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대의 "소설- 박사를 꿈꿔도 되나요"

‘박사우울증’이라는 게 있습니다. 많은 대학원생이 흔히 겪는 우울한 증상을 뜻한다고 합니다. 우리 시대 ‘박사우울증’을 앓는 많은 이공계 대학원생의 삶을 소설 형식에 담아 독자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서로 이해하며 보듬을 수 있는 세상을 꿈꾸며, 카이스트 박사과정 김창대 님이 씁니다.

마지막이다

  마지막회 

연재소설- 박사를 꿈꿔도 되나요 시즌Ⅱ


pic_s02e24.jpg » 삽화는 이도연 님께서 그려주셨습니다.


[지난 줄거리]
권대성 교수가 학교를 옮기게 됐다. 고민 끝에 석사 1년차와 박사 1년차 학생들은 연구실을 옮긴다. 나머지는 좀 더 힘겨운 대학원 생활을 지속한다. 8월, 학회의 논문 마감이 있다. 길영, 준상 팀은 논문 제출에 성공한다. 하지만 정원, 보영팀은 실패한다. 9월, 개강을 한다. 정길은 새로 만난 애인, 예은에게 푹 빠져 결혼을 결심한다. 정원은 추석 연휴에 우연히 보영을 만나 데이트 아닌 데이트를 하게 되고, 보영의 졸업연구에도 함께 하게 된다. 10월, 길영의 논문이 붙는다. 준상은 디펜스 일정을 잡고, 정원은 프로포잘을 하라는 교수님의 제의를 받는다. 드디어 11월. 정원의 프로포잘과 준상의 디펜스가 끝났다. 그리고 교수님의 제안으로 회식을 한다.
  



#24. 마지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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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막이다. 그런 느낌이 왔다. 모두가 그랬다. 오늘은 연구실 마지막 회식이다. 교수님도 그런 느낌이 왔다. 오늘이 그 날이 될 것 같은 그런 느낌. 이유는 없다. 그냥 느낌. 그래서 회식을 하자고 했다.


늘 그렇듯 삼겹살집이다. 우리보다 먼저 마지막을 맞이했던 돼지의 살코기들. 그들이 또 다른 마지막을 맞이하기 위해 불판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다. 교수님이 말한다.


권대성(교수): 몇 달 전에 얘기 했지만,[1] 1월부터는 내가 더 이상 꿈꾸는대학교에 있지 않을 거다. 사무실도 없어질 거고.


치이익. 치이익. 삼겹살이 익는다. 지방이 녹아내린다. 뜨거운 불에 튀어 나간다.


권대성(교수): 그동안 나랑 조금씩 얘기를 해 본 사람도 있긴 하지만, 어쨌든 나는 최대한 너희들이 원하는 대로 해줄 거야.


학생들이 제일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면서도, 교수님은 말을 이었다.


권대성(교수): 지도교수를 아예 바꿀 사람은 그렇게 해도 좋고, 꿈꾸는대학교에 남아 있으면서 내 지도를 받고 싶은 사람은 그렇게 해도 좋다. 한겨레대학교까지 왔다 갔다 하는 게 좀 힘들 순 있지만.


고기 겉면에 육즙이 차오른다. 학생들도 할 말이 많다. 국현이 고기를 뒤집는다. 육즙 오른 면이 감춰진다. 학생들이 할 말이 없어진다. 오만 원짜리 지폐 색깔로 변한 면이 드러난다. 학생들이 점잖아진다.


권대성(교수): 다들 생각은 많이 해봤겠지. 그래, 석사학생들은 어쩔 거니?


육즙과 기름이 뒤섞여 흐른다. 불판 한 쪽 끝 종이컵으로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진다. 길영이 말한다.


전길영(석2): 저는 그 때 말씀드렸던 것처럼, 김동석 교수님 연구실에서 박사과정을 시작할 계획입니다.


깔끔하다. 요리책 속 문장처럼. 자신이 어느 단계에 있고 다음은 어느 단계여야 하는지 정확하게 아는 것처럼.


