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대의 "소설- 박사를 꿈꿔도 되나요"

‘박사우울증’이라는 게 있습니다. 많은 대학원생이 흔히 겪는 우울한 증상을 뜻한다고 합니다. 우리 시대 ‘박사우울증’을 앓는 많은 이공계 대학원생의 삶을 소설 형식에 담아 독자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서로 이해하며 보듬을 수 있는 세상을 꿈꾸며, 카이스트 박사과정 김창대 님이 씁니다.

지혜일까, 눈속임일까?

연재소설- 박사를 꿈꿔도 되나요 시즌Ⅱ


pic_s2e192.jpg » 삽화 / 박종애 님께서 그려주셨습니다.

[지난 줄거리]

권대성 교수가 학교를 옮기게 됐다. 고민 끝에 석사 1년차와 박사 1년차 학생들은 연구실을 옮긴다. 나머지는 좀 더 힘겨운 대학원 생활을 지속한다. 8월, 학회의 논문 마감이 있다. 길영, 준상 팀은 논문 제출에 성공한다. 정원도 보영과 함께 논문을 내려고 했지만, 마지막 순간에 발견된 에러 때문에 실패한다. 그 후, 길영과 보영은 박사과정에 지원하고, 전문연구요원인 국현은 4주 군사 훈련을 받으러 간다. 9월, 개강을 한다. 정길은 새로 만난 애인에게 푹 빠져 결혼을 결심한다. 추석 연휴, 우연히 만난 정원과 보영은 데이트 아닌 데이트를 한다. 그로부터 며칠 뒤….
  



#19. 샛길

00dot.jpg



‘아, 좀 쉽게 하는 방법 없나?’


정원이 아이디어를 떠올린 지 벌써 1시간이 지났다. 대단한 것은 아니다. 정원이 하고 있는 연구 결과를 5%쯤 개선시킬 가능성이 70%는 된다고 믿고 싶지만 실제로는 3%쯤 개선시킬 가능성이 30%쯤 되는 아이디어다. 구현을 시도해봐서 나쁠 건 없다. 하지만 정원이 실제로 하는 고민은 ‘구현을 어떻게 하느냐?’가 아니다. ‘구현을 어떻게 하면 더 쉽게 하느냐?’이다.


그런 고민 할 시간에 복잡한 방법을 사용해서 프로그램 한 줄이라도 먼저 쓰는 게 낫지 않느냐고? 공학도답게 생각해보자. 첫째, 복잡한 방법은, 말 그대로 복잡하다. 그것을 구체화시켜서 모두 구현해내려면 많은 시간이 걸린다. 간단한 방법은 생각해 내는데 시간이 좀 걸릴 지언정, 전체 구현 시간은 훨씬 짧아질 수 있는 것이다. 페이스북에 올릴 글은 금방 쓰지만, 한시(漢詩)를 쓰려면 옥편부터 찾아야 하지 않는가. 둘째, 나중에 프로그램을 고칠 일이 있을 때도 복잡하다. 라임으로 가득 찬 랩 가사를 개사하는 걸 생각해보라. 셋째, 구현이 복잡하면 설명도 어려워진다. 설명이 어려우면 이해하기도 어렵다. 이해하기 어려우면 논문이 안 붙는다. 심사자가 이해를 할 수 있어야 논문을 붙여줄 것 아닌가. 논문이 안 될 거면 구현은 뭐하러 하나. 피시(PC)는 안 쓰지만 스마트폰은 열심히 쓰시는 우리 부모님들을 생각해보라.


물론, 그렇다고 정원이 캔디크러시사가[1] 게임을 하는 게 잘 하고 있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결과는 일할 때 나오지만 아이디어는 놀 때 나온다’[2]는 명언도 있지 않은가. 구현 방법에 대한 아이디어가 안 떠오르고 있으니 먼저 노는 거다. 놀 거면 차라리 복잡한 방법부터 시도하는 게 낫지 않느냐고? 그러다가 피곤해져서 아무 생각도 하기 싫어지면 책임질 건가?


그래, 맞다. 하기 싫은 거다. 그저 어떻게 하면 더 편하게 할까 싶은 거다. 정말 기똥찬 아이디어로 프로그램 몇 줄만 고쳤더니 논문 쓸 정도로 성능 좋아지는 건, 모든 대학원생의 꿈이지 않은가. 아니라고? 적어도 정원은 그렇다.


