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과학 글쓰기의 비결은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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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c²,

일렉트릭 유니버스,

시크릿 하우스
데이비드 보더니스 지음, 김민희 등 옮김 | 생각의 나무


...이런 말은 보더니스가 의식적이며 조직적으로 책의 구성에 대해 고민했으며, 독자의 관심에 자신의 이야기를 투영하여 이야기를 짰음을 보여준다. 그는 이런 이야기 구성에 맞춰 많은 전문가들과 대화를 나누고 방대한 자료를 수집, 조사하고 정리했다. 베스트셀러가 우연이나 개인의 말솜씨 재능만으로 이뤄진 건 아니라는 얘기다



“이런 생각이 들자, 어떻게 써야 할지 분명해졌다”




데이비드 보더니스는 한국 독자들한테도 꽤 알려진 영국의 대중과학 저술가다. 그 이름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과학기술 분야 도서의 베스트셀러가 됐던 그의 책 <시크릿 하우스>(김명남 옮김)나 <E=mc²>(김민희 옮김), <일렉트릭 유니버스>(김명남 옮김)는 독자들의 귀에 익숙할 법하다. 그런데 사실 엄밀하게 따져, 이 책들이 다루는 소재는 모두 유별난 게 아니다. 다른 책에 없는 놀라운 통찰이나 첨단의 지식, 새로운 사실을 제공하는 책은 아니라는 얘기다. 이 책들에 등장하는 과학의 개념·이론 그리고 사건·인물에 대한 이야기의 단편들은 정보검색 시대에 맘만 먹으면 인터넷에서 어느 정도 만족스럽게 얻을 수 있으리라.

 

<E=mc²>는 과학 책에서 너무도 자주 다뤄지는 아인슈타인과 그의 상대성이론 공식 E=mc²을 다뤘다. <일렉트릭 유니버스>는 전기와 전자에 관한 과학기술의 발전을 다룬 역사서다. <시크릿 하우스>는 우리 일상생활에 숨은 과학 이야기를 쉽게 풀어썼다. 아인슈타인, 상대성이론, 전기, 전자, 생활과학 따위의 소재는 이미 무수히 많은 과학책들의 단골 메뉴가 되지 않았던가. 그래서 우리는 보더니스의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면, 그것은 소재(이야깃거리)가 아니라 다른 무엇의 독창성이 독자의 마음에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밖에 없겠다. 우리의 궁금증은 여기에서 출발한다. 식상할 법한 이야깃거리들이 어떻게 보더니스의 머리와 손을 통해 흥미진진한 과학 이야기로 변신할 수 있었을까?

 

보더니스의 ‘비결’에서 한 수 배우려면, 먼저 이 책 독자들의 독후감을 들어보자. 인터넷서점 알라딘에 오른 수십 건의 독자 평들이 도움을 줄 수 있다. 대부분 상당한 수준의 독서이력을 지닌 알라딘의 서평자들의 평은 대체로 귀담아 들을 만하다. 독자들이 내리는 평은 “과학을 읽는 재미를 알게 해주었다” “과학은 어렵다는 고정관념을 깨주었다” “과학자의 삶, 과학의 역사를 읽으면서 저절로 과학의 개념을 이해하게 됐다”는 식의 의견으로 모아진다. 독자들의 평은 한마디로 “재미있는 과학 이야기”라는 말로 요약된다. 여기에서 ‘재미’란 “이해하기 쉽다”(평이함), “과학의 지식을 제공한다”(유용함)라는 말로도 들린다. 그러면 여러 독자들이 증언하는 ‘재미’라는 경험의 원천은 무엇일까?



가장 난해한, 가장 중요한 공식을 풀어쓰기



한국 독자들한테 보더니스를 처음 널리 알린 <E=mc²>에 대해, 독자들은 무엇보다 저 유명한 물리공식 E=mc²의 개념, 역사, 의미를 지은이의 과학사 이야기를 통해 ‘살아 있는 실체’로 바라보게 되었다는 점을 높게 평했다. 사실, 이 공식에 담긴 중요한 의미는 이 책 전체의 주제이며 그 난해함은 이 책이 쉽게 풀어쓰기에 도전하고자 하는 대상이다. 1905년에 27살의 스위스 특허국 공무원 시절의 아인슈타인이 오랜 탐구와 사색을 거쳐 얻은 이 공식은 이후에 세계사를 흔들어놓을 만큼 중대한 것이었으며, 19세기 과학과 다른 길을 걷기 시작한 20세기 과학의 확실한 상징이었다. 그래서 보더니스가 아인슈타인의 전기가 아니라, 또 E=mc2의 개념을 풀어쓰는 과학개론서가 아니라, 이 공식을 둘러싼 현실의 사건과 인물의 역사를 E=mc²의 전기라는 형식으로 재구성하겠다는 발상의 전환을 했을 때에, 이 책은 이미 흥미진진한 기획력을 갖추게 된 것은 아닐까?

