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대의 "소설- 박사를 꿈꿔도 되나요"

‘박사우울증’이라는 게 있습니다. 많은 대학원생이 흔히 겪는 우울한 증상을 뜻한다고 합니다. 우리 시대 ‘박사우울증’을 앓는 많은 이공계 대학원생의 삶을 소설 형식에 담아 독자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서로 이해하며 보듬을 수 있는 세상을 꿈꾸며, 카이스트 박사과정 김창대 님이 씁니다.

정말 미국이 이상이고 한국이 이상한 걸까?


pic17-4.jpg » 제작 / 김창대




#17. 이상

00dot.jpg




백명의 사람들 앞이다. 사회자[1]의 발표자 소개는 짧다. 아직 유명하지 않으니까. 이제 막 유명한 학자로 발돋움하려는 순간이니까. 심호흡을 한다. 청중을 훑어본다. 절반은 앞을, 절반은 태블릿을 보고 있다. 차분하게 발표를 시작한다. 약간의 유머를 섞어 연구 동기를 설명한다. 태블릿을 보던 사람들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아이디어는 간단하지만 새롭다. 슬라이드는 단순하지만 명료하다. 영어는 또박또박하지만 유려하다. 연구 결과는 아이디어의 유용성을 납득시켜준다. 새로운 연구 방향도 제시한다. 청중이 박수를 친다.


많은 사람이 질문을 하려고 줄을 선다. 한 사람이 마이크를 잡는다. 대가다. 유명 학회마다 논문을 쏟아내는 사람이다. 날카로운 질문을 한다. 하지만 예상 질문 목록에 있다. 이제 발표자는 답변에서 먼저 약점을 충분히 인정한다. 그리고 그 점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한다. 마지막으로 보완책을 제시하고, 계속 연구 중이라고 답변한다. 대가가 고개를 끄덕거리며 자리로 돌아간다. 다음 질문자는 인도 사람이다. 잘 안 들린다. 정중하게 다시 말해줄 수 있느냐고 요청한다. 좀 더 천천히 말해준다. 들린다. 간단한 질문이다. 친절하게 답한다. 두어 개 더 질문에 답하고 나니 사회자가 시간 관계상 그만해야 한다고 한다. 단상을 천천히 내려온다. 다음 발표가 진행된다. 쉬는 시간이 되자 몇몇 사람이 다가온다. 못다 한 질문을 쏟아낸다. 하나하나 대답해준다. 몇몇은 이메일 주소를 받아간다. 명함을 주기도 한다.


이게 내 이야기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준상이 이야기다.

정확하게 내가 꿈꿔왔던 방식대로의 논문 발표를, 준상이는 잘 마쳤다. 평소 연구실에서 발표를 잘 한다는 말을 듣는 것은 나다. 하지만 열 번도 넘는 리허설을 통해 다듬은 발표는 정말 훌륭했다. 재능은 타고 날지라도 결과는 노력하는 자의 것이다.


자괴감이나 질투는 느껴지지 않는다. 정신승리도 필요없다. 이미 숱하게 겪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냥 내가 연구에 걸맞지 않은 인간일 뿐이다. 연구는 준상이 같은 애들이 해야 마땅한 일이다. 난 어느 대기업의 부품이 되는 것이 가장 쓸모 있는 길이겠지. 박사를 계속해야 하는 이유도 간단하다. 대기업에서 박사 학위 소유자를 우대하기 때문이다.


석사과정 때는 해외 학회를 가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해외도 처음, 학회도 처음이었으니까. 박사과정 1~2년차 때 해외 학회를 가면 욕심이 생겼다. 다음엔 꼭 내 논문을 발표하러 와야겠다는 욕심이다. ‘내’ 연구 성과로 몇 백 만원의 출장비[2]를 받고, 수많은 사람 앞에서 발표도 하고, 하루이틀쯤 해외 구경도 할 수 있다는 건, 여러 모로 욕망을 자극하는 일이다. 하지만 4년차인 지금은? ‘포기하면 편하다’고 누가 그랬던가?[3]


쉬는 시간이 끝나갈 때쯤에야 준상이가 돌아왔다.


강준상(박4): 아, 이제 끝났네.

전길영(석2): 형, 진짜 수고하셨어요. 잘 하시던데요.

