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연구자들의 "청춘 스케치"

연구의 맛과 멋을 배우는 젊은 연구자들이 실험실에서, 연구실에서, 그리고 사회와 만남에서 얻는 에피소드와 경험, 그리고 생활의 단상을 전합니다.

'올바른 정보, 살아있는 지식' -과학에 접근하는 자세

초보물리학자의 "두런두런 세상 이야기"  [2]


00SciPaper1.jpg » 책상에 앉아 결과물을 논문 형태로 쓰기 전에 동료와 많은 토의가 필요하기도 합니다. 위 사진은 2010년에 공동 연구자들과 토의하며 칠판에 적은 수식을 찍은 것입니다. 사진/ 김민규


명의 이기, 특히 과학의 진보가 인류에 준 많은 혜택을 생각하면 역사 위인들뿐 아니라 수많은 선배 과학자들에게 경의를 표하게 됩니다. 다소 거창하게 표현하긴 했지만 진심으로 그렇게 느낀답니다. 특히, 인터넷을 통한 무료전화와 손쉽게 접근 가능한 다양한 미디어는 저를 포함한 많은 유학생과 해외 거주중인 분들에게 필수 불가결한 것이 되었다고 봅니다.


고국에서 멀리 떨어져 지내지만, 인터넷을 통해 항상 국내 일들을 알 수 있고, 객지 생활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유재석·신동엽 등의 한국 예능 프로그램도 찾아볼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세상입니까? 지난 16일 퇴근 뒤엔 오랜만에 부모님께 안부 전화를 드렸습니다. 물론 인터넷 전화로 말이죠. 부모님께선 국내에서 벌어진 ‘세월호‘ 참사 소식을 얘기하시며 몸 건강히 잘 지내냐 하고 물으셨습니다. 막 퇴근해 국내 뉴스를 찾아 읽기 전이라 사고 소식을 모르고 있었기에 많이 놀랐고 전화를 끊고 난 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인터넷을 통해 찾아보곤 참담한 마음에 한참이나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 뒤로도 지난 며칠 간 이런저런 소식을 듣게 되었지만, 이런 비극 속에서도 올바른 정보만이 아닌 각종 유언비언들도 넘쳐나는 상황에 더욱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참담한 소식에 무거운 마음을 안고, 오늘 저의 이야기를 적습니다.



‘오류 가능성’ 인식하며 줄이는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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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정보, 틀린 정보, 오해의 소지가 있는 주장, 그들이 의도적인지 아닌지 등의 문제는 과학 연구를 할 때도 역시 중요한 화두입니다. 직접 연구하는 주제는 아니지만 관련성이 깊은 주제인 천체물리학 분야에서 최근 주목할 만한 실험결과가 발표되었습니다. 급팽창(인플레이션) 우주론의 증거가 발견되었다고 말하는 바이셉2(BICEP2)의 실험 결과인데요.[1][2] 이 실험 결과가 옳다는 것이 후속 실험 등에서도 계속 입증된다면 급팽창 우주론[3]의 입지는 더욱 공고해질 것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실험 결과에 따르면 제가 주로 연구하는 끈이론에 기반한 우주론 모델 등 다수가 틀린 것으로 판명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해당 모델들이 틀렸다고 해서 끈이론 자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직접적인 실험이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끈이론이기 때문에 이와 같은 간접적인 입증에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을 생각하면 아쉬운 마음도 없지 않아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실험 결과는 옳은 것일까?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의 뉴스 등을 보고 있노라면 그렇게 보입니다만, 과학에서 무언가 입증되거나 반증되는 것이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습니다. 얼마 전의 논문(아는 박사님의 페이스북을 통해 알게 되었음을 밝힙니다)[4]을 보면 이 실험 결과 자체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 의문도 마찬가지로 올바른 것인지 틀린 것인지 알 수 없으나 결국에 신중함을 유지한 채 옳고 그름을 유보하는 입장이 틀릴 가능성이 가장 적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틀릴 가능성이 두려워 신중하기만 하다면 연구 그 자체는 답보 상태에 빠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계산이나 실험 과정에서 실수를 하지 않아야 할 것이고 또한 수학적인 정합성이나 변인통제 등을 빠트림없이 하더라도 완전무결한 진리를 발표하는 것이 연구 결과가 아니기 때문이죠.