 

L.jpg 물리공식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자, 이제는 이 공식의 탄생과 성장 과정에 출현했던 걸출한 과학자들이 조연으로서 등장한다. ‘물질은 곧 에너지’라는 통찰이 담긴 E=mc²(에너지 E는 질량 m에 빛의 속도 c의 제곱을 곱한 값과 같다)이라는 공식이 탄생하기까지 에너지, 질량, 광속 개념을 처음엔 어렴풋하게, 나중엔 점점 또렷하게 체계화했던 과학사 인물들은 마치 뉴턴이 말했듯이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 선’ 위대한 사람들의 진보적 삶으로 나타난다. 그 핵심적 인물인 아인슈타인은 물론이고, 뉴턴, 패러데이, 맥스웰, 볼테르, 하이젠베르크, 찬드라세카르, 마이트너 같은 과학자들이 시대를 넘어 서로 하나의 과학정신으로 이어진다. E=mc²을 향해 과학정신의 계보를 잇는 긴 여정이자 장대한 행진이다.

 

물리공식은 교과서의 죽은 기호가 아니라 인간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실제적 힘으로 등장한다. 아주 작은 물질도 순수한 에너지로 바뀔 수 있다면 거대한 발전소의 폭발을 능가하는 엄청난 질량의 에너지 위력을 보여줄 것이라는 게 이 공식이 예측하는 바이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이제 E=mc² 공식을 둘러싼 제2차 세계대전 말기 독일과 미국의 치열한 핵폭탄 개발 경쟁으로 장면을 옮긴다. 핵폭탄에 필요한 독일의 중수 생산 공장을 파괴하려는 연합군의 비밀작전, 1940년대 초 미국에서 핵폭탄 개발계획인 '맨해튼 프로젝트가 비밀리에 전개되는 과정 따위가 긴박하게 진행된다. 또한 E=mc² 공식은 가공할 전쟁무기로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는 비운을 겪었지만, 이후에 은하계 너머 우주공간을 탐구하는 많은 과학자들에게 우주론 연구의 디딤돌 구실을 했다.

 

이처럼 20세기 과학의 위대한 발견으로 꼽히는 물리공식 하나에 얽힌 현대 과학의 역사, 물리학의 역사를 이 책은 ‘스토리 갖춘 이야기’처럼 들려준다. 그래서 독자들이 “과학사와 그 속에 등장하는 인물, 그리고 과학적인 사실을 유기적으로 연결한 한 편의 소설” “한편의 다큐멘터리 필름이나 재미난 영화 같은 글” 같은 평을 하는 것은, E=mc2을 실제 사건과 인물의 역사, 그리고 개념 해설을 통해 입체적으로 바라보는 재미를 얻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건, 인간의 역사로 이해하는 전기



<E=mc2>에서 아인슈타인의 물리공식이 주인공이었다면, <일렉트릭 유니버스>에서는 전기, 전자가 주인공이다. 이 책은 지난 두 세기 동안에 일어난 전기, 전자의 발견과 전기기술의 발명에 대한 역사이면서 그 역사를 이끈 여러 창조적 과학기술자들의 인물사이기도 하다. 전기, 전하, 전자, 전파에 대한 과학의 이해가 진전되면서 우주의 시공간에 언제 어디에나 존재하는 것으로 밝혀진 전하, 전자의 정체를 장대한 시공간의 배경에서 설명하는 것도 또한 이 책에서 주요한 축을 이룬다.

