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자의 "미술관 옆 실험실"

과학과 예술은 흔히 창의성, 독창성 등에서 공통점을 지닌다고 합니다. 실제로 최근 융합의 시도도 많습니다. 생물학과 물리학 연구자인 필자들이 과학과 예술의 소통 가능성을 살피는 실험에 나섭니다.

하나의 작품은 언제 완성되는가?

[1] 김주현 작가…작품의 기본단위와 확장


00artKJH3.jpg » <자기 확장법 - The River Garama>, 2005 (김종영미술관 전시 광경)


기 오래된, 그러나 중요한 질문이 있다. “세상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을까?”

과학은 우주가, 생명이,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간이 왜 어떻게 여기에 있는지 묻고, 그것들 사이의 상호작용을 찾는다. 물리학이 크게는 우주 전체를, 작게는 원자보다 더 작은 세계를 들여다본다면, 생물학은 지구 전체의 생명계(아직까지는 지구 밖에서 생명체를 찾지 못했다)부터 세포, 그리고 디엔에이(DNA) 이중나선을 이루는 아데닌(A), 티민(T), 구아닌(G), 시토신(C)까지 기본 단위를 분석한다. 기본 단위는 과학자의 큰 관심사이지만, 더불어 몇 명의 시각예술 작가들도 작품의 모티브로 기본 단위를 사용하기도 한다. 회화의 기본 단위, 조각의 기본 단위, 판화의 기본 단위, 설치작품의 기본 단위, 영상의 기본 단위처럼 모든 장르에서 이 질문은 생각을 확장시킨다.


‘미술관 옆 실험실’ 연재를 하는 박상준과 서범석은 기본 단위에 관한 질문을 작업의 근간으로 삼는 김주현 작가를 4월 5일 토요일 작가의 작업실에서 만났다. 김 작가는 프랙탈, 위상수학 같은 과학적인 개념을 이용해 작업하고 있으며, 올해 4월 갤러리 팩토리에서 열린 <식물사회>, 엠엠엠지(MMMG) 홀에서 열린 <시적공간연습> 전시에 참여했다.



규칙과 변칙을 따르는 ‘확장된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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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실의 한쪽 벽면에 있던 작은 책꽂이에서 리처드 도킨스의 <확장된 표현형>이 눈에 들어왔다. 이 책은 유전자가 발현된 표현형이 개체 수준을 넘어 환경까지 확장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김주현 작가의 주요 키워드인 ‘확장형 조각’과 연결된다. ‘확장형 조각’이란 규칙을 정해놓고 작품을 만들기 시작하지만 변칙을 허용한다는 작가 나름의 방식이다. 전통적인 의미의 조각은 특정한 하나의 형태를 향하는 것이라면, 확장형 조각이란 규칙을 따르면서 확장되지만 고정된 목적을 추구하지 않는다. 이는 생물학의 주요 개념 중의 하나인 자기조직화와 상당히 유사하다. 아래 그림은 2005년 김종영미술관에서 전시한 작품 <자기 확장법>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형상을 만들지 않으면서도 규칙을 따르며 확장해 나가기 때문에 기하학적 규칙성이 보인다.


가의 초기 작품들은 경첩을 오브제로 삼았다. 경첩을 기본 단위로 삼아 그것들을 연결해서 거대한 설치 또는 풍경을 만들었다. 아래의 <22000개의 함석판으로 된 경첩> 작품을 보라. 경첩 하나하나는 모두 동일하고 개별적으로 다르지 않다. 하지만 그것들을 연결해서 만든 작품은 독특한 풍경을 만든다. 측면에서 보면 설치 작품으로 보이지만, 위에서 보면 평면 회화처럼 보인다. 세포를 연구하는 생물학자가 이 이미지를 본다면 세포들이 페트리 디시 바닥에 붙어 성장하는 모습이 연상될 수 있다. 22,000개의 동일한 모양의 경첩이 연결된 것과 수십억 개의 세포가 결합해 내 몸을 이루는 것은 기본 단위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상당히 설득력 있는 비유다.


00artKJH5.jpg » <22000개의 함석판으로 된 경첩>, 2001, 2002 (부산시립미술관 전시광경)

00artKJH6.jpg » <22000개의 함석판으로 된 경첩>, 2001, 2002 (부산시립미술관 전시광경)

다른 사람들은 과학과 예술의 만남을 어떻게 보는지 궁금했던 작가는, 경첩을 이용한 작업을 하면서 과학과 예술의 만남을 주제로 하는 집담회를 열었다. 그 자리에서는 미술비평가, 건축가, 물리학자들이 모여 각자가 생각하는 과학과 예술의 관계를 풀어놓고 논의했다. 참석자들은 작가가 시도하는 소통의 노력, 즉 작품을 매개로 좁은 현대미술계를 벗어나 다른 학문의 영역으로 사유를 확장하려는 시도를 높게 평가했다. (이 집담회는 <예술과 과학의 만남>(스튜디오 바프, 2005년)이라는 책으로 출판되었다.)



