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특집] 뇌, 몸, 환경은 하나라는 강한 외침

'2020 과학'을 바라보는 2010년의 열 가지 시선 (4)



뇌와 마음에 대한 새로운 이해

이정모 성균관대 심리학과·인지과학협동과정 교수



뇌김영훈 » 그림 / 한겨레 김영훈 기자
'뇌는 곧 마음'이라는 단순 이해 넘어서기
로봇공학 분야에서 먼저 제기돼
인문사회학, 인공지능, 광고 등에도 영향 끼칠 듯

 

주부 김씨는 최근에 재미있는 현상을 하나 발견했다. 자신의 블로그에 마땅한 글 하나를 써서 올려놓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딸 책상에 턱을 괴고서 쓸 글을 생각하자니 생각이 잘 안 되었는데, 일단 컴퓨터를 켜고 글쓰기 소프트웨어를 작동하고 자판기에 손을 얹어 놓으니 신기하게도 생각도 잘 되고 글이 술술 잘 써졌다.

 

그래서 김씨는 스스로 반문했다. 내 생각은, 내 마음은 도대체 어디 있을까? 내 머리에 다 있는 것 같지는 않은데? 컴퓨터와 상호작용하면 그 때에야 내 생각이 정돈되는 이 현상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러다가 예전에 유명한 문인이 자기 골방에서 낡은 자기 만년필을 사용해야 글이 써지지 다른 곳에서나 다른 필기구로는 글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육필’? 평소에 무심히 지나친 그런 현상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나의 마음이, 나의 생각이 내 머리 안에 다 들어 있는 것은 아니라는 말인가?

 


내 마음은 나의 뇌 안에만 있을까?


뇌일러스트주부 김씨가 생각을 더 발전시킨다면 다음과 같은 물음을 던질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생각, 의식, 마음은 과연 나의 뇌 안에만 들어 있을까? 사람의 마음, 의식이란 곧 뇌의 신경과정의 활동과 동의어일까? ‘나’와 ‘나 아닌 것’을 가르는 경계는 과연 나의 두개골의 뇌 안, 뇌 밖, 또는 나의 ‘몸 안’, 나의 ‘몸 밖’이라는 구별에 의해 결정될까? 김연아가 예술적인 스케이팅을 할 때에 그 몇 천분의 1초에 작동하는 몸 움직임의 세세한 부분을 모두 뇌에서 파악하고 통제하고 있었을까? 그러면 대통령이나 청와대가 시골 말단 동사무소에서 누가 언제 무슨 주민초본을 어떻게 떼었는지 다 파악하여 알고 있어야 하고 그에 대응하는 지시를 내려야 한다는 이야기와 같은데, 그것이 과연 가능할까? 그것이 과연 효율적인 방법일까? 몸의 말단 부분이 스스로 처리를 하도록 되어있지는 않을까? 의식은, 마음은, 뇌의 신경적 활동 이상의 것이 아니다 라고 생각하는 우리 생각에는 어떤 문제가 있을까? 뇌 연구에 대한 우리의 매료됨이 과연 21세기 내내, 그리고 이후 세기에도 지속될까?

 

이런 물음을 던지는 주부 김씨는 자신이 21세기 최첨단의 철학적 물음을 던지고 있는 서구의 유명한 철학자들, 인지과학자들의 반열에 동참하고 있다는 것을 아마도 모르고 있을 것이다.  2010년대 이전에 대부분 사람들은(일부 과학자들까지도) ‘뇌를 이해하면 곧 인간의 마음의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며, 새로운 뇌 연구 결과가 발표될 때마다 그에 매료되어 신기해하였다. 일종의 뇌 지상주의 풍조이다. 앞으로도 당분간 이런 경향은 지속되리라 본다.

 

 

‘몸과 마음 이원론’의 전통과 새로운 개념 혁신

 

그런데 21세기 초엽 현재, 지성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무시하지 못할 하나의 사조가 있다. 바로 ‘의식, 마음은 곧 뇌다’라는 생각을 넘어서서 마음, 의식을 밖으로 확장·연장해 뇌, 몸, 환경의 3자를 불가분 통합체의 단위로 이해하려는 스피노자 식, 메를로퐁티 식 생각이다. “마음 = 뇌”라고 생각해온 이전의 생각 틀의 타당성을 반문하는 물음들이 21세기 들어 최근에 학자들 사이에 전개되고 있다.