요리책대로 했다고 꼭 요리가 성공하는 건 아니다. 길영도 불안하다. 요즘 따라 ‘박사탕수육’에서 탕수육을 시켜먹기가 겁난다. 정말 박사를 따고 여기 기웃 저기 기웃하다 흘러 흘러 탕수육 장사에 뛰어든 사람일까봐. 회식을 하고 있는 이 삼겹살집 주인장도 박사라는 소문이 있다.


석사과정 동안 논문도 써봤다. 수업 성적도 좋다. 영어도 웬만큼 늘었다. 그렇다고 박사를 꿈꿔도 되는 걸까? 박사를 딴 후의 삶을 꿈꿔도 되는 걸까?


하지만 길영은 티 내지 않았다. 교수님 앞이라서는 아니다. 그나마 자기는 좋은 상황인 걸 알았기 때문이다.



대성(교수): 그래, 길영이는 그렇고, 보영이는?


치이이익! 녹은 지방이 불로 떨어졌다. 불길이 한 번 확 오른다. 보영이 깜짝 놀랐다. 흐익! 그 소리에 다 같이 웃는다. 정원만 빼고.


일동: 하하하하하.

김정원(박4): 보영아, 괜찮아?

전보영(석2): 아, 네. 그냥 좀 놀라서 그래요.


국현은 다시 한 번 고기를 뒤집었다. 학생들이 마저 웃었다.


그 누가 놀랐어도 이 사람들은 이렇게 웃었을 것이다. 이것은 비웃음이 아니다. 보영도 잘 알았다. 하지만 이런 관심이 너무 익숙했다. 이공계를 선택한 뒤부터 남자애들과 오빠들은 늘 보영에게 많은 관심을 가졌다. 광대가 되라고 하는 것 같았다. 자기들보다 곡률[2]이 큰 몸매와 높은 톤의 목소리와 긴 머리를 가지고 있는 탓이겠지.


이런 관심이 학교를 벗어나면 어떻게 작동하는 지, 보영은 많이 들었다.[3] ‘여자가 일을 잘 하네.’ ‘이렇게 회사에서 열심이면 집은 어쩌고?’ ‘여자라고 봐주는 거 없어.’ 이런 말을 듣고도 열심히 웃어야겠지. 삐에로처럼 웃는 화장이라도 해야 할까 보다. 아니, 그러면 화장을 예쁘게 안 했다고 뭐라 하려나.


권대성(교수): 그래, 진정 됐으면, 보영이는 어떻게 하고 싶은데?


여자가 박사가 되는 데 유리천장[4]은 없다. 적어도 보영 주변은 그렇다. 아, 물론 ‘시집은 안 가냐’는 잔소리만 견뎌낸다면. 하지만 그 후는 모르겠다. 모르고 싶다.


박사과정 진학을 안 한다면 취직일 것이다. 그래도 학력이 있으니 취직을 아예 못 하진 않을 것이다. 전공을 못 살리고 돈을 적게 받을 순 있어도. 그리고 그 후는, 역시 모르고 싶다.


이거나 저거나 똑같다면 박사가 되는 게 낫겠지. 학부 때부터 꿈꿔온 거니까. 하지만 말하긴 그렇다. 이미 입시조차 떨어진 주제에.[3]


전보영(석2):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졸업부터 하고 좀 쉬면서 생각해볼까 싶어요.


제일 조심스러운 질문이었다. 교수님도 보영이 박사과정 입시에 떨어졌다는 걸 알았다. 그게 자신 때문인 것도 알았다. 지도교수가 없으니 별 부담도 없이 떨어뜨렸겠지. 다른 계획이 있었으면 했다. 아니었구나.


삼겹살의 살코기가 굳어간다. 조금씩 마른다. 국현이 다시 고기를 뒤집었다. 타버리기 전에 먹어야 한다.


