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연의 "동물들의 생활사, 생존의 전략"

사는 게 왜 이런가? 자연은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과 닮아 있고,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은 자연 원리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다. 모든 동물이 살아가는 다양한 생활사에는 35억 년 누적된 진화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

[새연재] 산다는 건 왜 이런가?

(1) 연재를 시작하며


00lifehistory스페인 살보라 섬의 등대. "지지난해 봄에 나는 짐을 싸 들고 홀로 살보라 섬에 가게 되었다." 사진/ 김신연




난해의 일인가 가만 생각해 보니, 이런 벌써 이년 전 일이다. 해마다 시간이 더 빨리 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더 열심히 살아서인지, 아니면 반대로 게을러지기 때문인지 좀처럼 알 수가 없다. 아, 갈수록 변덕이 심해져서 그 둘 사이를 더 자주 오가다 보니 그저 헷갈리는 것인가.

 

어쨌든, 지지난해 봄에 나는 짐을 싸 들고 홀로 살보라 섬에 가게 되었다. 살보라 섬은 스페인 북서 해안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네 개의 섬 중하나로 수천 마리의 노랑발갈매기가 번식하는 곳이다. 오랜 세월 동안 무슨 후작이라는 귀족 집안의 개인이 소유해 일반인의 출입이 제한되다가 수년전에야 지방 정부가 사들여 국립공원으로 지정한 곳이다. 여느 해 같았으면 적어도 두세 명의 동료와 함께 섬에 가서, 낡긴 했어도 꽤 근사한 후작의 저택에 짐을 풀고서 두어 달 지내며 갈매기를 대상으로 한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했을 것이다. 그런데 지지난해 봄에는 무슨 일로 나혼자 먼저 섬에 가서 한 달가량을 보내야 했다. 생체의 산화, 항산화 작용과 그 유전적 발현이 갈매기의 생활사에 끼치는 영향을 연구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그 해에는 후작의 저택에 보수 공사가 한창이어서 지낼 수가 없게 되었다. 생물학자들의 야외 연구라는 것은 늘 뜻밖의 일로 곤경에 처한 듯하다 가도, 곧 또다시 뜻밖의 일로 해결이 되기 마련이다. 그 이전 해에 잘 사귀어둔 살보라 섬의 등대지기 페페 아저씨가 고맙게도 내가 한 달 동안 기거할 방을 등대에 마련해주었다. 큰 창으로 갯바위에 파도가 부서지는 모습과 수평선이 해를 꿀꺽 삼키는 기막힌 모습을 날마다 볼 수 있는 정말 멋진 방이었다. 지금도 그 전망 좋은 방을 머릿속에 떠올리기만 해도 아! 하고 감탄하게 된다.

 

 

등대지기 페페 아저씨와 나눈 한밤 대화


 

페 아저씨는 대부분 등대에 자동화 시스템이 도입되면서 이제 스페인에 몇 명 안 되는 마지막 등대지기 중 한 분이다. 등대지기가 사라진다는 것은 섬들이 덜 낭만적인 곳으로 바뀌는 것이리라. 등대지기는 홀로 등대를 지키는, 그러니까 고독한 생활을 즐기거나 아니면 적어도 고독을 무시해 버릴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다 동요가 만들어낸 허상이더라! 적어도 페페 아저씨는 그렇지 않았다. 아저씨는 환갑에 가까운 나이에도 공원지기이나 우리 과학자 같은 젊은 친구들과 밤을 꼴딱 세우며 먹고, 마시고, 이야기를 나눈 뒤에도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키는 괴력을 수시로 보여주었다. 하여튼 마음씨 좋은 페페 아저씨는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서 사람과 어울리고 대화하기를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확신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아침 일찍 일어나서 하루 종일 야외 연구를 진행해야 하는 나로서는 등대에서 사는 동안 페페 아저씨와 함께 저녁식사를 하고 늦게까지 얘기를 하는 것이 여간 힘에 부치는 것이 아니었다. 결국, 페페 아저씨에게 밤 12시가 되면 이야기가 아무리 재미있더라도 멈추고 다음 날 저녁을 기약하며 헤어지기로 약속을 받아냈다. 나, 그러고 보니 살보라 등대의 신데렐라였던 건가? 아니면, 아라비안나이트의 셰헤라자드?

