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대의 "소설- 박사를 꿈꿔도 되나요"

‘박사우울증’이라는 게 있습니다. 많은 대학원생이 흔히 겪는 우울한 증상을 뜻한다고 합니다. 우리 시대 ‘박사우울증’을 앓는 많은 이공계 대학원생의 삶을 소설 형식에 담아 독자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서로 이해하며 보듬을 수 있는 세상을 꿈꾸며, 카이스트 박사과정 김창대 님이 씁니다.

세상에 내 편은 없다, 내 능력을 평할 뿐이다

연재소설- 박사를 꿈꿔도 되나요 시즌Ⅱ


00phd_epi3.jpg » 드라마 '최고다 이순신'(2013년 3월 30일 방영분, 왼쪽), 예능프로그램 '해피선데이- 슈퍼맨이 돌아왔다'(2015년 3월 15일 방영분)의 한 장면. 출처/ KBS2TV

[지난 줄거리]

권대성 교수가 학교를 옮기게 되고 학생들은 멘탈파쇄가 일어난다. 교수회의 결과, 석사1년차 학생들은 모두가 기피하는 연구실 중에서만 연구실 재배정을 할 수 있도록 허용됐다. 이 때문에 충격에 휩싸인 가운데 며칠간 보이지 않던 주성이 돌아왔다.




#3. 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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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주성(박1): 하이, 여러분! 제가 없어서 좀 덜 시끄러웠죠?

성이 돌아왔다.

김정원(박4): 야, 너 어딜 갔다 온 거야!

하주성(박1): 저 권선필 교수님 연구실로 옮기기로 했어요. 근데 우리 연구실에서 쓰던 컴퓨터 가져가도 되나요?

생각보다 빠른 전개였다. 분명 주성은 매사에 느긋한 사람이었다. 정원은 당황했다.

김정원(박4): 아, 그래? 아, 아마 될 걸. 어차피 학교 자산으로 등록돼 있는 거니까. 교수님께 말씀 드려볼게.

하주성(박1): 제가 연락할게요.

김국현(박3): 근데, 권선필 교수라니, 괜찮겠어? 거기 빡세기로 유명하잖아. 우리랑 분야도 완전 다른데.

하주성(박1): 열심히 해야죠.

김국현(박3): 그래도 잘 됐네, 거기 나오면 회사에서 알아준다잖아. 선배들도 다 잘 나가고. 근데 얘네들은 어떻게 됐는지 알아?

국현이가 연정과 한길을 바라보며 말했다. 주성은 대답 대신 눈짓만 보냈다.

김국현(박3): 올 봄에 신입생 못 받은 연구실들 있잖아. 그 중에서 옮겨갈 연구실 고르라고 했대. 방금 학과에서 메일 왔어.

하주성(박1): 아, 그래요? 어차피 석산데, 대충 학위나 따서 나가면 되겠네요.

포털 사이트 연예 기사 댓글 같은 말이었다. 분명 주성은 사람을 좋아했었다. 오글거리는 위로는 못 했지만, 술 댓 병 살줄은 알았다. 국현이 소리를 높였다.

김국현(박3): 야, 넌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

순식간에 시베리아 고기압이 남하한 듯 했다. 적막 속에 숨소리만 또렷했다. 둘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국현은 주성의 말이 연정과 한길을 향한 것이 아니란 걸 알았다. 주성이 자신의 처지를 포함해, 지금 상황을 비꼬는 말이란 걸 알았다. 하지만 분명히 연정과 한길은 상처를 받을 것이다. 그래서 국현이 대신 나선 것이다. 그들은 연구실에 온 지 3개월 밖에 안 됐으니까. 즉각적으로 감정을 표출할 정도는 안 되니까.


정원은 이 상황에 대본이 있다면 다음 대사는 자기 몫이란 걸 직감했다. 키워봤자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싸움이다. 정치권에서도 싸움이 길어지면, 그래서 양측 다 비난을 받을 만한 타이밍이 되면, 어떻게든 출구를 마련해서 싸움을 끝내지 않는가. 여기서 출구를 마련할 수 있는 건 가장 선배인 자신뿐이었다.

김정원(박4): (주성을 바라보며) 너, 그 쪽 연구실엔 언제부터 나가기로 했어?

하주성(박1): 오늘 자리 세팅하고, 내일부터 출근이에요.

김정원(박4): 그래, 그럼 서둘러야겠네. 급한 거면 교수님께 문자라도 드려 봐.

