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 '영재교육 전성시대'를 맞는 몇가지 필요조건들

[퍼온글]

 

 

 

영재교육 국제화 앞당길 '국제생물올림피아드'를 준비하며

이길재 한국교원대 생물학 교수, 제3대학(자연과학)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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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e » ■ 이 글은 한국과학창의재단이 내는 월간 <과학 창의> 3월호에 실린 이길재 교수의 글입니다. 글의 게재를 허락해주신 기관과 저자한테 감사드립니다. -사이언스 온

전 세계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생물학 전 분야에 걸친 이론 및 실험 능력을 평가하는 경시대회인 제21회 국제생물올림피아드 대회(The 21st International Biology Olympiad: IBO 2010)가 세계 60개국을 대표하는 생물학 영재가 참가한 가운데 경상남도 창원시에 소재한 국립창원대학교에서 2010년 7월 11일부터 18일까지 개최된다. 우리나라는 지난 1998년 제9회 대회(독일)부터 국제생물올림피아드 대회에 참가해 2000년 제11회 대회(터키) 등 4회에 걸쳐 1위를 차지함으로써 대한민국의 생물학 영재의 저력을 발휘하여 국가 위상을 제고하는 수준 높은 대회이다.   그동안 우리나라 학생들은 국제생물올림피아드 뿐만 아니라 수학, 물리, 화학올림피아드 등에도 참가하여 매년 우수한 성적을 보임으로써 우리 학생들의 과학 실력을 국제적으로 널리 인정받고 있다.

 

이렇게 국제과학올림피아드에서 거둔 우수한 성적이 바로 우리나라 학생들과 우리나라 자체의 과학기술 실력을 반영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과학교육, 과학영재교육, 더 나아가서는 우리나라의 영재교육은 매우 잘 되고 있다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정말 그렇다고 자신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인가?

 

우리나라는 지금 영재교육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국가적으로 2000년 영재교육진흥법의 제정 이후 다양한 영재교육의 기회를 많은 학생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특목고나 대학 입시와 연관된 사교육이 영재교육이라는 이름하에 초등학교 학생부터 고등학생에 이르기까지 지나친 과열 경쟁 속에 몰아넣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과연 현재 시행되고 있는 이런 모든 영재교육이 영재를 위한 적합한 교육인지를 한번 차분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차별화된 영재교육이 필요하다

 

영재를 어떻게 정의하는지에 따라 영재교육을 받을 필요가 있는 대상이 정해질 것이다. 일반적으로 잠재력이 있는 학생을 대상으로 한다면 그 범위는 넓어야 하고,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는 학생을 대상으로 한다면 소수의 학생들에게만  영재교육의 기회를 주게 된다. 우리나라의 영재교육은 과학고등학교 학생 등 소수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잠재력이 있는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최대 1%의 초중등학생들이 영재교육의 기회를 갖을 수 있도록 매년 그 대상을 넓혀가고 있다. 그래야 많은 학생들이 영재교육의 기회를 갖게 되고, 그들 중에서 정말 영재성을 갖고 있는 학생들이 발굴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특목고나 대학입시와 연관되어 모두 동일한 형태의 속진교육을 많은 학생들에게 영재교육이라는 이름하에 실시하는 것은 많은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이제부터는 영재교육도 창의적이고 잠재력이 있는 학생을 선발하여 차별화된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영재도 개인별로 능력의 차이가 크고, 관심분야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인지적 특성도 다를 수 있다. 그러므로 획일적인 형태의 영재교육보다 개인의 특성에 맞는 차별화된 교육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형태와 수준의 영재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영재교육에서는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가?

 

가끔 언론을 통해 우리나라의 고등학생들이 미국의 하버드와 MIT 같은 아이비리그의 우수한 대학에 입학하였다는 소식을 접한다. 그러나 한편 이런 우수한 대학에 진학한 우리나라 학생들이 미국 학생들과 달리 수업을 따라가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더욱이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한 우리나라 학생들 가운데 일부는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창의적인 능력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듣곤 한다. 왜 이런 평가를 받는 것일까?

