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정보는 간결하게, 생각은 깊게
인지과학으로 푸는 공부의 비밀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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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딜레마가 있다.
원래 문제 풀기는 학생들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키워주려는 목적이 있다.
그런데 이 방법은 관련 없는 인지 부하도 커서 학생들에게 많은 부담을 지운다.
그래서 학생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풀어놓은 예제 같은 것을 읽게 하면
이번에는 학생들은 생각 없이 공부해서 관련 있는 인지 부하도 충분히 걸리지 않는다.
무리한 운동을 하지 달랬더니 그늘에 쭈그리고 앉아 빈둥거리는 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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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이 우리 생활 속에 자리 잡으면서 인터넷을 이용한 범죄도 많이 늘어났다. 그중에서 여러 차례 뉴스가 된 분산 서비스 거부 공격, 영어 약자로 디도스(DDoS: Distributed Denial of Service attack)는 한꺼번에 여러 대의 컴퓨터를 동원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웹 서버에 대량의 데이터를 전송하는 단순한 해킹 방법이다. 모든 기계는 과부하가 걸리면 고장 나버리기 때문에 디도스 공격을 받은 서버는 작동을 멈추거나 오류를 일으키게 된다. 고의로 디도스 공격을 하지 않아도 어떤 이유로든 갑자기 많은 사람들이 한 웹사이트를 방문하면 똑같은 결과를 낳는다.
컴퓨터와 마찬가지로 사람도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는 정보의 양에는 한계가 있고 그 한계를 넘어가면 말썽을 일으킨다. 운전 중에 전화 통화를 하면 위험한 이유도 많은 정보가 동시에 들어와서 운전을 하는데 필요한 정보들을 충분히 처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공부에서도 마찬가지다. 공부가 어려운 이유는 평소보다 많은 정보를 처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공부가 잘 안 되는 이유도 마찬가지인데 처리할 수 있는 정보보다 많은 정보가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오면 중요한 내용을 미처 기억에 담아두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잘 가르치고 배우려면 정보의 양을 적절히 조절할 필요가 있다. 이 원리는 누구나 아는 듯해도 정확히는 몰라서 오히려 학생들이 감당할 수 없이 많은 정보를 쏟아 붓는 교육 방법이 좋은 방법으로 오인되기도 한다.
세 가지 인지 부하
공부에서 정보의 양을 조절하는 방법을 이해하려면 공부를 할 때 어떤 정보들이 흘러들어오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정보를 머릿속으로 처리하면서 생기는 부하를 인지 부하(cognitive load)라고 하는데, 호주의 심리학자 존 스웰러(John Sweller)는 학습에서 생겨나는 인지 부하를 세 종류로 구별했다.1) 첫째는 본질적 인지 부하(intrinsic cognitive load)이다. 이것은 공부하는 내용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부하다. 이차방정식을 푸는 방법은 1 + 1을 푸는 방법보다 더 어렵다. 스웰러의 용어로 말하면 본질적 인지 부하가 더 큰 것이다. 본질적 인지 부하는 일단 여기서 관심사가 아니므로 그냥 이런 게 있다고 알아두고 넘어가자.
우리가 어떤 내용을 공부할 때 초능력이라도 있어서 텔레파시로 지식을 주고받으면 모를까 어떤 지식이든 가르치고 배우려면 말이나 글, 그림 등 여러 가지 수단을 통해 전달해야 한다. 공부를 할 때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런 수단들 때문에 생겨나는 부하다. 똑같은 말이라도 현학적 술어로 요령부득인 문장을 구술하거나, 문장 속에 문장이 복잡하게 포함되는 문장이 여러 문장에 걸쳐 나오는 문장을 쓰면 이해하기가 힘들다. 이렇게 학습할 내용의 본질과 관련 없이 전달 방식 때문에 생겨나는 부하를 관련 없는 인지 부하(extraneous cognitive load)라고 한다. 말 그대로 본질과 관련이 없는 부하다.
마지막으로 어떤 내용을 전해 듣는다고 바로 알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자기 머리로 여러 모로 생각을 해야 한다. 이것도 많은 정보를 처리해야하므로 부하가 걸린다. 이 정보들은 학습할 내용 자체는 아니지만 학습할 내용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이런 정보를 처리하느라 걸리는 부하는 관련 있는 인지 부하(germane cognitive load)라고 한다.
