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대의 "소설- 박사를 꿈꿔도 되나요"

‘박사우울증’이라는 게 있습니다. 많은 대학원생이 흔히 겪는 우울한 증상을 뜻한다고 합니다. 우리 시대 ‘박사우울증’을 앓는 많은 이공계 대학원생의 삶을 소설 형식에 담아 독자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서로 이해하며 보듬을 수 있는 세상을 꿈꾸며, 카이스트 박사과정 김창대 님이 씁니다.

에필로그: 새벽 세 시. 새로운 꿈이 시작됐다

  …에필로그… 

연재소설- 박사를 꿈꿔도 되나요 시즌Ⅱ


pic_s02e25.jpg » 삽화는 이도연 님께서 그려주셨습니다. (박종애 님이 예전에 그리신 삽화들도 사용되었습니다)




#에필로그. 감사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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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밤. 정원은 박사학위논문 감사의 글을 쓰려고 키보드를 잡았다. 


누구에게 감사해야 할까요? 제가 박사학위를 받았어요. 누구에게 감사해야 하는 것일까요? 보통은 지도교수님을 가장 먼저 쓰죠. 잘 가르쳐주셔서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요. 그리곤 심사위원님들을 언급하죠.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하다고 하면서요. 물론 감사하죠. 지도교수님이 지도해주지 않았다면, 심사위원님들이 도장을 찍어주지 않았다면, 저는 박사가 되지 못 했을 테니까요.


하지만 그 분들이 날 버티게 해준 건 아니에요. 외롭던 순간들, 절망하던 순간들에 함께 해줬던 사람들은 따로 있어요. 날 정말로 박사로 만들어준 그 사람들에게 감사하고 싶어요. 그게 진정한 ‘감사의 글’이 아닐까요?


보영이가 제일 먼저 생각나요. 정길이 형이 여자친구 이름 함부로 쓰는 거 아니랬는데. 결혼 날짜까지 잡았으니 괜찮겠죠. (정길이 형은 석사논문 감사의 글에 전 여자 친구 이름을 써버려서 지금은 전량 폐기처분 했대요.) 때로는 비타민제 같고 때로는 수술용 매스 같은 말들, 정말 고마웠어. 실험을 도와주던 모습, 논문에 오타 없나 꼼꼼히 살펴주던 너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알아? 네가 없었다면 난 절대 박사가 되지 못 했을 거야. 내 인생에 가장 소중한 여자. 보영아 사랑한다.


아직도 아쉽긴 해요. 보영이가 박사를 그만 둔 거요. 보영이가 이 말을 하던 순간이 선명히 기억나요. “이젠 그만하는 게 맞는 거 같아. 그만 할래.” 그 때 제가 뜯어말렸다면 좀 달라졌을까요? 전 보영이가 당당한 박사가 되길 바랐거든요. 여자라서 더 그랬어요. 여성으로서의 모든 어려움을 뚫어내고 훌륭한 박사로 살아가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있는 힘껏 도우려고 했어요. 나 혼자서 사회 구조는 못 바꿔주겠지만 내 여자의 버팀목과 안식처는 되어줄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말리지 않았어요. 여자라고 꼭 무엇을 이루어야 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사람은 누구나 포기하는 것도 있는 거니까. 내가 운좋게 버텨내고 있다고 해서, 다른 사람도 꼭 그래야 하는 건 아니니까. 전업주부를 한다고 해도, 다시 박사과정을 처음부터 시작한다고 해도, 언제나 내가 옆을 지켜줄 거니까요


너무 팔불출이죠? 이제 넘어갈게요. 다음은 연구실 사람들이에요. 보통 연구실 사람들을 형용사 한두 개, 길어야 한두 문장으로 언급하곤 하죠. 저는 그러고 싶지 않아요.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을 만나기가 그리 쉬운 일인가요.


하나뿐인 내 동기 준상이부터. 지금은 미국에서 취직해서 살고 있는 준상이. 역시 넌 잘 될 줄 알았어. 그렇게 머리가 좋고 성실하고 연구밖에 모르는 네가 잘 되지 못한다면 그건 세상이 너무 불공평한 걸 테니까. 때로는 질투도 느꼈어. 열등감도. 하지만 이젠 널 진심으로 응원한다. 넌 꼭 교수도 될 수 있을 거야. 그 때 나 모른 척하지마. 나도 교수 친구 좀 둬 보자.


