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자의 "미술관 옆 실험실"

과학과 예술은 흔히 창의성, 독창성 등에서 공통점을 지닌다고 합니다. 실제로 최근 융합의 시도도 많습니다. 생물학과 물리학 연구자인 필자들이 과학과 예술의 소통 가능성을 살피는 실험에 나섭니다.

예술이 놀이로, 놀이에서 세상 비추는 거울로

[7] 지하루 작가…프로그래밍으로 여는 새로운 예술


00endlesscurrent.jpg » 엔들리스 커런트(Endless current). ‘생명은 아름답다’ 전. 카이스트. 2013년 10월
 


생물학의 주제는 거칠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인간의 질병을 해결하는 생물학과 인간의 호기심을 해결하는 생물학. 전자는 인간의 질병을 해결하는 목표를 가진다면 후자는 자연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 답을 한다. 전자든 후자든 현대과학의 연구비는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규모가 크기 때문에 과학자들은 연구비를 따기 위해 저마다 최선을 다한다. 돈이 몰리는 곳에는 경쟁이 심하고 돈이 모자란 곳에는 연구비를 따기 위한 노력이 필사적이다. 경쟁에 뛰어들기 싫다면 남들이 하지 않지만 재미있는 주제를 선점하는 것이 괜찮은 전략인 것 같다.


과학자에게 ‘재미있는 주제’란 누구도 던지지 않은 질문을 뜻한다. 매일 훌륭한 과학 논문들이 쏟아져 나오지만 이 논문들은 제각기 다른 주제를 다루고 있다. 과학 연구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세계 최초의 발견’이라는 수식어로 표현되는 새로움(Novelty)이다. 새로움은 예술분야에서도 중요한 덕목이다.


[ 동영상 : https://vimeo.com/40679029 ]



작품은 접속의 대상이며 예술이자 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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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프로그래밍으로 새로운 예술을 하는 작가 지하루를 소개한다. 지하루 작가의 물감은 영사기가 쏘는 빛이며 지하루 작가의 붓은 컴퓨터 프로그램이다. 특이하게도 작가는 이공계 출신이 아니다. 그녀는 전통적인 조소과를 졸업했지만 지금은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하는 예술가이다. 현재 그녀는 음악과 멀티미디어를 위한 시각적 프로그래밍 언어인 Max/MSP의 개발자이자 컴퓨터 음악 작곡가인 그레이엄 웨이크필드(Graham Wakefield)와 부부작가로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지하루 작가의 <엔들리스 커런트(Endless Current)>는 인공자연(Artificial Nature)에서 생성되고 소멸하는 생명체를 시각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지하루 작가의 작품은 가상세계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작품 안에 발을 들여놓지 않으면 설명하기 힘든 작품을 만든다. 실제로 이 글을 쓰는 나는 스피커를 통해 인공자연의 소리를 듣고, 3차원(3D) 안경을 쓰고 그녀 세상을 보고, 3차원 동작인식 장치인 ‘키넥트’(Kinect) 앞에 서서 그것들을 만지는 듯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몰입도가 높은 놀라운 경험이었다. 관람객은 최첨단 기술을 이용해 게임을 하듯 작가의 머리 속을 경험할 수 있다. 어쩌면 가까운 미래에 집에서 뉴미디어 아트 작품을 다운로드 받아 경험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하루의 작품은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접속의 대상이며, 예술과 놀이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다.

00endlesscurrent3.jpg » 지하루 작가의 작품에 접속하는 관객들. 출처/ http://www.artificialnature.net

‘엔들리스 커런트’ 작품이 구현한 인공자연 안의 생명체들은 아름다움을 뽐내며 먹고 번식하고 죽는다. 생명체들은 에너지를 교환하고 살기 위해 이동한다. 그렇기 때문에 매순간 작품은 변화하며 관람객들은 저마다 다른 세상의 단면을 보게 될 것이다. 가상세계 안에서 생명체들은 살기 위해 경쟁하고 관객들의 머리 속에서는 기억되기 위해 경쟁한다. 소리와 이미지, 촉감으로 전달된 생명체들은 그것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머리 속에서 끝없는 흐름이 된다.


겉으로 드러난 아름다운 이미지와 간지러운 소리 이면에는 생태계를 움직이는 자연의 원리가 작동한다. 작가는 능동적으로 과학자들이 밝힌 ‘자연이 작동하는 원리’를 그대로 자신의 세계에 구현했다.



