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자의 "미술관 옆 실험실"

과학과 예술은 흔히 창의성, 독창성 등에서 공통점을 지닌다고 합니다. 실제로 최근 융합의 시도도 많습니다. 생물학과 물리학 연구자인 필자들이 과학과 예술의 소통 가능성을 살피는 실험에 나섭니다.

과학과 예술 사이, 불완전해도 의미있는 소통

‘미술관 옆 실험실’ 연재를 시작하며


글: 서범석, 박상준

00dadaikseon.jpg » 비디오 아트를 위해 전기회로를 공부했던 백남준, 과학과 예술을 융합한 작품 <다다익선>으로 '노벌티(novelty)'를 제시했다. 출처/ 한겨레 자료사진, 현대미술관 제공



   #1


예술은 과학을 어떻게 사용할까




근 우리 사회에서 과학과 예술의 융합이 중요하게 강조되고 있습니다. 현재 여수의 여울마루에서 ‘생명은 아름답다’ 전시와 아르코미술관에서 '다이내믹 스트럭처 앤 플루이드 전(Dynamic Structure & Fluid 展)'이 열리고 있습니다. 최근에 이루어진 과학과 예술의 융합을 위한 노력이 결실을 맺기 시작한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도 과학과 예술 뿐만 아니라 인문학, 전산학 등의 여타 학문들의 융합도 더욱 중요해질 것으로 보입니다. 학제간 융합을 통해 기존에 없었던 창조적 생각을 할 수 있기 때문에 학문간 융합은 시대적 화두가 되었습니다. 정체된 한국의 경제난을 돌파하기 위해서라도 ’창조경제‘라는 국가적 기조에도 상당히 부합하고 있기도 합니다.


드물지만 과학자와 예술가의 개인적인 주도로 융합의 성과를 낸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고도로 전문화된 현대 학문의 특징을 고려하면 국가의 제도적 도움 없이 융합이 이뤄지기에는 어려움이 있어 보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융합이 일어나는 당사자인 과학자와 예술가가 거쳐야 하는 융합의 과정 자체는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밑에서 위로 일어나는 방식의 융합은 존재하는 것인가요? 즉 과학자와 예술가는 실제로 소통하고 있는 것인가요?


저는 지난해 ‘엘레강스 펜클럽’이라는 사이언스온 연재물에서 최신의 생명과학 논문을 대중에게 소개하는 글을 썼습니다. 다섯 명의 필진이 함께 연재하는 꼭지이기 때문에 다른 필진의 좋은 글 덕분에 좋은 반응을 얻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최신 생명과학의 흐름을 대중의 언어로 풀어쓴다는 것이 거의 ’통역‘에 가까웠습니다. 제 글이 쉽게 쓰인 글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클릭 수에 비해 댓글이 달리는 것도 드문 일이었습니다.


자신을 돌이켜 보니 저 또한 제가 연구하는 전공 분야에만 관심을 두었지 가까이 인접한 과학 분야에도 애정과 관심을 둘 여유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과학과 관련이 없는데도 이 글을 읽어주시는 여러 분들은 예외이긴 합니다만 현실적으로 많은 한국 사람들이 잉여의 시간이 나면 수면을 취하거나 자기계발을 하느라 여전히 바쁩니다. 그리고 이들 중에는 예술가와 과학자도 당연히 포함될 것입니다.


이에 대한 원인은 복잡해 보입니다. 현대의 과학은 전문화, 집단화되어 과학자가 자신의 전공만 깊이 파는 것도 쉽지가 않습니다. 또한 예술도 과학과 마찬가지로 대중과 멀어져 소수화되어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과학과 예술 모두 자기 분야 내의 역사적 맥락을 갖고 있고 그 지식을 파악하기란 그 분야 사람에게도 힘듭니다. 그러니 과학자와 예술가는 그저 상대에게는 서로 일반 대중과도 같습니다.


이 기획에서 우리는 예술가와 과학자가 소통하기 위한 일환으로, 과학자로서 한 작가의 작품을 이해하고 해석하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 융합, 과정, 노블티의 키워드를 핵심 주제로 다룰 예정입니다. 비평가의 입장이 아닌, 작품을 이해하고 싶은 관람자의 글이 될 것입니다. 과학적인 내용을 다루는 작품을 선정해 작품을 설명하고 감상에 필요한 과학적인 지식을 설명해드릴 예정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작가의 목소리를 반영하기 위해 작가와 인터뷰 한 내용도 실을 것입니다.


칸트는 ”예술가는 장인이 아니라 천재이며, 천재는 규칙을 지키는 사람이 아니라 규칙을 제정하는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글에서 작가의 과학적 지식에 대한 오류에 대해 지적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작가가 제정한 규칙에 대해 호기심을 느끼고 그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고찰하고 싶습니다.


