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운지의 "과학/기술, 소비자, 시민"

유전자변형, 줄기세포, 나노기술…. 어제의 기초과학, 기초연구 성과가 오늘날 소비자의 선택을 기다린다. 연구실에서 시장으로 나온, 또는 나오려는 과학/기술에는 소비자의 부푼 기대와 함께 까칠한 걱정도 인다. 김훈기 교수와 과학에 친숙한 시민 박문영, 이인옥 님이 글을 쓴다.

오락실, 피시통신…386의 추억, 그리고 2013년

시민의 눈으로 보는 과학/기술


현대 과학기술의 제품과 지식을 소비하는 생활인으로서 시민의 눈으로 일상생활의 관심 영역에 들어오는 오늘날의 과학과 기술을 이야기한다.

00consumer3.jpg » 피시통신 천리안에 로그인 하기 이전의 화면 갈무리(왼쪽), 1980년대 초 오락실을 점령했던 게임 '갤러그'. 한겨레 자료사진

1960년대 태어나 80년대 대학 학번인 일명 386세대1). 이제는 대체로 40대인 386세대는 마치 우리사회의 실험 대상인 것처럼 격변하는 교육제도와 정보통신기술(ICT)의 변천을 겪어 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다른 세대도 함께 살아낸 세월이겠지만 386세대는 특히 개인용 컴퓨터 분야의 발전을 목격하고 소비하며 성장을 함께했다.


비디오게임을 하러 오락실에 다녔고, 브라운관 티브이와 연결한 8비트 컴퓨터로 ‘패크맨’을 즐겼다. 대학 시절, 하드디스크가 없는 16비트 컴퓨터에 5.25인치 플로피디스크를 여러 번 바꿔 넣으며 컴파일을 했고 ‘엠에스 도스(MS DOS)’가 아닌 ‘아이비엠 피시 도스(IBM PC DOS)’  상표를 목격했다. 옥소리 사운드카드, 한글 도깨비 카드, 8088 프로세서, 8087 코프로세서의 산증인이기도 하다. 모뎀으로 피시통신을 즐겼고, 웹에디터를 이용해 직접 홈페이지를 꾸몄다. 닌텐도나 플레이스테이션 같은 게임기 사용으로 치면 실컷 즐겼다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기술 발전에 발맞춰서 살기 위해 익히고 또 익히며 살았다고 보면 386세대는 참으로 고단하고도 대단한 인생들이기도 하다.



두려움도 잊는 유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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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뿐 아니라 정보통신기술에서도 우리는 이미 다양한 기술의 출현과 발전을 적지 않게 체험했다. 그런데도 서기 2013년인 지금도 과학기술이라는 말을 들으면 지나간 추억이 떠오르기보다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Richard Strauss)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도도히 흐르는 고전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2)의 분위기처럼, 미지의 세계 또는 미래라는 단어가 떠오르거나 불확실에 대한 두려움이 일면 느껴지는 것을 부정하기 어렵다.


플렉시블 디스플레이, 투명한 모니터, 입는 컴퓨터가 실용화될 날이 코앞으로 다가와 설레고 기대되지만, 한편으론 그것들이 몰고 올 역작용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지 걱정도 된다. 전자기기를 통한 학습과 로봇 장난감, 로봇 선생님 등을 어린 나이에 접하면 인간 정서에 어떤 작용이 일어나는가와 같은 범주의 문제는 소비자로서 특히 아이를 가진 부모로서 보통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다. 브이디티(VDT) 증후군, 디지털 치매, 채팅 중독, 스마트폰 중독, 사이버 자폐증, 광과민성 발작, 개인정보 유출, 스마트폰 해킹….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면서 새로 등장한 각종 부작용의 이름은 디지털 기기를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내적 갈등까지 불러온다.


그렇지만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거나 귀에 이어폰을 꽂고 있는 많은 사람을 볼 수 있다. 스마트폰이 아닌 휴대전화 사용은 시대에 뒤처진 것처럼 느껴지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인지 스마트폰이 일하는 데 방해가 될 것 같은 사람이나 단순 전화 기능만 필요한 사람도 스마트폰을 사는 일이 많다. 스마트 기기는 개인 의지로 선택할 수 있는 수단 중 하나이긴 하지만, 어떤 집단의 구성원에겐 필수 요소이기도 하고 또 어떤 집단에서는 조선시대 여인의 가채처럼 으스대는 데 필요한 것 같다. 어찌 되었든 주위를 둘러보면 스마트폰 일색이다.


정보통신기술은 납 중독이 정체불명의 불치병이던 시절에 납을 마구 사용하던 것과는 부작용의 성격이 좀 다르지만, 금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달콤한 말로 꾀는 아랍의 연금술사 같은 마력을 지녔다. 무궁무진한 긍정적 작용도 있지만, 잘못 사용하면 ‘납 : 납중독’처럼 1:1이 아닌 그 이상의 수없는 부작용을 몰고 올 수도 있다. 또 물리·기계적인 발전 없이 독립적으로 정보통신기술이 발전할 수 없기에 반도체 생산 공정에서 불산 같은 유독물질을 사용해야 하는 것처럼 복잡한 형태로 사회와 경제 문제까지 얽히고설켜 있어서 정보통신의 발전을 마냥 환영하기엔 왠지 주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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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과학기술은 좋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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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pccom.jpg » 피시통신 이용자가 하이텔 게시판에 의견을 올리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1997년)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은 랜슬롯 호그벤(Lancelot Hogben)의 의견에 동조하며 그의 저서 <과학의 미래>에 이렇게 썼다. “과학은 본질적으로 체계적인 지식 추구 이외에 다른 어떤 것도 아니다. 그리고 지식은 나쁜 사람들이 그것을 어떻게 악용하든지 간에 본질적으로 좋은 것이다.” (버트런드 러셀, <과학의 미래(The Scientific Outlook)>, 열린책들, 2011, 195쪽)


우리가 정보통신기술 발전 때문에 생겨났다고 느끼는 많은 문제점이 정말 기술의 탓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개인정보 유출, 정보 편중, 인터넷 중독이나 망중립성이 어쩌고는 정보통신기술의 탓이 아니다. 인터넷만 연결하면 댓글을 남겨야 하는 등, 하지 않아도 될 일을 함으로써 기술이 발전한 만큼 여유로워야 할 시간이 오히려 모자라는 것도 기술의 탓은 아니다.


