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명의 "인지과학으로 푸는 공부의 비밀"

‘공부 잘 하는 법’은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갖는 주제이자 한국 사회의 주요한 정치적 의제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학생들은 잘못된 공부법으로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며 정치 논쟁에선 과학적 근거를 갖춘 경우를 보기 어렵습니다. 공부는 어떻게 해야 할까? 심리학·뇌과학을 통해 우리시대의 공부법을 들여다 봅니다.

[연재] 참지 않고 공부 오래 하기

인지과학으로 푸는 공부의 비밀 (16)


00study1한겨레 자료그림

 

 

 

공부를 잘 하려면,

다른 것을 떠나 일단 공부를 해야 한다.

세상에 공부를 쉽고 효율적으로 하는 방법은 있을지 몰라도

공부를 안 하고도 잘 하는 방법은 없다.

제 아무리 천재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천재’라고 불리는 사람들도 알고 보면

무시무시한 노력가인 경우가 많다.

 

 

 

실력의 차이는 연습량의 차이


 

00violin전문가(expert) 연구의 거장 앤더스 에릭슨(K. Anders Ericsson)은 베를린의 한 명문 음악학교 학생들의 연습량을 조사하였다.1) 그는 음악학교 교수들한테서 바이올린을 전공하는 학생들 중에 세계적인 연주자가 될 만한 최고 수준의 학생들과 그냥 잘 하는 수준의 학생들을 추천받았다. 그리고 음악교육과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하는 학생들도 같은 수를 뽑았다. 음악교육과 학생들은 전문적인 연주자보다 음악 교사를 양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었고, 입학기준도 좀 더 낮은 편이었다.


고 수준의 학생, 그냥 잘 하는 수준의 학생, 그리고 음악 교사를 목표로 하는 학생들 사이에는 여러 가지 차이가 있었다. 가장 큰 차이는 이 학생들이 음악학교에 들어오기 전인 18세까지 했던 연습의 양에서 드러났다. 최고 수준의 학생들은 이때까지 평균적으로 7,410시간을 연습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반면 그냥 잘 하는 수준의 학생들은 5,301시간, 음악 교사를 목표로 하는 학생들은 3,420시간 정도 연습한 것으로 나타났다.


비슷한 차이는 바이올린이 아닌 피아노를 전공하는 학생들에게서도 발견되었다. 아직 학생이지만 공개 콘서트를 가질 정도로 피아노를 잘 치는 학생들이 18세까지 피아노를 연습한 시간의 평균 추정치는 7,606시간이었다. 반면 바흐의 작품을 연주할 정도의 실력이 되는 비슷한 또래의 아마추어들은 같은 기간 동안 평균 1,606시간 정도 밖에 연습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되었다.


음악만이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앤더슨의 연구와 비슷한 결과가 확인되었다. 어느 분야에서나 프로가 되려면 아마추어보다 훨씬 많이 공부하고 연습을 해야 하고, 프로 중에서도 최고의 경지에 이르려면 그보다 더욱 더 많은 공부와 연습이 필요하다. 심리학자 존 헤이즈는 흔히 ‘천재’라고 불리는 사람들도 최소한 10년은 고된 훈련을 받아왔다고 지적한다.2) 타고난 천재는 없다. 노력하는 천재가 있을 뿐이다.


공부는 결국 양에서 승부가 난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동양 학생들은 서양 학생들보다 수학을 잘 하는데 다른 이유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공부를 많이 하기 때문이다. 동양 학생들은 서양 학생들보다 수학 공부를 두 배나 더 한다.3) 여기에 대해서는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므로 여러 증거를 대 가며 일일이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어떻게 해야 공부를 많이 할 수 있을까? 그것이 이번의 주제다.