전보영(석2): 맞아요. 오빠, 영어도 진짜 잘 하시구.

강준상(박4): 잘 하긴 뭘 잘해, 아까 그 인도인 질문 못 알아들어서 혼났잖아.


24분 40초 동안 잘 해놓고, 딱 20초 못 알아들은 걸 굳이 집어내는 이유는 뭘까?

 

김정원(박4): 한 번 못 알아들은 것 같고, 되게 티내네. 수고했어.

전보영(석2): 전 진짜 질문 하나도 못 알아들었는데, 어떻게 알아들었어요? 아니 그보단, 그걸 어떻게 즉석에서 답해요? 발표야 외운 대로 한다지만….

강준상(박4): 내가 예전에 어떤 학회를 갔을 때가 생각나는데, 거기서, 한 일본인이 발표를 하는 거야.[4] 너도 알잖아, 한국인이랑 일본인이 영어 진짜 못하는 거. 근데, 들어보니까 딱 스크립트 외운 그대로 발표를 하는 거야. 티가 팍팍 나더라. 20여 분이나 되는 발표를 다 외워서 하다니 대단하다 싶었지. 근데, 그러면 질문 답변은 어떻게 할지 내가 다 걱정이 되더라구. 근데 발표가 딱 끝나니까 그 다음 장이 뭐였는지 알아?

전보영(석2): 뭐였는데요?

강준상(박4): 슬라이드 하나에 예상 질문 스무 개 가까이 빼곡하게 적혀 있는 거. 게다가 하나하나 링크가 걸려 있었어. 질문마다 슬라이드가 준비되어 있다는 뜻이지.

김정원(박4): 나도 그거 같이 봤잖아. 진짜 장난 아니었지.

강준상(박4): 슬라이드가 준비되어 있단 말은 뭐겠어, 또 각각에 스크립트가 준비되어 있단 말일 거잖아. 사람들이 질문을 하는데, 질문을 듣고 가장 먼저 하는 게 그 수많은 슬라이드 중에 하나를 보여주는 거였어. 확인할 길은 없지만, 아마 각 슬라이드에 대해 스크립트도 써두지 않았을까?

전보영(석2): 헐. 진짜 헐이다.

김정원(박4): 그거 진짜 감명 깊었지.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때운다는 게 뭔지 정확히 보여준 거잖아.


생각해보니 그만큼 슬라이드를 준비하지 않고서도 답변을 훌륭하게 해낸 자신에 대한 잘난 척 같기도 하고….



심 시간, 두리번거리던 동양인 한 명이 준상이 얼굴을 보더니 우리 쪽으로 온다. 다행이도 한국인이다.


오정현(박2): 안녕하세요? 강준상씨 맞으시죠? 아까 발표하셨던….

강준상(박4): 네, 맞는데요.

오정현(박2): 저는 한겨레 대학교 김영하 교수님 연구실의 오정현이라고 하는데요, 혹시 교수님 같이 안 오셨나요?

강준상(박4): 아, 네. 이번엔 학생끼리 와서요.

오정현(박2): 정말요? 논문 발표도 하는데 학생끼리 왔단 말이에요?

강준상(박4): 교수님께서 바쁜 일이 있으셔서요.

오정현(박2): 진짜 좋으시겠어요….


오정현씨라고 했나? 부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물론 교수님과 함께 해외 학회로 출장을 가면 좋은 점이 많다. 교수님과 친한 학자들과 교류할 수 있다. 논문 발표를 듣다가 질문이 생기면 바로 물어볼 수도,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바로 토의해볼 수도 있다. 또, 학회 장소 근처 맛집으로 인도해주시거나, 일정이 비면 관광 명소로 안내해주시기도 한다. 학회가 열리는 곳이 그렇게 다양하지는 않아서 교수님은 여러 번 가봤던 지역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아예 차량을 빌리고 직접 운전까지 해주셔서 국립공원에 다녀온 적도 있다. 교수님이 미국에서 박사과정 유학을 하실 때 운전을 많이 해보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교수님 없이 해외 학회를 간다면? 일단 ‘출장’이 아니다. 그냥 해외 나가서 좋은 세미나 들으며 외국 음식 먹다가 짬짬이 관광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심지어 ‘출장비’까지 나온다.


