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호의 "아프리카에서, 살며 배우며"

영국 대학의 첨단 실험실에서 기생충학을 공부하던 정준호님이 어느 날 의료봉사단을 따라 아프리카 스와질랜드로 날아갔습니다. 실험실을 벗어나 세상 속으로 뛰어든 그가 아프리카에서 겪는 여러 에피소드들을 전하며, 우리에게 익숙한 과학과 의학의 모습을 아프리카의 시선으로 낯설게 다시 바라봅니다.

[연재] 게이츠재단, 열대질환 연구판도 바꾸다...기여와 한계

아프리카에서, 살며 배우며 (8)  

 

 

 

8. 게이츠 재단

 

 

 

 

malaria » 말라리아 진단 키트 사진. 임신테스트기와 구조 및 원리 자체는 크게 다르지 않다.

 

이제 스와질랜드는 봄을 지나 여름으로 접어들고 있다. 아직 무더위가 기승을 부릴 만큼은 아니지만 선선하던 바람이 어느새 더운 바람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그리고 아프리카의 여름을 상징하는 질병, 말라리아가 저지대에서는 서서히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1400미터로 비교적 지대가 높은 이 지역에는 말라리아 환자가 그리 많이 나타나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여름철이면 말라리아 감염자가 몇명씩 발생한다고 한다. 며칠 전에는 할머니 한 분이 고열과 전신 통증으로 클리닉을 방문하셔서 말라리아를 의심해 보았다. 서랍에서 꺼낸 말라리아 진단 키트에 할머니 손가락에 딴 피 몇 방울을 넣자 불과 30여분 만에 검사 결과가 나왔다. 다행히 음성이었다.

 

과학저널 <네이처>는 21세기에 이루어지고 있는 10대 생명공학기술의 발전 중 하나로 이러한 간편하고 저렴한 진단기법과 도구들을 꼽았다. 이 기술로 이전에는 환자의 피를 채취해 슬라이드에 혈액도말을 하고, 준비된 슬라이드를 염색시켜 숙련된 기술자가 현미경을 통해 말라리아 기생충 형태를 파악해 어떤 종류의 말라리아에 감염되었는지 진단해내야 했다. 현미경에 숙달된 사람이라면 슬라이드 하나를 보는데 1분 남짓 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하지만, 이 슬라이드를 준비하는 데에만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하지만 요즘은 간단한 기기가 많이 개발되어 임신테스트기처럼 생긴 일회용 진단기기에 환자의 피 한두방울을 떨어뜨려 보는 것 만으로도 상당히 신뢰도 높은 진단결과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저렴하고 간단한 진단기기는 열악한 빈곤지역의 의료상황에서는 일대 혁명이라 볼 수 있다.

 

이런 연구가 더 활발히 이루어지고 더 많은 진단키트가 개발되면 열대지역의 일차의료시설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구매력이 없어 시장성이 맞지 않는 이런 기술에 제약회사 같은 거대자본들은 투자하기를 꺼려한다. 그리고 이제 이 빈자리를 채우고 있는 것은 바로 엔지오(NGO, Non-Govermental Organisation)들이다.

 

 

 

질병은 만인에 평등하다?

21세기에 질병은 불평등하다!

 

세계보건기구(WHO) 창립 초기에 있었던 발표들 중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 ‘기생충 질환은 남녀노소 빈부격차를 따지지 않고 만인에 평등하다.’ 아직 인간이 감염성 질환에 대처할 마땅한 수단을 가지지 못했던 수십 년 전에는 이 문장이 참이었을지 모르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기생충 질환을 비롯한 여러 감염성 질환은 불평등하다. 빈곤한 지역의 사람들은 더 자주, 그리고 더 심한 감염에 노출되고 고소득 지역의 사람들은 심각한 감염성 질환은 한 평생 앓지 않고 지나가기도 한다. 빈곤지역 사람들은 어렵지 않게 예방하고 치료할 수 있는 질병 때문에 어린 나이에 목숨을 잃는다. 이제 건강은 빈부격차와 소외 집단, 인권을 나타내는 하나의 지표가 되었다.

 

지금 제3세계의 소외지역 및 빈곤지역에서는 질병이 창궐하고 있다. 인간 면역결핍 바이러스(HIV)나 결핵 같은 질환들부터 이제 선진국들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어진 회충, 구충, 촌충 같은 장내기생충들도 여전히 빈곤층 10억명 이상을 괴롭히고 있다. 바로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더라도 경제적, 정치적 영향력이 낮기 때문에 관심에서 멀어진 이른바 ‘소외열대질환’들이다. 이런 빈곤지역의 무능력하고 부패한 국가는 차라리 없느니만 못한 경우가 많고, 국가 보건 시스템도 경제적, 정치적 혼란 때문에 무너져 버린 지 오래다.