 

17세기 이래 서구 과학계를 지배해온 데카르트적 사고의 틀에서는 인간 몸을 동물 몸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자동기계로 생각하며 마음과 몸을 이원론으로 구분하였다. 현재의 신경과학에서는 마음이나 의식은 뇌의 신경적 활동 과정으로 모두 설명될 수 있다고 보는 물리주의적 입장이 지배적 관점이기는 하지만, 그 밑바탕에는 몸과 마음을 이분법으로, 또 생각의 주체와 그 대상인 객체를 이분법으로 나누는 데카르트 식 관점이 아직 자리잡고 있다.

 

그런데 지금, ‘마음 = 뇌’라는 우리의 단순한 생각을 과감하게 넘어서려는 움직임이 학계에서 태동하고 있다. 그것이 철학자들만의 이야기라면, 철학자들이 그러한 난해한 이야기를 또 하는가 보다고 생각하며 그냥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지금 상황은 그렇게 쉽게 넘어갈 수 없다. 그 이유는 이런 논의를 최근에 다시 전개하도록 촉발한 사람들이 철학자가 아닌 인공지능학자, 로보틱스 연구자, 물리학과 인지과학을 연결하려는 연구자 등이라는 데에 있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미디어랩 팀’의 주된 연구자인 로드니 브룩스 교수는 과거의 데카르트 식 틀로는 제대로 된 인공지능 시스템이나 로봇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을 절감하였다. 그는 내장된 프로그램과 로봇의 몸과 환경의 3자가 밀접히 연결된 새로운 개념이 필요하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체화된 마음’은 뇌와 마음을 다 들여다볼까?
3_두뇌 » 그림 / 한겨레 김영훈 기자

공학자들의 강한 주장에 힘을 얻은 철학자들은 과거의 현상학적 철학 전통에서 이야기하던 개념들을 다시 꺼내어 되생각하고 가다듬어 발전시키기 시작했다. 몸-환경-활동의 중요성을 이미 이야기하였던 스피노자, 하이데거, 메를로퐁티 등의 생각을 되살려, 마음, 의식, 존재 개념들을 다시 구성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마음이라는 개념을, 나의 ‘뇌를 넘어서’ 몸-환경과 통합적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나의 마음은 나의 뇌 안의 신경적 활동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뇌-몸-환경이 서로 괴리될 수 없는 통합적 활동의 단위로서 작동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틀을 바꾸어 놓고 보면 주부 김씨의 키보드 이야기나 육필 등의 이야기가 쉽게 이해된다.

 

철학이나 인지과학에서 ‘체화된(embodied) 마음’ 또는 ‘체화된 인지‘로 불리는 이런 ‘마음’ 개념 재구성의 사조는 단지 철학, 신경과학뿐만 아니라, 인문학과 사회과학 전반, 인공지능, 로보틱스, 인간 관련 공학적 디자인, 광고와 매스컴,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녹색생태환경 조성 정책 등에까지 영향을 끼치리라 생각된다. 미래 과학기술을 위해 인문사회과학, 자연과학, 공학이 수렴되고 융합되어야 하는 이유 하나를 여기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다.

 

‘마음 = 뇌’라는 식의 우리의 생각이 수정되지 않는 한, 인류는 마음, 인간, 그리고 인간-환경 상호작용의 본질을 왜곡하여 이해하는 채로 남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녹색 생태환경 지향 미래사회가 벗어나야 할 생각 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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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모

 

 

 

이정모 교수

성균관대 심리학과/인지과학협동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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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2- '2020 과학'을 내다보는 2020년의 열 가지 시선 (9~12일 연재)

1.생명과학 |  DNA 읽기 시대에서  DNA. 작문 시대로 (김진수 서울대 교수)

2. 과학과 사회 | '왕자'와 '잠자는 미녀'의 관계 벗어나기 (이영희 가톨릭대 교수)

3. 과학문화 | 새로운 과학, 새로운 스토리텔링의 등장 (김용석 영산대 교수)

4.인지과학 |  뇌, 몸, 환경은 하나라는 강한 외침이… (이정모 성균관대 교수)

5. 나노기술 | 들뜬 기대 접고 현실의 혁신에 도전 (현택환 서울대 교수)

6. 우주와 물질 | 지상최대의 실험…물리학은 수능시험 중 (이종필 고등과학원 연구원)

7. 과학정책 |열쇳말,  '성장'에서 '삶의 질'로 (박상욱 과학기술정책학 박사)

8. 지구환경 | 지구공학의 '플랜B'가 지구 살릴 대안이 될 것인가? (오재호 부경대 교수)

9. 두 문화 | 과학과 인문학, 더 넓은 세상에서 자연스런 만남을 (홍성욱 서울대 교수)

10. 기초과학 | 한국과학 '창조적 기초체력'은 갖췄나? (민경찬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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