비전문가로서 발언하면 예술계에서 보일 부정적인 반응도 예상됩니다. 과학자가 어떻게 예술을 평가하냐고 물을 수 있습니다. 평가가 아닌 소통을 위한 글이 되길 바랍니다. 이 기획은 불완전하지만 우리가 처한 구조에서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글을 통해서 여러분도 여러분 방식대로 작품과 과학에 관심을 가지고 다가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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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범석/ 서울대 생명과학부 박사과정  



   #2


독창성과는 다른 소통의 감동, 어디에




메기로 만든 햄버거를 먹어본 적이 있나요? 포항 부근에서 생산되면서 김에 싸먹는 그 과메기로 만든 햄버거 말입니다. 과메기 햄버거는 맥도널드, 롯데리아를 포함해 어떤 햄버거 프랜차이즈와 가게에서도 시도된 적 없는 새로운 메뉴입니다. 그런데 이 메뉴가 실제로 출시된다고 해서 성공을 거둘 것 같지는 않습니다. 당장 저부터도 사먹고 싶지 않으니까요.


무엇이든 새롭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사회에 기여하거나, 우리 자신을 더 깊게 이해할 수 있거나,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데 도움이 되어야 합니다.


물론 과학과 예술에는 새로운 것이 있습니다. 앞선 세대가 만든 과학 지식에 아주 약간의 새로움이 있어야 논문도 출판할 수 있고, 졸업도 할 수 있고, 직장도 잡을 수 있습니다. 예술에서도 독창성은 가장 중요한 가치입니다.


하지만 독창성만 추구했다가는 기괴한 조합이 등장할 뿐입니다. 아무도 사먹지 않을 과메기 햄버거처럼 말이죠. 결국 새로움에다 의미가 결합되었을 때만 우리가 원하는 과학과 예술이 될 수 있습니다. 과학에서는 이것을 ‘노벌티(novelty)’라고 말합니다 (아직은 적절한 번역어가 없어서 영어 표현 그대로 썼습니다).


동시대 시각예술에서도 노벌티가 중요합니다. 지금 당장이라도 누구라도 새로운 그림을 그리거나 설치작품을 만들 수 있습니다. 아무 오브제나 가져다가 아무렇게나 결합하면 되니까요. 하지만 이런 기괴하면서 새로운 것을 우리는 미술작품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작품을 감상하면서 우리는 미적인 감동을 받기를 원하고, 작가가 말하는 주제에 귀를 기울입니다. 작품에 의미가 있기를 바라며 그것을 기꺼이 찾아내려고 합니다.


<미술관 옆 실험실>에서는 이 노벌티를 가지고 과학자와 작가가 만나려고 합니다. 남들이 하지 않을 것을 하기 위해 빈 구석을 찾아다니는 모습이 참 비슷합니다. 융합이니 통섭이니 하는 큰 단어들을 가능하면 꺼내놓지 않으려고 합니다. 당위적인 명제에 끌려 다니면서 정작 개인들이 경험하는 세계가 묻힐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실험실에서 연구하는 과학자와 작업실에서 작업하는 작가가 직접 만나려고 합니다. 커피 한 잔과 함께 해도 되고, 술이 필요할 수도 있고, 햇볕이 좋은 날이라면 거리를 걸으면서 '노벌티'에 대해 얘기해 보려 합니다. 과학에 관심을 두고서 작업에 과학적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면 더욱 좋겠지요. 인터뷰어와 인터뷰이라는 공식적인 관계로 만날 수도 있을 테고, 관심사가 비슷해 말이 잘 통하는 동료처럼 수다를 떨 수도 있을 겁니다. 만나는 인연마다 언어의 결이 다르겠지만, 다음과 같은 물음을 과학자와 예술가가 함께 고민해보려 합니다.


새로움과 의미가 동시에 들어가 있는 ‘노벌티’란 무엇인가?

과학 또는 예술에서 자신이 달성하고 싶은 노벌티는 무엇인가?

예술가가 관심 있는 과학 주제 또는 과학자가 관심 있는 예술 주제는 무엇인가?

과학자는 예술가에게, 예술가는 과학자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가?


만난 자리에서 나누었던 얘기들을 모두 글에 담을 수는 없겠지요. 필요하다면 인터뷰 형식의 글도 쓸 수 있겠지만, 되도록 과학자의 시선으로 동시대 시각예술을 풀어내려고 합니다.


21세기 한국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과학자든 예술가든 지금의 문제를 고민하고 있을 겁니다. 제도, 교육, 경제, 정치 같은 주제들은 과학이나 예술이나 모두 중요합니다. 이런 얘기들도 빠질 수 없겠지요. 과학자와 예술가가 진솔한 대화를 나눌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면서 노벌티를 얘기하고, 고개를 숙여 땅을 바라보면서 제도를 비평하려고 합니다. 두 발로 당당히 걸어가야 할 자신의 길이 거기에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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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준/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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