공부를 할 때 이 세 가지 인지 부하의 총합이 처리할 수 있는 정보의 용량을 초과하면 머리에는 과부하가 걸려서 정보들이 충분하게 처리가 되지 않는다. 간단히 말하면 이해가 안 된다. 특히 말을 일단 알아들어야 내용에 대해 생각해보든 말든 할 텐데 관련 없는 인지부 하에서 벌써 과부하가 걸려버리면 관련 있는 인지 하는 물론이고 본질적 인지 부하까지 처리할 여지가 남지 않는다.
문제 풀기의 인지 부하
전통적인 교육 방법, 특히 수학 교육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이뤄진다. 우선 선생님이 개념과 원리를 설명해주고 한 두 문제를 풀어준다. 그리고 학생들이 수많은 문제를 풀면서 연습을 한다. 문제 풀기 자체는 여러 모로 유용한 방법이다. 시험 효과(testing effect)가 있어서 수동적으로 지식을 받아들이는 것보다 능동적으로 생각을 하는 편이 공부 효과가 더 크기 때문이다. 단어를 외울 때도 그냥 단어를 읽거나 쓰기보다 시험을 보는 편이 더 기억에 오래 남는다.
그런데 문제 풀기에도 세 가지 인지부 하가 모두 걸린다. 예를 들어 직사각형의 넓이를 구하는 방법을 연습하기 위해서 “밑변이 4cm, 높이가 5cm인 직사각형의 넓이를 구하라”라는 문제를 푼다고 해보자. 이 문제에서 본질적 인지 부하는 두 가지다. 우선, 직사각형의 넓이가 (밑변)×(넓이)라는 공식이다. 또 하나는 넓이의 단위가 cm2라는 정보이다. 그런데 이 문제를 풀자면 중간에 4×5라는 곱셈을 해야 한다. 이것은 곱셈을 연습할 때라면 모를까 직사각형의 넓이 구하기를 연습할 때는 학습 내용의 본질과 아무 관련이 없다. 밑변과 넓이를 곱한다는 사실만 안다면 곱셈은 계산기로 풀어버려도 그만이다.
이런 점 때문에 수학 문제를 풀 때 계산기를 쓰도록 하자는 의견도 있다. 실제로 여러 나라에서는 수학 시험을 볼 때 계산기를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공인회계사 시험을 볼 때는 계산기를 사용해도 된다. 회계사 시험의 목적은 회계 지식을 평가하는 것이지 덧셈, 뺄셈 잘하는지 평가하려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2014년부터 고등학교 수업 시간에 계산기를 쓰도록 한다고 한다.
그런데 수학 문제 풀기에서 단순 계산 때문에 생겨나는 인지 부하는 매우 적다. 게다가 한국 학생들은 어려서부터 셈에 대한 훈련이 철저하게 되어 있어서 다른 나라 학생들에 비해 더욱 부담이 적다. 한국에서 구구단 외기는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에 놀이로 나올 만큼 일상적인 기술이다. 물론 그래도 인지 부하가 없지는 않다. 적은 정보라도 빠르게 처리하려면 그만큼 부하가 많이 걸린다. 구구단 외기 놀이에서 실수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어쨌거나 단순 계산 자체의 인지 부하가 아주 크지 않기 때문에 계산기를 도입한다고 해서 큰 효용은 없다.
수학도 그렇지만 모든 종류의 문제 풀기에서 가장 큰 인지 부하는 주어진 조건에서 답을 얻기 위한 방법을 찾아내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나온다. 물론 이런 노력도 아주 필요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인지 부하가 매우 커서 학습할 내용을 이해하는 것을 방해하곤 한다. 인지 부하 이론을 제시한 스웰러는 학생들을 두 집단으로 나눠서 한 집단은 문제 풀기를 시키고 다른 집단은 풀어놓은 예제(worked example)을 읽게 만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문제를 많이 풀어본 학생들이 시험을 더 잘 보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반대로 나타났다. 공부를 마치고 시험을 보았을 때 풀어놓은 예제를 읽기만한 집단의 성적이 더 좋았다. 풀어놓은 예제를 읽으면 문제를 푸느라 애쓸 필요가 없기 때문에 인지 부하가 적고, 그래서 개념을 어떻게 적용하는지 더 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2)
스웰러의 연구는 여러 연구에서 거듭 재현되었다. 중국의 심리학자 주신밍(Zhu Xinming)과 미국의 인지과학자 허버트 사이먼(Herbert Simon)은 1980년대 중반 중국의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장기간에 걸친 대규모 실험을 실시했다. 이 실험은 3년 과정의 수학 교과를 2년 동안 가르치는 것이었다. 스웰러의 방식에 따라 실험 대상인 학생들은 전통적인 학습 방법 대신 풀어놓은 예제를 중심으로 공부를 했다. 1987년 중국 전체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된 일제고사에서 이 학생들은 3년 동안 정규 과정을 마친 학생들보다 더 높은 성적을 거두었다. 정규 과정을 마친 학생들은 81%가 시험에 통과했지만, 2년 동안 풀어놓은 예제 중심으로 공부한 학생들은 87%가 통과했다.3)
관련 있는 인지 부하는 크게
그렇다면 무조건 인지 부하를 줄여야 할까? 그렇지 않다. 학습할 때는 생각을 많이 하고 머리를 많이 써야 학습 효과가 크다. 다만 학습할 내용의 본질과 상관없는 곳에 머리를 많이 쓸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관련 없는 인지 부하는 적을수록 좋지만, 처리할 수 있는 정보의 용량을 초과하지 않는 한에서 관련 있는 인지 부하는 클수록 좋다.