그리고 원식이 형. 형의 그 노래, <박사를 꿈꿔도 되나요> 있잖아요. 지금도 자주 들어요. 엄청 슬픈 노랜데, 힘이 돼요. 엄청 절망적인데, 희망이 느껴져요. 왜, 절망 끄트머리에서 건져 올린 희망이 진정한 희망이라고 하잖아요. 시간은 오래 걸렸지만 끝내 박사를 따낸 형.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평범한 가장, 평범한 월급쟁이가 되었지만, 요즘 평범하게 살기가 오죽 힘든 가요? 박사과정을 버텨냈던 그 끈기라면 어디서든 잘 할 수 있을 거예요. 지난 번에 형수님이 해주신 음식 참 맛있었는데! 이제 박사 대 박사로 한 번 만나요. 형수님도 (절대 음식 때문이 아니라) 다시 한 번 뵙고 싶고!


정길이 형! 같이 졸업하게 된 거 정말 축하드려요. 포닥에 가게 되신 것도요. 이왕이면 결혼해서 가셨으면 좋았을 텐데. 형 같이 건실한 청년 아니면 대체 누구한테 딸을 보내려고 하시는지. 형에게도 어려운 결정이었겠죠. 그 분을 참 많이 좋아했으니까요. 형을 보면 연구가 그렇게 좋으신가 싶어요. 박사과정 시작할 때도 멀쩡하게 다니던 대기업을 포기하고 오신 거였잖아요. 응원할게요! 준상이처럼 잘 되시기를!


다음은 국현이. 얼마나 바쁜 건지 페이스북에서도 못 본 지가 꽤 된 것 같구나. 같이 연구실 생활할 때 재밌었는데. 의사는 언제 되는 거니? 아, 이게 우리로 치면 ‘졸업 언제 하세요?’ 같은 질문인 건가? 그럼 취소할게. 넌 거기서도 잘 하고 있으리라 믿어. 나중에 꼭 한 번 만나서 소주 한 잔 하자.


길영아. 요즘도 가끔 너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곤 해. 새 연구실 서버에서 개설한 그 홈페이지 말이야. 처음엔 두 번째 세 번째 저자로 논문에 이름을 잘도 올리더니, 요즘은 좀 뜸하더구나. 아마도 홀로서기를 시작한 거겠지? 잘 버텨봐. 넌 할 수 있을 거야. 내가 이런 말을 하다니. 웃기네. 선배들이 나한테 ‘넌 할 수 있을 거야’라고 말하면, ‘대체 무슨 근거로요?’라고 되묻고 싶었었는데. 선배가 되면 다 이런 건 가봐. 근데 감사의 말에 너에 대해 쓰려니 너의 석사논문 감사의 말이 자꾸 생각난다. ‘논문 작성에 직·간접적으로 도움을 주신 분들에 대해서만’ 감사 표시를 하라고 써 있다면서 딱 한 줄만 썼지. “지도교수님인 권대성 교수님과 연구를 많이 도와준 준상이 형에게 감사합니다.”라고. 박사논문엔 안 그럴 거지?


아직 몇 명 더 남았어요. 교수님이 학교를 옮겼을 때 바로 연구실을 옮겨간 주성이. 연구실에 네가 없으니까 웃을 일도, 술 먹을 일도 반으로 줄더라. 빈자리는 허전했지만 너의 새 자리를 응원하는 마음이 더 컸어. 조만간 프로포잘 한다는 소문이 있던데, 파이팅! 그리고 아주 잠깐뿐이지만 연구실의 일원으로 함께 했던 한길이와 연정이도.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음으로나마 응원할게!


