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고은의 "심리실험 톺아보기"

심리학은 대중매체와 서적에 단골 메뉴처럼 실린다. 그런데 통제된 실험 조건과 제한된 환경에서 이뤄지는 심리실험 결과는 종종 단순화하고 과장되기도 한다. 심리학 연구자인 이고은 님이 심리학을 올바로 보는 방법을 전한다.

미래를 사는 사람

[18] 미래계획 기억


00memory1.jpg » 우리는 지나간 일들만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다. 나중에 해야 할 일, 내일 있을 일, 그리고 미래에 이루어야 할 일들도 기억하며 산다. 즉, 했던 일만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해야 할 일도 기억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기억을 미래 기억, 혹은 미래계획 기억이라 한다. 사진/ pixabay.com

 


“이른 아침 일어나야 해, 내일 우리 둘이 이별하는 날.

평소보다 훨씬 좋은 모습으로 널 만나야겠어.

조금도 고민 없던 것처럼 태연한 표정이 아무래도 서로 잊기 좋겠지.


내일은 빠듯한 하루가 되겠어.

우리 만나 널 보내랴 무덤덤한 척 하랴…”


가수 윤종신의 <내일 할 일>이라는 노래의 일부다. 이별을 앞둔 화자가 내일이 되면 해야 일들을 머릿속으로 떠올리고 있다.


우리 삶은 ‘기억’의 씨줄과 날줄로 엮여 있다. 지금 이 순간도 과거의 누적된 기억이 없다면 존재할 수 없다. 기억을 잃고 자신이 누구인지 몰라 혼란에 빠지는 극중 인물들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기억이 사라지면 삶을 송두리째 잃어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지나간 일들만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다. 나중에 해야 할 일, 내일 있을 일, 그리고 미래에 이루어야 할 일들도 기억하며 산다. 즉, 했던 일만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해야 할 일도 기억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기억을 미래 기억, 혹은 미래계획 기억이라 한다. 미래에 대한 개념은 인간과 같이 커다란 두뇌를 가진 동물에게만 존재할 수 있는 능력일 것으로 추정한다.


연인과 만난 수많았던 나날 중 마지막 날을 앞두고서 의연해야 할 마음을 계획하는 노래 속의 화자처럼 미래에 대한 생각은 인간의 중요한 특징이다. 미래에 대한 계획과 그것을 실행하려는 현재의 통제력, 이것은 성공적인 삶을 위한 개개인의 차별화된 능력 중 하나로 보인다.



미래를 가진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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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체의 능력은 두뇌 구조에서 나온다고 볼 수 있겠다.[1] 도마뱀과 같이 단순한 생활을 하는 파충류에게는 뇌가 그다지 복잡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그들의 두뇌는 호흡이나 섭식 등의 현재 필요한 기본 생존에만 기능하면 충분할 것이다.


나름의 집단을 이루어 사회 생활을 하는 포유류에게는 두뇌가 조금 더 복잡한 기능을  해주어야 하는데, 이를테면 위험을 감지할 줄 알아야 하고, 서로 간의 의사소통이 필요하고, 짝짓기를 위한 구애 전략을 구사하는 것도 가능해야 한다.


욱이 인간이 가진 뇌는 눈에 보이지 않고, 아직 발생하지 않은 일까지 예측해야 하는 고도의 정신 기능까지 할 수 있어야 한다. 가장 최근에 진화한 두뇌의 기능은 보다 많은 정보처리를 담당함으로써 일종의 선견지명을 가지고 본능을 거스르는 이성적 행동도 가능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두뇌는 점진적으로 복잡해지는 모습을 보인다. 오래된 구조 위에 새로운 구조가 첨가되는 방식이다.[2] 이것은 마치 지구 표면에서 오래된 지층 위에 새로운 지층이 덮이는 것과 유사하다. 뇌의 가장 안쪽에 위치한 후뇌, 뇌간, 소뇌는 생명을 유지시키는 기능을 한다. 일명, ‘파충류의 뇌’라 할 수 있다. 파충류의 뇌에서는 ‘현재’가 중요하다. 지금 먹을 것이 눈앞에 보이면 곧바로 해결할 수 있게 기능해준다.


가장 안쪽의 두뇌를 둘러싸고 있는 두 번째 부위는 감정 기능을 담당한다. 포유류가 공포 반응에 능숙하고 새끼에게 애착을 가질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간의 두뇌의 변연계에 해당하는 부분을 ‘포유류의 뇌’라고도 한다. 포유류의 뇌가 가진 능력은 ‘과거’를 기억할 수 있다는 데에 있다. 먹을 것이 앞에 있어도 과거에 위험했던 경험을 기반으로 행동 제어가 가능하다. 과거의 기억이 훈련과 적응을 가능하도록 하고, 좋고 나쁨의 기준이 있도록 해준다.


