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자의 "미술관 옆 실험실"

과학과 예술은 흔히 창의성, 독창성 등에서 공통점을 지닌다고 합니다. 실제로 최근 융합의 시도도 많습니다. 생물학과 물리학 연구자인 필자들이 과학과 예술의 소통 가능성을 살피는 실험에 나섭니다.

21세기 점묘법, 그리고 이미지 가지고 놀기

[4] 최승훈 작가…이미지를 이미지로 보기


001art8.jpg » 최승훈, monologe 001, 단채널 비디오, 2014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카카오스토리에 들락거리며 새로운 이미지를 찾는다. ‘먹방’(먹는 방송)처럼 에스엔에스(SNS)에서도 맛있는 음식을 먹었다고 자랑하는 '먹스타그램'이 대세다. 집밖에 나가지 않아도, 하물며 친구가 테이블 건너편에 있어도 ‘짤방’(인터넷에 떠도는 이미지와 동영상, 주로 패러디물)만으로도 킥킥거리며 혼자서 놀 수 있다.



이미지에 중독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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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와 같은 이미지 탐닉은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있어야 가능하지만, 고릿적에는 어떻게 이미지를 가지고 놀았을까? 예를 들어, 조선시대 화가 김홍도와 신윤복이 그렸던 풍속화를 떠올려보자. 텔레비전도 없고, 인터넷도 없던 시절에 당시 사람들은 여러 그림이 묶인 화첩을 보며 이미지를 가지고 놀았을 것이다. 장터에서 씨름 하는 모습, 서당에서 혼나는 어린 아이, 냇가에서 그네 타는 여인 같은 그림을 보면서 수다 떠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시공간을 별다른 이미지 자극이 없던 중세 유럽으로 옮겨보면, 고딕 성당의 스테인드글래스를 통해 들어오는 빛과 화려한 이미지에서 경건함을 느끼는 당시 사람을 상상할 수 있다.


이미지를 다루는 미술 장르는 전통적으로 회화이다. 요즘은 회화를 비롯해 영상, 사진, 설치 등 이미지를 이용해 예술 작품을 만든 분야를 아울러서 시각예술이라고 부른다. ‘시각’ 예술은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새로운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구글 이미지에서도 검색할 수 없고, 페이스북이나 카카오스토리에서도 찾을 수 없는 이미지, 그런 게 어떻게 가능할까? 수천 년의 회화 역사에서 무수히 많은 이미지를 등에 업고 실시간으로 전 세계에서 이미지가 쏟아지는 지금, 어떻게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는 말인가? 정녕 하늘 아래 새로운 이미지가 가능할까?


’미술관 옆 실험실’을 연재하는 필자들은 이런 물음을 지니고서 최승훈 작가를 2014년 9월 27일 토요일에 작업실에서 만났다. 최승훈 작가는 박선민 작가와 함께 “최승훈+박선민”이라는 이름으로 오랜 시간 듀오로 활동했다. “최승훈+박선민”은 사회적 매체인 신문을 스크랩하고 병치시켜 개인적 감성을 표현하는 시로 만드는 “신문시” 작업으로 유명하다.


그러다가 자기만의 방식으로 작업을 해보고 싶어, 듀오 활동을 병행하면서 독립적으로 작업을 시작했다. 부부이자 동료인 박선민 작가와 별개로, 최 작가는 독립 작업을 한 결과물을 담아 스페이스 윌링앤딜링에서 개인전(2014년 5월 9일부터 5월 29일)을 열었다. 인터뷰는 이 개인전에 선보인 작품을 얘기하면서 미술교육과 이미지 놀이에 관한 주제로 확장되었다 (박선민 작가의 이야기는 다음 회에 함께 연재 글을 쓰는 서범석 님의 글에서 이어진다).



