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초광속 중성미자' 발표에서 철회까지 -인터뷰
■ 인터뷰/ 오페라 실험그룹에 참여한 한국대표 윤천실 박사
오페라 재실험 계획 없고 페르미랩에선 별도 실험 진행
‘실험시스템 결함이 원인’ 확인...철저한 검증 부족 자성
지난 6월8일 일본 교토에서 열린 ‘중성미자와 우주물리 국제학회’에서 국제 중성미자 실험그룹인 오페라(OPERA)는 ‘중성미자의 비행 속력이 빛의 속력(광속)보다 더 빠르게 관측됐다’는 애초 관측실험의 결론을 철회한다고 밝혔다. 이로써 광속보다 빠른 중성미자의 비행 속력을 관측했다는 실험 증거는 지난해 9월 오페라 그룹이 처음 밝힌 지 아홉 달만에 부정확한 데이터인 것으로 결론이 났다.
함께 실험을 벌인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도 공식 보도자료를 내어 “(4개의 중성미자 실험그룹인) 보렉시노, 이카루스, 엘브이디, 오페라에서 중성미자의 비행 시간이 빛의 속력과 일치한다는 측정결과가 나타났다”며 “이는 애초의 오페라 측정결과가 광섬유 시간측정 시스템의 결함 때문에 비롯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그동안 오페라 실험그룹이 초광속 중성미자의 비행 속력을 관측했다고 밝힌 이래, 일부 물리학자를 중심으로 관측 오류 가능성 등이 제기되자 오페라 그룹은 자체의 보완 실험을 추가로 벌였으며, 뒤이어 중성미자 비행시간을 측정하는 장비에서 결함 가능성이 발견되자 다시 4개 그룹이 함께 참여하는 재실험을 벌여왔다.
이번 공식 발표가 나온 이후에 한국 실험팀의 대표로 오페라 그룹에 참여 중인 중성미자 연구자 윤천실 박사(경상대 고에너지 물리실험실)에게 그동안 오페라 실험그룹에서 진행된 관측 과정과 이번 재실험의 결과, 그리고 향후 실험계획에 관해 물었다.
그는 <사이언스온>과 주고받은 이메일 인터뷰에서 비공식 답변임을 전제로 “오페라 실험그룹에서는 더 이상의 재실험은 없을 것”이라면서도 “미국 페르미랩에서 올해 2월 말에 새로운 시스템을 설치해 측정한 데이터를 현재 분석 중이며 내년부터 1년 정도 계속 측정할 계획인 것으로 안다”고 답했다.
그는 지난해 9월 발표된 관측결과가 철회되는 과정과 관련해서는 그동안 세 차례에 걸쳐 다른 방법으로 관측과 분석이 이뤄졌으며 결국에 이번 재실험에서 여러 의문의 원인이 실험장비 오류인 것으로 확인되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에 처음 발표했을 때에는 1만5천 여건에 달하는 3년 간의 중성미자 검출 데이터를 '통계적 방법'으로 분석했으며, 이런 통계 분석에 의문이 제기되자 지난해 10월 추가 보완실험에서는 중성미자의 속력을 좀더 직접 측정할 수 있는 새로운 실험방식이 도입되었고, 이어 실험시스템의 오류 가능성이 제기된 뒤에 이뤄진 이번 재실험에서는 측정장비를 부분적으로 업그레이드한 뒤 추가 실험과 같은 방법으로 중성미자 관측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그는 “어찌되었건 대형연구일수록 그리고 그 결과의 파장이 매우 큰 것일수록 발표 전에 좀 더 내부적으로 의견을 조율하고 신중을 기울여야 했다”며 “결과적으로 커다란 논란을 일으킨 점에 대해 오페라 한국그룹의 대표로서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래는 이메일과 전화를 통해 윤 박사와 한 인터뷰 내용이다.
