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특집] 나노, 들뜬 기대 접고 현실 혁신에 도전

'2020 과학'을 바라보는 2010년의 열 가지 시선 (5)



나노연구 지나온 10년, 앞으로 10년

현택환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교수





지난 10년의 과학기술을 돌이켜볼 때 떠올랐던 키워드들 가운데 하나는 단연 ‘나노’였다고 말할 수 있다. 꼭 10년 전인 2000년 1월에 미국의 클린턴 정부가 ‘국가 나노기술 전략(NNI)’을 발표하면서, 나노기술 연구는 세계 각국에서 크나큰 주목을 받아왔다. 여러 나라들이 국가 차원에서 엄청난 관심을 가지고 연구비를 투자하는 정책을 마련하고 집행하고 있다.

 

미국, 유럽, 일본 등은 연간 수천억 원의 연구비를 나노기술분야에 투자하고 있고, 최근에는 중국, 러시아 등 다른 나라들도 나노기술 분야에 더 많은 연구비를 투자하고 있다. 우리나라 정부도 2001년 7월에 ‘나노기술 종합발전계획’을 세운 이래 꾸준히 나노 연구 분야에 투자해왔으며, 2010년에는 교육과학기술부만도 455억원을 나노 분야에 투자하기로 했다.

 

2000년의 기대 “제2의 산업혁명”…지금은?


나노기술에 대한 기대는 컸다. 2000년 초반에 나노기술은 “제2의 산업혁명”이라는 찬사까지 받으며 엄청난 기대를 모았던 게 사실이다. 그것은 국가 나노기술 전략을 발표한 직후에 클린턴 대통령이 칼텍(캘리포니아공대)에서 행한 연설에 잘 나타나 있다. “나노기술을 이용하면, 강철의 10배에 달하는 강도를 지니면서도 무게는 훨씬 가벼운 물질을 개발할 수 있고, 의회 도서관의 모든 소장 자료를 담을 수 있는 각설탕 크기의 작은 장치를 만들 수 있고, 악성 종양이 겨우 세포 몇 개 정도 크기일 때 조기진단을 할 수 있게 하는 등 수많은 가능성들이 열리게 될 것입니다. 이런 연구 목표들을 달성하는 데에는 20년 이상의 세월이 걸릴지 모릅니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연방 정부가 나서서 중요한 역할을 맡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 무렵에 어떤 컨설팅회사는 나노기술의 시장 규모가 2015년에는 1조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2010년은 ‘나노기술’이라는 말이 공식용어로 등장한지 10년째 되는 해다. 10년이 지난 지금에 얼마나 많은 나노기술이 실제로 우리 실생활에 적용돼 우리가 그 놀라운 기술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지 살펴보자면, 그렇게 선뜻 떠오르는 게 많지 않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것은 나노기술의 속성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다. 즉 나노기술 그 자체가 어떤 부가가치를 창조하기보다는 다른 여러 기술들이 처한 문제점을 해결해주는 ‘도우미 기술’이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2000년 초에 열광하며 기대했던 그 정도로, 나노기술이 여러 산업 분야에 영향을 끼치지 못한 것은 분명해보인다. 예를 들어, 탄소나노튜브가 실리콘을 기반으로 한 기존의 반도체를 대체하리라는 전망도 높았으나, 지금에 와서 보면 그럴 가능성은 적어도 향후 10년 안에 결코 일어날 것 같지는 않다.

 

 

에너지·생명공학 등의 핵심 기술


그렇다면 이제 나노기술에 대한 기대는 접어야 할까? 분명히 말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고 말하겠다. 나는 오히려 나노기술이 더욱 중요해질 것으로 전망한다.

5.나노기술_위키 copy » 탄소 원자 60개가 결합한 분자 '플러렌60'. 나노기술의 상징이 됐던 탄소나노튜브를 이루믄 기본 물질이다.

