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특집] 한국과학 '창조적 기초체력'은 갖췄나?

'2020 과학'을 바라보는 2010년의 열 가지 시선 (10/끝)




'노벨상 콤플렉스'와 우리 기초과학

민경찬 연세대 대학원장(수학), 과실연 상임대표






몇 년 전 우리 대학 캠퍼스를 방문한 노벨화학상 수상자한테 한 학생이 물었다. “어떻게 하면 노벨상을 탈 수 있나요?” 대답은 간단했다. “노벨상을 탈 목적으로 연구한다면 탈 수 없을 겁니다. 하지만 호기심과 열정으로 꾸준히 노력한다면 노벨상을 탈수도 있겠지요.” 노벨상을 목표로 연구해 이 상을 탄 사람은 없는 것 같다. 40년 전 발표했던 연구결과를 오늘에 인정받아 노벨상을 받기도 한다.

 

1901년 첫 노벨상 시상이 이뤄진 이래 지금까지 802명의 개인과 20개 단체가 노벨상을 받았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는 아직도 연구결과를 통한 노벨상을 한 명도 수상하지 못했다. 이웃 일본은 2008년 한해에 4명의 과학상 수상자를 내는 저력을 보여주었고, 지금까지 총 16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으며 일본 국적자는 13명이다. 우리는 왜 그렇지 못할까?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의 평가에서 과학경쟁력 3위, 기술경쟁력은 8위, 그리고 과학인용색인(SCI) 논문 수는 12위에 오를 정도인데 말이다.

 

 

“노벨상 목적으로 해서야...호기심과 열정이 중요”

 

우리는 노벨 수상자들을 분석한 여러 연구들에서 나온 결론에 유의해야 한다. 기초과학의 튼튼한 바탕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먼저 씨를 심어야 언젠가 싹이 나고 자라서 열매를 맺는다는 것이다.

 

일본은 1987년에 기초과학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전환했다. 그 해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당시 나카소네 총리는 '휴먼 프론티어 사이언스 프로그램'(HFSP)을 제안했다. 이는 인간의 생명기능에 대한 기초연구를 국제공동연구 과제로 만드는 것이었다. 일본은 처음에 90%를 부담했고 지금도 50%를 지원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추격형 연구에서 선도형 연구로, 자국의 경제적 이익 중시로부터 인류적 가치 추구로, 단기 연구에서 장기 연구로 전환하고자 했다. 이 프로그램의 성과는 매우 컸다. ‘휴먼 사이언스 프로그램’의 지원을 받은 연구자 중에서 다수의 노벨상 수상자가 배출됐다.

 

대부분의 미래학자들은 인류 역사를 바꾸어 놓을 혁명적 변화는 아직도 기초과학에 있다고 이야기한다.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는 근대과학을 혁명적으로 바꾸었으며, 수리논리학자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는 컴퓨터를 출현하도록 하여 인간의 삶을 혁명적으로 바꾸어가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일본은 2009년을 “기초 과학력 강화의 해”로 선포하고, “기초과학력 강화 5대 전략”을 발표했다. 우선 초·중등교육, 대학·대학원 교육의 질을 높이며, 신진 연구자들이 창의적 연구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특히 세계 수준의 연구자가 모이는 연구거점을 형성하는 것이다. 한해 4명의 노벨수상자를 배출한 나라가 미래를 준비하는 모습이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향후 10년 간 연구개발 예산을 2배로 늘리고, 특히 젊은 연구자 육성과 기초연구 강화를 공약으로 내세었다. 그는 STEM(과학, 기술, 공학, 수학) 교육과 인재양성 강화를 강조했으며, 고위험 고수익 기초연구를 확대하겠다고 했다. 유럽연합(EU)도 2008년에 향후 2년간(2009~2010) 320조원을 과학기술에 집중 투자하겠다고 했다.

 

기초과학김영훈2
그림/ 한겨레 김영훈 기자

 

 

획일적 교육체제론 '진짜 영재' 교육 어렵다

 

우리 정부와 사회도 기초과학에 대한 인식을 전환해야 한다. 노벨상을 받기 위해서는 기초과학 연구의 성과를 단기적인 목표로 삼아서는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노벨상은 한 연구자가 연구 결과를 발표한 뒤 평균 18년 동안 여러 연구자들이 그 결과를 인용하거나 널리 사용하고 난 뒤 대개 50대 중반에 받게 된다. 정부는 현재 기초연구에 투자를 크게 확대하고 있지만, 장기적 관점에서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안정적으로 지원하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투자와 더불어 노벨상을 받을 수 있는 토양을 키워나가는 일이다.

