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만물 이론은 없었다” 호주머니 우주들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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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풍경
레너드 서스킨드 지음, 김낙우 옮김 | 사이언스북스


“…지금의 논쟁은 종교와 과학 사이가 아니라, 과학계의 대립하는 두 분파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다. 즉 한쪽은 자연 법칙들을 수학적인 관계식에 따라 결정되며 단순한 우연이 생명을 만들었다고 믿는다. 그리고 다른 한쪽은 물리 법칙들이 지적 생명체를 존재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요건을 충족시키는 모종의 방식으로 결정되었다고 믿는다. 격렬한 논란과 증오가 ‘인간 원리’라는 하나의 단어 주위에 뭉쳐 있다.”





디어 일독을 마쳤습니다. ‘끈이론’ 역사의 주요 인물인 이론물리학자 레너드 서스킨드 교수(Leonard Susskind, 미국 스탠퍼드대학)가 쓴 2005년 저서 <우주의 풍경(The Cosmic Landscape)>이 우리말로 최근 번역돼 틈틈이 조금씩 읽기 시작하다가 푹 빠져들어 끝까지 읽고 말았습니다. 500쪽이 훨씬 넘는 이 두꺼운 책을 (충분히 이해하기는 어려웠지만) 읽고나서 내 생각에는 무엇이 달라져 있을까 되새김질하며 이 글을 씁니다.



‘우주 표준모형이 우아한 이론인가?’ 공격


먼저 흥미를 돋우는 여러 비유와 에피소드를 잘 섞어 난해하기로 소문난 끈이론의 역사를 끝까지 읽을 수 있게 해준 지은이한테 감사를 드려야 하겠네요. 꾸벅. 일독을 마친 뒤 지금 생각해보면 제게 가장 큰 인상을 남겼던 것 중 하나는, 기존 입자물리학의 표준모형에 대한 서스킨드 선생의 맹렬한 공격이 아니었나 합니다.


입자물리 표준모형은 흔히 세상을 설명할 수 있는 ‘우아하고 아름답고 단순명쾌한’(elegant, beautiful, simple) 이론이라고 흔히 얘기돼 왔습니다. 실제로 많은 이론 물리학 연구자들의 열정은 여기에서 비롯하며 이런 열정의 동기 덕분에 많은 과학의 진보가 이뤄집니다. 그런데 서스킨드는 우리 우주를 이루는 기본 입자와 힘의 관계를 가장 잘 설명한다는 입자물리 표준모형이 우아하지도 아름답지도 않다고 말합니다. 그것도 한번 나오는 얘기가 아니고 이 책의 큰 출발점 중 한 축을 이루어 책 내내 자주 되풀이되는 얘기입니다. 그런 대목 중 하나를 골라 인용하면 이렇습니다.


“표준 모형은 아주 복잡하다. 30여 개의 독립적인 변수들을 가지고 있고, 비슷한 입자의 유형이 반복해서 나타나는 것을 설명할 수 없으며, 힘의 세기가 종류마다 아주 크게 다르다.”(536쪽)


사실, 입자물리학의 기초지식을 배우려면 페르미온과 보손의 입자 종류나 여섯 가지 쿼크의 이름을 따로 표로 분류해 외우고, 그것마다 다른 성질을 익혀야 하며, 중력 상수나 우주 상수, 광속 같은 여러 상수들에도 익숙해져야 합니다. 서스킨드 선생의 얘기를 듣다보니, 정말 입자물리학이라는 게 우아하고 아름답기보다는 그때그때 다른 암기 사항들을 많이 지니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이런 것들은 어떤 단일한 원리가 아니라 경험적으로 얻어지거나 이론을 뒷받침하기 위해 가정된 것들이라는 서스킨드의 지적에도 귀를 기울여봅니다. 지은이가 조목조목 거론하는 입자와 힘의 복잡함은 갑자기 더욱 더 복잡하게 느껴집니다.


책의 전반부에 이처럼 입자물리 표준모형에 대한 비판을 세밀하게 구성함으로써, 그는 책 중반 이후에 제시할 ‘메가버스(Megaverse)에 채워진 다양한 가능성의 우주 풍경들’이라는 표준모형과 아주 다른 우주론을 제시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해두고 있습니다. 표준모형의 우주론은 절대적인 게 아니며 상대적인 것임을 강조합니다. 그러면서 일반인이 몰랐던 여러 입자물리학 내부의 논쟁, 그리고 그것과 끈이론 사이의 논쟁들을 흥미롭게 펼쳐보여줍니다.