정보통신기술 덕택으로 시각장애인은 안방에서 도서관 홈페이지에 접속해 오디오북을 대출해 들을 수 있고, 화상면접이나 화상회의는 평범한 일이 되었다. 지역 인터넷 방송을 만들어 지역 주민이 직접 참여하며 지자체 행정에 적극 관여하기도 한다. 전자결재나 인터넷뱅킹의 소홀한 관리로 누군가는 손해를 입었다고 하지만, 많은 사람은 시간 절약, 영수증 생략 같은 여러 혜택을 누리고 있다. 기술의 혜택에 고마움을 느낄 뿐만 아니라 수많은 기능을 담은 고농축(?) 스마트기기를 사용하는 현 세대가 한없이 대견스럽기도 하다.


돌이켜보면 회색 바탕에 연두색 글씨 모니터나 구멍 뽕뽕 뚫린 프린터 용지는 아련한 향수가 되었다. ‘패크맨’도 지나갔고, ‘옥소리 노래방’도 지나갔다. 용돈만 받으면 오락실로 쪼르르 뛰어가서 하던 ‘겔러그’ 비디오 게임도 ‘atdt 014**’ 명령어도 추억이 되었다. 월말고사 준비한다고 수련장 붙들고 화장실 가고 싶은 것도 참으면서 ‘육백만 불의 사나이’를 보다가 ‘테레비(TV) 속으로 아예 들어가라. 들어가!’ 하는 어머니의 외침을 들었던, 티브이 중독의 어린 시절도 지나간 것처럼…….


기를 쓰고 익혔던 것이나, 없으면 못 살 것 같던 것들, 그렇게도 대단한 유행이었던 것들이 세월이 흐르고 새로운 관심거리가 나타나면 자연스럽게 멀어진다. 그런 것을 보면 대단한 열풍은 제품이나 기술 자체가 원인이 아니라 인간 습성과 정신이 만들어낸 놀이판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당면한 문제는 심각하지만 과도한 열풍이나 부작용 원인은 기술 탓이 아닌 면이 많고, 올바른 사용법을 깨닫고 익히기엔 시간이 필요하다. 개선하려는 노력은 필요 없었다거나, 누군가가 혹은 역사적으로 어느 한 기간이 희생되어도 좋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시대의 조류를 막기 어렵고 그것이 그러하다면(然), 그리고 시간이 흐른다면(歷), 여러 시행착오와 노력까지 포함된 그 시간이 자연스러운 역사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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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용과 악용 사이, 소비자 책임도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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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피시통신에 접속하던 일이나 최근에 3차원 온라인게임을 즐기는 일, 인터넷을 사용하는 일이 개개인의 추억 갈피에 단아한 모습으로 있게 되느냐 마느냐 하는 것은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소비자의 선택이 크게 좌우한다고 보인다. 정보통신 기술 분야도 국가가 경제적 측면을 고려해 정책적 영향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하지만 개인이나 소수집단의 의지와 결정이 큰 작용을 못 하는 원자력발전 같은 기술과는 특성을 달리하기 때문에 선용에 관한 소비자 책임이 더욱 크다.


현재 부작용이 분명히 있고 악용되는 사례도 끝없이 나오고 있다. 미성년자처럼 소비자의 탓이라고만 할 수 없는 예도 있고, 소비자가 모든 책임을 지기엔 억울하고 버거운 면도 있다. 그렇더라도 낙관적인 이유는 ‘인터넷 불법광고 자정운동’ 같은 여러 갈래의 자정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소비자는 반복되는 논의와 경험, 노력을 통해 정보통신기술의 올바른 사용법을 스스로 만들며 익혀나가게 될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당연히 그래야만 한다.


꼬맹이 시절에 큰 사촌오빠가 나눠준 동전 몇 개로 오락실 문 옆의 노란 기계오리를 타며, 비디오 게임기를 열광적으로 뿅뿅 두들기는 오빠를 지켜보던 기억은 야트막한 담장에 흐드러지게 핀 유월의 덩굴장미 같은 추억으로 남아 있다. 이제는 기성세대가 된, 386세대 꼬맹이의 기억 속에…. 정보통신 기술은 사람과 사람이 어우러지며 행복해지는 데 일조하도록 발전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금까지 여러 노력이 있었고 다수의 선한(?) 소비자가 있다고 믿기에 앞으로 그렇게 되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부작용을 조금이라도 더 줄이기 위해서는 서로 간의 관심과 노력이 꼭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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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옥 시민, 과학콘텐츠창작모임 참사이(CharmSci) 회원
과학·기술 소비시대에 소비자로 산다는 것은 기술의 원리를 이해하는 것보다도 더 어렵다. 아는 것이 병이라지만 ‘대충 적당히(?)’라도 알아야 생존할 수 있겠다 싶다. 평화롭고 기쁜 소통이 있는 아름다운 사회를 꿈꾸는 뚱딴지 여인.
이메일 : jet383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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