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강국’ 한국에서 IT 개발자가 살아가는 법

이공학도의 진로 탐색 프로젝트- 준과 정현의 인터뷰

(3) 30대 소프트웨어 기술자가 꾸는 소박한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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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IT1.jpg » CodeComics, "Your money or your life!", http://www.codecomics.com/servlet/SiteBuilder?action=open&id=35&type=comics, 2007.05.13.


늘도 개발자는 한 손에 무거운 ‘C++’ 책을 끼고 한밤중에야 집으로 돌아간다. 밤늦게 퇴근하는 것도 서러운데 이런, 갑자기 눈 앞에 강도가 나타나 흉기로 위협한다. “돈 내놔! 아니면 라이프(life, 목숨) 내놔!” 그러자 개발자는 강도에게 명함을 보여준다. “봐요…. 난 프로그래머라고요.” 그러자 강도가 “그래서?”라고 되묻고,개발자는 “내겐 돈도 라이프(life, 생활)도 없다고요”라며 슬픈 대답을 한다. 강도는 눈물을 흘린다.


위 이야기는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운영하는 인터넷 만화 매체인 ‘코드코믹스(CodeComics)’에 실린 2007년 5월13일치 만화입니다. 이 만화 작품에는“돈도 생활도” 없는 개발자의 슬픈 처지가 묘사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 정보기술(IT) 업계의 현실도, 프로그램을 짜다가 막히면 회사 옆 치킨집에 가면 된다는 우스갯소리나, 코더에서 연구소장을 지나 결국엔 닭집사장을 한다는 ‘닭튀김 수렴 공식’ 등이 잘 보여주듯, 그리고 어쩌면 당연하게도 이에 못지 않습니다.


실제로 한국정보통신산업노동조합과 진보신당이 지난 2010년 실시한 ‘IT 노동 실태 긴급 온라인 설문조사’ 결과(1665명 참여)1)를 보면, 참여자 중 40-44세는 2.5%(42명), 특히 45세 이상은 0.2%(4명)에 불과해 정년이 몹시 짧은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 주당 노동시간은 평균 55.9시간, 연평균 3000시간에 육박했습니다. 이는 같은 해(2010년) OECD 연평균노동시간 1775시간은 물론이고 대한민국 연평균 노동시간 2193시간마저도 훌쩍 넘는 수치입니다.2) 게다가 추가 근무를 하는데도 야근수당을‘지급하지 않는다’는 대답이 76.5%(1248명)에 달해 문제의 심각성을 더하고 있습니다.


이런 배경에서 보고서보다 생생한 목소리를 들어보고자 IT업계에 몸담고 있는 이를 대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임금체불, 고용불안정, 하도급, 인력파견 등 문제는 역시나 산적해있었습니다. 물론 누군가는 그가 전문대 경영학과'밖에' 나오지 못했기 때문에 열악한 환경에 놓인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또 어쩌면 어느 직장이나 마찬가지이고, 우리나라에 야근수당 따로 받지 못하는 곳이 어디 한둘이냐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IT업계의 고질적인 병폐 또한 열심히 하면 해결된다는 식으로 의지의 문제로 떠넘기기엔 그 폐해가 너무 크고 광범위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어렸을 적부터 ‘대한민국은 IT 강국’이라는 소리를 듣고 자랐습니다. 그렇지만 현재는 어떤가요? 그리고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요? 저는 우리나라가 진정한 IT 강국이 되려면 당연히 개발자를 비롯한 IT업계 종사자가 즐겁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인터뷰도 “IT업계는 상황이 끔찍하니 모두 여길 나가야해!”라고 외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인터뷰에 응해준 분의 외침처럼, 이 문제를 직시하고 함께 해결해나갈 수 있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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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Q.jpg IT 개발자가 하는 일이 다양한데 어떤 일들이 있습니까? (아래 내용은 인터뷰 내용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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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사업적으로는 흔히 사용하는 그런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일과, 만들어진 것을 유지·보수하는 일로 나뉩니다. 프로그램 제작은 역량이 많이 필요해 사람이 상당히 많이 투입됩니다. 반면에 유지·보수는 이미 만들어진 것을 개선하는 것이라 비생산적이라고 생각해 단가도낮게 주고, 인력을 줄이는 경우가 많아 인력시장도 크지 않습니다.

