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교해진 유전자가위…‘염기’ 하나만 바꾼다

※ 이 글은 한겨레 11월6치 '미래&과학' 섹션 지면에 실렸습니다. 지면 편집 과정에서 분량을 줄이기 이전 원고를 사이언스온에 올립니다. 편집 과정에서 달라진 부분이 있습니다.



정교해진 유전자가위

염기 하나만 바꿔치기


[미래&과학]

주목받는 ‘염기편집’ 원리와 현수준

미 연구진, 새 유전자교정 도구 개발
DNA 가닥 절단 대신 특정 염기 교체
효소 이용해 점을 찍듯 표적만 공략
유전질환 치료 범위 대폭 확대 기대

6가지 변이 유형 중 2가지만 가능
표적 이탈 가능성 등 검증 거쳐야
임상시험 단계까진 수년 걸릴 듯



baseediting.jpg » 그림 제작/ 한겨레


람 세포 하나의 디엔에이(DNA)는 길게 한 줄로 늘이면 2m나 된다지만, 그 30억 염기쌍은 네 가지 염기의 조합만으로도 놀라울 정도로 다양한 유전정보를 구성한다. 4종 염기는 짝을 지어 결합하는 게 모든 자연 생명의 법칙이다. 아데닌(A)은 티미(T)과, 시토신(C)은 구아닌(G)과만 결합한다.


그런데 수백, 수천 개 염기쌍 배열(염기서열)로 이뤄지는 한 유전자의 염기서열에 돌연변이가 끼어들기도 하는데, 중요한 지점에선 단 하나의 염기 돌연변이가 해당 유전자의 기능을 바꿔 유전질환을 일으킬 수도 있다. 시토신(C)이 있어야 할 중요 지점에 아데닌(A)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면, 이런 단일 염기 돌연변이(‘점 돌연변이’)가 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처럼 질환을 일으키는 ‘점 돌연변이’의 염기 하나만을 교정할 수 있다면? 점 돌연변이 유전질환을 치료하는 데 유용할 수 있는 ‘염기편집’ 기술의 가능성을 넓혀주는 새로운 연구결과가 잇따라 나와 큰 관심을 끌고 있다.


데이비드 류(David Liu) 미국 하버드대학 교수 연구진은 지난해 DNA에서 C을 T으로 바꾸는 점 돌연변이 교정 기법을 처음 발표한 데 이어 최근 <네이처>에 A을 G으로 바꾸는 기법을 새롭게 선뵀다. 펑 장(Feng Zhang) 매사추세츠공대 교수 연구진은 리보핵산(RNA)에서 A을 G으로 바꾸는 기법을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염기편집 기법들은 미래의 안전하고 유용한 유전자 치료술로 발전할 수 있을까? 연구자들은 가능성이 넓어졌으나 현재로선 여전히 한계를 지녀 임상적용까지 가기에는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다고 말한다.


DNA 절단 없이 염기 하나만 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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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기편집 또는 염기교정 기술이 주목받는 이유는 뭘까? 염기편집을 연구하고 있는 김대식 서울대 박사후연구원(화학부)은 “기존 유전자가위 분자는 표적 지점에서 디엔에이 두 가닥을 절단해 해당 유전자의 기능을 없애거나 다른 유전정보를 끼워넣어 형질을 바꾸는 방식이기에 점 돌연변이의 유전질환의 치료에는 정확도가 떨어졌다”면서 “절단 없이, 염기 하나를 교체한다는 점에서 염기 교정 기술은 점 돌연변이 유전질환 치료에 효과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류 교수 연구진은 논문에서 점 돌연변이에 의한 유전질환은 3만여 종에 달하며 지난해 개발된 ‘C→T’ 염기 변환, 이번에 개발된 ‘A→G’ 염기 변환 기술을 적용할 수 있는 유전질환은 60%가량에 달한다고 밝혔다. 아직은 여러 변동을 거치며 나아가야 할 미래 일이지만 일단은 DNA 염기편집 기술이 다룰 수 있는 유전질환의 범위를 매우 넓혔다는 것이다.


유전자가위 분야에서 선도적인 펑 장 교수 연구진은 비슷하게 유전자가위 기법을 변형해, DNA를 직접 교정하지 않고서 DNA 정보와 단백질 생성 과정 사이에 존재하는 RNA에서 염기를 바꿔치기 기법을 개발했다. DNA를 직접 교정할 때 DNA에 다른 부작용의 흔적을 남길 수도 있다는 위험성을 생각한다면, RNA 염기편집은 좀 더 안전한 기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나 이 역시 아직은 초기 연구단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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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s13_main_image_0.jpg » 흔히 유전체 디엔에이는 생명 정보를 담은 책에 비유되곤 한다. RNA와 DNA에서 특정 염기 하나만을 바꿔 쓰는 새로운 염기편집 기법들이 최근 잇따라 개발됐다. 염기편집 기법이 RNA와 DNA에서 염기 낱글자 하나를 교정할 수 있음을 표현한 그림들. 매사추세츠공대와 하버드대학의 브로드연구소 제공  


DNA 복구 시스템 속여 염기 바꿔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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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원리로 이런 염기편집이 가능해진 걸까? 류 교수는 지난 9월 말 서울에서 열린 국제학술회의에 참석해 기자간담회에서 연구과정을 얘기하면서 “결국 중요한 것은 세포를 속이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돌연변이 염기를 변형할 때 세포가 이것을 ‘손상’이라 여기면 변환된 걸 없애고 디엔에이를 복구해버릴 테니까요. 그래서 세포가 자연적인 변화로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염기 변환 과정을 좇아가보자. A-T 염기쌍을 G-C 염기쌍으로 바꿔야 하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A 염기분자의 화학구조에서 ‘아미노기’라는 성분을 빼면 G과 유사한 이노신(I)이 된다. 이런 작용을 일으키는 분자(효소)가 붙은 염기편집 분자가 세포핵에 들어서면, 표적 지점에 있는 A에서 아미노기를 없애 그것을 이노신(G와 거의 같다)으로 변형한다.