"우주는 왜 생명에 호의적이지?"...‘인간 원리’ 우주론


여러 논쟁들이 있었지만, 이 책에서 “모든 물리 문제 중의 문제”로 지목하는 것은 바로 아인슈타인이 일반 상대성이론을 제시하며 방정식에 넣었다가 나중에 철회했다는 ‘우주 상수’의 문제입니다.


“특별한 자연 상수(아인슈타인 우주 상수)가 어느 누구도 우연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게 미세하게 조정되어 있다는 것이다.…그것은 우주 만물에 작용하는 보편적 척력이자 일종의 반중력인데, 만약 그것이 놀라울 정도로 작지 않다면 순식간에 우주를 파괴해 버릴 것이다.…현대 물리학의 원리는 두 가지 토대에 기초하고 있다. 그것은 상대성 이론과 양자 역학이다. 이 두 원리에 기초해 우주를 연구했을 때 가장 일반적으로 나오는 결과는 매우 빨리 스스로 붕괴하는 우주이다. 하지만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우주 상수는 놀라울 정도로 미세하게 조정되어 있다. 우주 상수의 놀라운 미세 조정은 다른 어떤 운 좋은 ‘우연’ 또는 ‘행운’보다도 사람들로 하여금 우주가 설계의 결과라고 결론짓도록 한다.”(27~28쪽)


널리 알려진 얘기이지만, 이 책에서도 자세히 다루는, “거의 90년 동안 이론 물리학의 가장 큰 수수께끼 중 하나”였다는 우주 상수 문제의 역사는 이렇습니다. 우주를 관측하면 은하와 은하의 사이는 점점 더 벌어지고 더 멀리 떨어진 은하일수록 더 빠른 속도로 멀어지는 것으로 관측됩니다. 이는 1920년대에 허블이 처음 관측한 이래 무수히 다시 확인되고 또한 그 멀어지는 후퇴속도까지도 정밀하게 계산될 정도로 이제는 분명한 사실입니다. 우주는 수축하거나 정적인 상태가 아니라 팽창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관측 증거이겠지요. 고무풍선에 작은 점들을 찍은 뒤에 풍선을 불면 풍선이 팽창할수록 점과 점 사이가 점차 멀어지듯이, 우주 공간이 현재 팽창하고 있기 때문에 은하들 사이의 간격이 멀어지는 것으로 관측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주 물질의 중력을 생각하고 우주가 정적이라고 생각한다면, 우주는 팽창하는 게 아니라 중력의 작용 때문에 수축해야 맞는 얘기가 되겠지요. 하지만 우주는 팽창하고 있으므로, 그렇게 우주를 팽창하게 만드는 힘이 무엇인지는 오랜 동안 수수께끼였고, 그리하여 찾아낸 것이 바로 중력의 끌어당김을 이겨내어 우주를 계속 팽창하게 하는 척력인 암흑에너지(진공에너지)의 존재입니다. ‘암흑’이라는 말은 검다는 뜻이 아니라 정체가 아직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았다는 뜻인데, 지금 우주 팽창을 볼 때에 이 힘은 전체 우주 에너지의 70%가량을 차지하는 것으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바로 이 암흑에너지, 다른 말로 진공에너지가 반중력의 척력인 우주 상수를 표현하는 힘이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팽창의 힘을 의미하는 우주 상수, 즉 진공에너지 밀도의 값에는 신비한 측면이 있습니다. “큰 양수의 우주 상수 값을 가진 우주에서는 모든 것은 너무나 빨리 멀어지기 때문에 물질이 뭉쳐 은하, 별, 원자, 심지어 원자핵을 이룰 기회조차 없다. 큰 음수의 우주 상수 값을 가진 우주에서는 팽창하는 우주는 재빨리 수축해 생명에 대한 작은 희망마저 짓이긴다.”(124~125쪽) 진공에너지는 현재 우주 공간의 한 행성인 지구에 생명체가 존재하는 데 호의적인 값을 지니고 있는데, 그것은 0이 아니며 10-120보다 그리 크지 않을 정도로 미세하게 조정되어 있다고 합니다.


