노드가 둘 이상의 노드와 동시에 통화하지 못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기 때문입니다. 후자의 경우는 쌍방이 모두 원해야만 통화가 된다는 뜻에서 ‘그리고 규약(AND protocol)’이라 부르는데, 걸려온 전화를 받지 않는다면 통화는 실패하고 전화를 건 노드는 다음 순간을 기다려야 하며, 전화를 받지 않은 노드는 아직 통화할 가능성이 남아 있습니다. 우리는 ‘또는 규약’만 고려한 모형과 ‘그리고 규약’만 고려한 모형을 각각 연구했는데, 결과는 대동소이합니다.


그리고 역시 매번 일정한 확률로 아무 노드나 잡아서 링크를 모두 끊어버리는 초기화를 실행합니다. 그래야 늘어나기만 하는 링크를 주기적으로 없앰으로써 현실적인 결과를 얻습니다.



“모두가 ‘강한 삼각형’ 구성원이 될 순 없다”



단 쿰뿔라 모형을 거의 그대로 이용했기에 그라노베터 집단구조는 성공적으로 재현됩니다. 이외에도 우리가 목표로 했던 통화 패턴의 폭발성을 모형에서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폭발성은 매우 긴 ‘사건 사이 시간(inter-event time)’이 많이 나타난다는 의미입니다. 위와 같은 규칙에 따라 통화를 하는 노드들의 패턴을 보면 오랫동안 통화하지 못하다가 한 번 통화를 할 때 짧은 시간 동안에도 여러 번 통화하는 ‘폭발성’이 보입니다. 통화를 몰아서 하다보니 사건 사이 시간이 매우 짧을 때가 많지만, 몰아서 할 때까지 비어 있는 시간도 길어져서 사건 사이 시간이 길어지는 경우도 많이 나타납니다. 사건 사이 시간의 분포를 보면 두꺼운 꼬리가 나타나는데, 이를 거듭제곱 분포로 볼 것인지 로그정규분포로 볼 것인지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고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 모형에서 얻은 사건 사이 시간 분포를 거듭제곱 분포라 가정하면 거듭제곱 지수를 측정할 수 있는데요, 이 지수는 ‘또는 규약/그리고 규약’ 중 어느 걸 쓰느냐에 따라서도, 한곳 연결 확률의 값에 따라서도 달라진다는 것을 관찰했습니다. ‘그리고 규약’의 경우 거듭제곱 지수는 0.6에서 0.8 사이인데 이는 실제 핸드폰 통화 패턴에서 관찰되는 값인 0.7과 비슷합니다. 온곳 연결 확률도 영향이 없지는 않으나 거듭제곱 지수에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았습니다.


우리 모형은 물론 폭발성을 염두에 두기는 했지만 일부러 폭발성이 나타나도록 모형을 조작한 것은 아닙니다. 위에 설명한 대로 우리 모형은 쿰뿔라 모형을 직관적이고 자연스러운 가정 하에 시간 축으로 확장한 것입니다.


그럼 폭발성이 나타난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가 제시한 개념은 ‘삼각연쇄작용(triangular chain interaction)’입니다.


서로 친구인 갑, 을, 병의 경우 갑-을 통화와 을-병 통화 다음에는 무조건 갑-병 통화가 이루어진다는 규칙에 따르면, 그 다음에는 갑-을 통화가 다시 한 번 무조건 뒤따라와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을-병 통화가 이루어지고, 이런 식으로 연쇄 상호작용이 일어납니다. (물론 이를 방해하는 다른 요인들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갑자기 갑이 ‘노드 초기화’ 규칙에 걸려서 을, 병과의 링크가 끊어질 수도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일단 형성된 삼각 상호작용이 연쇄적으로 일어나면서 강하게 결속된 삼각형 구조를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이 삼각형들이 여러 개씩 모여서 그라노베터 집단구조의 ‘집단’을 이루는 기본 단위가 됩니다.


폭발성 역시 이 삼각연쇄작용과 연관지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삼각형에 포함된 갑, 을, 병은 다른 이웃들과도 상호작용합니다. 그런데 삼각연쇄작용이 강하게 나타날수록 삼각형 구성원들의 사건 사이 시간은 짧아집니다. 계속 서로 통화를 주고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와 동시에 삼각형 구성원들 주변의 이웃들은 이 구성원들과 통화를 하기 위해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물론 그 이웃들 나름대로 또 다른 이웃들과 통화하면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전체적인 연결망의 구조를 보면 강한 삼각형이 몇 개씩 중첩된 덩어리에 이웃수가 적은 노드들이 그 삼각형 주변에 달려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래서 모두가 강한 삼각형의 구성원이 될 수는 없습니다.



핸드폰 통화의 ‘거듭제곱 분포’의 메커니즘은?



리하면 삼각연쇄작용이 강화될수록 삼각형 구성원들의 사건 사이 시간은 더 짧아지고 그 주변 이웃들의 사건 사이 시간은 더 길어지며, 이로 인해 사건 사이 시간의 편차가 커지고 그 분포는 더 두꺼워진 꼬리를 갖게 됩니다 (그 결과 이 분포의 거듭제곱 지수가 작아집니다). 즉 삼각연쇄작용은 그라노베터 집단구조를 구성하는 기본단위이자 폭발성에 영향을 주는 주요 메커니즘입니다.


