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명의 "인지과학으로 푸는 공부의 비밀"

‘공부 잘 하는 법’은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갖는 주제이자 한국 사회의 주요한 정치적 의제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학생들은 잘못된 공부법으로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며 정치 논쟁에선 과학적 근거를 갖춘 경우를 보기 어렵습니다. 공부는 어떻게 해야 할까? 심리학·뇌과학을 통해 우리시대의 공부법을 들여다 봅니다.

[연재] 자기통제는 근육이다

인지과학으로 푸는 공부의 비밀 (18)


00study21자기통제는 근육과 비슷하다.  근육과 자기통제는 모두 다 잘 먹고 잘 자면서 단련하면 더욱 강해진다는 뜻이다. 한겨레 자료사진

 

 

"앉아서 공부만 하는 게

뭐가 힘드냐?" 공부하기 싫어하

는 자녀에게 이런 핀잔을 주는 부

모들이 있다. 물론 공부를 하는데 숨이 차거나 땀이 흐르진 않는다. 하지만

공부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의 뇌는 크기는 커도 무게는 가벼워

서 체중의 2% 밖에 차지하지 않지만, 에너지는 20%나 사용한다.

게다가 머리를 쓰면 에너지 소모량은 더욱 늘어난다.

 

 


의지력이 '제한된 자원'인 이유



00study27의지력이 제한된 자원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자기통제는 뇌의 활동 중에서도 에너지를 대단히 많이 소모하는 활동이어서 조금만 참을성을 발휘하더라도 몸속의 에너지가 급속하게 고갈된다. 그러니 참고 앉아 공부하는 것은 이중으로 힘든 일이다. 의지력도 발휘하랴, 머리도 쓰랴, 에너지가 남아나질 않는다.


튜 게일리엇(Mattew Gailliot)과 여러 심리학자들은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간단한 자기통제 과제를 시키고 그동안 일어나는 혈당(blood sugar)의 변화를 측정했다. 한 실험에서는 사람들에게 소리가 나오지 않는 비디오를 보게 했다. 이 비디오를 보다보면 화면 아래쪽 구석에 단어가 하나 나타나서 위쪽으로 서서히 움직이다가 사라졌다. 실험참여자들은 이 단어를 무시하고, 우연히 눈길이 가더라도 바로 화면에 집중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런 짧고 간단한 자기통제만으로도 사람들의 혈당은 눈에 띄게 떨어졌다. 이런 지시를 받지 않고 그냥 비디오를 본 사람들의 혈당에는 거의 변화가 없었다.1)


물론 혈당이 떨어진다고 해서 금세 배가 고파 쓰러질 정도로 낮아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우리의 몸은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기능이 있다. 이를테면 근력 운동을 할 때도 몸이 부서질 것 같은 고통이 느껴지기는 하지만 이런 통증은 근육의 상태를 직접적으로 반영하는 것은 아니다. 정말로 큰 손상이 가기 전에 무리가 가는 행동을 멈추기 위해서 뇌가 만들어내는 신호다.2) 같은 원리로 뇌는 혈당이 떨어지면 작동 방식을 바꾼다. 게일리엇과 그의 동료들의 연구에서도 한 가지 자기통제 과제를 하고 혈당이 낮아진 사람들은 다른 자기통제 과제를 잘 하지 못했다.



의지는 밥에서 나온다



00study25혈당이 떨어져서 의지력이 고갈된다면, 반대로 에너지를 공급해주면 의지력도 되살아날까? 그렇다. 게일리엇을 비롯한 연구자들은 자기통제 과제를 하고 혈당이 낮아진 사람들에게 달콤한 음료수를 주었다. 이 음료수들 중에 어떤 것은 설탕이 들어 있었고, 다른 것은 합성감미료가 들어 있었다. 설탕과 합성감미료는 모두 단맛이 나지만 합성감미료에는 당분이 거의 없다. 사람들이 둘의 차이를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음료수는 신 맛이 강한 레모네이드로 주었다. 그 후에 다시 자기통제 과제를 하게 하자 설탕이 든 레모네이드를 마시고 혈당이 회복된 사람들은 다시 자기통제를 잘 하게 되었지만 합성감미료가 든 레모네이드를 마셔서 혈당이 여전히 낮은 사람들은 계속 자기통제를 잘 하지 못했다.