 

자신의 감정, 생각, 행동을 통제하는 능력


 

00study3성적이 잘 나오지 않는 학생들 중에는 공부를 열심히 하긴 하는데 방법이 잘못된 학생도 있지만 그보다는 아예 공부를 충분히 하지 않는 학생들이 더 많다. 잠시도 책상 앞에 붙어 앉아 있지를 못하고, 억지로 책상 앞에 앉혀 놓아도 금세 딴 생각에 빠지기 일쑤다.


이것은 자연스럽고도 당연한 일이다. 재미있는 게임도 몇 시간씩 하다보면 지겨워진다. 공부도 조금씩 하면 재미있겠지만 역시나 한계가 있는 법이다. 부모들은 자녀가 열심히 공부를 하지 않는다며 잔소리를 하고, 교사들은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딴 짓을 한다고 야단을 치지만 어른들도 그렇게 한 가지 일을 오랫동안 진득이 하지는 못한다.


래도 어떤 사람들은 놀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책상 앞에 앉아 오랜 시간 공부를 한다. 예술이나 체육을 하는 학생들이라면 남들보다 더 열심히 연습을 하는 학생들이 있다. 이렇게 당장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목표를 향해 꾸준히 움직이는 사람들은 흔히 의지가 강하다고 말한다. 의지와 비슷한 표현으로는 절제, 자제심, 참을성, 끈기, 인내심, 정신력 등등이 있는데 전문용어로 자기통제(self-control)라고 한다. 간단히 말하면 자기 자신의 감정, 생각, 행동을 통제하는 능력을 뜻한다.


1960년대 말, 스탠포드 대학의 심리학자 월터 미셸(Walter Mischel)은 자기통제의 원리를 알아내기 위해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가지 실험을 했다. 실험 내용은 간단했다. 실험자는 아이들을 한 명 씩 빈 방으로 불러서 과자를 하나 주고는 잠깐 나갔다 올 테니 그 동안 과자를 먹지 않고 참으면 과자를 하나 더 주겠다고 약속을 했다.


실험자가 나가기 무섭게 과자를 먹어치운 아이도 있었고, 힘들게 참다가 결국 유혹에 무릎을 꿇은 아이도 있었다. 하지만 실험자가 올 때까지 끈질기게 버티는 아이도 있었다. 어떤 아이는 15분이나 과자를 먹지 않고 참았다.

 

00study2한겨레 자료 그림

 

 

의지력의 비밀


 

00candy먹는 것을 참는 것은 매우 어렵다. 의지가 뛰어난 사람들도 먹는 것을 참는 데만큼은 남들과 큰 차이가 없다. 그런데 어떻게 유치원생들이 기특하게도 눈앞의 과자를 오랫동안 참을 수 있었을까? 남다른 의지력을 타고난 탓일까? 물론 의지력에도 유전적인 부분이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오랫동안 과자를 먹지 않은 아이들에게는 다른 비결이 있었다.


설적이지만 유혹을 가장 잘 이겨낸 아이들은 결코 유혹과 싸우지 않았다. 순진하게도 과자를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의지로 참아보려고 한 아이들은 실패하고 말았다. 오랫동안 과자를 먹지 않고 버틴 아이들은 눈을 감거나, 과자에 등을 돌리고 앉거나, 신발 끈을 만지고 놀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책상 밑에 들어가 버렸다. 이 아이들은 스스로 주의를 다른 곳에 돌려서 잠시 동안 과자를 잊어버린 것이다. 미셸은 아이들의 이런 행동을 “주의의 전략적 배분(strategic allocation of attention)”이라고 불렀다.


미셸은 다른 아이들에게도 똑같은 실험을 해보았다. 이번에는 이러한 주의의 전략적 배분을 직접 가르쳐주었다. 또는 아이들이 과자를 볼 수 없도록 가려주었다. 그러자 아이들은 이전보다 훨씬 더 오랫동안 과자를 먹지 않고 참을 수 있게 되었다.