마지막으로 아버지, 어머니. 제일 감사한 건 맞는데, 왠지 보영이를 처음에 써야 할 것 같아서 부모님은 제일 마지막에 썼어요. 제가 수없이 설명 드렸죠? 마지막 저자도 첫 번째 저자만큼이나 중요하다고. 부모님, 제가 열심히 하지도 않으면서 징징대기만 했을 때도 그저 맛있는 밥 차려주시고 용돈 쥐어주셔서 정말 감사했어요. 부모님이 참고 기다려주신 덕분에 저도 버틸 수 있었어요. 그리고 보영이와 결혼 허락해주신 것도 정말 감사드려요. 보영이가 진로 때문에 고민이 많잖아요. 보영이를 평가하지 않고 내 딸처럼 함께 고민해주시는 거, 정말 감동 받았어요. (제가 봐도, 자식 키워봐야 헛 거 맞네요. ^^) 부모님, 사랑합니다.


아참, 그렇다고 지도교수님을 정말로 빼먹을 뻔 했네요. 박사 4년차, 중요한 시기에 교수님이 학교를 옮기신다고 했을 땐 정말 원망스러웠어요. 그래도 돌이켜 보니 고마운 게 더 많네요. 불필요한 일은 최대한 안 시키고 월급은 최대한 주려고 노력하신 것, 잘 알아요. 연구하다 막힐 때도 최선을 다 해 도와주시고, 저희가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신 것들도요. 연차가 쌓이고서야 더 잘 알게 되네요. 감사합니다. 부디 저보다 좋은 학생 많이 만나시길.


기까지 쓰고 나서야 정원은 정신을 차렸다. 이대로 논문에 실을 순 없을 것이다. 다시 쓰기 시작했다.


참 많은 분들의 도움 덕분에 박사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가장 먼저, 권대성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교수님의 지도편달 덕분에……




사의 글을 쓸 때 다른 사람은 어떤 느낌일까? 정원은 어이없게도, 어이가 없었다. 자신이 어느 덧 감사의 글을 쓰고 있다는 게 너무 웃겼다. 끝나지 않을 것 같았는데, 너무도 금세 끝나버리는 것 같았다. 매순간 허망하고 절망하던 순간들이었는데, 어느 순간에 성공해 버린 것 같았다. 정말 박사가 되긴 되는 건가?


기쁠 줄 알았는데 얼떨떨하다. 행복할 줄 알았는데 행복을 뺏기는 것 같은 기분이다. 우울하기만 한 시절이라 생각했는데, 행복했나보다. 꿈을 꾸고 있었기 때문일까?


이제 또 새로운 꿈을 꾸어야겠지. 남편의 꿈. 아빠의 꿈. 승진의 꿈. 남들 다 꾸는 꿈을 새롭게 꾸어야겠지. 꿈을 이루는 건 의미가 없다. 꿈을 살아내는 것만이 의미가 있다.


새벽 세 시. 새로운 꿈이 시작됐다.


마지막으로 퀴즈. 지금 정원은 박사과정 몇 년차일까요?



지금, 노래 <박사를 꿈꿔도 되나요>를 정말로 들어보실 수 있습니다!

이공계 감성밴드 ‘다윗의 막장’이 함께 해주셨습니다!


[youtube] https://youtu.be/EpojGyg6jy8

[sound cloud] https://soundcloud.com/endofdavid/dreaming_phd


작사: 김창대

작곡: 이종혁 of 다윗의막장

노래: 김강산 of 다윗의막장

코러스: 이종혁 of 다윗의막장

음향/영상: 이종혁 of 다윗의막장

영상 디자인컨셉: 오서영(2016년 카이스트 축제 주점 ‘원래는 박사를 가려고 했었다’)



  작가의 말, 감사의 글

짜 감사의 글은 보통의 감사의 글처럼 교수님들부터 시작할게요. 가장 먼저 지도교수님인 허재혁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교수님께선 이 소설에 대해 일언반구도 없으셨죠. 페이스북 친구이니 제가 연재를 계속 하고 있다는 건 아셨을 텐데 말이에요. 회식 때 이야기가 나와도 별 반응도 보이지 않으셨어요. 감사해요. 그래서 계속 쓸 수 있었어요. 이제는 소설 쓰던 시간까지 연구에 더 집중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문수복 교수님. 제 예전 소설을 수업 시간에도 소개해주셨다고 들었어요. 복도에서 마주쳤을 때 해주셨던 칭찬도 기억해요. 감사합니다. 류석영 교수님도 생각나네요. 시즌2 (9) 역할 편을 읽었다며 이런 말씀을 하셨죠. “근데 인물들이 너무 전형적이야. 스테레오 타입이어야 재밌는데.” 당시엔 당황해서 별 말을 못 했었죠. 그런데 계속 기억에 남아요. 참 슬픈 말이었거든요. 제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안타까운 이야기를 썼는데, 전형적이라니요.