이미지만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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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에 열린 개인전 <모놀로그>에서, 최승훈은 아내인 박선민과의 사소한 대화에서 모티브를 얻은 작품, 그리고 놀이동산을 찍은 이미지와 동영상 작품을 선보였다. 최 작가는 구별하기에 애매한 반대말들이 병치되었을 때 새로운 이미지가 만들어지는 경험을 했다. <monologe 001> 작품은 ‘나는 나’라는 단어에서 ‘ㅏ’가 ‘ㅓ’로 이동했을 때 ‘나는 나, 나는 너, 너는 나, 너는 너’의 조합을 보여준다. 어느 노래의 가사처럼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만 찍으면 ‘남’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001art7.jpg » 최승훈, 미화/폄화, 단채널 비디오, 2014

단어를 겹쳐서 보여주는 <미화/폄화> 작품, 거울상의 배치된 단어들을 회전시키면서 여러 조합들을 만들어낸 <monologue 002> 작품이 개인전에서 전시되었다. 최승훈은 박선민과의 대화 중에 나왔던 ‘미화’와 ‘폄화’를 명확하게 구분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반면 단어를 회전시키면서 병치하는 <monologue 002>는 결연단절이 절단연결로, 기회가 회기로, 유치한상식이 식상한치유로 대비된다. 이 단어들이 회전하면서 (회전속도가 다르기 때문에) 여러 단어가 조합된다. 예를 들어, ‘절단연결 기회 유치한상식’이 나온다면 ‘절단되었던 (썸 타던) 관계를 연결하는 기회가 온다는 건 유치한 상식’으로 해석할 수 있고, ‘결연단절 기회 식상한치유’는 ‘(다이어트를 위해) 결연하게 (치맥을) 단절할 수 있는 기회가 온다고 해도 식상해서 (실패할 수밖에 없는) 치유’로 이해할 수 있다.

001art6.jpg » 최승훈, monologe 002, 단채널 비디오, 2014

몽타주는 영화에서 화면을 오려 붙이는 편집을 통해 긴장감 넘치는 장면을 만드는 방식이다. 최승훈은 멀리 떨어져 있는 단어들을 약간의 우연을 첨가해 병치시켜 새로운 문장을 만들었다. 반면 꼴라주는 미술 시간에 한번쯤 해봤을 잡지 사진을 오려 붙여 작품을 만드는 것이다. 내가 동물의 왕국을 표현하고 싶으면 패션이나 과학 코너에 있는 잡지에서 동물 사진을 가위나 칼로 잘라서 큰 종이에 덕지덕지 붙이면 된다. 작가의 중얼거림을 표현한 <monologue 001>, <monologue 002>가 관련 없는 단어들을 보여주는 몽타주 기법을 활용했다면, 버려진 놀이공원을 영상으로 만든 <amusement 001>, <amusement 002>는 현란한 이미지들의 연속을 보여주는 콜라주 기법을 사용했다.

001art5.jpg » 최승훈, amusement park 001, 단채널 비디오, 2014

001art44.jpg » 최승훈, amusement park 002, 단채널 비디오, 2014

<amusement 001>, <amusement 002>는 지금은 아무도 찾아가지 않는 놀이공원(서울시 중랑구에 있는 용마공원으로 추정됨)의 회전목마와 열차 트랙을 줌인과 줌아웃을 번갈아가면서 보여준다. 눈이 가는대로 멀리 보았다가 자세히 보았다가를 반복한다. 흑백의 회전목마는 어릴 적 기억을 호출하지만, 그곳에는 아무도 없다. 웃음소리도 솜사탕을 들고 뛰어다니는 아이들도 없다. 감정이입이 되려다가 공간의 허무함에 걸리적거린다.