 

우리나라의 교육은 문제의 해결 과정보다 해결 결과를 중요하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학생들은 문제 해결 과정보다 정확한 해결 결과를 찾아내는 데 치중하게 된다. 교사 역시 해결 과정에 대한 평가보다는 정확한 결과의 제시만을 평가하려고 한다. 물론 지필평가를 통한 입시 위주의 교육이 이런 경향의 주 원인이다.

 

그렇다면 과학영재교육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가? 이에 대한 답은 과학영재가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분석이 선행되어야 한다. 과학영재는 일반적으로 필요한 지식을 빨리 이해하고, 암기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그러므로 이들에게 지식에 대한 암기 위주의 속진 교육을 시키면 곧 싫증을 느껴 공부에 대한 흥미를 잃게 될 것이다. 이들에게 필요한 교육은 자신의 지적 한계에 도전할 수 있는 인지갈등 상황 속에서 논리적이며 창의적인 해결과정을 스스로 찾아가는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기본 원리를 중심으로 교과내용을 구성하고, 고급의 사고능력을 거쳐 창의적인 결과물을 산출하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 결국 전문가인 과학자가 과학을 하는 과정에서 겪는 인지과정을 경험하게 해야 한다.

 

과학자의 인지과정을 경험하게 하는 교육으로서 가장 효율적인 방법 가운데 하나는 과학사를 수업에 이용하는 것이다. 하나의 중요한 과학 개념이 정립되기 위해서는 역사적으로 많은 과학자들이 각자의 원리를 세워 주장하고, 다시 다른 과학자들에 의해 새로운 발견과 실험에 의해 그 원리가 재정립되는 여러 단계를 거치게 된다. 이렇게 하나의 과학 개념이 정립되어 가는 과정에서 각각의 과학자가 경험한 인지과정을 수업에 도입함으로써 학생들은 그 과학자들이 겪은 인지갈등을 포함한 다양한 인지과정을 경험하게 된다. 이런 교육을 통해 과학영재들의 창의적 문제해결력도 향상될 수 있는 것이다.  

 

 

영재교육 전문 교사가 필요하다

 

비전문 교사에 의한 영재교육은 운전면허 없이 자동차를 모는 것과 같은 우를 범할 수 있다. 비전문 교사는 영재교육을 지식위주의 속진 교육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다. 아마 입시와 관련시켜 보면 오히려 이런 교사가 적합한 교사로 보일 수 도 있다. 더욱이 과학교사가 곧 과학영재를 가르치는 전문성을 갖고 있는 교사도 아니다.

 

그렇다고 과학영재를 가르치는 교사가 모두 어린 시절 과학영재라고 불릴만큼 영재성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과학영재를 가르치는 교사가 과학의 어느  한 분야의 과학자이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과학영재를 잘 가르칠 수 있는 교사란 누구인가?

 

과학영재를 잘 가르치는 교사는 학생들의 학습을 촉진하고, 조언할 수 있는 교사이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과학영재들의 특성을 잘 이해하고, 그들이 필요로 하는 과학 내용을 잘 가르칠 능력이 있어야 한다. 과학영재들의 특성을 잘 이해하려면 영재의 일반적인 특성과 영재마다 다른 특이성을 잘 이해해야 한다.

 

과학영재를 가르치는 교사 자신이 교육 대상인 영재보다 항상 더 창의적일 수는 없다. 그러나 교사는 영재들이 창의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교육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이 가르치는 과학의 교과 내용에 대한 이해가 충분해야 하고, 가르치는 과학개념과 관련된 과학자들의 사고과정에 대한 이해 역시 충분해야 한다. 그래야 학생들에게 각각의 과학개념과 관련된 과학자들의 인지갈등과 그 해결과정에 대한 설명이 가능하고, 학생들로 하여금 그 과정을 경험하게 해 줄 수 있다.

 

이런 능력을 갖춘 영재교육 전문교사가 되기 위해서는 적어도 자신이 가르치는 과학의 한 분야에서 스스로 자신의 연구를 수행하고, 과학적 탐험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과학영재를 가르치는 전문성을 갖춘 교사라면, 또는 앞으로 그런 교사가 되려면 교사자신이 과학의 내용과 과학을 하는 과정과 관련된 환경에 몰입해본 경험이 있어야 한다. 이런 활동은 교사들로 하여금 자신의 교과목에 대한 열정과 전문성을 갖게 만들고, 영재학생들이 자신의 지적 한계에 도전할 수 있는 수업을 설계하고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해준다.