오정현(박2): 아, 어쨌든, 저희 교수님께서 오늘 저녁 식사를 함께 하면 어떻겠냐고 하셔서요. 혹시 시간 가능하세요?

강준상(박4): 정원아, 우리 오늘 뭐 없지?

김정원(박4): 너 논문 발표도 끝났으니 축하파티 한 번 하려고 했지만…. 거절하긴 좀 그렇잖아. 김영하 교수님이라고 하셨죠?

오정현(박2): 네.

강준상(박4): 그치, 거절하긴 좀 그렇지. 너네도 괜찮지?


보영이와 길영이가 고개를 끄덕인다. 다른 학교 교수님이긴 하지만, 어른이 부르시는데 굳이 거절할 명분도 마땅찮고, 좁은 학계에서 괜히 밉보일 것도 없으니까.


강준상(박4): 그럼 언제 만나죠?

오정현(박2): 음, 그건 교수님과 다시 얘기를 해봐야 할 것 같은데, 연락처 좀 알려주실래요?

 

오정현씨가 핸드폰을 꺼내서 준상이 전화번호와 메일 주소를 받아 갔다.

 

김정원(박4): 아, 교수님께 우리가 거절하기 그렇다고 했다고 한 거나 그런 건 좀 빼고 말씀드려 주세요.

오정현(박2): 저도 같은 대학원생인데, 그걸 왜 모르겠어요.

김정원(박4): 역시, 대학원생은 다 같네요. 좋아요.

 

 

녁, 한겨레 대학교 사람들과 만났다. 학회장 근처 중국요리 전문점이었다.[5]


김영하(교수): 아, 자네가 아까 발표했던 학생인가?

강준상(박4): 네, 강준상이라고 합니다.

김영하(교수): 그래, 발표 잘 하던데. 요즘 권대성 교수가 논문을 많이 써. 이번에 아스플로스(ASPLOS)[6]에도 논문을 냈다던데, 맞지? 축하한다고 전해줘. 몇 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해외 학회에 논문 내는 일이 거의 없었는데, 요즘엔 권 교수 같은 젊은 교수들이 열심히 해서 참 많이 보인단 말이야. 우린 겨우 워크숍 논문 하나 내서 여기 온 거야. 논문 좀 많이 써야 하는데.

강준상(박4): 교수님께서도, 작년에 마이크로(MICRO)[6] 내지 않으셨나요?

김영하(교수): 아하하하, 그 논문 읽어봤나?

강준상(박4): 자세히는 못 읽어봤는데요, 하드웨어로 보안 문제에 접근하는 거였잖아요. 저도 관심은 좀 있는데 시도는 못 해보고 있던 연구 주제거든요.

김영하(교수): 아하하, 그래. 그거, 여기 이 친구랑 쓴 거야. 나중에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보고 그러라구.

 

강준상 저 무서운 자식. 아까 태블릿으로 왠 논문을 찾아보나 했는데, 김영하 교수님 논문이었다.


대화는 그리 길지 않았다. 삽시간에 김영하 교수님의 강연으로 변모했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그저 추임새를 넣거나 중간 중간 적절한 질문으로 교수님의 말씀이 잘 이어질 수 있게 도울 뿐이었다. 교수님에 대한 아첨은 아니었다. 우리에게 꼭 필요한 말씀이었다. 교수님의 말씀이 끊기면 끔찍한 어색함과 고요함만이 가득할 테니까.


김영하 교수님은 끊임없이 연구 이야기를 하셨다. 친한 교수들이 논문 많이 쓴 이야기, 기업에서 좋아하는 연구 주제 이야기, 본인이 생각하는 미래 컴퓨터에 대한 이야기, 그런 모든 것에 대해 논문 쓰는 이야기 등등. 그리고 애국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하셨다. 열심히 공부해서 우리나라에 이바지하라고 하셨다. 자신은 국립대학 교수라는 사명감으로 날마다 12시간 이상씩 연구하고 있다고 하셨다. 학생들도 매일 자기처럼 열심히 하고 있는데 생각만큼 논문이 잘 나오지 않는다며 우리 분야가 논문 내기 힘든 분야라고도 하셨다.


‘교수님처럼 열심히 하는 게 아니라, 교수님께서 퇴근을 안 하시니까 퇴근을 못하고 있는 것뿐이겠죠.’ 말은 못하고 속으로만 웃었다.


