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운지의 "과학/기술, 소비자, 시민"

유전자변형, 줄기세포, 나노기술…. 어제의 기초과학, 기초연구 성과가 오늘날 소비자의 선택을 기다린다. 연구실에서 시장으로 나온, 또는 나오려는 과학/기술에는 소비자의 부푼 기대와 함께 까칠한 걱정도 인다. 김훈기 교수와 과학에 친숙한 시민 박문영, 이인옥 님이 글을 쓴다.

'적정한 기술, 적정한 소비’를 생각하며

시민의 눈으로 보는 과학/기술


현대 과학기술의 제품과 지식을 소비하는 생활인으로서 시민의 눈으로 일상생활의 관심 영역에 들어오는 오늘날의 과학과 기술을 이야기한다.

00yangdong1.jpg » 자연과 잘 어우러져 편안해 보이는 양동마을 모습. 출처/ 이인옥

 

연과 잘 어우러진 마을의 모습은 그 마을이 세계 어느 곳에 어떤 모습으로 있든지 보는 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아마도 적절한 재료, 적절한 위치, 적절한 움직임을 가졌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인류의 전통적인 주거 시설은 예외 없이 그 지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를 사용했고, 음식 재료는 그 지역에서 얻기 쉬운 것을 취했으며, 삶의 행태와 기후에 적합한 의복을 갖췄다. 애석하게도 산업화와 함께 이 공식은 무너졌고 인류는 냉·난방을 이용해 기후까지 거스르고 살아간다. 산간마을에 살아도 길을 뚫어 탈것을 타고, 섬에 살아도 다리를 놓아 탈것을 탄다. 이런 것을 편리함이라고 이름 지어도 되는지 의문이지만 이 알량한 편리함조차 지구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허락되진 못했다. 재래식 화덕에 불을 지필 수밖에 없거나 변변한 난방 시설을 갖출 수도 깨끗한 식수를 공급받기도 어려운 사람들이 훨씬 많다. 멀리 아프리카 오지까지 들먹이지 않아도 대한민국의 빈곤층 또한 다르지 않다.

 

 

부와 빈곤, 그리고 적정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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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에서 과학기술의 편리함을 누리려면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조건이 전기에너지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2010년 ‘세계 에너지 전망’ 보고서에 의하면 전력공급을 받지 못하는 인구가 세계인구의 20%이고, 전체의 40%는 장작 같은 재래식 연료를 사용해서 조리하고 있다고 한다. 전기에너지를 만난 사람 중에서도 단순 어둠을 밝히는 것 밖의 다른 편리함은 제공받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러한 양극화 문제 때문에 간디(Mahatma Gandhi)와 에른스트 슈마허(E. F. Schumacher) 이후 제3세계의 빈곤 문제 해결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적정(중간)기술’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지구촌의 빈곤층은 에너지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로 수혜의 사각지대에 있기에 적정기술은 에너지 생산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이 때문에 환경 위기에 대한 관심이 점차 높아지면서 지구의 자원과 생태계를 파괴하지 않는 대안기술로도 적정기술은 주목받았다.

 

적정기술은 유류파동 때에도 요즘처럼 지대한 관심을 받았지만, 냉전 시대에 이르러서는 시들해지는 수모를 겪는 등 줏대도 없이 시대적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는 모습이다. 지구 온난화 문제와 맞물려서 다행인지 온실가스 배출권이라는 이권이 생겨났고, ‘저탄소 배출 화덕’이나 ‘저탄소 난방용품’ 개발·공급에 기업들이 사업적 관심을 두면서 적정기술 개발에 다시 가속도가 붙었다.

☞ 잠깐

온실가스 배출권: 2005년 2월 16일 공식 발효된 교토의정서에 의해 의무 이행 대상국은 지구 온난화를 유도하는 온실가스(이산화탄소(CO₂), 메탄(CH₄), 아산화질소(N₂O), 불화탄소(PFC), 수소화 불화탄소(HFC), 불화유황(SF6))의 배출량을 감축해야 한다. 당사국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정책과 조치를 취해야 하며, 온실가스 감축 이행 때 신축성을 허용하기 위하여 배출권 거래(Emission Trading), 공동 이행(Joint Implementation), 청정개발 체제(Clean Development Mechanism) 등의 제도를 허용해 도입하고 있다.