권대성(교수): 혹시 박사과정 하고 싶은 생각 있으면, 한겨레대학교로 와. 내년에 입학하는 건 일정이 이미 늦었으니, 일 년 정도는 연구원으로 있고, 그 다음 해에 시작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보영이 뚜렷한 성과를 낸 적은 없다. 미팅 때도 말을 많이 했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뭔가 일을 줄 때면 보영은 어딘가 행복해보였다. 그 때마다 교수님은 아내가 생각났다. 지금은 원치 않게 전공을 버리다시피 했다.[5] 하지만 늘 ‘그래도 박사 할 때가 참 행복했는데’라고 한다. 어차피 보영의 인생을 책임질 순 없다. 하지만 돌아보면 행복한 몇 년을 선물할 순 있지 않을까?


전보영(석2): 네, 생각해보겠습니다.


보영은 진심으로 고마웠다.



국현(박3): 교수님, 고기가 다 익었습니다.

권대성(교수): 그래, 먹자.


교수님은 자기가 먼저 고기를 집어 들었다. 입으로 넣는다. 조근 조근 씹는다. 학생들도 뒤따라 고기를 집는다. 교수님이 술병을 든다. 상추쌈을 싸던 손들이 일제히 멈춘다. 잔을 집는다. 교수님이 한 명 한 명 잔을 채워준다. 건배 제의도 없이 짠을 한다. 그리고 마신다.


권대성(교수): 그 다음이 누구지? 국현인가?

심정길(박3): 저랑 국현입니다.


박사 1년차였던 주성이가 연구실을 옮겼으니 국현과 정길이 맞다. 박사 3년차. 애매하다.


권대성(교수): 너희는 나 따라서 오면 좀 더 편할 거다. 학교에 자리를 마련해주기도 쉬울 거고. 박사 밟던 학생들이니까 행정 절차는 좀 있겠지만 입시 안 거치고 들어갈 수 있을 거야. 여기 남아 있으려면 그래도 되고.


교수님이 고기 한 점을 앞접시로 가져온다.


김국현(박3): 저… 사실…


교수님은 가져오던 상추를 그냥 앞접시에 뒀다. 그리고 국현을 바라봤다.


권대성(교수): 얘기해봐.

김국현(박3): 전 의전(의학전문대학원)을 갈까 생각 중입니다.


교수님이 상추를 집어든다. 고기를 얹는다. 파채도 얹는다. 입에 넣고 씹는다. 생각할 시간을 버는 것이리라.


다른 학생들도 말이 없었다. 조용히 놀랐다. 그런 기색이 없었는데….


상추쌈을 꾹꾹 씹던 교수님이 입을 열었다.


권대성(교수): 생각 중인 거야, 결심한 거야?

김국현(박3): 결심, 했습니다. 미리 말씀 못 드려서 죄송합니다.

권대성(교수): 지금 얘기했으면 됐다. 학교는 그만 두려고?

김국현(박3): 아직 부모님껜 말씀을 못 드려서….


지금 불편한 건 국현만이 아니다. 교수님 앞에서 박사를 그만 둔다고 말하는 것, 그리고 그걸 지켜보는 것, 모두 편치 않았다. 교수님이 가장 불편하다면 거짓말일까?


 

대성(교수): 그래, 정길이는?


교수님은 바로 다음 차례로 넘어갔다. 하지만 그냥 넘어갈 순 없었는지, 절반 남은 술잔을 마저 비웠다. 옆에 앉은 준상이 얼른 소주병을 들었다. 교수님이 잔을 잡았다. 잔이 채워졌다.


정길은 고민이 깊었다. 교수님이 학교를 옮긴다고 할 때만 해도,[1] 어떤 형태든 박사는 따려고 했다.[6] 하지만 얼마 전 예은이의 아버지를 만난 후로,[3] 생각이 많아졌다. 결혼을 하려면 돈이 필요하다. 아버지도 벌이 좋은 사위를 원하신다. 하지만 박사를 따려면 몇 년 간은 그럴 수 없다. 게다가 예은은 이미 서른이다. 스물이래도 믿을 만큼 귀엽고 청순하긴 하지만.


