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 ‘촛불 정국’에 나타난 과학 담론의 사용

* 이 글은 필자가 도서출판 산책자의 원고청탁을 받아 지난해 봄에 쓴 글의 일부입니다.<그대는 왜 촛불을 끄셨나요>에 실린 글의 일부(전반부)를 이곳에 올립니다. 출판사에 송고했던 원고라, 교열편집된 출판물과 일부 다를 수 있습니다. -사이언스온


‘촛불 정국’에 나타난 과학 담론의 사용

오철우 한겨레신문 과학담당 기자  (2009년 봄 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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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 지식이 정치적 용도를 위해 생산되는 경우는 드물지만, 이에 비하면 어떤 과학 지식이 현실 사회에서 정치적 용도로 사용되는 일은 드물지 않다. 과학이라는 이미지와 지적 권위가 우리 일상에서나 과학 밖의 다른 공론장에서 이현령비현령 식으로 여러 용도로 쓰이는 일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과학적인 방법”으로 “과학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찾아냈다며 “과학적인 진실”을 말하는 이들 앞에서 많은 사람들은 과학의 권위에 눌려 몸을 낮추곤 한다. 이런 과학 담론의 유통에는 당연하게 과학 담론을 사용하는 사람이 있고 설득의 대상이 되는 청중이 있게 마련이다.   


사실, 과학 담론을 적절하게 사용하느냐의 문제가 있을 뿐이지 가치중립적 사용이라는 절대 이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현실이 그렇다고 해서 과학 지식을 아무 때나 아무렇게 사용해도 된다는 얘기는 아니다. 재판관이 가치중립의 판결을 내릴 수 없는 게 현실이라고 해서, 재판관이 일부러 가치편향의 판결을 내리는 일이 용납되는 것은 아니다. ‘이렇다’는 현실과 ‘이래야 한다’는 당위는 별개의 문제다. 마찬가지로 현실 사회에서 이런저런 용도로 과학 담론이 쓰이고 있는 게 현실이지만, 그것이 그때그때 적절하게 쓰이고 있는지 살피는 일은 필요하다.  


2008년을 달군 이른바 ‘촛불 정국’은 어디에서 비롯했나? 한쪽에서는 미국산 쇠고기의 개방 완화를 몰고온 정부의 졸속 협상 결과가 촛불을 켰다고 하고, 다른 한쪽은 광우병 괴담과 피디수첩의 광우병 소 보도가 촛불을 켰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촛불 정국의 시작이 어디인지를 둘러싸고 서로 다르게 기억할 정도로, 촛불 정국은 우리사회에 자리 잡은 아주 다른 시각을 드러내준다.  


촛불은 매우 복잡한 요소와 쟁점들을 담고 있는 사건이었다. 갓 출범한 이명박 정부의 일방적 정책 추진 문제가 있었으며, 미국과 한국의 관계에서 이른바 ‘검역 주권’의 문제가 있었다. 또 광우병 과학과 국민 건강권의 문제가 섞여 있었다. 전문가의 견해를 믿지 못하는 민초들의 광우병 공포가 확산하며 괴담 논쟁이 벌어졌고, 경찰의 폭력 진압과 표현의 자유가 쟁점이 됐다. 촛불이 커지면서 새로운 쟁점들은 자꾸 생겨났다. 인터넷 여론은 귀기울일만한 가치를 지니는가, 전문가는 제 구실을 했는가, 국가와 정부의 역할은 무엇인가, 과학에 대한 냉소주의와 과학주의 태도는 이대로 좋은가 등등. 촛불이 우리사회에 던진 다층적 의미를 충분히 살피려면 앞으로도 더 많은 관찰과 분석, 그리고 통찰이 필요하겠다.  


이 글에서는 촛불 정국에 나타난 여러 과학 담론이 시민사회와 정부, 대중과 전문가라는 주체들 사이에서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분석하며, 과학 담론이 미국산 쇠고기 파동에서 어떤 구실을 했는지 살피고자 한다. 아울러 사회적 갈등을 풀 열쇠로 떠올랐던 ‘소통’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본다. 이 글은 대중의 광우병 공포와 젊은 연구자들이 보여준 과학적 진실 찾기가 각자 진정성을 지닌다고 여기면서도 그 둘의 극적 대립 양상을 보며 느꼈던 나의 혼란을 뒤늦게 정리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과학 담론의 사용, 과학 이미지의 사용

지난해 4~7월에 정부와 시민사회단체, 과학자들이 쏟아낸 여러 자료들과 이 무렵에 화제가 된 몇몇 책들을 되짚으며 당시에 주로 쓰였던 몇 가지 과학 담론들을 정리해보았다. 이런 과학 담론은 비단 미국산 쇠고기 파동 때에만 등장했던 것들은 아니었다. 유전자조작식품이나 원자력발전소 안전 논란 같은 과학이 얽힌 사회적 갈등이 일 때마다 등장했던 담론들이기도 하다. 다만 이번 파동에서는 이런 담론들이 짧은 기간에 정부와 시민사회, 대중과 전문가의 극적 대립을 띠며 매우 긴장되고도 치열한 갈등 속에서 생겨났다는 점이 다르다면 달랐다.  