보통 수학을 공부할 때 풀어놓은 예제를 하나만 읽고 문제를 여러 가지 푼다. 여러 가지 문제를 푸는 것은 좋다. 왜냐하면 다양한 상황에 지식을 적용하는 연습을 하면서 좀 더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이해를 도와주기 때문이다. 이것은 관련 있는 인지 부하다. 하지만 문제 풀기는 관련 없는 인지 부하도 커서 관련 있는 인지 부하를 처리하는 것을 방해한다.
이것은 실험으로도 확인된다. 한 연구에서 학생들을 네 집단으로 나누어 서로 다른 방법으로 공부를 하게 했다. 두 집단은 풀어놓은 예제를 읽게 하고, 다른 두 집단은 문제를 풀게 했다. 풀어놓은 예제를 읽는 집단 중에 한 집단은 다양한 예제를 읽게 했고, 다른 집단은 비슷한 예제를 읽게 했다. 문제를 풀게 한 집단도 한 집단은 다양한 문제를 풀게 했고, 다른 집단은 비슷한 문제를 풀게 했다. 시험을 보았을 때 문제를 푼 집단에서는 다양한 문제를 풀든 비슷한 문제를 풀든 별 차이가 없었다. 문제를 푸는 것만으로도 인지 부하가 많이 걸려서 정보를 처리할 수 있는 용량에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풀어놓은 예제를 읽게 한 집단에서는 다양한 예제를 읽은 집단이 비슷한 예제를 읽은 집단보다 성적이 훨씬 좋았다.
제한된 인지용량, 알뜰하게 쓰기
이런 원리는 운동과 비슷하다. 우리 몸의 세포들은 무엇이나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근세포는 부하가 걸리면 굵어지고, 뇌세포도 부하가 걸리면 신경망이 단단하게 연결된다. 운동을 할 때 잘못된 자세로 하면 엉뚱한 근육이나 관절에 부하가 걸려서 효과도 적고 부상당하기도 쉽다. 하지만 너무 가벼운 역기를 들면 운동이 되질 않는다. 바른 자세로 무리하지 않는 범위에서 충분한 무게의 역기를 들고 운동해야 근육이 잘 발달한다. 공부도 군더더기에 머리를 쓰면 안 되지만 아무 생각 없이 해도 소용이 없다.
전통적인 교육에서도 선생님이 예제를 직접 풀어주기도 하고 교과서나 자습서에도 풀어놓은 예제는 충분히 실려 있다. 풀어놓은 예제를 공부하는 것이 그토록 효과적이라면 수업을 잘 듣고 교과서를 잘 읽기만 해도 충분한 학습효과를 거둘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사람은 종류를 불문하고 머리에 부하가 걸리는 상황을 피하려고 한다. 간단히 말해 골치 아픈 것은 누구나 싫어한다. 설명이나 예제를 읽으면서 깊이 생각해야 관련 있는 인지 부하가 충분히 걸려서 학습이 잘 이뤄지는데 학생들은 설명이나 예제를 건성으로 읽고 넘어가 버린다.4)
게다가 많은 학생들은 문제를 풀다가 막히거나 틀리면 그제야 설명과 예제를 읽어본다. 이것은 상황을 더 악화시킨다. 왜냐하면 빨리 문제를 풀어버릴 욕심에 급급해서 막히거나 틀린 문제를 머리 한 쪽에 담아둔 채로 설명과 예제를 읽기 때문이다. 그만큼 인지 부하가 더 많이 걸린다. 처음부터 설명과 풀어놓은 예제를 주의 깊게 잘 읽고 이해하는 것이 올바른 공부 방법이다.
