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강의 "뇌영상과 정신의학"

현직 정신과 의사인 필자가 최근 뇌영상과 정신의학 연구의 성과를 아우르며 뇌영상에 바탕을 둔 정신질환 해설에 나선다. 정신질환에 대해 여전히 큰 편견과 오해를 풀어주고자 한다.

쉬고 있지만 쉬지 않는 뇌

[16] 뇌의 내정상태(디폴트 모드) 회로


그런데 쉬어야 하겠다는 생각과 달리 뇌는 쉬지 않으며 여전히 많은 양의 에너지를 소모한다. 물론 호흡이나 심장 박동을 조절하는 뇌 영역은 절대 쉬지 않는다. 이런 생명 유지 활동 이외에도 뇌는 여전히 몸의 휴식과 무관하게 계속 활동하며 많은 혈액이 뇌로 공급된다. ‘리쌍’의 노래 제목을 빌려보면 뇌는 휴식 중에 이렇게 노래하는 것이다. “내가 쉬는 게 쉬는 게 아니야.”

00default1.jpg » 귀스타브 카유보트의 ‘낮잠’. 출처/WikiArt


중 앞에 12년 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한 피아노 연주자의 복귀 연주회가 카네기홀에서 1965년 5월 9일 열릴 예정이었다. 그가 직접 연주하는 것을 더 이상 못 보리라 여겼던 많은 사람들이 이 소식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매표 시작 이틀 전부터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고 길고 긴 줄이 카네기홀 매표소에서 서쪽 57번가로 이어져 6번 도로 모퉁이를 돌아 다음 교차로까지 이어졌다. 공연 당일에는 일반인뿐 아니라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레너드 번스타인, 레오폴드 스토코브스키, 루돌프 누레예브 같은 많은 예술가들이 이 연주자를 보러 카네기홀에 모여들었다.


역사적인 날, 이윽고 연주자가 무대에 나타나자 우뢰와 같은 박수가 이어졌다. 연주자가 피아노 앞에 앉고 심호흡을 하며 자세를 가다듬자 관객들 사이에는 묘한 적막감과 함께 12년의 휴식 기간에 연주자의 실력이 퇴보하지 않았을까 하는 걱정이 맴돌았다. 연주자도 긴장한 듯 프로그램의 첫 곡인 바흐-부조니의 <토카타> 첫 부분에서 건반을 한 차례 잘못 짚었다. 그러나 이후에는 완벽한 기교와 표현력으로 관객들의 마음을 홀렸고 이전보다 더 아름답고 강렬해진 2시간 여의 연주가 끝나자 객석은 감동의 도가니가 되었다.


[호로비츠의 역사적인 복귀 연주회의 첫 곡, 바흐-부조니의 토카타]


00default2.jpg » 영화 ‘호로비츠를 위하여’. 출처/씨네21 자료사진 이 전설적인 복귀 무대의 주인공은 바로 러시아 출신 피아노 연주자 블라디미르 호로비츠(Vladimir Horowitz)였다. 그는 바흐, 모짜르트와 같은 고전주의 음악부터 쇼팽, 슈만과 같은 낭만주의 음악을 거쳐 스카를라티와 같은 현대 음악까지, 다루는 음악마다 천의무봉의 연주 실력을 보인 것으로 이름이 높았다. 음악에 대한 그의 완벽주의는 연주 활동을 하는 동안 짧을 때는 1-2년, 길 때는 무려 12년에 이르는 휴식으로 나타났다. 다행히 휴식을 마치고 돌아온 그의 복귀 무대는 늘 이전보다 더 뛰어난 표현과 깊어진 색채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오랜 동안 아름다운 연주를 들려준 그의 연주 능력은 (비록 많은 팬의 애간장을 태우긴 했지만) 어쩌면 연주 생활 중간중간에 있었던 휴식에서 비롯했을지 모른다. 물론 호로비츠가 휴식 기간에 피아노 연주까지 손 놓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대중 앞에 서지 않는 휴식이었을 뿐 오히려 자신을 극한의 영역까지 몰아붙이는 그만의 연습은 끝이 없었다. 이처럼 휴식 같지 않은 휴식이 그를 전설적인 피아노 연주자로 만들었는데, 사후 그의 이름은 지구 반 바퀴를 돌아야 갈 수 있는 먼 나라 한국에서 영화 제목에 걸리기도 했다.