언론에서 발표하는 뉴스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교묘하게 진실을 왜곡하거나 의도한 오류가 없다면 현 시점에서의 생동감 있는 지식을 전할 의무가 있을 테니까요. 저 역시 논문을 쓸 때 항상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될수록 객관적인 글을 쓰려고 노력합니다. 예컨대, 어떤 계산 결과를 얻었는데 이는 무슨 원리와 결과에 기반을 둔 것인지, 이런 해석을 할 수 있으므로 이 주장이 옳다면 이러저러한 계산을 통해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든지 등등 말이죠.



'정보의 홍수' 부작용은 극복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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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대가의 논문을 보면 이렇듯 원대한 주장 다음에 그 주장을 확인할 수 있는 후속 연구방향(future directions)을 소개합니다. 그러면 저와 같은 초급 연구자들이 그 주장이 맞는지 틀리는지 확인하는 작업을 하곤 하지요. 그런데 이렇게 후속 연구를 이어가는 것조차 과거에는 쉽지 않았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왜냐 하면 과거에는 논문을 저널에 투고한 뒤 한참 시간이 지나야만 비로소 출판되어 해당 논문을 늦게 읽어볼 수 있었으니까요. 저와 같은 젊은 초급 연구자들에겐 이미 대학 진학 때부터 활성화하기 시작한 인터넷 덕분에 이제는 후속 연구도 시간 지체 없이 뛰어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00Scipaper22.jpg » 학술저널에 출판되기 이전에 공개된 '프리프린트' 논문들을 볼 수 있는 웹사이트인 아카이브(arXiv.org)의 첫 화면 일부., 정보기술의 발달, 인터넷의 팽창은 연구자들에게도 엄청난 영향을 주었습니다. 특히 인터넷을 통해 업로드 된 새로운 ‘출판 전 논문(preprint, 프리프린트)’를 검토하는 것은 저의 일과 중 하나가 되어 버렸는데요. 이를 통해 제 분야에서 어떤 새로운 연구물이 나왔는지 일찍 알 수 있고, 획기적이고 주목할 만한 결과가 나오면 좌절하기도 하고 또 자극받기도 하고 그렇답니다. 물론 연구를 하다 보니 이제는 프리프린트가 나오기 이전에 이미 어떤 그룹에선 무슨 일을 하고 있고 곧 어떤 결과가 나오리라는 것을 미리 알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최측근이 아니면 결국 논문 초고(드래프트)를 미리 읽어볼 수는 없기 때문에 프리프린트가 나온 뒤에야 그 전모를 알 수 있지요.


이렇게 연구를 할 때에도 인터넷과 빠른 정보력 등이 편리함을 제공하긴 하지만, 적어도 저에겐 부작용도 있답니다.

먼저 “절실함”이 부족해지는 느낌을 받는다는 건데요. 과거에 대학교 도서관에서 논문을 복사해 보던 때엔 복사한 논문이 귀하기 때문에 그만큼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열망이 더 강했는데, 이제는 언제든지 컴퓨터에서 종이로 출력할 수 있고 다운로드 할 수 있다는 편리함이 절실함을 낮추기도 한다는 겁니다. 제 가방 안에 든 논문들을 읽거나 검증하지 않고 그대로 둔다면 제 지식이 될 수 없는데도 ‘부적’처럼 그저 갖고 있을 때도 있으니 참 우스운 일이지요.


또한 저의 대학원 시절을 생각하면, 논문이 귀하던 예전에 비해 읽을 논문이 너무 많아져 때로는 연구 방향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도 생긴다는 겁니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지도교수님이 읽을 논문의 범위를 좁혀주시기도 하셨죠. 이렇듯 과학의 발전과 함께 이루어진 정보의 팽창은 장단점이 다 있어 보입니다.