 

그런데, 그렇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날마다 대화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다. 의학을 공부하다가 (본인의 말로는 한가하게 살고 싶어서) 등대지기가 된 페페 아저씨는 박학다식한 독서광인데, 특히 생물과학에 관심이 많았던 것이다. 틴버겐, 본 프리슈, 로렌츠 시대의 동물행동학의 고전적인 이론에 대한 지식은 전문가 수준이었다. 오히려 오래된 정보에 약한 내가 페페 아저씨의 설명을 들어야할 지경이었다. 그러니까, 페페 아저씨는 새내기 과학자인 나에게서 알고 싶었던 최신의 지식을 캐내기 위해 밤마다 날 들볶았던(?) 것이다. 내가 하는 연구에 대한 것은 물론이고, 어딘가에서 읽거나 들은 동물행동학과 진화생태학 이론에 대해 수많은 질문을 해댔다. 물론, 자신의 의견을 덧붙여서 말이다. 내 대답이 시원찮다 싶으면 물고 늘어져 볶아대니 열심히 생각하고 기억해서 대답해야 했다. 별 수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외딴 바위섬에서 등대 이외에는 홀로 오갈 데도 없는 처지가 아니었던가. 게다가 페페 아저씨는 파에야(해물이나 닭, 토끼고기를 넣은 쌀요리) 전문의 대단한 요리사이다!

 

하루는, 우리가 살아가고 유전자를 남겨 자연의 선택을 받는 데 아무짝에도 도움이 안 되는 ‘노화’라는 현상이 어떻게 진화했는가에 대한 이론을 페페 아저씨에게 설명하다가 그만 토라지고 말았다. 한참 노화론과 관련된 연구논문을 쓰던 때여서, 돌연변이 누적과 유전자의 길항적 다면발현(또는 다형질발현: 하나의 유전자가 두 가지 이상의 형질 발현에 관여하는 것) 등으로 인해 노화가 진화한다는 가설을 자신 있게 설명하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등대지기 아저씨에게 ‘생활사의 진화’가 무엇인지부터 말로 설명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게다가 “생활사(life-history)”라는 용어를 스페인어로 어떻게 표현할지 몰라서 곧이곧대로 “historia devida”라는 용어를 지어냈더니, 듣고 있는 아저씨의 마음에 영 들지를 않는다는 것이었다. 생활사를 정의하는 것부터 문제가 생기니, 당연히 이론이고 뭐고 모두 말이 안 된다며 페페 아저씨가 내게 핀잔을 줄 밖에. 그래서 방귀 뀐 놈이 성낸다고, 나는 그만 토라져버렸다. 내 딴에는 잘 안다고 생각했던 것을 다른 사람에게 이해되도록 잘 설명하지 못한 내 자신에게 성이 났던 것이다.

 

음날, 육지에 있는 동료에게 전화를 걸어 생활사를 뭐라고 하면 좋겠냐고 물었더니 “estrategia vital”, 즉 “생활의 전략”쯤으로 표현하는 것이 스페인의 과학자들에게 일반화돼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 말을 듣고 생각해보니 그 용어가 생활사의 이론적 의미에 더 가깝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연히, 그날 저녁에 페페 아저씨에게 생활사의 정의부터 노화라는 생활사 특성의 진화에 대한 이론까지 다시 설명해 주었다. 평소와 달리 내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페페 아저씨는 설명이 끝나자, 무릎을 치며 그제야 알겠다고 깔깔 웃어댔다.

 

나를 비롯해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자신이 하는 일이 무슨 일인지 잘 이해하지 못한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더 큰 그림을 이해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자신이 하는 단편적인 연구가 과학의 큰 그림에서 어느 곳에 끼워 맞출 퍼즐 조각인지 항상 확신할 수 있다면 고수의 경지에 이른 것이다. 나 같은 경우는 기껏 연구논문을 써서 출판한 뒤에 한참이 지나서 다른 연구를 하다가, 아하! 그때 그래서 그런 결과가 나왔던 것이로구나 하고 깨닫기도 하니 말이다. 사실, 내 경우는 내공이 부족하여 그런 것이고, 더 많은 경험을 통해서 점차 나아지길 바랄 뿐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하는 연구나 학문에 대해 설명하는 것은 상당히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페페 아저씨와 같은 영리한 독자들은 금방 나의 부족함을 알아차릴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면 어떤가?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을 다듬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내가 하는 연구와 학문을 정말로 잘 이해하게 될 테니, 한 순간의 부끄러움은 참을 수 있다.