서스킨드를 비롯해 일군의 끈이론 학자들은, 우주는 생명이 사는 데 호의적이도록 우연과 우연들이 연속되면서 미세 조정되어 있는가라는 물음을 던지고 있습니다. “초자연적인 지성에 호소하지 않고서 생명의 탄생과 존속에 호의적인 물리 법칙과 우리 우주의 성질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27쪽). 이들은 이른바 ‘인간 원리(Anthropic Principle)’를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의 논쟁은 종교와 과학 사이가 아니라, 과학계의 대립하는 두 분파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다. 즉 한쪽은 자연 법칙들을 수학적인 관계식에 따라 결정되며 단순한 우연이 생명을 만들었다고 믿는다. 그리고 다른 한쪽은 물리 법칙들이 지적 생명체를 존재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요건을 충족시키는 모종의 방식으로 결정되었다고 믿는다. 격렬한 논란과 증오가 ‘인간 원리(Anthropic Principle)’라는 하나의 단어 주위에 뭉쳐 있다. 인간 원리는 우리가 바로 지금 여기에 우주를 관찰할 수 있도록 세계가 미세 조정되어 있다는 가설적 원리이다.”(21쪽)


그러니까, 이런 ‘인간 원리’로 우리 우주의 독특한 풍경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이 책의 핵심적인 주장인 것입니다. 당연히 인간 원리 주장은 우주를 ‘신의 설계 작품’으로 보는 종교인들의 주장에 이용되고 있기도 하지만, 이 책에서 서스킨드의 주된 관심은 과학의 문제이지 종교의 문제는 아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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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우주는 '메가우주'의 호주머니 우주들 중 하나


지금 우주가 우리 인간의 존재에 호의적인 우주라고 바라보는 시각은 당연히 종교인들의 지지를 받을 만한 주장입니다. 세심하고 정교한 신의 설계 작품이 바로 지금 우주라는 설명과 엇비슷하게 맞아떨어질 수 있으니까요. 그러니 과학계에서는 인간 원리가 과학을 포기한 것이며 반증가능하지도 않기 때문에 비과학이라는 비판을 받아야 했습니다. 서스킨드는 인간 원리가 종교적으로 해석되는 것을 몹시 경계하고 있습니다. 그가 논증의 전개에서 의지하는 바는 주로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현대 기하학(복소기하학)을 포함하는 끈이론이요, 다른 하나는 놀랍게도 물리학자와는 어울리지 않을법한 생물진화론입니다.


인간 원리의 개념이 끈이론의 오랜 역사에서 어떻게 생겨났는지 보여주는 그의 이야기는 독자들한테 길고도 난해한 여정입니다(서스킨드는 책에서 끈이론이 참신한 시도로 등장해 주목받았으나 이론적인 난파 직전까지 갔으며 다시 부활하는 부침의 역사를 겪었음을 꼼꼼하게 보여준다). 그 과정은 생략하고 제가 읽으면서 이해했던 주요 개념들, 그러니까 ‘인간 원리’나 ‘메가버스(또는 다중우주 Multiverse)’ 그리고 '풍경(landscape)' 같은 개념들을 정리하는 게 좋겠습니다. 그래야 그의 주장이 조금 더 정리될 것 같습니다.


인간 원리나 메가버스, 풍경은 모두 다 긴밀하게 서로 연결되어 있는 개념입니다. 우리 우주가 매우 섬세하게 조정된 진공에너지(우주상수)를 지니며, 수십 개의 특정한 상수들을 써야 하는 방정식으로 이해되고, 무엇보다도 그런 우주가 마치 인간과 생명의 존재를 위해서 정교하게 설계된 것처럼 보이는 것은, 바로 그런우주를 관찰하는 우리가 그 안에서 사는 지적 생명체 인간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인간 원리가 드러내주는 한 측면이며, 또한 그런 생명체가 생겨나고 진화하고 존재할 수 있게 하는 조건을 고려해서 우리 우주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또다른 측면일 수 있겠습니다.


00susskind » 레너드 서스킨드.