“내가 쉬는 게 쉬는 게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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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고 있지만 쉬지 않았던 ‘호로비츠의 휴식’과 유사한 기관이 인간 몸에도 있다. 바로 뇌이다. 흔히 사람들은 머리를 많이 쓴 뒤에 심한 피로를 느끼며 쉬어야 하겠다는 말을 하곤 한다. 예를 들면 고전 음악에 친숙하지 않은 사람이 호로비츠의 역사적인 복귀 공연을 소개한 앞부분을 읽은 뒤 머리가 아파오며 “아이쿠, 안 그래도 지루한 글 조금 쉬었다가 읽어야겠네”라며 휴식을 취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쉬겠다는 목표와 달리 뇌는 쉬지 않으며 여전히 많은 양의 에너지를 소모한다. 물론 호흡이나 심장의 박동을 조절하는 뇌 영역은 절대 쉬지 않는다. 아니 쉬어서는 안 된다. 이 영역이 활동을 멈추는 것은 곧 인간의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곳을 제외해도 여전히 뇌는 휴식과 무관하게 계속 활동하며 이를 위해 많은 혈액이 여전히 뇌로 공급된다. 그룹 ‘리쌍’의 노래 제목을 빌려보면 뇌는 휴식 중에 이렇게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쉬는 게 쉬는 게 아니야.”


식 중에 뇌가 사실은 휴식을 취하지 않는다는 주장은 1995년 미국의 버랏 비스월(Bharat Biswal)에 의해 처음 제기되었다.[1] 그는 3년 전 지도교수한테서 당시 걸음마를 막 띄기 시작한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에 관한 논문 한 편을 건네받은 뒤 기능적 자기공명영상이 양전자단층촬영(PET)보다 해상도가 높은 것을 밝히는 것을 박사학위 논문의 주제로 정하게 되었다. 사실 그가 대학원에 들어온 이유는 경력을 추가해 이전에 근무하던 회사에서 좋은 자리를 얻는 것이었지만 그의 발견은 소박한(?) 개인적 바람을 뛰어넘어 훗날 학계 전체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의 연구 결과를 살펴보기에 앞서 기능적 자기공명영상의 기본 원리를 알아보도록 하자. 신경과학자들은 기능적 자기공명영상을 통해 특정 감정, 지각, 행동이 뇌의 어떤 영역과 연관되는지를 콕 집어내고 싶어한다. 예를 들어 소리 내어 글자를 읽는 것과 관련된 뇌 영역을 찾는 실험을 한다고 생각해보자. 이를 위해 피실험자가 먼저 “한겨레”를 소리 내어 읽도록 하고 이어서 “한겨레”를 조용히 눈으로만 보도록 한다. 연구 용어로 전자를 ‘과제 조건(task condition)’, 후자를 ‘통제 조건(control condition)’으로 바꿔 부를 수 있다. 촬영이 끝난 뒤 얻은 과제 조건 영상의 화소에서 통제 조건 영상의 화소를 뺀 뒤에 여전히 남아 “반짝이는” 곳이 바로 실험에서 찾고자 하는 뇌 영역이 된다.


기능적 자기공명영상은 일명 ’볼드(BOLD; Blood oxygenated level dependent, 혈액 속에서 산소를 운반하는 헤모글로빈 양의 변화)’ 신호를 통해 뇌의 활동 변화를 감지한다. 근육과 마찬가지로 뇌 신경세포도 활동이 증가할 때 더 많은 혈액과 산소를 사용하는데 기능적 자기공명영상에서는 볼드 신호를 통해 산소량이 증가한 곳이 활성화한 것으로 판단하게 된다. 그런데 영상과 영상 사이의 단순한 뺄셈만으로는 선명한 결과물이 얻어지지 않았는데, 비스월의 과제가 바로 영상 신호의 배경에 있는 잡음(noise)을 제거해 해상도를 높이는 것이었다.

