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연의 "동물들의 생활사, 생존의 전략"

사는 게 왜 이런가? 자연은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과 닮아 있고,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은 자연 원리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다. 모든 동물이 살아가는 다양한 생활사에는 35억 년 누적된 진화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

[연재] '필사적인 형제간 먹이경쟁' 진화의 손익계산은?

(3) 형제 갈등, 그 생물학적 근원과 해소


00lfie3_9"엄마아빠, 먹이를 저 주세요!" 둥지 안에선 먹이를 둘러싸고 형제간 경쟁이 벌어진다. 출처/ Wikimedia Commons




인생의 첫 경쟁자는 누구였을까? 어렸을 때의 기억을 더듬어보면, 학교에 가고 친구와 어울려 노는 일 이외에 날마다 되풀이했던 것이 더 있다. 바로, 겨우 한 살 차이 나는 동생과 다투고 싸웠던 일이다. 지금이야 서로 멀리 떨어져 사니 애틋한 누나와 동생이지만, 어렸을 때엔 지치지도 않고 시간과 에너지를 소비하며 날마다 싸워댔다. 단지 우리 남매간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외동으로 태어나고 자라지 않은 이상, 누구라도 형제 갈등을 인생 최초로 경험한 인간관계의 갈등으로 주저하지 않고 꼽지 않을까? 우리는 성장 과정에서 같은 부모 밑에서 자라는 형제들과 본능적으로 갈등 관계를 형성하도록 되어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동물들은 어떨까? 한 배에서 태어나 함께 어미 젖을 물고 있는 새끼돼지 형제의 사진을 보면 참으로 사랑스럽다. 어미가 누우면 새끼돼지들이 일렬로 모여 젖꼭지를 하나씩 나눠 문다. 마치 형제끼리 사이좋게 나눠 먹으라고 어미돼지의 젖꼭지도 여럿인 것만 같다. 여기까지는 그림책 속에 나올 법한 설명이다. 그 평화로운 모습 뒤에 숨은 현실은 조금 다를지도 모른다. 어미돼지는 그 많은 새끼의 생존과 성장에 필요한 자원을 공급해주는 세상에서 유일한 존재이다. 자라나는 새끼돼지들은 아무리 먹어도 항상 배가 고프고 어미가 생산하는 젖의 양은 한정되어 있기에, 한 배에서 나온 형제들은 각자한테 한정된 잠재적인 자원을 뺏어가는 가장 무서운 경쟁자이기도 하다. 더군다나 이것은 새끼돼지 각각의 사활이 걸린 생존경쟁이 아닌가.

 

00life1엄마돼지 젖을 먹는 새끼돼지 형제들. 출처/Wikimedia Commons

 

여러 자식이 성장과 생존을 위해서 부모가 제공하는 먹이와 돌봄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에서 가족 간의 갈등 구조는 단지 형제간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부모-자식 간에도 연결되고 확장된다. 가족 안에서는 의존적 자식과 부모를 둘러싼 두 가지의 가족 갈등 관계가 형성된다. 첫 번째는, 각각의 새끼가 더 많은 자원(먹이와 부모의 돌봄)을 분배받기 위해 경쟁하는 형제 갈등이고, 두 번째는 이런 형제 경쟁이 더 많은 자식을 성공적으로 키워내 자신의 적응도(fitness)를 높이려는 부모의 이해관계와 충돌해 빚어지는 갈등이다. 어떻게 해서 형제간, 부모-자식 간의 갈등 관계가 형성되며, 이런 갈등은 진화 과정에서 어떤 방식으로 해소될 수 있을까?

 

 

막내의 운명: 죽거나 나쁘거나

00dotline

2006년부터 2년 동안 멕시코 국립자치대학에서 연구원으로 일할 때 가장 즐거웠던 것은 태평양의 작은 섬으로 야외 연구를 갔던 일이다. 그곳은 해마다 우리 대학 연구팀이 몇 달씩 연구캠프를 꾸려놓고 생활하며 어부들도 작은 배의 저장고를 가득 채울 때까지 고기를 잡다가 때때로 머물다 가는 곳이지만, 이 이사벨 섬(Isla Isabel)은 원래 무인도이며 수많은 야생동물이 서식하는 국립공원이기도 하다. 지상낙원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이사벨 섬은 특히나 바닷새의 천국이라서, 수많은 푸른발얼간이새(Sula nebouxii), 갈색얼간이새(Sula leucogaster), 펠리컨, 군함조 등이 해마다 이곳에 찾아와 번식한다. 새들이야말로 이 섬의 진정한 주인이어서 사람을 귀찮아 하기는 해도 무서워하는 기색은 없다.