물론 여기서도 “실제로도 그러한가?”는 질문을 짚어봐야 합니다. 일단 실제로도 삼각연쇄작용이 관찰됩니다. 복잡한 연결망을 이루는 기본단위를 가리켜 ‘모티프(motif)’라 부르는데, 이를 시간에 따라 변하는 연결망에 확장한 개념이 ‘동적 모티프(temporal motif)’입니다.5) 가장 간단한 형태의 동적 모티프 중 노드 세 개로 이루어진 것들 중에 삼각연쇄작용이라 부를 수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복잡다단한 사회현상을 비교적 간단한 모형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를 보여드렸습니다. 사회현상의 복잡한 정도에 비하면 엄청나게 단순하지만 제대로 이해하기에는 여전히 복잡한 모형입니다. 이 간극은 현상과 모형/이론 사이에 놓여 있는 심연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여튼, 정성적으로는 핸드폰 통화 패턴에서 나타나는 그라노베터 집단구조와 폭발성을 모두 보였다고 했지만 아직 이해하지 못한 결과들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폭발성의 실체인 사건 사이 시간의 거듭제곱 분포에서 관찰된 거듭제곱 지수의 값이 왜 하필 0.6과 0.8 사이인지(‘그리고 규약’의 경우) 모릅니다. 이런 거듭제곱 지수는 사람들의 통화 패턴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정보를 주는 것으로 여겨지지만 (제가 아는 한) 아직 아무도 그 메커니즘을 모릅니다. 바라바시가 제시한 ‘우선권을 가진 일 목록’ 모형뿐 아니라 이를 변형한 다른 모형들에서도 1보다 작은 거듭제곱 지수가 나오지 않습니다. 만일 그런 모형을 발견했다고 해도 인간 행동의 어떤 측면과 연관되는지는 또 다른 문제일 것으로 보입니다. 어느 정도 현실에 근거하면서도 관찰된 결과를 잘 재현하는 모형을 만들어 연구하는 것이 앞으로 남겨진 숙제입니다. 아직도 갈 길이 머니 잠깐 쉬었다 가기로 합시다.




  • 구글
  • 카카오
  • 싸이월드 공감
  • 인쇄
  • 메일



최근기사 목록

  • [연재] '위험회피 모형'으로 통신패턴의 폭발성 설명하기[연재] '위험회피 모형'으로 통신패턴의 폭발성 설명하기

    사회물리학의 낯선 여행조항현 | 2012. 01. 30

    ::: 사회물리학의 낯선 여행 (8) ::: 안쓰다가 몰아쓰는 핸드폰·이메일 사용의 폭발성, 그 원인을 찾아서 2 살다보면 평소에는 별 일이나 약속이 없다가도 가끔씩 일과 약속이 한꺼번에 몰리는 경험을 합니다. 일정표나 다이어리나 달력에 일이나 약...

  • [연재] 구경꾼 효과와 목격자들의 도움연결망 모형[연재] 구경꾼 효과와 목격자들의 도움연결망 모형

    사회물리학의 낯선 여행 | 2011. 04. 28

    사회물리학의 낯선 여행 (6) 이번 글에서는 제가 사회물리학 분야로는 처음으로 본격 연구했던 주제인 구경꾼 효과와 도움 행동에 관한 모형 연구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물론 이 연구를 시작하기 전에도 연결망 이론이나 교통 모형, 의견 동역학, 게...

  • [연재] 휴대폰·이메일 사용의 ‘폭발성’ 어떻게 설명되나?[연재] 휴대폰·이메일 사용의 ‘폭발성’ 어떻게 설명되나?

    사회물리학의 낯선 여행 | 2011. 03. 30

    사회물리학의 낯선 여행 (5)   요즘은 집전화 뿐 아니라 전자우편(이메일), 휴대폰, 인터넷폰 등이 중요한 의사소통의 수단으로 쓰이고 있지요. 특히 휴대폰의 경우에는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모형이 출시되고 새로운 기능이 덧붙여지고 쓰임새도 다양해...

  • [연재] 사회·자연현상에 '거듭제곱 분포' 일으키는 힘은?[연재] 사회·자연현상에 '거듭제곱 분포' 일으키는 힘은?

    사회물리학의 낯선 여행 | 2011. 02. 24

    사회물리학의 낯선 여행 (4) 지금까지는 상전이가 일어나는 임계점에서 관찰되는 변수들 사이의 거듭제곱 관계나 거듭제곱 분포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이전 글 ‘리트윗 얼마나 퍼지나’ 연쇄반응 물리모형 만들기와 임계점에선 작은 변화 연쇄반...

  • [연재] ‘리트윗 얼마나 퍼지나' 연쇄반응 물리모형 만들기[연재] ‘리트윗 얼마나 퍼지나' 연쇄반응 물리모형 만들기

    사회물리학의 낯선 여행 | 2011. 01. 20

    사회물리학의 낯선 여행 (3)             연재 첫 글에서는 전체를 이루는 부분보다 그들 사이의 상호작용이 중요해지는 조건에서 나타나는 보편성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두 번째 글에서는 그러한 보편성이 부분의 특성이나 상호작용 구조에 따라 여러 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