두 시간 여의 강연을 마치고, 식사비는 김영하 교수님이 내셨다. 공부 열심히 하란 소리 듣는 대가로 밥 얻어먹었으면 뭐, 그리 손해는 아니다.



요일 저녁, 선배 한 명이 찾아왔다. 박대철, 우리 연구실에서 석사를 마친 뒤 미국으로 박사과정 유학을 간 형이다. 박사 졸업 후에 잡은 직장이 마침 학회장 근처라며 저녁을 사주겠다고 하셨다. 나와 준상이가 연구실에 들어갔을 때는, 이미 석사는 마치고 유학 준비를 한다며 연구실에 남아 있던 상태였다. 함께 한 건 반 년 남짓 뿐이다. 하지만 이역만리에서는 한국인이기만 해도 반갑다지 않은가.


6시 45분쯤, 대철이 형이 도착했다.

 

박대철(박사): 어이, 준상이, 논문 된 거 축하해! 발표 잘 했어?

강준상(박4): 뭐, 그럭저럭 했죠.

박대철(박사): 그럭저럭이라니, 엄청 잘 했나보네. 정원이는 잘 지내고?

김정원(박4): 논문 못 쓰는 거만 빼면요.

박대철(박사): 하하하, 인사말이 센데. 넌 똑똑하니까 곧 논문 나올 거야. 네가 몇 년차지?

김정원(박4): 박사 4년차요.


아주 짧게, 형의 눈빛이 흔들리는 걸 보았다. 논문 못 쓴다고 당당하게 말하기엔, 박사 4년차는 좀 높은 연차이긴 하다. 하지만 우리는 몇 년 만에 만난 사이였다. 형은 금세 다시 미소를 지었다.


박대철(박사): 원래 우리 분야가 논문 쓰기 힘들어. 곧 잘 되겠지. (보영과 길영을 바라보며) 아, 안녕하세요. 박대철이라고 합니다.

전보영(석2): 안녕하세요. 석사 2년차, 전보영입니다.

전길영(석2): 저는 석사 2년차, 전길영입니다.

박대철(박사): 얼굴을 보아하니 굳이 안 물어봐도 저보단 한참 동생들 같은데, 맞죠?

전보영(석2): 네, 편하게 하셔도 돼요.

박대철(박사): 만나서 반가워요. 아참, 준상이 너 아스플로스(ASPLOS)도 됐다며, 너 진짜 잘 나간다?

강준상(박4): 교수님께서 많이 도와주셔서 그렇죠.

 

이 순간, 조금 전에 대철이 형이 “원래 우리 분야가 논문 쓰기 힘들어”라고 했던 걸 되새기는 건 나뿐이겠지? 준상이와 내가 지도교수가 같다는 것도. 그리고 준상이와 달리 나는 논문이 없다는 것까지.

이런 생각이 드는 걸 보면, 아직 다 포기하지는 못 했나 보다.



리는 대철이 형의 승용차를 타고 어느 바비큐 음식점으로 갔다. 메뉴 고르기를 어려워하자 형이 알아서 몇 가지를 주문해주었다. 잠시 후 기름진 음식이 가득 차려졌다.


박대철(박사): 근데 준상이 넌 졸업하고 뭐할 거냐?

강준상(박4): 해외 포닥[7] 자리를 잡아보고 싶긴 한데요, 잘 될지 모르겠어요.

박대철(박사): 너 논문 몇 개 있잖아. 그거 내세우면 될 걸? 미국에서도 그렇게 일류 학회 논문 몇 개씩 있는 사람 많지 않아.

강준상(박4): 그럼 다행이고요.

박대철(박사): 그래, 포닥이든 뭐든 미국에 나와. 미국에 있어야 여기서 취직하기도 쉬워져. 너만 관심 있으면 내가 졸업한 학교 교수님들께 좋게 말씀드려볼 수도 있으니까, 언제든 얘기하고.

강준상(박4): 정말요? 그럼 저야 정말 좋죠!

 

잘난 자들의 평범한 이야기를 어서 끝내버리고 싶었다.

 

김정원(박4): 근데 형, 오늘 일찍 퇴근하셨네요?

박대철(박사): 응? 오늘 막판에 뭐 좀 정리한다고 오히려 약간 늦게 퇴근한 건데?

