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대의 "소설- 박사를 꿈꿔도 되나요"

‘박사우울증’이라는 게 있습니다. 많은 대학원생이 흔히 겪는 우울한 증상을 뜻한다고 합니다. 우리 시대 ‘박사우울증’을 앓는 많은 이공계 대학원생의 삶을 소설 형식에 담아 독자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서로 이해하며 보듬을 수 있는 세상을 꿈꾸며, 카이스트 박사과정 김창대 님이 씁니다.

이젠 하객들도 쌍쌍이다


00phd_wedding.jpg » 제작 / 김창대, 그림재료/ openclipart.org. littlevisuals.co




#11. 결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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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 신부만 부러워하면 됐던 결혼식, 이젠 하객들도 쌍쌍이다.

대체 왜 저들은 쌍쌍이 오는 걸까? 신랑, 신부의 친구는 한 명뿐이면서. 축의금 일인분으로 식권을 두 개 타내서 본전을 찾겠다는 심산인가? 축의금이란 게 결혼 비용에 대한 곗돈의 의미도 있거늘, 본인의 본전을 위해 신랑, 신부의 본전을 방해하다니.


아니면 하객 모집이라도 하려는 건가? 사귄 지 얼마 안 된 커플이 함께 등장하는 법이 없다. 꼭 결혼 이야기가 얼마간 오간 뒤에야 등장한다. 그러고서는 본인들의 결혼 소식을 알린다. 결혼식의 흔한 인사말 중 하나가 “다음엔 누구누구 결혼식에서 보면 되겠다”이다. 그래, 본인들도 언젠가 남의 결혼식에서 하객 모집을 할 테니까. 미리미리 서로 돕는 거지.


내 말이지만 당최 뭔 소리냐. 당연히 황금 같은 토요일, 데이트를 할 시간에 친한 친구의 결혼식도 가야 하니 같이 오는 걸 선택한 거겠지. 애인의 친한 친구들에게 인사도 좀 드리고 말이다. 이렇게 비뚤어진 생각을 갖는 건…, 밥을 같이 먹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다들 쌍쌍이니 어느 자리에 낀단 말인가. 쌍쌍바는 갈라먹으라고 있는 건데[1], 우이쒸.


결혼식의 3대 요소는 축의금, 식사, 사진 촬영이다. 축의금을 내야 명부에 내 이름이 남고, 내가 왔다간 증거가 남는다. 그래야 나중에 페이백(pay back)도 받는 거니까. 그리고 축의금을 냈으니 식사를 안 하면 섭하지. 안 그래도 비싼 뷔페를 웃돈까지 얹어 주고 먹는 느낌인데 말이다. 또한, 축의금 명부가 장롱 속 깊숙이 들어가 있을 것을 감안하여, 거실 벽에 걸릴 사진에도 얼굴을 남겨주는 게 중요하다. 신랑 신부가 내가 다녀갔음을 매일 알 수 있도록.


그러니까 축의금은 이미 냈고 사진 촬영 시간은 아직 남아 있는 지금, 식사가 가장 중요하단 말이다. 거대한 뷔페를 홀로 헤쳐 나갈 생각을 하니 암담하다.



부 때 룸메이트였던 친구의 결혼식에 와서, 축하는 고사하고 이런 생각이나 한다. 축하를 안 하려고 한 건 아니다. 식장 입구에 서 있는 신랑과 악수나 한 번 하려고 다가갔지만, 갑자기 어른들이 떼로 몰려오는 통에 눈인사나 주고받고 말았다. 나와 눈 마주친 걸 기억이나 할까? 이따 사진을 꼭 찍어야겠다.


결혼식장은 생각보다 으리으리했다. 얘네 집이 이렇게 잘 살았나 싶다. 그저 함께 숙제에 허덕이다 술이나 마시던 친구였는데. 무슨무슨 국회의원의 화환도 보인다. 부모님이 잘 나가시나 보다. 앞으로 페이스북 좋아요라도 신경 써서 눌러줘야 될 것 같다. 사시사철 정장 한 벌로 모든 경조사를 때우는 나로서는.