하트가 다 떨어졌다. 다음 하트가 생길 때까지 20분. 정원은 다른 게임을 켤까, 하다가 문득 뒤에 앉은 보영을 봤다. 뭔가 하고 있다. 노는 건 아니다. 쪽팔렸다. 선배씩이나 되어서 연구실에서 게임이나 하고. 이제 작정하고 생각을 해봐야겠다 싶었다. 생각엔 역시 믹스커피다. 정원은 믹스커피를 타려고 일어섰다.




때, 연구실 문이 열렸다. 4주 군사훈련을 받으러 갔던 국현이 돌아왔다.


김국현(박3): 안녕들하셨습니까.

전보영(석2): 어? 오빠! 오셨어요?

김정원(박4): 어이쿠, 오늘은 편지를 쓰려고 했는데, 벌써 나와버렸네?

전보영(석2): 오빤, 국현 오빠가 4주 밖에 안 있다 나오니까 편지 안 쓸 거라면서요.

김정원(박4): 야, 그걸 얘기하면 어떡해!

김국현(박3): 아닙니다, 형님. 형님 말대로 4주 밖에 안 있었는데 무슨 편집니까.

김정원(박4): 그치? 니가 생각해도 그렇지?

김국현(박3): 그렇죠. 어유, 어떻게 이걸 2년이나 해요? 진짜, 저 현역들 존경합니다.


군대가 2년 내내 훈련병 때만큼 힘든 건 아니다. 정원은 이 이야기를 해주려다가 말았다.


김정원(박4): 그래, 다들 훈련소만 갔다 오면 날 존경하더라고.

전보영(석2): 근데 국현 오빠, 살 빠진 것 같아요.

김국현(박3): 좀 그런 것 같지? 규칙적인 생활을 해서 그런가봐.

김정원(박4): 그래, 규칙적인 생활 좋으니까 한 2년쯤 하지 그래?

김국현(박3): 존경하는 형님, 왜 이러십니까?


한바탕 웃었다.


김정원(박4): 어째, 행군 같은 건 잘 했어? 열외 안 하고?

김국현(박3): 전문연구요원들끼리 훈련 받는 거라 그런지 설렁설렁 하더라고요. 군장에도 뭘 거의 넣지를 않던데요.

김정원(박4): 속은 비워도 겉에 야삽은 달지 않아?

김국현(박3): 그쵸. 겉에 드러나는 건 달고, 속에는 박스 넣어서 모양만 내고 막.

전보영(석2): 진짜요? 텔레비전 보면 막 되게 힘들어 하고 그러던데….

김정원(박4): 그런데 나오는 건 진짜로 하는 거지.

김국현(박3): 어우, 그럼 진짜 힘들겠다. 어떻게 견디냐.

김정원(박4): 현역 가서 유격훈련만 가도, 웬만큼 다 넣어야 해. 가져가서 쓸 것들은 가져가야 되니까. 그러고 한 40킬로미터 걸으면 진짜 약간 붕 떠서 가는 느낌이야. 군장에 내가 끌려가는 느낌이랄까.

김국현(박3): 키야, 역시 현역은 다르네요.


정원은 보영의 표정을 살펴보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김정원(박4): 관물대 각 잡을 때 각종이도 썼어?

김국현(박3): 그럼요, 조교들이 친절하게 안내해주던데요.

전보영(석2): 각종이? 그게 뭐에요?

김정원(박4): 관물대에 있는 모든 물건들엔 각을 잡아야 하거든. 근데 이불 같은 건 각 잡기 힘들잖아. 그러니까 그 안에 두꺼운 종이를 넣는 거지. 딱, 각이 잡히게.

전보영(석2): 이불도 각을 잡아요?

김국현(박3): 그치. 그게 군기지.

김정원(박4): 생각해보면 그게 무슨 군기인가 싶긴 해. 깔끔한 건 중요할 수 있지만 굳이 각까지 잡아야 하는 건.


정원은 이런 말을 하는 자신이 뭔가 좀 멋있다고 생각했다. 시스템의 한 가운데를 관통한 자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니까. 하지만 보영의 표정은 별 변화가 없다. 에잇.


