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명의 "인지과학으로 푸는 공부의 비밀"

‘공부 잘 하는 법’은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갖는 주제이자 한국 사회의 주요한 정치적 의제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학생들은 잘못된 공부법으로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며 정치 논쟁에선 과학적 근거를 갖춘 경우를 보기 어렵습니다. 공부는 어떻게 해야 할까? 심리학·뇌과학을 통해 우리시대의 공부법을 들여다 봅니다.

[연재] 학교 평준화와 비평준화를 넘어서

인지과학으로 푸는 공부의 비밀 (12)

 


 

00edu » 시사주간지 <한겨레21>의 '비밀엽서' 코너에 소개된 독자 엽서(2010년 6월). 한겨레 자료그림



‘고교 평준화’는 사실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평준화’는 글자 그대로 풀면 수준(準)을 같게(平) 만든다(化)는 뜻이다. 그러나 한국의 고등학교들은 어떤 의미로도 그 수준이 같지 않고, 고등학교들의 수준을 같게 만들려는 정책적 노력도 잘 눈에 띄지 않는다. ‘고교 평준화’라는 이름 아래 실제로 하고 있는 것은 고등학교 신입생을 시험이 아니라 추첨으로 뽑는 것 뿐이다.


물론 추첨으로 학생을 선발하면 고등학교마다 학생들이 골고루 섞여 들어가기 때문에 고등학교들 사이에 입학생의 수준이 비슷해지기는 한다. 그런데 여기에는 두 가지 함정이 있다. 우선 입학생의 수준이 학교의 수준을 곧바로 결정짓지는 않는다. 비슷한 학생들을 가르치더라도 잘 가르치는 학교가 있고 못 가르치는 학교가 있을 수 있다.


게다가 학생들은 같은 학군 안에서 이 학교 저 학교로 나뉘어 들어갈 뿐이기 때문에 입학생의 수준이 비슷하다고 해도 그것은 한 학군 안의 상황일 뿐이다. 학군마다 경제적, 사회적 여건이 다르기 때문에 다른 학군에 있는 학교들끼리는 여전히 차이가 있다.


‘고교 평준화’를 두고 나오는 불만들은 학교들이 모두 똑같기 때문이 아니다. 진실은 오히려 정반대다. 학부모나 학생들은 학교들이 모두 다르다고 믿는다. 단순히 서로 다른 정도가 아니라 어떤 학교는 좋고, 또 어떤 학교는 나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추첨으로 학생을 뽑으면 ‘좋은 학교’에 마음대로 갈 수가 없다. 그래서 학군을 옮기기 위해 이사를 가는 편법을 쓰기도 하고, 이미 특수한 목적은 없고 일반적인 목적만 남은 ‘특수목적고’에 진학하기도 한다.


 

 

학교 효과는 크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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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들 사이에는 정말 그렇게 큰 차이가 있을까? 학교가 학생의 학업 성취도에 끼치는 영향을 교육학에서는 학교 효과(school effect)라고 부른다. 원래 성적이 좋은 학생을 뽑아서 그 학교의 평균 성적이 높다면 이것은 학교 효과가 아니다. 비슷한 학생을 뽑은 학교들 사이에 평균 성적이 차이가 난다면 이것이 학교 효과다. 그런데 학교 효과의 크기에 대해서는 상당한 논란이 있다.


1966년 미국의 사회학자 제임스 콜만을 비롯한 연구자들은 미국 교육부의 요청에 따라 미국의 교육 평등에 대한 실태를 조사하였다. 콜만과 동료들은 15만명의 학생을 조사하여 700쪽이 넘는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 보고서의 제목은 “교육 기회의 평등(Equality of Educational Opportunity)”인데 “콜만 보고서(Coleman report)”라는 이름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1)


만 보고서에 따르면 학생들의 학업성취도는 주로 학생의 사회경제적 지위에 좌우된다. 간단히 말하면 성적은 부익부 빈익빈이며, 학교 교육은 이것을 뒤집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결과는 교육을 통한 평등이라는 이상에 대해 대단히 비관적인 전망을 제시한다. 왜냐하면 가난한 집 아이가 학교 교육을 통해 부모보다 더 높은 소득과 지위를 얻게 되기보다는 부잣집 아이가 더 높은 성적을 거두고 결국 소득과 지위가 높은 직업을 얻게 되어 부의 대물림이 이뤄지게 되기 때문이다. 콜만 보고서의 내용을 한국 상황에 적용하자면 강남 지역이 교육의 질이 높아서 부유층이 몰리는 것이 아니라, 부유층이 몰려서 학생들의 성적이 높은 것이다.


물론 콜만 보고서에는 많은 한계가 있었다. 콜만은 재정과 자원이 풍부한 학교를 좋은 학교라고 보았다. 그런데 예산이 풍족한 학교가 예산이 빈약한 학교보다 더 잘 가르치는 것은 아니더라는 것이다. 하지만 비싼 책상에서 공부한다고 성적이 더 좋을 이유가 없기 때문에 콜만 보고서의 결과는 어쩌면 당연하다.


