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특집] 과학과 인문학, 간극 넘어 더 넓은 세상으로

'2020 과학'을 바라보는 2010년의 열 가지 시선 (9)



이과-문과의 간극보다 더 심각한 '두 문화들'

홍성욱 서울대 교수(과학기술학)

 



자기 울타리 너머의 세상을 보려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우리사회의 중요한 문제들과 자기 학문을 연계해 생각한다면,
두 문화의 만남은 자연스럽게 이뤄질 것



‘두 문화’는 영국의 작가이자 과학자인 C. P. 스노가 1959년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했던 강연에서 사용한 개념으로, 통상적으로 자연과학과 인문학이라는 두 학문 세계의 괴리를 의미한다. 스노는 두 문화 사이의 상호 무관심을 지적했지만, 실제로는 인문학에 더 비판적이었다. 이러한 비판은 당시 케임브리지대학교에 재직하던 인문학자들의 자아도취에 대한 일침이기도 했다. 그는 당시와 같은 과학혁명의 시기에 과학에 대해 잘 이해하는 것이 인문학을 더 의미있는 학문으로 만들 수 있다고 믿었다.

 

반면에 분자생물학자 존 백위드는 <과학과 사회운동 사이에서>라는 그의 책에서 인간게놈프로젝트의 사회적 영향에 대해 연구하는 과정에서 높은 지위에 있는 과학자들을 만났던 경험을 씁쓸하게 회고한다. 이러한 만남을 통해 지금의 과학자들이 50년 전의 인문학자들처럼 매우 고압적이고 권위적이라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백위드는 과학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니며, 삶의 지침을 위해 우리가 참고해야 하는 유일한 원천도 아니라고 하면서, 완벽한 객관성이라는 과학자의 믿음은 종종 정치적 의도를 감추고 있음을 꼬집는다. 그는 첨단과학의 시기에 인문사회과학과의 조우가 현대 과학을 위기에서 구출해서, 더 의미있는 학문으로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실용학문과 순수학문의 두 문화

 

이렇게 두 문화의 문제는 시대에 따라, 맥락에 따라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 동안 우리나라에서도 과학과 인문학의 간극, 이과와 문과의 간극이 빚어내는 두 문화의 문제가 자주 지적됐다. 아마 두 문화의 간극을 좁혀야 한다는 일반적인 명제에 반대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는 조금 다른 질문을 던져 보자. 두 문화 사이의 간극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인가? 혹시 두 문화 문제를 생각하는 동안에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없는가?

 

인문학과 자연과학은 스노가 살았던 시공간에서는 학문의 꽃이었다. 20세기 중엽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는 철학이나 문학 같은 인문학이 학문의 여왕이었고, 여기에 신흥 자연과학이 도전장을 내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대학을 지배하는 또 다른 ‘두 문화’는 ‘잘 나가는’ 실용적인 학문과 ‘별 볼일 없는’ 순수 학문 사이의 간극이다.

 

대학마다 인문학의 위기를 외치고, 상대적으로 조금 괜찮을지는 몰라도 자연과학 역시 형편이 좋지는 못하다. 인문대학은 공무원 시험과 법학대학원 준비를 하는 학생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으며, 자연대학의 우수한 학생들은 의학·치의학·약학 전문대학원 준비를 하고 있다. 전문대학원 진학을 꿈꾸지 않는 학생 중에는 실용적인 학과로 전과를 노리고 있는 경우가 많다. 요즘 우수한 학생이 순수학문을 하기 위해 국내 대학원에 진학하겠다고 결심하는 것은, 비유하자면, 1980년대에 데모를 주동하고 감옥에 가겠다는 것과 비슷해 보인다.

 

인문학자들은 인문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더 많은 지원을 외치고, 과학자는 연구비 증액을 요청한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노력을 한 결과로 가시적인 성과도 있다. 한 학기 수강료가 천만 원이 넘는 서울대학교의 인문학최고과정은 문학·역사·철학에 대한 명강의를 들으려는 최고경영자(CEO)로 북적인다. 물리, 화학, 생물 같은 자연과학 분야는 대학의 과학인용색인(SCI) 논문은 물론, <사이언스>, <네이처>, <셀> 같은 좋은 학술지에 출판되는 논문을 주도한다. 과학 분야의 논문 출판이 언론에 보도되어 대학의 이름을 알리고, 논문 숫자가 늘어나서 세계의 대학 중에 국내 대학의 랭킹을 올리는 데 효자 노릇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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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한겨레 김영훈 기자

 

 

또다른 두 문화, 학문과 상식의 간극

 

이 와중에서 발생하는 또 다른 ‘두 문화’는 이해할 수 없이 복잡하고 어려운 대학의 학문과 시민들의 상식의 괴리이다. 대학 교수들은 동료 학자들에게 높이 평가되는 연구에 매진한다. 자연과학의 연구가 일반 시민에게 이해될 수 없는 것이 된 지는 수백 년이 됐는데, 지난 100년 동안에 인문학의 연구도 비슷해졌다. 19세기만 해도 인문학자들은 넓은 독자를 대상으로 책을 저술했었지만, 19세기 말~20세기 초에 역사와 철학, 문학비평 분야에서 인문학 학술지가 출판되기 시작하면서 인문학자들의 주요 출판 형태는 책에서 동료 연구자를 위한 논문으로 바뀌었다. 인문학 분야의 논문은 과학과 비슷하게 보통 사람들이 이해하기 힘든 문제를, 이해하기 힘든 전문 용어를 써서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과학에 비해서 인문학은 아직 쉽게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가. 그렇다면 “우리가 왜 도덕적이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논하는 철학 논문의 초록을 보자. “칸트가 말한 이성의 사실이란 자연의 사실이 아닌 인격의 사실이며 … 이와 같은 관점에서 (필자는) 칸트가 옹호하고 있는 도덕적 자기규정의 ‘유아론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칸트적인 도덕성은 여전히 자기 이익과 같은 자연적 동인으로 환원될 수 없는 본래적 도덕성의 유력한 패러다임으로서 도구적 합리성의 도덕적인 월권에 대응할 수 있는 비판적 힘을 갖는다는 점을 주장할 것이다.” 위의 글을 술술 읽으면서 쉽게 이해하는 독자는 도덕철학에 대한 준 전문가의 자격이 있다.