00default3.jpg » 기능적 자기공명영상을 통해 얻은 영상을 확인하고 있는 한 연구자. 출처/Wikemidia Commons

음에 비스월은 호흡과 심장 박동에서 오는 신호를 잡음의 원인으로 여기고 이를 걸러냈지만 영상에 끼치는 영향은 미미했다. 오히려 잡음의 대부분은 뇌 바깥이 아닌 뇌 안쪽에서 나오는 느린 주파의 파동이었다. 그는 이 잡음을 버리는 대신 의문을 품고 그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뇌가 쉬는 동안 뇌에서 오른손을 조정하는 영역의 잡음이 왼손을 조정하는 영역의 잡음과 서로 일치하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이 결과를 뇌가 쉬는 중에도 두 영역은 기능적으로 연결되어 의미 있는 활동을 지속하는 것으로 해석했다.


비스월의 발견이 학계에서 받아들여지기까지 그 과정은 쉽지 않았다.[2] 1994년 1월 유명 학술지에 투고한 첫 원고는 곧바로 거절당했다. 이에 그는 원고를 대폭 수정한 뒤 게재 가능성을 고려해 <자기공명 의과학(Magnetic Resonance in Medicine)>에 다시 투고했다. 다행히 이번에는 거절당하지 않았지만, 바로 통과되지도 않았다. 원고를 검토한 심사위원들은 원고에서 그의 발견을 뒷받침하는 설명이 부족하다며 내용 보완을 주문했다. 이후 투고, 수정, 재투고의 과정을 네 차례 거친 뒤에야 비스월의 발견은 정식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다.


그러나 당시 학계가 처음부터 ‘쉬고 있지만 쉬지 않고 있는 뇌’의 개념을 쉽게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많은 학자들이 휴식 중에 관찰된 뇌의 활동이 사실은 측정 오류이거나 기술적인 문제일 것이라며 회의적인 입장을 보였다. 이들은 뇌가 쉬고 있을 때 역설적으로 나타나는 활성화 양상을 여전히 촬영 중에 발생한 잡음으로 여겼던 것이다. 뇌의 휴식 중 나타나는 잡음을 둘러싼 학계의 잡음은 수 년이 지난 뒤에 한 기념비적 연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지속되었다.



뇌의 기본 설정, 내정상태 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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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의 휴식 아닌 휴식과 관련해 2001년 미국의 마커스 레이클(Marcus Raichile) 교수는 ‘내정상태 회로(default mode network; DMN)’라는 개념을 제안했다.[3] 1990년대 중반 레이클 교수는 양전자단층촬영을 이용해 언어와 관련된 뇌 영역을 찾는 연구를 시행하다가 의아한 상황에 맞닥뜨렸다. 피실험자가 과제를 수행하고 있을 때 뇌의 특정 영역에서 활성도가 감소한 것이다.


구진은 예측하지 못한 결과에 당황했지만, 이것도 엄연한 발견이었기에 이곳을 ‘신비로운 내측 두정 영역(medial mystery parietal area; MMPA)’으로 명명했다. 이후 추가 연구를 통해 이곳뿐 아니라 몇몇 다른 영역에서도 뇌가 무엇인가를 하기 전까지는 부지런히 활동하다가 과제를 수행하기 시작하면 그 활동이 감소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연구진은 1998년 이런 결과를 학술지에 투고했으나 심사 과정에서 탈락했다. 한 심사위원이 연구진의 자료에 오류가 있는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4]


많은 연구자들이 휴식 중에 나타나는 뇌의 활성화 양상을 잡음 혹은 실수로 여기는 기존 사고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레이클 교수 연구진은 과거 통념으로 설명되지 않는 새로운 비밀을 풀려는 노력을 이어 나갔다. 이들은 이전에 별 생각 없이 지나쳤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기존 연구 자료를 추가로 분석했고 그 결과 내정상태 회로라는 새로운 개념을 발견한 것이다.