교육 방침과 같은 측면에서 비교한다면 학교 효과는 콜만 보고서의 결과보다 더 크게 나타날 수도 있다. 많은 연구자들이 이러한 점에서 콜만을 비판했고, 실제로도 학교 효과가 생각보다 크게 나타나는 경우를 발견하기도 했다. 그러나 여전히 학교 효과는 다른 변인에 비하면 학업성취도에 미치는 영향이 그렇게 크지 않다.

 

 


우물 안의 개구리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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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한국교육개발원의 이인효와 최돈민은 강남 8학군 학교들의 학교 효과를 비교해보았다.2) 이들은 1987년에 고등학교에 입학한 학생들의 고입 연합고사에서 고3 학력고사 모의고사에 이르는 성적 변화 자료를 사용하였다. 1987년 당시는 이미 고교평준화 정책이 시행된 이후였으나 당시까지는 학교들 간에 수준 차이가 있다고 널리 믿어졌고 실제로 학교마다 학생들의 고입 연합고사 성적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이인효와 최돈민은 이 지역의 고등학교들을 상위권 학생들이 몰리는 상위권 학교, 중위권 학생들이 몰리는 중위권 학교, 하위권 학생들이 몰리는 하위권 학교, 그리고 여러 종류의 학생들이 골고루 섞인 평준화 학교로 구분한 다음 학교별로 학생들의 성적 변화를 조사했다.


만약 학교 효과가 강하게 나타난다면 이른바 ‘명문고’에 진학한 학생들이 ‘평준화 학교’에 진학한 학생들보다 성적이 더 많이 올라야 할 것이다. 그런데 분석 결과는 상위권과 하위권에 관계없이 평준화 학교에 진학한 학생들의 성적이 가장 많이 향상되었다. ‘명문’의 학교 효과는 생각만큼 별 볼일이 없었던 것이다.


런데 학교 효과가 없다면 명문고나 평준화 학교나 성적이 모두 비슷했어야 한다. 어째서 평준화 학교의 성적이 더 많이 올랐을까? 이것은 성적 변화 자료만 가지고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니기에 이인효와 최돈민은 “우물 안의 개구리 효과”라는 한 가지 추측을 제시한다.


중학교 때 성적이 우수하기는 했으나 최상위권이 아닌 학생의 경우 이른바 ‘명문고’에 진학하게 되면 상대적으로 성적이 하위권으로 떨어진다. 실제로 성적이 떨어진 것은 아니고 상대적으로 그렇게 보일 뿐이지만 학생들은 정말로 성적이 떨어진 것처럼 충격을 받는다. 우물 안의 개구리에게 우물 속이 자기 세계의 전부이듯, 학생들에게도 학교 안의 석차만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명문 학교에 진학해서 ‘상대적 하위권’으로 굴러 떨어진 학생들은 좌절을 겪고 자신감을 잃은 나머지 정말로 성적이 떨어져버리게 된다. 하지만 평범한 학교에 진학하면 이런 문제를 겪을 일이 없다. 물론 이것은 그들의 자료로서 입증되지는 않지만 설득력 있는 지적이다.


최근의 연구에서도 비슷한 결과들이 관찰된다. 2004년 가톨릭대의 성기선은 평준화 지역과 비평준화 지역의 성적을 비교했는데 다른 변인들을 모두 통계적으로 통제했을 때 평준화 지역과 비평준화 지역 사이에는 유의미한 성적의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다.3) 2005년 한국교육개발원은 “평준화 정책이 학업성취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종단적 분석”이라는 보고서를 발간했는데 여기서는 평준화 지역이 아닌 비평준화 지역에서 이른바 ‘하향평준화’ 현상이 나타난다고 보고하고 있다.


 

 

우리가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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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효과가 없는 것은 그렇다쳐도, 비평준화 지역의 성적이 평준화 지역보다 높지 않은 것은 좀 의아할 수 있다. 이전 회에도 지적했다시피 학생들의 수준에 따라 다르게 가르치면 더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좋은 학교, 나쁜 학교가 없다면 학생들은 자기 수준에 맞는 학교에서 공부하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간단치가 않다.


한국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비평준화가 학업성취도를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결과가 많이 나온다. 예를 들어 학생의 수준별로 학급을 구성하는(ability grouping) 흔히 말해 ‘우열반’에 대한 연구들을 보면 학생들을 나누어 가르치나 섞어서 가르치나 성적에 별다른 변화가 발견되지 않는다.