그것은 분자, 세포, 개체, 생태계, 은하계, 심지어 평행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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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은 “자연선택”으로 지구상의 생명체가 태어나고 진화하는 원리를 설명했다. ‘엔들리스 커런트’ 작품에서도 인공생명체들은 한정된 자원에서 태어나고 번식하고 죽는다. 그러나 인공생명체들이 실제 진화를 하듯이 고등 생물이 되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기술적으로 물질의 모든 특성을 구현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 작품에서 우리는 거대한 흐름을 만드는 개체들의 움직임을 볼 수 있다. ‘흐름’ 그 자체가 창발적인 거대한 존재로 보인다. 어쩌면 우리가 해석할 수 없는 지적인 존재일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00endlesscurrent2.jpg » 엔들리스 커런트(Endless current). ‘생명은 아름답다’ 전. 카이스트. 2013년 10월 생명체는 동적평형 상태를 유지하는 항상성라는 원리가 작동하여 생명을 유지한다. 생명은 에너지를 소비하여 외부의 엔트로피를 높이지만 내부의 엔트로피는 낮춘다. 우리의 체온이 일정하거나, 해로운 중금속이 배출되는 것도 이러한 항상성의 원리로 설명할 수 있다. 반면 기계는 생명체와 달리 스스로 항상성을 유지할 수 없다. 기계는 사람의 유지·보수를 통해 잠시 항상성을 유지할 뿐이다.


작가는 관객이라는 외부의 자극이 없어도 생태계가 스스로 순환하도록 설계해 놓았다. 직접 개입하지 않아도 작품을 감상할 수 있었다. 외부 모니터를 통해 2인칭 시점에서 바라본 인공자연은 정적인 평형 상태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3차원 안경을 쓰고 1인칭 시점으로 그 세계에 개입하게 되면 끊임없이 죽고 생성되는 생명체들이 보인다. 가상생태계는 정적이고 고정불변의 세상이 아니라 생성소멸이 반복되는 동적평형 상태에 있는 세상이다.


현실세계의 모습도 비슷해 보인다. 예를 들어 주변의 상가를 보면 커다란 변화가 없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매년 자영업자의 70%가 가게문을 닫고 새롭게 창업한다고 한다. 기존에 있었던 직업은 자동화로 대체되고 새로운 업종이 생겨난다. 정적으로 보이는 세상에 관심을 기울이고 관찰하면 동적인 모습이 드러난다.


‘엔들리스 커런트’ 작품의 이미지들은 작은 단위체들의 조화로 이루어져 있다. 가상세계의 생명체들은 사실 생태계에서 살고 있는 ‘개체’로만 해석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이들을 다양한 층위에 대입해 볼 수 있다. 그것은 단일 분자, 세포, 개체, 군체, 생태계, 지구, 은하계, 심지어 평행우주에 대입해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렇게 해석할 수 있는 이유는, 생명 현상이 작은 단위체들이 부품처럼 작동해 창발적인 상위의 집합체를 구성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생명체에서 유전정보를 담는 뉴클레오타이드들이 조합해 코돈을 이루어 유전 정보 단위를 형성한다. 뉴클레오타이드는 모여서 유전자를 형성하고, 유전자는 염색체를, 염색체는 유전체를, 그 위로 핵, 세포, 조직과 개체를 형성한다.



우리는 흐름을 만드는 존재일까, 실려가는 존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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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적어도 하나 이상의 집단에 속해 있다. 작게는 가족에서 직장, 인터넷과 에스엔에스(SNS)로 우리의 정체성은 가상세계로도 진출한 만큼 더욱 다양해졌다.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인터넷에 우리 생각을 올려서 공동의 세계를 만들고 있다. 블로그에 만화를 올리고, 맛집의 음식 사진을 찍어 올린다. 현대의 과학자들은 점점 인터넷을 통한 정보 교환과 학회에서 형성된 관계를 통해 협업에 의존하고 있다. 과학이 발전할수록 논문에 참여하는 저자와 데이터가 늘고 있고 한 논문에 참여하는 저자들의 국적이 다양해지고 있다. 논문을 출판하면 수십 기가 바이트의 거대한 정보를 공공 데이터베이스에 업로드하여 공유한다. 가상 세계에서 정보를 주고 받는 것은 거부할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인 것 같다.