이 글을 쓰려고 지난해 자료들을 다시 살펴보다가 새롭게 느낀 점부터 얘기해야겠다. 그것은 광우병 과학의 진실 논란이 벌어지면서 공방을 벌인 두 집단이 아주 다른 근거를 제시하고 있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 여러 자료들을 보면 정부와 과학계나 시민사회는 정도와 표현의 차이는 있지만 광우병 과학에 관한 기본 사실에서는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먼저 과학자들이 들려준 광우병 과학을 요약해보자. 광우병이란 영국에서 소나 양을 도축하며 버려졌던 머리뼈와 내장 등 부산물을 1972년부터 소의 사료로 쓰기 시작하면서 생긴 질병으로서, 1986년에 정식으로 학계에 소해면상뇌증(BSE)이란 학명으로 보고됐다. 광우병의 원인이 변형 프리온이라는 단백질이라는 사실은 이미 밝혀졌다. 인간광우병은 광우병 소에 있던 변형 프리온을 사람이 섭취했을 때에 생기는 새로운 뇌질환으로서 1996년에 공식 확인됐다. 자연적으로 발병하는 산발성 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sCJD)과 비슷하면서도 발병 연령, 임상 증상, 뇌파 등에서 확연히 달라 변형 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vCJD)이라는 정식 이름을 얻었다. 광우병 소에 있던 변형 프리온이 사람 몸에 전달될 때 체내의 정상 프리온과 만나 정상 프리온의 단백질 접힘 구조를 서서히 변형 프리온의 구조로 변형함으로써 뇌 질환을 일으킨다는 것이 정설이다. 변형 프리온의 위험성은 매우 강해 여러 동물 실험들을 보면 미량으로도 인간광우병을 일으킬 수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인간광우병은 일단 감염되면 100% 사망하는 치명적 질병이다 (이영순 「광우병의 과학적 진실」과 유수민 『과학이 광우병을 말하다』 중 일부 요약).  


시민사회단체가 이해하는 광우병의 위험성도 대체로 과학계의 이런 인식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시민사회단체와 네티즌 모임이 함께 만든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전면 수입을 반대하는 국민대책회의’(줄여 광우병대책회의)가 낸 유인물과 자료들을 살펴보면, 이런 기본 인식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광우병대책회의의 「광우병 10문10답」(5월9일)에서, “영국에서 처음 확인된 병으로 광우병에 걸린 소를 먹은 인간에게 발병” “소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뇌에도 구멍이 숭숭 뚫리고 이상한 행동을 하게 되며 몸을 가누지 못하게 되어 결국 100% 사망하게 되는 무서운 질병” “소와 광우병과 인간의 광우병 모두 현재까지 치료방법이 없어 오직 철저한 예방만이 광우병을 막을 수 있다”는 설명은 과학계의 설명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렇다면 뭐가 달랐나? 두 집단 사이에서 첨예하게 다른 주장은 광우병과 인간광우병에 대한 사회적 대처를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느냐 하는 ‘평가’의 문제에 있었다. 광우병은 소한테 육골분 사료를 먹이는 것을 금지한 조처가 이뤄진 뒤 급격히 감소했다. 또 인간광우병이 변형 프리온이 다량 함유된 소의 특정위험물질(SRM)을 섭취해 생긴다는 사실이 경험적 연구에서 드러나면서, 이 부위를 식용으로 쓰는 것을 거의 모든 국가에서 금지함으로써 인간광우병 환자도 급속히 줄어들었다. 이런 사실을 인용해 정부와 일부 과학자들은 ‘광우병은 치명적으로 위험하지만 미국의 검역체제는 국제사회에서도 신뢰할 만하기에 미국산 쇠고기 수입으로 생길 인간광우병 발병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고 주장했으나, 시민사회단체와 일부 과학자는 ‘광우병은 치명적으로 위험하며 교차오염의 가능성이 높은 미국의 검역체제를 충분히 믿을 수 없기에 불안하다’라고 주장했다. 결국에 논쟁은 미국의 검역체제를 한국 소비자가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느냐로 모아져야 했다. 하지만 실제 논쟁의 초점은 그렇게 이뤄지지 못했다.   


 

과학적 진실

 
“과학”이라는 말은 단지 어떤 특정의 학문 분야를 가리킬 때 사용되곤 한다. 물리학, 화학, 생물학 등등, 그리고 또 인류학과 심리학, 어떤 때에는 사회학, 경제학 등등을 지칭할 때에도 쓰인다. 그러나 “과학”과 “과학적인” 같은 말들은 자주 (그렇지 않은 때보다 그런 때가 더 잦은 것 같다) 영예로운 의미로 사용된다. 광고업자는 과학적인 신제품 세제로 옷을 더 깨끗하게 세탁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비판적 사유를 가르치는 선생님들은 과학적으로 추론하라고, 과학적인 방법을 사용하라고 권한다. 재판관은 증인이 제시하는 바가 과학적 증거라는 말을 들을 때 증인을 좀 더 믿으려고 한다. …이런저런 주장을 의심할 때 사람들은 그 주장에 과학적 설명이 없다고 말하거나 과학적인 증명을 해보라고 요구한다. 사례는 더 많다. “과학적”은 인식론적 찬사를 담은 만능 용어가 되어 “강력하고 믿을만하고 훌륭한”이란 의미를 지닌다 (Susan Haack, Defending Science- within Reason : Between Scientism and Cynicism, 18쪽).

 

“과학”에 대한 맹신은 과학적 방법을 쓰면 갖가지 골칫거리 문제를 풀 객관적 해답을 얻을 수 있다고 믿으며 불확실성을 잘 인정하지 않는 태도이다. 그러다보면 인문사회학의 주제도 과학 지식을 통해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는 이른바 ‘과학 환원주의’에 빠지기도 한다. 세상에는 여러 과학 분야들이 있고 그 지식들마다 성격이 아주 다른 연구 방법과 개연성의 정도가 아주 다른 해석과 추론을 추구하지만, 과학을 늘 매한가지 모습으로 뭉뚱그려 바라보는 태도도 드러낸다. 이런 믿음이 강한 사회일수록 “과학” “과학적 진실” 앞에 서면 그 의미를 따져보기도 전에 머리와 마음은 그 사회에 뿌리내린 ‘마음속 과학의 좌표’로 이동해 생각을 다시 가다듬게 되곤 한다.  


