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의 "이공학도, 우리들이 사는 세상"

숱한 과제에 시달리고 퀴즈에 쫓기고 실험실에서 죽치는 생활엔 힘겨움과 고민도 숨어 있지만 이공계의 젊음은 여전히 팔팔하고 꿈도 많다. 다양한 갈래의 이공학도들이 그 희노애락의 이야기를 전한다.

실험실의 “생활”, 실험실의 “성공”에 관해

조범식의 ‘후배에게 들려주고픈 실험실 이야기’

  “이 글을 통해 학부생연구원으로 살고 있는 나의 경험을 후배들에게 이야기해주고 싶고, 그래서 후배 아닌 자연과학 학부생들이 이 글을 통해 실험실을 선택하거나 진로에 대해 고민할 때 도움을 얻을 수 있었으면 한다. 앞으로 학부생의 관점에서 바라본, 다른 실험실 대학원생들의 고충, 연애, 진로, 취미활동, 군 입대 등등 술자리에서 술 한 잔 마셔야 들을 수 있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3] 대학원 실험실 생활, 무엇이 달라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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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생들에게 물어봤다. “석사나 박사로 실험실에 들어가서 학부생 때 생각했던 실험실과 다른 부분이 있었다면 어떤 점일까요?” 과연 대학원생으로 산다는 것의 이상과 현실은 어떻게 다를까? 대학원생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 마음가짐이 필요할까? 대학원 입학을 코앞에 두고 있으니 점점 대학원의 디테일한 현실에 대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대학원에 들어가면 지금과 어떻게 달라질까?


사실, ‘대학원생이 되고 나니 우리 교수님이 달라졌어요’ 라는 이야기를 설문을 하기 전부터 많이 들어왔다. 학부 시절에 강의 능력도 좋으시고 학생들에게 젠틀한 모습만 비춰주시던 교수님이 대학원에 들어가니, 내가 알던 교수님의 모습이 사라지고 완전한 연구자 또는 내가 하는 일의 총책임자 같은 교수님의 모습에 당황했다는 이야기를 친구들과 선배들한테서 심심찮게 술자리에서 듣는다.


또 다른 점을 꼽자면 ‘내가 학교에 있는 건지 직장에 있는 건지’ 그 경계가 애매모호하다는 것이다. 대학생이 되고 나서 나를 구속하는 중·고등학교가 아닌 자유가 흘러 넘치는 대학교에서 4년을 지냈는데, 실험실에 속하게 되고 시간에 맞춰 출퇴근을 하며, ‘내가 행정실 직원인지 돈 계산은 왜 이리 많은 거고 업무 형식은 왜 이리 복잡한지 모르겠다’라는 푸념을 종종 듣는다. 추가적으로는 군대와 같은 상하관계가 있는 실험실, 안에도 파가 나뉘어 있는 실험실, 개인주의가 강한 실험실 등등 인간관계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들이 너무 많으니까 내가 원한 실험실은 이게 아니었는데 하는 속상함을 술자리에서 이야기하곤 한다.


래서 그런지 작년 말쯤에 ‘대학원생 권리장전’에 관한 내용이 대두되었다. 작년 말은 교수 성폭력 사태에 힘입어 이런 문제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 계기가 된 것 같은데, 대학원생으로 어디까지 교수님한테 요구받아야 하는 것이고 사람 관계는 어떻게 하는 것이 최선인 것일까? 대학원에 진학하고자 하는 학부생의 마음속에는 걱정이 앞선다. 물론 교수님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대학원생은 교수님의 따듯한 한 마디가 듣고 싶은데 그 것을 들을 수 없으니 이런 푸념이 나오는 것이 아닐까?


다행히(?) 대학원에 먼저 들어간 친구들에게 물어봤던 처음의 질문에 대한 답변 중에는 긍정적인 이야기를 해준 친구들도 있었다. “고등학생 때는 단순히 ‘실험을 하는 곳’이라는 추상적인 모습을 생각했다면, 대학에서 느꼈던 실험실의 모습은 의외로 인간적인 곳이었습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회식을 하고, 실험을 하지 않을 때에는 영화나 연예계 소식에 대해 서로 이야기 하고, 오늘은 어떤 종류의 밥을 먹을지 서로 고민하고, 집에 일찍 들어가기 위해 일정을 조정하기도 하는 등 일상의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이렇게 답변해준 친구의 말을 듣고 있으니 어떻게 보면 휴머니즘이 가장 넘쳐나는 곳이 바로 실험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실험실의 내부로 들어가 보자.