김국현(박3): 어쨌든 보영아. 편지 써준 거 진짜 고맙다. 엄마말고 편지 써 준 여자는 너밖에 없었어.

전보영(석2): 그냥 인터넷에 글 하나 올린 건데요, 뭘.

김국현(박3): 그래도 그게 여자한테 편지가 오는 거랑 안 오는 거랑 얼마나 다른지 아냐? 그걸로 거의 계급 나뉘는 분위기야.

전보영(석2): 그럼 이왕 쓰는 거 좀 여자친구인 척 써드릴 걸 그랬나요?

김정원(박4): 에이, 뭘 그렇게 써줘. 편지 내용 돌려보고 그러진 않잖아. 그냥 이름만 여자 이름이면 되지, 안 그래?


정원이 이 타이밍에 왜 끼어든 걸까? 어쨌든, 정원은 국현의 동의를 구했다.


김국현(박3): 그거죠. 어떤 사람들은 아는 남자애들한테 그냥 여자 이름으로 글 좀 남겨달라고 그랬대요. 있어 보이려고.

김정원(박4): 하여간, 군인들이란, 끌끌.

김국현(박3): 근데, 형은 이제 예비역 몇 년 남았어요?

김정원(박4): 나? 네 달.

김국현(박3): 대박. 4년도 아니고, 네 달이요?


이때, 보영은 갑자기 뭔가 생각났다.


전보영(석2): 아참, 국현 오빠. 전에 한길이가 찾아왔었는데요, 오빠 이번 학기 조교 배정 됐다던데요.

김국현(박3): 한길이면…… 그 때 그 신입생?


연구실에 들어온 지 몇 달 안 되어서 다시 다른 곳으로 옮겨야 했던[3] 그 남학생이다.


전보영(석2): 네, 이메일 확인이 안 돼서 찾아왔다길래 훈련소 갔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훈련소 다녀와서라도 꼭 좀 연락 달라고 하던데요.

김정원(박4): 너, 군생활만 남은 게 아니라, 조교도 남았냐?

김국현(박3): 안 하고 넘어가나 했는데, 얄쨜 없네요.

 

꿈꾸는 대학교 박사과정 학생들은 박사과정 중에 총 네 번의 조교를 해야 한다. 보통은 1~2년차 때 꽉 채워서 한다. 국현도 1~2년차 때 세 번하고 한 번만 남아 있는 상태였다.


김국현(박3): 어떤 과목이래?

전보영(석2): 뭐라더라…… 데이터베이스[4]였던 거 같아요.

김국현(박3): 헐. 한길이 연구실 어디로 옮겼죠?

김정원(박4): 김호진 교수님네 아냐? 거기 조교 빡세다던데….

김국현(박3): 아, 망했네. 내용도 한 개도 기억이 안 나는데.


학부 1~2학년들이 주로 듣는 기초과목을 제외하면[5], 조교는 보통 자신의 지도교수의 수업으로 배정된다. 조교도 나름의 전문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건 공식입장일 뿐이다. 아마 교수가 가장 부려먹기 쉬운 대상이 자신의 학생들이기 때문에 그런 건 아닐까?


어쨌거나, 수업 담당교수의 학생들로 조교를 모두 채울 수 없는 경우에는 다른 연구실 학생들로 채워야 한다. 그럴 땐 국현처럼 지도교수가 없는 거나 다름없는 학생이 적임이다.


뭐, 어쩌겠는가. 좋든 싫든 까라면 까야하는 건 군대나 사회나 똑같은데.




현은 오랜만에 자기 자리에 앉았다. 메일부터 확인했다. 잔뜩 쌓여 있다. 예상대로 한길에게도 메일이 와 있다. 그 중 가장 최근 것을 열었다. ‘목요일에 퇴소하신다면서요, 채점을 좀….’ 프로그래밍 숙제 하나를 채점해달라고 한다. 이번 주말까지. 오늘은 벌써 금요일, 당장 시작해야 한다. 숙제 내용부터 확인했다. 학기 초라 그런지 간단한 것이다. 다행이다.