두뇌에서 신피질(neocortex)은 안쪽에 자리한 두뇌 부위들을 감싸고 있어 가장 바깥쪽에 자리한다. 척추동물인 파충류에도 신피질이 나타나기 시작하지만 포유류에서 그 양이 점차 늘어나고 사람은 확연히 많은 양의 신피질을 가지고 있다. 진화적인 관점에서도 뇌의 가장 발달된 부위이며 인간의 개성을 규정하는 부위이기도 하다. 발달한 신피질은 고도의 정신 기능은 물론 창조 기능을 관할하는 인간만이 갖는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해주기에 ‘인간의 뇌’라고 부른다. 인간의 뇌는 단순한 학습과 기억을 넘어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


인간은 눈앞에 당장의 이득이 있더라도 손해를 보게 될 미래를 걱정해서 만족을 지연시킬 수 있는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있다. 좋고 나쁨의 과거 또는 현재의 판단이 아닌, 옳고 그름에 따른 미래의 선택을 할 수 있다. 지금 당장의 쾌락을 희생할 줄 아는 현명함은 인간이 가진 능력인 것이다.



기억의 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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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memory3.jpg » 사진 / pixabay.com ‘기억한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시간상 과거에 발생한 경험을 떠올리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날의 일을 회상하는 노력과 이를 떠올릴 수 있는 능력을 아울러 기억이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지나간 경험만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수행해야 할 일도 기억하면서 산다.


정 시간에 약을 먹는 일을 기억하고, 친구와의 약속을 기억해서 지켜낼 수 있는 것처럼 앞으로 수행해야 하는 활동들에 대해 기억해야 하는 형태의 기억을 ‘미래 기억’ 또는 ‘미래계획 기억(prospective memory)’이라고 한다.[3]


심리학에서 기억 연구는 과거 경험의 기억(retrospective memory)에 대한 연구가 대부분이었지만, 실제적이고 일상적인 기억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여 미래 기억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기억에 대한 정의가 미래의 시간으로도 확장된 것이다.


미래계획 기억의 특성은 과거의 경험이 아닌 미래에 있을 일을 기억한다는 것뿐만 아니라 계획한 것을 적절한 시기에 떠올려 차질 없이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는 데에 있다. 기억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므로 지연시킨 의도를 적절히 떠올릴 수 있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일상에서 미래계획 기억은 기억해야 하는 정보가 비교적 단순한 행동에 관한 것이 대부분이지만 실제 생활에서는 어려움을 빈번하게 겪는다. 이는 기억을 자극하는 단서가 외부에서 제공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만들어 낸 의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실행해야 한다는 의도의 동기가 약할수록 잊어버리기 십상이고, 떠올릴 때에도 외부 단서의 의존 없이 스스로의 힘으로 떠올려야하기에 결코 만만한 기억력이 아니다.


미래 기억은 순전히 자신의 의지와 기억 능력에 달려 있다. 그 일에 대한 보상도 기억을 강화하는 중요한 요소인 것으로 보인다. 가령 연인과의 데이트나 여행과 같은 즐거운 보상이 있는 일은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미래기억이고, 공과금 납부나 가기 싫은 수업과 같이 보상보다 저항이 큰 사건은 나도 모르게 종종 까맣게 잊어먹곤 한다.



미래의 상상과 미래계획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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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계획 기억은 사건의존적(event-based) 미래 기억과 시간의존적(time-based) 미래 기억으로 구분할 수 있다.[4] 사건의존적 미래 기억은 행위가 수행되기 위해 외부적인 단서가 제공되어야 하는 기억을 말한다. 엄마의 얼굴을 보고서야 아빠에게 전화가 왔던 사실을 전해주는 경우나, 저녁을 먹고 나서 약을 먹는 것을 기억하는 것처럼 어떤 사건이 일어나면 어떤 행동을 하겠다고 의도하는 형태의 기억이다.


반면에 10분 뒤에 가스 불을 끄는 것을 기억해야 하는 경우나 일주일 뒤에 있을 미팅을 기억하는 경우와 같이 일정 시간이 되면 정해진 행동을 하겠다고 의도하는 기억의 형태를 시간의존적 미래 기억이라고 한다.


론 시간이나 사건의 발생이 자발적으로 미래계획에 대한 기억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같을 수 있지만, 사건의존적 기억은 외부적 단서에 의지하고 있다는 것 때문에 자기주도적 성격이 약한 반면에 시간의존적 기억은 상대적으로 주도적 인출의 성격이 매우 강하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사건의존적 미래 기억을 더 잘 수행하는 경향이 있다.[5]


00memory2.jpg » 사진 / pixabay.com 미래 기억을 잘 수행하기 위해서는 마음에 담았던 계획을 기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의도나 계획의 내용을 상세히 기억하지 못하면 적정 시기에 수행해 내기가 어렵다. 예를 들어, 퇴근길에 서점에 들러 책을 사야 하는 경우에는 서점에 들러야 한다는 계획이나 의도를 기억해야 하기도 하지만 서점에 들러 자신이 사야 하는 책의 목록도 기억해낼 수 있어야 한다. 미래의 계획이 잘 수행되기 위해서는 실천을 도울 수 있는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상상 능력이 기반을 이루어야 한다.


