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운지의 "과학/기술, 소비자, 시민"

유전자변형, 줄기세포, 나노기술…. 어제의 기초과학, 기초연구 성과가 오늘날 소비자의 선택을 기다린다. 연구실에서 시장으로 나온, 또는 나오려는 과학/기술에는 소비자의 부푼 기대와 함께 까칠한 걱정도 인다. 김훈기 교수와 과학에 친숙한 시민 박문영, 이인옥 님이 글을 쓴다.

디스테아릴…? 폴리에틸렌…? 제품성분 확인 너무 어럽네

시민의 눈으로 보는 과학/기술


현대 과학기술의 제품과 지식을 소비하는 생활인으로서 시민의 눈으로 일상생활의 관심 영역에 들어오는 오늘날의 과학과 기술을 이야기한다.

00component2.jpg » 화장품은 전성분 표시제의 대상이지만 표시된 성분의 자극성, 유해성을 확인하는 정보는 소비자가 확인하기 쉽지 않다. 사진은 구글에서 '화장품' 낱말로 검색할 때 나타나는 이미지 검색결과의 일부. 출처/ 구글  


‘해야지… 해야지…’ 하면서 미루어 두었던 일을 이번에는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하겠다고 결심하고 컴퓨터를 켰습니다. 결심했던 일은 화장품, 물비누 등의 뒷면에 표시된 전체 성분 중에 혹시 유해한 것이 있는지 확인하는 일입니다. 제가 사용하는 것은 몰라도 아이가 사용하는 바디로션, 바디샴푸 성분은 꼭 확인해야 하겠다고 계속 생각만 하고 있다가 드디어 날을 잡은 겁니다.



표시된 성분 확인, 시간·노력 필요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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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의약품안전처 화장품 창구에 접속하고 해당 검색창에 바디로션 성분에 적혀 있는 ‘디스테아릴디모늄클라이드’를 넣습니다. “음, 이게 계면활성제 성분이었군.” 다시 ‘이소프로필팔미테이트’를 넣습니다. 굴절률, 비중 등의 자세한 정보가 뜨지만 어떤 용도로 넣었는지, 유해 가능성이 있는지 알고 싶은 저에게는 쓸모없는 정보이므로 지나칩니다. 식약처 화장품 창구 홈페이지에서 화장품 원료 기준을 검색하면 혹시라도 해로울 수 있는 물질일 경우 표시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좀처럼 찾을 수 없었습니다.


물질의 유해성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다시 같은 검색어를 넣습니다. 관련된 다양한 글을 읽으며 피부유연화제로 쓰며 밝혀진 독성은 없지만, 피부에 자극을 줄 수 있기 때문에 민감성 피부에는 염증이 생길 수 있다는(comedogenic) 정보를 얻습니다. 시계를 봅니다. 겨우 2개의 성분을 검색했을 뿐인데 벌써 30분 이상 지나갔습니다. 목도 아프고 허리도 아픕니다.


아이의 바디로션에는 10개의 성분이 적혀 있었습니다. 정제수, 글리세린, 페트롤라툼(바셀린), 귀리가루 정도가 제가 분류한 해가 되지 않는 성분이고 나머지 6가지 성분은 합성계면활성제, 유연제, 거품안정제, 방부제로 아이에게 쓰지 않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은 성분들입니다. 아이의 바디샴푸에는 12가지 성분이 적혀 있었습니다.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은 정제수, 향료 정도이고, 복잡하고 어려운 이름들은 합성계면활성제 4종, 점성증가제, 거품안정제, 방부제 3종, 산도조절제라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미디어를 통해 세제, 샴푸나 바디샤워, 화장품 등 다양한 생활용품 속에 피부에 해가 될 수 있는 화학물질들이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아무런 근거 없이 '화장품 전성분 표시제'가 시행된 지 꽤 시간이 흘렀으니 소비자가 꺼리는 성분이 많이 없어졌을 것이고 특히 아이가 쓰는 용품에는 그런 성분이 전혀 없을 거란 기대를 하고 있었습니다. 헛된 기대였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니 기분이 참 묘합니다. 제가 기대한 것은 그야말로 순진한 아줌마의 헛된 바람이었나 봅니다.



세제·치약 등 생활용품도 전성분 표시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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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깐깐하게 골라야 피해자가 되지 않겠구나!’ 생각하며 가슴을 쓸어내립니다. 몇 가지 물질 이름은 꼭 기억하고, 기억하기 힘든 긴 이름은 메모장에 적습니다. 계면활성제 용도로 쓰이는 소듐라우레스설페이트, 소듐라우릴설페이트, 폴리에틸렌글라이콜(PEG, 피이지), 방부제로 쓰이는 파라벤 계열 물질(메틸파라벤, 에틸파라벤 등등), 합성착색료 정도가 최소 목록입니다. 적는 동안 전성분 표시제는 소비자의 가장 기본 권리인 선택의 권리를 지켜주는 당연히 행해져야 하는 제도임을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주부들이 더운 여름에도 고무장갑을 잘 벗지 않습니다. 물에 불어 약해진 피부에 자극을 줄 수 있거나 독성이 있는 물질이 조금만 반응해도 손가락이 가렵고 껍질이 벗겨지는 주부습진 증상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분명 해가 될 수 있는 화학물질이 들어가 있는 것이 분명한데 세제의 어떤 성분 때문인지 알 수 없습니다. 전성분 표시제의 대상이 아닌 까닭입니다.


