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운지의 "과학/기술, 소비자, 시민"

유전자변형, 줄기세포, 나노기술…. 어제의 기초과학, 기초연구 성과가 오늘날 소비자의 선택을 기다린다. 연구실에서 시장으로 나온, 또는 나오려는 과학/기술에는 소비자의 부푼 기대와 함께 까칠한 걱정도 인다. 김훈기 교수와 과학에 친숙한 시민 박문영, 이인옥 님이 글을 쓴다.

에너지: 대량소비형 좇기 앞서 안전·절약형 개발에 관심을

시민의 눈으로 보는 과학/기술   유난히 더웠던 올 여름을 지나며


현대 과학기술의 제품과 지식을 소비하는 생활인으로서 시민의 눈으로 일상생활의 관심 영역에 들어오는 오늘날의 과학과 기술을 이야기한다.

00energy3.jpg » 시험성적서가 위조된 불량 케이블을 사용한 사실이 드러난 울산 울주군 신고리원전 4호기. 완공 직전인 신고리원전 4호기는 원래 2014년 안에 가동을 시작할 계획이었으나 가동 일정이 늦춰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한겨레 자료사진(2013년 8월)


여름은 습도 높은 날이 많고 유난히 더웠다. 하지만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전력수급 상황이 좋아지는 날에 에어컨을 틀어야지 마음먹고 에어컨은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비장하기까지 한 그 다짐은 생선 조기를 매달아 놓고 쳐다만 보며 밥을 먹었다던 ‘자린고비’도 가히 울고 갈 만했다. 일본 후쿠시마에서 방사능 오염수가 계속 유출되고 있다는 소식과 우리나라 원자력발전소에 불량 부품이 납품되었다는 소식은 더운 여름을 이래저래 더 덥게 만들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전기 에너지의 중요함을 절실히 느끼게 했다. 온 국민이 더위를 참아낸 덕분인지, 산업체 공장들이 가동시간을 잘 조절한 덕택인지, 올 여름에 전력 중단 사태는 다행히 피해갔다.


언제까지라도 계속 더울 것만 같았고 마음마저 부글대게 만들던 더위가 이제 물러가고 더위로 고통스러웠던 기억도 선선한 바람이 슬며시 지워가는 가을이 왔지만, 겨울철 전력수급이 다시 걱정이다.



경제성·필요성보다 먼저 생각할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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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 발전을 생각하며 핵연료 재처리,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 그리고 사고 가능성과 영원히 버려질 수도 있는 오염된 땅까지 요모조모 분석하고 고민한 지 오랜 시간이 지났건만 아직도 원자력 발전에 대한 사회적 의견은 만족할 만하게 조율되지 못하고 있다. 아마도 당면한 필요성과 이익이 우선시 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원자력 발전을 반대하면 나쁜 짓이라도 하는 것 같아 마음이 매우 불편했다. 원전 수출, 국가경쟁력, 공공의 이익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더욱 혼란스럽고 머리까지 아팠다. 어떤 의견이든 확실하게 큰 소리로 외치는 사람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어디서 저런 확신이 나오는지 신기하기까지 했다.


설계 수명이 지난 노후 원전의 연장 가동[1], 한미 원자력 협정에 의한 사용후연료 재처리[2], 원자력 발전의 원가 산정[3], 핵연료 재처리의 경제성 문제[4]…. 이 말을 들으면 이 말이 맞는 것 같고 저 말을 들으면 저 말이 맞는 것 같고, 어느 이야기가 더 타당한지 옳게 판단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랬기에 원전 가동에 대한 찬반을 물으면 찬성도, 반대도 못하는 어중간한 입장이었는데, 최근에 의견을 정할 수 있었고 그 결정을 하는 데에는 내게 두 가지 사건이 큰 역할을 했다.