 

한 예를 들어보자. 요즘 화두가 되는 녹색기술의 핵심은 에너지와 환경 기술인데, 그 대표적인 에너지 저장장치이자 발생장치인 태양전지, 연료전지, 2차전지들은 모두 기존 방식으로는 풀기 힘든 여러 문제들을 안고 있다. 20년 전에 태양전지나 연료전지가 처한 문제들은 지금도 거의 풀리지 않는 실정이다. 이런 한계상황의 핵심은 바로 전극, 전해질의 재료로 쓰이는 소재 문제 때문이다. 하지만 나노기술은 여전히 원자나 분자 수준에서 물질을 제조하는 새로운 방식으로 신소재의 성능을 혁신할 수 있으며, 이 때문에 이런 기존 소재의 한계상황을 돌파할 거의 유일한 방법으로 인식되고 있다.

 

지난 연말에 우리 정부는 앞으로 10년 동안 부품·소재 산업에 1조원 규모의 연구개발비를 투자하겠다고 선언했는데, 그 핵심이 바로 나노기술을 이용한 신소재들을 개발해 에너지,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여러 분야에 응용하겠다는 전략인 것이다.

 

나노기술이 가장 빠르게 적용되리라고 기대를 모았던 분야가 생명공학과 의료 기술이었다. 이런 기대는 여전히 유효하다. 특히 암 진단의 경우에 다양한 나노물질을 이용하면 ‘1기’에 이르기 훨씬 이전 시기에, 암세포가 수십 개 정도일 뿐인 아주 초기에도 암 진단을 할 수 있다. 또한 나노물질을 이용한 약물을 암세포에만 선택적으로 전달하는 기술을 쓰면 항암제의 사용량을 크게 줄일 수 있어 부작용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런 분야에서 현재 세계적으로 아주 활발하게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나노 안전성 문제도 새로운 10년의 숙제


지난 10년 동안 우리가 소홀히 다뤘던 나노물질의 안전성 문제도 새로운 10년 동안에 중요한 숙제로 남을 것이다. 나노기술이 의료 분야에 광범위하게 쓰이려면 먼저 넘어야 할 가장 중요한 산이 바로 독성, 특히 장기간에 걸친 나노물질의 인체 독성에 관한 것이다. 처음 나노기술이 등장했을 때엔 나노기술이 마치 유전자변형식품처럼 취급되면서 많은 반감을 사기도 했는데, 이처럼 너무나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동시에 나노물질이 안고 있는 잠재적 위험성을 너무 무시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현재 세계 여러 나라들에서 나노물질의 독성과 생태계 전반에 끼치는 영향 등에 관한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어 긍정적 성과들이 기대된다. 신기술이 처음 나올 때엔 엄청난 기대를 모으게 되는데 이는 비단 나노기술뿐 아니라 모든 신기술들에 공통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인 듯하다.

 

이제 차분히 지난 10년의 연구성과들을 뒤돌아보고 이를 토대로 여러 분야에 적용될 수 있는 ‘손에 잡히는 나노기술’을 개발할 때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한다. 특히, 명심할 것은 나노기술이 있기 훨씬 전에 이미 나노과학은 존재해왔다는 사실이다. 즉 새로운 나노기술은 튼실한 기초과학의 기반 위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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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택환2

 

 

 

 

현택환 교수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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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2- '2020 과학'을 내다보는 2020년의 열 가지 시선 (9~12일 연재)

1.생명과학 |  DNA 읽기 시대에서  DNA. 작문 시대로 (김진수 서울대 교수)

2. 과학과 사회 | '왕자'와 '잠자는 미녀'의 관계 벗어나기 (이영희 가톨릭대 교수)

3. 과학문화 | 새로운 과학, 새로운 스토리텔링의 등장 (김용석 영산대 교수)

4.인지과학 |  뇌, 몸, 환경은 하나라는 강한 외침이… (이정모 성균관대 교수)

5. 나노기술 | 들뜬 기대 접고 현실의 혁신에 도전 (현택환 서울대 교수)

6. 우주와 물질 | 지상최대의 실험…물리학은 수능시험 중 (이종필 고등과학원 연구원)

7. 과학정책 |열쇳말,  '성장'에서 '삶의 질'로 (박상욱 과학기술정책학 박사)

8. 지구환경 | 지구공학의 '플랜B'가 지구 살릴 대안이 될 것인가? (오재호 부경대 교수)

9. 두 문화 | 과학과 인문학, 더 넓은 세상에서 자연스런 만남을 (홍성욱 서울대 교수)

10. 기초과학 | 한국과학 '창조적 기초체력'은 갖췄나? (민경찬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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