 

이렇게 본래 국가가 뒷받침해야 할 사회 안전망을 대신하기 위해 나타난 것이 바로 NGO들이다. NGO들은 기존의 시스템, 즉 국가의 틀에서 벗어나 시스템이 보호해 주지 못하던 사회적 약자를 대변해주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사회적 불평등을 개선하고 더 나은 삶을 찾아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이런 단체들의 활동은 세계 곳곳에서 많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현재 내가 일하고 있는 단체 역시 이런 NGO 중의 하나다.

 

 

 

'거대 NGO' 게이츠재단

열대질환 연구의 판도를 바꿔

 

과거에 이런 NGO들의 활동은 소규모에 불과한 경우가 많았다. 기존의 질서에서 벗어나 수익이나 권력창출에 연연하지 않았기 때문에 영향력을 확대하기 쉽지 않았던 탓이다. 하지만 빈곤 지역과 사회 곳곳에서 이런 NGO의 활동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단체들의 규모가 점차 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1990년대 초반, 게이츠재단이 등장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시자이자 세계적 거부인 빌 게이츠와 멜린다 게이츠의 후원으로 탄생한 이 재단은, 과거 민간단체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규모의 자금과 영향력을 지고 있다.

 

세계 보건 증진과 발전을 위해 다양한 사업을 하고 있는 게이츠재단은 기존에 관련 연구를 담당하고 있던 몇몇 공중보건 대학들과 WHO이 주도하던 열대질환 연구의 판도를 바꾸어 놓았다. 이제 게이츠재단의 주요 사업 방향은 세계 보건 정책을 좌지우지 할 정도의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다. 게이츠재단의 취지는 분명 좋은 것이고, 재단의 자본으로 이뤄지는 연구들도 분명 긍정적인 영향을 불러오고 있다. 하지만 장기적인 안목으로 보았을 때 현재 게이츠 재단, 뿐만 아니라 다른 NGO들의 원조 및 개발 방식이 역시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의문점이 든다.

 

게이츠재단 이전까지 소외열대 질환에 투자되는 자본은 그리 크지 않았다. 또 많은 연구가 실제 질병이 유행하던 제3세계 대학교 및 연구시설이나, 기존에 열대질환 관련 연구의 전통이 이어져 오던 공중보건 대학 위주로 진행되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 게이츠재단을 통해 열대질환 연구에 막대한 양의 자본이 흘러들면서 소외열대질환 연구를 진행하는 연구자들의 범위도 크게 확장되었다. 연구에 많은 돈이 투자된 것은 분명 환영할 일이지만, 자본이 엮이게 되면서 열대질환 연구 역시 연구자의 정치력이나 영향력에 크게 좌우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이미 기초연구 쪽에서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 할 수 있는 HIV/에이즈나 말라리아 연구는 연구주제나 그 중요성 보다도 연구자의 정치력과 영향력, 명성 등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는 건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다. 과연 이런 상황에서 올바른 연구가 이루어지고, 이 연구 결과가 올바르게 공유되고 필요한 사람들에게 가 닿을 수 있을지를 장담할 수 있을까.

 

또 게이츠 재단의 소외열대질환 관련 기초연구 후원 내역을 살펴보면 거의 대부분이 미국의 유명 대학교들에 몰려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비용 대비 효율을 생각해 보았을 때 이미 충분한 시설과 연구진을 갖춘 유명 대학교들에 투자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더 좋은 연구시설과 연구진에서 더 좋은 연구결과가 나오고, 더 좋은 연구결과로 더 많은 사람들을 도울 수 있으리라는 논리는 일견 타당해 보인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질병은 제3세계에서 일어나고 있지만, 그 질병에 대한 연구는 역시 고소득국가들에 대부분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 연구로 파생되는 지적재산도 고소득 국가에 편입된다. 물론 연구의 결과물 자체는 모든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쌓이는 경험과 인적재산까지 제3세계에 공유할 수 있을까? 현재 가장 영향력 있는 재단의 자본이 대부분 고소득지역으로 흘러들게 되면서 제3세계의 연구자들 역시 자본을 따라 고소득지역으로 찾아들 수 밖에 없다. 제3세계의 과학 연구 자체가 자본을 따라 선진국에 종속되면서 연구인력까지 지속적으로 빠져나가게 된다면 앞으로 그 격차는 더욱 더 벌어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선진국 연구실의 눈부신 발전

빈곤지역엔 너무 먼 ‘과학의 열매’

 

소외열대질환과 빈곤에 대항한다는 취지 자체는 좋다. 하지만 정작 이 소외열대질환과 빈곤에 대항하는 연구의 대부분은 선진국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소외와 빈곤, 질병이 만연하는 것은 단지 연구가 부족해서 그럴 뿐만 아니라 부유한 지역과 빈곤한 지역의 상대적 격차가 점차 벌어지는 것도 중요한 요인 중 하나다. 이는 단순히 돈의 문제가 아니며 과학 연구도 또한 마찬가지다. 선진국에서 아무리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더라도 이를 정당하게 분배할 수 있는 구조는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다. 과연 선진국의 연구실에서 눈부시게 발전하는 과학의 열매를 빈곤지역 사람들이 충분히 누릴 수 있을까?