[1] 2007년과 2008년 독일의 노후 원전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노후 원전의 안전성 문제가 주목받았다. 일본에서 발생한 2004년 원전 사고도 노후 원전의 운용은 위험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리1호기가 재가동이 승인되어 2017년까지 연장 운영하기로 결정되었고, 월성1호기도 2012년 11월로 설계수명 30년을 다하여 연장 가동에 대한 논란이 있다.
[2] 1974년 체결된 한미 원자력 협정으로 우리나라는 사용후연료 재처리 문제를 제한받고 있다. 협정서는 ‘사용후 핵연료의 형질을 변경하거나 다른 용도로 쓸 때에는 미국의 동의를 받는다’라고 규정하고 있지만, 미국은 지금까지 어떠한 재처리도 허용한 사례가 없다. 2008년 기준 국내 원전에서 발생한 사용후 핵연료가 1만100여 톤에 달하고 있으며, 저장 용량이 2016년에 포화 상태에 이를 것으로 예상한다.
[3] 원자력 발전으로 전기를 생산하는 생산 원가가 매우 싸다고 알려졌으나, 원가 계산에 포함되지 못한 여러 가지 비용이 있기 때문에 원자력 발전 생산 원가가 결코 싼 것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4]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의 경제성에 대한 논란은 세계적으로 계속됐고, 재처리 시설 가동을 중지한 나라도 있다. 핵연료 재처리는 1%의 플루토늄과 핵분열이 되지 않은 93%의 우라늄을 재활용할 수 있다는 주장이 있지만, 93%의 우라늄은 불순물이 섞여 있어서 경제성이 없으며 1%의 플루토늄을 위한 재처리 시설에 약 480조 원으로 추산되는 비용(<신동아>,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 2010, 05. 25)을 투입하는 것 또한 경제성이 없다는 주장도 있다. 현재 기술로는 사용후연료를 재처리해 사용하면 직접 땅에 묻는 방식보다 훨씬 비용이 많이 든다고 한다(<한겨레>, “일 원전사고 노후화·부실관리 탓”, 2004. 08. 10).

첫 번째는 후쿠시마의 원전 사고였다. 사고 후 대처 상황을 지켜보면서 인류는 현재 원전을 100% 안전하게 관리할 능력이 없고, 사고가 나면 방사능에 맞서 대처할 능력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아니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믿고 싶지 않았고 인정하지 못했다고 해야 맞는 표현일 것 같다. 방호복을 입고도 접근하기 힘든 후쿠시마 원전 사고 현장을 방송을 통해 보는 순간, 인간은 감당할 수 없는 일을 저질렀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고 후, 사고 원전에서 흘러나오는 방사능 물질은 바닷물과 대기에 희석되기 때문에 위험하지 않다고 방송에 출연한 전문가들은 이야기했다. 시간은 속절없이 흘렀고 잔뜩 긴장했던 마음도 다시 강 건너 불구경 하는 마음으로 변해가고 있던 차에, 두 번째 요인인 충격적인 책을 만나게 되었다. 한 사진가가 엮어낸 <후쿠시마에 남겨진 동물들>이라는 책이었는데, 렌즈를 응시하는 사진 속 동물들의 눈망울을 눈물 없이는 마주 볼 수 없었다. 우리 인간이 다른 생물과 지구에 얼마나 커다란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지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고,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음에 휩싸여 한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감당할 능력만큼 일을 추진하는 것은, ‘현명함’이라 부르기도 어색할 정도로 공중의 사업을 할 때에 기본 중의 기본에 해당하는 행동이다. 필요성이나 유용성, 그리고 확률론적 위험 가능성을 가지고 원자력 발전을 논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생각이 든다. 기술을 안전하게 다룰 능력도 없이 확률과 요행을 믿고 사용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인간이 책임지지 못할 일을 벌여서 생태계의 다른 생명에 아무렇지 않게 피해를 줄 수 있는 일인지, 우리 인간에게 그런 결정을 할 자격이 있는지 따져보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안전 미확인 신기술보다 절약형 기술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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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energy1.jpg » 에너지 소비효율 등급 표시에는 이산화탄소 배출량과 에너지 비용이 표시된다. 소비자들에게는 에너지절약형 제품과 친환경 제품을 선택하도록 도움을 주고, 제조·수입업자들이 생산이나 수입단계부터 원천적으로 에너지 절약형 제품을 생산·판매하도록 유도하는 효과가 있다. 사진/ 이인옥 에너지 문제를 절약으로 모두 해결할 수는 없지만, 절약은 기본이라는 생각이 든다. 조금 무능하고 우울한 대처방법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잠시 들었지만, 국제에너지기구(International Energy Agency)도 세계 각국 정부가 수행할 가장 중요하고도 핵심적인 에너지 절약 정책으로 기기 부문의 에너지 효율 향상을 권고한 바 있다. 이렇게 에너지 효율을 관리하고, 절약하는 것이 세계 각국 정부와 우리 정부의 에너지 정책 중 하나이지만, 절약도 그리 간단하고 쉬운 일은 아니다. 절약을 위해서는 여러 방면의 기술 개발과 사용자의 노력이 필요하다.