여기에 딜레마가 있다. 원래 문제 풀기는 학생들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키워주려는 목적이 있다. 그런데 이 방법은 관련 없는 인지 부하도 커서 학생들에게 많은 부담을 지운다. 그래서 학생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풀어놓은 예제 같은 것을 읽게 하면 이번에는 학생들은 생각 없이 공부해서 관련 있는 인지 부하도 충분히 걸리지 않는다. 무리한 운동을 하지 달랬더니 그늘에 쭈그리고 앉아 빈둥거리는 격이다.
이러한 딜레마를 풀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이 개발되었다. 한 가지 방법은 예제를 모두 풀어주지 말고 핵심적인 부분은 학생들이 직접 풀게 하는 것이다.5) 즉, 학생들이 머리를 써야 할 부분에서는 머리를 쓰게 하고 학습 목표에서 벗어난 부분은 대신 풀어줘서 인지 부하를 줄여주는 것이다. 이런 종류의 문제를 채워 넣기 문제(completion problem)이라고 한다. 학생들이 핵심적인 부분만 채워 넣도록 하기 때문이다. 물론 학생들이 풀어놓은 예제를 주의 깊게 읽기만 한다면 굳이 이렇게 번거로운 방식으로 문제를 낼 필요는 없다.
경험으로 배울 수 있는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
전통적인 교육 방법에만 이런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 최근에는 학생들에게 일방적으로 지식을 가르치기보다 학생 스스로 지식을 발견하도록 격려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이 자체는 좋은 생각이지만 학생들이 경험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잊으면 문제 풀기와 똑같은 함정에 빠지고 만다.
학생들에게 흥미를 불어넣고 탐구의 기회를 주어 스스로 지식을 발견하도록 하는 교육 방법은 오래전부터 여러 가지로 시도되어 왔지만 기대만큼 좋은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인공지능의 선구자 중에 한 사람인 시모어 페이퍼트(Seymour Papert)는 적절한 환경만 갖추어준다면 어른들이 일일이 가르쳐주지 않더라도 아이들이 컴퓨터를 마음껏 가지고 놀면서 스스로 컴퓨터의 원리를 깨우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아이들을 위한 여러 가지 컴퓨터와 프로그램들을 만들어냈다. 페이퍼트가 만든 “로고(LOGO)”는 화면 속의 거북이에게 여러 가지 동작들을 시켜볼 수 있도록 만든 프로그램인데, 간단하고 배우기가 쉬워서 지금까지도 교육용으로 쓰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를 확장하여 과학 연구에서 복잡한 모의실험을 하는데 활용되고 있다.
로고 자체는 훌륭한 프로그램이지만, 단순히 로고를 가지고 놀면서 이런 저런 시도를 해보는 것만으로는 아이들이 컴퓨터의 원리를 충분히 배우지 못했다. 초등학생들에게 50시간 동안 로고로 다양한 활동을 하게 해보았지만 아이들은 매우 부정확한 인상만을 가졌을 뿐 정확한 개념을 이해하지 못했다. 새로운 활동을 시켰을 때 이미 많은 경험을 쌓은 아이들도 경험이 거의 없는 아이들과 큰 차이가 없었다. 교사의 도움과 피드백을 받은 아이들이 같은 시간에도 더 많이 배웠고, 새로운 종류의 프로그램도 더 잘 짰다. 로고 이외에도 다양한 영역에서 이와 비슷한 시도들이 많이 이뤄졌지만 다들 기대만큼 좋은 결과는 얻지 못했다. 6)
학생들이 무언가를 배우려면 활동 중에 경험하는 수많은 정보들 중에서 의미 있는 정보를 찾아내고 학습해야 한다. 그러려면 막대한 관련 없는 부하를 감당해야 하기 때문에 학생들의 능력을 넘어서버린다. 체험 활동이나 발견 학습이 목적 없이 활동에만 매몰될 경우 제대로 배우는 것도 없이 그저 ‘재미있었다’, ‘한 번 해봤다’는 것으로 끝나버린다. 배우는 것은 적을지 몰라도 사고력이나 창의성을 키워준다는 주장도 있지만 그것을 뒷받침하는 증거는 없다. 로고 연구에서도 교사가 적절하게 개입해서 의미 있는 정보를 발견하도록 유도를 한 학생들이 혼자서 새로운 종류의 컴퓨터 프로그램도 더 잘 만들었다.