 

00life3_8이사벨 섬에서 함께 지낸 친구들, 멕시코 국립자치대학 학생들과 어부들. 갓 잡은 생선으로'세비체'(생선 날것에 라임 즙을 넣은 요리)를 만들고 있다. 날마다 텐트 안에서 자고 바닷물로 목욕해야 하는 생활이지만 ‘지상낙원’에서 지내니 모두 행복하다는 표정이다. 사진/ 김신연

 

그 중에서도 수가 가장 많은 푸른발얼간이새(해마다 삼천 쌍이 번식하러 이 섬을 찾는다)는 정말 이름대로 푸른색 발을 지녔는데, 짝짓기 할 때에는 그 푸른 발을 들었다 놨다 뒤뚱거리며 춤을 추고 휘파람을 불어댄다. 그 모습이 우스워 그런지 얼간이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이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전혀 우스꽝스럽지 않고 진지하기까지 하다. 푸른발얼간이새 부부는 짝짓기가 끝나면 둥지에 두세 개의 알을 낳아 함께 알을 품고 새끼도 함께 돌본다. 새끼가 다 자라서 스스로 먹이를 찾을 수 있을 때까지 꼬박 넉 달 동안이나 물고기를 잡아와 여러 마리 새끼를 먹여야 하니, 부모 새한테 번식 과정은 정말이지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하는 고단한 일이다.

 

알을 품고 40여 일이 지나면 어린 새가 부화하기 시작하는데, 첫째와 둘째가 부화하고 나서 며칠 지나서야 마침내 막내가 깨어난다. 어린 새는 태어나자마자 부모가 잡아오는 영양이 풍부한 물고기를 먹기 시작해서 빠른 속도로 자라기 때문에 그 즈음에 먼저 태어난 형제는 갓 태어난 막내보다 몸집이 두세 배 정도 크기 마련이다. 몸집이 큰 형제는 막내를 집중적으로 괴롭히기 시작하는데, 막내가 조금이라도 기를 필라치면 가차없이 머리통을 쪼아대는 바람에 항상 막내는 웬만큼 자랄 때까지 모두 대머리일 정도이다. 막내는 자신의 처지를 잘 아는지 한번이라도 먼저 태어난 형제에 대드는 법이 없다. 한 대 맞으면 고개를 푹 수그리고 잠잠해질 때까지 기다린다. 그래야지 덜 맞는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부모가 이런 괴롭힘의 현장을 목격하고도 아무런 제지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웃의 얼간이새가 자기 자식을 못살게 굴면, 첫째 새끼이건 막내 새끼이건 가리지 않고 몸소 나서서 보호해 주는 모습과는 전혀 딴 판이다. 잔뜩 주눅이 든 푸른발얼간이새 막내는 부모가 가져다주는 먹이도 다른 형제보다 적게 받아먹어 성장도 더딘 편이다.[1]

 

이사벨 섬에 번식하는 또 다른 종인 갈색얼간이새의 경우에 막내의 운명은 더 참혹하다. 이 종은 한 배에 두 개의 알을 낳는데, 먼저 부화한 새끼는 동생이 태어나자마자 틈만 나면 물고 때리고 둥지 밖으로 밀어버리기까지 한다. 어린 새의 잔인한 행동은 동생이 다치고 굶주려 죽을 때까지 며칠 간 계속된다. 결국에 모든 갈색얼간이새의 둥지에서 살아남는 새끼는 잘해 봐야 한 마리뿐이다. 그렇다면, 어쩌자고 부모 새는 키우지도 못할 알을 하나 더 낳는 것일까? 어째서 첫째는 예외 없이 모두 그렇게 잔인한 것일까?

