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명의 "인지과학으로 푸는 공부의 비밀"

‘공부 잘 하는 법’은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갖는 주제이자 한국 사회의 주요한 정치적 의제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학생들은 잘못된 공부법으로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며 정치 논쟁에선 과학적 근거를 갖춘 경우를 보기 어렵습니다. 공부는 어떻게 해야 할까? 심리학·뇌과학을 통해 우리시대의 공부법을 들여다 봅니다.

[연재] 기억은 이해를, 이해는 지식을 필요로 한다

 인지과학으로 푸는 공부의 비밀 (3)

 

00memento » 영화 <메멘토>. 주인공은 진행성 기억상실증을 지녔다.

 

 

중세 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가 죽은 뒤에 로마 가톨릭 교회는 그를 성인(聖人)으로 시성하고자 청문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아퀴나스에 대해 쏟아진 찬사의 대부분은 그의 놀라운 기억력에 대한 것이었다. 그의 한 제자는 “한 장 한 장 책을 써나가는 것처럼 그의 영혼 속에 영원히 지식이 쌓여가는 것 같았다”고 증언했다.1)

 

 

기억은 지식을 쌓아두는 창고?

 

이 증언처럼 기억은 흔히 글씨를 쓰는 종이나 물건을 담아두는 창고처럼 표현된다. 지식은 글자처럼 마음에 새겨지고, 물건처럼 기억에 쌓인다. 이런 은유는 기억에 대한 소박한 이론을 반영한다. 지식이 돌에 새겨진 글씨나 창고 속의 물건처럼 우리가 보고 들은 그대로 기억 속에 들어가서 그대로 나온다는 생각이다.

 

언제나 그렇지만 은유는 완벽하지 못하다. 사람의 머리는 돌이나 창고가 아니다. 컴퓨터나 사진 같은 사물들에 빗대더라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주변에 접할 수 있는 사물들 중에 기억의 원리와 비슷하기라도 한 물건은 거의 없다.

 

공부나 다른 경험을 하면, 신경세포들의 연결 패턴이 바뀐다. 기억은 이런 연결 패턴이다. 따라서 기억 속의 모든 정보는 서로 얽혀 있다. 창고 안의 물건들은 다른 물건을 넣거나 빼더라도 서로 영향을 주지 않지만, 뇌에서는 어떤 정보를 기억하거나 잊으면 관련된 모든 정보들에 영향을 주게 된다. 동시에 우리가 새로이 학습하는 지식도 기존의 지식에 영향을 받는다.

  

 

돌아서면 잊어버리고

 

심리학자 건스바커(Gernsbacher)는 사람들에게 그림 한 장을 보여주었다. 10분 뒤에 이 사람들은 두 개의 그림 중에 처음에 보았던 그림을 고르는 과제를 받았다. 두 그림은 원래 그림과 똑같았지만, 하나는 좌우가 바뀌어 있었다. 사람들은 자신이 10분 전에 본 그림을 얼마나 정확히 기억했을까? 정답률은 57%에 불과했다. 찍어도 맞출 확률이 50%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그야말로 돌아서자마자 잊어버린 셈이다.2)

 

영화 <메멘토>의 주인공은 진행성 기억상실증(anterograde amnesia)을 지녔다. 그는 어떤 일을 겪어도 시간이 잠시 지나고 나면 잊고 만다. 건스타커의 실험에 참여했던 사람들도 기억상실증이었던 것일까? 그렇지는 않았다.

 

다른 심리학자 맨들러(Mandler)와 리치(Ritchey)도 비슷한 실험을 했다. 그들이 사용한 그림에는 줄무늬 바지를 입은 선생님이 칠판에 지도를 걸어놓고 강의를 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좌우를 바꾸는 대신 지도를 미술 작품으로 바꾸거나, 선생님의 바지를 물방울 무늬로 고쳤다. 사람들은 지도가 미술 작품으로 바뀐 경우에는 쉽게 알아차렸지만, 바지 무늬가 바뀐 것은 잘 알아내지 못했다.3)

 

이러한 현상은 실험을 해보지 않아도 쉽게 경험할 수 있다. “다른 그림 찾기”라는 퍼즐이 있다. 두 장의 그림에서 다른 부분을 찾는 놀이다. 컴퓨터 게임으로도 인기가 있다. 시간 차이를 두고 보는 것도 아니고, 나란히 놓인 두 그림에서 다른 점을 찾기가 쉽지 않다.

 

 

정보들을 엮어내는 뇌의 능력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 잠깐 글 읽기를 멈추고, 맨들러와 리치의 실험에서 사용했던 그림을 상상해보자. 칠판에 지도를 걸어놓고 선생님이 강의를 하는 교실의 모습 말이다. 아마 대부분의 독자들이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이러한 장면에 대해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앞에서 묘사한 그림과 똑같은 장면을 본 적이 없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기존의 지식을 바탕으로 그럴듯한 교실의 모습을 생각해낼 수 있다.