미래에 대한 상상의 능력은 과거로 되돌아가는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는 능력에 달렸다고 볼 수 있다.[6] 미래를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으려면 경험과 기억이 하나의 복원 과정이 되어야 한다. 하나의 사건을 미리 경험하는 것은 단순히 어떤 활동을 하겠다는 의지 정도가 아니라 그 활동을 하는 것이 어떤 느낌일지 상상하는 것과 밀접히 관련이 있다. 자기 자신을 미래 시간에 투영하여 실제적인 경험을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아직 다가오지 않은 시간을 상상하기 위하여 자신이 가진 과거 기억에 의존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미래에 대한 상상은 내가 찾을 수 있는 관련 기억들이 합쳐져 구성되기 때문이다. 오래된 기억을 조합함으로써 가장 그럴듯한 가능성을 선택할 수 있는 무한한 조합을 만드는 것이다. 미래 기억을 가능하게 하는 과거 기억은 단순한 과거의 경험에 대한 생각이 아니라 후회와 깨달음을 동반한 적극적인 삶에 대한 경험, 즉 통찰을 수반한 마음의 일이다.



만들어 가는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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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그리는 데에는 과거를 기억할 때보다 더 많은 인지적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놀라운 사실은, 미래를 상상할 때 활성화되는 두뇌 부위 중 일부는 다른 사람의 입장을 고려하고 다른 사람의 마음 상태를 느껴보려고 할 때에도 동일하게 활성화 된다고 한다.[7] 이는 미래에 대한 생각과 계획이 다른 시간과 장소에 있는 자기 자신의 마음 상태를 생각해봄으로써 스스로를 객관화 할 수 있는 능력과도 같다는 의미가 된다. 미래계획 기억력은 망상이나 책임감 없는 낙관이 아닌, 통찰의 능력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래계획 기억의 핵심 요소는 의도, 혹은 의지이다. 특정 미래에 어떤 일을 하고자 하는 계획에는 반드시 수행을 준비하게 만드는 마음가짐이 내포되어 있어야 한다. 만약에 특정 행동을 수행하고자 하는 의도가 형성되지 못한다면 다가올 미래는 중요하지도 않을뿐더러 미래계획 기억의 수행은 성립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계획하고 기억하고 실행하는 것, 이것이 수반되어야 지금의 우리 마음으로 만들어가는 미래를 살게 될 것이다. 미래의 내가 무엇을 원하게 될지는 현재의 생각과 마음이 결정한 것이나 다름없다. 결국 미래의 나는 먼 과거의 내가 정해놓은 인생을 살게 된다는 말이다. 기억하겠다는 미래계획 기억은 잊지 않겠다는 의지에 달렸다.


인간은 운명을 통제할 수 없는 나약한 존재일지 모른다. 하지만 운명을 거스를 수 있는 유일한 힘은 인간의 의지이다. 불확실한 미래를 정확히 예측하는 방법은 그것을 실현시키는 것이 아닐까. 그렇기에 무엇이든 포기하는 순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미래는 우리가 만들어낼지 없애버릴지 선택하는 것이다.



[주]


[1] David G. Myers, C. Nathan DeWall. (2015). 마이어스의 심리학. (신현정, 김비아 역). 시그마프레스.

[2] Al-Chalabi, A., Turner, M. R., & Delamont, R. S. (2008). The Brain: A Beginner's Guide. Oneworld Publications.

[3] 이정모 외 17인 공저. (1999). 인지심리학. 학지사.

[4] Maylor, E. A. (1990). Age and prospective memory. The Quarterly Journal of Experimental Psychology, 42(3), 471-493.

[5] Einstein, G. O., & McDaniel, M. A. (1990). Normal aging and prospective memory. Journal of Experimental Psychology: Learning, Memory, and Cognition, 16(4), 717.

[6] Hammond, C. (2012). Time warped: Unlocking the mysteries of time perception. Canongate Books.

[7] Brandimonte, M. A., Einstein, G. O., & McDaniel, M. A. (2014). Prospective memory: Theory and applications. Psychology Press.


이고은 부산대 인지심리학 박사과정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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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고은 부산대학교 심리학과 연구원, 인지 및 발달심리학 박사과정
‘한국인의 행복심리 연구단’ 소속 연구원이다. 인간의 시간지각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고, 훗날 세상과 심리학을 연결해 따뜻한 마음을 나누는 심리학자를 꿈꾼다.
이메일 : forgive2020@naver.com       트위터 : @leegong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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