 

 

생로병사 생활방식도 진화한다


 

는 게 왜 이런가? 얼핏 보기에 철학적 문제 같아 보이지만, 사실 이것은 생물학의 근본적인 문제가 아닐까? 더구나, 살아가는 방식의 다양성과 그 결과에 대한 문제는 모든 생물에 적용되는 보편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얼마 전에 가수 이효리씨의 트위터에서 사진 한 장을 보고 크게 웃었다. 이효리씨가 고양이 한 마리와 함께 나란히 앉아 소주 한 잔씩을 놓고 “한 잔 하자” 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이었다. 고양이는 왠지 정말로 소주 한 잔이 필요한 듯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실연을 당했든, 이웃 고양이와 세력권 다툼을 벌여 패했든, 풀이 죽은 표정으로 앉아 있는 이유가 있을 것 같았다. 우리라고 그런 일을 당하면 소주 한 잔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00lifeLHR“한 잔 해”. 출처/ 이효리 님의 트위터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의 다양성과 그 영향은 다른 동물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니 당연히 우리가 살아가는 과정에서 부딪히는 삶의 문제도 또한 동물들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야생동물을 대상으로 다양한 연구를 하다보면 꽤 자주 삶에 대한 고찰에 빠지는 경험을 한다. 그만큼 자연이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과 닮아 있기도 하고, 또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 자연의 원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까닭일 것이다. 우리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의살아가는 방식이 형성된 과정과 원인이 궁금하지 않은가?

 

눈에 보이는 표현형, 즉 생긴 모습이라든지 생리학적 특성, 행동 방식만 진화하는 것이 아니다. 생활사(life-history) 전략, 즉, 탄생, 성장, 번식, 노화, 죽음과 관련된 모든 살아가는 방식도 진화의 대상이다. 현재 진화생태학 분야에서는 바로 생활사 전략의 진화를 이해하기 위한연구들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으로 연재에서는, 그 중에서도 가장 흥미롭고 중요한 주제들을 모아 하나씩 풀어나가보려 한다. 각각의 글마다 생활사 전략에 관련된 일련의 문제를 해결해가는 과정을 통해서, 동물들이 살아가는 다양한 방식이 어떻게 진화했는지 이해해 보고자 한다. 빨리 자라면 일찍 자손을 남길 수 있을 텐데 왜 많은 동물들이 수십 년씩 더디게 자라도록 진화를 한 것일까? 새들은 더 많은 알을 낳는 게 좋을 법한데 왜 그러지 않는 것일까? 노화가 진행되면서 빈번하게 나타나는 질병은 왜 진화한 것일까? 이런 질문들은 생물학적 관점에서 볼 때 전혀 엉뚱한 질문이 아니다. 바로 답을 찾기 쉬운 질문도 아니다. 하지만, 이런 질문들은 차근차근 가설을 세우고 연구를 하면서 풀어나가다 보면, 결국 안정된 이론에 도달하여 이해할 수 있는 문제이다. 더 중요한 점은, 이런 질문들이 결국에는 우리를 포함한 모든 생물에 적용되는 한 개의 근본적인 질문으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산다는 건 왜 이런 것일까?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들이 살아가는 다양한 방식 속에는 35억년 동안 누적된 진화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 그 비밀을 이해해 가는 과정이 이글을 읽는 모든 분들에게도 가슴 뛰는 일이 되기를, 그리고 모자란 나의 글이 그 퍼즐을 맞춰가는 과정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아직 다 맞춰진 퍼즐이 어떤 그림을 보여줄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 더 신나지 않은가!

 

그런데, 페페 아저씨에게는 당분간 연재에 대한 이야기를 비밀로 할 작정이다. 무슨 글을 쓰는지 궁금해서 매일 전화로 이야기해 달라고 볶아댈 테니 말이다. 차라리 다시 섬에 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페페 아저씨의 파에야를 얻어먹기 위한 미끼로 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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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연 스페인 비고대학 생물학과 연구교수
동물 생활사의 진화를 연구하는 생태학자. 스페인 비고대학에서 생물학과 학생들에게 동물행동생태학을 가르치며 가시고기와 갈매기를 연구하고 있다. 새와 물고기의 살아가는 방식이 어떻게 진화했는지에 관심이 많다.
이메일 : yeonkim@uvigo.es       트위터 : @kimsiny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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