 

이런 상상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힘들이지 않고 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굉장히 복잡한 작업이다. 컴퓨터가 발명되었을 때, 공학자들은 몇 년 안에 인간 수준의 인공지능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컴퓨터는 확실히 여러 면에서 인간을 압도하는 듯했다. 더 많은 정보를 더 빠르고 정확하게 처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공지능 연구는 금세 벽에 부딪혔다. 정보 하나하나를 다루는 능력은 컴퓨터가 인간보다 뛰어났지만, 이런 정보들을 엮어내는 능력에서는 비할 바 없이 뒤떨어졌기 때문이었다. 인간에게 이것은 ‘능력’이라고 부를 만한 것도 아니다. 사람의 마음과 두뇌 속에서 정보들을 원래 그런 방식으로 다뤄지기 때문이다.

 

다른 지식과 잘 연결된 정보는 오래 기억되고, 그렇지 못한 정보는 쉽게 잊힌다. 지도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지식들과 잘 연결된다. 그래서 이 수업이 아마 지리나 역사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쉽게 추론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정보는 잘 기억할 수 있다. 하지만 선생님의 바지 무늬는 다른 지식들과 잘 연결되지 않는다. 기껏해야 평범한 옷차림들 중에 하나일 뿐이다. 바지 무늬가 다른 평범한 무엇으로 바뀌더라도 지식들의 연결 관계에는 큰 차이가 없다. 차라리 선생님이 어릿광대 옷을 입고 있었다면 쉽게 기억할 수 있다.

  

00memory » 한 대형서점의 교과서 코너.  한겨레 자료사진   

 

 

우리는 이해한 대로 기억한다

 

지식의 연결 패턴은 새로운 정보를 단순히 오래 기억시키는 데만 그치지 않는다. 아예 기억을 바꾸기도 한다. 심리학자 카마이클(Carmichael)과 그의 동료들은 사람들에게 간단한 그림을 보여주고, 잠시 뒤에 똑같이 그려보게 했다. 예를 들면 두 개의 동그라미를 선으로 이은 그림이었다. 이 실험에서는 그림의 의미를 설명해 주었다. 어떤 사람에게는 “안경”이라고 말해주고, 다른 사람에게는 “아령”이라고 말해주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아무 말도 해주지 않았다. 어떻게 되었을까?4)

 

실험 참여자들은 분명히 똑같이 그리라는 지시를 받았지만, 원래 그림과 조금 다르게 그렸다. “안경”이라는 말을 들은 사람들은 동그라미를 이은 선을 둥글게 구부렸다. “아령”이라는 말은 들은 사람들은 동그라미들을 조금 더 멀리 떨어트려 놓고 이은 선을 더 굵기 그렸다. 아무 말도 듣지 못한 사람들도 제 나름대로 이해해서 안경이나 아령 중에 어느 한 쪽에 더 가깝게 그렸다. 안경과 아령에 대한 기존의 지식에 따라 새로운 그림에 대한 기억이 달라진 것이다.

 

지금까지는 그림에 대한 예만 들었지만 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문장의 의미를 바꾸지 않고 표현만 조금 고치면 사람들은 잘 알아채지 못한다.5) 또, 서구의 학생들에게 아메리카 원주민 설화처럼 낯선 문화의 이야기를 글로 읽게 하고, 잠시 후 그 이야기를 떠올리게 하면 학생들이 기억하는 설화는 서구의 전형적인 이야기에 가깝게 내용이 달라져 있다. 6)

카마이클의 실험에 사용한 그림. "안경"이라는 말을 들으면 안경과 더 비슷하게, "아령"이라는 말을 들으면 아령과 더 비슷하게 기억된다. » 카마이클의 실험에 사용한 그림. "안경"이라는 말을 들으면 안경과 더 비슷하게, "아령"이라는 말을 들으면 아령과 더 비슷하게 기억된다.

 

 

수업을 들었을 땐 알 것 같았는데

 

많은 학생들이 책을 읽거나 수업을 들었을 땐 알 것 같았는데 지나고 나면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이것도 같은 원리다. 이런 학생들은 책이나 수업에서 주어지는 정보들을 파편적으로 기억하려할 뿐 이 정보들끼리나 이미 알고 있는 지식과 잘 연결하지 못한다.