핑크빛 로맨스 꿈꿔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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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실을 보면 우리 학교 기준으로 한 실험실에 6~10명의 대학원생들이 있다. 나이도 거의 비슷하고 서로 관심사도 비슷하고 거기에 하고 있는 일까지 비슷하니 서로 의사소통이 참 많이 일어나는 곳이 실험실인 것 같다.


“밥 뭐 먹지?”, “놀러가고 싶다”가 아마 내가 있는 실험실에서는 가장 많이 나오는 대화인 것 같다. 한 번은 실험실에서 이렇게 지내는 모습이 얼마 전 텔레비전에서 방영했었던 <응답하라 1994>에 나오는 신촌 하숙집의 모습 같다는 이야기가 실험실에서 나오기도 했다. 그만큼 서로 감정적으로 교류를 많이 하는 곳이 실험실인 것 같다.

00_1994.jpg » 실험실에서 지내는 모습은 드라마 <응답하라 1994>의 신촌 하숙집 모습과 비슷하다는 느낌도 든다. 그만큼 서로 감정적으로 교류를 많이 하는 곳이 실험실인 것 같다. 출처/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4>

렇게 6년을 보내면 아마 실험실 사람들의 볼꼴 못 볼꼴 다 보고 갈 것 같기도 하다. 우리끼리의 의사소통이 존재하긴 하지만 사실 교수님과의 의사소통이 많은 곳도 역시 실험실이다. 실험실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내가 속한 실험실의 경우에는, 아침에 교수님이 실험실을 한 번 들르시고서 개인 연구실에서 각종 일 처리와 연구 관련 일을 하시고, 가끔 실험실에 있는 우리를 불러 실험에 대한 토론과 앞으로 해야 하는 실험의 방향을 제시해 주신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저녁 먹을 시간이 다 되어 있고 교수님이 퇴근하고 나면 남은 실험을 마무리 하고 집에 가니 얼른 씻고 자야지 하는 마음이 많이 든다. 사실 말이 집이지 자취를 하는 필자인 내게 자취방은 ‘잠자는 방’이라고 하는 것이 더 어울리는 것 같다. 그만큼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 실험실이다.


내가 대학교 저학년 시기에 듣던 실험과목 중에 엄청 예쁜 조교님이 진행하는 과목이 하나 있었다. 그 학기는 실험 수업이 빨리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는데 일주일에 한 번 듣는 수업에도 마음이 설레는데 과연 하루 종일 붙어 있는 실험실에서는 어떨까? 그렇다면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실험실에서 이성끼리 함께 있다가 보면 서로 좋아하는 감정도 생기고 핑크 빛이 아롱거리는 분위기가 연출될 수도 있지 않을까? 이 점에 대해서 교수님과 실험실 구성원의 생각을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 해보자.


먼저 교수님의 생각을 알아보면, 교수님들마다 성향이 조금씩 다르지만 실험실 내 연애에 대해 찬성하시는 분도 있고 반대하시는 분도 있다. 사실 후자가 훨씬 많지만 양쪽에 대한 의견을 한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반대하는 교수님들의 입장은 실험을 하는 실험실에서 연애에 신경을 쓰다 보면 실험하는 데 방해가 된다는 의견이다. 그뿐 아니라 주변사람들에게도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연애를 반대하신다. 시험 기간에 도서관에서 분명히 좌석은 두 개인데 마치 하나인 것처럼 사용하는 커플들을 보면 이런 반대도 이해되지 않는 의견은 아니다. 반면에 찬성하는 입장을 들어보면 실험실 생활을 하다 보면 당연히 있을 수 있는 일이고 서로 도움을 줄 수 있고 실험실에 긍정적 에너지가 될 수 있다면 커플을 찬성한다고 하신다(사실 찬성이라기보다는 반대를 안 한다는 것이 맞는 것 같다).