이 소설이 시작될 수 있도록 만들어주신 한겨레신문사의 오철우 기자님께도 감사드립니다. 기자님께서 먼저 ‘주제와 장르를 가리지 않는 연재’를 제안해주셨어요. 그래서 제가 이런 소설을 구상할 수 있었습니다. 소설은 취미로 쓰던 거라 등단 같은 건 엄두도 못 냈는데. 취미를 더욱 이롭게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매번 초안을 열심히 읽어주시고 좋은 피드백도 많이 주셔서 감사해요. 기자님 덕에 좋아진 이야기가 한 두 편이 아니에요. 마감을 못 지키게 됐을 때도 괜찮다고 해주셔서 고마웠어요. 덕분에 오롯이 창작의 고통만 받으며 소설을 쓸 수 있었어요.


다른 분들도 많이 도와주셨어요. 먼저 호진이! 제가 소설 쓰러 카페 다닐 때 자주 동행해준 친구에요. 구상할 때 의견도 많이 나누고 초안을 읽어주기도 했죠. 제게 페미니즘을 알려준 친구이기도 해요. 제가 여성의 마음을 좀더 섬세하게 고민해볼 수 있도록 도와줬어요.


두 번째로 종애! 시즌2의 9화부터 19화, 그리고 번외 이야기 2편(침대에서, 2G)의 이야기에 삽화를 그려주었어요. 삽화를 그린다는 게 저에겐 너무너무너무너무 어려운 일이었거든요. 손재주가 없으니 머리를 써서 어떻게든 만들어내야 했어요. 사실 연재를 처음 시작할 땐 삽화를 그려야 하는 줄 몰랐거든요. 처음에 만든 이미지 하나로 연재 끝날 때까지 써먹을 줄 알았죠. 그런데 기자님이 자꾸 매번 다른 삽화를 원하셔서...ㅠㅠ 그 어려운 과정을 대신 해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따뜻한 그림체가 이 소설을 살렸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어요. 제가 좀 까다로운 면이 있는데 잘 감당해준 것도 고맙고요.


그리고 가장 많은 도움을 준 도연이! 연재 시작한지 얼마 안 돼서 교제를 시작했고, 지금은 아내가 되어 한 집에 살고 있는 여자에요. 한 편 한 편 쓸 때마다 초안을 강제로(?) 읽고 피드백을 주었죠. 비공대인으로서 제 소설이 이해하기 쉬운지 아닌지 감수해주는 역할도 해주었어요. 이것도 2년쯤 하다 보니 비평 능력이 많이 늘어났어요. 어색한 표현, 군더더기 표현을 모두 잡아내고 새로운 제안까지 해줘요. 뿐만 아니라 종애가 삽화 그리는 걸 그만 둔 후부터는 삽화까지 그려주었어요. 시즌2 20화부터 에필로그까지, 그리고 번외이야기 1편(케이알파맨)이요. 어디서 배운 적도 없는 걸 하겠다고 나서줘서 고맙고, 잘 그려줘서 정말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잘 할게요. 도연아, 사랑해!


박지영 누나도 삽화를 한 번 그려주셨어요. 시즌1의 14화요. 그림을 그릴 능력은 안 되고, 어디서 가져오자니 저작권 문제가 있어서 어려웠는데, 그걸 가능하게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예지에게도 감사합니다. 소설이 슬슬 지루해지고 있을 때쯤 시즌2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공해주었어요. 덕분에 더 다방면으로 가슴 아픈 전개가 가능했습니다. 박은지 누나와 배성경에게도 고마워요. 두 분은 여자 공대생으로서 겪었던 느낌들, 주변 사람들이 겪었던 일들을 이야기해 주었어요. 덕분에 제가 잘 모르는 이야기들을 잘 풀어낼 수 있었죠. 노래 <박사를 꿈꿔도 되나요>를 현실화 시켜주신 이공계 감성 밴드 ‘다윗의 막장’에게도 감사드립니다. 제가 못 하는 일을 해주셔서 감사해요. 영상에 대한 디자인 컨셉을 제공해주신 오서영님(2016년 카이스트 축제 주점 ‘원래는 박사를 가려고 했었다’)께도 감사드립니다.