 

이런 학생들에게 정보를 잘 연결 짓도록 도와주면 큰 학습 효과를 누릴 수 있다. 그런 방법 중에 하나는 ‘질문하고 답하기’다. 강의나 글의 내용을 서로 잘 연결지을 수 있는 질문을 하고 학생들에게 대답하게 하거나, 학생들이 스스로 그런 질문을 만들어보게 하는 것이다. 한 실험에서는 이런 질문 없이 책을 읽은 학생들에게 시험을 쳤을 때 정답률이 50%였지만, 질문을 주고 책을 읽게 하자 정답률이 67%로 향상되었다. 학생이 스스로 문제를 만들게 하면 더 효과적이다. 이렇게 하자 정답률은 70%까지 올라갔다. 100점 만점에 20점이나 향상된 것이다.7)

 

이런 ‘질문하고 답하기’의 효과에는 한계가 있다. 독해력이 뛰어난 학생들만 골라 똑같은 실험을 해보면 점수에 큰 변화가 없다. 이 학생들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머릿속에서 지식들을 잘 연결지어가며 읽기 때문이다. 또, 수업 장면 기억하기 실험에서 그런 것처럼 전체적인 내용과 관련 없는 자잘한 내용들을 기억하는데도 ‘질문하고 답하기’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질문하고 답하기’ 이런 문제들로만 시험을 내면 어떻게 읽어도 정답률은 고만고만하다.

 

 

기억술의 원리도 '연결 짓기'

 

‘질문하고 답하기’는 의미를 중심으로 정보들을 연결짓게 도와주는 방법이다. 공부의 정도(正道)라고 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사도(邪道)도 있다. 흔히 말하는 ‘기억술’이 그런 방법들이다. 기억술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원리는 모두 같다. 외울 내용들끼리 연결하고, 이것을 이미 알고 있는 지식에 연결하는 것이다.

 

가장 많이 쓰이는 기억술은 외울 말들의 첫 글자를 따서 의미가 있는 단어나 문장으로 만드는 약어법이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임진왜란은 1592년에 시작되었다. 이것을 “일(1)본이 쳐들어 오(5)자 나라를 구(9)한 이(2)순신”이라고 외울 수 있다. 이 문장은 이해하기가 쉽다. 이순신에 대한 역사 지식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문장과 임진왜란 발발 연도는 발음으로 연결된다.

 

약어법 외에도 여러 가지 기억술들이 있다. 연상되는 이야기나 장면으로 기억하는 연상법,  순서대로 노래에 맞춰 외우는 운율법, 익숙한 장소에 사람이나 물건들이 순서대로 놓여 있는 모습을 상상하는 장소법 등등이 있다. 이런 방법들은 억지스럽기도 하고 우스꽝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기억에 관해서라면 정도건 사도건 어떻게든 연결만 잘 지으면 학습효과는 마찬가지고, 뇌에서 사용하는 부위도 비슷하다.

 

 

기억은 이해를, 이해는 지식을 필요로 한다

 

시대가 변하고 있다. 이제는 머릿속에 지식을 많이 담아두는 것은 칭찬받을 만한 일이 못된다. 교육에서도 주입식 교육보다 이해나 응용, 나아가 창의성을 강조하는 추세다. 그러다보니 가끔은 지식 축적 자체를 가벼이 보는 듯하는 경향도 있다. 억지로 많은 지식을 가르치는 것보다 학생들에게 스스로 이해하고 응용하는 힘을 길러 주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해를 하려고 해도 지식은 필요하다. 왜냐하면 이해란 새로운 정보를 지식의 연결망 속에 놓는 것이기 때문이다. 과학 논문은 쉽고 분명한 문장으로 쓰여 있지만, 보통 사람이 읽기는 무척 어렵다. 논문에 나오는 개념들을 모르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해하지 않고 기억술로 외우려고 해도 지식이 필요하다. 이순신이 누군지 모르는 사람이 약어법으로 임진왜란 발발연도를 외울 수는 없다. 기억술을 공부 잘하는 요령으로 가르쳐 주는 경우도 많지만 실제로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문데, 기억술로 연결시킬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거꾸로 이런 경향에 반발해서 주입식 교육이 역시 최고라는 사람들도 있다. 올해 초 방영된 드라마 <공부의 신>의 원작 만화인 <드래곤 사쿠라>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주입식이야말로 진정한 교육이다.” 과연 그럴까?

 

앞서도 살펴보았듯이 이해하지 않으면 기억하기도 어렵다. 맨들러와 리치의 실험에 참여한 사람들은 지도를 기억했다. 그림의 내용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카마이클의 실험에선 사람들의 기억이 변했다. 안경이나 아령으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정확한 이해는 정확한 기억의 지름길이다.

 

지식은 이해를, 이해는 지식을 필요로 한다. 일종의 순환이다. 지식이 많을수록 이해는 쉬워지고, 이해를 잘 할수록 지식을 쌓기 쉽다. 공부는 이 순환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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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명 서울대 인지과학협동과정 박사과정
마음과 뇌의 작동 방식을 수학, 통계학 그리고 인공지능을 이용해 시늉내는 계산 모델링(computational modeling)을 연구하고 있다.
이메일 : euphoris@gmail.com       트위터 : @aichupanda        
블로그 : Null Model(nullmodel.egloo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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