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연구자들의 "청춘 스케치"

연구의 맛과 멋을 배우는 젊은 연구자들이 실험실에서, 연구실에서, 그리고 사회와 만남에서 얻는 에피소드와 경험, 그리고 생활의 단상을 전합니다.

이방인처럼 비친 나와 우리의 불편함, 그 정체는?

신동화의 “유럽에서 포닥으로 살기 -이탈리아”


[1] 문득 발견한 과학하기의 낯섦

00torino.jpg » 토리노공대의 연구동 정문에서. 봄볕이 좋아서 제가 마치 눈을 감은 것처럼 나왔습니다. 사진/ 신동화 


음 뵙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새로 시작하는 ‘청춘 스케치’ 연재에 참여하게 된 신동화라고 합니다. 저는 지난해 8월 서울대학교 전기컴퓨터공학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지금은 이탈리아 토리노공대(Politicnico di Torino)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있습니다. 그동안 ‘청춘 스케치’의 필자들이 올려준 글을 보면서, 연구자들의 진솔한 모습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획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필진으로 참여하여 독자 여러분을 만날 수 있게 되어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앞으로 살아가는 이야기, 연구 분야 이야기 등 몇 가지 주제를 담아 여러분을 찾아뵙게 될 것 같습니다. 개인적인 이야기뿐만 아니라 다른 독자들에게 유용하거나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을 조금이라도 드릴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첫 회에서는 일단 어떤 동기로 연재 글쓰기에 참여하고자 결심했는지, 앞으로 어떤 내용으로 청춘 스케치를 그려나갈 생각인지 간략하게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나는 혹시 이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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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혹시 최근에 문화방송(MBC)에서 방영 중인 <코미디에 빠지다>라는 프로그램을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저는 이곳에서 그 프로그램을 인터넷 웹에서 ‘다시보기’로 보곤 하는데, 특히 “사랑은 붕붕붕”이란 코너를 특히나 좋아합니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에는 ‘두 이방인’이란 코너도 있습니다.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취업하지 못한 고학력자(아마도 이공계인 듯)들이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한 뒤 좌충우돌하는 내용입니다. 


00shin.jpg » 문화방송(MBC) 개그 프로그램의 한 코너인 '두 이방인' 장면. '띵킹~ 띵킹~' 중인 두 이방인 가운데 안경 낀 이의 인물 묘사가 탁월했다. 출처/ MBC

사람 중 안경을 쓴 출연자의 캐릭터는 어느 세미나에선가 비슷한 말투를 쓰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만큼 고학력자 캐릭터의 미묘한 특징을 잘 잡아내어 내심 놀라곤 합니다. 다시보기로 볼 때에는 좋아하는 코너를 빨리 찾아보려는 마음에 흥미 없는 코너는 그저 넘겨버리게 되는데, 어느날 문득 저는 이 ‘두 이방인’이란 코너를 제가 빨리 넘겨버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어떤 장면에서 방청객들이 웃는지, 왜 이런 것이 개그의 소재가 되는지, 생각할수록 꼭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뭔가 저는 그 코너가 불편했습니다. 저는 과연 두 이방인들과 얼마나 다른 걸까요?


학위논문을 한창 준비하던 즈음, 고등학교 시절의 친구와 만난 적이 있습니다. 저야 온통 관심이 제 연구 주제에 쏠려 있으니 이야기는 깔때기처럼 그 주제로 흘러갔습니다. 한참 설명을 듣던 친구는 제가 제안한  기법이 실용화될 수 있는 것인지 물었습니다. 그 ‘실용화될 수 있는 것이냐?’란 질문에 저도 모르게 조금 짜증을 내버리고 말았습니다. 친구는 제가 관심을 둔 부분, 해결하고자 하는 부분보다는 이게 과연 돈이 될 것인지, 특허를 받을 수 있는 것인지에 더 큰 관심을 보이며 그런 물음을 던졌기에, 솔직히 저는 기분이 상해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 친구한테는 구구절절한 설명이 왜 필요한지, 실은 논문 몇 편, 특허 몇 개 해버리면 다가 아니었던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들을 이해하지 못한다며 투덜대던 ‘두 이방인’의 주인공들은 코너 말미에 “이렇게 똑똑한 우리들에게 곧 외국계 대기업에서 취업하라는 제의가 오겠지?”라고 되물으여 코너를 마칩니다. 저는 이 말이 몹시 불편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다름’에 대한 관용이 적은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방청객들이 두 이방인을 보면서 모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은, 학력을 무기 삼아 다른 이들을 무시하고, 좋은 학교, 좋은 직장만을 바라는 사람들이 실제로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쩌면 “두 이방인”이 풍자하고 있는 “고학력자”들은 자신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일부러 다른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말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돌이켜 생각해보면 한참 제 연구 주제를 떠들던 제 모습도 진정으로 소통하려던 태도였는지, 스스로 한 일을 뽐내려는 마음에 은연 중에 친구를 무시하는 태도는 없었는지 생각해보면 솔직히 자신이 없습니다.