 “정원아!”


누군가 나를 부른다. 뒤를 돌아봤다. 아… 아… 쟤 이름이 뭐더라. 제길. 무슨… 뭐더라. 가운데 글자가 ‘재’였던 것 같기도 한데… 재훈? 재혁? 재식? 쟤가 이씨였나, 박씨였나… 분명 얼굴이 익숙한데, 뭔가 친했던 것 같은데… 제기랄, 쟤를 어디서 봤지? 근데 학부 동기 맞지? 선배 아니지? 나랑 동갑 맞지? 아오. 형이면 존대말 써야 하는데… 그래 근데 뭔가 동갑 같긴 하다. 일단 대답부터 해야겠다.


 “어, 안녕. 오랜만이네.”

 “야, 너 결혼식 볼 거야?”

 “뭐, 꼭 봐야겠다는 생각은 없어.”

 “그럼, 밥이나 먹으러 가자. 식권 받았지?”

 “어, 그러자.”


딱히 반발이 없는 걸 보니 동갑 친구가 맞는 것 같다. 휴우.


말없이 접시에 음식을 담고 이름 모를 친구와 마주 앉았다. 당연히 자신의 이름을 알 것이라 생각할 테니 스스로 이름을 말해주지는 않겠지. 수업을 함께 들은 적이 있었던가… 차라리 혼자 먹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 무렵, 이번에도 친구가 먼저 말을 걸었다.


 “여기 음식 괜찮네. 육회가 냉동이 아닌 것 같은데?”


다행히도 내 접시에도 육회가 있었다. 한 입 먹어봐도 되겠냐는 말을 하지 않고도 받아칠 수 있으니 다행이다.


 “아, 그러네. 이 뷔페 비싸 보이는데.”

 “여기 식장도 되게 비싸 보이는데. 형택이가 잘 사는 걸까, 제수씨네 집이 잘 사는 걸까?”

 “아까 형택이 쪽에 무슨 국회의원 화환도 보이던데.”

 “우와. 형택이 다시 봐야겠네. 친하게 좀 지내야겠다.”


잠시 침묵. 머릿속에 지식을 넣으면서 사회성이 빠져나갔는지 대화 거리를 못 찾던 찰나, 이번에도 친구가 먼저 말을 걸었다.


 “넌 요즘 뭐하고 사냐?”

 “나? 대학원 갔어.”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대학원에 있다’는 말이 함의하는 수만 가지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더 이상 자세히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반면, 대학원이 어떤 곳인지 잘 모른다면, 아무리 자세히 설명한다한들 “이야, 박사님이네. 나중에 교수 되는 거야?” 같은 소리나 할 테니까. 갓 치킨집을 차린 부부에게 “이야, 사장님이네. 이제 떼돈 버는 거야?”라고 하는 거나 진배없는 소리. 하지만 이야기는 더 나쁜 방향으로 흘러갔다.


 “아, 이제 몇 년차야?”

 “4년차야.”

 “그럼, 석사 2년에다가… 이야, 바로바로 들어갔네. 이제 곧 졸업하는 거야?”


아, 제발, 좀. 고3에게 “내년에 서울대 갈 수 있는 거야?”라고 물으면 좋아할 것 같으냐고. 가뜩이나 성적도 안 좋은 학생에게 말이야. 이름도 모르는 친구에게 험한 소리를 할 수는 없으니, 태연한 척 말을 돌리기로 했다.


 “그게 내 맘대론 안 되지. 넌 요즘 뭐하고 사는데?”

 “아, 난 요즘 그냥 조그만 회사에서 개발자해. 야, 근데 너 진짜 개발자는 하지 마라. 허구한 날 야근밖에 안 해.”