   하는 일에 따라서 설계와 개발로도 나눕니다. 설계는 프로그램이 쓰일업무를 분석해서 사람이 하는 일을 컴퓨터 언어로 바꾸는 준비 과정입니다. 코딩(컴퓨터에게 일을 시키고자 프로그래밍 언어를 사용해 프로그램을 만드는 과정) 전에 어떤 컴퓨터 언어를 기반으로 할 것인가, 어떻게 하면 일하는 사람에게 편한 환경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인가 따지는 것이죠. 그 다음 머릿속과 서류 위에만 있는 설계 자료를 바탕으로 직접 화면에 실체화하는 과정이 개발 단계입니다.

   프로그램의 성격에 따라서시스템통합(SI: System Integration)과 솔루션으로 나누기도 합니다. SI 쪽은 프로젝트를 발주하는 곳에서 원하는 대로 프로그램을만들어주는 것이고(1 대 1 작업), 솔루션 쪽은 IT 기업의 자체 기술력을 바탕으로 설계·개발한 프로그램을 여러 기업에 파는 것입니다(1 대 다 작업). SI 쪽은 대부분 규모가 큰 국책 프로젝트 또는 대기업에서 쓰는 프로그램들이 중심이 되고 있는데, 보통 IT 중소기업은 프로젝트를 직접 도급 받는 것이 아니라 (도급을 받은 다른 기업으로부터 다시 도급을 받는) 하도급으로 받습니다. 또한 대부분 인력을 외주로 끌어오는 파견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노동조건 등이 극히 열악합니다. 대부분의 벤처기업은 솔루션 쪽으로, 만든 프로그램을 판매해야 하기 때문에 노동조건이 열악하다고 합니다.

   고용 형태는 정규직과 프리랜서로 크게 나눌 수 있지만, 인력파견업체의 정규직은 열악한 파견직이란 것도 염두에 둬야합니다. 프리랜서는 개인사업자(정확히는 용역)로 계약을 하고, 정규직은 사장에게 노동자로서 고용된다는 데 차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프리랜서는 생각보다 프리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임금 받는 것도 똑같고, 출퇴근을 통제받는 것도 고용된 사람과 똑같습니다. 이것이 노동자로 인정받을 수 있는 근거인데, 임금은 개인사업자로 계약을 맺기 때문에 임금체불이 발생했을 때에는 정규직보다 훨씬 불리합니다 (실제로 인터뷰에 응한 분의 주변에 있는프리랜서 중에서도 1000만~2000만 원이 체불된 경우는 많다고 합니다).

   정규직으로 고용이 됐을 때 임금체불이 발생하면 노동부에 진정을 내 가장 우선으로 임금을 받을 수 있지만, 프리랜서는 근로기준법을 적용받는 게 아니라 민사적 문제로 넘어가기 때문에 임금을 받기가 어려워집니다. 그래서 프리랜서는 자신이 노동자라는 것을 증명해야 하지만, 대부분의 자료는 회사가 가지고 있고 소송 기간도 짧게는 1년, 길게는 2, 3년이걸리기 때문에 보통 포기합니다. 물론 프리랜서도 고용계약서를 쓰는 경우도 간혹 있으며, 이때에는 임금체불에 대해 근로기준법을 적용 받기 때문에 유리해집니다.



00Q.jpg 지금은 어떤 일을 하고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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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놀고 있죠. 회사에서 임금 중 일부만 지급했는데 나머지를 주지 않더라고요. 일은 하고 있는데 임금이 체불되고 일을 할수록 체불만 늘어나니까 그만 두고 지금은 구직 중이에요. 사실 저는 정규직 고용이었기 때문에 체불 문제에 있어서는 나은 편이죠.