근데 모니터가 약간 뿌연 것 같다. 곽휴지 한 장을 뽑아 스윽 문질렀다. 먼지가 묻어나온다. 그럴 만도 하다. 한 달 동안 가만히 놔뒀으니. 그렇다고 한 달 전에 청소를 했던 것도 아니니까. 휴지를 몇 장 더 뽑았다. 여기 저기 닦았다. 지난 한 달이 아련하다. 진짜로 다녀온 게 맞나? 상상훈련[6]만 했던 것 같다.


구석구석 닦은 뒤에야, 학생들이 제출한 숙제를 하나하나 다운로드 받기 시작했다. 간만에, 머리 좀 굴려볼까.




원은 여전히 고민 중이었다. 아니, 고민을 빙자해서 놀고 있었다. 정원의 졸업이 두 시간쯤 더 늦어졌을 때, 보영이 다가왔다.


전보영(석2): 오빠, 바쁘세요?


다행이다. 모니터엔 소스코드와 논문이 떠 있다. 정원은 핸드폰으로 놀고 있었다.


정원은 바쁘다고 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고민했다. 졸업을 위해 해야 할 일은 엄청나게 많다. 그런데 이미 박사 4년차다. 그러니 거시적인 관점에서는 엄청나게 바쁘다. 바빠야 정상이다. 하지만 당장 하고 있는 일은 없다. 그러니 안 바쁘다. 그렇다고 안 바쁘다고 말하기엔, 연구를 안 하고 있다는 걸 들키는 거니까 좀 쪽팔리고….


정원은 그냥 대답을 회피하기로 했다.


김정원(박4): 무슨 일인데?

전보영(석2): 제가 씨피유(CPU) 스케줄러 쪽을 좀 바꾸려고 하는데요, 제가 운영체제를 고쳐본 적이 없어서……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교수님께 메일을 보냈더니 오빠에게 물어보라던데요.

김정원(박4): 음, 너 디펜스 얼마나 남았지?

전보영(석2): 12월에 할 거니까, 세 달쯤이요?[7]

김정원(박4): 근데 운영체제는 한 번도 고쳐본 적이 없고?

전보영(석2): 네.

김정원(박4): 운영체제란 게, 한 줄만 고쳐도 어디서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 몰라. 지금 와서 그걸 배워서 건드리는 건 좀 위험할 것 같은데. 근데 너 구현하려는 게 뭐야?

전보영(석2): 아, 그게 그렇게 어려워요? 그럼 어떡하죠….

김정원(박4): 일단 니가 하려는 걸 말해봐.

 

보영은 자신의 연구 주제를 말했다.


김정원(박4): 음, 그런 거면 말이야, 이렇게 해보는 건 어때? 운영체제에서 보면 스케줄러에서 몇 가지 기능을 설정할 수 있도록 해주는 system call[8]을 제공하거든? 그러니까 운영체제를 수정하지 말고, 1초에 한 번씩 동작하면서 스케줄러 설정만 바꿔주는 방식으로 하면 어떨까? 그래, 이렇게 하면 되겠다.


정원은 연습장을 집어다가 그림을 그리며 설명했다. 보영이 하려고 했던 것보다 훨씬 쉬운 방법이다.


전보영(석2): 근데, 이렇게 해도 돼요? 스케줄러 연구인데 스케줄러 안 고치고도요?

김정원(박4): 아까도 말했지만 운영체제 직접 고치려면 시간과 노력이 너무 많이 들잖아. 그래서 이렇게들 많이 해. 왜, 가끔 논문보다 보면 user level scheduler[8]라고 나온 것 있지? 그게 다 이런 식으로 하는 거야.

전보영(석2): 그렇게 많이들 한다고요? 좀 편법 같은데….

김정원(박4): 논문을 위해 구현하는 건, 그냥 아이디어가 실제로 효과가 있을 거란 것만 보여주면 되는 거잖아. 그리고 이렇게 구현하면 효율은 좀 떨어져. 아주아주 약간이지만. 그런데도 불구하고 성능이 좋아지면, 니가 생각한 기법이 효과가 있다는 더 확실해지는 거지.


보영은 여전히 못 받아들이는 눈치다. 어떻게 더 잘 설명할 수 있을까?


김정원(박4): 음, 그럼, 이렇게 하자. 내가 말했듯이 운영체제 고치는 건 노력이 많이 들어. 그러니까 내가 말한 대로 먼저 구현해보자. 그렇게 해서 효과가 있는 게 입증이 되면 그 때 운영체제를 고쳐보는 거야. 그래도 괜찮을 것 같지?