합해보면 실험실은 공동체 공간이니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려는 연애는 지양하지만 실험실 전체에 이익이 될 수 있는 연애에 대해서는 조건부 찬성이라는 것이 연애에 대한 교수님들 견해의 기준인 것 같다.


실험실 구성원의 생각은 전에 한 번 들은 적이 있는데 실험실 안에 커플이 생기면 커플로 인해서 다른 실험실 사람들이 눈치를 많이 볼 수 있으니 커플들이 먼저 나서서 공동의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고 했다. 다른 실험실 사람들이 불편해진다는 것은 실험실 전체로 보면 안 좋은 영향을 주는 것일 수 있기 때문에, 실험실 커플에 대한 실험실 구성원의 생각은 ‘눈치를 잘 살피며 행동하면 좋겠다’ 정도인 것 같다. 실험실 전체의 이익을 위해 행동해 주었으면 한다는 생각은 교수님들의 생각과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결국 교수님이나 실험실 구성원 생각은 ‘실험실 전체의 이익에 해가 되지 않는다면 허용할 수도 있다’로 정리할 수 있겠다.



‘구설수’ 헌트 박사의 실험실 생활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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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itter@Connie St Louis.PNG » 헌트 박사의 언행을 알린 코니 세인트 루이스의 트위터. 출처/ 트위터 @connie_stlouis 이와 관련된 이야기거리를 하나 꺼내자면 얼마 전인 6월 초 우리가 방금 이야기 했던 주제 ‘실험실의 연애’에 관한 야이기를 공식석상에서 잘못 꺼내 세계적으로 망신거리가 된 박사가 있다. 2001년 세포주기 발견에 업적을 세워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한 팀 헌트(Tim hunt) 박사이다.


 팀 헌트 박사는 이번 달 서울에서 열린 세계과학기자컨퍼런스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가 여자들과 실험실에서 지내면서 겪은 세 가지 일을 당신에게 충고해 주겠습니다. 당신은 여성들과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도 당신을 사랑하게 되지요. 하지만 만약 당신이 여성들을 비난한다면 여성들은 울고 맙니다 (Let me tell you about my trouble with girls … three things happen when they are in the lab … You fall in love with them, they fall in love with you and when you criticise them, they cry).” 그는 이런 말을 하면서 ‘남성만이 있는 실험실을 선호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트 박사의 이런 언행이 알려지면서 세계 각지에 있는 여성 과학자들이 실험하고 있는 자기 모습의 사진을 “#distractinglysexy“라는 해시태그를 달아 트위터 같은 소셜미디어(SNS)에 올리면서, 헌트 박사를 비난했고, 헌트 박사는 자신이 속한 대학(University Colleage London)의 생명과학과 명예교수직 자리에서 사퇴해야 했다.


헌트 박사의 말은 남성우월주의가 담긴 듯이 비춰질 수 있기 때문에 비난받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헌트 박사의 말에서 내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과연 ‘헌트 박사는 실험실에서 어떤 사람이었을까?’라는 것이다. 헌트 박사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분명 자신도 여성들과 함께 실험했던 적이 있다는 이야기 같은데 그 공동체 속에서 위와 같은 생각을 했다면 ‘과연 그 공동체는 잘 굴러갈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만약 잘 굴러가는 실험실이었다고 하더라도 그 속에서 실험하는 사람들은 행복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실험실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점은 의사소통과 이해심이라고 생각한다. 실험을 아무리 뛰어나게 잘 해도 결국 연구자도 인간이기 때문에 사회적인 의사소통이 그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그런 점에서 헌트 박사는 연구는 노벨상을 통해 빛났을지 모르지만 실험실 생활에서는 과연 빛났을까 생각해 볼 일인 것 같다.

Twitter@MegMassa.jpg » 헌트 박사의 언행을 비판하는 글과 사진을 올린 한 여성 과학자의 트위터. 출처/ 트위터  


실험실의 “성공”: 시작과 끝맺음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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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실험실에서 “성공적”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실험을 잘 하는 것도 중요하고 행정도 잘 해야 하며 사회성도 잘 길러야 하는, 직업 중에 하나가 대학원생인 것인가?