고정된 결과물만이 예술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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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artKJH1.jpg » <우아한 나선 - 변형토러스 습작>, 2014 (시적공간연습 전시 광경)조각의 기본 단위에서 시작된 김주현 작가의 관심은 고정된 경첩에서 풀어헤쳐진 금속선으로 진행되었다. 이는 2008년께 서울대학교에서 열린, 중고등학생을 위한 교양과학 강의를 딸과 함께 들었던 것을 계기로 시작되었다. 그 강의에서 위상수학을 접한 작가는 경첩처럼 고정된 선들을 연결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선을 구사했다. 가장 최근에 참여한 <시적공간연습> 전시에 선보인 작품에서도 선은 유연하게 확장되고 있다. 아래의 <우아한 나선 - 변형토러스 습작> 작품은 금속선으로 토러스를 표현한 것으로, 선과 선이 만나는 지점에 작은 접합부를 만들어 전구를 달았다. 전구를 사용한 이유는 단순히 반짝거림이 필요하기 때문이 아니다. 반짝거리는 효과를 원했다면 구슬이나 비즈 같은 재료들도 가능했을 수도 있다. 작가는 이 지점에서 명확하게 전구여야 한다고 말한다. 전기가 통할 수 있도록 정확한 규칙에 따라 제작되었다는 신호를 전구의 불빛이 말해주기 때문이다.


학과 예술이 만나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예술은 과학에게 무엇을 줄 수 있고, 과학은 예술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 김주현 작가는 과도한 낙관론과 성과 위주의 방식을 경계했다. 과학자와 예술가가 만나기만 하면 금방 불꽃이 튀면서 독창적인 무언가가 나올 것이라고 기대할 수 없다. 오히려 자신들에게 익숙한 개념과 표현 방식을 고집하면서 소통이 불가능한 순간도 많다. 게다가 과학과 예술의 만남과 관련된 프로젝트 지원금을 받은 기획자 또는 기관이 과학자와 작가를 차출해서 진행하는 방식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자신의 의지로 참여한 것이 아니라서 결과만 내면 된다는 식의 접근도 자주 있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김주현 작가는 결과물을 보여주는 형식이 아닌, 작업 과정을 제시하는 전시를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초기 아이디어를 표현한 드로잉과 중간 과정에서 만든 모형들을 보여주는 과정 중심의 전시도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확장형 조각이 보여주듯이 고정된 결과물을 만드는 것만이 예술은 아니다.


또한 작가는 미술 교육도 비판했다. 딸이 어렸을 적에 동네 미술학원에 딸을 데리고 갔다고 한다. 그런데 아이들이 조용히 앉아서 색칠을 하고 있었다. 어린이들이 모여 있는 곳이면 항상 볼 수 있는 떠들썩한 소동이 전혀 없는 광경을 보고서 곧바로 나와 다시는 미술학원에 보내지 않았다고 한다. ‘모든 사람은 예술가’라는 요제프 보이스의 말과 달리, 한국에서는 아이들의 예술적인 표현 욕망을 억누르고 있었다.



‘붓을 언제 놓아야 하나’ 알게 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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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정리하면서 알고 지내던 한 시각예술 작가의 말이 떠올랐다. 미대 다니던 시절에는 붓을 언제 놓아야 할지 막막했다고 한다. 언제 하나의 작품이 완성되는지를 작가 자신도 몰랐다는 뜻이다. 오히려 졸업 후 짧은 유학을 다녀오고 나서야 그 시점을 알 수 있었고, 주변에서도 그림이 편해졌다는 평가를 받았다는 이야기였다. 그렇다면 계속 연결될 수 있는 ‘확장형 조각’ 작품은 언제 멈추게 될지 궁금해졌다. 만약 필자가 ‘과학과 예술의 만남’ 전시를 기획할 수 있다면 ‘기본 단위’를 주제로 과학자들과 시각예술 작가들을 만나고 싶다.


□ 김주현 작가의 홈페이지(www.weboflife.co.kr)에 가면 초기부터 최근까지 그의 작품을 볼 수 있다.

 

박상준 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부 박사과정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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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준 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부 박사과정
물리학 실험실에서 예쁜꼬마선충을 연구하고 있으며, 집에서는 예쁜 푸들을 키우고 있다. 시각예술 월간지 <아티클>의 객원기자로 활동하면서 동시대 시각예술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 쉴라 재서너프의 <법정에 선 과학>을 포함해 몇 권의 책을 번역했다.
이메일 : cygnus30@hanmail.net      
블로그 : blog.naver.com/cygnus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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