김정원(박4): 아니, 미국은 정말 칼퇴근하는 거예요?

박대철(박사): 여기는 칼퇴근이라는 말 자체가 없어. 퇴근은 원래 정해진 시간에 하는 거니까.

김정원(박4): 소문으로만 듣던 게 정말 사실이군요.

박대철(박사): 그러니까 너도 꼭 알아봐서 미국으로 포닥부터 와. 그리고 여기서 직장 알아봐.

김정원(박4): 논문이 있어야 포닥도 가죠.

박대철(박사): 얼마 전에 팀 사람들이 나보고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은 없냐는 거야. 그래서 내가 ‘한국 기업들은 밤늦게까지 일하는 경우가 많아서 가족과 함께 할 시간도 부족하다’고 했지. 그랬더니 깜짝 놀라더라. 애들 학교 데려다 주는 건 누가 하냐고. 그래서 내가 그랬지. 한국은 대중교통이 잘 발달되어 있고 학생 혼자 밤거리를 다니는 것도 그리 위험하지 않은 나라라고.[8]

강준상(박4): 그거 좀 슬프네요.


김정원(박4): 근데 애들 학교를 매일 데려다줘요? 그런 건 대치동 엄마들이나 하는 거 아니에요?

박대철(박사): 여기는 아이들 학교 행사 있으면 부모님이 가는 것도 당연한 일이야. 한국에서는 반장, 부반장 엄마나 가잖아. 그래서 맞벌이 부부 자녀는 반장하기도 힘들고. 그러니까, 보영씨라 그랬죠? 길영씨랑. 두 분도 열심히 공부해서 꼭 유학 가세요.

전길영(석2): 전 군대 문제도 걸려 있어서, 유학 가기가 쉽진 않은데요.

박대철(박사): 그게 좀 어렵긴 할 텐데, 그래도 어떻게든 빨리 해결하시고 나오시는 게 좋긴 할 거예요. 하나 더 말씀드릴까요? 제가 유학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지도교수님이 새로 온 사람도 있으니 파티 한 번 하자고 교수님 댁으로 초청을 하셨어요. 신입생 환영회 같은 거죠. 근데 거기서 교수님이 바비큐 굽고 음식 다 차리고 하는데, 학생들은 그냥 다리 꼬고 앉아서 히히덕거리는 거예요. 그러니까 교수님이 초청을 한 거면 교수님이 일을 다 하는 게 맞는다고 생각하는 거죠.[8] 물론 다 같이 일하는 게 더 좋기야 하겠죠. 그런데 교수만 일하고 학생들은 노는 상황이 가능하다는 것 자체가 좀 충격적이지 않아요?


전길영(석2): 정말, 한국에선 상상도 못 할 일이네요.

전보영(석2): 그래도 전 한국에서 사는 게 편할 것 같은데…. 나라에서 하는 연구소 같은 데는 좀 낫지 않아요? 연구소는 대기업처럼 빡세진 않고, 직급도 몇 단 계 없어서 위계질서가 그렇게 엄하지는 않다고 들었는데….

강준상(박4): 아는 형 중에 연구소 들어간 형이 있거든. 근데 연구소란 게, 우리가 지금 프로젝트 따와서 하는 것처럼, 여기저기서 프로젝트를 따와야 운영이 되나봐. 근데 그 일들이 쉽지만은 않대.

전보영(석2): 나라에서 월급 다 주는 거 아니었어요?

강준상(박4): 나도 정확히는 모르는데, 프로젝트를 따오긴 해야 하나봐. 그리고, 연구하고 싶으면 연구소 오지 말고 학교로 가라던데?

전길영(석2): 헐, 그러고 보면 우리가 읽는 논문 중에 우리나라 연구소에서 쓴 건 없었던 것 같아요.

김정원(박4): 국내 학회 가면 종종 있어. 그리고, 우리 분야 연구하는 연구소가 별로 없어서 그렇지 않을까? 뭐 사실, 해외학회에 우리나라에서 쓴 논문 자체가 많지 않잖아. 우리 분야에서는 말야.

전길영(석2): 그건 그렇죠.


전보영(석2): 그럼 연구 계속하려면 교수를 해야 되는 거예요?

강준상(박4): 근데 우리나라에서 박사학위 받고 우리나라에서 교수하는 게 쉽진 않아. 워낙 유학파들이 교수하겠다고 쏟아져 들어오니.

