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은하가 만든 중력렌즈 통해 90억 광년 초신성을 보다
허블망원경, 은하와 은하단의 ‘이중렌즈’ 효과 관측
머나먼 빛은 복잡한 중력장 지나 여러 경로 거쳐 날아와
50여년 전, 10여년 전, 현재 이어 10년 내 재출현 예측
» 50억 광년 떨어져 있는 은하단과 그 안 은하가 중력렌즈의 구실을 해, 더 멀리 90억 광년 떨어져 있는 초신성의 확대 영상을 지구에 비추어준다. 그림은 그 은하단 내 은하의 둘레에 4개의 상으로 맺힌 초신성(화살표)의 모습. 자연 밝기보다 20배가량 더 밝다고 한다. 출처/ NASA, ESA
빛도 중력을 만나면 중력 쪽으로 이끌려 휜다. 물론 우리가 경험하는 중력으론 그런 현상을 볼 수 없지만 우주에서 거대 질량 천체의 중력장을 지나갈 때 빛도 중력의 영향을 받아 휜다는 것은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으로 설명되는데, 이런 현상은 이른바 '중력렌즈 효과'라고 불린다. 1979년 중력렌즈 효과가 실제로 처음 관측된 바 있다.
최근 미국항공우주국(NASA)과 유럽우주국(ESA)이 운영하는 허블 우주망원경이 지난해 11월 거대 은하단의 뒤편으로 저멀리 93억 광년 떨어진 곳에 있는 초신성이 은하단과 은하의 중력렌즈 효과 덕분에 4개의 상으로 관측되는 독특한 현상을 발견했다고 천문학 연구진이 밝혔다. 거대 별의 폭발인 초신성(supernova)이 중력렌즈를 통해 관측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관측의 성과는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보고됐으며, 초신성은 노르웨이 천문학자 슈르 레프스달(Sjur Refsdal: 1935–2009)의 이름을 따서 '레프스달 초신성(SN Refsdal)'으로 명명됐다.
어떻게 초신성 하나가 4개의 상으로 관측됐을까? 거대 천체의 중력이 빛을 굴절시키는 렌즈처럼 작용하기 때문이다. 관측자가 볼 때 거대 천체의 뒤편에 놓여 볼 수 없는 천체의 빛도 이처럼 중력렌즈 구실을 하는 거대 천체 중력에 의해 휘게 되면 빛은 관측자까지 도달할 수 있다.
만일 관측자(허블 망원경)와 중력렌즈(거대 질량의 천체), 그리고 광원(초신성)이 정확히 일직선에 놓이면 광원은 중력렌즈 효과로 인해 중력렌즈 구실을 하는 천체의 둘레에서 둥근 고리 모양으로 관측될 수 있다. 그러나 관측자와 중력렌즈, 광원의 위치가 약간 어긋나면 중력렌즈로 인해 생긴 상은 끊어지거나 일그러지거나 점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한다. 다음은 물리학 전문 매체가 전하는 설명이다.
» [위] 아인슈타인 고리. 뒤편에 가려 있는 천체의 빛이 거대 질량의 중력렌즈 덕분에 고리(ring) 모양으로 비쳐, 일직선에 있는 관측자가 볼 수 있다. [아래] 아인슈타인 십자가. 하나의 천체가 4개의 상으로 나타난다. 출처/ Wikimedia Commons 중력렌즈 구실을 하는 것은 거대 은하 또는 은하단인데, 이런 중력렌즈는 멀리 떨어진 광원에서 오는 빛을 굴절시켜, 즉 렌즈 효과를 내어 [지구나 지구 부근의] 관측자가 볼 수 있게 한다. 이런 효과는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에 의해 예측됐으며 그런 렌즈 현상이 1979년에 처음 발견됐다. 멀리 떨어진 광원, 그리고 렌즈 구실을 하는 은하, 그리고 관측자가 간혹 정확히 일직선에 놓이면, 우리 관측자는 ‘아인슈타인 고리(Einstein ring)’를 볼 수 있게 된다. 아인슈타인 고리란 광원에서 오는 빛이 렌즈 구실을 하는 거대 질량을 고리 모양으로 에워싼 듯이 보이는 현상을 말한다. 그런데 만일 이런 일직선의 정렬에서 조금 틀어지면 관측자인 우리는 [렌즈를 둘러싼 고리 모양이 아니라] 그 일부인 활 모양을 보거나 점들을 보게 된다. 천체들의 상대적인 위치가 달라짐에 따라서, 그것을 4개 점으로 관찰할 수도 있는데, 이것은 흔히 ’아인슈타인 십자가(Einstein cross)’라고 불린다. 이런 렌즈 효과는 “자연이 만들어준 망원경”으로서 천문학자들한테 도움을 준다. 천문학자들은 비친 상의 일그러짐 정도(amount of distortion observed)에 바탕을 두어 렌즈 구실을 하는 은하와 거기에 담긴 암흑물질의 질량을 확정할 수도 있다. [출처/ 피직스월드닷컴 뉴스]
» 광원(초신성)과 중력렌즈(은하단과 은하), 관측자(허블망원경)이 일직선에서 약간 벗어나며 상대적 위치가 달라지면 상이 맺히는 자리와 모양도 달라진다. 맨 위는 예전에 있었을 중력렌즈 효과, 중간은 2014년의 관측, 아래는 10년 안에 나타날 것으로 컴퓨터 모델링 분석에서 예측된 관측을 나타낸 것이다. 출처/ NASA 동영상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이번에 관측된 초신성의 상이 ‘이중의 중력렌즈’ 효과로 생성됐다는 것이다. 은하의 군집인 은하단이라는 엄청난 중력장에 잡힌 상이 다시 은하단 안의 은하의 중력장에 잡혀 허블 우주망원경에 포착됐다는 얘기다. 중력렌즈로 확대된 상을 중력렌즈로 또 확대했으니, 관측할 수 있는 우주 영역의 끝자락 부근에 있는 93억 광년 거리의 초신성도 매우 밝게 비치었다. 다음은 에사 허블우주망원경 사이트의 설명 대목이다.