하주성(박1): 네, 갈게요.

주성도 싸우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정원이 마련해준 출구로 순순히 나갔다.

김국현(박3): 야, 저 새끼 말을 어떻게 저 딴 식으로 하냐.

여전히 아무 말 안 하고 있는 연정과 한길을 대신해서, 국현은 더 강하게 말했다.

김정원(박4): 근데, 쟤 좀 변한 것 같지 않아?

이한길(석1): 맞아요. 뭔가 되게 차가워진 것 같아요.

김정원(박4): 그리고, 어떻게 권선필 교수님 연구실로 갈 생각을 하지?

서연정(석1): 제 동기도 한 명 있는데요, 되게 힘들어 하던데….

김정원(박4): 거기 아침 9시까지 출근해서 12시간씩 있어야 된대.

이한길(석1): 그 정도에요?

김정원(박4): 여기서 반전이 뭔지 알아? 그 12시간에 식사 시간은 제외라는 거야. 점심, 저녁을 둘 다 30분 만에 해치워야 밤 10시에 퇴근하는 거라고.

김국현(박3): 그걸 보면 변하긴 확실히 변한 것 같아요. 그렇게 놀기 좋아하는 애가….



다. 주성은 놀기를 좋아한다. 학교를 떠난 그가 달려갔던 곳은 부산이었다. 가자마자 부산 사는 친구 한 놈을 불러냈다. 회에 소주를 들이켰다. 그냥 갑자기 떠나고 싶었다고 둘러댔다. 게임 이야기, 우리나라 아이티(IT) 업계 이야기나 했다. 회 접시가 동나자 맥주 피처 두 개에 마른 오징어 하나 들고 백사장에 앉았다. 한 여름 밤, 선선한 백사장엔 비키니 입은 아가씨들이 삼삼오오 돌아다녔다. 어두워 얼굴도 보이지 않는 여자들을 실루엣만 보고 평해댔다. 불룩 나온 뱃살에 힘을 한껏 주고 이러면 식스팩 나온다고 자뻑했다. 그렇다고 여자들에게 말을 걸진 않았다. 다가오는 여자들도 없었다.


밤이 깊자, 택시를 태워 친구를 보냈다. 편의점에 들어서자 앉아있던 아저씨가 벌떡 일어난다. 아직 화면이 꺼지지 않은 핸드폰에 어린 애들 사진이 힐끗 보인다. 연예인 얼굴이 찍혀 있는 족발과 소주 두 병을 샀다. 포스(POS)기[1]가 아직 어색한지 느릿느릿 버튼을 누른다. 취기를 애써 다잡으며 버텼다.


여관방에 들어갔다. 텔레비전을 틀었다. 유명 배우가 자녀들과 놀아주느라 용을 쓴다. 소주병을 비우며 족발을 먹었다. 애들이 귀엽다. 저러고 돈 많이 받겠지. 졸리다. 씻지도 않고 텔레비전도 안 끄고 디비 잤다.


몇 시간이나 잤을까. 더워서 깼다. 에어컨을 틀었다. 피곤한데 속이 쓰리다. 목도 마른데 물이 얼마 없다. 머리에 대충 물만 묻혀 가라앉히고 나섰다. 여관 바로 앞에 해장국 집이 있다. 들어가 주문을 했다.  방금까지 손님이 많았나보다. 사람 없는 식탁에 그릇들이 많았다. 나이든 아주머니 한 분이 식탁을 치운다. 갑자기 안쪽에서 소리가 들려온다. “아지매요, 오신 손님부터 하이소. 뭐하능교!” 아주머니가 대답한다. “안 그래도 정신없구마, 쫌 말 쫌 시키지 마소.” 다시 목소리가 들려온다. “하이고, 어데서 저런 아지매가 왔노.” 이 분위기에 물 갖다 달란 소리는 못 했다. 한참을 기다려 겨우 해장국 한 그릇을 먹었다.


계획이 없으니 다시 여관방으로 왔다. 텔레비전이 틀어져 있다. 요리 연구가[2]가 요리를 만든다. 드디어 완성. 사람들이 일거에 감탄하고 일거에 멈춘다. 피디가 손을 내린 것일 거다.