예은과도 이야기해 봤다. 언제 결혼하느냐보다 누구랑 결혼하느냐가 중요하다고 했다. 결혼할 사람이 행복한 게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정길은 말문이 막혔다. 정길은 예은이 행복한 게 가장 중요했기 때문이다. 무한루프[7]다. 젠장.


결국 결정은 정길이 내려야 했다. 어느 편이 예은을 더 행복하게 할 수 있을까? 정길은 추정해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실험을 해볼 수도 없고 시뮬레이션을 해볼 수도 없으니…. 그렇게 시간만 흐르고 있었다.


어쨌든 물어보셨으니 대답을 하긴 해야 한다. 그런데 말해버리면 결정을 해버리는 것 같았다. 이렇게 순식간에 결정해도 되는 걸까? 아니 근데 어떻게 결정해야 하는 거지? 기다려주지 않는 삶이 원망스러웠다.


심정길(박3): 교수님 밑에서 계속 박사를 하고 싶긴 한데요, 꿈꾸는대학교에 남아 있고 싶습니다.


정길은 타협했다. 자신의 꿈인 박사를 부여잡고, 이곳에 사는 예은을 부여잡았다. 잘한 걸까? 이 결정이 어떤 미래를 그릴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어쩌랴. 정길은 아직도 박사를 꿈꾸고, 예은과의 결혼도 꿈꾸는 걸. 그래도 되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권대성(교수): 그래? 날 따라 옮기더라도 학적은 꿈꾸는대학교로 유지하는 방법도 있긴 할 텐데.

심정길(박3): 저, 제가 여기서 여자친구가 생겨가지고요….


평소 같았으면 여자친구가 어떤 사람인지, 결혼은 언제 할 건지 묻기 바빴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묻지 않았다.



대성(교수): 정원이 넌?


꿈꾸는대학교에 남을 것인지, 한겨레대학교로 옮길 것인지, 둘 중에 선택하라는 의미다. 정원은 프로포잘도 마쳤으니까.


하지만, 사실 정원은 어제 밤에 자퇴원을 썼다.[8] 채워보니 별 거 없었다. 자퇴 사유도 길게 묻지 않았다. 한 줄만 비워져 있었다. 이렇게 썼다. “박사를 받지 못 할 것 같아서요.”


정말 자퇴하려는 건 아니었다. 영원히 학생일 것만 같던 자신이 프로포잘까지 한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너무 이상해서 그랬다. 프로포잘까지 4년이 걸렸으니, 디펜스까지 얼마나 더 걸릴지 도무지 모르겠어서 그랬다. 교수님이 학교를 떠나고, 준상이도 졸업하고, 길영이 보영이도 졸업하면, 어떻게 버텨내야 할지 상상도 안 돼서 그랬다.


불판이 비어간다. 무거운 분위기라 가만히 먹어서 그렇다. 국현이 새로운 고기를 올린다. 하얀 피부의 빨간 덩이가 소리를 낸다. 치이익. 치이익. 반항도 못 하고 익어간다.


김정원(박4): 일단은 여기 남아 있고 싶습니다.


정원은 떠오르는 대로 답해버렸다. 무의식이 잘 결정해주었을 거라 믿으며.


결국 미련 때문 같았다. 박사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린 거다. 프로포잘을 마치면서 미련이 더 깊어져버린 거다. 꿈꾸는대학교에 대한 미련도 못 버린 거다. 학부에 입학한 지 12년.[9] 눌러 앉은 지도 너무 오래됐다. 일어나려다간 다리라도 저릴 것 같다.


새로운 것을 탐구하는 박사가, 이렇게 익숙함에 집착해버려도 되는 걸까? 정원은 자신이 박사에 적합한 인물인지 다시 고민하기 시작했다.


권대성(교수): 그래. 서류 절차 같은 건 내가 문의해보마.


새로 올린 고기를 채 뒤집기도 전에, 고기가 동났다. 잠시간은 밑반찬을 안주 삼아 술이나 마셔야 한다.