 

대학의 인문학자들은 인문학이 더 바람직한 삶을 위해서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렇지만 보통 사람들은 대학의 인문학자가 쓴 논문이 아니라, 대중과 소통하는 제도권 밖의 인문학 연구자들의 대중적 저서에 더 큰 감명을 받는다. 사실 연말정산을 하는 데 미적분이 필요 없듯이, 바르게 사는 데 도덕철학의 전문 지식은 필요하지 않다. 어차피 서구의 인문학은 오래 전에 ‘어떻게 인간답게 살 것인가’라는 고민의 단계를 극복하고(?), ‘인간답게 사는 조건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추상적이고 학문적인 논의를 발전시키는 길을 밟았기 때문이다.

 

 

저마다 학문의 울타리 쌓기가 더 문제

 

지금의 대학 사회에서 대화가 단절된 부분은 인문학과 과학만이 아니다. 인문학 내에서 역사와 철학, 문학은 서로 대화와 이해가 거의 없다. 이는 과학도 마찬가지다. 한 학과 내에서도 전공이 다르면 학문적인 소통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학과란, 다른 학과와의 소통을 막으면서, 학과라는 이름으로 정의된 전공을 이수한 사람을 교수로 채용하기 위한 울타리의 역할을 아주 잘 하고 있다. 간단히 말하면, 학과라는 학문의 울타리는 ‘제 밥그릇 챙기기’ 노릇을 잘 하고 있다는 얘기다.

 

지금의 대학은 논문 공장이다. 인문학과 과학 양쪽 분야에서 학자들은 동료만이 이해할 수 있는 논문을 쓰고, 그 속에서의 평가에 만족해한다. 학자들의 연구는 세상에 닻을 내리지 못한 채, 학문 공동체 안에서만 의미를 가지는 것으로 변용된다. 학자들은 서로를 인용하고 서로를 만족시키는 데 즐거워하면서, 전문 분야의 벽은 점점 더 두터워진다. 과학사와 과학사회학 분야에서 여러 문제작을 펴낸 과학사학자 스티븐 섀핀에 의하면, 요즘 학자들의 이러한 ‘과다 전문화’(hyper-professionalism)는 자신의 연구가 “세상에 대해서 무엇인가를 얘기한다는 감”(aboutness)이 상실되었다는 특징을 지닌다.

 

‘두 문화’의 간극을 줄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이는 과학이 인문학을 끌어안고, 인문학이 과학에게 손을 뻗치는 제스처로 되는 것이 아니다. 가장 중요한 일은 자기가 속해 있는 학문 공동체의 좁은 울타리를 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내가 좋아서 내가 학문을 하는데 네가 왜 참견인가”라는 식으로 생각해선 곤란하다는 얘기다. 내게도 중요하고 동료에게도 의미가 있지만, 인접 분야에도 함의를 가지며, 우리 사회의 여러 절박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노력에도 접목되는 학문을 고민하는 학자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는 얘기다. 세상을 꿰뚫어보는 혜안을 가져야만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가장 중요한 태도는, 내 자신이라는 울타리, 내 논문을 읽는 열명 내외의 동료 학자라는 울타리의 밖에 있는 세상을 보는 시야를 확보하는 것이다.

 

두 문화 사이의 간극의 극복은, 정부에서 발주하는 과학과 인문학의 ‘통섭’ 프로젝트가 많아져서가 아니라, 자신의 학문적 경계 너머에 있는 세상을 보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다. 지금 우리 사회와 사회 구성원이 안고 있는 여러가지 심각한 문제와 자신의 학문을 연계시켜서 생각한다면, 인문학자는 과학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고, 반대로 과학자는 인문학이 축적한 인간과 사회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의 도움을 필요로 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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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욱

 

 

 

홍성욱 서울대 교수

과학기술학

 

 

 

 

특집2- '2020 과학'을 내다보는 2020년의 열 가지 시선 (9~12일 연재)

1.생명과학 |  DNA 읽기 시대에서  DNA. 작문 시대로 (김진수 서울대 교수)

2. 과학과 사회 | '왕자'와 '잠자는 미녀'의 관계 벗어나기 (이영희 가톨릭대 교수)

3. 과학문화 | 새로운 과학, 새로운 스토리텔링의 등장 (김용석 영산대 교수)

4.인지과학 |  뇌, 몸, 환경은 하나라는 강한 외침이… (이정모 성균관대 교수)

5. 나노기술 | 들뜬 기대 접고 현실의 혁신에 도전 (현택환 서울대 교수)

6. 우주와 물질 | 지상최대의 실험…물리학은 수능시험 중 (이종필 고등과학원 연구원)

7. 과학정책 |열쇳말,  '성장'에서 '삶의 질'로 (박상욱 과학기술정책학 박사)

8. 지구환경 | 지구공학의 '플랜B'가 지구 살릴 대안이 될 것인가? (오재호 부경대 교수)

9. 두 문화 | 과학과 인문학, 더 넓은 세상에서 자연스런 만남을 (홍성욱 서울대 교수)

10. 기초과학 | 한국과학 '창조적 기초체력'은 갖췄나? (민경찬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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