   결혼정보회사 최하위가 IT 업종이고, 나이 들면 치킨집 차린다고 하잖아요? 일반적 인식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IT업계가 경력이 높아지면 단가가 높아져서 고용을 잘 안 하거든요. 고용이 안 되니까 할 게없어서 치킨집을 차리는 거죠. 외국은 나이 많고 경험 많은 개발자가 많은데, 우리나라에선 보통 나이를 먹으면 잘 돼도 영업 아니면 프로젝트매니저(프로젝트 진행을 책임지는 관리자)로 선회할 수밖에 없죠.

   사실 단가가 높아도 실력이 높으면 뽑는 게 당연하잖아요? 그런데, 보통실력을 고급/중급/초급으로 나누는데, 업계에선 고급 하나 쓰는 것보다 초급 둘 쓰는 게 이득이라고 보는 거예요. 여기엔 노동 환경 문제가 엮여있습니다. 초급자는 감당할 수 없는 일이 주어져도, 10시든 11시든, 무급 야근을 해서 프로젝트를 끝내야 하는 환경이거든요. 사실 고급실력자를 쓰면 분명 높은 품질의 프로그램을 단기간에 만들 수 있는데도, 회사 측에선 초급을 싼 값에 써서 어떻게든 프로그램이 돌아가게만 하면 이득이라는 생각이 업계 전반에 팽배합니다.

   물론 경력이 높으면 야근 같은 통제를 덜 받고, 또 실력 좋은 프리랜서는 ‘칼퇴근’을 하는 경우도 있긴 해요. 그런데 현실적으론 힘든 것이, 일 마무리가 급박할 때나 프로젝트가 늘어질 때, 실패할 가능성이 높을 때에 프리랜서를 주로 고용하거든요. 그래서 프리랜서는 정시 퇴근을 포기해야 하는 서너 달짜리 단기 프로젝트를 기피합니다. 이 때문인지 프리랜서는 일 년에 일하는 시간이 많지 않아 보통은 정규직보다 소득이 낮은 편이라고 하더군요. 요새는 그나마도 일자리가 없어서 가릴 상황이 아니라고들 하지만요.



00Q.jpg IT업계에서는 하도급 문제와 인력파견 문제가 특히 심각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프로젝트를 수주하는 과정 자체가 이런 문제를 야기한다고 하던데, 프로젝트를 받아오는 어떻게 이뤄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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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하려면 처음에 특정 프로그램을 요구하는 고객과 계약을 해서 프로젝트를 받아와야 합니다. 처음에 수주하는 보통의 SI 대기업에서는 프로젝트를 총괄하며 사용할 프로그램, 개발 도구, 언어를 정하여 유지보수성 파악, 업데이트 등 주로 관리를 합니다. 정말 필요한 일이긴 하지만, 대부분 전공이 컴퓨터공학이 아니라 산업공학이나 경영이라 개발에 대해선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그리고 이들은 중소기업 등에 프로젝트를 하도급으로 줍니다. 중간의 하도급도 프로젝트를 받아오는 일과 간단한 설계 정도만 하고 다시 아래로 하도급을 줘, 정작 일은 가장 아래에 있는 하도급에서 대부분 하는 걸로 알고 있어요. 그래서 IT업체들이 많은데도 정작 프로그램을 만드는 곳은 거의 없는 상황이 벌어지죠.

   사실 프로그램을 만들려면 회사는 고용한 노동자에게 지급될 임금 등 여러 비용이 계속 발생합니다. 그런데 회사에서 고용한 노동자가 계속 일을 할 수 있을 만큼의 프로젝트 수요가 계속될 것이란 보장이 없고, 해고도 쉽지 않기 때문에 고용을 하고 있으면 부담이 큽니다. 그리고 이 부담을 줄이기 위해, 직접 고용을 하기보다는 중소 SI업체를 통해 간접적으로 고용을 하고 프로젝트를 하도급으로 주는 거예요. 여기서 이른바 인력파견업체들이 이런 프로젝트에 필요한 인력을 댑니다. 실제로도 인력파견업체를 통하지 않으면 일을 구하기가 몹시 힘듭니다. 또 6~7단계로 SI업체끼리 하도급을 주는 경우도 있을 정도로 문제가 심각합니다.