레이클 교수의 연구 결과를 살펴보기에 앞서 ‘디폴트(default)’라는 단어를 잠깐 짚고 넘어가자. 왜냐하면 현재 내정상태 회로,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 이렇게 두 용어가 혼재되어 사용될 뿐 아니라, 디폴트 모드도 기초값 상태, 기본 모드, 초기 설정 등으로 국어와 영어가 마구 섞여 사용돼 혼란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또한 디폴트라는 단어가 개인의 전공이나 관심사에 따라 생소하게 다가올 수 있으니 뜬금없긴 하지만 잠깐 영어 공부를 해보자.


경제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들에게 디폴트는 ‘채무 불이행’으로 다가온다. 반면 정보기술(IT)에 친숙한 사람들에게는 디폴트가 기계나 프로그램의 ‘초기값’ 혹은 ‘초기 설정’을 의미한다. 디폴트의 정체는 무엇일까? 사전을 찾아보면 어떤 일이 ‘디폴트로(by default)’ 발생하면 무엇인가를 바꾸기 위해 아무 것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스포츠에서 ‘디폴트로’ 이기면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이기는 것, 즉 부전승이 된다. 따라서 ‘채무 불이행’도 돈을 갚아야 하는 데 갚지 않아 발생하는 상황을 의미하고, ‘초기값’ 역시 사용자가 변경하기 전에 제조사가 출고할 때 설정한 방식을 뜻하게 된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뇌의 디폴트 모드, 즉 내정상태는 뇌가 무엇인가 할 때에는 활동이 감소했다가 쉬는 중에는 다시 활동이 증가하는 일종의 기본 설정을 의미하는 것이다. 한글로 번역하면 다소 생소할 수 있지만 영어로는 한 순간에 의미가 와 닿는 레이클 교수의 작명 솜씨는 매우 뛰어난 것으로 보인다.


다시 레이클 교수의 연구 결과로 돌아오자. 연구진은 이전 연구에 사용된 세 집단의 양전자단층촬영 영상 자료를 재분석하는 방법을 택했다. 이를 통해 휴지 상태(resting state)에서 활성화한 뇌 영역이 과제를 수행할 때에는 비활성화하는데 이런 양상이 과제 수행과는 관련이 없음을 밝혀냈다. 구체적으로 이 영역은 후측 대상피질(posterior cingulate cortex), 쐐기전소엽 (precuneus)의 중심부와 내측 전전두피질(medical prefrontal cortex; MPFC)의 중심부인 것으로 밝혀졌다.

00default4.jpg » 위 :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과제를 수행 할 때 나타나는 내정상태회로의 비활성화. 아래 : 휴식을 취할 때 반대로 활성화하는 내정상태회로. 출처/각주[3]

측 대상피질과 인접한 쐐기전소엽은 주변에 관한 정보를 지속적으로 수집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그리고 내측 전전두피질, 특히 복측(ventral) 영역은 감정을 처리하는 곳으로 외부의 다양한 감각 정보를 받고, 동기와 정서를 주로 담당하는 변연계(limbic system)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뇌가 깨어 있지만 집중을 요하는 과제와 연관이 없을 때에는 뇌의 안팎에서 발생한 정보를 수집하고 평가하느라 내정상태 회로가 활성화하고, 반대로 뇌가 특정 과제에 관심을 쏟아 부을 때에는 활동이 감소하는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 레이클 교수가 논문에서 인용한 것처럼 내정상태 회로는 일종의 파수꾼(sentinel)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다.

00default5.jpg » 영화 '매트릭스(The Matrix)'에서 인간 활동을 탐지하는 일을 맡아 하던 센티넬. 출처/Wikimedia Commons



휴식 중의 뇌에 대한 새로운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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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클 교수가 내정상태 회로의 개념을 제안하고서 2년 뒤에 미국의 그레이셔스(Greicius) 교수는 기능적 자기공명영상을 이용해 내정상태 회로에 관여하는 뇌 영역들 사이의 기능적 연결성(functional connectivity)을 보여주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5] 다시 말해 휴지 상태, 즉 뇌가 쉬고 있을 때 여러 영역이 비록 인접해 있지 않지만 기능적으로는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밝힌 것이다. 이 연구의 특징 중 하나는 피실험자가 4분 동안 눈을 감은 채 특별한 생각을 하지 않고 가만히 누워 있도록 한 뒤 내정상태 회로를 확인한 점이다. 쉽고 편리한 연구 방법이 소개된 뒤 관련 연구는 거침없는 질주를 시작했다.