카이스트 컴퓨터구조 연구실 모든 선배, 후배, 동기들께도 감사드립니다.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주셔서 고마워요. 덕분에 소설에도 잘 써먹었습니다. ^^ 단, 절대 오해하지 마세요. 연구실 사람들 중에 소설 속 인물과 일대일로 연결되는 사람은 없습니다. 여러 에피소드들을 차용한 것뿐입니다.


마지막으로, 독자님들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조용히 조회수만 올려주신 독자님, 감사드립니다. 댓글 달아주신 독자님들도 정말 감사드립니다. 페이스북 페이지 ‘글 쓰는 김창대’까지 들어와주신 분들도 감사합니다. 페이스북 메시지, 메일 등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신 분들, 저를 격려해주신 분들도 감사드립니다. 생각보다 다양한 분들이 제 소설을 읽고 공감해주신다는 걸 알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시즌1 마지막회 이벤트에 참여해주신 열일곱 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읽어주시는 분들이 있고, 반응해주시는 분들이 있어서 더 열심히 쓸 수 있었어요.


이제 정말 연재가 끝나네요. 언제 끝나나 싶을 때가 많았었는데. 소설 쓰는 게 여간 힘이 들어가는 일이 아니거든요. 그래도 막상 끝내려니 아쉽긴 하네요. 하지만 이 소재로는 더 이상 무엇을 쓸 수 있을지 생각이 안 나요. ㅠㅠㅠㅠ 그래서 이 소설은 여기서 멈춥니다. 언제 어디서 어떤 글로 다시 인사드릴지는 저도 모르겠네요. 그래도 틈나는 대로 글 쓰는 김창대가 되겠습니다. (지켜보실 분들은 페이스북 페이지 ‘글 쓰는 김창대’로 찾아오셔요...^^)


그럼, 모두 박사 되세요!


김창대 카이스트 전산학 박사과정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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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07. p.m. 00.00-0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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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3월 18일, “#1. 새벽 세 시 자퇴원을 다운로드 받았다” 제목의 첫 번째 에피소드로 이야기를 시작한 ‘감창대의 소설- 박사를 꿈꿔도 되나요’가 오늘 “에필로그”를 마지막으로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시즌 1에서 스물두 가지 에피소드가, 2015년 2월에 다시 문을 연 시즌 2에서 스물네 가지 에피소드가 이어졌습니다.

오랜 연재의 마감이 아쉬워 지난 6월 7일 낮 대전 카이스트 쪽문 부근의 식당에서 몇몇 독자님과 작가 김창대 님(사진 왼쪽에서 두번째)이 한자리에 모여 연재소설의 뒷얘기를 나누는 조촐한 만남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모두 10분이 참석했습니다(먼저 자리를 뜨신 분들은 사진에서 빠졌네요 ㅠㅠ;). 대부분 카이스트 대학원생 또는 박사후연구원인 참석자들은 이날 그동안 연재된 마흔여섯 가지 에피소드 중에서 저마다 인상 깊게 공감했던 구석구석의 대목을 떠올리며 작가와 잠시 즐겨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대학원 연구생들도 독자들이었지만, 이공계 대학원생을 둔 가족도 더러 대학원 연구/실험실의 생활이 어떠한지 궁금해 독자가 되기도 한다는 얘기는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연재소설이 이공계 연구생들의 희로애락을 이해하며 공감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이날 참석한 독자들과 함께 가져봅니다.


2년 3개월가량 동안,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에서 많은 독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킨 이공계 연구생의 생생한 삶의 이야기를 들려주신 김창대 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대전=사이언스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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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대 카이스트 전산학 박사과정
20대를 공대에서 보내고 30대도 공대에서 맞이한 전산학도. 그리고 소설 쓰는 사람. 무언가를 고찰하여 글로 표현해내는 것을 좋아한다. <용감한 작가들> 회원이며 페이스북 페이지 <글 쓰는 김창대>를 운영 중이다. https://www.facebook.com/holypsychowrites
이메일 : holypsych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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