 

00electric전기는 18세기에도 기이한 인체 실험들이 널리 행해지면서 과학의 흥미로운 탐구 대상이 되었지만, 그 실체가 좀더 분명하게 포착된 때는 18세기 말이었다. 그리고는 19, 20세기를 거치며 전기의 과학기술은 다양한 분야에서 그야말로 숨가쁘게 발전하여 현대 문명와 문화의 근간이 되었다. 보더니스는 ‘전보의 탄생’에서 시작해 전화, 전구, 전동기의 발명과 전자의 발견, 그리고 전파의 발견과 무선통신과 레이더의 등장에 이어, 컴퓨터의 발명과 뇌의 전기신호 연구까지 아울러 전기의 역사에 집어넣어 이야기를 풀어낸다. 볼타, 모스, 벨, 에디슨, 톰슨, 패러데이, 헤르츠, 와트, 튜링, 뢰비 같은 발견자와 발명가들은 전기의 역사를 이끈 주요 인물로서 다뤄지는데, 그들은 지은이가 풀어내는 이야기 안에서 전기 역사의 ‘계보’를 면면이 이어온 과학자들이 된다. 이들은 과학적 호기심과 불굴의 탐구정신을 지닌 이들이며, 발견과 발명의 순간에 관한 일화를 지니며, 기이한 성품과 뒷이야기들을 지닌 이들로 그려진다. 이런 점에서 전형적인 과학자 이야기다. 그렇지만 보더니스의 능수능란한 이야기 솜씨는 “재밌다. ‘전기’라는 영화를 [본 느낌이며], 이른바 ‘구라빨’이 센 사람에게 줄거리를 들은 느낌이다” “지루한 설명문이 아니라 구전동화를 들려주는 듯한 접근”이라는 독자 평을 얻었다.

 

보더니스의 이야기 구조를 다시 생각하면, 그것은 사실 독자들의 마음에 근원적인 감동을 불러일으키게 미리 기획된 것 같은 느낌을 갖게 한다. 그가 말했듯이 그 이야기의 줄거리는 “인간이 전기의 대단한 힘을 깨달아간 과정”이며, “인간이 어떻게 전기를 그 숨어 있던 영역에서 끄집어냈으며, 불완전하기 짝이 없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전기가 부여해준 놀라운 힘을 사용해 어떤 일을 이루어왔는지에 관한 이야기”다. 다시 말하면 그 줄거리는 ‘불완전한 인간’과 ‘그런 인간의 끊임없는 탐구적 과학정신’, 그리고 ‘그리하여 마침내 드러나는 자연의 숨겨진 진리’라는 뼈대를 지니는데, 그것은 곧 장대한 인류 문명의 서사를 연상시킬만한 것이다. 여기에 더해, 보더니스의 이야기는, 지금이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전기 현상이 불과 2세기 전만 해도 매우 낯설고 신비한 현상이었음을 보여준다. 그의 이야기에서 우리가 이미 다 안다고 여겼던 전기, 전자 현상은 매우 낯선 존재가 되었다가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점차 다시 익숙한 존재가 되는데, 독자는 이런 이야기에서 실감나는 역사 여행을 경험한다. 또한 수수께끼를 하나씩 풀며 진보하는 과학의 모습을 보게 된다. 그러므로 그의 이야기는 ‘과학의 장대한 승리의 역사’를 듣고자 하는 독자의 기대를 만족시킨다.

 

 

현존감의 창출 “내가 미시세계에 있다”



보더니스는 자연 현상의 세부 묘사에서 특별한 재능을 지닌 저술가다. 맨눈에는 보이지 않는 현상을 마치 우리 눈앞에서 펼쳐지는 것처럼 그려낸다. <E=mc2>에서 1945년 일본 히로시마의 9km 상공에서 B-29 전폭기가 투하한 핵폭탄이 43초간 허공을 나는 동안에, 핵폭탄 내부에서 벌어진 우라늄 양성자와 중성자의 반응과정에 대한 묘사는 이 책의 하이라이트 가운데 하나로 꼽힐 만하다. 또한 <일렉트릭 유니버스>에서 뇌 세포들 사이에 신경전달물질이 오가는 과정을 망망대해를 건너는 잠수함의 항해로 비유해 설명하는 대목도 또한 독자에게 강한 인상을 남길만하다. 그렇지만 이런 세부 묘사의 절정은 아무래도 <시크릿 하우스>다. 이 책의 기획 의도는 이미 우리 곁에서 벌어지지만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미시적 세계의 관찰과 묘사이기 때문이다.

