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위험사회 이론' 울리히 벡 교수 인터뷰

::: 사회 속 과학, 소통의 현장 (8, 마지막회)




우병, 구제역, 고엽제,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 최근 한국 사회에서는 위험사회의 징후가 부쩍 잦아지고 있다. 과학기술이 의도치 않게 잉태한 위험들이다. 위험시대에 정부와 과학자는 안전하다고 강조하고, 시민들은 이를 믿지 못하고 거리로 뛰쳐나오는 갈등도 발생한다.


‘위험사회’ 이론으로 유명한 세계적인 사회학자 울리히 벡(67, 사진) 독일 뮌헨대 교수를 최근 그의 연구실이 있는 뮌헨의 사회학연구소에서 만나 한국의 위험사회 양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광우병 사태 때 거리시위가 벌어지는 등 시민들이 정부와 과학을 믿지 못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라며 △투명한 정보 공개를 통한 정부·기업의 신뢰 확보 △1차 근대를 뛰어넘는 성찰적 과학의 필요성 등을 역설했다.


울리히 벡은 방사능, 기후변화, 유전자조작식품 등 과학기술이 야기한 위험 요소에 대해 사회적 중재를 시도하는 등 사회 참여를 게을리하지 않는 학자로도 유명하다. 지난 3월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 직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소집한 ‘안전한 에너지 공급을 위한 윤리위원회’에 참가해 원전 폐쇄 결정을 이끌어내는 데 일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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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기업의 투명한 정보공개,


위험사회 관리의 지혜”





-후쿠시마 사고 직후 우리는 다시 위험사회 속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이 사고가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가?


“원자력발전소에서 사고가 일어났을 때 어떻게 위험이 세계화되는지를 잘 보여줬다. 요즈음 위험사회는 글로벌화되어 가고 있다. 후쿠시마 사고는 전세계 안방으로 실시간 중계됐다. 세계인이 후쿠시마에서 연기가 치솟는 걸 목도하면서 동시에 위협을 느끼지 않았나? 위협을 느끼는 만큼 피해는 초국적이다. 현대사회에서 위험은 동시적이고 전세계적이다.”



-독일은 후쿠시마 사고 직후 ‘안전한 에너지 공급을 위한 윤리위원회’를 소집해 탈핵 결정을 이끌어냈다. 세계는 이런 독일의 결정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독일에서는 후쿠시마 사고가 큰 이슈가 될 수밖에 없었다. 체르노빌 방사능 낙진을 직접 경험해 사회적으로 탈핵 요구가 드센 상황이었다. 여기에 1990년대 적록연정 때 이미 원전 폐쇄를 결정한 바 있다. 그런데 지난해 메르켈 총리가 원전의 수명연장을 결정해 이를 둘러싼 정치적 논쟁이 치열한 상황이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논쟁은‘원전을 폐쇄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언제 원전을 폐쇄하느냐’는 시점의 문제였을 뿐이다.”



-한국은 여전히 원전에 대한 논쟁이 ‘안전하다’, ‘안전하지 않다’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독일과 한국·일본은 다른 사회적 처지에 놓여 있다. 독일은 원자력의 위험성에 대해 성찰하면서 대안을 고민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재생에너지 사용 비율이 높아 탈핵이 재생에너지 산업의 수출 증대 기회로 인식되고 있다. 위험에 대해 얘기하면서 원전의 위험을 낮추자고 하는 게 아니라 아예 새로운 방향을 얘기하고 있는 거다. 위험에 대해 성찰하면 어느 정도 문제의 해결이 가능하다. 물론 전력의 30% 이상을 원자력에서 얻는 일본이나 80% 이상을 얻는 프랑스에서 다른 대안을 고민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특히 일본은 원자폭탄을 경험한 나라다. 원자폭탄이나 원전이나 똑같은 기술을 이용하는데 정작 원전에 대해선 위험하다고 생각지 않는다. 문화적인 기제를 통해 두 위험이 분리돼 인식됐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와 과학자들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직후 ‘안전하다’는 말을 유난히 강조했다. 하지만 국민들은 이를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았다. 2008년 광우병 사태 때에는 수많은 시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왔다.