00default6.jpg » 뇌의 휴지 상태 시 기능적 연결성을 다룬 논문 수의 증가 추세. 출처/각주[7] 그러나 일부 학자들은 여전히 내정상태 회로의 존재에 대한 근원적 의구심을 떨쳐내지 못했다. 기능적 자기공명영상을 이용한 방법은 뇌의  전기적 활동을 직접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혈류의 변화를 통해 간접적으로 측정하는 것이기에, 휴지 상태의 뇌에서 흘러나오는 느린 주파의 파동은 여전히 기계 혹은 호흡이 만들어낸 잡음일 수 있었다. 그러나 같은 해 영국의 클라인슈미트(Kleinschmidt) 교수가 기능적 자기공명영상과 함께 뇌파(EEG)를 이용해 내정상태 회로가 실제 뇌세포의 활동임을 입증하자[6] 논쟁의 추는 한쪽으로 급격히 기울었다. 달리던 말이 날개마저 얻은 격이 되자 내정상태 회로에 관한 연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양한 연구 결과가 축적되면서 내정상태 회로가 어떤 역할을 담당하는지도 더 많이 밝혀졌다. 일부 학자들은 내정상태 회로를 일종의 ‘대기 상태’로 여긴다. 뇌가 어떤 과제를 수행할 때마다 매번 이렇게 할지 저렇게 할지를 결정하는 것은 매우 힘이 든다. 하지만 다음에 무슨 일이 발생할지를 짐작하는 구조가 있다면 뇌는 모든 것을 계산할 필요가 없게 된다. 뇌자도(magnetoencephalography; MEG)를 이용해 내정상태 회로를 연구하는 미국의 코베타(Corbetta) 교수는 이를 차가 예열돼 있으면 시동을 건 직후보다 더 빨리 출발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비유했다.[8]


그리고 내정상태 회로는 자아 성찰, 즉 자신을 되돌아보고 자신에 대해 고민하는 것과 밀접하게 연관된 것으로 여겨진다.[9] 내정상태 회로를 이루는 영역 중 쐐기전소엽의 주요 기능 하나가 마음 속에 여러 장면과 사건을 떠 올리는 방법을 통해 자아를 성찰하는 것이다. 또 다른 영역인 해마는 자서전적 기억의 형성과 재생에 관여하는데, 자신을 되돌아볼 때 내정상태 회로는 이 기억을 미래로 투사해 먼 훗날의 자신을 상상하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는지를 파악하는 것에도 내정상 태회로가 관여하는 것으로 보인다.[10] 이를 흔히 마음 이론(theory of mind; ToM)이라 하는데, 이것이 잘 발달한 사람은 상대의 마음을 잘 이해하고 공감하며 나아가 이면의 동기까지 읽을 수 있다. 반면에 마음 이론을 잘 갖추지 못한 사람은 자신의 관점에서만 상대를 파악하기 때문에 역지사지를 잘 못하게 된다. 실제 내정상태 회로의 일부인 내측 전전두피질이 마음 이론에 크게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울러 내정상태 회로와 정신 건강의 관련성을 살펴보는 연구도 활발해졌다. 예를 들면 한 연구에서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autism spectrum disorder; ASD) 환자 뇌의 내정상태 회로 활성도가 감소한 것으로 보고했다.[11] 자폐 스펙트럼 장애 환자는 다른 사람과 소통을 잘 하지 못하고 관계 맺는 것을 어려워하는데 이는 마음 이론에 관여하는 내정상태 회로의 이상 때문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반대로 조현병(정신분열증) 환자에서는 내정상태 회로가 과도하게 활동하고 지나치게 많이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12] 조현병 환자가 외부 자극을 처리할 때 내정상태 회로의 이상으로 내부의 생각이나 감정을 제대로 조율하지 못하면서 현실과 환상을 구분하지 못하게 되는 것으로 추론된다.