야근이라. 따지고 보면 야근은 지금도 하고 있다. 물론 하루 종일 열심히 일한다고 말할 처지는 아니지만, 적어도 연구실에 있는 시간만큼은 절대적으로 많으니까. 대기업으로 간 선배도 허구한 날 야근하는 것 같던데. 연구소들도 그렇게 야근이 많다며? 대학 교수는 또 어떻고. 우리 교수님을 봐, 밤 9시 이전에 퇴근하는 걸 본적이 없는데. 심지어 모든 이공계인의 최종 정착지라는 치킨집도 대부분 새벽까지 하니까 매일 야근하는 셈이다. 이공계인의 숙명인가?


 “대기업도 다 야근한다던데 뭐, 이 바닥에 야근 없는 직업이 어디 있어.”

 “야, 그래도 대기업이 나아. 중소기업은 완전 을이야, 을. 대기업 쉬키들. 맨날 이거 해 달라, 저거 해 달라. 어휴, 말도 마.”


친구의 연설이 계속 되었다. 나는 입을 먹는 데만 사용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접시를 비웠을 때, 친구의 이야기에 잠시 틈이 생겼다.


 “나, 좀, 더 가져 올게.”



식을 가져오니 친구도 그새 다 먹었는지 자리에 없다. 곧 접시를 채워오겠지. 비싼 예식장이라 그런지, 식당에도 텔레비전이 달려 있어 예식을 볼 수 있게 되어있다. 주례사가 막 시작된다.


 “신랑 양형택 군은, 꿈꾸는 대학교를 졸업한 우수한 인재로서, 사성전자에서 근무를 하다가 이번에 미국 미시간 대학교로 입학까지 하게 된 훌륭한 신랑감이며, 신부 이지은 양 또한, 한나라 대학교를 나오고, 신랑과 같은 기업에서 일하고 있는 훌륭한 재원입니다. 본 주례는 신랑의 아버님이신 양회성 사장님과 돈독한 관계를 맺은 지가…”


캠퍼스 커플도 아닌 다음에야 주례사에 학벌이란 웬 말인가. 회사에서 만난 커플이라 들었지만 굳이 회사 이름을 언급한 것도, 결국 떠벌리기일 것이다. 결혼은 두 사람뿐만이 아닌 두 가족의 결합이라고 한다. 하지만 굳이 신랑 아버지 이름을 “사장님”이란 호칭과 함께 언급하는 것도 이상했다. 주례사는 산으로 갔다. 결혼이 두 가족의 결합인지, 두 정치경제 세력의 연합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형택이, 저 친구는 참 착하고 순수한 친구였는데. 하긴, 이 결혼식을 자기 마음대로 하고 있는 거겠어, 주례 선생님도 아버지께 등 떠밀려 모셔온 거겠지.


친구가 돌아왔다. 대뜸 내 접시에 고기 두어 점을 내려놓는다.


 “이거 소고기 스테이크래, 먹어봐. 굽는 족족 아저씨 아줌마들이 다 가져가서 겨우 몇 점 집어왔어.”


나도 두 번 들렸지만 항상 덜 익은 상태였던 소고기 스테이크. 친구의 접시에도 네 점쯤 올라 있는 걸 보니, 그도 누군가에게 ‘아저씨’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드디어, 결혼식 공식 질문이 나왔다.


 “넌 결혼 안 하냐?”

 “대학원생이 무슨 결혼이야.”

 “왜, 내가 아는 사람은 대학원생 때 결혼 하던데.”


그래, 사실 대학원생 때 많이들 결혼 하곤 한다. 우리네 미래야 어차피 불확실하고, 모아둔 재산도 없는데다, 미래에도 재산을 모을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른다. 그러니 대학원생 시절이 차라리 처가 쪽 승낙을 받기 쉬울지 모른다. 대학원생이라고 하면 왠지 현재 상태보다는 가능성을 봐줄 것 같으니까.


하지만, 친구는 생각보다 빨리 본질에 접근했다.


 “여자친구는 있고?”

 “그럼, 있지. 어딘 가에 살아 있겠지. 내 나이가 서른하난데, 여자친구가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으면 좀 그렇잖아.”