그 시간, 주성의 간은 마감 기일 닥친 개발자마냥 철야 작업에 이은 주간 작업 중이었다. 택배하차장 알바마냥 쉼 없이 알코올 분해했지만, 알코올은 명절마냥 높이 쌓여 있었다. 곤히 자던 주성을 깨워 해장국을 먹인 것도 간이었다. 에너지가 더 필요했기 때문이다. 위도 이미 울렁거리고 있었지만, 알코올 분해가 더 급했다. 어쨌거나 에너지를 보충한 지금 주성이 허튼데 에너지를 쓰게 하면 안 되었다. 온 몸에 피곤 신호를 보냈다. 그 탓에 주성은 침대에 다시 드러누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간이 일을 너무 열심히 했다. 몸을 각성시켜 버렸다. 주성은 쉬이 잠들지도 못했다. 이리 저리 뒤척였다. 다시 슬금슬금 자기가 부산까지 온 이유가 떠올랐다. 앞으로 박사과정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하긴 해야 하는 건지….


별 답도 없을 고민을 하려니 딴 생각도 났다. 필름이 끊긴 건 아닐까 싶어 간밤의 기억도 더듬었다. 편의점에서 족발과 소주를 샀고, 텔레비전을 보다 잠들었고, 아침엔 해장국을 먹었고, 다시 텔레비전을…. 


그 때였다. 주성은 뭔가 깨달았다. 여기, 편의점 야간 근무를 하는 아버지가 있다. 또, 애랑 노는 걸 보여주기만 해도 돈을 버는 아버지가 있다. 자기보다 어린 사장에게 욕을 먹는 어머니가 있다. 그리고 요리 하나 내보이면 환호성이 나오는 어머니가 있다. 결론은 간단하다. 세상은 사람들을 버려둔다. 그들의 능력만 취한다.


교수님도 학교로부터 버림받았다. 하지만 능력이 있기에 학교를 옮겼다. 주성은 교수로부터 버림받았고, 능력이 없기에 술이나 처먹는다. 세상에 내 편은 없다. 내 능력을 평할 뿐이다.

‘능력을 키워야겠다.’

주성은 목표가 생겼다. 그러자면 박사를 그만 둘 수 없다. 석사까지 땄으니, 박사를 빨리 취득하는 게 가장 빨리 능력을 키우는 길이니까. 박사를 따는 걸로는 부족하다. 실적도 좋아야 한다. 그래서 선택했다. 권선필 교수님 연구실은 졸업만 하면 앞길은 탄탄하니까. 고생 깨나 하겠지만, 편의점 야간 근무 하는 셈 치고.


주성은 인생 마지막 방학을 며칠 즐기고 돌아왔던 것이다. 독기를 품고서.



사조약을 맺은 날, 사람들은 밥을 먹었다. 6‧25 전쟁이 일어난 날, 사람들은 밥을 먹었다. 세월호 사건이 일어난 날도 사람들은 밥을 먹었다. 밥을 먹는 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관성을 가진 일이다. 연구실이 없어진 이들도 점심을 먹는다. 다만, 사람이 줄었다.

김정원(박4): 야, 진짜 우리 이게 다 모인 거냐?

김국현(박3): 어디 갔는지 모르는 원식이 형만 빼면, 그렇죠.

강준상(박4): 원식이 형, 휴학했다던데?

김국현(박3): 아, 그래요?

김정원(박4): 하긴, 그 형, 재학연한[3] 얼마 안 남았잖아.

김국현(박3): 그래도 그것 때문만은 아닐 거잖아요.

심정길(박3): 나도 휴학하고 딴 길이나 찾아봐야 하나….

일동 침묵. 아무도,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못했다. 그 질문의 무게를 알기에.

심정길(박3): 근데, 너네 곧 박사 지원 기간 아냐? 어쩔 거야?

전길영(석2): 지원하려고요. 근데 어느 연구실로 가야할지 모르겠어요. 이 고민을 또 해야 하다니.[4]

김정원(박4): 지원하지마.

전길영(석2): 네?

김정원(박4): 서류 접수가 언제부터냐?

전길영(석2): 다음 주 월요일이요.

김정원(박4): 그럼 내가 그 전까지 박사 가지 말라고 백 번쯤 말해줄게. 그래도 갈 거면 가.  

강준상(박4): 왜 그래, 이제 시작하려는 애한테.

김정원(박4): 왜 그러긴, 나중에 안 말려줬다고 나 원망할까봐 그러지.

전길영(석2): 저도 2년 동안 형들 봐왔잖아요.

김정원(박4): 나도 석사 때 박사 하는 형들 다 봤지. 근데, 그래…, 니가 이해할 수가 없겠지. 어쨌든 나는 열렬히 뜯어말린 걸로 해줘라.