전보영(석2): 네.

김정원(박4): 그리고 혹시나 운영체제까지는 못 고치더라도, 이대로만 해도 석사 졸업까지는 문제없을 테니까. 일단 이렇게 해봐.

전보영(석2): 그럴게요. 고마워요, 오빠.

김정원(박4): 뭐, 구현하다가 궁금한 거 있으면 언제든 물어봐. 나 이거 비슷한 것도 해본 적 있으니까.

전보영(석2): 아, 진짜요? 그럼 많이 물어봐야겠네요.


교수님이 정원에게 물어보라고 한 것도, 이런 말을 기대한 것 아니었을까? 정원도 예전에 보영처럼 생각했을 때가 있었다. 그 때 교수님이 그랬었다. “연구를 하는 건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것이다. 그 땅에서 집 짓고 사는 게 아니다. 하룻밤 생존할 곳을 찾으면 충분하다. 어서 다음 장소로 떠나는 게 중요하다. 그러니 너무 완벽하게 구현하려고 하지 마라. 그건 회사에서 상용화할 때 하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교수님 말을 그대로 전해줄 걸 그랬다. 하지만 보영은 이미 자리로 돌아간 뒤였다. 정원은 자신의 탐험에 대해 생각했다. 하라는 탐험은 안 하고 나침반만 쳐다보고 있는 자신을 생각했다. 역시, 그냥 복잡하게라도 구현을 해보는 게 나으려나….




국현(박3): 잡았다! 요놈들!

김정원(박4): 응? 뭐야, 뭐야.

김국현(박3): 아니, 베끼는 데도 예의가 있지. 어떻게 변수 이름 하나 안 바꾸냐.


변수 이름이란 소설로 치면 등장인물의 이름 같은 것이다.


김정원(박4): 그래? 진짜 예의가 없네. 근데 너 그거 어떻게 잡아냈어?

김국현(박3): 실행만 시켜보고 채점하려고 했는데, 그냥 예의상 학생들 코드 한 번씩 열어보긴 해야겠다 싶었거든요. 그래서 그냥 눈으로 한 번 스윽 보고 그러고 있는데, 자꾸 데자뷰 현상이 일어나는 거예요. 그래서 똑같은 내용 있는 것만 찾아주는 프로그램을 만들었거든요. 근데 진짜 여기저기서 함수 하나씩 통째로 복사해다가 갖다 붙인 놈이 있네요.


‘함수’란 소설로 치면 제 1장, 제 2장 할 때의 ‘장’ 같은 것이다.


김정원(박4): 이야, 그 귀찮은 걸 또 했네.


어느덧 보영도 곁에 왔다.


전보영(석2): 그걸 또 언제 만들었어요?

김국현(박3): 아니 그냥, 컴퓨터도 오랜만에 만지는 거고 하니까, 감도 좀 회복할 겸 간단하게 하나 만들어봤어. 진짜 진짜 간단하게. 나 진짜, 이 프로그램 가지고 걸리는 게 있을 거라곤 생각 못 했다.

전보영(석2): 근데, 꿈꾸는 대학교 학생들도 치팅 많이 해요?

김정원(박4): 많이 해. 전에 어떤 교수님이 마음먹고 치팅 잡는 프로그램 한 번 돌렸다가, 너무 많이 걸려서 난감했다고 들었어. 결국 숙제를 다시 해서 제출하는 수준으로 덮었다나.

김국현(박3): 그쵸. 근데 보통은 귀찮으니까 안 잡죠.

전보영(석2): 전, 여기 애들은 안 그럴 줄 알았는데. 똑똑한 애들이 왜….

김정원(박4): 자기들이 똑똑하다고 생각하니까 안 걸릴 거라고 생각하나보지. 뛰는 학부생 위에 나는 조교들이 있다는 걸 애들이 알아야 하는데.

전보영(석2): 근데 치팅하면 결국 자기 손해 아니에요? 자기가 배울 걸 다 못 배우는 거고, 자기가 한 것에 대해 피드백 받아볼 기회도 놓치는 건데.

김국현(박3): 어쨌거나 성적만 잘 나오면 된다고 생각하나 보지.