김정원(박4): 그리고 우리 교수님 봐라. 대기업 가는 게 더 낫다 싶을 정도로 밤낮없이 일하잖아.

전보영(석2): 그럼 아예 다른 길을 알아봐야 하나….

김정원(박4): 근데, 요즘 우리나라에서 괜찮다는 직장에 대해서 들은 적이 없긴 해. 하나 같이 척수 쭉쭉 뽑아먹는 직장이거나, 돈을 소금에 잔뜩 절여 주는 직장이거나, 아니면 둘 다이거나.

전보영(석2): 오빠들 왜 그래요! 이제 석사 졸업할까 말까 하는 후배한테….

김정원(박4): 이게 현실인 걸 어떡하냐. 근데 우리가 좀 알아주는 학교에 있으니까 ‘어느 직장이냐’를 고민하는 거야. 학교 바깥으로 나가봐. 내 또래는 죄다 취업준비생 아니면 계약직이야.


음식 값을 지불하면서, 대철이 형은 익숙한 손놀림으로 15%의 팁을 얹었다. 좀 아까웠다. 차라리 음식 가격에 포함시키던가, 왜 돈 계산만 복잡하게 따로 받는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했다.



소로 돌아와 자리에 누웠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팁’을 주는 건 그만큼 ‘사람의 노동’에 대한 대가를 중요하게 여긴다는 의미가 아닐까? 이렇게 신사적인 손님들도 10~20%의 팁을 얹어주는데, 한국의 진상 손님들은 할인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도 아이러니했다. 팁은커녕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면 제 값도 못 받는 서비스센터 기사들 이야기도 생각났다.[9]


야근 없는 나라 미국, 그리고 ‘저녁이 있는 삶’을 주창하던 정치인마저 결국 혼자 저녁이 있는 삶을 살러 사라진 한국.[10] 팁을 주는 나라 미국, 그리고 진상 손님이 개그 소재로 등장하는 한국.[11] 정말 미국이 이상이고 한국이 이상한 걸까?


작가 이상[12]은 서울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었다. 그러다 25세 때 시골에서 한 달간 지내게 되었다. 그 때서야 그는 도시 생활의 자극들이 얼마나 매력적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시골 생활은 권태로울 뿐이었다. 하지만 그는 서울에 돌아와서도 만족하지 못했다. 권태를 느꼈다. 마침내 더 화려한 도시, 일본 동경으로 떠났다. (당시는 일본 강점기다. 따라서 제일 큰 도시는 동경이었다.) 하지만 동경도 그가 동경하던 만큼 화려하지는 않았다. 그는 폐결핵이 심해져 동경에서 죽게 되었다. 하지만 그의 가방엔 늘 불어사전과 영어사전이 있었다고 한다.[13]


이상의 이상은 끝이 없었다. 채워질 수 없었다. 그리고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었다. 머릿속으로 그리던 것과 발밑에 밟힌 것은 완전히 달랐다.


그래, 이상 같은 미국도 알고 보면 이상한 점이 많을 것이다. 의료보험도 제대로 안 되어 있어서 병원도 제대로 못 다닌다고 하지 않았던가, 한국에 휴가차 들어온 유학생들이 꼭 치과에 한 번씩 들른다지. 복지 정책도 잘 되어 있긴 하지만, 정말 찢어지게 가난해서 노숙할 정도가 되어야만 혜택을 받는 다고도 했다. 게다가 심심치 않게 벌어지는 총기 사고는 어떤가.


우리의 한국은 대중교통이 잘 되어 있고 밤에 혼자 돌아다니는 것도 별로 위험하지 않은 나라 아닌가. 그래서 야근도 할 수 있는 거다. 또 워낙 정이 많아서 다들 ‘밑지고 판다’고 하는 나라 아닌가. 팁을 받기는커녕. 한국은 살기 좋은 나라다. 절대 내가 영어를 못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아, 왜 자꾸 정신승리 같지….