   왜 항상 이런 일이 있는진 잘 모르겠지만 제가 봤을 때는 영업 문제, 야근이 공짜라는 점 때문인 것 같아요. 잘은 모르지만 정부에서 프로젝트를 발주할 때부터 기간을 타이트하게 하진 않는 것 같거든요. 인력파견업체에서는 중급자라고 경력을 속여서 초급자를 투입하는데, 발주처에서중급자 단가를 받고 초급자의 월급을 지급해 차익을 파견업체가 챙기려는 거겠죠. 그렇다 보니 그렇게 일을 시작하는 사람은 중급자 수준의 일을 해야하는데, 초급이라고 말할 수가 없으니까 밤을 새는 거예요. SI 판에서 신입들이 대부분 거치는 과정이죠. 저는 운이 좋아서 SI부터가 아니라 공장자동화(FA: Factory Automation)에 들어갔지만요.

00IT_table.PNG » 표. 소프트웨어 기술자의 등급 및 인정 범위. 출처/ http://career.sw.or.kr/

   컴공과 전공자들은 보통 일도 힘들고 노동환경도 최악인 SI를 기피해서 대부분 대기업이나, 그것도 아니면 개발보다는 관리 성격의 업무인 IT 서비스 같은 곳으로 빠지려 하죠. 벤처기업 노동환경이 SI보다 좋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비전을 갖고 일할 수 있죠. 다만 리스크가 크고 경쟁도 심합니다. 요새는 모바일, 특히 스마트폰 쪽도 경쟁이 심해졌고, 사실 천 원 이천 원짜리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 팔아봐야 얼마 남지도 않거든요. 국책 SI를 빼놓고 시장이 큰 건 기업과 기업 사이에 계약을 맺고 기업 프로그램 만들어주는 일이에요. 그런데 이건 프로그램을 도입할 기업에게 혁신을 요하는 일이라 부담이 많이 돼서 아직은 시장이 크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점점 경쟁이 심해지다 보니 어려워지는 업체가 많아서 SI에 손대는 경우도 많아요. 저도 제가 만들고 싶고 관심 있는 걸 만들고 싶어서, 또 자기 아이디어를 이용해 설계하는 방법 등을 배우고 싶어서 작년에 벤처솔루션 업체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솔루션을 개발할 것이라며 저를 꼬드기면서도 우선은 SI 사업을 따왔으니 그것부터 해결하자고 했어요. 일하다 보니 점점 이 업체가 ‘당장 급한 것만 해결하고 있구나’라는 인상이 들었죠. 역시나 현금성이 매우 좋은 SI에 계속 손을 대더라고요. 회사 측에선 저를 다른 회사에 쪽에 파견 보냈고, 결국 SI 일을 하게 됐어요. 저는 몇 달 하고 그만 뒀고요.

   심지어 연구소에서도 SI를 하기도 합니다. 연구소 차리고 솔루션을 만들려면 돈과 시간이 들다 보니 개발을 잘 안 해요. 어떤 경우엔 기업에서 연구소를 차린 뒤 보조금만 받고 개발을 하지 않는 경우도 있어요. 이러면 연구소 사람들이 SI를 하게 되는 거죠. 남이 만들라는 걸 만드는 데 시간을 쏟다 보니고유 기술, 고유한 솔루션이 경쟁력이 되지 못하고 있어요.