과학자 훈련, 소통의 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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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위를 받을 즈음에 저는 지금까지 제가 한 일이 어떤 의미가 있었고 앞으로 무얼 해야 하는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이 그런 과정을 겪는다고 하더군요. 사회적으로 볼 때, 제가 제 연구에 관해 받는 피드백이란 사실상 수행과제의 평가가 전부입니다. 아시다시피, 대부분의 연구 과제는 수량적으로 평가되고 그 수량적 평가의 요체는 학술지 게재 논문의 숫자입니다. 그리고 대개 학술지 논문은 저와 비슷한 분야에 계신 연구자들의 평가를 거쳐 게재되고 발표됩니다. 논문은 처음부터 관련 분야의 전문가들한테 보이기 위한 글이고, 필요 이상으로 쉽게 쓸 이유가 없고, 쉽게 쓰는 것이 오히려 좋지 않은 결과가 될지도 모릅니다. 가만히 생각하면 할수록, 내가 하는 일이 자칫 몇 사람들의 사회 안에서 뱅뱅 돌고 끝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방인이란, 다른 곳에서 와서 현지 환경에 낯선 사람들입니다. 다른 이들이 관심이 많지 않은 분야에 깊숙이 들어가서, 조금은 흔하지 않은 경로를 밞으며 지낸 것이 사실입니다. 저는 학부를 졸업한 뒤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기까지 다 합해서 7년을 대학원에 있었습니다. 학위과정 공부를 하는 동안에는 저도 산사에 틀어박힌 것이나 다름없이 지냈습니다. 만나는 사람의 수는 갈수록 줄었고, 연구 외에 다른 관심사도 점차 줄어들었습니다. 읽고 쓸 것, 실험할 것이 넘쳐났고 다른 곳에 신경쓸 겨를이 없었습니다. 어쩌면 박사과정에 진학한 뒤로 정말로 속내를 털어놓고 이야기를 나눈 사람은 우울감 때문에(제가 꼭 연구를 열심히 해서 그런 건 아닙니다 ^^) 정기적으로 만나뵈던 심리상담사 선생님뿐일지도 모릅니다. 같은 시대를 사는 사람들은 서로 공유하는 기억을 통해 서로 감정을 이입하고 상대의 마음을 헤아립니다. 공감대가 없다면 자연스레 서로 이해하는 것도 어려워집니다. 그동안 제게는 가장 가까운 친구들, 가족과도 공유하는 시간이 점차 줄어들어버린 것 같습니다.


친구들은 다른 대한민국 남자들처럼 대개 군대를 다녀오고 대학을 졸업한 뒤에 취업하고 결혼을 준비했습니다. 제 경험상, 우리나라 남자들은 군대 이야기를 빼면 정말로 대화가 잘 안됩니다. 많은 제 또래의 남성 박사과정 학생들처럼 저는 전문연구요원으로 3년 간 복무했지만, 이건 사실 친구의 표현을 빌자면 군대도 아닙니다. 친구들과 술자리에서 할 이야기가 없어지는 것을 넘어 심지어 어떤 술자리에서는 병역 면탈에 관한 시비 끝에 한 선배와 다투고만 적도 있습니다. 가족과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전문연구요원이란 제도에 관해 친척 어른들께 설명드리는 것은 학위를 받을 때까지도 명절때마다 저의 일과였습니다. 이제는 박사후과정이 무엇이며 왜 필요한지를 설명해야 하는 것으로 주제만 바뀌었을 뿐 상황은 똑같답니다.