00phD44.jpg

[1] 사회자: 학회는 연구 주제 별로 여러 세션으로 이루어지는데, 각 세션마다 사회자가 따로 있다. 사회자의 역할은 주로 연사를 소개하고 발표가 끝난 뒤 질의응답 시간을 진행하는 것이다. 그리고 순서가 시간 내에 끝나도록 해야 하며, 질문자가 아무도 없으면 직접 한 두 가지 질문을 해주어야 한다. 정식 명칭은 영어로는 ‘chair’, 한국어로는 ‘좌장’이다. 본문에서는 이해를 돕기 위해 ‘사회자’라고 표기했다.

[2] 해외 학회는 주로 미국이나 유럽에서 열린다. 그래서 비행기 삯만 해도 100만 원을 훌쩍 넘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 약 일주일 간의 숙박비, 식비 등의 체재비를 포함하면 200만 원이 넘기도 한다. 몇 십만 원을 호가하기도 하는 학회 등록비도 추가된다.

[3] 포기하면 편해: 만화 ‘슬램덩크’의 명대사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실제 대사는 정반대의 의미라고 한다. ‘포기하면 편해’는 누군가가 제작한 유머용 그림일 뿐이라고. https://mirror.enha.kr/wiki/%ED%8F%AC%EA%B8%B0%ED%95%98%EB%A9%B4%20%ED%8E%B8%ED%95%B4

[4] 2010년에 ‘이스카(ISCA)’ 학회에서 Yasuko Watanabe라는 일본인이 “WiDGET: Wisconsin decoupled grid execution tiles”라는 논문을 발표했을 때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당시의 발표 자료는 http://www.cs.wisc.edu/multifacet/papers/isca10_widget.pptx 에서 받을 수 있다.

[5] 전세계 어디서나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으면서도, 한국인 입맛에 맞는 것이 중국음식이다. 특히, 해외에서 ‘밥’을 먹고 싶으면 중국음식점이나 베트남음식점에 가서 빨간 고추 그림 그려진 메뉴를 시키면 된다. 그러면 십중팔구 밥이 딸려 나온다. 물론 우리나라 밥처럼 맛있진 않지만.

[6] 아스플로스(ASPLOS), 마이크로(MICRO): 둘 다 매 년 열리는 학회다. 컴퓨터 구조와 운영체제 분야를 포괄한다. 풀어 쓰면 각각 ‘International Conference on Architectural Support for Programming Languages and Operating Systems’와 ‘International Symposium on Microarchitecture’이다.

[7] 포닥: 포스트닥터(Post-Doctor)의 줄임말. 한국어로는 ‘박사 후 과정’이라고 한다. 박사 학위 취득 후에, 학교 연구실에 소속이 되어 연구하는 기간제 계약직을 가리키는 말이다. 박사 학위 취득 후에 연구를 마무리 짓기 위해 남아서 하는 경우도 있고, 다른 학교(해외를 포함한)로 가서 새로운 연구 경험을 하는 경우도 많다.

[8] 미국에서 유학 중인 친형이 겪었던 일들을 각색해서 인용한 것이다.

[9] 박혜영. “비 오는 날 전봇대 오르다 죽어요”...A/S기사의 눈물. 오마이뉴스. 2014년 10월 19일.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44199

[10] 최준영. 잠재적 대권주자 22인 한줄평. PPSS. 2014년 9월 18일. http://ppss.kr/archives/29196

[11] 최근 tvN 코미티 빅리그의 ‘갑과을’에서 본격적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정말 웃긴데 슬퍼서 잘 못 웃겠다. http://youtu.be/LAed3pYyi1k 에서 볼 수 있다. 예전에 KBS 개그콘서트에 나온 ‘정여사’ 코너도 비슷한 소재를 다룬다.

[12] 작가 이상: 1910년 출생하여 1937년 작고한 일제 강점기의 대표적인 작가이다. 대표작으로 소설 <날개>, 시 <건축무한육면각체>가 있다. ‘이상문학상’이 이 작가를 기리는 상이다.

[13] 강신주. 상처받지 않을 권리. 프로네시스. 69-77쪽, 100-107쪽.


  작가의 말

거듭 강조하지만 이것은 소설입니다. 때로 저의 직·간접 경험이 들어가는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그것들은 제가 만들어낸 ‘상상의 세계’에 현실성을 첨가하기 위한 장치들일 뿐입니다. 기본적으로 허구 세계입니다.