00Q.jpg 이야기를 듣다 보니 다른 분야보다 IT업계가 유독 경쟁이 심한 것 같습니다. 국책 프로젝트나 대기업 SI 프로젝트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중소기업에 프로그램을 도입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왜 이렇게 경쟁이 심한 것인지, 다른 대안은 없을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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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제조업은 공장 같은 생산 설비가 필요하고, 이 설비들이 생산성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그런데 IT는 사람과 컴퓨터만 있으면 되다 보니 설비가 필요 없고, 그래서 자본금이 적어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진입 장벽이 굉장히 낮은 셈이죠. 그만큼 경쟁이 심해 폐업하기도 쉬운 것 같습니다. 또 기술이 독점적이기가 힘듭니다. 특정 프로그램을 만들어내는 사람도, 만들 수 있는 사람도 많거든요. 한 개발자가 경험과 소스코드(프로그래밍 언어로 만든 프로그램 설계도)를 가지고 여러 곳을 돌 수 있는 것도 한 요인인 것 같습니다. 실제로 비국책사업이 시장을 형성하고 솔루션을 개발하던 때가 2000년대 초반인데, 이게 계속 성장해서 2000년대 후반부터 경쟁이 과열되었고 솔루션 하나만 해도 관련된 업체가 굉장히 많아졌습니다.

   정부의 안에 따라 대부분 움직이더라도 그 과정에서 독자적인 아이디어를 내야 하는데, 우리나라 IT는 독점적, 독보적, 경쟁적 기술 확보가 안 되는 것 같아요. 또 영업 실적 등의 부담이 있는 솔루션 만드는 것보다는 외부에서 프로젝트 따와서 인력 파견 하는 쪽이 이득이 있는 상황입니다.

00IT2_Java.JPG » "Java 두 명 타요." 출처/ 김국현, "개발자". http://goodhyun.com/487 , 2005.11.01

   시장이 안 크는 이유 중에 또 다른 것은, 일반적으로 우리나라 중소기업에서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것이 도전적이라는 것도 들 수 있습니다. 사실 프로그램을 쓴다고 해서 당장 편하게 되는 게 아니거든요. 특정 전략에 따라 프로그램을 맞춰야 하고, 이에 따라 일하는 방식도 맞춰야 합니다. 내부의 업무 방식, 팀 소통도 바꾸고, 많은 돈과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혁신 과정인 거죠.

   사실 조그만 기업에선 단순한 프로그램만 써도 되니 이 정도의 프로그램을 도입할 필요는 없습니다. 통합 전산관리 시스템은 어느 정도 규모 있는 기업, 관련된 모든 정보를 일일이 감당할 수 없는 덩치 큰 기업에서나 필요합니다. 이런 것이 수요인데 그만한 기업이 많아지려면 사실 경제 성장을 해야죠. 결국 제조업들이 성장해야 하는 것인데 외환 위기 때부터 경제성장률도 낮아지는 등 외부 요인이 작용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러고 보니 재작년쯤에는 중소기업이 국가를 통해서프로그램을 도입해 혁신을 하는 경우가 있었어요. 정부에서 제조업들 대상으로 프로젝트 개발비를 주며 혁신을 하도록 도왔죠. 기존엔 국가기관에 필요한 것을 요구했는데, 이 프로젝트는 중소기업에서 필요로 하는 걸 국가가 지원했어요. 덕분에 중소기업끼리 같이 일하는 시장이 열렸고, 소스 소유권도 IT 중소기업에게 주어져 IT 중소기업도 함께 성장하는 기반이 됐죠. 현재는 남발된다는 이유로 그 제도가 좀 축소된 걸로 알고 있어요. 개인적으론 좀 아쉽습니다. 그 전까지는 설계 경험이 없던 저도 이 프로젝트를 통해서 설계를 해봤거든요.



00Q.jpg 방금 말씀하신 제도가 그 전까지의 제도보다 더 민주적이고 진보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IT 업계의 어두운 측면만 너무 부각된 것 같네요. 제 주변만 해도 코딩 하는걸 재미있어 하는 사람이 많은데, IT 쪽에서 일을 하시면서 재미를 느낀 적이 있진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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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SI는 다 재미없었죠. 그런데 방금 말한 프로젝트를 할 때는, 벌써 2년 전 프로젝트인데, 어떤 중소기업 공장의 프로그램을 만들었습니다. 이때는 설계까지 모든 것을 직접 했기 때문에 제일 재미있었어요. 그 전까진 전체 프로젝트를 총괄하는 것이 아니라 파편화된 일부만 만들었는데, 이 프로젝트를 할때는 고객사랑 계속 업무에 대해 분석하고, 개선할 점도 서로 얘기해보면서 전체를 볼 수 있었죠. 해당 업무를 파악하고 그것을 컴퓨터 언어를 이용해 화면으로 만드는 과정, 문제 해결과정에 주체적으로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유일한 경험이었어요.

