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빛보다 빠른 중성미자' 결론은 좀더 기다려달라!

오페라 국제팀, 이달 중순까지 보완검증 실험뒤 정식논문 제출

중성미자 다발 크기는 줄이고 간격은 늘려...'검출 해상도' 높여

오페라 참여 국내연구자 "첫발표 결과와 그리 큰변화는 없을것"


00gransasso중성미자 검출장치(이탈리아 그란사소 국립연구소 지하실험실). 사진/ 오페라



‘빛보다 빠른 중성미자’의 놀라운 발견이 물리학에 끼칠 충격은 일단 조금 더 시간 여유를 두고서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 이론이 예측한 바와 달리 빛보다 더 빠른 입자가 존재함을 보여준 국제 공동연구 프로젝트 ‘오페라(OPERA)’의 실험 결과를 보완하는 검증 실험이 지난달부터 진행되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과 방송 <비비시>를 비롯해 여러 외신 보도를 보면, 지난 9월 이탈리아가 중심이 된 오페라 국제연구팀이 기본입자 중 하나인 중성미자(뉴트리노)가 빛보다 빠르다는 실험 데이터의 증거를 발표했으나 몇몇 물리학자들이 ‘실험 체제에 오류가 있을 가능성’을 제기하자 연구팀이 실험 방식을 약간 바꾸어 검증에 나섰다고 한다. 오페라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한국 연구팀의 대표인 윤천실 박사(경상대 고에너지물리실험실)는 2일 <사이언스온>과 주고받은 전자우편에서 “이번 실험은 이달 중순까지 진행될 예정”이라며 “논문을 조금 더 보완하기 위한 것이지 (실험 방법을 크게 바꿔 행하는) 재실험이라고는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오페라의 첫 충격'은 이탈리아 그란사소와 스위스 제네바에서 날아왔다. 오페라 연구팀은 지난 9월23일(현지시각) 스위스 제네바 부근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세른)의 슈퍼 양성자 싱크로트론(SPS) 가속기에서 생성돼 730여 킬로미터 거리를 날아온 중성미자(뉴트리노)를 이탈리아 그란사소의 오페라 실험장치에서 검출하는 실험을 3년 동안 벌였으며, 1만6천 건 가량의 데이터를 분석해보니 중성미자가 730여 킬로미터 거리를 광속보다 10억분의 60초(60나노초) 앞서는 속도로 날아온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힌 바 있다(빛이라면 그 거리를 240만 나노초에 도착했을 것이다). 이른바 '초광속' 입자가 발견됐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오차 범위는 732킬로미터에서 20센티미터 이내일 것으로 계산해 이번 측정이 매우 정밀한 것임을 강조했다. 이런 발표는 빛보다 빠른 입자는 없다는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 이론을 수정해야 하는 실험 증거라는 기대와 더불어 물리학계와 일반 사회에 크나큰 반향을 일으켰다.


발표 이후에 물리학계의 반응은 무엇보다 온라인 논문 초고 데이터베이스인 ‘아카이브(arXiv.org)’에서 볼 수 있다. 오페라 연구팀이 아카이브에 논문을 올린 이후에 지금까지 "100편 넘게 논문들이 이곳에 잇따라 올라왔다"(윤천실 박사). ‘빛보다 빠른 중성미자’의 증거를 정당화하여 설명하는 여러 과학 가설들이 제시돼 눈길을 끌었다. 이와 더불어 이번 실험 데이터에 오류가 있을 가능성을 제기하는 저명한 물리학자들의 반박성 논문도 나오면서 빛보다 빠른 중성미자의 존재 가능성에 대한 궁금증을 더욱 높여주었다.


실험 데이터에 오류가 있었을 가능성을 제기하는 주요 주장은 대략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9월28일 아카이브에 논문을 올린 영국 임페리얼대학의 물리학자인 카를로 콘탈디(Carlo Contaldi)는 지상의 중력 차이가 계산에 반영되지 않았다는 반박을 내놓았다. 그는 이번 실험이 지구 위치확인 시스템(GPS)를 이용한 시각 동기화 방법을 써서 730킬러미터 떨어진 두 장소의 중성미자 생성과 검출 시각을 측정해 중성미자의 속도를 계산했는데, 세른이 있는 곳의 중력이 오페라 실험시설이 있는 곳의 중력보다 커 시간이 상대적으로 느리게 흐르기 때문에 세른에서 출발해 오페라에서 검출된 중성미자가 빛보다 빠른 속도로 관측된 것은 당연하다는 식의 주장을 펼쳤다. 중성미자가 빛보다 빠르게 관측된 것은 중력 효과 때문이라는 것이다.