 “푸하하하. 그래, 그래. 이상하고 말고. 푸하하하.”


이름 모를 친구와의 참을 수 없는 어색함이 못 견뎌져 던진 개그가 생각보다 먹혔다.


할 이야기가 떨어졌는지 친구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몇몇은 생소한 이름이지만 몇몇은 학부 동기가 확실하다. 이 친구도 내 예상대로 학부 동기가 맞나보다.


누구는 사성기업에 들어가서 벌써 진급까지 했다더라, 누구는 사업을 했는데 대박을 쳤다더라, 누구는 외국에서 벌써 박사 학위를 땄는데 교수 임용이 됐다더라, 누구는 엄청 예쁜 여자랑 결혼을 했다더라, 누구는 속도위반을 해서 벌써 애가 있다더라…


다른 사람 인생의 하이라이트만 골라 보는 건 참 서글픈 일이다. 과정은 없이 결과만 보게 된다. 물론 그들도 많이 고생했겠지마는, 내게는 자고 일어나니 갑부가 되어 있는 사람의 이야기처럼 들리는 것이다. 열등감이 차오른다. “그래?”, “그렇구나.”, “대박이네” 같은 ‘여자 친구와 대화하는 법’에 나올 만한 대답들을 계속했더니 피곤하기도 하다.


축가를 마칠 때쯤, 결혼식장으로 올라갔다. 기다렸다가 사진을 찍었다. 식장에서 나오면서 몇몇 친구들을 만났다. 함께 온 여자 친구를 소개받기도 하고, 청첩장을 받기도 했다. 요즘 뭐하느냐는 질문과, 졸업 언제 하냐는 질문, 결혼 언제 하냐는 질문도 받았다. 건성으로 대답하고 나서, 별로 되묻지 않았다. 그대가 나와 같다면, 내 질문도 곤란해 할 것이기에. 혹여나, 나에게 무언가를 자랑하고 싶었는데 그 기회를 안 준 거라면 미안해.



는 언제 결혼을 하게 될까? 결혼을 하려면 돈과 여자가 있어야 할 것이다.


먼저 돈이 없다. 교수님이 생활비와 학교 등록금만큼은 인건비를 주시지만, 한 밑천 마련할 정도는 아니다. 그 이상을 벌려면 결국 프로젝트를 더 해야 하고, 그러면 졸업이 늦어지니까. 먹고 살 만큼만 벌면서 빨리 졸업하는 게 나으니까.


어쨌든 지금은 돈이 없다. 월세 보증금할 정도는 모아뒀지만, 그나마 서울 지역은 안 된다. 예식장 비용은 긍정적으로 생각해서 축의금으로 퉁칠 수 있다고 치자. 그런데 예물이니 예단이니 하는, 나는 차마 생각도 못 해보고 있는 것들도 있다더라.


또, 결혼을 하자면, 연애를 해야 할 텐데, 연애에 돈을 쓰자니 결혼할 돈을 못 모은다. 이 무슨 괴상한….[2]


그렇다고 졸업을 하면 돈이 생기는가. 눈 딱 감고 대기업의 실리콘(반도체의 구성 물질)이 되기로 결심한다면 돈은 좀 벌 것이다. 하지만 ‘사오정’이란 말이 있지 않은가. 한창 애들 학원비 댈 나이면 나는 다른 직장을 찾아 전전해야 한다. 정말 운이 좋아 끝까지 버티면 60세, 그러면 내 아이가 지금의 나처럼 결혼자금을 걱정하고 있겠지. 그렇다고 차마 온 힘을 다 쏟아 자기를 키워준 부모를 원망할 수는 없을 테니, 홀로 결혼만 늦추고 있겠지.


물론 돈이 없어도 사랑만으로 결혼해서 잘 살 수 있다는 헛된 희망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처가에 돈이 많아서 맨몸으로 와도 된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고. 하지만 근본적으로 여자가 없다. 내가 자웅동체는 아니니까.