 

우리는 노벨상 수상자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주목해야 한다. “한 나라에 노벨상이 나오지 않는다면 이는 창조성과 독창성이 있는 인재가 없어서가 아니라, 그런 인재를 교육할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은 본래 호기심이 많다. 그러한 것에 호응하는 교육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자연을 이해하려면 법칙만을 알아서는 안 되며, 법칙을 발견하는 것에 이르는 과정을 가르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이야기들은 우리가 그동안 우리 자녀들의 잠재적 역량을 최대로 개발시키지 못하고 있었음을 질책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어릴 적부터 획일적 틀에 가두어놓고, 대학입시 준비를 위한 교육, 답 맞추기 훈련하는 객관식 시험으로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교육이 나올 수 없다. 정답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과정이 매우 중요하다. 단순히 노벨상 받기 위한 전략으로 영재 교육을 실시한다고 해서 될 일도 아니다. 영재교육기관의 프로그램도 틀에 박힌 훈련이라면 역시 실질적인 영재의 출연을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 교육은 어릴 적부터 인간과 자연현상에 대한 호기심을 느끼게 해야 한다. 수학·과학 과목은 억지로 해야 하는 재미없는 과목이 아니라, 논리적 사고나 자연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것이어야 한다. 교실에서 근원적인, 도전적인 질문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도록 유도해야 한다. 초등학교부터 전문성을 갖춘 교사들이 필요하다.


 

새로운 10년, 교육과 과학의 새로운 철학과 비전은?

 

그동안 노벨상 수상자들은 대부분 자유스러운 학문 분위기를 전통으로 삼는 대학에 속해 있었다. 또한 우수 과학자를 지닌 대학이 노벨상 수상자 졸업생을 많이 배출했다. 이제는 우리도 국적 불문하고 세계적 업적을 이룩한 과학자를 유치하는 개방적 교육기관으로 변모해야 한다. 이들을 통해 젊고 가능성 있는 우수한 인재들을 관리·육성해나가야 한다. 또한 다양한 학문 분야들이 융합해 발전하는 방식과 집단연구가 보편화되고 있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대학들부터 먼저 문과, 이과 구분을 없애도록 하여 초중등 과정 때부터 융·복합적인 역량을 키우도록 해야 한다.

 

올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의장국이 된 대한민국은 국격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노벨상의 기반이 되는 교육과 과학을 선진화해야 한다. 새로운 철학과 비전이 필요하다. 우리 정부와 사회는 이공계 출신자들에 대한 가치를 더욱 크게 인정하며, 우수 인재들이 자부심을 지니고 기초과학 분야에 모여들도록 해야 한다. 또한 노벨상 후보는 약 3천명 과학자의 추천을 받아야 되는 것이므로 우수 과학자들이 드러나도록 홍보에도 적극적이어야 한다.

 

노벨상은 “지난해에 인류에게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에게 상의 형태로 매년 지급한다”라는 노벨의 유언에 따른 것이다. 그러므로 기초과학의 연구결과도 중요하지만 그 결과가 인류에게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여야 한다. 교육과 과학의 가치를 더 높은 데서 찾는 일이다. 국민 공감대도 여기에서 얻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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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찬

 

 

 

 

 

 

민경찬 교수

연세대 대학원장(수학), 과실연 상임대표

 

 

 

특집2- '2020 과학'을 내다보는 2020년의 열 가지 시선 (9~12일 연재)

1.생명과학 |  DNA 읽기 시대에서  DNA. 작문 시대로 (김진수 서울대 교수)

2. 과학과 사회 | '왕자'와 '잠자는 미녀'의 관계 벗어나기 (이영희 가톨릭대 교수)

3. 과학문화 | 새로운 과학, 새로운 스토리텔링의 등장 (김용석 영산대 교수)

4.인지과학 |  뇌, 몸, 환경은 하나라는 강한 외침이… (이정모 성균관대 교수)

5. 나노기술 | 들뜬 기대 접고 현실의 혁신에 도전 (현택환 서울대 교수)

6. 우주와 물질 | 지상최대의 실험…물리학은 수능시험 중 (이종필 고등과학원 연구원)

7. 과학정책 |열쇳말,  '성장'에서 '삶의 질'로 (박상욱 과학기술정책학 박사)

8. 지구환경 | 지구공학의 '플랜B'가 지구 살릴 대안이 될 것인가? (오재호 부경대 교수)

9. 두 문화 | 과학과 인문학, 더 넓은 세상에서 자연스런 만남을 (홍성욱 서울대 교수)

10. 기초과학 | 한국과학 '창조적 기초체력'은 갖췄나? (민경찬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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