최승훈은 이 영상을 고해상 이미지로 만들어 풀-에이치디(HD) 급으로 전시했다. 애초에는 울트라-에이치디 급으로 만들었다가 관객들이 ‘울트라’ 기술에만 관심이 집중되는 것을 염려해 ‘풀’로 진행했다고 한다. 마술처럼 기술이 전면으로 등장하면 촌스러워 진다고 작가는 추측했다. 하지만 아무도 그 둘의 차이에 관심이 없었다. 영상을 몇 분간 보고 있으면 확대한 이미지도 원래 이미지만큼 고해상도를 유지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떤 이미지라도 크게 확대하면 픽셀이 깨지면서 뿌옇게 흐려지는데, 두 작품에서는 확대 이미지에서도 깨지지 않는 선명한 영상을 제시했다. 마술사가 베일 안쪽을 보여주지 않는 것처럼 작가는 알려주지 않았다.


<모놀로그> 전시에서 작가가 선보인 작품들은 언어를 조합해 새로운 문장을 만든 몽타주 작업과 이미지들을 눈이 가는대로 보여주는 콜라주 작업이었다. 작가의 이전 작업들을 모르는 관객이라도 ‘단어와 이미지로 만든 재밌는 작품! 오늘 득템 전시’라고 페이스북에 올릴 만하다. 미술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담지 않아도, 동시대의 사회적 맥락을 반영하지 않아도 새로운 이미지만으로도 충분하다.



점을 찍어 이미지를 만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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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art3.jpg » 이중나선 모형을 보고 있는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 출처/ Wikimedia Commons 과학에서도 이미지는 중요한 연구 주제이면서도 새로운 발견을 이끄는 도구다. DNA가 이중나선인지 삼중나선인지 분명하지 않던 20세기 중반, 왓슨과 크릭은 공과 막대를 연결해 DNA가 이중나선이 되어야 구조가 안정적이라는 것을 모형으로 보여주었다.


영화 <인터스텔라>를 굳이 아이맥스영화관에서 보는 건 커다란 스크린이 보여주는 압도감과 동시에 고해상의 영상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느 정도까지 고해상 이미지를 만들 수 있을까? 작게는 원자부터 크게는 우주 전체까지 이 모든 것들을 카메라로 찍을 수나 있을까?


2014년 노벨화학상은 광학 현미경의 한계를 돌파해서 나노미터 수준의 해상도를 갖는 이미지를 얻을 수 있는 기법인 ‘초고해상도 현미경’을 개발한 과학자 세 명에게 수여되었다 (2014년 10월 9일 한겨레 사이언스온, '광학관측의 자연한계 우회…초고해상도를 쏘다 -노벨화학상'). 초고해상도 이미지를 얻는 과정은 이렇다. 먼저 이미지를 얻으려는 대상에 분자 한 개 크기의 표지를 많이 붙인다. 이 표지를 깜빡거리게 한다. 이 점을 고배율 렌즈로 찍는다. 분자 한 개에 해당하는 이미지를 분석 프로그램을 이용해 빛 세기가 최대인 점을 찾는다. 이 점들이 모인 이미지를 수 만장 정도 겹쳐서 하나의 이미지를 만들면 초고해상 이미지를 얻을 수 있다.


001art2.jpg » 2014년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에릭 베치그 그룹이 2006년 <사이언스>에 발표한 논문, “Imaging Intracellular Fluorescent Proteins at Nanometer Resolution”에 실린 그림. 옆 그림은 세포 안에 있는 리소좀 단백질(CD63)에 형광단백질을 발현시키고 찍은 것이다. A는 베치그 그룹이 개발한 초고해상도 현미경인 팜(PALM, Photoactivated Localization Microscopy)을 사용하지 않고 찍은 이미지이고, B는 팜을 이용해 얻은 초고해상도 이미지다. A 이미지에서는 뿌옇게 보이던 형광단백질이 B 이미지에서는 선명하게 보인다. C는 B의 큰 상자 부분을 확대한 이미지고, D는 B의 작은 상자부분을 확대한 이미지다. D에 있는 거리단위 0.2㎛(마이크로미터)는 아베 회절 한계와 거의 일치한다. 일반 현미경으로 볼 수 없는 수준의 크기를 초고해상도 현미경으로는 볼 수 있다.