김정원(박4): 하도 많이들 하니까 별 죄책감도 못 느끼는 거 같아.




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정원도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자신이 찾으려는 간단한 방법은, 탐험을 빠르게 하기 위한 지혜일까, 아니면 치팅처럼 눈속임을 하기 위한 꼼수일까?


고민이 생길 때는, 캔디크러시사가가 제격이다. 정원은 중독이 아닐까 싶었다. 그래도 게임을 켰다. 어느덧 레벨1000이다. 한두 번의 도전으로 깬 레벨도 많지만, 레벨 하나 깨는데 일, 이 주씩 걸린 적도 있다. 대체 얼마나 많이 한 건지, 이젠 가늠도 안 된다. 레벨1000도 4일째 하는 것 같다. 쉽지 않다.


어어어? 깼다. 드디어 레벨1000을 깨다니. 정원은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다. 가까스로 참았다. 뿌듯했다. 대견했다. 정원은 캔디크러시사가 게임을 할 때 아이템을 쓰지 않는다. 아이템을 써서 깨면 자존심이 상하는 느낌이다. 게임 개발자에게 굴복하는 느낌이다. 정해진 목표를 정도(正道)만을 걸어 이루고 싶었다. 어쨌거나, 드디어 레벨1000이라니. 정원은 기뻤다.


하지만 이내 허무해졌다. 게임 잘해 뭐하나 싶어서. 게임하듯 연구했으면 어땠을까 싶어서. 정도(正道)만 걸어 이룬 레벨1000과 샛길만 찾고 있는 연구가 너무 대비돼서.


정원은 마음을 고쳐먹었다. 구현 방법이 복잡하든 간단하든 정도(正道)가 무엇인지 고민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고민이 생길 땐? 캔디크러시사가다. 레벨1001이다.


00phD44.jpg

    

[1] 캔디크러쉬사가: 퍼즐 게임이다. 화면에 캔디들이 가득 나오고, 색색의 캔디를 3개 이상 연결하면 캔디가 터지게 된다. 제한 횟수 (혹은 시간) 내에서 각 판의 목표(일정 이상의 점수 획득, 화면 속의 젤리들을 모두 없애기, 특정 아이템을 제일 아래까지 내려오게 만들기)를 달성하면 다음 판으로 넘어갈 수 있다. ‘애니팡2’가 이 게임을 표절한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왔을 정도로 유사하다.

[2] ‘결과는 일할 때 나오지만 아이디어는 놀 때 나온다.’ 김창대(1985~)

[3] <박사를 꿈꿔도 되나요2> #2. 나무 - http://scienceon.hani.co.kr/245679

[4] 데이터베이스(Data Base): 컴퓨터에 형식이 있는 대량의 데이터를 저장하고 관리하기 위한 소프트웨어. 아주 큰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는 엑셀이라고 생각해도 틀리지 않다. 각종 인터넷 사이트에서 회원 정보를 관리하거나 게시판에 올라가는 내용을 저장하는데 데이터베이스를 쓴다. 그러니 모든 누리꾼들이 사용하고 있다고 봐도 된다. 매우 큰 데이터를 빠르고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방법에 대해서 많이 연구되고 있다. 이를 지원하기 위한 하드웨어에 대한 연구도 활발하다.

[5] 소설 속 시간 상의 봄학기 때 정원이 프로그래밍 기초과목 조교를 했다. <박사를 꿈꿔도 되나요> #5. 시간 관리  - http://scienceon.hani.co.kr/165776

[6] 영화 <올드보이>에 나온 것처럼, 상상훈련은 생각보다 효과가 있다고 한다.

 - 정철상. “올드보이 오대수의 상상훈련을 꿈에 접목하라!“ 오마이뉴스. 2009년 7월 1일.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168078

 - 이규창, 이석민. 운동 상상 훈련이 뇌졸중 환자의 균형에 미치는 영향. 특수교육재활과학연구 제49권 제1호. 2010.3. 113-131. (19 pages)

[7] 이번 화의 시간적 배경은 9월 말입니다.

[8] 평생 모르고 살아도 되는 말입니다. 제대로 읽지 마시라고 영어 단어로 써놓았습니다.