슷한 연구를 하는 동료들과 나누는 대화에도 때로는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어쩌면 더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사실상 제가 지금 당장 관심을 가지고 있는 구체적인 주제에 대해서 바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의 숫자는 같은 연구실 동료 중에서도 많지 않습니다. 만약 제 이야기를 별다른 설명을 듣지 않고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제 분야에 배경 지식이 있다면, 안타깝게도 그는 제 경쟁자일지도 모릅니다. 제가 특별히 불운한 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혹 운이 좋아 친구나 가족 중에 같은 전공인 사람이 있지 않고서야 이런 상황을 피하기는 어려운 것이고 보면, 이런 일은 저와 비슷한 박사과정 학생들이 대개 겪었을 법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매번 한 이야기를 또 해야 하는지,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혹은 틀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너무 다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런 과정를 몇 년 거치고 난 뒤 저는 다른 이들과 깊게 이야기 나누는 것을 점차 피곤하게 느끼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연구자로서 훈련 받는 과정을 통해 연구자 개인들이 맞닥뜨리는 문제들뿐 아니라 연구자를 둘러싼 사회적인 분위기도 좋다고는 할 수 없을 듯합니다. 제가 박사후 과정으로 국외 연구기관에 간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 곧잘 들었던 말은 ‘나라에 도움이 되라’는 것, 아니면 ‘외국계 기업에 취업할 수 있느냐’는 이야기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이공계 연구자들을 대하는 태도는 종종 운동선수를 대하는 태도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연구는 선택받은 소수의 전유물로 간주되고 이들이 세계 속에서 경쟁해서 승리하는 것을 운동 중계하듯이 보도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언론 보도를 보면 무엇을 연구했고 어떤 의미가 있는지보다는 무슨 상을 받았는지 어떤 학술지에 게재되었는지만이 중요하게 취급되는 것 같습니다. 이게 꼭 문제는 아닐 수도 있지만 적어도 바람직하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연구자들한테도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간에 이런 상황에 대해 책임이 있습니다. 각자의 전공을 제외하면 다른 분야에 문외한인 것은 연구자들 역시 마찬가지인데도, 자신의 이야기를 필요 이상으로 어렵게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저 자신도 소통을 피곤하게 생각하고, 평가 받는 것을 두려워하면서 이런 데 일조하지는 않았는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소통에는 당연히 노력이 듭니다. 그것이 단방향이건 양방향이건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노력을 들인다면 각자의 수고는 줄고 대화 자체도 더 즐겁겠지만 항상 그럴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이방인을 이해하려면, 혹은 이방인이 되지 않으려면 누군가는 품을 들여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느덧 개그 프로그램의 소재가 된 기분이 미묘합니다만, 우리사회에서 이방인처럼 인식되는 내 자신(우리 자신)의 이야기를 한번 해보고자 합니다. 가깝게는 제가 연구 주제 이야기를 하면 이내 잠이 드는 제 아내와 서로에 대한 이해를 조금이나마 깊게 할 수 있다면 정말 기쁘겠습니다.



쓰고자 하는 것, 얻고 싶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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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전문적인 글쓰기 훈련을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학부 시절에 학과 신문 만드는 데 참여했던 것을 빼면 연구자로서 학위논문을 작성하고 다른 연구자 논문의 리뷰 과정에 참여한 것이 제가 받은 글쓰기 훈련의 전부입니다. 누구든 자기 표현의 요구는 있고 저도 마찬가지이지만, ‘논문 쓰기’는 문장 하나하나에 근거가 있어야 하는, 상당히 조심스러운 과정입니다. 어디서 어떻게 공격을 받을지 미리 살피고, 어디를 어떻게 방어해야 할지 생각하는 글쓰기이기 때문입니다. 저도 학부 시절에는 블로그며 학부 신문이며 이것저것 쓰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었는데도, 지금은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글을 쓴다는 것이 상당히 불안합니다 (이 글을 쓰는 중에도 신경이 쓰이는 몇몇 문장에는 인용을 달고 싶습니다 ^^).


특히나 좁디좁은 연구자 사회에서 제 경험을 드러내는 글을 쓰는 것이 자칫 다른 분께 누가 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에 신경이 많이 쓰입니다. 저는 별달리 특출난 연구자도 아니고, 제 연구를 통해 인류에 어떻게 이바지할지 아직은 잘 모르겠으니, 제 글을 통해 독자 여러분께 감히 유익한 정보를 드리겠다고 말씀드리기도 민망합니다. 저는 그래서 이번 글쓰기를 여태껏 미뤄둔 고민을 진지하게 마주보는 데 스스로 동기를 부여하는 계기로 삼을까 합니다.


‘두 이방인’을 보면서 느꼈던 미묘한 불편함의 정체와 제가 그 이방인들과 어떻게 비슷하고 어떻게 다른지, 이런 것을 한번쯤 시간을 들여 진지하게 성찰하고 고민해야 하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부끄럽게도 여태껏 저는 그렇게 성실하지는 못했습니다. 가족, 동료 관계는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지를 비롯해 동료를 잠재적 경쟁자로 생각해야 했던 현실, 자신의 연구주제에 깊이 들어갈수록 피할 수 없는 고독감을 다른 사람들과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뭘 연구해야 할지, 이것이 정말 의미 있는 일인지 혹은 논문을 위한 논문은 아닌지, 연구를 하면서 끊임없이 되묻는 질문들이 있습니다. 여러 모로 부족한 제가 답을 줄 수 있는 처지는 분명히 아닙니다. 다만 저는 이번 연재 기획에 참여함으로써 정해진 스케줄과 시간에 일정한 수준 이상의 글을 만들기 위해 생각하고 표현을 가다듬으면서, 저의 이 해묵은 문제에 대한 고민도 진전이 있기를 바랍니다. 독자 여러분과 진실한 마음과 글로 만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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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화 이탈리아 토리노공대 박사후연구원, 컴퓨터공학
이탈리아 토리노공대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있다. 공인된 분류를 따르자면 설계자동화 분야를 연구하고 있고, 구체적인 전공은 내장형 컴퓨팅 시스템의 저전력 설계 기법인데 사실은 납땜부터 코딩까지 가리지 않고 다했다. 취미랑 전공이 비슷해서 괜찮다고 생각한다.
이메일 : donghwa.shin@polito.it      
블로그 : http://mimosa.snu.ac.kr/~zira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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