반면 일반현미경으로 본 이미지는 우리 눈이 세상을 보는 것과 같다. 색과 이미지가 연속적으로 이어져서 보인다. 마치 양성자, 중성자, 전자로 이루어진 원자 내부는 대부분 비어있지만, 그 원자들이 모인 사물은 빈 공간 없이 느껴지는 것과 같다. 초고해상도 현미경은 우리 눈의 확장체인 렌즈가 보여준 연속적인 이미지를 분절된 점으로 만든다. 이 현미경은 가장 빛나는 점들만 모아 다시 연속적인 이미지를 만든다. 새롭게 만들어진 이미지를 통해 우리는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생명체의 미세 구조들, 예를 들어 신경세포의 시냅스 구조와 수명과 노화의 비밀을 담고 있는 텔로미어의 T 루프 모양을 관찰했다. 점을 찍어 이미지를 만드는 21세기 점묘법이다.


점묘법은 19세기 말 조르주 쇠라(Georges Seurat, 1859-1891년)에 의해 제안되었다. 점묘법으로 지칭되는 이 기법으로 제작된 그림은 잘 알려진 <그랑드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이다. 멀리서 보면 르누아르나 모네 같은 인상파 화가의 그림을 떠올리게 되지만, 캔버스 가까이 다가가서 자세히 보면 색이 입혀진 점들을 볼 수 있다. 착시일까 종합일까?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보면 윤곽만 구별할 수 있는 우리 눈의 한계에 따른 착각일 수도 있고, 색 점들을 단위소로 삼아 이 단위소를 쌓아서 만든 커다란 구조물로 볼 수도 있다. 100년의 간격을 넘어 점묘법이 동시대 과학에 영향을 주고 있다.

001art1.jpg » 조르주 쇠라, <그랑드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 (1886년)



모놀로그에 대한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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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훈의 모놀로그는 ‘이미지를 이미지로 보기’였다. 이미지에 굳이 언어적인 해석을 덧붙이지 않아도, 지금까지 본 적도 없고 인터넷에 검색되지도 않는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도 동시대 시각예술의 작업 방식이다. 이상하고 낯선 이미지 앞에서 “이게 뭐지?”라는 질문과 함께 뜨악한 기분이 든다면 그 작품은 매력적이다. 아름답기만 하다면 “이쁘네.”하고 바로 상황이 종료된다. 우리는 이미지를 해석할 수도 없고 번역할 수도 없다는 생각에 주눅 들지 않아도 된다. 그런 느낌을 들게 하는 게 작가의 원래 목적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미술작가들은 멀리 떨어진 것을 합치거나 가까운 것들을 병치하는 기법을 자주 사용한다. 인터넷 포털이나 구글에서도 이미지를 합성한 패러디 물과 짤방들을 찾을 수 있다. 거기에 롤랑 바르트나 자크 랑시에르의 이미지 담론으로 언어적 해석을 첨가하고 싶은 사람도 있을 거다. 그러고 싶으면 그렇게 하면 된다. 하지만 “ㅋㅋ” 같은 댓글을 달거나 베스트댓글을 보면서 빵 터지는 것도 이미지를 가지고 노는 방식이다. 이미지를 이미지로 가지고 놀자.


[참고문헌]


구성수, 김세진, 최승훈+박선민, <다음작가 選, 4>, 박건희문화재단, 2006.

Betzig, Eric, et al. “Imaging Intracellular Fluorescent Proteins at Nanometer Resolution.” Science 313 (2006): 1642-1645.


박상준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박사과정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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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준 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부 박사과정
물리학 실험실에서 예쁜꼬마선충을 연구하고 있으며, 집에서는 예쁜 푸들을 키우고 있다. 시각예술 월간지 <아티클>의 객원기자로 활동하면서 동시대 시각예술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 쉴라 재서너프의 <법정에 선 과학>을 포함해 몇 권의 책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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