 

00life3_3푸른발얼간이새, 어미와 새끼들(왼쪽), 그리고 갈색얼간이새 암수 한 쌍(오른쪽). 사진/김신연

 

갈색얼간이새가 결국에는 살아남지 못할 알에 에너지를 투자하는 생활사 전략과, 같은 유전자를 절반이나 공유하는 형제를 물어 죽이는 행동(siblicide)이 어떻게 진화할 수 있었는지는 언뜻 보아 이해하기 힘들다. 이런 전략이 부모나 새끼 양쪽의 적응도에 별 이득이 될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러 연구 결과에 의하면 한 쌍의 갈색얼간이새가 새끼를 성공적으로 키울 수 있는 능력은 아무리 환경 조건이 좋아도 최대 한 마리로 제한되어 있다고 한다.[1] 두 마리 새끼가 사이 좋게 지내봐야, 결국엔 두 마리 다 굶어 죽기 십상이라는 이야기이다. 첫째의 입장에서는 어린 동생을 괴롭혀 죽이는 것이 자신의 생존을 보장하는 유일한 방법인 것이다. 이런 조건에서는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동생에게 자비로운 돌연변이가 나타난다고 해도 결국 둘 다 살아남지 못해 다음 대로 그 유전자를 남기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도 어미가 두 개의 알을 낳는 이유는 일종의 ‘보험’을 들어두기 위함이라고 진화학자들은 주장한다.[2] 어떤 알들은 유전적 결함에 의해 발생과정이 순조롭지 못하거나 포식에 의해서 부화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런 경우에 여분의 알이 없다면 부모 새는 먼 거리를 여행하여 번식지를 찾아와서 짝을 찾고 세력권을 지키며 알을 낳고 품는 데 투자한 시간과 에너지의 대가를 얻을 수 없을 것이다.

 

푸른발얼간이새의 경우는 조금 다르지만, 형제의 생존 전략과 부모의 번식 전략이 진화한 원리는 같다. 일찍 부화한 새끼들은 갈색얼간이새처럼 막내를 죽이기까지는 않더라도 적당히 괴롭힘으로써 일정 기간에 걸쳐 형제 사이에 먹이 섭취와 체력의 불균형을 유지한다. 이런 전략의 결과는 흥미롭게도 환경 조건에 의해 결정된다. 물고기가 풍부한 해에는 많은 부모 새들이 별 어려움 없이 두세 마리의 새끼가 독립할 때까지 충분한 먹이를 잡아올 수 있다. 내가 이사벨 섬에 가서 장기간 연구를 했던 2006년에는 특히 바다의 생산량이 높은 ‘라니냐(La niña)의 해’여서 부화한 새끼들이 대부분 다 장성해서 몰려다니는 장관을 볼 수 있었다. 막내들은 일단 형제 경쟁에서 살아남기만 하면, 그 이후에는 형들만큼 덩치가 커지고 평생 동안의 번식과 생존율도 형들에 비해 뒤지지 않는다고 한다.[3]


반대로, 수온이 높고 바다의 생산량이 낮은 ‘엘니뇨(El niño)의 해’에는 많은 새끼 새들이 굶주려 죽는다. 조금 이기적인 생각이지만, 내가 있는 동안에는 엘니뇨가 닥치지 않아 다행이었다고 생각한다. 어린 동물이 굶어 죽는 건 정말이지 아무리 생각해도 받아들이기 힘든 슬픈 일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환경 조건이 별로 좋지 않을 시기에는 형제 경쟁 구도의 불균형이 다음 대로 유전자를 남기는 데 도움이 된다. 막내는 경쟁에 밀려 곧 죽지만, 대신 부모의 집중적인 투자를 받은 형은 살아남을 가능성이 커진다. 운이 좋으면 형은 동생의 몫까지 다음 대로 공통된 가족의 유전자를 퍼뜨려줄 것이다.

 

 

둥지 속의 전쟁: 더 요란하게, 더 필사적으로

00dotline

간이새는 직접적인 행동으로 형제 경쟁 구도를 형성해 생존율을 높이지만, 간접적으로 부모의 행동을 교묘하게 조작해 형제간 먹이 경쟁에서 이득을 얻는 것처럼 보이는 새들도 있다. 한 둥지의 형제들이 모두 같은 날 부화하는 참새목의 새끼 새들 대부분이 이런 전략을 보이는데, 그 행태는 부모-형제 간의 이간질을 방불케 한다. 부모가 먹이를 찾으러 갔다가 둥지로 돌아오면 눈도 안 뜬 새끼들은 고개를 바짝 쳐들고 주둥이를 벌리고 너나 할 것 없이 먹이를 먼저 달라며 필사적으로 울어댄다. 무조건, 자기 배가 더 고프다는 것 같다. 요란하게, 필사적으로 울어대는 새끼 새들은 “나 이러다 죽어버릴 거야”라고 부모에게 협박이라도 하는 듯하다. 이 때, 다른 형제들보다 크고 힘이 센 녀석들은 부모의 눈에 제일 잘 띄는 가운데 자리를 차지한다. 부모 새는 본능적으로 눈에 잘 띄고 더 필사적으로 먹이를 요구하는 새끼의 입에 먹이를 넣어준다. 작고 약한 새끼도 처음에는 먹이를 달라고 필사적으로 울지만, 점점 둥지의 가장자리로 밀려나다가 제 때 먹이를 얻지 못하면 기운이 빠져서 죽고만다.