잠시 침묵, 정원은 수습이 필요함을 느꼈다.

김정원(박4): 그게, 누가 권유해서 박사 가고 그러면 절대 못 버틸 것 같아서 그래. 완전 자기 의지로 가야 겨우 버티는 거거든.

김국현(박3): 에이, 길영이는 박사 가도 잘 할 거예요.

김정원(박4): 나도 석사 땐 그런 얘기 많이 들었는데….

길영이가 박사 4년차가 됐을 때 과연 누구의 말이 떠오를까? 정원의 말일까. 국현의 말일까? 정말로 궁금하진 않았으면 좋겠다. 길영이가 박사 4년차가 될 때까지의 이야기를 들려줄 생각은 없으니까.


준상이가 말을 돌렸다.

강준상(박4): 보영아, 넌 어쩔 거야?

전보영(석2): 전 잘 모르겠어요.

강준상(박4): 그래, 고민 잘 해라.


그날 밤, 정원이 기숙사로 가는 길에 보영을 마주쳤다.

김정원(박4): 어? 너 한참 전에 나가지 않았어?

전보영(석2): 아, 그냥 산책 좀 하고 있었어요.

김정원(박4): 술 한 잔 하러 갈래? 싫음 말고.

습기로 포근한 한여름 밤이었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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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포스(POS, Point Of Sales)기: 편의점, 음식점, 마트 등에서 돈을 지불할 때 볼 수 있는 기기. 사용자가 지불할 금액 합산은 물론, 재고 관리, 재무 관리 등도 해준다.

[2] 요리 연구가: 김진경 셰프는 시사인과의 인터뷰에서 “이상하게 요리 프로그램에 여성이 나오면 자막에 ‘요리사’가 아니라 ‘요리 연구가’라고 나온다. 왜 여성이 요리를 하면 요리가 아니라 요리 연구가 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22630) 이런 비판에 동의한다. 현실을 비꼬려고 선택한 단어다. 이런 주석을 달기 위해서.

[3] 재학연한: 학생이 학교에 다닐 수 있는 기간. 이 기간 동안 졸업을 못 하면 학교에서 잘린다. KAIST의 경우 석사과정 3년, 박사과정 5년이다며, 심의를 거칠 경우 2회에 걸쳐 1년씩 연장 가능하다. 단, 휴학 기간은 계산하지 않는다.

[4] <박사를 꿈꿔도 되나요> #5. 또 하나의 입시 http://scienceon.hani.co.kr/173132

[5] 이번 화의 시간적 배경은 7월입니다.


   ■ 작가의 말

1. 편의점 야간근무하시는 분들, 존경합니다. 덕분에 편리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음식점에서 서빙해주시는 분들, 존경합니다. 덕분에 음식 참 편하게 먹어요.


2. 시즌1 마지막 화 ( http://scienceon.hani.co.kr/233091 )에 조그마한 이벤트가 있었습니다. 이 소설이 책으로 출판 될 경우 그걸 선물로 드린다고 했고요. 실질적으로 선물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죠. 그런데 한겨레출판사에서 (아쉽게도 제 책을 출판해주신 건 아니지만) 소설책 5권을 제공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약속된 선물은 아닐지라도 선물을 드릴 수 있게 되었어요! 당첨자 다섯 분께는 이미 개별적으로 연락을 드렸습니다. 가까운데 계신 분들은 직접 만나서 선물을 드리고 있고요. 요청도 하지 않았는데 먼저 선물을 지원해주신 한겨레출판사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응모해주신 모든 분들께도 감사드려요!


3. 이번 화에 나오는 부산사투리는 김호진님께서 도와주셨습니다. 그런데 김호진님은 부산 네이티브는 아니고 어머니께서 부산출신이십니다. 그러니 혹 어색한 부분이 있더라도 이해해주세요. 요즘 케이팝스타 시즌4에 나오는 릴리의 어머니께서 한국출신이셔서 릴리가 한국말을 어설프게 해서 아주 귀엽던데! 그렇게 봐주시면 됩니다!


김창대 카이스트 전산학 박사과정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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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대 카이스트 전산학 박사과정
20대를 공대에서 보내고 30대도 공대에서 맞이한 전산학도. 그리고 소설 쓰는 사람. 무언가를 고찰하여 글로 표현해내는 것을 좋아한다. <용감한 작가들> 회원이며 페이스북 페이지 <글 쓰는 김창대>를 운영 중이다. https://www.facebook.com/holypsychowrites
이메일 : holypsych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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