   반면 그 전에 하던 일은 화면에 기능을 구현하라, 버튼을 누르면 결과가 나오게 하라, 이런 일이었어요. 어떤 행동에 대해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보는 굉장히 기술적인 작업이었죠. 그러다 보니 실제로 이것이 일하는 사람들한테 어떤 효과를 주는지, 좀 더 좋은 것이 무엇인지, 이런 것은 생각할 시간도 과정도 없었어요. 그냥 만들라는 것만 만들어야 하니까 ‘내가 이 일을 왜 하지? 재미 없다…’라고 느낀 거죠.

   물론 일반적으로도 개입할 수 있는 권리가 개발자에게 있고, 이렇게 만들면 더 좋다고 얘기할 수도 있어요. 그런데 프로젝트 관리자가 하루에 한 화면 개발해라 하는 식으로 시간을 타이트하게 정하다 보니까 현실적으로는 생각해서 말할 시간이 없습니다. 그 시간에 코딩을 더 하는 게 나은 셈이죠. 또 전체 프로젝트에 대한 교육을 하기도합니다만 흔하지 않습니다. 일하면서 배우는 경우가 많죠. 게다가 개발자는 프로젝트 초기에 들어가는 경우가 별로 없고 설계가 끝날 때쯤 고용되는 게 보통입니다. 개발자를 초기에 고용하면 할 일이 없으니까 투입하지 않거든요. 가끔은 전체구조를 몰라서 잘못되는 경우도 있는데 이럴 때는 밤새서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으면 다행이죠. 아예 엎어야 할 때도 있어요.



00Q.jpg 현재는 재미를 잃었다는 것처럼 말씀하시네요. 혹시 그렇게된 이유가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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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를 점점 잃게 된 이유는 사실 임금체불이죠. 여가시간도 충분했고, 출장 정도만 힘들었지 장기간 근무도 별로 없었거든요. 그런데 업체가 자금 때문에 힘들어서 임금이 서너 달 미뤄졌고, 몇 개월 후에도 계속 업체가 힘들어했어요. 임금체불 자꾸 심해지니까 그만 둔 거죠. 일하는 건 재미있는데 월급 안 받은 건 재미없었어요.

   그래서 SI 판에 뛰어들었습니다. 그 뒤로 장시간 근무에 매달리고 밤을 새는 일이 시작됐죠. 물론 그때도 일은 재미있었는데 노동 환경 때문에 재미가 없었어요. 저도 좀 쉬면서 생각도 해야 하는데 그럴시간이 없이 스케줄에 쫓기니까요. 관리자들은 이런 필수적인 휴식도 게으름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억압하는 것에 도가 튼 사람들이에요. 이런프로젝트에서는 심한 경우 관리자가 개발자를 폭행하는 사건도 몇 건 있었죠.

   결론적으로 개발하는 일 자체는 너무 재미있어요. 사람들이 업무 하면서 프로그램 필요한 이유들을 알고 그 문제를 해결하면, 지적인 쾌감이 있죠. 제가 만들어낸 프로그램이 현업에서 쓰이고 있다는 것 자체가 흥미롭잖아요. 그런데 노동환경, 예를 들어 장시간 근무와 여가시간이없는 것, 좀 더 안정적인 걸 원하는데 짧은 기간의 일자리만 팽배한 것들, 이런 외부적 요인이 힘들게 하는 거죠. 게다가 저도 이제 경력 높아지면 단가 높아질 거고, 그러면 그만큼 취직하기 어려워질 건데 이 일 계속 하는 것도 슬픈 현실이거든요. 물론 프리랜서로 가면 취직 어렵더라도 할 수있지만, 그런 일들은 역시나 힘든 일들이니까요.