 

00life3_4필사적으로 먹이를 요구하는 한 둥지의 형제들. 왼쪽부터 대륙검은지빠귀(Turdus merula), 제비(Hirundo rustica), 큰밭종다리(Anthus novaeseelandiae). 출처/Wikimedia Commons

 

새끼 새들의 이런 요구행동(Begging)에 숨어 있는 형제간, 부모-자식 간의 갈등과 해소에 대한 가설을[4] 연구결과로 입증하고 발전시켜 종합적인 이론으로 구축한 이는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의 젊은 과학자, 레베카 킬너(Rebecca M. Kilner) 박사이다.[5][6] 멕시코에서 일할 때 초청을 받아 우리 대학에 와서 차분하고도 설득력 있게 강연하던 모습이 인상 깊었는데, 얼마 전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이들의 행동을 지켜보면서 자기의 가설을 적용해 보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부모 새를 향한 새끼 새들의 필사적인 요구행동이 사실은 먹이가 필요한 정도를 정직하게 반영하는 행동일 수 있다는 가설은 이미 오래전에 제시되었지만,[7][8] 킬너 박사는 그 가설을 영리하게 설계한 실험에서 입증하고 이와 관련한 이론을 확립해 주목받았다. 카나리아(Serinus canaria)를 대상으로 실험한 그의 연구에 의하면, 새끼 새들의 경쟁적인 요구행동은 상당한 에너지를 소모하는 행동으로서, 같은 양의 먹이를 주되 더 오랜 시간 요구행동을 하도록 한 새끼 새들은 그렇지 않은 새들에 비해서 성장 속도가 느린 것으로 나타났다.[9] 즉, 이런 행동으로 먹이 섭취라는 이득이 생기는 동시에 에너지 소비라는 상당한 손실도 생긴다는 것이다. 바로 이런 손실이 새끼 새가 더 많은 먹이를 얻고자 요구하는 행동으로 인해 빚어지는 가족 간의 갈등을 해소하는 데 쓰이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

 

새끼들이 부모한테서 더 많은 자원을 얻기 위해 경쟁하는 형제간 갈등을 해소하고 어떻게 안정적인 요구행동의 전략이 생겨나 진화할 수 있는지 살펴보자. 여기 같은 둥지에 두 형제가 있다. 한 마리는 배가 많이 고프고 다른 한 마리는 배를 채운 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 어미가 먹이를 물고 둥지로 돌아왔다. 이때 두 형제가 똑같은 강도의 요구행동을 한다고 가정했을 때, 이들이 소비하는 에너지의 양(즉, 발생하는 손실의 크기)은 같을 것이다. 반면, 먹이를 얻었을 때 발생하는 이득을 생존확률의 증가라는 측면에서 생각해보면, 배고픈 새끼가 얻는 이득이 훨씬 크다. 배가 부를 때보다 고플 때 먹는 밥이 훨씬 더 중요한 것과 같은 이치이다. 형제와 먹이 경쟁을 해야 하는 새끼 새에게 진화적으로 안정적인 최적의 전략은 어떤 것일까? 상황에 따라서(예컨대 배가 얼마나 고프냐에 따라서) 각자 얻는 이득에서 손해를 뺀 순이득이 최대가 되는 행동을 해야 하지 않을까? 아래의 최적모델에서 배가 많이 고프거나 그렇지 않은 두 형제의 최적의 전략을 살펴보면, 배 고픈 새끼가 배 부른 형제보다 더 강도 높게 먹이를 요구하게 됨을 볼 수 있을 것이다.[5]

 

00life3_5요구행동의 강도에 따른 이익과 손해를 생존율의 변화로 바꿔 표현한 모델.