권대성(교수): 그래, 준상이 포닥[10] 알아본 건 어떻게 됐어?

강준상(박4): 몇 군데는 연락이 왔는데 다들 돈이 없답니다.

권대성(교수): 그래? 지금이 좀 다 같이 포닥 자리 알아보는 시기라서 시간이 좀 걸릴 수도 있어. 안 된다고 했다고 그냥 포기하지 말고 나중에라도 연락 달라고 답해놓고 그래.

강준상(박4): 네.

권대성(교수): 넌 실적도 괜찮으니까 좀 더 기다리면 될 거야.


새로 올린 고기 겉면에 육즙이 차오른다. 국현이 고기를 뒤집는다. 육즙 오른 면이 감춰진다.


준상은 오늘만큼은 다 잊고 싶었다. 무려 디펜스를 하지 않았는가. 기쁜 날이고 싶었다. 그런데 굳이 포닥 결과를 물어봐주시다니.


박사가 되면 행복할 것 같았다. 뭔가 이뤄냈다는 자신감으로 충만할 것 같았다. 연구자 자격증을 땄으니 실컷 연구하며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막상 박사가 되어보니, 그저 다음 단계가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삶이란 그저 갈수록 가팔라지는 계단 같다.


하지만 이런 얘기를 여기서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박사 되기 힘들어서 힘들어하는 후배들 앞에서.


쨌거나 한 바퀴 훑었다. 길영이부터 준상이까지. 그리고 모두가 같은 사람을 떠올렸다. 박원식. 교수님이 학교를 옮긴다고 하자 바로 연구실을 나가서 아직 돌아오지 않은 박사 7년차 학생.


강준상(박4): 근데 교수님, 혹시 원식이 형 소식은 들으셨나요?

권대성(교수): 얼마 전에 연락이 오긴 했어. 자세한 건 말 안 하고 곧 찾아 온다고 하더라. 학기 끝나기 전까지 꼭 찾아오라고 했다. 서류 정리를 하긴 해야 하니.


교수님도 모른다는 말이다.


어차피 먹을 고기도 없겠다, 할 말도 없겠다, 말 할 기분도 안 나겠다, 모두 자연스레 텔레비전으로 시선이 향했다. 오디션 프로그램이 방영 중이었다.


김정원(박4): 어? 저거 케이팝스타[11] 아냐? 올해 꺼 시작한 거야?

김국현(박3): 지난주에 시작했어요. 형 진짜 프로포잘 열심히 준비하셨나보네요. 이런 거 모를 분이 아닌데.

김정원(박4): 교수님 앞에서 못 하는 소리가 없어.


이런 걸 안다고 뭐라고 할 교수님은 아니기에, 둘은 웃어 넘겼다.


김국현(박3): 어어어? 저, 저거 봐요! 저거 원식이 형 아니에요?


소설 같은 장면이 펼쳐졌다. 원식이 형이 케이팝스타에 나왔다.


전보영(석2): 어? 진짜네? 원식 오빠!

김국현(박3): 사장님! 텔레비전 소리 좀 키워주세요!


한 직원이 텔레비전 소리를 키웠다. 음식점엔 다행히 손님이 많지 않았다. 웅성웅성하긴 했지만, 집중하면 들을 수 있는 정도는 됐다.



레비전 속 원식은 인터뷰 중이었다.


유희열: 박원식씨, 꿈꾸는대학교 박사과정? 와, 박사에요?

양현석: 케이팝스타가 이렇게 발전하네요.


자막은 ‘박사의 케이팝스타 입성’을 화려하게 수놓았다.


박원식: 박사는 아니고요, 박사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유희열: 아니 그래도 그렇지, 박사가 연구는 언제 하고 여기 나오는 거에요?

박원식: 지금 휴학 중입니다.


아무리 박사가 아니래도, 원식이 형은 박사로 불렸다. ‘박사’가 케이팝스타에 나온 이유를 한참이나 얼버무리고 나서야 노래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박진영: 오늘 부를 노래가… 자작곡이네요?