먼저 실험을 잘 한다는 측면에서 “성공”을 생각해 보자. 며칠 전 내가 속한 실험실에 교수님의 대학원 시절 동료였던 박사님 한 분이 찾아오셨다. 함께 회식을 하고 그 박사님께서 우리에게 조언해 준 것이 있다. 아직도 너무 생생해서 그 말을 그대로 적어보려고 한다.


“실험을 하는 건 마치 밥을 먹는 것이랑 같은 거야.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배가 고프니까 당연히 밥을 먹지? 실험도 똑같아 오늘 할 실험은 당연히 오늘 하는 거야. 그리고 너희 오늘 밥 먹는 것을 내일로 미루니? 아니지? 아니면 오늘 점심을 질질 끌면서 저녁까지 먹니? 아니지? 실험은 시작을 했으면 끝맺는 것도 중요해. 하나 했으면 아무렇지 않게 하나 끝내고, 또 다른 하나를 시작하고, 또 끝내고, 이렇게 실험을 해야지 A를 하다가 A가 다 끝나지도 않은 상황에서 B를 하고 B를 하다 보니 A를 까먹고 B도 잘 안 되고 이러면 안 되는 거야. 실험에서 결과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일단 끝을 봐야 하는 게 중요한 거야.”


이 말에서 시작과 끝맺음이 얼마나 중요한 가치인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실험실에서 “성공“이라는 것이 ‘실험을 잘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과를 내는 것이 중요한 것’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알게 되었다.


‘칠전팔기’라는 말이 있다. 일곱 번 넘어져도 여덟 번 일어서라는 뜻의 칠전팔기가 실험실 생활에서도 과연 도움이 되는 말일까 하는 궁금함도 박사님과 이야기하면서 생각났다. 먼저 결론을 내리자면 칠전팔기는 실험실과 잘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라는 것 같다. 실험실에서 실험은 하나만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큰 주제를 가지고 실험계획을 잡은 뒤에 작은 실험들을 통하여 그것을 증명해 나가는 과정인데 작은 실험을 일곱 번씩 실패하면서 시간을 끄는 것은 정신건강에 매우 해로울 것 같기 때문이다.


물론 어떤 실험이냐에 따라서 조금씩 달라질 수 있지만 내가 여기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건 작은 단위의 실험에 관한 이야기이다. 또 하나 이야기 하자면 실험이라는 것은 우리가 고등학교 사회 시간에 배운 경제의 원리와도 비슷한 구석이 있는 것 같다. 내가 실험실에서 실험을 맨 처음 시작할 때, 실험을 한다는 설레는 마음에 A라는 실험도 해보고 B라는 실험도 해보고 C라는 실험도 해봤다. 그 당시는 한꺼번에 많은 것을 하는 것이 효율적일 것이라고 생각하여 이른바 ‘다품종 소량생산’ 식의 실험을 했다.


하지만, 교수님께서 그 당시에도 지적해 주셨던 것이 ‘실험은 한꺼번에 많은 것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하나의 결과를 확실히 끝맺음을 하면서 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었고, 그 이후에는 해야 할 실험 목록을 작성하여 그곳에 다 했다는 표시를 하는 재미에 실험을 진행한다. 쉽게 말하자면 실험에서 소품종 대량생산을 하면 자신은 실험데이터에 신뢰성을 갖게 되고 다음 실험으로 나아갔을 때 다시 이전 실험을 뒤돌아보지 않을 수 있는 것 같다. 이것이 실험실에서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실험실의 “성공”: 실험실도 결국 작은 사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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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 사회성의 측면에서 “성공”을 생각해 보자. 앞에서 얘기한 것을 한 번 더 반복하자면 실험실은 결국 공동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단체라고 생각된다. 따라서 이 공동체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두루두루 나의 의견을 잘 피력할 수 있으면 되는 것이다.