 

신기하게도 같은 둥지에서 많은 형제와 먹이 경쟁을 벌이는 다양한 종의 새끼 새들은 이 이론이 제시하는 대로 배가 고픈 만큼 어느 정도 정직하게 강도를 조절해서 울어댄다고 한다.[5] 각자 더 많이 먹기 위해서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듯이 보여도, 결국 진화의 조절 작용에 의해서 형제간에 골고루 이득이 되는 전략을 취하게 된 것일까?

 

 

부모의 속마음: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

00dotline

끼의 요구행동이 세기에 따라 자신의 필요 정도를 정직하게 표현하는 수단이라 해도, 이렇게 에너지 소모적인 행동이 진화 과정에서 생겨나 이어지는 원리는 무엇일까? 부모가 새끼를 먹여 키우는 데 이처럼 소모적인 전략을 써서 얻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

 

먼저, 많은 자식을 성공적으로 키우고 다음 대로 더 많은 유전자를 남겨서 자신의 적응도(fitness: 평생의 번식률과 자식의 생존율에 따라 결정된다)를 높여야 하는 부모의 이해관계가 성장과 생존을 위한 형제간 경쟁과 충돌해 빚어지는 갈등을 살펴보자. 제한된 자원을 여러 자식(미래에 생길 자식까지 포함해)에게 효율적으로 분배해야 하는 부모의 처지에서 보면, 저혼자 더 많은 먹이를 먹겠다는 새끼 새들 각자의 필사적 요구행동은 자칫 새끼들의 이기적인 행동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새끼 새의 요구행동이 진화하게 된 원리를 차근히 살펴보면, 진실은 그 반대이거나 적어도 부모-자식 간의 동등한 이해관계의 결과일 수도 있음을 알게 된다.

 

새끼의 요구행동이 진화한 배경은 무엇일까? 새끼의 요구행동이 부모의 먹이주기 행동을 조작해 제 배만 불리고 다른 형제와 부모에게 피해를 준다면, 부모 새는 거기에 응할 필요가 있을까? 오히려, 더 필사적으로 요구하는 자식의 입에 선택적으로 먹이를 넣어주는 대신에 자식들의 요구행동에 무신경하게 그저 무작위로 먹이를 주는 게 모두한테 더 유리하지는 않을까? 부모 새의 처지에서는 둥지로 가져오는 제한된 자원을 자식들에게 효율적으로 분배해야 할 필요가 있다. 많은 수의 건강한 새끼를 성공적으로 길러내는 것이 부모 새의 적응도를 높이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자식에게 먹이를 주어야 좋을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니 새끼의 정직한 요구대로 적당한 양의 먹이를 주어 여러 자식의 생존확률을 골고루 높이는 것은 결국 부모의 적응도를 높이는 일이기도 한 것이다. 기껏 힘들게 먹여서 새끼에게 전해준 에너지의 일부가 몸부림을 치며 빽빽 울어대는 데 소모되더라도 말이다. 새끼의 요구행동이 진화한 배경에는, 자연선택이 이런 행동을 하는 새끼를 낳는 부모를 선호해 더 많은 유전자를 남길 수 있도록 한다는 사실이 숨어 있다.

 

00life3_6부모와 새끼의 적응도를 동시에 높이기 위한 요구행동의 진화적으로 안정적인 전략. 출처/Godfray, 1991

 

더 나아가서, 부모의 입장에서 자식들이 요구하는 대로 먹이를 잡아오고 먹이는 데 체력을 지나치게 소모한 나머지 죽어버리기라도 하면 매우 큰 손해이다. 앞으로는 유전자를 물려줄 새끼를 더 낳을 수 없을 테니 말이다. 따라서 체력 소모가 심하거나 환경 조건이 좋지 않을 때에는 제 새끼들을 조금은 모른 척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사실, 둥지에 부모의 기척이 없으면 새끼들도 힘들여 울어대지 않는다.