여담이지만 다이어트가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다이어트를 하려면 열량 섭취를 어느 정도 제한해야 하는데 이렇게 하면 혈당이 낮아진다. 혈당이 낮아지면 자기통제를 잘 못하고, 음식을 먹고 싶은 욕구도 억제하기가 어려워진다. 음식을 먹고 싶은 욕구를 억제하기 위해 의지력을 발휘하자면 음식을 먹어서 혈당을 높여야 한다. 그야말로 모순이 아닐 수 없다.


또, 실험을 할 때는 단시간에 혈당을 올려야 하니까 설탕을 먹이지만 장기적 관점에서 볼 때에는 자기통제를 발휘하기 위해 설탕처럼 혈당을 빠르게 올리는 음식을 많이 먹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런 음식들은 혈당을 빨리 높여주지만 그만큼 떨어지기도 빨리 떨어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건강에도 좋지 않다.


마 전 한국 사회는 학교 무상급식을 둘러싸고 격렬한 논쟁을 벌어졌다. 찬성 측과 반대 측 모두 다양한 논거를 들었지만 어느 쪽에서도 영양 섭취 자체가 지닌 교육적 측면에 대해서 언급하는 경우는 보기 힘들었다. 하지만 영양 섭취가 행동에 끼치는 영향은 생각 이상으로 크다.


비행청소년들이나 범죄자들의 식단을 조사해보면 영양 섭취가 불균형한 경우가 많다. 영국에서 이뤄진 한 실험에서는 18세 무렵의 교도소 수감자들에게 비타민, 미네랄, 필수지방산이 포함된 영양제를 섭취하게 했다. 비교를 위해 일부 수감자들에게는 맛과 모양이 같은 가짜 약(placebo)을 먹게 했다. 교도소 측에는 누가 어떤 약을 먹었는지 알리지 않고 수감자들의 행동을 관찰하게 했다. 최소 2주 이상 영양 섭취를 개선한 수감자들은 보고된 규칙 위반 사례가 이전보다 35.1%나 감소했다. 가짜 약을 먹은 수감자들은 6.7% 정도 줄었을 뿐이었다.3)


보통 학생들의 경우에도 비슷한 결과가 나타난다. 아침을 먹지 않는 학생들은 밤 동안 혈당이 많이 떨어진 상태로 학교에 가기 때문에 수업 태도나 학습 능력이 좋지 않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아침을 챙겨 먹이면 수업 태도나 학습 능력이 개선된다는 연구가 많이 있다.4) 한국의 학교들 중에 점심은 유상이든 무상이든 급식을 실시하지만 아침 급식을 주는 경우는 드물다. 급식 값도 중요한 문제지만 무엇을 어떻게 먹일지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00study20한겨레 자료사진

 


수면이 부족하면



00study24자기통제에는 영양 섭취도 중요하지만 수면과 휴식도 중요하다. 잠이 부족한 사람들은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Attention 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 이하 ADHD)와 비슷한 증상을 보인다. 짜증을 잘 내고, 주의가 산만하며 충동적이다. 특히 목표지향적인 행동을 잘 하지 못한다. 사실 ADHD와 수면 부족은 증상만 비슷한 것이 아니라 둘 사이에는 긴밀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렇다면 얼마나 자야 충분히다고 할 수 있을까? 이것은 사람마다 수면 주기가 다르기 때문에 일반화해서 말할 수 없다. 평균적으로는 8시간 정도라고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더 짧고 어떤 사람들은 더 길다. 수면 주기가 짧다고 부지런하거나 길다고 게으르다는 것은 편견이다. 이것은 생체 리듬의 차이일 뿐이다. 충분한 수면 시간이 얼마인지 아는 방법은 간단하다. 잘 만큼 자면 된다.


그런데 현대 사회에는 충분한 수면을 방해하는 수많은 요소들이 있다. 수면 주기는 빛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 과거와 달리 요즘에는 밤에도 불빛이 꺼지질 않는다. 게다가 너무 많은 일과 공부 때문에 일찍 잠들기도 어렵다. 또한 지나치게 일찍부터 출근이나 등교를 하게 해서 충분히 잘 수도 없다.



청소년의 밤은 늦게 시작한다



00study26청소년과 성인의 수면 주기 차이는 상황을 더 까다롭게 만든다. 사춘기를 거치면서 수면 주기가 뒤로 밀리는 현상이 나타난다. 여기에는 심리적, 사회적 원인도 있지만 생리적 변화도 한 몫을 한다. 청소년기에 들어서면 내분비계의 성숙에 따라 멜라토닌 분비 주기가 늦춰지는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멜라토닌은 수면 주기와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이것이 청소년기에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한 가지 원인이 되는 것으로 보인다.5)


나이가 들면 청소년기와는 반대로 점점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게 된다. 그런데 서로 다른 수면 주기를 생물학적 차이로 이해하지 않고 자기 관점에서 보기 때문에 갈등이 생겨난다. 이를테면 지금의 등교 시간은 성인들에게는 몰라도 청소년들에게는 지나치게 이른 시간이다.