00Q.jpg 그러고 보니 전공이 경영학인데 개발자 하게 된 계기와 이유는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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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하고 맨 처음 한 일이 웹 기획이었어요. 웹 기획자는, 예를 들어 어떤 사이트의 메인 화면을 개발해야 한다고 하면 그화면을 어떤 콘텐츠로 채울 것이냐를 정합니다. 저는 웹 기획을 하면서 처음으로 개발하는 걸 봤어요. 개인적으로 웹 기획자는 콘텐츠만 만들어야하고 되게 재미 없었는데, 개발하는 걸 보니까 그 일을 하면 성취감이 있을 것 같았어요. 실제로 뭔가를 만드는 작업이고, 과정과 결과가 모두 다 확연하게 드러나는 일이니까요. 한 번 해보고 싶다 생각해서 학원에서 6개월 과정을 밟게 됐죠.



00Q.jpg 컴퓨터공학과는 4년 동안 배우는데, 겨우 6개월만 배우고 개발자가 될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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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6개월 가지곤 초급자로 들어가기도 힘든데, 신입도 잘 안 뽑을뿐더러 실제로 프로젝트를 하는 경험이 제일 중요하기 때문이죠. 얼마나 배웠냐 얼마나 공부했냐 이런 게 부족하진 않은 것 같아요. 웹 개발 프로젝트 등은 그렇게 어렵지 않아서 할 순 있어요.

   그리고 컴공 전공자들이라도 현업에서 흔히 쓰는 언어를 배우지 않는다고 알고 있어요. 대학에선 현업에서 잘 안 쓰는 ‘C 언어’ 같은 기초부터 파죠. 그렇다 보니 사실상 신입이랑 다르지 않아서 학원에 다니는 경우도 많아요. 다만 비전공자라면 진입이 어려운 분야가 있긴 합니다. 하드웨어 컨트롤, 통신, 운영체제(OS) 같은 분야는 컴퓨터공학에 대한 깊이 있는 지식이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에 저는 들어갈 수 없죠.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사람이 컴퓨터를 조작하기 위해 필요한 외부 프로그램 분야예요. 이 분야가 SI사업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전사적 자원관리(ERP: Enterprise Resource Planning)라든가 인사관리, 물류관리 등의 프로그램들이죠. 이는 깊이 있는 컴퓨터 지식보다는 컴퓨터 언어와 데이터베이스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고 해당 업무를 잘 알아야 해요. 그래서 경영학지식이 조금은 도움을 주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쪽 SI 분야에서도 전공자와 비전공자는 분명히 차이가 있어요. 지식의 깊이가 다른 것은 분명해요.

   또 저는 SI 판에만 있다 보니 다른 쪽은 잘 모르겠지만, 컴공과를 그렇게 많이 보진 못했어요. 물론 이건 제 개인적인인상이고 현황 조사는 없는 걸로 알고 있어요. 제가 아는 컴공과 전공자는 컴공과가 SI를 기피한다고 했어요. 그 사람도 IT를 떠났죠. 물론 그사람이 IT를 떠나서 그런 얘기를 했을 수도 있지만 뭐라고 얘길 하기가 힘든 게 실태조사가 잘 안 되어 있거든요.



00Q.jpg 어떤사람은 현재 님께서 처한 상황을 보면서, 학력도 그렇고 학원 6개월 다녔기 때문에 숙련이 덜 되어 그런 것은 아닌가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모든 개발자가 힘든 것이 아니라 능력을 갖추지 않았기 때문에 힘들다고요. 진짜로 모든 개발자가 힘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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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개발자가 이른바 ‘3D 업종’이라는 인식은 보편적이라고 알고 있어요. 그리고 제가 초급이었다면 학력 등이 문제일 수도 있지만, 지금은 경력도 쌓였고 어떤 일을 해줄 기술력이 저한테 있거든요. 예컨대 공장자동화에 대해 제가 해줄 수 있는 게 있는 거죠. 그리고 이런 것은 일을 하면서 축적한 것이지 대학에서 가르쳐주는 게 아니에요. 사실 어려운 부분이나 모르는 부분은 찾으면 다 나오기 때문에, 기술적인 문제는 친구들이나웹사이트 커뮤니티를 통해서 해결할 수 있거든요. 오히려 그런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 제일 재미있기도 하고요. 그리고 제가 비전공자라는 사실이 이처럼 비정상적이고 부당한 구조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전공자가 더 많이 배운 건 사실이기 때문에 더 대우받아야 한다는데에도 이견은 없고요.