올바른 정보를 얻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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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에서 정보력의 장단점을 넘어서는 올바른 정보란 무엇일까요? 정보 그 자체를 연구 분야로 삼는 학문 분야가 따로 있으니 ‘정보란 무엇인가’ 같은 심오한 이야기는 건너뛰고요, 과학 지식의 경우를 얘기해보기로 하지요. 과학 지식에도 여느 학문 분야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접근 경로가 있을 겁니다. 제 학창 시절을 떠올리면 당시 유행했던 하이텔의 과학동호회나 <뉴튼>, <과학동아> 같은 잡지, 그리고 교양과학 서적 등이 참 많은 동기 부여가 되었음을 느낍니다.


불행히도 몇몇 교양과학 서적들은 사이비 과학자들이 저술해 올바르지 못한 지식을 담고 있기도 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제 기억엔 중학교 2학년 때 생일선물로 부모님을 졸라 샀던 책이 정확히 그런 사이비 과학 서적이었는데요. 대략 아인슈타인은 틀렸고 뉴튼 역학도 틀렸다는 식의 내용이 기억납니다.


시 힘이 무엇인지, 일이 무엇인지 정도를 배웠던 제겐 많이 혼란스러웠는데, 나중에 하이텔 과학동호회의 한 대학생 형님께서 지식이 미성숙할 때엔 권위에 기대는 게 낫다는 도움말을 주신 이후에는 한동안 과학 서적을 집필한 저자가 누구인지 확인하고 난 뒤에 비로소 책을 읽기도 하였지요. 즉 저명한 학자나 교수처럼 어느 정도 검증된 저자들이 쓴 책이 아니라면 책에서 잘못된 지식을 얻을 수도 있기 때문에 그런 책들은 처음부터 가까이 하지 않았던 것이죠. 이런 습관이 사실 편견과 선입견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올바르지 못한 태도일 수 있습니다만, 이제 걸음마를 하는 단계에선 역시 검증된 지식에서 시작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합니다.


대학에 진학하고선 교수님들이 전공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와 강의노트 그리고 전공서적을 통해 과학 지식을 배울 수 있었지요. 또한 대학원에 들어가서는 연구 논문을 많이 읽게 되었습니다. 많은 경우에 대학원에서는 이른바 ‘저널클럽’이라고 부르는 모임이 운영되는데, 이 모임에서는 그룹 구성원들과 함께 최신 논문을 읽으며 토론하고 이해하려고 애썼던 기억이 납니다. 주장이 옳고 그름은커녕 도무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아들을 수 없어서 1시간이 10시간처럼 느껴졌답니다.


졸업하고서 박사후 연구원 과정을 거치는 지금도 역시 세미나에서 제가 주로 매달리는 연구 주제 아닌 다른 분야의 발표 내용을 들을 때에는 처음과 마지막 결론 부분 정도만 기억에 남곤 합니다. 반대로 제 연구 분야와 관련한 세미나나 학회에 참석했을 땐 새로운 지식을 얻게 되고 때때로 토의를 함께하며 공동연구의 기회를 만들기도 합니다. 학생을 과학 지식을 배우는 이들라고 본다면, 이후에 연구를 본격적으로 하는 단계에서 연구자는 과학 지식을 배우기도 하지만 동시에 지식을 만들기도 하는 이들이 되는 것이죠.



‘날 것 그대로, 살아 있는 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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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만들어진 과학 지식은 논문 형태로 발표됩니다. 흔히 논문에 담긴 지식을 ‘살아 있는 지식’이라고도 부릅니다. 살아 있다는 말이 뭘 의미하는 걸까요? 제 생각에는 ‘날 것 그대로의 지식’을 의미한다고 봅니다. 아무도 하지 않은 연구를 해내고 그 결과를 논리적으로 정리한 것이 연구논문이기 때문이지요. 다시 말해, 고의적인 부정행위나 논리적 정합성이 부족하지 않다 해도 훗날 폐기 처분될 가능성도 있고, 또는 후속 연구를 통해 그 가치가 더욱 높아져 빛나는 업적이 될 가능성도 동시에 갖고 있다는 겁니다.