“이 초신성은 자연 밝기보다 20배나 더 밝은 것으로 나타난다”고 논문 공저자인 덴마크 암흑우주론센터 소속 연구자(Jens Hjorth)는 설명한다. “2개 중력렌즈가 합해진 결합 효과 덕분입니다. 거대한 은하단이 적어도 세 갈래 경로를 따라 오는 초신성 빛을 초점에 모으고, 세 갈래 빛 가운데 하나가 이 은하단 안 타원은하 하나와 우연하게 정확히 정렬하면서 2차 중력렌즈 효과가 나타난 것입니다.” 이 타원은하와 연계된 암흑물질이 이 빛을 굴절시키고 다시 초점에 모으면서 4개 이상의 경로가 생겨나, 이번에 관측된 '아인슈타인 십자가'의 패턴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출처/ 허블우주망원경 사이트]
중력렌즈 효과에 관한 좀 더 복잡하면서도 흥미로운 사실도 전해졌다. 빛은 머나먼 거리를 여행하며 여러 중력장에 걸려 여러 갈래의 경로로 날아가기도 하는데, 또한 중력렌즈 구실을 하는 중력장의 위치가 변화하면서 그 경로도 바뀌게 되어 빛을 보는 관측자한테는 그 상이 우주의 창에서 여러 곳에 맺힐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번 연구진은 컴퓨터 모델 분석을 통해서 이 초신성이 이미 50여 년 전과 10여 년 전에도 중력렌즈 효과에 의해 지구 관측자한테 모습을 드러냈을 것이며, 또한 2014년에 관측된 데 이어 앞으로 10년 안에 다시 관측될 것으리는 예측을 내놓았다. 초신성 빛은 우주 공간의 여러 경로를 거치며 시간 지연 효과까지 겹쳐 네 차례에 걸쳐 그 모습을 '리플레이'하며 다시 드러낸다는 것이다.
이번에 중력렌즈에 의해 4개 상으로 관측된 초신성의 데이터는 쉽게 관측하기 힘들 정도로 먼 곳의 초신성을 자세히 관찰할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중력렌즈의 작용과 우주 팽창 속도의 측정에도 좋은 자료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물리 전문매체 피직스월드닷컴은 내다봤다.◑
[ 유투브 동영상 https://youtu.be/XVKAfAkDJaY ]
■ 논문 초록
1964년 레프스달(Refsdal)은 빛이 강한 중력렌즈를 돌아서 여러 경로를 거쳐 날아오는 초신성이 우주 팽창 속도를 측정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는 가설을 제시했다. 우리는 그런 계를 발견했음을 보고한다. 허블우주망원경 영상에서, 우리는 단일 초신성이 은하단 MACS J1149.6+2223 안의 적색편이(redshift) 값이 z = 0.54인 타원은하 둘레에다 4개의 상을 만들어 ‘아인슈타인 십자가’를 형성했음을 발견했다. 그 은하단의 중력 포텐셜은 또한 이 초신성이 본래 속한 나선은하(z = 1.49)의 여러 상을 만들어낸다. 이 초신성 상은 은하단 내 다른 곳에서 미래에 다시 나타날 것으로 예측된다. 초신성 상이 확대되었고 여러 경로를 거쳐 도착했다는 점은 은하와 은하단 중력렌즈 내부의 물질 분포뿐 아니라 우주 팽창 속도를 보여준다.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사이언스온의 길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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