  ■ 작가의 말

아무래도 소설 제목을 잘못 지었나 봐요. ‘박사를 꿈꿔도 되나요.’ 처음엔 우리들의 심정을 잘 대변하는 좋은 제목이라고 생각했는데…. 왜, 가수들은 노래 제목대로 간다는 속설이 있잖아요. 저도 소설 제목 때문에 이렇게 졸업이 계속 안 보이나 해서요.

‘박사! 되자! 아자! 아자!’, ‘김정원 박사 되기 프로젝트’, ‘나는야 박사가 되고야 말거야’ 이런 제목으로 지을 걸 그랬어요.


네, 연구 열심히 할게요…….


김창대 카이스트 전산학 박사과정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사이언스온의 길목]

페이스북 페이지   https://www.facebook.com/scienceon

트위터   https://twitter.com/SciON_hani

한겨레 스페셜   http://special.hani.co.kr

  • 구글
  • 카카오
  • 싸이월드 공감
  • 인쇄
  • 메일
김창대 카이스트 전산학 박사과정
20대를 공대에서 보내고 30대도 공대에서 맞이한 전산학도. 그리고 소설 쓰는 사람. 무언가를 고찰하여 글로 표현해내는 것을 좋아한다. <용감한 작가들> 회원이며 페이스북 페이지 <글 쓰는 김창대>를 운영 중이다. https://www.facebook.com/holypsychowrites
이메일 : holypsycho@gmail.com      

최신글




최근기사 목록

  • 에필로그: 새벽 세 시. 새로운 꿈이 시작됐다에필로그: 새벽 세 시. 새로운 꿈이 시작됐다

    소설- 박사를 꿈꿔도 되나요김창대 | 2016. 06. 10

      …에필로그…  연재소설- 박사를 꿈꿔도 되나요 시즌Ⅱ #에필로그. 감사의 글 깊은 밤. 정원은 박사학위논문 감사의 글을 쓰려고 키보드를 잡았다. 누구에게 감사해야 할까요? 제가 박사학위를 받았어요. 누구에게 감사해야 하는 것일까요...

  • 마지막이다마지막이다

    소설- 박사를 꿈꿔도 되나요김창대 | 2016. 05. 27

      마지막회  연재소설- 박사를 꿈꿔도 되나요 시즌Ⅱ [지난 줄거리]권대성 교수가 학교를 옮기게 됐다. 고민 끝에 석사 1년차와 박사 1년차 학생들은 연구실을 옮긴다. 나머지는 좀 더 힘겨운 대학원 생활을 지속한다. 8월, 학회의 ...

  • 한 시간 만에 끝내버리는 건 좀 너무하지 않은가한 시간 만에 끝내버리는 건 좀 너무하지 않은가

    소설- 박사를 꿈꿔도 되나요김창대 | 2016. 05. 13

    연재소설- 박사를 꿈꿔도 되나요 시즌Ⅱ  [지난 줄거리]권대성 교수가 학교를 옮기게 됐다. 고민 끝에 석사 1년차와 박사 1년차 학생들은 연구실을 옮긴다. 나머지는 좀 더 힘겨운 대학원 생활을 지속한다. 8월, 학회의 논문 마감이 있다. 길...

  • ‘현실은 남극 속 냉동창고일 뿐이다’‘현실은 남극 속 냉동창고일 뿐이다’

    소설- 박사를 꿈꿔도 되나요김창대 | 2016. 04. 15

    연재소설- 박사를 꿈꿔도 되나요 시즌Ⅱ [지난 줄거리]권대성 교수가 학교를 옮기게 됐다. 고민 끝에 석사 1년차와 박사 1년차 학생들은 연구실을 옮긴다. 나머지는 좀 더 힘겨운 대학원 생활을 지속한다. 8월, 학회의 논문 마감이 있다. 길영, ...

  • 소설: ‘케이-알파맨’소설: ‘케이-알파맨’

    소설- 박사를 꿈꿔도 되나요김창대 | 2016. 03. 18

    김창대의 단편소설알파고 쇼크 또는 열풍이 한국사회에 휩쓸고 지나갔습니다. 아니 여전히 많은 담론과 화제를 낳고 있습니다. 사이언스온의 연재소설 작가이자 카이스트 전산학과 박사과정 대학원생인 김창대 님이 '박사를 꿈꿔도 되나요 2'의 연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