'빛보다 빠른 중성미자' 논란
■ "빛보다 빠른 물질 있다" 아인슈타인 이론 뒤엎나 (한겨레 2011.09.23)
■ ‘빛보다 빠른 중성미자’ 결론은 좀더 기다려달라! (사이언스온 2011.11.01)
■ “초광속 중성미자 보완실험서도 같은 결론 확인” (사이언스온 2011.11.21)
■ “힉스·중성미자 정체 밝혀라” 새해 커지는 기대감 (사이언스온 2012.01.04)
■ “빛보다 빠른 중성미자 속력측정에 오류 발견” (사이언스온 2012.02.23)
■ “중성미자 측정결함, 실험팀 내부노력으로 찾아" (사이언스온 2012.02.27)
■ “중성미자, 빛보다 빠르지 않다" 다른 실험팀 측정 (사이언스온 2012.03.19)
[윤천실 박사 일문일답 인터뷰]
이번 재실험(2012년 5월10일~5월24일)은 그란사소 연구소에 있는 4개 실험그룹이 참여했다고 하네요. 오페라 외에 참여한 보렉시노(Borexino), 이카루스(ICARUS), 엘브이디(LVD)는 어떤 실험그룹인가요?
"모두 오페라 실험과 마찬가지로 이탈리아 그란사소 지하실험실에서 중성미자 실험을 하는 프로젝트들인데, 검출기의 종류와 세부 연구주제들은 조금씩 다릅니다. 이 실험들은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중성미자도 사용하지만 태양이나 우주에서 들어오는 중성미자에 대해서도 연구합니다. (보렉시노는 주로 태양에서 발생하는 중성미자를 연구하며, 액체 섬광물질과 광증배관을 사용한다/ 이카루스는 중성미자 연구뿐 아니라 양성자 붕괴 연구도 하며 액체아르곤 검출기를 사용한다/ 엘브이디는 주로 초신성에서 나오는 중성미자를 연구하며, 1000톤의 섬광검출기를 사용한다.)"
이번 재실험에서는 59개 반응만을 다루었는데요, 이 정도로 충분한 것인지요? 지난해 9월에는 1만5천건 이상의 반응을 분석해 발표했는데 말입니다. 당시에 한참 얘기됐던 ‘시그마’(신뢰도 단위) 측면에서도 이번 결과는 문제가 없는 것인지요?
"애초 실험(2009년부터 3년 간의 데이터)과 두 번의 다발빔(bunch beam) 실험(지난해 10월 말 추가실험과 올해 5월 재실험) 간의 가장 큰 차이는 빔의 종류와 측정 방법입니다. 애초 실험은 오페라의 '원래 목표'(아래 문답 참조)를 위해서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중성미자 반응을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시간폭이 넓은 중성미자 빔(CNGS 빔, CERN Neutrino to Gran Sasso 빔)을 사용했지만, 추가 보완 실험과 재실험에서는 다발빔(시간폭이 짧은 빔, 시간폭이 양성자빔의 수에 비례하므로 중성미자 반응수가 적음)을 사용했습니다.
중성미자 속력 측정 방법도 빔의 종류에 따라 다른데, 애초의 빔을 사용하여 중성미자 속력을 측정하는 방법은 통계적인 방법인데 반하여(중성미자 속력 측정을 위한 빔이 아니었으므로), 다발빔을 사용하면 중성미자 속력을 반응 하나 하나씩 개별적으로 측정할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애초의 실험방법은 각각 반응별로 중성미자 속력을 측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시간에 따른 빔의 분포(3년 간 양성자빔의 시간적 구조)와 실제 중성미자 반응 검출시간들의 분포를 비교하여 통계적인 방법으로 속력을 추출해내는 방법을 사용하였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9월 발표 때에 이런 통계적 방법이 옳은지에 대한 비판이 있어서 다발빔을 사용하여 지난해 10월에 추가 실험을 한 것입니다. 그 후에 실험 장비의 오류가 발견되어 그것을 수정한 후 이번 5월에 다발빔으로 재실험을 한 것입니다."