 

 

영재교육을 위한 창의적 교육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매년 노벨상이 발표되는 시기가 되면 모든 언론에서 각 분야의 예상되는 수상자들을 소개하곤 한다. 그러나 수상자 발표가 끝나고 나면 우리나라 과학자가 노벨상을 받지 못한 이유가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가 부족하고, 입시위주의 교육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모두 올바른 지적이다. 그렇다면 다른 문제는 없는 것인가?

 

머지않아 우리나라 과학자가 노벨상을 받을 것이다. 노벨상을 받고 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인가? 그러나 노벨상 수상자가 나온다 하더라도 당장 우리나라의 교육, 더 나아가서는 영재교육의 환경이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창의적인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올바른 영재교육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을 바꾸어야 하는가?

 

올바른 영재교육이 되기 위해서는 획일적인 영재교육 환경이 아니라 창의적 영재교육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우선 다양한 학생들이 각자 자신의 특성에 맞는 차별화된 영재교육을 받을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어느 한 종류의 능력만으로 영재로 선발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능력에 따라 각각 선발되고, 그에 맞는 차별화된 영재교육이 실시되어야 한다.  

 

영재를 위한 창의적 교육환경을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야 할 사람은 누구보다도 전문성을 갖춘 교사이다. 영재들이 주도적으로 문제를 탐구하고 해결해가는 과정을 경험함으로써 창의적인 사고와 과학의 문제해결 능력을 함양할 수 있도록 교육할 수 있는 전문성을 갖춘 교사가 필요하다. 그런 교사라야 학생들의 창의적인 사고와 자기주도적 문제해결 과정을 방해하는 요인을 제거하고, 실패를 두려워 하지 않는 도전 정신을 키워주는 창의적 교육 환경을 조성할 수 있을 것이다.

 

영재교육을 위한 창의적 교육환경의 조성은 전문성을 갖춘 교사만으로 가능한 것은 아니다. 영재교육의 중요한 주체들인 학부모, 학교, 사회, 국가 모두가 영재교육을 위한 창의적 교육환경을 만드는 데 협력해야 한다.

 

 

창의적 교육환경으로서 “IBO 2010"

 

22제생물올림피아드는 생명과학 분야에서 과학영재들의 창의성을 경쟁해보는 가장 좋은 계기가 되고 있다. 금년 7월 국립창원대학에서 개최되는 제21회 국제생물올림피아드는 참가하는 학생들만의 경쟁이 아니다. 매년 이 대회를 개최하는 나라의 생명과학 분야의 과학영재뿐만아니라, 대회를 준비하는 생명과학분야의 과학자들과 그 대회를 지원하고 있는 국가와 대학, 산업체들의 실력도 함께 평가된다고 볼 수 있다.

 

우선 이 대회의 성공여부는 무엇보다도 이론과 실험 경시 문항의 수준에 달려 있다. 아무리 개막식이나 폐회식 등이 화려하고, 성대해도 학생들에게 주어지는 경시 문항 수준이 떨어지면 그 대회의 질은 평가절하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재들의 창의적 문제해결력을 평가할 수 있는 우수한 경시문항의 출제 능력은 바로 개최국의 영재교육 수준을 어느 정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참가하는 학생들뿐만아니라 함께 오는 60여개국의 과학자들은 우리나라의 과학교육, 영재교육, 과학기술 수준 등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다. 그러므로 IBO 2010 대회를 준비하고 있는 조직위원회는 교과부와 창의재단의 지원을 받아 우리나라의 현재와 과거의 우수한 과학기술 실력과 한국문화의 우수성을 60여개국의 과학영재들과 과학자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다양한 프론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한편 IBO 2010 대회를 기회로 국내에서의 생물학에 대한 청소년의 동기 유발과 과학적 열정을 북돋우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이길재 한국교원대 교수생물학 / 제3대학(자연과학) 학장 LeeGJ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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