실험에서 아이들에게 준 과자 중에 마시멜로(marshmallow)가 있었기 때문에, 미셸의 이 연구는 “마시멜로 실험”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초코파이 가운데 들어가는 하얗고 쫀득거리는 것이 바로 마시멜로다. 마시멜로 실험은 자기통제가 무조건 참고 견디는 신비한 ‘정신력’이 아니라 사실은 체계적인 기술이라는 교훈을 우리에게 준다.

 

 

자기통제를 잘하면 공부도 잘한다


 

00study4마시멜로 실험을 몇 편의 논문으로 발표한 뒤 미셸은 새로운 주제의 연구에 착수했다. 하지만 그의 세 딸들이 모두 마시멜로 실험을 했던 그 유치원을 다녔기 때문에 실험에 참여했던 아이들 중 몇몇은 여전히 딸들과 친구로 지냈고 미셸은 딸들로부터 실험에 참여한 아이들의 이야기를 가끔씩 전해들을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식사를 하며 딸들로부터 친구들에 대해 이야기를 듣던 미셸은 아이들이 실험에서 보여주었던 행동 방식을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계속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4)


미셸은 자신의 생각을 검증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는 십 년도 전에 실험에 참여했던 아이들과 그 부모들에게 연락을 취했다. 미셸은 부모들에게 자기 자녀에 대해 여러 가지 척도로 평가해달라고 요청했다. 그 결과 어릴 때 실험에서 과자를 먹지 않고 오래 버틴 아이들이 청소년이 되어서도 학업 성적도 우수하고, 교우 관계도 원만하고, 말도 잘하고, 합리적이고, 집중력도 있고, 계획적이고, 스트레스도 더 잘 관리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나중에 이 아이들이 좀 더 자라서 수능(SAT)을 보고 난 후에 미셸은 그 점수도 분석해 보았다. 아이들의 수능 성적은 과자를 먹지 않고 참은 시간과 뚜렷한 상관관계를 보였다. 어릴 때 유혹을 오래 버틴 아이들이 수능 성적도 그만큼 더 좋았다. 어릴 때 보인 잠깐의 행동 하나로 이렇게 먼 훗날의 행동을 예측할 수 있는 경우는 드물다. 5)


러한 결과로부터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짐작해볼 수 있다. 우선, 자기통제의 차이는 사람마다 다르고 오랫동안 지속된다. 그리고 한 가지 일에서 자기통제를 잘 하는 사람들은 다른 일에서도 잘 한다. 눈앞의 과자를 참을 수 있는 아이들은 공부나 생활에서도 자기를 잘 통제할 수 있는 것이다.


다른 여러 연구도 미셸과 비슷한 결과를 보고하고 있다. 자기통제를 잘 하는 사람들은 더 행복하고 적응도 잘 하며 건강도 좋다. 삶에서 자기통제와 관련이 없는 문제를 찾기가 더 어려울 정도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관련을 보이는 것이 일과 공부다. 직장이나 학교에서 보이는 성취는 다른 무엇보다도 자기통제와 상관관계가 크다. 청소년들에게 지능과 자기통제를 측정해보면 성적은 지능보다 자기통제에 더 많이 좌우되고6), 대학생들도 수능 점수보다 자기통제가 학점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7).

 

 

참는데도 한계가 있다


 

00cake다행스러운 소식 하나는 자기통제도 배우고 익히면 잘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앞서도 말했다시피 자기통제는 기술이고 요령이다. 물론 여기에는 몇 가지 핵심적인 원리가 있다. 다른 원리들에 대해서는 다음에 자세히 다루도록 하고 여기서는 자기통제의 가장 중요한 원리에 대해서만 설명하도록 하자. 그 원리란 흔히 하는 말처럼 “참는데도 한계가 있다”라는 것이다.


리학자 로이 바우마이스터(Roy Baumeister)는 미셸의 마시멜로 실험과 비슷한 실험을 진행했다. 그의 실험은 “순무 실험(the radish experiment)”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마시멜로도 그렇지만 순무도 한국에서 즐겨먹는 음식은 아닌데, 작고 동그랗게 생긴 무다. 강화도에서는 순무로 김치를 담가 먹는다.