바쁜 현대인, 그래도 휴식이 필요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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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에 아카데미상 4개 부문을 수상한 <불의 전차(Chariots of Fire)>라는 영화가 있다. 실제 육상 선수인 해롤드 에이브러햄과 에릭 리들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로, 두 선수는 1924년 파리 올림픽에서 각각 100m와 400m에서 우승한 영국의 육상 영웅들이다. 이 영화는 아카데미 음악상을 수상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음악으로도 유명하다. 2012년 영국 올림픽 개회식 때 ‘미스터 빈’으로 유명한 코미디언 로완 앳킨슨이 패러디한 음악과 영상의 출처가 바로 이 영화였다.


[반겔리스의 전자 음악과 함께 시작되는 영화 <불의 전차>의 유명한 시작 장면]


화에서 리들은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평소 안식일을 지키라는 규율에 매우 충실했는데 문제는 올림픽 100m 경기에서 발생했다. 경기가 일요일에 열리자 그는 여러 사람의 만류와 심지어 황태자의 권유를 뿌리치고 이 경기를 포기한다. 하지만 동료의 양보로 다른 날 출전한 400m  경기에서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지나치리만큼 철저하게 안식(휴식)을 취했지만 결국 소망하던 목표를 성취한 그의 삶은 종교적 의미를 떠나 지나치게 바빠 휴식 시간마저 건너 뛰는 현대인의 삶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철학자 한병철은 현대인이 성과사회에서 “우리는 할 수 있다(Yes, We can)”라고 외치며 성과를 올리기 위해 탈진할 정도로 노력하다 결국 자기 착취에 이른다고 언급한 바 있다.[13] 우리의 모습은 어떤가? 2013년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의 노동시간은 연간 2163 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의 평균 노동시간 1770시간보다 월등히 길며, 멕시코의 2237시간 다음으로 길다.[14] 일하지 않을 때에도 “OO에 미쳐라”란 제목의 책들이 넘쳐나는 것에서 쉽게 짐작할 수 있듯이 자기 개발에 매진하느라 휴식 시간을 가질 여유가 없다. 휴가마저 여름에 짧은 시간 동안 전투처럼 해치우고 오는 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바쁜 와중에 틈을 내어 어느 영화 제목처럼 “그래, 가끔은 하늘을 보자” 하고 싶어도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로 우리의 뇌는 휴식을 거의 취하지 못하고 있다. 여러 전자기기를 통해 쏟아지는 전지구적 정보와 끊임없이 도착하는 전자우편, 모바일 메시지를 처리하느라 뇌가 늘 분주한 것이다. 문제는 과다한 정보와 지속적인 자극으로 인해 뇌가 쉬지 못하면 내정상태 회로가 활성화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내정상태회로가 딴 생각을 할 때뿐 아니라 과거를 회상하고, 미래의 계획을 상상하며, 다른 사람의 관점을 고려하는 자기 투사(self-projection)에 관여하는[15] 것을 고려한다면, 현대인이 제대로 쉬지 못하는 것은 신경과학의 관점에서 매우 우려되는 일이다.


방에서 살다가 처음 서울에 올라왔을 때 높은 건물과 교통 정체보다 시선을 더 끌었던 광경은 지하철 역에서 빠른 속도로 뛰어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처음에는 무척 어색하고 의아한 광경이었지만 시간이 지나자 나 역시 그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고, 지금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혹 실제 바빠서가 아니라 바쁘지 않으면 불안해지는 일종의 강박에 빠진 것은 아닐까? 아니면 분주하지 않으면 뒤쳐지는 느낌이 들어 불안한 것은 아닐까? 오늘 퇴근길에는 지하철 역에서 천천히 걷고, 책이나 스마트폰은 잊은 채 “멍 때리면서” 하루 종일 활동하지 못했던 내 뇌의 내정상태 회로를 활성화해야겠다.


[주]


[1] Biswal, B., et al., Functional connectivity in the motor cortex of resting human brain using echo-planar MRI. Magn Reson Med, 1995. 34(4): p. 537-41.

[2] Biswal, B.B., Resting state fMRI: a personal history. Neuroimage, 2012. 62(2): p. 938-44.