매우 많은 데이터를 통계 분석하는 방식과 달리 사실상 중성미자를 직접 검출할 수 있는 방법을 썼기 때문에 59개 반응으로도 충분한 분석이 가능하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렇습니다."
말씀하신 '오페라의 원래 목표’라는 건 무언가요?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에서 그란사소 지하에 이르는 730km 거리를 진행하는 'CNGS 장거리 중성미자 빔'을 사용하여 뮤온 중성미자가 타우 중성미자로 진동 변환하는 현상을 직접 확인하고자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다른 중성미자 진동 실험들과 구별되는 오페라 실험만의 특징은 진동 변환 뒤에 나타나는 타우 중성미자 반응을 직접 관측함으로써(Appearance 방법), 뮤온 중성미자 빔이 확실히 타우 중성미자로 진동 변환하는지를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에 반해서 다른 실험들은 타우 중성미자 반응을 직접 관측하는 것이 아니라, 뮤온 중성미자빔이 진행하다가 그 수가 줄어들어든 것을 관측함으로써(Disappearance 방법), 진동변환 현상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타우중성미자 반응을 직접 관측할 수 있는 것이 오페라 실험만의 장점입니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마이크로미터 정도의 입자의 비적도 분간할 수 있는 매우 정밀한 검출기인 ‘원자핵건판’을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원자핵건판 검출기로 타우 중성미자 반응에서 나오는 매우 짧은 비적을 가진 타우입자를 분명하게 관측할 수 있습니다."
첫 발표 때(지난해 9월)에 사용된 데이터에 문제가 있음은 확정되었는지요? 그 원인도 이론의 여지 없이 확실하게 결정되었는지요?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번 재실험의 발표는 “중성미자의 속력이 빛의 속력보다 빠르지 않고, 광속과 일치한다는 것에 대한 오페라 그룹의 공식적 발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록 앞으로 분석이 더 진행이 되더라도 계통오차가 좀 줄어들 수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그리 큰 차이는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지난 번에 언급된 실험 장치에 대한 오류는 엘브이디(LVD)와의 비교 측정에서도 확인이 되었습니다. 이 비교측정은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 중성미자를 사용한 것이 아니라, 오페라 검출기와 엘브이디 검출기를 옆으로(중성미자 빔의 방향과 수직으로. 맨 위 그림 참조) 관통하는 우주선 뮤온입자를 사용한 것인데, 그 결과 계기적인 오류(주로 지상과 지하를 이어주는 광섬유의 지하 연결부분의 결함)가 있었던 기간은 2009년 후반부터 2011년 말까지라고 예상이 되었으며, 그 기간에 오페라의 시간측정 시스템이 정상가동 때보다 약 74초 정도 더 빠른 값으로 잘못 측정된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아래 그래프 참조).
» 결함 수정 뒤에 2009~2012년(5월 이전) 기간에 나타난 LVD와 오페라 간의 오차(74ns)가 제거됐다.
또 하나의 오류는 지하에 있는 오페라 검출기에 연결되어 있는 주 시계(master clock)의 진동자(Oscillator)에 의한 것이었는데, 이것에 의해서는 정상가동 때보다 15초 정도 느린 값으로 측정되었습니다. 따라서 이번에 발표된 값들은 이런 오류를 수정한 뒤 분석된 것(2011년까지 데이터)과 오류 수정 뒤 좀 더 업그레이드 한 장치를 사용해 이번 5월에 재측정한 것입니다."
더 이상의 재실험은 이제 없는지요? 오페라 내부에서 또는 미국 페르미랩에서...
"아마 오페라 실험에서는 더 이상의 재실험은 없을 것 같습니다. 미국 페르미랩의 미노스(MINOS) 실험에서는 올해 2월 말에 새로운 시스템을 설치하여 측정한 데이터를 현재 분석 중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2013년부터 1년 정도 계속 측정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또 일본의 T2K 실험에서도 앞으로 측정계획이 있다고 합니다."