과연 광우병의 과학적 진실은 무엇인가? 이 물음은 촛불 정국을 출렁이게 했던 주요한 담론이었다. 당시에 “과학적”이라는 말을 담은 여러 담론들은 어떻게 사용되었을까? 누가 어떤 의미로 썼을까? 과학적 진실은 주로 정부와 과학자단체들 사이에서 강조되었으며, 시민사회단체에도 중요한 행동 좌표였다.  


이런 식이었다. 5월2일 농림수산식품부와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의 합동 담화문은 “이번 합의는 국제적 기준과 과학적 근거에 의거해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에서 확실한 과학적인 근거 없이 제기하는 안전성에 관한 문제들이 사실인 것처럼 알려지고 있어 안타깝게 생각[합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영순 교수가 자유기업원(CFE) 보고서로 6월26일 낸 책자 제목은 「광우병의 과학적 진실」이었고,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 브릭)가 4월30일 온라인 자유게시판에 연 집중토론의 주제는 “광우병에 대한 논란, 과학적으로 논의해보자”였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가 5월에 연 토론회의 주제는 “광우병의 과학적 진실과 한국사회의 대응”이었다.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더 많은 사례들이 있었다.  


물론 “과학적” “과학적 진실”이라는 말을 금기시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하지만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정 파동 때에 쓰인 “과학적 진실”이라는 말 속에는 특정한 기대와 의지가 있었다. 사회적 논쟁을 쾌도난마처럼 풀어줄 열쇠가 거기에 담겨 있다는 기대, 그리고 어딘가에 있을 게 분명한 과학적 진실이라는 실체를 찾아내자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  


한 가지 유의할 점이 있다. “과학적 진실” 찾기가 미국산 쇠고기 파동 때 처음부터 최대의 중심 담론이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4월18일 정부가 한미 무역자유협정(FTA)의 비준을 앞두고 미국산 쇠고기 개방을 완화하기로 하는 협정을 맺었다고 발표했을 때, 이를 반대하는 시민사회와 여론은 주로 ‘국민 건강권’을 외면한 졸속 협정이라는 데 초점을 맞춰 비판했다. 5월22일 대국민 담화에서 이명박 대통령도 “국민 건강을 위협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바로 수입을 중단하는 주권적 조처도 명문화했”다며 “국민 건강”을 담화문의 앞 부분에서 의식적으로 언급했다. 쟁점의 무게중심은 주권 외교와 국민 건강권에 걸려 있었다.  


미국산 쇠고기 파동이 사회적 논쟁에서 과학적 논쟁으로 변화했던 데에는, 대중의 광우병 공포 괴담이 사회적 초점으로 부각되는 과정이 있었다. 광우병 괴담을 바로잡자는 과학자 단체와 정부출연연구소들의 전문가 견해 표명이 잇따르며 큰 역할을 했다.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한국과학기술한림원, 한국과학기술연구원이 각각 5월7일과 8일에 광우병 괴담에 대한 전문가 견해를 일제히 발표하기 시작했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과 한국생명공학연구협의회도 며칠 뒤인 13일에 비슷한 형식으로 전문가 견해를 내놓았다. 이 무렵에 쟁점의 무게중심은 ‘광우병 공포, 괴담이냐 과학이냐’라는 쪽으로 옮아가기 시작했다.  


복잡하게 얽힌 정파적 이해관계들에서 생겨나는 혼란스러운 주장들 속에서 “정치적 편견 없이” “오로지 과학적 사실과 데이터에 기반을 두어” 논의한다는 과학적 진실 담론은 과학이라는 현미경을 통해 어딘가 있을 가치중립의 해결책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대와 더불어 널리 수용됐다. 브릭이 연 ‘광우병에 대한 논란, 과학적으로 논의해보자’는 주제의 집중토론방은 뜨거운 사회적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국내외에 있는 여러 연구자 회원들은 광우병 과학의 진위가 무엇인지 쟁점을 가려냈고, 인터넷에 떠도는 여러 주장들의 근거에 담긴 오해와 억측을 바로잡겠다고 나서면서 주목을 받았다. 이곳에서 필명 ‘피카소’는 최신의 연구논문들을 정리하고 쉽게 풀어쓰는 글을 올리면서 유명해졌고 ‘괴담에 맞선 과학’의 대명사로 떠올랐다. 그는 나중에 자신이 썼던 글을 모아 『과학이 광우병을 말하다』라는 책을 펴냈다.  


『과학이 광우병을 말하다』는 광우병과 인간광우병의 발생과 현황, 변형 프리온 단백질의 유래와 특성 같이 그동안 과학계에서 나온 최신의 연구결과들을 읽기 쉽게 정리하면서, 인간광우병의 발병이 오염된 사료의 대량 유입, 종 간 장벽의 붕괴, 특정한 변형 단백질의 출현, 특정위험물질의 섭취, 인간 개인마다 다른 질병 감수성 등 전제조건들이 맞아떨어질 때에 일어난다는 점을 강조했다. 지은이는 하나의 과학이 아니라 비관과 낙관의 두 가지 과학을 보려주려고 노력했다는 저술 태도를 서문에 밝혀두었다.  


사실 광우병의 미래에 대해서는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비관론과 낙관론이 공존한다. 물론 학계 내부에서 공유되는 큰 흐름은 존재하지만, 어느 누구도 확실히 미래를 단언할 수는 없다. 그래서 가급적 양측 주장을 균형 있게 소개하려고 노력했다 (5쪽).  


이런 서문과는 달리 지은이는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을 신뢰할만하다고 평가하는 쪽에 섰으며, 이 때문에 촛불 집회를 비판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광우병 공포가 미신임을 판정한 과학의 승리로도 받아들여졌다. 한쪽에서는 “과학으로 살펴보니 광우병 파동은 난센스” 같은 시각의 서평들이 이어졌다.  