그런데, 끈이론에 바탕을 두어 계산해보면 우리 우주와 같은 상태는 무수히 많은 우주들 중에서 우연과 우연이 겹치면서 운 좋게 생겨난 결과이지, 유일한 우주에서 벌어진 우연들이 겹쳐 현재에 이르렀다는 결론에 이르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그렇게 보면 우리 우주는 절대 유일무이한 시공간과 물질과 구조가 아니라 여러 '호주머니 우주'들 중 하나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끈이론가들은 그런 호주머니 우주들이 가질 수 있는 가능한 상태의 수가 무려 10500개나 된다는 계산 결과를 제시합니다. 이는 우리 우주의 원자 수 1080에 비해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이나 엄청나게 많은 것인데, 사실 우리 우주와 다른 평행 우주 자체를 상상하기도 힘드니 이런 호주머니 우주들의 숫자는 더더욱 상상하기 어렵겠지요.


아무튼 요지는 현대 기하학과 물리학의 지식을 동원해 끈이론의 틀에서 생각해볼 수 있는 호주머니 우주의 가능한 상태는 엄청나다는 것이고, 우리 우주가 그 중의 하나로 독특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주는 이제 단 하나의 우주가 아니라 우주들이 됩니다. 작은 호주머니 우주들이 모여 있는 거대한 우주, 즉 메가버스인 것입니다. 호주머니 우주들마다 다른 풍경들이 모이고 또한 군락을 이루는 메가버스의 모습은 이 책에서 마치 다양한 군락을 이룬 생태계의 모습과도 흡사하게 제시되고 있습니다 (물론 서스킨드는 생물학적 비유를 물리학적 설명으로 오해하지는 말아달라는 조건을 달고 있다. '비유는 비유일뿐 오해하지 말자'고).


호주머니 우주들은 서로 볼 수 없습니다. 호주머니 우주의 가장자리에서 팽창하는 속도는 빛의 속도에 이르므로 그 너머의 정보는 호주머니 우주의 안쪽으로 전달될 수 없는 것이지요.  그 경계는 흔히 얘기되는 '사건의 지평선'입니다. 그러니 서로 정보를 주고받을 수 없는, 서로 인식할 수 없는 호주머니 우주들이 무수하게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고 다중우주, 평행우주, 또는 다세계우주를 지지하는 끈이론가들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호주머니 우주들은 서로 다른 상태를 지니고 있으므로 우리가 경험하는 광속, 중력가속도, 우주상수(진공에너지) 같은 상수 값들도 달라집니다. 호주머니 우주들은 또한 서로 다른 수준의 준안정적 상태에서 안정적 상태로, 즉 진공에너지가 0인 상태로 향하는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앞의 내용을 되풀이하면 서스킨드는 이런 수많은 호주머니 우주들 중에서 우리 우주가 우연하게도 생명이 살 수 있는 상태에 있게 되었다고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초자연의 존재나 신의 존재를 빌려오지 않고서, 우리 우주가 왜 이토록 특별한지를 설명할 수 있는 과학적 설명이라고 그는 말합니다.


"내가 반복해서 강조했던 대로, 우리의 호주머니 우주가 가지는 특별한 성질들을 초자연적인 힘을 빌리지 않고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채워진 풍경뿐이다."(514쪽)



경쟁과 자연선택이 있는 다윈주의 우주론


끈이론의 물리학자가 쓴 책에서 다윈의 이야기가 이토록 자주 등장한다는 것은 분명 흥미로운 일입니다. 그는 번식경쟁과 자연선택이야말로 탁월한 이론이라고 평가하면서, 메가버스의 구조와 형성을 설명하는 데 여러 비유로서 적극 인용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채워진 풍경은 다윈의 진화론이 생명과학에서 하는 것과 같은 역할을 물리학과 우주론에서 한다. 무작위적인 복제의 오류와 자연 선택의 결합이, 보통의 물질에서 눈과 같은 미세하게 조정된 기관이 생기는 과정을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자연주의적 방법이다. 우리가 아는 한 끈 이론이 예측하는 풍부한 다양성과 채워진 풍경의 결합만이 우리 자신의 존재를 허용하는 우리 우주의 극히 특별한 성질들을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506쪽)