 

갈등 구조의 형성과 해소에 초점을 맞춘 이론은 새끼의 요구행동과 부모의 반응(요구에 응해 먹이를 주는 행동)이 서로의 전략을 견제하고 자신의 전략을 방어하며 진화했다고 주장한다.[7][8] 새끼의 요구행동은 새끼의 이득을 위해서, 부모의 반응은 부모의 이득을 위해서 각자 진화하되, 그 전략의 정도는 양쪽 모두에게 순이득을 남기는 선에서 유지된다. 이런 갈등이론에 따르면, 새끼와 부모는 마치 카드놀이를 하는 것처럼 진화게임에서 자기에게 손해가 되는 카드는 언제든 버릴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에 킬너 박사 연구팀은 이론적 연구를 통해서 새끼와 부모의 행동이 이처럼 서로 대립하면서 진화했을 뿐 아니라, 둘의 전략이 협력적으로 공진화했을 것이라는 좀 더 통합적인 관점을 제시했다.[10]

 

이런 관점에서 보면, 어미는 자식이 태어나고 자라면서 필요한 것을 요구할 수 있도록 유도할 수 있다. 어미 새는 알 속에 유전자만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유전자가 발현해서 새끼 새가 발달하는 과정에 필요한 영양분, 호르몬, 항산화제 등 많은 물질을 함께 넣어준다. 이런 비유전적 물질은 부화 이후에 새끼 새의 행동에 영향을 준다. 어미는 주어진 환경과 자신의 영양 상태에 따라 알에 투자하는 물질의 양을 조절해서 새끼 새의 행동을 조작할 수 있다. 이 경우에 어미는 많은 자식을 키울 수 있는 조건에서는 더 강하게 요구행동을 하도록 자식의 형질을 조작할 수 있고, 반대로 조건이 좋지 않을 때에는 쓸데없이 자식들이 어미를 자극하지 않도록 할 수도 있다. 물론, 이는 부모 새 개체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일어나는 일이며 오랜 진화 과정에서 생겨난 일이지만 말이다. 이렇게 진화된 어미의 전략은 자식의 요구 전략에 대응하여 자신의 이득을 방어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자식을 도와서 양쪽의 이득을 최대화한다.

 

부모의 전략이 자식의 요구행동 전략에 영향을 주어서 함께 진화한 특별한 예는 갈매기 새끼를 보면 알 수 있다. 라루스(Larus) 속의 갈매기는 한 배에 세 개의 알을 낳는데, 마지막에 낳는 알이 가장 작고 다른 알보다 항상 이틀 정도 늦게 부화한다. 이렇게 막내는 영양분이 부족한 알에서 작게 태어난다. 그러나 그 대신에 엄마 갈매기는 막내 알에다 다른 두 개의 알보다 더 높은 농도의 테스토스테론 호르몬을 넣어준다. 그래서 막내는 작고 약한 몸집을 지니지만 형들보다 더 적극적이고 강한 성격을 갖게 된다. 불평등한 경쟁을 시작하는 막내에 대한 엄마의 배려일까?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부모 갈매기가 먹이를 찾으러 갔다가 세력권으로 돌아오면, 막내들은 형들보다 더 적극적으로 엄마, 아빠를 불러댄다.[11] 몸집이 작으니 다른 형제와 엉겨붙어 경쟁을 벌이는 데는 소극적이지만, 그 대신에 더 필사적으로 소리를 지른다. “여기 봐요, 나 여기 있어요!”

 

00life3_7노랑발갈매기 삼남매. 맨 뒤에 있는 것이 막내이다. 사진/김신연

 

랑스러운 첫 조카에게 곧 동생이 생긴다고 한다. 성장기는 매우 중요하고 나름대로 힘든 시기이다. 형제 경쟁은 진화의 산물이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힘든 성장기에 경쟁하고 배우며 함께 보낸 형제는 매우 소중한 존재이다. 그걸 알게 될 때까지 서로 적당히 싸워가면서 건강하게 자라기를 바란다.

 

 

[참고 문헌]

00dotline

[1] Drummond, H. (2006) Dominance in vertebrate broods and litters. Quarterly Review of Biology, 81, 3?32.

[2] Townsend, H.M. & Anderson, D.J. (2007) Production of insurance eggs in Nazca boobies: Costs, benefits, and variable parental quality. Behavioral Ecology, 18, 841?848.

[3] Drummond, H., Rodriguez, C. & Oro, D. (2011) Natural ‘poor start’ does not increase mortality over the lifetime. Proceedings of the Royal Society B, 278, 3421-3427.

[4] Trivers, R. (1974) Parent-offspring conflict. American Zoologist, 14, 249-264.

[5] Kilner, R. & Johnstone, R.A. (1997) Begging the question: are offspring solicitation behaviours signals of need? Trends in Ecology and Evolution, 12, 11-15.