시청각 교육의 군더더기 정보
인지 부하의 문제는 교육 자료를 만들 때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보통 그림이 있으면 이해하기가 더 쉽다고 생각하지만 그것도 그림을 그리는 방법에 따라 달라진다. 오히려 그림 때문에 인지 부하가 더 많이 걸리는 경우도 많다. 흔한 예로 그림만 보아서는 이해할 수가 없고 글을 읽어봐야 하는데, 역시 글만 봐서는 알 수 없고 그림도 보도록 되어 있는 경우가 있다. 이렇게 하면 글을 읽고 그 내용을 머리에 담아둔 채로 그림을 보다가 다시 그림을 머리에 담아두고 글을 읽어봐야 해서 계속 인지 부하가 걸린다.7) 설명서를 보면서 기계를 작동시켜보면 확실히 느낄 수 있는데 기계를 보다 설명서를 보다 오락가락해서 무척 힘들다. 필요한 정보는 한 눈에 들어오도록 해야지 머릿속에 담아두도록 하면 그만큼 인지 부하가 걸린다. 가능하면 글만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하든지 아니면 그림만 보고도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아니면 시청각 교육을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글과 그림을 나란히 놓으면 시각이라는 한 가지 통로로 두 가지 정보를 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인지 부하가 많이 걸리지만, 그림을 보여주면서 말로 설명을 해주면 시각과 청각이라는 두 가지 통로를 활용하기 때문에 각각의 통로에 걸리는 인지 부하가 줄어든다.
그런데 시청각 교육에서도 굳이 쓸데없는 군더더기 정보를 덧붙여서 비슷한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흔하다 물론 어느 정도 흥미를 끌기 위해서 장식이나 효과를 덧붙일 수 있지만 지나치게 많이 붙이면 조잡해보이기도 하거니와 불필요한 인지 부하를 발생시켜서 내용 이해를 거꾸로 방해한다.
시청각 교육에서 가장 흔한 군더더기 정보는 말로 할 내용을 일일이 글로 써두는 것이다. 눈으로도 읽고 귀로도 들으니 좋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실제로는 똑같은 정보를 이중으로 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오히려 인지 부하가 더 커진다. 게다가 빽빽한 글을 흐릿한 화면으로 보려면 눈도 아프다. 이것은 시청각 교육만이 아니라 책 같은 전통적인 매체에서도 마찬가지인데 그림만 봐도 이해할 수 있는 내용에 굳이 글로 설명을 덧붙이면 역시 인지 부하가 커져서 이해를 방해한다.8)
매체보다 주로 슬라이드에 말할 내용을 글로 써두는 경우가 많은데, 보통 이 슬라이드를 그대로 인쇄해서 교재로 나눠주기 때문에 그림만 달랑 있으면 나중에 보고 복습을 할 수가 없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는 시청각 교육이 아니라 그냥 책을 읽어주는 것과 다름이 없다. 화면으로 보여줄 슬라이드와 인쇄해서 나눠줄 교재는 성격이 다른 매체이므로 따로 만드는 편이 더 바람직하다.
흔히 어린이용 단어장을 보면 단어 위에 그림을 그려놓는데 이것도 마찬가지다. 어른들이야 별로 상관없겠지만 처리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이 무척 적기 때문에 이것만으로도 인지 부하가 무척 크다. 단어와 그림을 같이 보여주는 것보다 단어만 보여주면 아이들이 단어를 훨씬 빨리 배운다. 이 사실은 인지 부하 이론이 나오기도 훨씬 전인 1937년에 발표 되었지만9), 어린이용 단어장에는 그림과 단어를 함께 쓰는 것은 여전하다.
정보는 간결하게, 생각은 깊게
굉장히 많은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독자들의 머리에도 상당한 인지 부하가 걸렸을 듯하다. 간단히 정리를 해보자. 우선 우리가 처리할 수 있는 정보의 양에는 한계가 있고 지나치게 많은 정보를 주면 과부하가 걸려서 학습이 잘 이뤄지지 않는다. 따라서 학습할 내용과 관련이 없는 정보는 줄이는 편이 좋다. 하지만 처리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학습할 내용과 관련된 정보를 가능한 많이 생각하고 머리를 써야 공부가 잘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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