그렇다면 여자는 어디서 만날 것인가. 어차피 이름조차 비어 보이는 공대에 누가 있진 않고, 소개팅을 한다 치자. 그러면 어쩔 것인가. 공대 학부 과정 4년, 석사 과정 2년, 박사 과정 4년 동안, 대화해 본 여자라고는 공대 여자들뿐인데. 공대 여자의 여성성을 무시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절대 남초 환경에 적응하여 모든 공대남성적 행동을 무던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존재인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 공대 남자들과 함께일 땐 그들과 유사한 양식으로 살 수 있는 능력까지 지녔다. 가끔 그들이 페이스북에 올리는 음식 사진이나 메이크업 정보들이 나에겐 너무나도 낯설다. 결론적으로, 나는 ‘여자’와 대화하는 방법을 배울 기회가 없었다.


연애 기술만 없으면 다행이다. 자신감도 없다. 본업도 쩔쩔매면서 무슨 연앤가 싶다. 언제 끝날지 도무지 알 수 없는 것은 고시생과 같으면서도, 끝난다고 평생직장이 보장되지 않는 것은 또 고시생과 다르다. 거기에 더해서 졸업 후에 해외로 포닥[3]이라도 1~2년 가게 되면, 이것은 학군단보다도 못한 신분이다. 이 모든 걸 극복할 만큼 나만을 사랑해줄 여자를, 소개팅으로, 서른한 살 먹고, 만날 수 있을까? 박사과정만으로도 버거운데.


어렸을 땐, 대학 가면 다 연애하는 줄 알았고, 대학 졸업하면 다 취직하고 결혼하는 줄 알았다. 딱히 환상도 아니었다. 어른들이 대부분 그랬다. 하지만 지금은 연애고 결혼이고 너무 힘들다. 날마다 텔레비전과 페이스북에 떠도는 ‘남자는 이래야 해’들이 나를 옥죈다. “결혼은 현실이다”라며 점잖게 말씀하시는 아버지도 나를 깜깜하게 한다. 뉴스에 보면 허구한 날 집값이 엄청 떨어져서 부동산 부양책이 필요하다는데, 여전히 내가 가진 돈으로는 택도 없다.


취업도 버거운 시대에 연애는 스펙이 되었다.[4] 홑몸 가누기도 어려운 시대에 결혼은 정상인의 척도가 되었다. OECD 평균을 향한 사회적 목표가 되었다. 잔인하다.


6.25 전쟁 통에도 사랑하고 결혼했다며, 바쁘다고 연애를 못한다는 게 말이 되냐는 사람들도 있다.[5] 하지만 이것은 과학적인 유추가 아니다.


두 가지 사실이 있다. “6.25 전쟁 통에도 사랑하고 결혼했다.” 그리고 “요즘 청년들이 연애하기 힘들어 한다.” 여기서 흔히들 내리는 결론은 이것이다. “요즘 청년들이 약해빠졌다.” 하지만, 다른 결론을 유추할 수도 있다. “지금 상황이 6.25 전쟁 때보다 안 좋다.”


물론, 6.25 전쟁 때는 총칼과 포탄에 의해서든, 굶주림과 질병으로 인해서든 목숨이 위태로울 정도로 어려웠다. 하지만 사랑에 있어선 어떤가? 상대방이 아직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사랑할 수 있지 않았을까? 전쟁 통에 무슨 조건을 따지나. 먹을 것이 귀한데 무슨 혼수를 셈하나.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무슨 결혼 시기를 가늠하나.


하지만, 지금은 소개팅 한 번 할라 쳐도 외모, 나이, 학벌, 성격, 센스 자세히도 따지고 든다. 본인들은 사랑으로만 만나더라도 상대방 부모님 눈초리가 있기에 통장 잔액을 채워놓아야 한다. 그러자면 결국 스펙을 쌓아야 하고, 취업을 해야 하고, 진급을 해야 하고…. 평균 수명 80세 시대[6]는 연애와 결혼을 준비 되어야 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그것도 무한경쟁과 함께.