가 쓴 첫 논문에서도 핵심 내용은 아니었지만 새로운 예측을 하나 제시한 적이 있습니다. 수학적으로 얻어진 것이었고 물리적 해석은 명백하지 않았기 때문에 당시 지도교수님께선 넣을까 말까 고민하셨다가 최종적으로 넣기로 하였죠. 아주 작은 예측이었기 때문에 학계의 주목을 받진 못했지만 저에겐 나름의 애착이 있는 아이디어였죠. 결과는 2년 뒤, 다른 그룹의 후속 연구를 통해 제 아이디어는 특별한 상황에서만 맞는 우연적 일치였다는 것이 발표되었답니다. 그 연구그룹의 결과를 검토해보았고 옳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아쉬운 마음이 생기더라도 제 아이디어는 틀린 것이죠. 살아 있는 지식인 논문의 옳고 그름은 이렇듯이 미루어 짐작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비전문가들의 경우에 과학 지식을 오히려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어 보입니다. 


예컨대 한국 과학계의 아픈 과거 중 하나인 줄기세포 사태나 최근 논란이 된 일본 연구진의 만능세포 이슈 등을 보면 전문가들의 후속 연구를 통한 확인 작업 이전에 갓 발표된 논문을 기정사실화하는 비전문가들의 태도도 역시 큰 문제였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 예들은 애초에 연구자가 연구윤리를 위반한 결과물이기 때문에 조금 다른 문제일 수도 있으나, 보통 과학 연구의 과정을 보면 틀린 결과라면 결국 그 사실이 밝혀지기 마련이기에 논문 지식을 교과서에 실린 지식처럼 대하는 것은 옳지 못할 것입니다. 동료심사를 거쳐 게재된 논문의 경우 주된 논리와 결과는 일차 검증이 되었다고 볼 수 있으나, 해당 결과의 해석과 파급효과 등은 확증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논문에 쓰인 문장을 모두 다 몇 십 년 간 검증된 지식처럼 지나치게 과장하는 것은 경계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연구논문은 현재진행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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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처음 시작할 때, 정보가 넘쳐나 그로 인한 장단점이 있다는 얘기를 했습니다만, 살아 있는 지식으로서 연구논문이 많이 나오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게 나오는 수많은 이론과 실험이 서로 상호작용하면서 버려질 것은 버려지고 남을 것은 남으면서 나아가고, 또한 해당 논문을 직접 쓰는 연구자와 관련 분야를 함께 연구하는 동료들이 자신과 상대를 객관성의 눈으로 주시하는 것은 과학자 공동체뿐 아니라 인류 발전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아닐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금 저는 지난 몇 주 동안 계산한 결과를 정리해 논문으로 쓰는 중입니다. 혼자 하는 연구가 아니기 때문에 프리프린트 형태로 완성되는 데까지 얼마나 더 걸릴지 모르지만, 어찌됐건 계산 결과를 논문으로 쓰는 작업은 쉬운 일이 아님을 느낍니다. 저야 현재 작업에 익숙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우리 연구 배경을 설명해야 하고, 논문 전체를 통틀어 수식 표현도 통일해야 하며, 또한 영어로 작성하는 데에서 발생하는 표현의 어색함도 극복해야 합니다. 얼마 뒤 이 논문이 출판되면 이 결과는 작건 크건 새로운 “과학 지식“이 될 겁니다. 앞서 말했듯이 과학 지식은 살아 있는 것이지 불변의 진리는 아님을 알지만 적어도 올바른 정보를 담고 있길 바랍니다.


[참고 문헌]


[1] BICEP2 Collaboration Collaboration, P. Ade et al., BICEP2 I: Detection Of B-mode Polarization at Degree Angular Scales, arXiv:1403.3985

[2] BICEP2 Collaboration Collaboration, P. A. R. Ade et al., BICEP2 II: Experiment and Three-Year Data Set, arXiv:1403.4302

[3] A. D. Linde, The Inationary Universe, Rept.Prog.Phys. 47 (1984) 925-986

[4] http://arxiv.org/abs/1404.1899


김민규 헝가리 위그너물리연구센터 연구원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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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규 헝가리 위그너물리연구센터 박사후연구원
끈과 장 이론에서 나타나는 이중성과 정확하게 풀리는 모형들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인류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진보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이에 조금이나마 기여하는 것이 목표이다.
이메일 : minkyoo.kim@wigner.mta.h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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