박원식: 네.

박진영: 제목이 뭐죠?

박원식: “박사를 꿈꿔도 되나요”입니다.

유희열: 오우, 나 지금 소름 돋았어. 제목 말하는 것부터가 되게 슬퍼!

박진영: 어떤 노랜지 좀 소개해주실래요?

박원식: 제목 그대로인데요, 내가 정말 박사를 꿈꿔도 되는 건지, 그러면 행복할 건지, 그런 걸 담아봤습니다.

박진영: 그럼 한 번 들어보죠.


원식은 들고 온 기타를 차분하게 붙잡았다. 담담하게 노래를 시작했다.


난 여기까진가 봐요

시작은 원대했는데

난 정말 열심히 했어요

누군가 먼저 한 것 뿐이죠


난 정말 어떻게 할까요

누가 좀 알려주세요

하, 알려줄 수 있는 거라면

논문으론 못 쓰겠죠


박사를 꿈꿔도 되나요

앞이 안 보이는데

다시 꿈꿔도 될까요

더는 자신 없는데

 

모두가 기대가 커요

난 그저 기대고픈데

언제 졸업하냐는 그 말

하, 이젠 대답하고 싶어요


박사 되면 행복할까요

결혼하고 야근하던데

정말 열심히만 하면 되나요

수능 때도 속았는데


박사를 꿈꿔도 되나요

앞이 안 보이는데

다시 꿈꿔도 될까요

더는 자신 없는데


박사를 꿈꿔도 되나요

미련을 못 버렸어요

다시 꿈꿔도 될까요

제발 된다고 해주세요




‘감성 넘치는 자작곡’, ‘박사과정의 애환을 담은’ 등의 자막이 이어졌다. ‘그의 꿈은 이루어질 수 있을까?’를 마지막 자막으로, 복잡한 표정의 심사위원들의 얼굴이 비춰졌다.


한참을 망설이던 심사위원들이 마이크를 잡는다.


양현석: 어… 곡은 좋아요. 곡 자체는 좋고, 저런 사람도 있구나 싶은데… 뭐랄까, 이게 대중적인 감성은 아니에요. 같은 분야의 사람들은 얼마나 공감할 수 있을지 저는 판단이 잘 안 되지만, 케이팝스타에는 어울리지 않는 곡이에요. 그래서 저는 불합격 드릴게요.


이번엔 카메라가 유희열을 비췄다. 유희열이 심사할 차례인 것 같다. 유희열은 한참이나 고민을 하더니 박진영에게 순서를 넘겼다.


박진영: 저도 일단 현석이 형의 말에 동의를 해요. 곡은 좋지만 이게 얼마나 대중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지, 가사에 보면 “정말 열심히만 하면 되나요, 수능 때도 속았는데“ 이런 부분은 좋은데 나머지 부분은 좀…. 그리고 한 가지 더 지적해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 노래가 음정이 좀 불안할 때가 있어요. 물론 노래가 감성을 잘 담아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본적으로 음은 맞아야 하거든요. 그래서, 저도 불합격 드릴게요.


유희열이 한참 더 고민하는 모습이 나왔다. 자막이 깔렸다. ‘심사 차례까지 양보한 유희열, 그의 고민은?’


유희열: 저는 주변에 가방끈 긴 사람들이 좀 있거든요. 박사까지 하신 분들도 있고, 어렵게 유학 가신 분들도 있고. 그래서 이 곡이 얼마나 좋은 곡인지는 여기 세 사람 중에선 가장 잘 알 것 같아요. 그리고 대중적일지 잘 모르겠다고 하셨는데, 일단 우리 세 사람이 동의가 되잖아요. 이 노래가 좋다고. 내가 잘 아는 분야도 아니고 느껴봤던 감성도 아니지만, 그 감성이 전달이 되잖아요. 느껴지잖아요. 대중들이 꼭 자기가 해봤던 것들만 좋아하는 건 아니거든요. 이 느낌, 충분히 전달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또 박진영씨가 말했지만, 음이 불안한 건 맞는데, 이 부분은 연습만 충분히 하면 되지 않을까, 지금 노래 시작한지 얼마나 됐죠?