00Archipelago.jpg » 아키펠러고우(Archipelago, 군도). 모래 위에 가상생태계를 프로젝터로 투사한 작품. 관객들이 모래를 직접 만지고 변형할 수 있다. 가상 생태계의 생명체들은 바뀐 환경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프랑스. 2014년.

지하루 작가의 작품은 인류가 가상세계에서 주고받는 거대한 정보흐름을 보여주는 것 같다. 작품에서 생명체들은 가상의 기류를 타고 이동한다. 이는 에너지를 찾아 떠나는 개체들이 만들어내는 ‘편서풍‘과 같은 거대한 흐름인 것으로 보인다. ‘끝없는 흐름’이라는 작품의 제목은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작품 속에서 이미 거대한 흐름이 존재하고 객체는 흐름에 몸을 싣고 흘러간다. 둘째, 객체들은 단순한 규칙에 의해 움직일 뿐, 흐름은 개체들이 만드는 부수적 현상일 뿐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거대한 흐름은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우리는 흐름을 만드는 존재인가, 흐름에 실려가는 수동적 존재인가?


우리 각자는 거대한 흐름을 만들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가 행위하는 모든 것들이 거대한 흐름을 만드는 데 영향을 주는 것은 확실하다. 인터넷을 통한 정보 교환이 편리하지만 이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는 기류도 형성되고 있다. 스마트폰을 버리고 필수적인 통화 기능만 되는 전화기가 출시된 것을 보면 거대한 흐름 밖에서도 충분히 삶을 살 수도 있을 것 같다.


[ 동영상 : https://vimeo.com/89884440 ]



새로움은 ‘해석해줄 관객’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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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예술의 융합을 위해 넘어야 할 것은 무엇일까? 과학 기술과 예술의 접점에서 작업하고 있는 지하루 작가에게 물어봤다.


작가는 언어와 평가시스템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과학과 예술, 두 분야의 언어는 다르게 형성되었기 때문에 같은 단어라도 전혀 다른 의미를 담고 있을 수 있다. 각 분야의 언어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서로 소통할 수 없지만, 이는 상대방의 학문에 대한 연구를 통해 극복 가능하다고 지하루 작가는 희망적으로 말한다. 두 번째로 과학과 예술 협업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평가시스템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꼬집는다. 예술작가는 과학자에게 작품에 대한 공동 저작권을 주겠다고 하지만, 과학자에게 예술작품의 저작권은 무가치하다. 오히려 상사에게 연구 시간에 엉뚱한 짓을 했다는 평가를 받을까 걱정할 판이다. 과학자들이 오직 논문으로만 평가받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이다. 반대로 과학자의 경우 예술가에게 논문 저자의 권리를 준다고 해도 예술가에게 과학 논문은 무가치하다. 과학자와 예술가가 소속된 기관의 경직된 평가가 융합을 방해하는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실제로 어떤 작가 출신 교수는 작품이 아닌 SCI급 논문으로만 평가를 받게 되어 교수직을 그만 둔 사례도 있다고 한다.


내게, 지하루 작가의 작품은 처음 접했을 때 예술작품이 아닌 게임으로만 보였다. 이는 아주 새로운 것이 나타났을 때 기존의 틀로 해석할 수 없는 ‘새로운 것’의 숙명인지 모른다. 발표 당시 진가를 인정받지 못했던 멘델의 법칙이 담긴 논문이 뒤늦게 조명을 받았듯이 새로움은 해석을 해줄 관객을 기다리고 있다. 우리 과학자들도 잠시 ‘임팩트 팩터(impact factor, 논문이 얼마나 인용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지수)’를 잊어보자. 어쩌면 시대를 앞서가는 새로움이 담긴 논문을 자신만의 시각으로 평가해보는 것은 어떨까.



지하루 작가의 홈페이지에서 더 많은 작품을 볼 수 있습니다.

 http://www.artificialnature.net


서범석 박사후연구원, 서울대학교 유전과 발생 연구실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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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범석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유전과 발생 연구실, 박사후연구원
‘유전과발생’ 실험실에서 예쁜꼬마선충의 텔로미어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2015년 가을 이후 박사후연구원). 예술에 관해 무관심하다 우연히 들른 갤러리에서 예술이 주는 낯선 느낌에 반하게 되었다. 과학과 예술의 창작과정에 관심이 많다. 길고양이 홍시와 반시를 키우고 있으며, '엘레강스 펜클럽' 연재 글을 쓰기도 했다.
이메일 : phybio@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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