어쨌거나 순무 실험은 다음과 같이 진행되었다. 밥을 굶은 대학생들을 한 명 씩 실험실에 혼자 두었다. 방 안에는 과자와 초콜릿, 그리고 순무가 잔뜩 쌓여 있었다. 학생마다 무작위로 먹을 음식이 정해졌는데 어떤 학생은 초콜릿을 먹게 했고, 어떤 학생은 순무를 먹게 했다. 학생들은 방 안에 혼자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이들의 행동은 몰래 관찰되고 있었다. 눈앞에 산더미처럼 쌓인 맛있는 과자를 두고 순무나 먹게 된 불쌍한 학생들은 과자를 하염없이 쳐다보며 침을 삼키거나 심지어 과자를 집어 들고 달콤한 향기를 맡아보기도 했다. 하지만 역시 대학생들이라 마시멜로 실험의 유치원생들과 달리 과자의 유혹을 잘 참아냈다.


실험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실험자들은 과자든 순무든 먹으라는 대로 먹은 학생들을 다른 방으로 데려갔다. 이번에는 학생들에게 퍼즐을 풀게 시켰다. 그런데 이 퍼즐은 절대로 풀리지 않는 퍼즐이었다. 학생들은 그것도 모르고 한참이나 붙들고 있다가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그렇지만 포기할 때까지 걸린 시간에는 차이가 있었다. 과자를 먹은 학생들은 평균 20분은 퍼즐을 풀려고 노력했다. 밥만 굶고 이상한 실험실에 들어가지도 않은 학생들도 있었는데 이 학생들은 아무 것도 먹지 못했지만 비슷하게 노력을 했다. 그런데 과자의 유혹을 참으며 순무를 먹은 학생들은 평균 8분만에 그만두고 말았다. 남들의 절반 만큼도 해보지 않고 포기한 것이다.8)


 

의지력은 한정된 자원


 

00chair이러한 결과로부터 바우마이스터는 의지력이 한정된 자원(limited resource)이라고 주장했다. 순무를 먹은 학생들은 과자의 유혹을 참는데 의지력을 다 써버려서 퍼즐을 푸느라 노력하는데 쓸 의지력이 더는 남아있지 않았던 것이다. 반면 과자를 먹은 학생들은 물론이고 아예 아무 것도 먹지 않은 학생들은 의지력이 넉넉히 남아 있었기 때문에 온전히 퍼즐을 푸는데 바칠 수 있었다.


기통제에서 기술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참는 데는 한계가 있다. 게다가 그 한계는 매우 빨리 온다. 누구나 한 번 쯤 자신의 약한 의지에 대해 스스로도 한심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통제의 핵심은 참는 것이 아니라 참지 않는 데 있다. 참으면 안 된다. 마시멜로 실험에서도 과자를 참으려고 한 아이들은 결국 참지 못했다. 공부도 그렇다. 지겨움을 참으며 이를 악물고 책상 앞에 붙어있는 식으로는 오랫동안 공부를 할 수 없다. 유혹은 견디는 것이 아니라 벗어나야 하는 것이다.


유혹에서 벗어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미셸이 말한 “주의의 전략적 배분”도 한 가지 방법이다. 다른 일로 스스로를 바쁘고 정신 없게 만들어서 유혹을 잊어버리는 것이다. 이런 방법은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는 유용하지만 임기응변일 뿐 아주 좋은 방법이라고는 할 수 없다. 자기통제에는 좀 더 체계적인 기술이 필요하다. 다음 회에 더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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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명 서울대 인지과학협동과정 박사과정
마음과 뇌의 작동 방식을 수학, 통계학 그리고 인공지능을 이용해 시늉내는 계산 모델링(computational modeling)을 연구하고 있다.
이메일 : euphoris@gmail.com       트위터 : @aichupanda        
블로그 : Null Model(nullmodel.egloo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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