박원식: 휴학하고 시작해서요, 5개월쯤 됐습니다.

유희열: 그럼 지금 이게 첫 자작곡이에요?

박원식: 네.


뭔가 크게 놀란 유희열의 표정이 나왔다. ‘무슨 고민을 하는 걸까?’ 자막이 깔렸다.


유희열: 이게 5개월 만에 만든 첫 작품이라고요?

박원식: 네.


잠시 뜸을 들이던 유희열이 말했다.

 

유희열: 아, 진짜 미안해요. 나 잠깐만 생각 좀 할게요.


그리고 다시 가사가 적힌 종이를 꼼꼼하게 보는 유희열이 나왔다. ‘가사를 꼼꼼하게 다시 보는 유희열, 그의 선택은?’ 자막이 나왔다.


유희열: 남들이 겪지 못한 일에 대해서 이렇게 훌륭하게 감정 전달을 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고요, 이게 첫 작품이 그게 되었다면 정말 재능이 있는 것일 수도 있어요. 노래야 연습하면 되는 거예요. 5개월 밖에 안 됐다잖아요. 노래 시작한 지.


다시 한 번 숨을 고르는 유희열.


유희열: 그런데, 음, 박사 하세요. 제가 다시 가사를 꼼꼼히 보면서 생각해봤는데요, 원식씨는 지금 박사가 되고 싶어요. 앞이 안 보인다고, 더는 자신 없다고, 박사 돼봤자 뭐하냐고 하면서도, 원식씨는 지금 박사가 되고 싶잖아요. 그게 너무 느껴지거든요.


원식의 얼굴이 화면에 잡혔다. 표정이 너무 복잡해서 무표정처럼 보였다.


유희열: 저는 오늘 불합격 드릴 거예요. 그런데 그게 노래가 나쁘다거나 재능이 없다는 말이 아니에요. 노래 계속 하시고요, 곡도 계속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요즘 유튜브 같은 데도 많이 올리니까, 그렇게 계속 활동하셨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일단은, 박사가 꼭 되셨으면 좋겠어요. 이제 공부 열심히 하시라고, 불합격 드리는 거예요. 잘 들었습니다.



지막이다. 연구실 회식도 마지막이다. 원식의 케이팝스타도 마지막이다. 마지막에,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박사를 꿈꿔도 되냐고. 석사 때 잘 했다고 박사도 꿈꿔도 되냐고. 여자가 박사를 꿈꿔도 되냐고. 도무지 자신이 없는데, 결혼도 하고 현실도 살아내야 하는데, 박사를 꿈꿔도 되냐고. 박사가 됐다고 뭐 그리 크게 달라질 것도 없는데, 이 고생을 하면서, 박사를 꿈꿔도 되냐고.


답은 없다. 답해줄 사람도, 답해줄 교과서도 없다. 다만 우리가 있을 뿐이다. 꿈꿔도 되냐고 물으면서도, 꿈을 꾸고 있는. 꿈꿔도 되냐고 물으면서도, 꿈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꿈꿔도 되냐고 물으면서도, 꿈을 살아내고 있는.


그러니 마지막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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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박사를 꿈꿔도 되나요2> (1) 멘탈파쇄 - http://scienceon.hani.co.kr/242496

[2] 곡률: 선이 굽은 정도를 표현하는 수치. 미분, 적분 개념이 들어가는 것이라 너무 복잡하므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3] <박사를 꿈꿔도 되나요2> (22) 현실 - http://scienceon.hani.co.kr/389441

[4] 유리천장: 오늘날 법적으로는 남녀가 평등하다. 여자라서 못하는 일은 없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여자가 높은 위치에 올라가는 것이 쉽지 않다. 이를 ‘보이지 않는 벽’이라는 의미로 ‘유리천장’이라고 한다. 오늘날 높은 자리에 올라가 있는 여성분들은 유리천장을 부수고 피를 흘리신 분들이다.