9월29일 아카이브에 논문을 올린 노벨물리학상 수상 물리학자 셸던 글래쇼(Sheldon Glashow)와 앤드류 코헨(Andrew Cohen) 보스턴대학 교수는 중성미자의 에너지 손실 가능성을 근거로 내세워 반박했다. 그는 중성미자가 빛보다 더 빠르게 날아간다면 에너지를 복사해, 초음속 제트 비행기가 남기는 충격음파와 같은 더 느린 입자들의 흔적을 남길 것이며 중성미자는 자신의 네너지를 많이 잃어 이번에 측정된 에너지를 나타내지는 않을 것이라는 식의 의문을 제기했다.


이와 함께 이번 실험 데이터가 중성미자 입자 하나하나를 검출한 게 아니라 ①세른의 슈퍼 양성자 싱크로트론(SPS)에서 중성미자를 발생시키는 양성자 다발이 흑연과 부딪힐 때 양성자들의 시간적 분포와, ②중성미자가 오페라 검출기에서 검출될 때 중성미자의 시간적 분포를 비교해 얻어졌다는 점에서 시간 측정 체계에서 오류가 생겼을 가능성을 제기하는 학자도 나오고 있다. 국제 물리학회인 아이오피(IOP)가 운영하는 물리학 뉴스 사이트인 ‘피직스월드(physicsworld.com)’는 최근 오페라 연구팀 내부에서는 이런 오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논문 발표 이전에 이번 실험 결과를 다른 방법으로 신중하게 검증할 필요가 있다는 이견도 있다며 '긴장된 내부 상황'을 전했다.


00map00map2스위스 세른(CERN)에서 생성된 뮤온 중성미자 빔이 730킬로미터 떨어진 이탈리아 그란사소 지하실험실에서 검출됨. 그림/ 오페라




"재실험 아닌 보완실험...본격 재실험은 내년 시작될듯"


이런 가운데 오페라 연구팀은 지난 9월 첫 발표 이후에 나온 여러 반박 논문들을 검토하는 한편, 이번 실험 데이터를 보완하는 검증 실험을 지난달부터 벌이고 있다. 이번 검증 실험은 그동안 제기된 문제를 다시 한번 더 확인하는 ‘보완’의 성격을 띤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오페라 연구팀에 참여하는 윤천실 박사는 “이번 실험은 '빔 테스트'의 성격이 강하며 이달 중순께까지 진행될 예정”이라며 “빔의 형태만 다를 뿐 실험장비나 분석방법은 거의 동일하다”고 전했다.


'빔의 형태가 바뀌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외신 보도를 보면, 이전에는 중성미자를 발생시키는 양성자 다발의 시간적 분포가 10마이크로미터초의 길이를 지녔는데, 이번의 보완검증 실험에서는 이런 시간적 길이를 수천배 가량 줄여 양성자 다발의 시간적 분포를 1~2나노미터초의 길이로 실험하기로 했다고 한다.  또한 양성자 충돌과 중성미자 발생을 한번 수행하고 다음번에 수행할 때까지의 시간 간격을 500나노초까지 크게 넓히기로 했다. 달리 말하면, 이번에는 빔을 훨씬 더 짧게, 그리고 긴 시간 간격을 두고서 쏜다는 얘기다. 이렇게 되면 중성미자들이 짧게, 그리고 긴 시간 간격을 두고서 검출되기 때문에 시각 측정이 훨씬 더 분명하고 정밀해져 잠재적 오차를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연구자들은 기대하고 있다.


손동철 경북대 교수는 이와 관련해 “검증실험은 이전 오페라 실험 결과에 대한 의문의 핵심이 된 부분인 중성미자 발생 시점 사이의 시간 차를 충분히 두는 만큼 명확한 답을 제시할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박인규 서울시립대 교수(LHC의 CMS실험 한국 연구팀 대표)는 “이전 실험 데이터에서는 슈퍼양성자 싱크로트론(SPS)에서 뉴트리노 출발 시각의 불확정도가 너무 컸다”고 말했다.


향후 실험 일정과 관련해 오페라 연구팀에 참여하는 윤천실 박사는 “이번 실험은 논문을 좀 더 보완하기 위한 것이지 재실험이라고는 볼 수 없다”며 “재실험은 여러 가지 준비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아마 내년 쯤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지 않을까 생각된다”고 말했다.이번 보완검증 실험의 결과와, 뒤이어 내년에 이뤄질 것으로 예상되는 다른 방식의 본격적 재실험 결과가 나와야 ‘빛보다 빠른 중성미자’의 존재와 그 존재가 현대 물리학에 끼칠 영향의 크기도 더 또렷해질 것으로 보인다.





국내 물리학자 이메일 인터뷰




이번 실험을 어떤 자세와 마음으로 지켜보는 게 바람직할까요?