[3] Raichle, M.E., et al., A default mode of brain function. Proc Natl Acad Sci USA, 2001. 98(2): p. 676-82.

[4] Raichle, M.E., The brain‘s dark energy. Sci Am, 2010. 302(3): p. 44-9.

[5] Greicius, M.D., et al., Functional connectivity in the resting brain: a network analysis of the default mode hypothesis. Proc Natl Acad Sci USA, 2003. 100(1): p. 253-8.
[6] Laufs, H., et al., Electroencephalographic signatures of attentional and cognitive default modes in spontaneous brain activity fluctuations at rest.  Proc Natl Acad Sci USA, 2003. 100(19): p. 11053-8.

[7] Birn, R.M., The role of physiological noise in resting-state functional connectivity. Neuroimage, 2012. 62(2): p. 864-70.

[8] http://www.nature.com/news/neuroscience-idle-minds-1.11440.

[9] Moran, J.M., T.F. Heatherton, and W.M. Kelley, Modulation of cortical midline structures by implicit and explicit self-relevance evaluation. Soc Neurosci, 2009. 4(3): p. 197-211.
[10] Spreng, R.N. and C.L. Grady, Patterns of brain activity supporting autobiographical memory, prospection, and theory of mind, and their relationship to the default mode network. J Cogn Neurosci, 2010. 22(6): p. 1112-23.

[11] Kennedy, D.P., E. Redcay, and E. Courchesne, Failing to deactivate: resting functional abnormalities in autism. Proc Natl Acad Sci USA, 2006. 103(21): p. 8275-80.

[12] Whitfield-Gabrieli, S., et al., Hyperactivity and hyperconnectivity of the default network in schizophrenia and in first-degree relatives of persons with schizophrenia. Proc Natl Acad Sci USA, 2009. 106(4): p. 1279-84.

[13] 한병철, 피로사회. 2012: 문학과지성사.

[14] http://stats.oecd.org/Index.aspx?DataSetCode=ANHRS.

[15] Buckner, R.L. and D.C. Carroll, Self-projection and the brain. Trends Cogn Sci, 2007. 11(2): p. 49-57.


최강 의사, 르네스병원 정신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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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 의사, 서울명병원 정신과 과장
우울하던 의과대학 시절에 운명처럼 찾아온 정신과학과 여전히 연애 중인 정신과 의사. 환자들과 이야기 나누는 것을 좋아하고 정신과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줄이고자 늘 고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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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터리에만 있지 않아요’…정신질환 치료물질 ‘리튬’‘배터리에만 있지 않아요’…정신질환 치료물질 ‘리튬’

    뇌영상과 정신의학최강 | 2017. 07. 10

    [37] 리튬 환자들과 대화를 나누는 일은 늘 흥미롭다. 특히 조증으로 입원한 양극성 장애 환자를 대할 때에는 감정의 전염성(mood infectivity)으로 인해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질 때가 많다. 수련 받던 병아리 의사 시절에 한 환자와 나눴던 ...

  • 때론 조울증에 창조성도 있다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때론 조울증에 창조성도 있다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뇌영상과 정신의학최강 | 2017. 05. 17

    [36] 양극성장애, 가벼운 또는 심각한…1991년, 이범학이라는 신인 가수가 혜성처럼 등장했다. 데뷔곡 <이별 아닌 이별>이 큰 인기를 얻으면서 그는 <가요톱텐>에서 5주 연속 1위에 올랐고, 각종 시상식에서 신인상을 휩쓸었다. 훤칠한 ...

  • ‘강속구·변화구 칠까 말까’ 0.15-0.25초 타자의 뇌 반응‘강속구·변화구 칠까 말까’ 0.15-0.25초 타자의 뇌 반응

    뇌영상과 정신의학최강 | 2017. 03. 27

    [35] 타격의 비밀 2017 프로야구 시즌이 이번 주 토요일인 3월 31에 시작한다. 비록 세계대회인 ‘월드베이스 볼 클래식(WBC)’에서 죽을 쑤긴 했지만 올해에도 변함없이 많은 사람이 야구장을 찾아 경기를 즐기리라 예상된다. 누가 뭐라 해도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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