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투고료 노리는 엉터리 온라인 학술지’ 조심하세요

네이처 등에 잇따라 '공개접근 학술출판 흉내낸 가짜 학술지' 경계 목소리





라인에서 학술지의 연구 논문을 구독료 없이도 누구나 읽을 수 있게 하자는 ‘공개접근(Open Access: OA)’ 학술운동의 취지를 악용해, 제대로 논문 심사도 하지 않으면서 연구자들한테 논문 투고료를 받아 이윤을 챙기는 이른바 ‘약탈적 학술출판(predatory publisher)’을 조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과학계 안에서 나오고 있다. 공개접근 출판은 논문 저자한테서 받는 출판비용(심사·편집비)만으로 학술지를 운영하며 인터넷과 정보기술(IT)을 활용해 논문을 무료 공개하는 새로운 학술출판의 흐름으로 등장했는데, 최근엔 공개접근 출판을 내세우며 이윤 챙기기에 나서는 '무뉘만 학술지'들이 인터넷 시대의 부산물로 생겨나고 있다는 것이다.


00Beall.jpg » 약탈적 학술출판의 실태를 알리는 제프리 비올의 블로그. 연구자들의 호주머니를 노리는 ‘약탈적 학술출판’의 실태가 널리 알려진 것은 미국 덴버 콜로라도대학 학술사서인 제프리 비올(Jeffrey Beall) 덕분이었다. 그는 오래 전부터 자신의 블로그에 이런 출판 행태를 고발해왔으며, 최근에는 과학저널 <네이처>와 다른 과학잡지 <더 사이언티스트>에 칼럼을 실어 과학 연구자들한테 온라인의 엉터리 학술저널(bogus journal)에 속지 말라고 경고했다.


그는 공개접근 출판이 지난 10년에 걸쳐 빠르게 늘어 “학술출판 분야에서 거대한 변동이 일어나고 있다”고 전하면서, 공개접근 출판이 이룬 긍정적 효과도 많지만 이를 악용하는 약탈적인 공개접근 출판도 생겨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러 연구자들한테 피해 사례를 문의하는 메일을 받고 있다고 말한 그는 칼럼들에서 약탈적 출판의 수법을 비교적 자세히 소개했다.


“논문 저자한테 돈을 받는 공개접근 출판 모델을 악용해 가짜 학술지를 출판하는 약탈적인 출판인들이 등장했다. 약탈적 출판인들은 속임수를 쓰며 투명하지 않다. 이들은 쉽게 속아넘어가는 연구자들, 특히 학술 커뮤니케이션에 경험이 적은 사람을 노린다. 그들은 진짜 온라인 학술출판의 웹사이트와 아주 비슷하게 웹사이트를 만들고는 논문들도 게재하지만 논문들은 질이 낮고 의심스런 것들이다. 많은 경우에 이들은 사무소가 미국, 영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에 있는 것처럼 말하지만, 사실은 주로 파키스탄, 인도, 나이지리아에 있다. 상당수의 약탈적 출판인은 연구자한테 스팸 메일을 보내 논문 원고를 투고해달라고 간청하지만 필요한 논문 투고료에 관해서는 얘기하지 않는다. 나중에 논문이 채택되고 출판된 이후에, 저자들한테 요금 청구서가 날아온다. 대개 미화 1800달러 수준이다. 많은 경우에 과학자들은 논문 투고 과정에서 (공개접근 출판의 원칙과도 어긋나게) 자신의 저작권을 양도하라는 요청을 받고서 서명하기 때문에 논문을 철회하고서 다른 학술지에 보낼 엄두를 내지 못한다.”(<네이처>)


“일부 출판업자는 신참 교수나 대학원생을 먹잇감으로 삼아 논문 원고를 투고해달라는 스팸 메일을 보낸다. 진짜 학술출판 웹사이트에서 정보를 수집해, 맞춤형 스팸 메일을 보내는데 연구자들의 이전 연구성과를 칭찬해 관심을 끌면서 연구자들한테 새로운 논문 원고를 투고하라고 요청하곤 한다. 이런 엉터리 학술출판인들은 엄격한 동료심사를 시행한다고 거짓 주장을 하지만 저자 투고료가 손에 들어오자마자 논문을 출판해주는 게 관행이다. 일부는 동의도 받지 않은 채 학술지의 편집위원회에 과학자들의 이름을 올린다.”(<더 사이언티스트>)


그는 자신의 블로그에다 자신이 파악한 약탈적 공개접근 학술저널의 목록을 공개한 데 이어, 지난 8월에는 엉터리 온라인 학술지와 제대로 된 온라인 학술지를 구분하는 식별법을 마련해 전하면서, 이름을 처음 듣는 온라인 학술저널이라면 제대로 운영되는 학술저널인지 아닌지 잘 살펴야 한다고 권고했다. 그가 제시한 약탈적 학술지 식별법을 보면, 엉터리 온라인 학술지는 많은 논문 투고자를 끌어들이기 위해서 상당히 모호하고 넓은 연구 분야나 여러 주제들을 조합한 연구 분야들을 보여주는 저널 이름을 짓거나, 웹사이트에서 문법 오류가 있는 영어를 사용하거나 편집위원의 정보나 연락처 정보가 불확실하거나, 다른 곳에서 출판됐던 논문이나 표절 논문을 싣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엉터리 온라인 학술지의 사무소들이 많이 있는 지역 중 하나로 지목된 인도에서는 일간매체 <더 힌두>도 최근에 이런 약탈적인 온라인 학술출판의 실태와 수법, 그리고 엉터리 공개접근 학술지와 제대로 된 공개접근 학술지를 구분하는 방법  등을 자세히 보도했다. 