 

박인규 교수(서울시립대) |  "전문가들은 그다지 요동한적이 없었습니다. 특히 실험전공자들은 실험 오류로 곧 원인이 밝혀질 것이라 생각했던 분이 많고요. 다만 이론물리학자들은 “만약”이란 단서를 달아 “만약 실험이 맞다면” 상대성이론이 틀렸다는 것을 이야기 하므로, 쓸 얘기가 많았던 것이지요. 일반인들에게는 과학에 대한 흥미를 안겨준다는 점에서는 좋은 영향일 수 있으나, [과학의 발견이 오류로 보고될 경우에는] 나중에 불신이 생길 수도 있지요."

 

손동철 교수(경북대) |  "진공에서의 빛 속도가 항상 일정하다는 것도 당시에는 부정적인 견해가 지배적이었지만, 지금은 누구나 믿게 되었습니다. 언제나 우리가 모르던 것이 사실로 판명되는 것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가정 하에 훨씬 더 정밀한 실험으로 새로운 현상을 찾아보는 것은 지식을 넓혀가는 데 매우 중요합니다."



검증실험을 어떻게 전망하시는지요?(너무 부담스런 질문 같습니다만). 빛보다 빠른 중성미자가 확인된다 해도, 상대성이론으로 인해 뉴턴역학이 폐기되지 않은 것처럼, 상대성이론이 폐기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말하고 있습니다. 실험결과가 재확인된다면 그 여파는 어디까지라고 보시는지요? 시간여행 같은 공상과학적 전망도 있습니다만...

 

박인규 교수 |  "검증결과 뉴트리노가 빛보다 빠르다면 여러가지 문제가 발생합니다. 뉴트리노는 최근 질량이 있다고 알려졌는데, 질량이 있는 물체가 빛보다 빠를 수는 없거든요. 질량이 0인 입자는 빛의 속도로 움직이겠지만. 이런 경우 상대론은 잘못 쓰여진 것이 맞습니다. ...오히려 저는 뉴트리노가 아닌, 인간이 만든 검출 장비로 검출이 안 되는 새로운 입자가 있어, 이 입자가 빛보다 빠르다 (타키온) 등의 이론을 [이번 기회에 과학언론 매체에서] 소개하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합니다. 제가 만든 이론이기는 하나, 박쥐의 상대론을 이야기할 수 있지요. 즉 박쥐는 평생 빛을 보지 못해 초음파의 속도를 한계로 놓고 초음파에 대한 상대성이론을 만들 수 있는데... 이 경우에 아인쉬타인 박쥐가 만든 상대론 공식에는 c에 초음파 속도 340m/s이 들어가겠지요. 어느날 천재 실험 박쥐가 빛을 소리로 전환해서 듣는 장치를 개발했는데, 알고보니 전달 속도가 무지 빠르더라... 이 경우에 박쥐상대론을 폐기하기보다는 박쥐상대론은 그대로 놔누고 더 빠른 빛을 매개로하는 새로운 물리의 세계로 나아갈텐데.... 같은 이야기로 빛의 속도보다 1000만배 빠른 입자가 있는데, 이를 검출하면 우리는 우리가 알고있는 인과률을 깨면서 신호를 전달할 수 있게 되겠지요. 그래도 시간이 거꾸로 흐르지는 않을 것입니다."

 

손동철 교수 |  "검증실험은 이전 오페라 실험 결과에 대한 의문의 핵심이 된 부분인 뉴트리노 발생 시점 사이의 시간 차를 충분히 두는 만큼 명확한 답을 제시할 것으로 전망합니다. 실험결과를  재확인하는 경우에는 새로운 이론적인 모형들이 등장하고, 이를 다시 검증하는 여러 실험들이 제안되고 수행될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재확인되지 않은 경우에도 다른 실험들이 동시에 또 검증할 것이므로 좀더 시간을 두고 살펴보는 것이 졿겠습니다. 그러나 재확인되더라도 일반인이 상상하는 시간여행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보통 물질을 구성하는 입자들의 수만큼 많이 빛보다 빠른 입자로 구성된 물질을 우리가 임의로 만들어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대신 우리가 종전에 가지고 있는 통념을 깨는 현상들을 예측할 수는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상대성이론도 수정이 불가피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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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철우 한겨레신문사 과학담당 기자, 사이언스온 운영
1990년 한겨레신문사에 입사해 편집부, 사회부, 문화부, 생활과학부 등을 거쳤으며 주로 과학담당 기자로 일했다. <과학의 수사학>, <과학의 언어>, <온도계의 철학> 등을 번역했으며, <갈릴레오의 두 우주체제에 관한 대화>를 썼다.
이메일 :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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