그러나 과학적 진실 찾기가 미국산 쇠고기 파동을 ‘과학적으로’ 푸는 해법이 되지는 못했다. 여전히 사회 쟁점은 남았으며 사회적 설득과 합의는 없었다. 과학적 진실은 이 시기에 널리 읽힌 『얼굴 없는 공포, 광우병 그리고 숨겨진 치매』(콤 켈러허 지음),『죽음의 향연』(리처드 로즈 지음) 같은 다른 관점의 과학도서들이 제기하는 불확실성과 두려움을 풀지 못했다. 과학적 진실 찾기는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비관론과 낙관론이 공존한다”는 점을 다시 보여주었으며, 과학계에서도 충분한 합의를 다 이루지 못한 광우병 과학이 지나친 지적 권위를 주장했음을 보여주었다. 광우병 과학의 진실을 아무리 자세히 파헤쳐 알기 쉽게 계몽한다 해도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둘러싼 사회 갈등의 해결책을 찾기는 힘들다는 사실은 다음과 같은 전혀 다른 시각이 평행선처럼 계속되고 있다는 데에서도 엿볼 수 있다.  

미국산 쇠고기 문제로 전 국민이 촛불을 들었던 것은 예방책을 제시하지 못하는 과학 때문이 아니라, 예방책이 철저하게 실행되지 않는 미국산 소고기에 대한 불안감과 무책임한 정부에 대한 분노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분노와 불안감의 기저에는 ‘광우병은 위험하다’는 피할 수 없는 대전제가 있다. 이 책 역시 과학적인 측면에서 광우병의 근본적인 위험성은 동의하고 있다. 다만 통제책이 제대로 실현된다는 전제 아래 그 위험성이 현저히 줄어든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그러나 정작 그 중요한 통제책의 실행이 정치와 경제의 논리라는 간단치 않은 문제임은 간과한 듯하다. (온라인서점 알라딘aladdin.co.kr에 실린 『과학이 광우병을 말하다』 서평. gromit, 12월4일).

 

과학적 진실 담론에는 사회적 갈등이 무엇이고 그것이 왜 어디에서 비롯했는지에 관한 논의, 즉 이번 파동에서 정작 중요했던 논의가 생략돼 있다는 얘기다.     



확률과 위험


미국산 쇠고기 논란의 한복판엔 확률 문답풀이 열풍이 있었다. 던져진 물음은 간단하다. 한국인이 미국산 수입 쇠고기를 먹고 광우병에 걸릴 위험의 크기는 확률로 계산할 때 얼마나 될까? 답은 완전히 엇갈렸다. 한쪽은 그것이 벼락 맞을 확률보다도 낮아 무시해도 된다고 하고, 다른 쪽은 극소의 확률 규모보다 안전의 불확실성이 크다는 점이 더 큰 문제라며 다툰다.  


확률 담론은 미국산 쇠고기를 먹어도 인간광우병에 걸릴 확률이 거의 제로에 가깝기 때문에 안전하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쓰였다. 확률 논쟁이 벌어진 브릭 자유게시판을 보면, 당시에 여러 변인들을 계산에 넣은 여러 확률 계산식들이 등장했다. 무엇보다 확률은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사실을 보여주는 근거로 제시되었다. 어떤 ‘믿음’ 때문에 확률의 근거를 믿지 않으려는 것은 이성적이고 객관적인 태도가 아니라고 꾸짖는 다음의 글은 확률에 대한 강한 ‘믿음’의 태도를 보여준다.  


어느 정도의 [확률적] 근거를 제시하면 그 근거에 맞게 사람은 생각을 고치고 다시 한 번 고려해보는 것이 있을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그 근거라고 주어지는 것이 자신의 믿음과 반한다면 그것을 믿지 않으려고 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근거라면 그 객관성이 비록 희박하다 해도 철썩 같이 믿으려고 하지요. 사람들의 생활하는 방식과 행동양식이 같지는 않아도 적어도 이성적이고 객관적 사고방식은 갖으면서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5월28일)

 

당시에 여러 온라인 공간에서는 이런저런 계산식을 동원해 계산한 인간광우병 발병 확률들을 볼 수 있었다. 미국 시엔엔(CNN)의 보도를 인용해 심장병에 걸릴 위험이 42분의 1, 유방암에 걸릴 위험이 680분의 1인 데 비해 광우병에 걸릴 확률이 100억분의 1이라는 점을 들어 광우병 공포가 과장됐다는 지적도 널리 회자됐다. 확률은 일상 담론만이 아니라 진지한 과학 담론에서도 중요하게 다뤄졌다. 다음과 같은 계산식도 있었다.  


우리나라 국민 5,000만 명이 5년 동안 약 500마리의 광우병 소고기에 제한 없이 노출될 경우 -영국에서 40만 마리로 200명의 감염자가 발생한 비율로 보면- 약 0.25명의 감염자가 발생한다. 5년에 0.25명이므로 20년에 한 명이라는 수치가 나온다. M/M형 유전자가 영국보다 세 배 정도 많은 것을 고려해도 육식을 주로 하는 영국의 식습관에 따른 소비량의 차이를 감안하면 크게 무리는 없을 것 같다. 어쨌든 영국의 사례와 비교한 결과에 따르면 한국에서 인간광우병 환자 한 명을 보기 위해서는 최소 20년정도가 필요하다는 결론이다. 이것도 광우병 소 숫자를 실제보다 훨씬 늘려 잡고, 미국에서 발생한 광우병 소가 모두 한국에만 들어온다는 가정으로 위험성을 극대화시켜 과다 계산한 기간이다 (『과학이 광우병을 말하다』, 257쪽).