[5] <박사를 꿈꿔도 되나요2> (9) 역할 - http://scienceon.hani.co.kr/286135

[6] <박사를 꿈꿔도 되나요2> (16) 참이슬 - http://scienceon.hani.co.kr/334267

[7] 무한루프(infinite loop): 프로그램의 특정 부분이 무한히 반복되는 것. 선생님이 학생에게 벌을 주려고 “내가 다시 올 때까지 계속 운동장 돌고 있어”라고 했다고 하자. 학생은 운동장을 돌고 있는데 선생님이 깜빡하고 퇴근해버린다면, 학생은 끊임없이 운동장을 돌아야 한다. 비슷한 실수를 프로그래머가 하면 무한루프가 생긴다.

  이번 이야기는 무한루프의 좀 더 복잡한 예다. 예은은 정길에게 물어야 하니 묻는데, 그 답을 해주려면 정길이 다시 예은에게 물어야 한다. 그런데 그 답을 하려면 다시 정길에게 물어야 하고 다시 정길이 예은에게 물어야 한다. 그러니 무한루프다.

  데드락(Dead-lock)으로도 비유할 수 있지만, ‘무한루프’가 더 쉬운 개념이라 이렇게 비유했다.

[8] 시즌1 제 1화에서 자퇴원을 다운로드 받아뒀었다. <박사를 꿈꿔도 되나요> (1) 새벽 세시 - http://scienceon.hani.co.kr/153375

[9] 소설 속의 ‘김정원’은 현재 31살이고, 박사 4년차입니다. 20살 때 꿈꾸는대학교 학부에 입학했고, 군복무로 인한 휴학 2년을 포함해 총 6년간 학부를 다녔습니다. 이후 석사과정을 2년 걸려 마치고, 박사과정을 4년째 하는 중입니다.

[10] 포닥: 포스트닥터(Post-Doctor)의 줄임말. 한국어로는 ‘박사 후 과정’이라고 한다. 박사 학위 취득 후에, 학교 연구실에 소속이 되어 연구하는 기간제 계약직을 가리키는 말이다. 박사 학위 취득 후에 연구를 마무리 짓기 위해 남아서 하는 경우도 있고, 다른 학교(해외를 포함한)로 가서 새로운 연구 경험을 하는 경우도 많다.

[11] 케이팝스타(k-pop star): SBS에서 매년 방영하는 가요 오디션 프로그램. 타 오디션 프로그램과 달리 기획사 차원에서 직접 나와 심사를 하고 우승자는 직접 소속사를 선택할 수 있다. 그래서 높은 순위에 올라간 참가자들이 캐스팅되거나 데뷔하는 비율도 높은 편이다. 현재 시즌 5까지 방영됐다. 보통 일요일에 방영하며, 이번 이야기의 시간적 배경은 평일이지만, (프로포잘과 디펜스가 있던 날이다) 한 번 만 봐주세요. 이야기 진행상 케이팝스타가 제일 어울리는 것 같아서 그랬어요.


  ■ 작가의 말

마지막입니다. 2년 3개월여 간의 연재가 끝났습니다. 그동안 참 많이도 썼네요. 자퇴원을 다운로드 받던 정원이가 프로포잘까지 하게 되었으니 말이죠. 읽는 분들에게 좋은 시간이 되었는지, 그게 가장 궁금합니다. 어떠셨나요?


그런데 사실 마지막이 아닙니다. 2주 뒤에 에필로그 이야기를 하나 올릴 예정이거든요. ^^


김창대 카이스트 전산학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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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대 카이스트 전산학 박사과정
20대를 공대에서 보내고 30대도 공대에서 맞이한 전산학도. 그리고 소설 쓰는 사람. 무언가를 고찰하여 글로 표현해내는 것을 좋아한다. <용감한 작가들> 회원이며 페이스북 페이지 <글 쓰는 김창대>를 운영 중이다. https://www.facebook.com/holypsychowri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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