 

00secret이 책의 이야기는 미시 세계를 관찰하는 전자현미경 급의 눈과 음파탐지기 급의 귀를 지닌 초인간적 비인칭 화자가 일상의 현상들을 세세히 설명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아침에 잠에서 깬 남자가 침대에서 일어나 바닥에 발을 내딛는 바로 그 순간에 일어나는 순간적 진동이 집 전체에 퍼지는 미세한 변화는 이런 초인간적 화자만이 관찰할 수 있다. 그의 눈에는 진드기의 세계, 치약의 성분, 부엌의 터줏대감 세균들, 종이 섬유의 틈새에 낀 신문 잉크들, 우유 안에서 벌어지는 세균전쟁들이 다 훤히 보인다. 시야의 흐릿함은 없고 선명하다. 관찰은 계속 이어진다. 잔디밭에서 종족 보전을 위해 벌어지는 아메바들의 대탈출 장관, 간식거리인 감자 칩에 구멍이 성성하게 난 미시 구조, 그리고 감자 칩을 씹을 때 나는 기분 좋은 소리의 비밀에 대한 설명은 읽는 이의 호기심을 사로잡는다. 전자레인지가 작동하는 순간, 면도날에 털이 잘리는 순간, 진공청소기가 먼지와 진드기를 빨아들이는 순간에 일어나는 장면들은 정지 화면 또는 느린 화면으로 세세히 관찰된다. 독자는 바로 관찰자인 화자의 경험적 증언을 듣는데, 그것은 너무도 생생해 독자는 곧바로 화자의 눈과 귀를 지닌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미시 세계에 대한 보더니스의 설명은 생물학, 물리학, 화학, 천문학, 기상학, 전자공학, 식품위생학 등등 다양한 지식을 동원한다. 그야말로 잡식성 과학 지식을 통해 우리의 상식세계를 남김없이 과학적으로 설명하겠다는 ‘설명의 힘’은, 미시적 관찰과 더불어 이 책의 중요한 장점이다. “과학으로 보는 마이크로의 세계” “마이크로 비행선을 타고 떠나는 내집 여행” “우리 주변의 미시 세계, 거시 세계, 시간을 초월한 세계를 들여다보기”라는 독자 평은 이 책의 이런 매력에 대한 반응일 것이다.

 

 

“재미”의 핵심은? “독자의 만족과 감동”?



이 글을 시작하며 품은 궁금증을 다시 정리해보자. 흔한 소재에다 식상할 법한 이야깃거리들은 보더니스의 손을 거쳐 어떻게 흥미로운 과학 이야기로 변신할 수 있었을까? 나는 독자평의 핵심인 “재미있다”는 말의 의미에 그 답이 있다고 생각한다. 독자들이 보더니스의 책에서 분명하게 어떤 재미를 찾았다면, 우리는 그 재미란 게 어떤 것인지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우리 경험을 돌이켜보면 ‘재미있다’는 여러 의미를 지닌 말임을 알 수 있다. 우리는 흔히 포복절도하게 만드는 개그쇼를 보고 “정말 웃긴 게 재미있다”고 말한다. 듣는 이의 마음과 소통하며 화제를 이끄는 달변가에 대해서는 “그 사람 만나봐, 재미있는 사람이야”라고 추천한다. 이뿐 만이 아니다. 깊은 사색에 잠기게 하는 <노자>를 읽고나서도 “그 책 아주 재미있더라” 하고 권한다. 게다가 감동적으로 슬프게 하거나 분노를 자아내는 영화를 보고나서도 “그 영화 재미있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말하는 재미는 단지 ‘희’ ‘락’만이 아니라 ‘희’ ‘노’ ‘애’ ‘락’ 모두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해도 된다.

 

다시 그렇다면, 우리말의 ‘재미’는 가볍고 유쾌한 마음을 자아내는(funny) 것만 아니라 가볍거나 무겁거나, 즐겁거나 슬프거나 상관없이 상대에게 어떤 깊은 느낌을 줄만큼 관심을 사로잡는(interesting) 것으로 이해할 때에 훨씬 더 정확한 의미를 지니지 않을까? 그래서 책을 ‘재미있게’ 만드는 일은, 너무도 당연한 말이겠지만, 글을 쓰는 독자의 실제적인 깊은 관심이 무엇인지, 정말 알고 싶고 느끼고 싶은 바는 무엇인지, 그리고 그 관심을 책의 머리에서 마지막까지 자연스럽게 이끌고 갈 구성의 방식은 무엇인지를 먼저 살피는 일이 궁극적 목표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은 대중과학서의 미덕인 적절한 과장과 단순화, 비유적 설명과 쉽게 풀어쓰기, 독자의 시각적 상상 만들기 같은 문체적 기교만으로 얻어지는 게 아니라 글쓰는 이가 독자의 관심을 진지하게 배려하여 서로 일치시키려는 노력의 산물로 얻어질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만족’하고 ‘감동’할 때에 독자는 “재미있다”고 말할 것이다.