   

확률 담론은 광우병 공포를 누그러뜨리는 근거로 쓰였다. 공포는 막연하지만 이성적이고 객관적인 확률로 계산해보니 공포는 과장된 것이라는 게 그 요지다. 그러나 당시에 널리 쓰였던 확률 담론에는 발병률 같은 확률의 의미와 한계는 생략돼 있거나 과소 평가됐다. ‘비 올 확률’(통계적 확률)과 ‘주사위를 던져 1이 나올 확률’(수학적 확률)은 확률의 성격에서 확연히 다르다. 인간광우병에 걸릴 확률은 경험과 통계를 활용한 전자의 범주에 가까운 확률인데도, 마치 논란의 여지가 거의 없는 수학적 확률인 것처럼 주장되었다. 더욱이 광우병 확산 모형을 연구하는 세부 분야에서도 여러 통계와 시뮬레이션 기법들이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는 현실에서(학술지 The Statistician 등에 실린 Statistical Aspects of BSE and vCJD: Models for Epidemics의 서평들 참조), 지극히 단순한 확률 담론은 판단을 왜곡할 위험마저 지니고 있었다.  


확률 담론의 맹점은 미래의 결과를 현재에 확정하려는 데 있었다. ‘최악의 경우라 해도 한국인이 20년에 한 명 정도만이 인간광우병에 걸릴 것으로 보인다’는 확률 예측처럼 미래가 이미 결정돼 있다면, 사실 지금 우리사회가 혼란과 공포를 겪을 아무런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광우병 공포가 지속되었던 데에는 이런 확률이 불확실한 미래를 예측할 뿐이며 미래의 확실성을 보증하지 않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맹점은 ‘광우병이 안전하게 통제되고 있다’라는 믿음이 없다면 확률 담론을 말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계산식에 쓰이는 수치와 여러 제한조건들은 광우병이 안전하게 통제되고 있다는 사회적 믿음에 어느 정도 바탕을 두어야만 신뢰할 수 있는 것들이다. 광우병이 통제되어 안전하다는 믿음을 전제로 광우병이 안전하다는 결론을 내고 있는 셈이다. 논리의 엄밀성을 따져볼 때, 증명하려는 바를 전제로 삼아 증명하는 논리 오류가 섞여 있다는 얘기다.  


확률 담론의 기세는 대단했다. 하지만 확률 계산 모형의 타당성은 고사하고 거기에 쓰인 여러 데이터의 신뢰도 확정할 수 없었기에 확률 담론이 공포를 추방하기는 힘들었다. 지렛대가 불확실한데 공포를 들어 올려 걷어찰 수 있겠는가? “확률이 그토록 미미한데 유럽연합과 일본에선 왜 그리 강한 규제 조치를 취하고 있는 걸까”라는 식으로 온라인에서 제기되는 상식적 물음 앞에서 과학과 확률 담론은 논란을 종결하기는커녕 또 다른 논란들을 부추길 뿐이었다.  


과학과 확률로써 인간 감정의 합리성을 판단하는 일은 사실 지나친 일이기도 하다. 복잡다단한 인간 현실사회에서 단순명쾌한 결론을 이끌어낼 수도 없는 일이다. 확률의 크기에 비례해 위험의 크기를 인식해야 한다면, 얼마만큼의 광우병 공포가 객관적으로 볼 때 합리적일까? 공포가 어느 정도를 넘어설 때 불합리한 것이 될까? 그 이상의 위험 인식은 나쁘거나 옳지 않은 반응이라고 판단할 수 있을까? 자연법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인간 개인과 사회의 심리 반응들에 담긴 복잡성을 제기되는 반박과 논란은 계속될 터이고, 과학은 이에 대해 부분적으로만 답할 수 있을 뿐이다.  


시민사회단체들은 확률보다 위험 담론을 부각했다. 여러 단체들와 전문가들은 불확실한 위험에 대해 사전예방의 원칙을 적용해야 함을 강조했다. “인간광우병의 사회적 공포는 확률 수치로 논할 성질이 아니다” “확률과 피해의 심각성뿐 아니라 신뢰와 책임의 수용, 절차에 대한 동의라는 요소들도 위험의 크기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들이다”라는 위험커뮤니케이션 분야 전문가들의 경고와 지적들도 제기됐으나 대체로 과학 담론의 위세를 넘을 정도의 힘을 내지는 못했다.     



괴담과 전문가

 

이른바 ‘괴담론’은 과학자 단체들이 나서서 “광우병의 과학적 진실”을 밝힌 5월 초순 이후에 널리 확산되기 시작했다. 이후 정부가 촛불 정국에서 썼던 핵심 담론으로서 자리를 굳혀갔다. 이들이 말하는 대표적 괴담의 사례는 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가 보건복지가족부 자료를 인용해 배포한 「광우병 괴담 10문 10답」에 정리돼 있다. 광우병 소를 이용해 만드는 화장품, 생리대, 기저귀 등 600가지 제품을 사용해도 인간광우병에 걸린다, 광우병 쇠고기를 다룬 칼이나 도마에 의해 수돗물까지도 오염된다, 한국인 95%가 광우병에 취약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미국 치매환자가 약 500만 명인데 이 중 25만~65만 명이 인간광우병으로 추정된다, 미국에서 30개월 이상 된 쇠고기는 강아지, 고양이 사료로도 사용하지 않는다 등이 괴담 사례로 제시되고 이를 바로잡는 사실 설명이 덧붙여졌다. 공신력 있는 과학자 단체와 정부출연연구소들이 잇따라 광우병 과학의 진실을 밝히면서, 대중의 괴담과 전문가의 진실이라는 대립 구도가 또렷해졌다.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10문 10답에 소개된 괴담들은 당시 광우병대책회의가 낸 유인물과 자료, 다른 시민사회단체의 자료 어디에서도 찾아보기는 쉽지 않았다. 광우병대책회의의 「광우병 10문 10답」 자료에서 광우병 과학과 관련한 부분은 정부와 과학자 단체가 전한 내용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미국산 쇠고기의 위험성을 알리는 데 상대적으로 많은 내용을 할애했다는 점이 다른 점이었다. 이렇게 볼 때 “광우병 괴담”이라는 카테고리는 인간광우병에 대한 공포와 불안감을 타고 온라인과 일상 담론들에서 널리 퍼져 떠돌아다니던 소문들이 묶여 생겨났던 것으로 보인다. 괴담의 실체가 무엇이며 영향력이 얼마나 되는지 불확실한 상황에서 과학자들이 일제히 비상한 형식으로 나설 정도로 광우병 괴담이 사회 쟁점이 됐는데, 그 배경은 더 해명돼야 할 부분인 것 같다.  