“위험사회에서 일어날 수 있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원전의 경우도 한국처럼 원자력 기술을 육성해 원전을 수출하려 하면, 당연히 정부는 원전이 안전하다고 말할 것이다. 이런 배경을 알고 있기 때문에 국민이 정부를 신뢰하지 않는 것이다. 프랑스도 마찬가지다. 핵무기 개발을 추진하면서 원전을 확대해왔지만 국민 절반은 원전을 반대하고 못미더워한다.”



00comment-전문가의 문제도 있다. 한국에서는 원자력에 반대하는 기술자나 교수가 적다. 이를테면 후쿠시마 사고 직후 열린 텔레비전 토론회를 보면, 찬핵 쪽에서는 원자력을 전공한 교수가 나오지만 반핵 쪽에선 환경단체 활동가가 나온다. 국민들에게 과학은 원자력 기술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인다.


“원자력 기술자들은 무조건 안전하다고 얘기하는 경향이 있다. 최근 들어 이런 분위기는 바뀌고 있다. 과거에는 원자력 전문가들만 원전을 다뤘지만 최근에는 비전문가 그리고 원전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다룬다. 미디어도 이제 반대편의 얘기도 전하고 있다. 특히 이들이 원전 이외의 대안을 얘기하면서 무게중심이 반대 쪽으로 넘어왔다. 과학은 예전처럼 유일하고 불편부당한 진리가 아니다. 입장에 따라 다르고 당파적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2008년 광우병 사태나 지난 3월 후쿠시마 사고 때 정부와 주류 과학자는 광우병에 걸릴 확률이나 방사능으로 죽을 확률이 번개에 맞을 확률보다 적다면서 이런 위험에 대한 공포가 과장됐다는 논리를 펴곤 했다.


“많은 나라에서 비슷한 상황이 전개된다. 생각해보자. 사건은 순간이다. 하지만 사건이 몰고오는 여파도 있다. 체르노빌 사고로 얼마나 죽었느냐는 물음에 적게는 48명에서 많게는 100만명까지 이른다는 대답이 있다. 그럼 피해의 범위를 어디까지 볼 것인가? 이를테면 후쿠시마 사고로 인해 엄마 뱃속의 태아가 피폭됐을 때, 이 태아가 커서 배우자를 찾을 때 쉽겠는가? 이것은 피해가 아닐까? 위험사회에서의 재앙은 어디까지 피해 시점을 잡을지가 논란거리다. 위험사회에서의 피해는 측정 불가능하고 지역적 경계가 없다.”



-이번 독일의 탈핵 선언을 성찰적 근대화의 일환으로 볼 수 있을까? 똑같은 후쿠시마 사고를 목도하고도 독일은 탈핵 선언을 했고, 한국은 오히려 원전 수출을 이야기한다. 독일의 탈핵 선언이 성찰적 근대화라면 어떤 요소가 한국의 성찰적 근대화를 지체시키고 있나?


“1차 근대화와 2차 근대화가 있다. 기술개발과 경제성장 그리고 양적인 안전을 추구한 게 1차 근대화다. 기술이 경제를 살리고 안전을 보장해줄 것이라고 믿던 시대다. 과학이 종교를 대신했고 과학자의 얘기는 신앙처럼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방사능, 유전자조작식품 등 과학기술이 야기한 불특정한 위험이 양산되기 시작했다. 2차 근대화 들어서 이제 사람들은 어떤 기술을 선택하고 무엇이 좋은지 성찰적으로 반응을 보인다. 이를테면 유전자조작식품에 대한 반응은 1차 근대와 2차 근대가 다르다. 과거에는 원전을 지지하는 전문가만 있었지만 이제는 이로부터 탈피해야 한다는 전문가도 나온다. 성찰적 근대화의 조건은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환경이 얼마나 보장되느냐의 여부다. 한국은 1차 근대화가 빚은 위험사회를 살고 있지만 동시에 성찰적 근대화도 진행되고 있다고 본다. 한국에서도 반핵운동이 활발해지고 있지 않나.”