숙사로 돌아와 옷을 갈아입으니 졸려온다. 안 입던 양복을 하루 종일 입어서일까, 잠시 잔다는 게 저녁 무렵까지 자버렸다. 밍기적 대다가 밥을 먹으니 해가 져 있다.


이렇게 또 하루가 간다. 이렇게 또 졸업은 하루 멀어져 간다. 하루하루의 연구가 쌓여서 논문도 만들어지는 것일 텐데.


나는 결혼식에 왜 갔는가. 결혼한, 커플이 된, 잘 나가는 친구들 얘기에 열등감을 증폭시키러 갔는가. 오늘 결혼한 애는 유학을 간다고 했으니 어차피 내 결혼식에도 못 올 텐데. 물론, 내 결혼식이 있긴 있을 거라는 전제 하에.


그냥, 갑자기, 논문이 읽고 싶어진다. 어차피 할 일도 없고 내일도 일요일이니까. 학구열 같은 거창한 게 아니라, 그냥 논문을 읽을 때의 그 머리 회전을 느끼고 싶다. 논문 하나 집어 들고 침대에 가서 엎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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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연구실 후배인 ‘김종율’군의 표현임을 밝힙니다.

[2] 곽백수, “가우스전자 234화 차 사지마”, 네이버웹툰 http://comic.naver.com/webtoon/detail.nhn?titleId=335885&no=236

[3] 포닥: 포스트닥터(Post-Doctor)의 줄임말. 한국어로는 ‘박사 후 과정’이라고 한다. 박사 학위 취득 후에, 학교 연구실에 소속이 되어 연구하는 기간제 계약직을 가리키는 말이다. 박사 학위 취득 후에 연구를 마무리 짓기 위해 남아서 하는 경우도 있고, 더 나은 학교(해외를 포함한)로 가서 새로운 연구 경험을 하는 경우도 많다.

[4] 김자현, “연애, 마침내 ‘스펙’이 되다”, 한겨레21 제1000호 http://h21.hani.co.kr/arti/special/special_general/36496.html

[5] 2014년 1월 30일 jTBC 썰전 49회에서 김구라(http://www.tving.com/vod/player/S005199787)가, 그리고 2014년 5월 21일 MBC 황금어장-라디오스타 376회에서 배철수(http://www.tvreport.co.kr/?c=news&m=newsview&idx=504266)가 이런 논조로 이야기한 바 있다.

[6] 구글 공개 데이터 ‘기대수명’ 부분 ‘대한민국’ 데이터를 보면 2012년 신생아 기준 기대수명이 81.37년이다. https://www.google.co.kr/publicdata/explore?ds=d5bncppjof8f9_&met_y=sp_dyn_le00_in&idim=country:KOR&dl=ko&hl=ko&q=%ED%8F%89%EA%B7%A0%EA%B8%B0%EB%8C%80%EC%88%98%EB%AA%85


   작가의 말

저널에 냈던 논문이 떨어졌다고 메일이 왔네요. 비슷한 컨셉의 논문이 최근에 먼저 나왔다는 게 가장 큰 이유래요. 좀 더 빨리 할 걸, 하는 후회가 되네요. 좀 더 부지런할 수 있었는데. 전문가들의 가열찬 비평을 읽는 것도 그리 기꺼운 일은 아니고요.

  저 말고도 많은 분들이 논문이 떨어져서 괴로워하고 있겠죠? 우리 모두 힘내 봐요.


김창대 카이스트 전산학 박사과정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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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대 카이스트 전산학 박사과정
20대를 공대에서 보내고 30대도 공대에서 맞이한 전산학도. 그리고 소설 쓰는 사람. 무언가를 고찰하여 글로 표현해내는 것을 좋아한다. <용감한 작가들> 회원이며 페이스북 페이지 <글 쓰는 김창대>를 운영 중이다. https://www.facebook.com/holypsychowrites
이메일 : holypsych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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