[참조] 공개접근 과학논문, 10년 새 10배 늘어


“대표적인 공개접근 저널인 <플로스 원>에 최근 실린 “1993~2009년 공개접근 저널 출판의 발전” 제목의 논문을 보면, 웰드와이드웹이 확산하기 시작한 1990년대 중반 이래 2009년까지 온라인에 공개된 과학 저널 출판의 수는 “매우 빠르게 성장”했으며, 지난해[2009년]만 따져 4769종의 과학 저널에서 19만1천여 편의 논문이 출판된 것으로 추정됐다. 평균 성장률로 보면, 2000년 이래 저널의 수는 해마다 18%씩 늘어났고, 논문의 수는 30%씩 늘어났다. 이 논문은 “이는 전반적인 저널 출판의 증가량인 3.5%에 대조될만 한 수치”라고 밝혔다.

 

이 논문에서는 동료심사(peer review)를 거치고서 구독료를 받지 않고 온라인에 공개되는 과학 논문들만을 조사 대상으로 삼았으며, 동료심사를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공개되는 물리학 중심의 논문 데이터베이스 ‘아카이브(arXiv)’ 같은 공개접근 출판 논문은 포함하지 않았다.


논문의 다른 주요 내용을 보면, 지난 10년 동안 공개접근 출판 논문의 수는 10배가량 급증한 것으로 조사됐다. 2000년에 1만9500 편이던 공개 논문의 수는 2009년에 19만1850 편에 달했다. 이 정도는 동료심사를 거쳐 출판된 2009년의 전체 과학 논문들 중에서 7.7%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또 공개 저널의 수는 2000년에 704종으로 추정되었으나 2009년에는 4769종으로 크게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사이언스온> 2011년 7월1일치 기사)


[취재 메모] 새로운 저널과 전통적 저널 사이에서


학문적인 실체가 모호하면서 논문 출판을 통해 이윤을 챙겨가는 이른바 '약탈적 학술출판' 행태가 심각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개인 연구자의 피해 사례도 문제이지만, 더 중요하게는 논문 심사 체계를 거치지 않은 연구논문들이 쉽게 출판되어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미국 대학에 있는 한국인 생명과학 교수는 최근 한겨레 <사이언스온>에 공개접근 출판의 흐름을 바라보는 자신의 견해를 담아 이메일을 보내왔다.


그는 이메일에서 “전통적인 학술출판사는 과학자의 연구 논문에 대해 대학과 개인한테서 구독료를 받아 큰 이윤을 얻어왔으며 이 때문에 일반 공중이 학술지를 읽으려면 아주 비싼 비용을 치러야 하기에 공개접근 학술운동은 기본적으로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생각한다"면서도 "그러나 공개접근 학술저널에서는 질이 떨어지는 논문이 양산되는 또 다른 문제가 생긴다”라고 말했다.


미국의 생명과학 분야 학회에서 내는 저명한 학술지의 편집인(에디터)으로도 활동하는 그는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공개접근 학술저널에 논문을 출판하면 많은 독자들이 논문의 질을 평가할 수 있어 장점이라고도 말하지만 이는 자칫 대중적 인기투표 식으로 논문 평가가 이뤄질 수도 있다”면서 ”'강남 스타일' 노래에 대해 누구나 자기 생각을 말할 수 있지만 세부 전공 주제의 논문에 대한 평가는 아무나 해선 안 된다”며 무엇보다 논문 심사 체제가 흔들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한 공개접근 저널을 통해 발표되는 수많은 논문을 충분히 평가하기도 쉽잖은 문제”라고 덧붙었다.


그는 “공개접근 학술저널들도 질의 차이가 너무 커서 어떤 공개 저널들은 높은 질을 유지하지만 모든 저널들이 그렇지는 않은 게 확실하다”며 “지금은 과도기이며 공개접근 저널의 이런 문제들이 정리될 때까지는 여전히 더 큰 존경과 관심을 받는 전통 저널들을 선호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은 제대로 검증 과정을 거친 논문을 출판할 수 있을 때에야 공개접근 학술저널도 비로서 지식의 공유와 소통이라는 장점을 제대로 발휘하고 현실 학계에서 널리 수용될 수 있을 것이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사실, 그 자체만으로 언제 어디에서나 순기능만 하는 미디어는 존재하기 않을 것이다. 일상의 소통과 정보 생활에서 격변을 일으킨 인터넷 미디어 시대에 우리는 이전에 없던 여러 편리와 효율을 누리고 있지만 반면에 여러 부작용도 겪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까 장점과 단점을 충분히 알면서 그 장점의 측면을 더 늘리고 단점의 측면을 더 줄이려는 노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단점을 잘 알아야 단점의 함점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 본격적으로 등장한 지 10년을 넘긴 공개접근 학술출판이 지식의 공유와 소통을 더욱 더 빛내려면, 손쉽게 출판을 할 수 있는 시대에 파생하는 문제들을 파악하고 줄이려는 노력이 이제 절실해지는 시점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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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철우 한겨레신문사 과학담당 기자, 사이언스온 운영
1990년 한겨레신문사에 입사해 편집부, 사회부, 문화부, 생활과학부 등을 거쳤으며 주로 과학담당 기자로 일했다. <과학의 수사학>, <과학의 언어>, <온도계의 철학> 등을 번역했으며, <갈릴레오의 두 우주체제에 관한 대화>를 썼다.
이메일 :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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