-성찰적 근대화를 위해서 정부와 과학자, 시민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1차 근대에서 위험은 보험으로 해결됐다. 산업재해나 교통사고 등이 그러하다. 하지만 2차 근대에서는 보험으로 감당되지 않는 위험이 상존한다. 원전 사고를 맡아줄 보험업체는 없지 않은가? 위험사회에서 위험은 불특정적이고 초국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기업과 과학자 그리고 시민의 역할을 재규정할 필요가 있다. 스위스 바젤의 한 화학업체가 나를 초정한 적이 있었는데, 기술 수준이 높아져 피해가 줄어들고 있는데 주민들의 반대운동이 계속되고 있다고 하더라. 알아보니 이 업체는 경우에 따라 주민들에게 다른 정보를 제공하는 등 일관성이 없었다. 그래서 시민들의 신뢰를 얻지 못했던 것이다. 정부와 기업은 위험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바로 이것이 위험 관리의 사회적 지혜다. 공장의 유독가스로 피해를 본 바이에른주의 한 마을이 소송을 냈는데, 주민들이 피해의 인과관계를 입증하지 못해 패소했다. 이런 사건에서 흔히 주민들은 ‘이곳에서 살고 싶다’는 의지로 대응한다. 주민들도 기술적 지식을 쌓아서 대응해야 하고 (주류와) 다른 입장을 갖는 과학자들도 필요하다. 그래야 기업이나 정부와의 협상 과정에서 훨씬 문제를 잘 풀 수 있다.” [뮌헨/글·사진 남종영 기자] [기획 끝]




■ 위험사회란?


과학기술의 무한질주, 글로벌 위험사회 초래


1944년 독일에서 태어난 울리히 벡은 프라이부르크대학과 뮌헨대학 등에서 평생을 사회학자로 보냈다. 1992년에는 기념비적인 저서 <위험사회>를 썼다. 이 책에서 위험은 재난의 가능성, 즉 대중들이 위협을 느끼는 상태로 현실화된 재난과 구별된다.


울리히 벡은 2007년 <글로벌 위험사회>를 통해 위험사회를 세계적인 지평으로 확장했다. 이를테면 기존 위험사회에서는 방사능, 유전자조작식품 등 생태적 위기가 주요 위험이었다. 하지만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와 2001년 9·11 테러를 겪은 뒤, 그는 여기에 세계 금융위기와 테러 위협 등을 새로운 위험으로 추가했다.


현대사회는 이런 위험을 매개로 돌아간다. 방사능 유출이나 경제위기, 그리고 테러는 모두 돌출적으로 발생해 예측이 불가능하고 피해를 집계하기 힘든 특징을 보인다. 9·11과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전세계가 안방에서 지켜보았듯, 위험은 전세계에 동시에 전달돼 여러 나라와 시민이 연쇄적으로 반응한다.


영국 여권을 소지한 테러리스트들이 런던 히스로공항에서 액체 폭탄을 사용하려다 미수에 그친 사건이 있었다. 그 뒤 각국은 자국 공항에 액체 소지 금지 명령을 내렸고 순식간에 세계인의 일상에 영향을 미쳤다. 국가 정책은 테러를 방어하는 데 집중되고 반대로 테러 공포를 조장해 정권을 안정시킨다. 그린피스 같은 환경단체는 핵 위협과 기후변화를 옹호하는 기업에 대항하여 초국가적으로 싸운다. 유전자조작식품과 가축전염병의 공포는 무역정책에 반영돼 나라간 힘겨루기로 이어진다. 이렇듯 세계는 위험을 매개로 돌아간다.


울리히 벡은 과학기술의 무한질주가 이런 글로벌 위험사회를 빚어냈다고 본다. 이를 해결하려면 성찰적 근대화의 길을 가야 한다고 그는 주장한다. 과학에 내재된 물질적 욕망을 관리하고 사회와 소통해야 한다는 것이다. [남종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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