 

글머리에 얘기한 ‘간편한 진단 기기’들을 예로 들어보자. 이런 진단기기는 그리 비싸지 않다. 그렇지만 이렇게 간단한 진단기기에 대해 이해하고 익숙하게 사용할 수 있는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널리 사용되지 못하고 있다. 근본이 되는 기술 역시 마찬가지다. 진단기기를 개발하는 데 근본이 되는 기술들은 거의 대부분 미국이나 영국에서 개발된 것들이다. 최근 게이츠 재단에서는 이런 손쉬운 진단기술 개발을 연구하는 곳에 10억여원씩을 지원해준다는 공고를 걸었다. 하지만 이런 연구지원의 대부분은 선진국의 대학교로 들어가고, 제3세계 대학들이 참여한다고 하더라도 선진국 대학들과 협력하는 형태로 진행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또 쿠바 열대의학연구소에서 진행하던 백신 개발에 지원하려던 돈은 미국 정부에서 방해해 취소될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현재 선진국에서 이루어지는 기술 및 과학의 발전 방향에 따라 제3세계가 지속적으로 휘둘리고 있다. 빈곤지역의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필요한 연구, 자신들이 원하는 연구를 꾸준히 이루어 낼 수 있는 환경 자체가 정치적, 경제적 외부적 요인에 의해 너무 큰 영향을 받는다. 그리고 게이츠재단을 비롯한 여러 NGO들의 현재의 지원상황은 이런 격차를 벌이는 역할을 하고 있는게 아닐까 하는 고민을 해봐야 하는 시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기초연구 등에 투자하는 것이 게이츠재단의 기본적인 취지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것은 사실 핑계에 불과하다. 이 정도의 자본과 영향력을 지닌 단체라면 자신들의 행동으로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의 결과에 대해 충분히 고민하고 책임을 질 필요가 있다. 또한 단순히 과학과 기술이 부족하여 벌어지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넘어, 과연 과학과 기술이 얼마나 필요한 이들에게 전달되고 분배되고 있는가를 고민하고 연구하는것도 기초 연구만큼이나 중요한 문제임을 인식해야 한다.

 

 

 

더 멋진 NGO 활동을 위해

과학기술의 분배 문제를 고민하자

 

NGO는 ‘비정부 기구’라는 말 그대로 기존의 국가라는 시스템에서 벗어나 그 시스템에서 소외받는 사람들을 대변하기 위한 단체다. 즉 자본과 권력에서 더 더욱 벗어나야 할 단체가 오히려 새로운 자본과 권력으로 변모하고 있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단순히 비용효율을 계산하고 경제논리에 따라 움직인다면 기존의 시스템과 다른 점이 대체 무엇일까. 그런 논리에서 벗어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NGO가 아닐까. 그리고 적어도 ‘미래’를 생각한다는 곳이라면, 그 미래를 위해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일도 해야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에게 과학기술이 부족해서 소외열대질환이 지속적으로 유행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다. 기생충약이 없어서 아직도 10억명이 넘는 사람들이 회충에 감염되어 있는 것이 아닌것과 마찬가지다. 알벤다졸 같은 약 한 알이면 간단히 치료가 가능하다. 물도 필요 없고 그저 씹어 먹으면 그만인 이런 약이 개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세상은 기생충으로 넘쳐난다. 이러한 과학기술이 충분히 분배되지 않고 있는 것이 문제다. 비용효율면에서 생각해본다면 제3세계 연구에 기반을 마련해주고, 소외열대질환 연구를 이들이 주도하게 도와준다는 것은 정말 어처구니 없는 접근방법이다. 하지만 선진국에 모든 연구가 종속된 상태에서는 소외열대질환은 지속적으로 정치와 경제의 영향에 휘둘리며 ‘소외’질환으로 남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세계인권선언문 27조의 일부를 인용해본다.

 

‘모든 사람은 공동체의 문화생활에 자유롭게 참여하며 예술을 향유하고 과학의 발전과 그 혜택을 공유할 권리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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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호 기생충 애호가, <기생충, 우리들의 오래된 동반자> 저자
영국 런던대학 위생열대의학대학원에서 기생충학 석사학위를 받았다(2008). 아프리카 스와질랜드에서 자원봉사자로 1년간 기생충 관리 사업과 의료봉사 활동에 참여했으며(2010-2011), 다시 1년 간 굿네이버스 탄자니아에서 주혈흡충 관리사업 책임자로 있었다(2013-2014). 지은 책으로 <기생충, 우리들의 오래된 동반자>(2011)가 있으며, 우리말로 옮긴 책으로 <말라리아의 씨앗>(2014), <바이러스 사냥꾼>(2015)이 있다. 2016년 현재는 소속 없이 독립 연구자로 활동 중이다.
이메일 : byontae@gmail.com       트위터 : @byont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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