 

 

사전기획과 조사연구, 그리고 이야기



보더니스는 이런 점에서 장점을 지닌다. 그의 글은 부담 없는 이야기이며 가볍고 유쾌한 글솜씨를 자랑한다. 그렇지만 이보다 더 근원적인 장점은 그가 지식과 정보의 조직이 중요하다는 점을 뚜렷하게 자각하고 있으며 그것을 실천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러 과학적 사실을 꼼꼼하게 수집하여 버무려 하나의 이야기를 구성하는 데에는 의식적 기획의 노력이 중요한 구실을 했다. 그가 책의 서문이나 후기에서 했던 다음과 같은 말을 되새겨보자.

 

“평범한 어느 하루, 우리가 흥겹게 지내거나 끙끙대며 하루를 나는 동안 우리를 둘러싼 환경을 묘사해보는 건 어떨까. 유일한 문제는 어떤 식의 화자를 설정할 것이냐 였다. . . . 나는 모든 것을 자애롭게 굽어보는 비인칭의 어떤 화자를 설정하기로 했다. . . . 일단 방향을 정하고 나자 조사하고 원고를 작성하는 일만 남았다.”(<시크릿 하우스>)

“나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대부분의 상대성이론을 다룬 책들은 제대로 씌어 있지 않아서가 아니라 오히려 너무 많은 것을 설명하려다 실패했다. 그래서 나는 상대성 이론의 모든 것을 담은 또 하나의 해설서를 쓰거나, (비록 흥미로운 주제이기는 하지만) 그동안 지겹도록 많이 씌어진 아인슈타인의 전기를 또 하나 보태는 대신, 단지 E=mc2에 관해서만 써보기로 했다. 이런 생각이 들자, 어떻게 써야 할지가 분명해졌다.”(<E=mc2>)

“눈을 지그시 감고 그녀가 원고를 큰 소리로 읽어주는 것을 듣고 있노라니, 이 책의 분위기가 어떻게 잡힐 것인지, 그제야 나는 알게 되었다. 이 세상은 오래되었다. 그러나 전기는 그보다 더 오래되었다. 전기는 희미하게 내 눈앞에 펼쳐진 마사이 구릉들을 빚어냈다. 그 언덕에 발자취를 남긴 모든 인간들의 삶을 빚어냈다.”(<일렉트릭 유니버스>)

 

이런 말은 보더니스가 의식적이며 조직적으로 책의 구성에 대해 고민했으며, 독자의 관심에 자신의 이야기를 투영하여 이야기를 짰음을 보여준다. 그는 이런 이야기 구성에 맞춰 매우 많은 전문가들과 대화를 나누고 방대한 자료를 수집, 조사하고 정리했다. 베스트셀러가 우연이나 개인의 말솜씨 재능만으로 이뤄진 건 아니라는 얘기다. 즉 ‘독자에 만족과 감동을 주는 기획’과 ‘풍부한 이야깃거리의 꼼꼼한 사전 준비’가 더욱 중요하게 고려돼야 할 것이다. 이런 점들은 과학의 지적 호기심을 다룬 ‘가벼운’ 책들뿐만이 아니라 과학기술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비평을 담은 ‘무거운’ 책들도 마찬가지로 독자의 만족과 감동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지녀야 할 필수 미덕일 것이다. (격주간 출판전문잡지 <기획회의> 186호,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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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철우 한겨레신문사 과학담당 기자, 사이언스온 운영
1990년 한겨레신문사에 입사해 편집부, 사회부, 문화부, 생활과학부 등을 거쳤으며 주로 과학담당 기자로 일했다. <과학의 수사학>, <과학의 언어>, <온도계의 철학> 등을 번역했으며, <갈릴레오의 두 우주체제에 관한 대화>를 썼다.
이메일 :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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