전 해외 출장은 교수님과 함께 가는 게 더 좋습니다. 심지어 ‘자의로’ 한 방을 쓴 적도 있지요. (물론, 침대는 따로…) 또, 제가 정부출연연에 다니시는 분들을 몇 분 아는데, 그 분들은 모두 열심히 연구하고 계십니다. 대기업에 다니는 분들도 몇 분 아는데, 예전에 야근을 많이 했던 건 맞지만 요즘엔 별로 안 하는 추세라고 하네요.

물론, 제가 전체를 안다고 할 순 없죠. 제가 경험한 것도 우리 연구실뿐이고, 제가 아는 사람 수도 얼마 안 되니까요.

여러분이 경험하고 있는 현실은 어떤가요?

김창대 카이스트 전산학 박사과정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사이언스온의 길목]

페이스북 페이지   https://www.facebook.com/scienceon

트위터   https://twitter.com/SciON_hani


  • 구글
  • 카카오
  • 싸이월드 공감
  • 인쇄
  • 메일
김창대 카이스트 전산학 박사과정
20대를 공대에서 보내고 30대도 공대에서 맞이한 전산학도. 그리고 소설 쓰는 사람. 무언가를 고찰하여 글로 표현해내는 것을 좋아한다. <용감한 작가들> 회원이며 페이스북 페이지 <글 쓰는 김창대>를 운영 중이다. https://www.facebook.com/holypsychowrites
이메일 : holypsycho@gmail.com      

최신글




최근기사 목록

  • 에필로그: 새벽 세 시. 새로운 꿈이 시작됐다에필로그: 새벽 세 시. 새로운 꿈이 시작됐다

    소설- 박사를 꿈꿔도 되나요김창대 | 2016. 06. 10

      …에필로그…  연재소설- 박사를 꿈꿔도 되나요 시즌Ⅱ #에필로그. 감사의 글 깊은 밤. 정원은 박사학위논문 감사의 글을 쓰려고 키보드를 잡았다. 누구에게 감사해야 할까요? 제가 박사학위를 받았어요. 누구에게 감사해야 하는 것일까요...

  • 마지막이다마지막이다

    소설- 박사를 꿈꿔도 되나요김창대 | 2016. 05. 27

      마지막회  연재소설- 박사를 꿈꿔도 되나요 시즌Ⅱ [지난 줄거리]권대성 교수가 학교를 옮기게 됐다. 고민 끝에 석사 1년차와 박사 1년차 학생들은 연구실을 옮긴다. 나머지는 좀 더 힘겨운 대학원 생활을 지속한다. 8월, 학회의 ...

  • 한 시간 만에 끝내버리는 건 좀 너무하지 않은가한 시간 만에 끝내버리는 건 좀 너무하지 않은가

    소설- 박사를 꿈꿔도 되나요김창대 | 2016. 05. 13

    연재소설- 박사를 꿈꿔도 되나요 시즌Ⅱ  [지난 줄거리]권대성 교수가 학교를 옮기게 됐다. 고민 끝에 석사 1년차와 박사 1년차 학생들은 연구실을 옮긴다. 나머지는 좀 더 힘겨운 대학원 생활을 지속한다. 8월, 학회의 논문 마감이 있다. 길...

  • ‘현실은 남극 속 냉동창고일 뿐이다’‘현실은 남극 속 냉동창고일 뿐이다’

    소설- 박사를 꿈꿔도 되나요김창대 | 2016. 04. 15

    연재소설- 박사를 꿈꿔도 되나요 시즌Ⅱ [지난 줄거리]권대성 교수가 학교를 옮기게 됐다. 고민 끝에 석사 1년차와 박사 1년차 학생들은 연구실을 옮긴다. 나머지는 좀 더 힘겨운 대학원 생활을 지속한다. 8월, 학회의 논문 마감이 있다. 길영, ...

  • 소설: ‘케이-알파맨’소설: ‘케이-알파맨’

    소설- 박사를 꿈꿔도 되나요김창대 | 2016. 03. 18

    김창대의 단편소설알파고 쇼크 또는 열풍이 한국사회에 휩쓸고 지나갔습니다. 아니 여전히 많은 담론과 화제를 낳고 있습니다. 사이언스온의 연재소설 작가이자 카이스트 전산학과 박사과정 대학원생인 김창대 님이 '박사를 꿈꿔도 되나요 2'의 연재를...

자유게시판 너른마당

인기글

최근댓글

트위터 팔로우

sub2 untitl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