더 유심히 봐야 할 점은 전문가들의 역할이었다. 전문가의 권위를 지닌 과학자 단체와 정부 출연 연구소들은 정부가 괴담론을 쓰던 무렵에 일제히 광우병 과학에 관한 전문가 견해를 표명함으로써, 미국산 쇠고기 파동을 국민 건강권에 관한 사회적 쟁점에서 광우병 과학의 진실을 따지는 과학적 쟁점으로 바꾸는 데 한몫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과학자 단체들이 정부쪽을 직접 두둔하고 나선 것은 아니었다. 전문가 권위를 내세운 여러 견해들을 살펴보면, 대체로 이들은 광우병과 인간광우병의 원인에 관한 그간의 연구 결과와 더불어 광우병과 인간광우병이 현재 급속히 감소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하면서도 아직 광우병은 연구 중인 주제이며 여전히 불확실성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함께 밝혔다.  


예를 들어, 당시에 큰 논란이 됐던 ‘한국인은 유전적으로 광우병에 취약한가’라는 쟁점에 대한 견해들을 보자. 이영순 교수는 “이것은 아직도 연구단계에 있는 사항이며 샘플도 적어서 확정적으로 말할 수 없다는 것이 학계의 일반적 상식. 아직은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음”이라는 비교적 중립적인 견해를 제시했다 (「광우병의 과학적 진실」, 29쪽). 『과학이 광우병을 말하다』는 “G/L형의 경우처럼 다른 유전자형이 관여할 수 있다는 증거들이 있으므로 M/M형만으로 동양인의 인간광우병 취약성에 대해 결론을 내리기는 어렵다” “수많은 유전자들의 상호작용이 항상 우리 몸 안에서 진행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프라이온[프리온] 유전자 외의 다른 유전자가 변형 프라이온 단백질 형성을 촉진하거나 방해할 수도 있다”며 불확실성의 여지를 남겨두었다 (241-242쪽).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은 5월 8일치 발표 자료에서 “vCJD의 발병에는 다양한 유전자가 관여를 하므로 하나의 유전자 형으로 vCJD 발병 위험성이 높고 낮음을 판단할 수 없다”는 견해를 제시했다. 반면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은 5월 13일치 발표 자료에서 “M/M형 프리온 유전자 타입이 광우병과 관련이 있는 것은 사실로 보이지만 한국인이 유전적으로 특별히 인간광우병에 취약하다는 논란에 대해서는 과학적 근거가 미약하다”는 좀 더 적극적 판단을 제시했다.  


하지만 괴담에 맞선 정부의 반박 논거에서는 이런 견해 가운데 일부가 선별되어 이미 사용되고 있었다. 보건복지부 10문 10답 자료는 이런 물음 자체를 ‘광우병 괴담’이라는 카테고리 안에 담아 “특정한 유전자 하나가 인간이 광우병에 걸릴 가능성을 결정하지 않는다는 것이 과학적인 판단”이라고 강조했다.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이 5월2일 내놓은 「미국산 쇠고기 안전성 관련 문답자료」도 “유전자 분석 결과 우리나라 사람이 인간광우병에 걸릴 확률이 높다고 하나 안전성이 확보된 미국산 쇠고기를 통해 인간광우병이 걸릴 가능성은 매우 희박함”이라며 안전성을 강조하는 어법을 사용했다. 전문가 견해로 볼 때 “한국인은 유전적으로 광우병에 취약하다”는 주장은 오-엑스로 답하기 힘든 사안인데도 ‘괴담’으로 인식되는 효과가 생겨났다.  


괴담론은 촛불 정국에서 점점 더 힘을 발휘하며 시민사회의 저항에 맞서는 ‘공격적인’ 정부의 담론으로 쓰였다. 이명박 대통령은 5월22일 대국민 담화에서 “정부로서는 소위 광우병 괴담이 확산되는 데 대해 솔직히 당혹스러웠습니다”라고 밝혔는데, 대통령의 ‘광우병 괴담’ 직접 언급은 괴담론이 이제 담론 경쟁에서 상당한 경쟁력을 갖췄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런 괴담론은 전문가주의에 직접 연결돼 있었다. 오-엑스 진실의 확인처는 과학 전문가의 입이었다. 광우병 과학의 진실 찾기를 강조할수록 광우병 괴담을 공박하는 목소리도 더욱 컸다. 식품 소비자의 두려움에서 생겨난 일상의 담론들은 엄정한 과학적 사실을 통해 검증받아야 했다. 하지만 전문가주의에는 몇 가지 맹점이 있었다. 전문가 권위는 특정 분야의 지식과 경험을 갖추어 권위 있는 발언권을 지니는 사람한테 부여되지만, 찬찬히 되돌아보면 과학 전문가의 권위가 어느 순간에 과학 쟁점 밖의 사회 논쟁에서도 그대로 유지되는 모습이 나타나면서 과연 누가 전문가 권위를 지니는 게 타당한지에 관한 의문의 여지를 남겼다.  