00Q.jpg 그렇다면 현재 꿈은 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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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집 차리는 겁니다. 단가가 높을수록소득이 일정하지 않거든요. IT 개발이 재미있긴 한데 계속할 수 없을 수 있잖아요. IT는 40세를 넘으면 써주는 데가 없다고 할 정도로 실질적인 정년이 굉장히 짧은데, 저도 이제 32세입니다. 평균적으로 보면 8년밖에 일을 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치킨집, 아니어도 다른 자영업을 하고 싶습니다. 인력 파견을 하고 싶진 않거든요.

   우리나라에 나이 든 개발자가 많지 않아도 있다고, 하고 싶으면 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식의 의지 문제로 넘기긴 힘들다고 봅니다. 사람이 먹고 살아야 하니까 그 일이 나에게 일정하게 계속 소득을 주느냐는 중요하거든요. 물론 프리랜서로 일하면 계속 할 수도 있지만, 이쪽은 짧은 기간의 일밖에 없고 일 년으로 따지면 정규직 고용에 비해 소득이 적은 게 현실이니까요.

   물론 현재는 IT 판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으니 단정적으로 말할 순 없겠죠. 저도 안정적으로 현재 하는 일 계속 하고싶어요. 그렇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여건이 존재하기 때문에 자영업이라는 보험을 두는 거죠. 이 일을 계속 할 수 있으면 물론 더 좋죠. 그렇지만 그것이 먹고 사는데 치명적인 문제를 주는 환경이라면 그땐 판단을 해야죠. IT 판을 떠나서 치킨집을 차린다든지 하는 판단이요. 물론 이런 IT 업계의 고질적이고 구조적인 문제점을 바꾸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보지만요.



00Q.jpg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해주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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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도 IT를 하겠다는, 컴퓨터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있을 거예요. 그것이 항상 현재 학생의 입장에서 느끼는 일의 재미, 일의 내용, 컴퓨터에 관심 있는 것들, 예를 들어 ‘C 언어’를 하면서 이게 진짜 재미있구나 생각할 수 있어요. 그런데 직업인으로서 프로로서 일을 한다면, 여러 안 좋은 환경과 부당한 환경들이 분명히 존재할 겁니다. 그렇지만 그런 것들 때문에 일하는 것을 포기하지 말았으면 해요. 어느 일이든 부당한 환경들이 존재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환경 때문에 그 일을 못하겠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오히려 그 부당함이 당연한 것이라 생각하지 말고, 그것이 부당하다는 것을 항상 느끼고 뭉쳐서 싸울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면 이것이 바뀔 거예요.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인터뷰, 글/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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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준과 정현의 진로탐색 프로젝트 인터뷰'는 의학계열 관계자 2명, 공학계열 관계자 5명, 자연과학계열 관계자 5명 순으로, 총 12편이 이어질 예정입니다. 김준과 박정현은 <사이언스온>의 과학저널리즘 동아리 '과감'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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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대학원생(석사과정)
“먹고 살 걱정 하는 세상을 넘어, 놀고 즐길 수 있는 세상으로.” 포스텍에서 학부를 졸업하고서 2015년부터 서울대 생명과학부에서 생명의 비밀을 알아가는 과학을 즐기고 있습니다. 제가 느끼는 열정과 기쁨을 다른 사람도 함께 즐길 수 있는 자유로운 세상을 지향합니다.
이메일 : ecologicalju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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