첫 발표, 의문 제기, 애초 결과 번복의 과정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거대 연구그룹의 발표 과정에 문제가 없었는지요? 연구그룹 내부에서도 꽤나 심한 갈등이 있었던 것으로 해외매체에 보도된 적도 있던데요.
"사실 내부적으로는 발표하기 전에 좀 더 철저한 검증이 부족했다고 자성하고 있습니다. 그런 내부적인 비판에 의해서 그 당시 주도적으로 발표를 추진했던 대표자(spokesperson) 안토니오 교수와 발표자(physics coordinator)인 다리오 박사가 그 직책을 사임했습니다. 그룹 구성원은 이제 새로운 각오로 오페라 실험의 원래 목적이 성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습니다."
이런 과정이 바로 ‘과학이 작동하는 방식’이라고 CERN 연구책임자가 말을 했습니다. 결국에 번복으로 귀결되었지만, 이런 과정이 과학연구의 과정에 어떤 의미를 남겼다고 보시는지요?
"오페라 그룹은 발표의 여파가 매우 크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발표 후에도 계속적으로 그 결과가 확실한지에 대한 점검과 노력을 계속해왔습니다. 그래서 (물리학 논문을 학술지에 정식 발표하기 이전에 공개하는 학술 데이터베이스인) 아카이브(Arxiv)에 올린 논문에서도 결론으로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습니다. “우리는 아직까지 알 수 없는 시스템 효과로 인해 이러한 이상현상이 관측되었을 가능성에 대해서 계속 조사할 것이다(We will investigate possible still unknown systematic effects that could explain the observed anomaly).” 그리고 계속적인 노력의 결과 자체적으로 오류를 찾아내었습니다. ‘과학이 작동하는 방식’이란 말을 한 사람은 오페라 연구진이 아닐 겁니다. 제 생각으로는 정확한 관측값을 얻기 위해서 오류를 계속 추적하고, 또 그것을 투명하게 발표하여 결국 올바른 측정에 도달하는 과정을 가르키는 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어찌 되었건 대형연구일수록, 그리고 그 결과의 파장이 매우 클수록 발표 전에 좀 더 내부적으로 의견을 조율하고 신중을 기울여야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커다란 논란을 일으킨 점에 대해 오페라 한국그룹 대표로서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이번 과정이 오페라의 실험장비의 정확성을 다시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했다는 말씀을 한 적이 있는데 어떤 의미인지요, 조금 풀어서 설명해주신다면.
"실험장비의 정확성을 재확인하는 과정이라기보다는 비록 장비상의 오류를 미처 발견하지 못했지만 중성미자 속력을 측정하는 과정에서 오페라 그룹이 수행했던 실험 방법과 데이터 분석방법의 방향은 틀린 것이 아니었다는 뜻이었습니다. 사실 그동안 실험과 분석 방법론에 대한 많은 비판적인 의견이 있었지만 오페라 그룹은 그것에 대한 설명을 적절히 해왔으며 이번 결과를 보면 오히려 그런 방법론이 기본적으로는 틀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오페라 연구그룹은 본래 중성미자의 다른 특성을 연구하는 것을 주목적으로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초광속 중성미자’ 논란의 여파로 그런 애초 연구에 어떤 영향을 받지는 않을지 우려되는군요. 그동안 성과와 앞으로 계획은 어떤 것인지요?
"주목적은 앞에서 말씀드린 것과 같습니다. 진동변환 후의 타우 중성미자 반응을 직접 검출함으로써 뮤온 중성미자가 타우 중성미자로 진동변환 하는 현상을 직접 관측하는 방법(Appearance 방법)으로 최초로 확인하는 것입니다. 오페라 실험에서 (지난 2000년에 이어) 최근에 두 번째 타우 중성미자의 반응이 발견되었기 때문에 그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발견은 입자물리학의 표준모형을 넘어서는 새로운 이론이 존재한다는 것을 암시하며, 우주의 구조형성과 진화와 관련되어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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