이때에 염기편집 복합체에 있는 다른 분자가 디엔에이 한 가닥을 살짝 자른다. 자, 이제는 세포가 손상된 디엔에이를 스스로 복구하는 시스템을 가동하는 차례다. 세포는 잘리지 않은 가닥에 있는 이노신(구아닌)을 기준으로 삼아 디엔에이 복구에 나선다. 새로 들어선 이노신에 맞추어 상대짝인 T를 C로 변환한다. 이로써 애초의 A-T 염기쌍은 G-C 염기쌍으로 바뀐다. 절반은 염기편집 분자가 한 일이고, 절반은 세포의 디엔에이 자동복구 시스템이 한 일이다.


류 교수는 지난해엔 점 돌연변이 C-G 염기쌍을 T-A 염기쌍으로 교정하는 기법을 처음 선봬 주목을 받았는데, 이번 연구에선 훨씬 더 어려운 작업인 ‘A-T 염기쌍을 G-C 염기쌍으로 바꾸는’ 효소와 기법을 개발해, 염기편집의 영역을 넓혔다는 평을 받고 있다.


유전자치료술까진 넘어야 산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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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기편집을 두고 ‘유전자가위 2.0’ 또는 ‘제4세대 유전자가위’라고도 부르지만 연구자들은 이에 대체로 동의하지 않는다. 장단점이 다른 별개 기법이라는 것이다. 김대식 박사후연구원은 “유전자가위는 특정 유전자 기능을 중단하거나 일정 크기 염기서열을 끼어넣을 수 있는데 염기교정은 염기 하나만을 바꾸기 때문에 서로 장단점이 다르다”면서 “각자 발전의 길을 걸을 것”이라고 말했다.


염기편집의 미래 쓰임새로 주목받는 유전자치료술과 관련해서는 이제 첫발을 뗀 수준이며 가야 할 길이 멀다는 반응이 많은 편이다. 김진수 서울대 교수(유전체교정연구단장)은 “염기교정 기법은 의미가 큰 성과이지만 현재로선 한계도 명확하다”고 말했다. 정상염기 A와 돌연변이 A가 섞여 있거나 인접해 있는 경우(‘AAA’처럼), 돌연변이 염기 A만을 교정하기는 쉽지 않다.


또한 점 돌연변이 염기쌍의 유형은 모두 6가지인데, 현재로선 2가지의 교정기법만 제시된 상태다. 나머지 4개의 경우엔 염기를 변환하는 분자(효소)의 단서를 자연에서 찾기 어렵기 때문에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어려운 난제가 될 것으로 여겨진다.


더 중대한 문제로, 염기편집 분자가 표적 지점 이외의 다른 염기까지 건드리는 이른바 ‘표적 이탈 효과’를 얼마나 일으키는지도 새로운 염기편집 기법에서는 아직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상태다. 표적이탈 부작용이 있다면, 돌연변이 염기는 교정되어도 다른 곳에 또다른 변이를 만들 수 있기에, 현재로선 임상적용 가능성은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이와 더불어 염기편집 분자를 세포핵 안으로 쉽게 전달하는 기법도 개발돼야 한다.


펑 장과 류 교수는 염기편집이 임상시험 단계에 들어가는 데엔 몇 년 걸릴 것이며 이런 치료술이 기존 유전자치료술에 비해 더 나은지가 분명해지기까지는  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고, <사이언스> 뉴스는 보도했다. 리우 교수는 “염기편집이 인간 유전자 치료를 시행하는 데 더 나은 방법이 되리라고 지금 결론을 내리는 것은 과학의 측면에서 단기적으로나 장기적으로나 부정확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형범 연세대 의대 교수는 “모든 유전질환의 유전자 치료는 지금 기술로 어려울 듯하다”면서 “일부 유전질환 치료는 가까운 미래에 가능할 수도 있고 이런 연구를 주축으로 다른 유전질환으로 확대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후속 연구의 흐름과 관련해, 김진수 교수는 “향후 수년 동안 염기교정 기법을 동물, 식물, 인간 줄기세포, 체세포, 심지어 인간배아에 활용하는 연구결과들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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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철우 한겨레신문사 과학담당 기자, 사이언스온 운영
1990년 한겨레신문사에 입사해 편집부, 사회부, 문화부, 생활과학부 등을 거쳤으며 주로 과학담당 기자로 일했다. <과학의 수사학>, <과학의 언어>, <온도계의 철학> 등을 번역했으며, <갈릴레오의 두 우주체제에 관한 대화>를 썼다.
이메일 :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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