[6] Kilner, R.M. (2002) The evolution of complex begging displays. In: The Evolution of Begging: Competition, Cooperation and Communication (Ed. by J. Wright & M.L. Leonard), pp. 87e106. Dordrecht: Kluwer Academic.

[7] Godfray, H.C.J. (1991) Signalling of need by offspring to their parents. Nature,
352, 328-330.

[8] Godfray, H.C.J. (1995) Signaling of need between parents and young: parent-offsprig conflict and sibling rivalry. American Naturalist, 146, 1-24.

[9] Kilner, R.M. (2001) A growth cost of begging in captive canary chicks.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USA, 98, 11394-11398.

[10] Hinde, C.A., Johnstone, R.A. & Kilner, R.M. (2010) Parent-offspring conflict and coadaptation. Science, 327, 1373-1376.

[11] Kim, S.-Y., Noguera, J.C., Morales, J. & Velando, A. (2011) The evolution of multicomponent begging display in gull chicks: sibling competition and genetic variability. Animal Behaviour, 82, 113-118.

  • 구글
  • 카카오
  • 싸이월드 공감
  • 인쇄
  • 메일
김신연 스페인 비고대학 생물학과 연구교수
동물 생활사의 진화를 연구하는 생태학자. 스페인 비고대학에서 생물학과 학생들에게 동물행동생태학을 가르치며 가시고기와 갈매기를 연구하고 있다. 새와 물고기의 살아가는 방식이 어떻게 진화했는지에 관심이 많다.
이메일 : yeonkim@uvigo.es       트위터 : @kimsinyeon      

최신글




최근기사 목록

  • 예순두살 바닷새의 출산..야생에서 노화의 진화는?예순두살 바닷새의 출산..야생에서 노화의 진화는?

    동물들의 생활사, 생존의 전략김신연 | 2013. 05. 10

    [9] 늙는다는 것에 대하여 (상편)노화는 자연의 오류가 아니라, 탄생에서 죽음까지 생활사의 중요한 한 부분을 차지하는 살아가는 전략이다. 동물이 성장하고 번식하며 살아낸 전 과정이 늙어가는 모습과 방식에 함축되어 있으므로 더 흥미롭다. 올...

  • 깐깐한 푸른발얼가니새의 '맹모삼천지교(?)'깐깐한 푸른발얼가니새의 '맹모삼천지교(?)'

    동물들의 생활사, 생존의 전략김신연 | 2013. 02. 04

    (8) 자원과 경쟁: 어디서 어떻게 살 것인가 (하편) "... 동물도 개체의 적응도를 높이기 위해서 정보를 얻고 이용한다. 좋은 서식지를 선택하는 데 정보는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다. 동물이 자기가 서식하는 곳의 환경과 자원을 직접 이용하고 겪...

  • 최적의 서식지와 무리크기를 선택하는 동물들의 셈법최적의 서식지와 무리크기를 선택하는 동물들의 셈법

    동물들의 생활사, 생존의 전략김신연 | 2012. 11. 22

    (7) 자원과 경쟁: 어디서 어떻게 살 것인가 (상편) "...참새 무리의 최적의 크기가 7마리라고 하자. 7마리의 참새가 무리를 이룰 때 각 개체가 얻는 순이익이 최대가 된다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떠돌이 참새 한 마리가 나타났다.이 참새가 무리에 ...

  • '육아' 동상이몽: 엄마의 전략, 아빠의 전략'육아' 동상이몽: 엄마의 전략, 아빠의 전략

    동물들의 생활사, 생존의 전략김신연 | 2012. 10. 05

    (6) 부와 모의 번식·양육 전략 어떻게, 왜 다를까 출산율이 낮아서 걱정이라고 한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미래까지 어둡다고들 한다. 여러 기관과 단체들이 해마다 많은 대책을 쏟아내지만 나아지는 것은 별로 없는 듯하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비용...

  • 하나를 얻으면 다른 것을 잃는 생태계 원리하나를 얻으면 다른 것을 잃는 생태계 원리

    동물들의 생활사, 생존의 전략김신연 | 2012. 08. 21

    (5) 연어 이야기: 한 번에 많이 낳을 것인가, 여러 번 나누어 낳을 것인가동물들의 다양한 삶의 방식은 모두 제각기 특별하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우리 인간이 시적, 철학적 의미를 부여하는 동물의 삶도 있다. 바로 연어의 삶이 그렇다. 은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