다가 청소년기에는 아동기보다 수면 주기가 더 늦는데도 불구하고 등교 시간은 더 빠르다. 고등학교 1학년에게 밤 11시는 중학교 3학년에게 밤 10시와 같다.6) 그런데 오히려 고등학교에서는 중학교보다 등교 시간이 이른 경우가 많다. 수면주기를 생각한다면 중학생은 초등학생보다, 고등학생은 중학생보다 더 늦게 등교하는 편이 낫다.


이러한 연구에 영향을 받아 미국 미네아폴리스 시의 교육위원회는 1997년 원래 7시15분이던 고등학교 등교시각을 8시40분으로 늦추었다. 이 정책의 효과를 검토한 미네소타대학의 연구자들은 학생들의 성적이 높아지고, 우울한 학생이 줄었으며, 중퇴율도 낮아졌다고 보고 했다.7)



자기통제도 훈련으로 강화할 수 있다



00study22의지력이 제한된 자원이라는 주장을 편 로이 바우마이스터는 자기통제가 근육과 비슷하다고 지적한다. 근육과 자기통제 모두 잘 먹고 잘 자면서 단련하면 더욱 강해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훈련을 통해 자기통제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8)


렇다고 사람들을 ‘해병대 캠프’에 보내서 극기 훈련을 시킨 것은 아니다. 바우마이스터가 사용한 방법은 좀 더 간단한 것이었다. 그는 사람들에게 2주 동안 바르게 앉도록 노력하거나 또는 먹은 음식을 빼놓지 않고 일기에 적어보도록 시켰다. 사소하게 보이지만 자기통제나 자기관찰을 연습시킨 것이다.


조금 실망스럽게도 2주 뒤에도 사람들의 의지력은 더 강해지지 않았다. 다만 흥미로운 현상이 나타났는데 한 가지 자기통제 과제를 하고 나서 다른 자기통제 과제를 할 때도 여전히 비슷하게 해낸 것이다. 다시 말해 의지력이 고갈되기는 훈련 이전과 달라지지 않았지만 훈련 이전보다 의지력이 빨리 복원되었다.


이외에도 다양한 훈련 방법이 효과적이라는 사실이 나타났다. 규칙적인 운동, 말을 제대로 된 문장으로 하기, 안 쓰던 손을 쓰기, 편견 섞인 말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기 등도 효과가 있었다. 모두 간단하지만 습관적으로 행동하는 대신 자신의 모습에 관심을 기울여 관찰하면서 자기통제를 하는 연습이다.


리고 이러한 연습의 효과는 넓은 범위에 걸쳐 나타났다. 자기통제 훈련을 한 사람들은 흡연, 음주, 불량식품 섭취, 카페인 섭취, 충동구매, 텔레비전 시청이 줄어든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설거지도 오래 쌓아놓지 않고 빨리 해버리게 되었다. 동시에 식습관도 좋아지고 공부도 열심히 하고 감정 조절도 잘하게 되었다. 사소한 행동이라도 스스로를 돌이켜보며 몸가짐을 바르게 하는 습관이 붙으면 다른 행동도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다는 결과로 이해할 수 있다.9)


<중용>에는 "숨은 것보다 잘 보이는 것은 없고 작은 것보다 잘 드러나는 것은 없다. 그래서 군자는 홀로 있을 때에도 도리에 벗어나지 않도록 몸가짐이나 언행을 조심한다(莫見乎隱, 莫顯乎微, 故君子愼其獨也)"라는 구절이 있다. 공부를 열심히 하고 싶다면 숨어 있는 작은 것부터 자신을 돌아보며 몸가짐을 바르게 하는 연습을 시작해보면 어떨까? 그것이야말로 가장 큰 공부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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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명 서울대 인지과학협동과정 박사과정
마음과 뇌의 작동 방식을 수학, 통계학 그리고 인공지능을 이용해 시늉내는 계산 모델링(computational modeling)을 연구하고 있다.
이메일 : euphoris@gmail.com       트위터 : @aichupanda        
블로그 : Null Model(nullmodel.egloo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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