최근 일자리 창출, 나눔과 배려, 사회적 경제 활성화 등의 목표를 세운 적정기술은 ‘소외된 90%를 위한 기술’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새롭게 옷을 갈아입는 느낌이다. <빈곤으로부터의 탈출(Out of Poverty)>의 저자인 폴 폴락(Paul Polak)은 빈곤 계층을 자선의 대상이 아닌 고객으로 보고 기업가 정신으로 적정기술에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폴락의 주장으로 적정기술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지금까지 기업은 구매 능력이 큰 소수 소비자를 주요 고객으로 생각하고 부유층을 위한 제품 디자인을 했지만, 이제 기업은 풍족하지 못한 이들의 필요를 위해 제품을 디자인하게 되었다. 이 점은 반갑고도 주목할 만하다. 

 

 

부자연스런 우리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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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이사할 때, 욕심내서 사들였으나 실상은 별 필요가 없어서 숨어 있게 되었던 물건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보고 깊은 반성을 한 적이 있었다. 계절에 맞는 옷 몇 벌과 생필품이면 될 것을…. 결국은 잡동사니로 전락할 물건을 탐내서 끌어 모은 내가 멍청하게 느껴졌다. 남들이 많이 선호하는 주거 시설에서 남들이 많이 쓰는 가재도구를 가지고 남들과 비슷하게 살면서 그보다는 조금 더 나아 보이려고 노력하는 나의 삶의 행태가 유행만을 따라가고 너무 편리함만 추구하는 것은 아닌지, 타당하고 적절한 삶의 모습은 가졌는지에 대해 생각해봤다.

 

유행이나 주류를 따라가고 화려함만 좇는 우리의 집단적이고 비정상적인 행태가 우리 삶에 적절하고도 유익함을 주는 기술이 도태되고 사장되게 만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바쁜 현대인이라지만 먹을거리까지 공산품에 의지하는 획일적인 삶의 행태를 이어간다면, 이런 문화와 기술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이 시스템에 어떤 이유로든 포함되기 어려운 소외층은 계속 생겨날 수밖에 없다. 소외당하는 사람들뿐 아니라 나 자신과 미래의 우리를 위해서 올바른 생활방식과 소비패턴부터 가져야 하지 않을까?

 
적정기술이 있다면 소비자로서는 적정소비가 있을 것이다. 편리함과 화려함만 쫓지 않고, 적절하게 삶을 조절하는 사회철학이 생기고 이 철학이 도시농업, 근거리 먹거리(local food) 소비운동처럼 행동화되어 시민문화로 자리 잡을 때 적정기술은 자연적으로 경쟁력을 가지게 될 거라는 생각이 든다. 시장에는 특색 있으면서도 양심적인 수제 먹거리 상점들이 번창하여, 대량 생산되는 공산품 먹거리의 식품첨가물 허용치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적 시스템을 만드는 적정소비가 적정기술 개발의 기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적정기술, 우리 주변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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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적정기술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대학과 과학기술 전문가, 엔지오(NGO) 단체들까지 적정기술 개발 활동에 활발하게 참여하고 있다. 부자들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던 기술이 인류가 서로 격려하는 데 한 몫 하고, 지구촌의 균형 있는 발전에 쓰인다니 경건함마저 느껴진다. 괜스레 혼자 감상에 젖어 자연과 근사하게 어우러진 현대의 도시 풍경을 상상하니 흐뭇하다.

 

적정기술을 연소득 3000달러 미만인 빈곤층(세계 약 40억 명)을 위한 기술로 치부하거나 재난 구호를 위한 기술로 규정하기보다는, 인류의 미래를 행복하고 건강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당연히 개발해야 하는 기술로 보았으면 좋겠다. 소수만을 위한 기술이 아니라 ‘적절하고 적정한 수준으로 우리의 삶을 조절하는 철학’이 담긴 ‘인류의 아름답고 자연스러운 삶’을 만들 기술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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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옥 시민, 과학콘텐츠창작모임 참사이(CharmSci) 회원
과학·기술 소비시대에 소비자로 산다는 것은 기술의 원리를 이해하는 것보다도 더 어렵다. 아는 것이 병이라지만 ‘대충 적당히(?)’라도 알아야 생존할 수 있겠다 싶다. 평화롭고 기쁜 소통이 있는 아름다운 사회를 꿈꾸는 뚱딴지 여인.
이메일 : jet383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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