일례를 보자. 『과학이 광우병을 말하다』의 서술 구조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지금까지 여러 연구를 통해 광우병의 원인 물질과 감염 경로에 대한 이런저런 이해가 이뤄졌다. 한편으로는 인간광우병에 취약한 유전형이나 프리온의 변형체(스트레인) 등등에 관해서는 앞으로도 더 자세한 연구가 이뤄져야 한다.’ 그런 뒤에, 광우병에 대한 사회적 위기관리 체제를 전하는 대목에서 서술 방향이 변한다. ‘인간광우병에 대해선 지나치게 공포를 느낄 필요는 없다. 알려진 예방책들이 국제 기준으로 볼 때 신뢰할만한 수준으로 가동되고 있기 때문이다.’ 「광우병의 과학적 진실」 보고서도 비슷한 서술 구조를 보여주었다. 보고서의 앞부분은 광우병 과학에 대한 여러 연구 성과와 남은 과제를 정리한 뒤에 사실상 결론에 해당하는 “광우병에 대한 올바른 이해”의 장에서는 과학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외교 협상과 사회적 대응체제를 다뤘다. 보고서는 “한미 쇠고기 협상과 검역 주권의 문제” “미국과 우리나라 SRM 기준의 차이” “미국은 도축소의 0.1% 정도만 광우병 검사를 하므로 신용할 수 없는가?” 등의 주제를 다루며 주로 낙관의 시각을 담았다.  


‘현실 사회의 대응체제로 볼 때 광우병은 대체로 안심해도 좋다’는 과학자들의 평가에는 과학자의 권위가 실려 있는 것인가, 아니면 다른 분야로 그 권위를 확장하고 있는 것인가? 검역 주권이나 미국의 도축 시스템 등에 관해 과학자의 권위는 얼마나 인정받을 수 있는가? 더욱이 학계에서 합의된 사실이 아니라 신뢰할 수 있다는 믿음과 평가에서 이런 권위를 취하고 있다면? 이는 권위의 확장, 또는 확장된 권위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한다. 사실, 이런 식으로 여러 분야로 확장하며 전문가 권위가 뒤섞어 사용된 사례는 당시 여러 곳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전문가 견해를 선별 인용한 정부의 발표 자료에 담긴 권위의 실체가 무엇인지는 더 모호했다. 미국산 쇠고기 파동에서 핵심을 이루는 국민 건강권과 한미 통상협정의 문제에 관한 다른 분야의 전문가 견해들은 사회적 논의에서 충분히 수용되지 못한 채, 과학적 진실 찾기에 가려져버렸다.  


5월 무렵에 나타난, 여러 과학자들의 사회적 논쟁 참여와 견해 표명은 지금껏 우리 사회에서 쉽게 볼 수 없었을 정도로 발 빠르게 폭넓게 이뤄졌다. 과학의 사회 참여는 사회적 담론을 풍성하게 하는 과학과 사회의 소통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인 일이지만 당시의 현실에서는 사회 논쟁을 축소시키는 구실을 했다. 이 무렵에 사회적 갈등은 광우병 괴담 논쟁으로 변질되기 시작했다. 검찰의 문화방송 PD수첩 수사는 이런 분위기에서 가능했다. 이번 파동에서 과학자들의 사회 참여 방식이 적절했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다음의 지적은 충분히 일리 있다.  


…광우병 문제와 멜라민 문제는 정반대의 아주 좋은 경우에요. 하나는 과학기술계가 분명히 해결해줄 수 있고 답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학기술계가 잠잠했던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과학기술계가 끼어들 틈이 거의 없는 사회경제적인 문제인데 과학기술계가 덜컥 나서서 위험한 지경에 이르렀던 문제라고 저는 봅니다. …제 생각에는 광우병 파동은 처음부터 FTA 문제로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미국 쇠고기 수입 반대’라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광우병을 명분으로 끌어들인 것일 뿐입니다. FTA 문제에 갑자기 과학기술이 끌려들어가서 위험한 수준까지 다다른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서울대 자연대학 계간지《자연과학》 2008년 겨울호 ‘새 정부의 과학기술정책’ 좌담기사에서 이덕환 교수의 말을 인용).

 

사태의 전개과정을 되짚어볼 때 괴담론은 전문가 집단이 직접 만들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겉으로 볼 때에는 과학자 집단이 비교적 적극적으로 사회 논쟁에 참여하는 형식을 취했으나, 실제로 이런저런 전문가 견해들 가운데 일부가 정부의 선별 과정을 거쳐 사회 논쟁에 수용됐다는 점에서, 정부의 주된 관심이 논쟁의 성격과 국면 전환에 쏠려 있었다는 점에서, 전문가들이 괴담을 바로잡겠다는 과학의 진정성을 지녔다고 해도 그들의 전문가 권위는 당시에 정치적 용도로 쓰였다. 전문가주의는 전문가 집단이 주체가 되어 강조했다기보다는 정치권이 짠 ‘괴담 대 과학’의 구도를 통해 만들어졌다. 전문가 권위 덕분에 생겨난 광우병 괴담의 담론은 여러 사회적 논쟁들을 빨아들이며 과학의 문제로 환원하는 블랙홀 같은 구실을 했다. 


   

담론 다시 보기


지금까지 미국산 쇠고기 파동을 둘러싸고 등장했던 여러 과학 담론들을 되짚어보았다. 이제 과학 담론이 미국산 쇠고기 논란에서 어떤 위상을 지니는지, 정부와 시민사회단체, 대중과 전문가는 과학 담론에 어떻게 참여했는지를 몇 가지 물음에 답하는 형식으로 나의 견해를 좀 더 직접 담아 정리해보고자 한다.   먼저, 미국산 쇠고기 파동은 사회 문제인가, 과학 문제인가? 사회 문제이면서 과학 문제이다. 미국산 쇠고기를 소비하는 국민 건강권이 중심에 놓여 있다는 점에서 사회 문제이며, 광우병과 인간광우병에 대한 이해가 꼭 필요하다는 점에서 과학 문제이다. 과학 문제를 중요한 한 부분으로 삼고 있는 사회 문제이다.  