자는 이것을 ‘정치한다’라고 비판할지 모르겠지만 정치라는 것이 본래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타당한 근거와 논리에 맞게 이야기 하는 것이고 이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잘 전달된다면 정치라는 의견조율 과정은 비판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다만 서로의 이익다툼 식의 편 가르기 정치라면 당연히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친구가 한 번은 그랬다. ‘실험실에서 공동의 이익을 위해서 사용할 에너지를 왜 다른 곳에 낭비하면서 발전적으로 나아가지 못하느냐? 자를 것은 과감히 자를 줄 알아야 하고 그로 인해서 더 이상 에너지가 소모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실험실 생활에서 중요하지 않겠느냐?’ 라고.


그렇다. 실험실에서 “성공”이란 모든 실험실 사람들의 한정된 에너지를 실험실에 쓸 수 있는데 그 에너지가 발전적인 방향이 아닌 후퇴 혹은 제자리걸음 식으로 사용된다면, 에너지가 낭비되는 원인을 없앤 뒤 일보 전진할 수 있게 만드는 것, 이것이 실험실 나아가 사회생활에서의 성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덧붙여서 내가 소망하는 이상적인 실험실 모습을 이야기 하면서 마무리 하고 싶다. 내가 다니는 생명과학과 실험실은 교수님에 따라 독립적인 실험실들로 구성되어 있다. 마치 아파트에서 ‘몇 호에 들어가면 누가 살고 있습니다’ 하듯이 다양한 실험실들이 따로따로 독립된 공간에서 실험을 하고 있다.


지만 지난해에 다른 대학교로 인턴 경험을 하러 갔을 때 ‘오픈랩’이라고 하는 것을 보았다. 이걸 재래시장이라고 비유하면 될지 모르겠는데 전체 실험실이 길로 연결되어 있으며 길을 따라가다 보면 여러 실험실들끼리 서로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훤히 알 수 있는 구조를 띠고 있었다. 각각의 형태에 따라 장단점이 존재하겠지만 오픈랩 형태의 실험실은 다른 실험실과의 의사소통이 자유롭고 서로 인사만 하는 사이가 아니라 서로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있는 의사소통이 살아 있는 실험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이 고이면 썩는다고 하듯이 독립적으로 생활하는 형태의 실험실들은 서로간의 갈등의 골이 깊어지면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오픈랩은 마치 물이 흘러가듯 서로간의 갈등이 지나가는 해프닝으로 될 경우의 수가 더 많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생겼다. 이렇게 보니 오픈랩 형태의 실험실이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실험실 모습에 조금 더 가까운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인간관계, 나아가 서로간의 실험에 대해 의논할 수 있는 실험실이야말로 앞에서 얘기한 실험의 성공, 사회성의 성공을 자연스럽게 기를 수 있는 형태가 아닐까 한다.


대학원 입학을 앞두고, 조금은 다른 마음가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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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실험실에 들어갔을 때 느끼게 될 만한 이상과 현실의 차이를 살펴보고, 또한 내 나름대로 실험실에서 성공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일지 실험의 측면과 사회성의 측면에서 생각해보았다. 진학을 앞둔 학부생으로서 가져야 할 마음가짐은, 학부생 때 바라보던 교수님의 교수자 모습과 대학원생이 되어 바라보는 교수님의 연구책임자 모습이 서로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 실험실에서 가장 밀접하게 생활하는 사람들인 교수님과 대학원생들과 원만한 관계를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그리고 실험에서 성공적이라는 것은 자신에게 어떠한 태도를 요구하는지 한번쯤 생각해 보면서 대학원 진학과 관련된 계획을 구체화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조범식 한양대 시스템신경생물학 실험실 학부생연구원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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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범식 한양대학교 시스템신경생물학 연구실 석·박통합과정 대학원생
대중들에게 생명과학을 널리 알려주고 싶은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젊은 패기로 이상을 좇아 살아가며 어떤 일이든 집념을 가지고 끝까지 하고야 마는 고집쟁이기도 합니다. 오늘도 먼 훗날 강단에 서서 사람들에게 멋지게 이야기 할 날을 꿈꾸며 살아갑니다. 2016년 학부 과정을 졸업하고 대학원 생활(석박통합과정)을 시작했습니다.
이메일 : ciou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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