"나는 역사가는 아니지만 감히 의견을 하나 제시하려고 한다. 현대 우주론은 찰스 로버트 다윈(Charles Robert Darwin, 1809~1882년)과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Alfred Russel Wallace, 1823~1913년)에게서 시작되었다. 그들 이전의 사람들과 달리, 다윈과 월러스는 초자연적인 행위자를 완전히 배제한 상태에서 우리의 존재를 설명해 냈다. 다윈의 진화론은 두 가지 자연 법칙에 기초하고 있다. 첫 번째는 정보의 복사는 절대로 완벽할 수 없다는 것이다. ... 다윈의 직관적인 이론을 뒷받침하는 두 번째 기둥은 경쟁의 원리이다. 승자가 번식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다윈과 월리스가 보여 준 모범은 생명과학뿐만 아니라 우주론에도 기여했다. 우주의 탄생과 진화를 지배하는 법칙은 돌멩이가 떨이즌 것과 화학, 핵물리학, 그리고 입자 물리학의 법칙과 같을 것이다. 그들은 복잡하고 지적이기까지 한 생명체가 우연과 경쟁과 자연적인 원인으로부터 생겨날 수 있음을 보임으로써 초자연적인 존재로부터 우리를 해방시켰다. 우주론 학자들도 같은 것을 원한다. 우주론의 기초는 전 우주를 통해 동일하고 우리 자신의 존재와는 특별한 관계가 없는, 비인격적인 법칙이어야 한다."(38~39쪽)



논쟁과 논쟁의 역사…끈이론은 현재진행형


끈이론을 비판하는 저명한 이론물리학자들의 책들도 있다. 그러니 저명한 끈이론 학자가 입자물리학의 표준모형을비판하면서 새로운 우주론의 가능성을 제시했다고 해서, 당장에 그런 이야기에 휩쓸려 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현대 우주론이 너무 수학적이고 이론적인 쪽으로 흘러가는 경향을 꼬집으면서, '물리적 우주론'이라는 현대 우주론의 전통이 흐트러지는 게 아니냐는 외국의 어느 우주론 학자가 쓴 글을 슬쩍 읽은 일도 다시 떠오르는군요.


사실 서스킨드 교수가 설명하고 있듯이 끈이론 자체가 부침의 역사를 겪어왔습니다. 1970년대에 등장해 입자들의 상태가 지니는 수학적인 성질을 설명해낼 가능성을 보여줌으로써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한때 '만물의 이론'을 향해 힘찬 전진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까지 여러 개의 끈이론들이 등장하고 또한 우리가 지각하는 시공간 4차원과 달리 무려 10개의 차원을 전제해야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이라는 비판을 받으면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1990년대 중반 이후에 "너무 많은 끈 이론들"이라는 문제를 해결하는 여러 시도들이 이어졌습니다.  그러다가 2000년대 이후에 해법 중 하나로 제시된 것이 바로 이 책의 뼈대가 된 "우주의 풍경"이라는 서스킨드의 해석이었습니다.


그렇게 보면, 끈이론은 계속 진행 중인 것입니다. 입자물리 표준모형의 한계를 극복하거나 거대 가속기 실험에서 표준모형의 증거를 확인하려는 다른 입자물리학자들의 노력도 역시 진행 중입니다.  그러므로 이 책이 우주론 학자들이 우리 우주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그리고 우주론 학계에서 제기되는 논쟁과 관심사들이 어떤 것인지 이해하는 데에도 많은 도움을주며 우리에게 좀 더 익숙한 표준모형 우주론의 틀에서는 떠올릴 수 없었던 여러 가지 과학적인 상상들을 제시하고 있어 흥미롭기도 하지만, '현대 우주론의 풍경'을 넓게 보려면 이 책의 관점에 빠져들기보다는 여러 다른 관점도 두루 살피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서스킨드 교수의 끈이론이 제시하는 '메가버스에 채워진 호주머니 우주들의 풍경'이라는 우주론의 설명이 앞으로 계속될 우주론 논쟁에서 어떻게 평가되고 어떤 자리를 잡아나갈지 흥미롭게 지켜봐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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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철우 한겨레신문사 과학담당 기자, 사이언스온 운영
1990년 한겨레신문사에 입사해 편집부, 사회부, 문화부, 생활과학부 등을 거쳤으며 주로 과학담당 기자로 일했다. <과학의 수사학>, <과학의 언어>, <온도계의 철학> 등을 번역했으며, <갈릴레오의 두 우주체제에 관한 대화>를 썼다.
이메일 :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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