스위치가 있는 멀티탭을 사용하거나 사용하지 않는 가전제품의 플러그를 뽑아 대기전력 낭비를 줄이는 노력은 이제 보편화했다. 전기온열 침구나 상점 간판에는 타이머를 달아 낭비되는 전기를 줄이는 것도 한 방법이다. 수돗물 생산에는 전기가 사용되기 때문에 수돗물을 절약하는 것도 곧 전기를 절약하는 길이다.


1992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에너지 소비효율 등급 표시는 그 뒤 여러 차례 등급 기준이 강화되었다. 그러므로 잦은 고장이 생기는 노후 가전제품은 수리비와 전기요금을 참작하면 에너지 소비효율 등급이 높은 신제품으로 바꾸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기도 하다.


00energy2.jpg » 인류가 발견한 두 번째 불이라 불리는 백열전구. 1887년 우리나라에 전등이 점등된 지 127년 만에 퇴출된다. 사진/ 이인옥 오래도록 사용했던 친숙한 백열전구가 2014년이면 생산과 수입이 금지된다. 소비하는 전기 에너지의 95%를 열로 낭비하여 에너지 효율이 낮아서 퇴출되는 것이다. 하지만 백열전구 대신 새롭게 주목받는 엘이디(LED) 전구는 아직 가격이나 성능이 만족할 만한 수준이 아니다. 최근 LED 전구가 만 원 이하 제품도 나오면서 구매를 생각해볼 만큼 가격이 낮아졌지만, 저렴하게 만들려고 그랬는지 감전의 위험이 있는 등 아직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한다. LED 전구뿐 아니라 에너지 절약을 위한 다각적 연구가 아쉽다.


올 여름에 온 국민이 불편함을 참고 마음을 모아 블랙아웃 사태를 피한 일을 생각하면 아낄 수 있을 데까지 아끼고, 체계적이고 기술적인 절약 방법부터 연구하는 것이 초라하거나 현명치 못한 일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오히려 절약이야말로 지구와 인류를 위해 안전하고도 매우 현명한 처사일 것이다. 오늘 밤에도 수많은 지하주차장의 전등은 밤새 안전을 위해 켜져 있을 것이다. 갈 길이 멀다.


과학기술은 기대되는 큰 이익을 잉태하고 있지만, 인류와 지구의 미래를 좌우할 만큼 커다란 영향력도 내포하고 있다. 신기술의 신속한 사용보다는 완벽한 안전이 먼저 확보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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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옥/ 시민, 참사이 회원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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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옥 시민, 과학콘텐츠창작모임 참사이(CharmSci) 회원
과학·기술 소비시대에 소비자로 산다는 것은 기술의 원리를 이해하는 것보다도 더 어렵다. 아는 것이 병이라지만 ‘대충 적당히(?)’라도 알아야 생존할 수 있겠다 싶다. 평화롭고 기쁜 소통이 있는 아름다운 사회를 꿈꾸는 뚱딴지 여인.
이메일 : jet383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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