입 안에 잔류 성분이 있을 것이 분명한 하루 세 번 이상 사용하는 치약의 경우도 전성분 표시제가 아닙니다. 화장품류 외에도 피부에 닿는 것, 호흡기를 통해 스며들 수 있는 모든 생활용품들은 전성분 표시제의 대상이 되어야 소비자의 선택 권리가 제대로 지켜질 수 있고, 화학물질의 독성 피해도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 


전성분 표시제의 목표는 표시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유해화학물질 사용을 줄여 지구의 생명을 지키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소비자는 소비자의 역할에 최선을 다해야 전성분 표시제가 빛을 볼 수 있습니다. 소비자가 해야 할 일은 자신이 쓰는 물건에 유해화학물질이 들어 있는지 꼭 확인하고 유해화학물질이 들어간 물건은 절대 쓰지 않는 것입니다. 바쁘다는 이유로 저처럼 ‘어디선가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누군가가 있으니 굳이 나까지 신경 쓰지 않아도 언젠가 좋아지겠지’ 하고 손 놓고 있는 사람이 많을수록 전성분 표시제의 의미는 퇴색되겠지요.


화학물질 과민증, 아토피, 내분비계 교란으로 인한 각종 질환, 이유를 알 수 없는 면역체계 약화 등, 전에 없던 질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남의 이야기가 아닌 지금, 전성분을 확인하고, 유해화학물질 함유 물품을 쓰지 않는 소비자의 행동은 환경 관련 질병을 줄이고, 지구환경을 살리는 데 작으나마 도움을 줄 것입니다. 저는 이번 확인 작업으로 소비자의 행동으로 조금이나마 바뀔 수 있는 세상에 대한 가능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고, 그에 따른 소비자의 의무와 권리 인식의 중요성도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소비자한테 중요한 제품정보 투명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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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기업으로부터 원료물질 사용 현황을 파악할 수 있는 수준은 전체의 20%에 불과하다고 합니다.1) 그러니 시중에서 파는 어떤 제품에 발암성 물질, 생식독성 물질, 환경호르몬, 발달독성 물질이 포함되어 있다고 말 할 수 있다면 그래도 양호한 상태입니다. 걱정이 되는 것은 독성이 있는지 없는지조차 파악되지 않은 수많은 화학물질과 그 화학물질을 포함한 제품들입니다.


2015년 1월 1일부터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이 시행되며 이 법률이 시행되면 제조하거나 수입하기 전에 유해성, 위해성을 평가하여 허가, 제한, 금지 물질로 지정한다고 합니다. 화평법으로 모든 유해화학물질이 차단될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지만, 그렇더라도 국민의 건강을 지키는 기본적인 제도들이 왜 이렇게 늦게 시행될 수밖에 없는지 답답한 면이 있습니다.


화학물질의 유해성이 밝혀질수록 많은 소비자들은 신속하고 쾌적한 편리를 버리고, 기다림과 수고로움, 번거로움을 무릅쓰고 자신이 쓸 것, 먹을 것을 직접 만들고 재배합니다. 저 역시 이번 조사 경험을 통해 비누 정도는 집에서 만들어 쓰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시중에서 파는 물비누의 향긋한 향과 풍부한 거품을 포기하고라도 말입니다.


번거롭긴 하지만 성분표 확인을 통한 제품 선택은 소비자의 건강과 지구의 환경에 해가 가지 않는 착한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의 생존을 도울 수 있습니다. 소비자가 있어야 기업이 있는 까닭입니다. 행정기관 또한 소비자가 제대로 선택할 수 있도록 전성분 표시의 대상 제품을 확대함은 물론 소비자가 진짜 알고 싶은 정보, 즉 성분의 유해 가능성 정보를 간단한 코드 형식으로나마 표시해주어야 국민 건강을 지켜주는 파수꾼의 소임을 다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박문영 시민, '참사이' 회원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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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문영 시민, 과학콘텐츠창작모임 참사이(CharmSci) 회원
아줌마에게 과학은 참 멀고 어렵다. 그러나 과학이 좋다. 과학의 주체에 과학자가 아닌 다양한 일반인이 들어갈 때 사람냄새 나는 과학으로 완성될 것이라 믿기에 용기를 내본다.
이메일 : vipmyjw@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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