험에서는 수준별 교육이 더 효과적인데, 왜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을까? 그것은 학급을 수준별로 나눠놓을 뿐 수준별로 가르치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의 교육학자 지니 오크스(Jeannie Oakes)는 성적이 낮은 학생들로 구성된 학급(low-track class)은 비교육적 환경에 빠져 있고 이 학급의 학생들은 학교의 활동에서 소외되어 기회와 성취 그리고 삶의 기회를 제약당한다고 지적한다.4) 미국교사연합의 회장인 알버트 섕커(Albert Shanker)는 “우리가 그들에게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한다”는 반성을 하기도 했다.5)


게다가 학생들 스스로도 공부하기를 포기해버리기도 한다. 앞서 말한 ‘개구리 우물 효과’에서도 지적되었지만 명문고에서도 일단 하위권이라고 스스로 인식해버리는 학생은 공부할 의욕을 잃게 된다. 그런데 ‘비명문고’에 진학한 학생은 학교 안에서 성적이 높아봐야 자신이 ‘나쁜 학교’에 다니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역시 공부할 의욕을 가지기 어렵다. 학교도 학생들도 의욕이 떨어지니 수업 분위기가 나빠지고 교육 환경이 악화된다.

 

 


비평준화의 근본적 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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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고교 비평준화나 수준별 학급을 편성하더라도 성적이 낮은 학생들에게 적절한 수준별 교육을 실시하고, 학생들 스스로도 포기하지 않는다면 지금의 평준화보다 좀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그런 가능성이 있기는 하지만 최선의 대안이라고 생각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이런 정책들에는 근본적인 결함이 몇 가지 있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제각각 모두 다르다. 하지만 비평준화나 수준별 학급 편성은 대체로 성적 총점만을 기준으로 학생들을 분류한다. 성적 총점이 같은 학생이라도 과목마다 비교해보면 성적이 서로 다르기도 하고, 한 과목의 성적이 같은 학생들끼리도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이 다르다. 학생들을 분류하는 방법 자체가 정밀하지 못하다.


게다가 이런 분류마저도 너무 드물게 일어난다. 고교 비평준화에서는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진학할 때 단 한 번만 학생들을 분류한다. 수준별 학급도 학년이 올라갈 때나 아니면 학기가 바뀔 때 한 번 재편성하는 것이 전부다. 학생들의 이해 수준은 시시각각 변하는데 대응은 몇 개월이나 몇 년 단위로 이뤄지는 것이다.


준별 교육은 중학교 때 성적이 나쁘던 학생도 얼마든지 성적이 높아질 수 있다는 전제가 있어야 의미가 있다. 그런데 특목고에 다니던 학생이 수업을 따라가지 못해 일반고로 전학 가는 경우는 있어도, 그 반대의 경우는 제도적으로 불가능하다. 수준별 교육을 받아 성적이 높아지게 되더라도 이미 자기 수준에 맞지 않게 된 교육을 계속 받아야 하는 것이다.


학교를 옮길 수 있다고 해도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전학은 성적에 아주 해로운 영향을 미친다고 알려져 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학교를 옮기게 되면 그 전에 사귀었던 친구들과 헤어지게 되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게 되기 때문이다.6) 그러니 학교나 학급을 자주 재편성하는 것도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


제대로 수준별 수업을 하기 위해서는 성적 총점보다 좀 더 정밀한 방법으로 몇 년이나 몇 달이 아니라 더 자주, 가능하다면 매일이라도 학생의 이해 수준을 파악해야 한다. 또 학생이 학교나 학급을 옮겨 다닐 것이 아니라 학생 개인에게 교육이 맞춰져야 한다. 교육학자 벤저민 블룸은 수업 시간마다 형성평가를 실시해서 학생 각각의 이해 수준을 확인하고 이에 따라 학생들을 적절히 집단으로 묶어 지도하는 교육 방침을 제시하기도 했다. 물론 비평준화나 수준별 학급에 비해 대단히 수고롭다는 단점이 있다.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교육 방식을



실 강의는 적은 수의 교사로 많은 수의 학생을 가르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장점은 기술의 발전에 의해 점점 퇴색하고 있다. 인쇄술과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으로 더 이상 많은 학생들에게 지식을 전달하는 것 자체는 강의보다 더 저렴한 방법들이 등장하였다. 시대가 바뀌어감에 따라 교사들에게도 좀 더 새로운 역할이 요구된다.


평준화나 비평준화, 또는 수준별 학급은 모두 전통적인 집체식 교육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클릭 한 번으로 자신에게 맞는 동영상 강의를 몇 번이고 시청할 수 있는 시대에 비슷한 학생들끼리 한 교실이나 한 학교에 모아놓는 게 무슨 대단한 일이라고 주장하기도 멋쩍거니와 실증적으로도 큰 효과가 없다. 이제는 집단이 아닌 학생 개인을 향한 교육을 실현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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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명 서울대 인지과학협동과정 박사과정
마음과 뇌의 작동 방식을 수학, 통계학 그리고 인공지능을 이용해 시늉내는 계산 모델링(computational modeling)을 연구하고 있다.
이메일 : euphoris@gmail.com       트위터 : @aichupanda        
블로그 : Null Model(nullmodel.egloo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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