그러면 미국산 쇠고기는 위험한가, 안전한가? 지금까지 밝혀진 과학의 성과와 현재 미국산 쇠고기 생산·유통체제로 볼 때 얼마나 위험한가 안전한가의 문제가 남을 뿐이며 양극단의 답을 확정할 수는 없다. 인간광우병이 치명성을 지니기 때문에, 광우병 연구에서 더 밝혀야 할 과제들이 남아 있기에,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불확실성이 남아 있기에 광우병 공포는 생겨날 수 있다. 반면에 이미 겪은 광우병와 인간광우병의 경험 사례로 보면 광우병의 확산은 급격히 줄어들었고 인간광우병 발병이 매우 제한적이라는 점에서, 국제 기준의 쇠고기 생산·유통 체제가 가동 중이라는 점에서 그나마 안심이 생겨난다. 그러므로 미국산 쇠고기는 위험할 수도 있고 안전할 수도 있다. 달리 말해 ‘맞다-틀리다’로 답할 수 없는 ‘얼마나’의 문제가 남는다. 그것은 모든 다른 사회에서 동일한 한 가지 과학의 결론을 내릴 수 없는 사회적 성격의 사안이다.  


광우병 공포는 허무맹랑한 것이었나? 여러 과학의 근거들로 보면 지난해 여름의 공포는 과장된 것이었다. 동시에 공포는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거기에는 인간 행동의 합리적 동기들이 있었다. 대중이 과학에 무지해 유령 같은 공포에 빠졌다고 사태를 파악한다면 깊은 속병을 앓고 있는 환자한테 대증치료만을 권하는 너무도 단순한 진단과 처방이다. 두려움이 왜 사회 현상으로 증폭했을까? 아마도 광우병 공포 자체가 실존적 성격이 아니라 사회적 성격을 띠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국민 건강권과 소비자 주권이 정부에 의해 일방적으로 훼손당한 시민사회에서 광우병은 잠재적 위험이 아니라 현실적 위험처럼 더 크게 다가왔다. 대중의 공포를 과학으로 진화하려 했던 정부의 대응은 불신을 더 키워놓았다. 광우병 공포가 사회적 공포였음은 이런 의미다.  


미국산 쇠고기 파동 논란은 이런 두 측면 위에서 국민 건강권이나 소비자 주권 같은 사회적 쟁점을 진전시키지 못했다. 대중의 광우병 공포와 과학적 진실 공방이 사태를 주도하는 양상을 띠면서 다른 사회적 쟁점들은 거기에 휘말려 들어가버리고 말았다.  


시민사회단체는 어디에 서 있었나? 여러 자료들로 볼 때 시민단체의 태도는 광우병 괴담 공포와는 무관했다. 광우병의 위험성과 미국산 쇠고기 안전성에 대한 의심은 책임을 회피하려는 정부의 담론에 저항하는 대항 담론의 성격으로 나타났다. 그렇지만 광우병 공포는 시민단체가 바라지는 않았다 해도 그 활동의 잠재적 동력이 되었으며, 광우병 공포는 미국산 쇠고기 논란을 과학 쟁점 너머로 나아가지 못하게 발목을 잡는 요인이 되었다. 과학 쟁점을 뛰어넘어 본래의 사회적 쟁점을 진지하게 다루는 담론을 형성하는 데에는 역부족이었다.  


정부는 정치적 위기에 어떻게 대응했나? 정부는 광우병 괴담 담론을 통해 정치 불신의 위기를 돌파하고자 했다. 괴담 담론은 정부가 전문가 권위를 빌려와 만든 것이었다. 이어 ‘촛불집회’와 광우병 괴담이 연결되자마자 전문가와 과학의 진실은 담론 경쟁에서 현실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정치적 책임을 묻는 사회적 쟁점은 희석되었으며, 괴담의 이미지가 덧씌워진 정치적 비판 세력의 정당성은 훼손되었다. 이런 점에서 정부의 과학 담론 사용은 정치적 용도를 위해 적극적으로 이뤄졌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 같다.  


전문가로 불린 이들은 무엇을 했나? 앞에서도 짚어보았지만, 과학 전문가들은 광우병과 인간광우병에 담긴 치명성과 불확실성, 그리고 통제된 시스템을 모두 지적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의 견해 표명 과정과 그 견해들이 사용된 과정, 그리고 그런 전문가 견해가 일으킨 사회적 결과들을 볼 때에 전문가들은 자신이 마련한 무대에 스스로 나와 목소리를 내었다기보다는 정치적 용도로 차려진 무대에 불려나와 전문가의 견해를 얘기했다고 보는 게 더 타당해 보인다. 전문가들의 목소리는 ‘괴담 대 진실’이라는 매우 정치적인 담론의 틀에서 새어나왔기 때문이다. 과학 전문가들의 과학 논쟁에서는 우리사회 민초들의 공포가 어디에서 왜 생겨났는지 이해하고 어루만지려는 노력을 찾아보기는 힘들었다.        


오래된 태도: 과학에 대한 경의와 냉소, 그리고 ‘두 문화’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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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철우 한겨레신문사 과학담당 기자, 사이언스온 운영
1990년 한겨레신문사에 입사해 편집부, 사회부, 문화부, 생활과학부 등을 거쳤으며 주로 과학담당 기자로 일했다. <과학의 수사학>, <과학의 언어>, <온도계의 철학> 등을 번역했으며, <갈릴레오의 두 우주체제에 관한 대화>를 썼다.
이메일 :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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