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경험한 일본 연구실의 생활, 열정, 장인정신
오하나의 “식물 실험실의 생명 왈츠”
(9) 일본 대학원의 연구비 시스템과 연구 환경
» 일본의 대학. 교토대학. 사진/ Wikimedia Commons
길바닥에 수북하게 쌓인 마른 낙엽들이 찬 바람에 쓸려 길 가장자리로 모여들고, 또 가끔은 한 두 장의 낙엽이 바람을 타고 역류하여 공중에서 떠도는 밤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도중, 서울에 사는 친구한테서 전화가 걸려 왔다. “벌써 12월이 되었어.” 스웨덴과 스위스에서 5년 동안 유학 생활을 했던 친구였다. 친구에게는 12월 1일이 자신의 생일보다도 더 의미 있게 느껴지는 날이란다. 연유를 듣자 하니, 자기가 스웨덴으로 유학을 떠난 날이 11월 30일이었고, 스웨덴에 도착하여 스웨덴 땅을 밟은 첫날이 12월 1일이었다는 것이었다.
“왜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런 날들이 있잖아? 인생의 길이 그날을 기점으로 조금 다른 방향으로 꺾인 것 같은. 그 순간을 전후로 내가 조금 달라진 것 같고, 내 인생의 새로운 막이 시작되었던 것 같고…. 나한테는 12월 1일이 그런 날 중의 한 날이야. 도대체 이 먼 곳까지 어떻게 오게 된 거지? 기이한 게, 창문 밖은 비현실적으로 푸르기만 하고, 앞으로 할 연구생활이 막연하게만 느껴지고…”
유학 시절의 이야기를 잠자코 들어 보니, 북유럽의 연구 환경과 연구실 분위기는 일본의 그것과는 또 달라 보였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전기장판을 덮이고 그 위로 몸을 뉘었다. 약 4년 전 한국에서 보낸 연구생 시절의 모습이 일본 대학의 연구생인 지금의 내 모습과 겹쳐 떠올랐다. 참 많이 달랐다. 생각해 보니 그렇다. 똑같은 주제로 연구를 하더라도, 어느 나라, 어떤 교수, 어떤 연구 환경과 문화 안에 놓여 있느냐에 따라 과정도 결과도 상이할 것 같았다. 그래서 이번 연재 글에서는 한국 대학원과는 다른 일본 대학원의 연구비 시스템과 연구 환경을 되돌아 생각해보고자 한다.
솔직히 이 글을 쓰면서 다소 염려스러운 부분이 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연구실의 분위기는 여러 가지 요인이 섞여서 연구실마다 다르게 개별적이고 독특하다. 따라서 한국에서 내가 경험했던 연구 환경을 한국 전체의 연구 환경으로 일반화하는 데엔 무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일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독자들에게 두 나라의 연구 환경에 대한 편견을 심어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안고, 최대한 객관적인 지표를 비교하는 쪽으로 노력했다.
일본 대학원생의 등록금, 생활비, 연구비
주변 친구들을 보면, 일본의 국립대학교 대학원생들은 연구도, 생활도 가난한 환경 속에서 하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석사과정 연구생의 경우에, 90% 정도가 사비로 대학원 등록금을 마련하고,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벌면서 학교를 다니고 있다. 이뿐 아니라, 연구 활동에 필요한 돈을 보조하는 경우도 거의 마찬가지다. 같은 연구실의 야마다는, 일본 남부 류큐 열도에 자생하는 소철나무를 채집하는 데 필요한 여비를 자비로 해결해 왔다. 채집 활동을 마치고 연구실로 돌아오는 날이면, 야마다는 소철나무 뿌리가 든 흙 묻은 배낭을 책상 위에 내려 놓으면서 “대학원 등록금보다 교통비가 더 들겠어요”라며 한탄하곤 했다.
잘 나가는 연구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내 지도교수 연구실처럼, 박사후연구원(포스트닥터) 없고, 박사과정 연구생 1~2명, 석사과정 연구생 3~4명 정도로 이루어진 소규모 연구실은 연구도, 생활도 자급자족인 셈이다. 그래서 해마다 교수가 끌어 오는 연구비의 규모에 따라, 학생들의 연구 환경이 나아졌다가 나빠졌다 하기를 반복한다. 농부들이 해마다 달라지는 기후 환경에 풍작과 흉작의 운수를 맡기는 것과 비슷하다.
일본의 학술진흥재단은 박사과정생부터 본격적으로 지원해 주고 있다. 그래서 석사과정생 중에서 박사과정에 진학하고자 하는 이들은 석사 1학년 1학기라는 이른 시기에 ‘박사연구생 장학금’ 신청서를 작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일본 내에서 돈 걱정 없이 연구를 지속할 수 있는 유일한 지원 제도이고, 분야별로 뽑는 인원도 적기 때문에, 해마다 지원자 간의 경쟁이 치열하다. 뽑히게 되면 매달 20만 엔 (한화 약 260만원) 정도의 생활비를 받을 수 있다. 그러면 박사생은 260만 원으로 방값을 내고, 의료보험료도 내고, 연구실의 연구비가 부족할 때에는, 장학금으로 연구비를 충당하기도 한다.
이렇게 따지면, 20만 엔이라는 장학금은 연구생에게 (특히 실험을 해야 하는 이공계생한테) 기초생활 수급액 정도라고 볼 수 있다. 반면 떨어지게 되면? 웬만큼 학문에 열정이 있는 사람이 아니면, 대부분 미련 없이 취업을 한다. 학생들이 이런 결정을 내리는 데에는 경제 상황이 나쁜 일본에서 고학력자를 반기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도 한 몫하고 있다.
사정이 이러하므로, 절반 이상의 일본 학부생과 대학원생은 사회에 발을 들여놓기도 전에 채무자가 된다. 정부로부터 무이자로 등록금과 생활비를 빌릴 수 있고, 취직 이후에 원금을 상환할 수 있는 기간이 길다는 점이 불행 중 다행이라 말할 수 있을까. 한편으로 대학원생의 경우, 학업 성적과 연구 실적이 우수하다고 판단되면, 원금의 상환 의무를 면제해주기도 한다. 면제 심사는 석사과정 졸업 즈음에 이루어진다. 내 동기들도 연구 성과의 일부를 논문으로 정리하여 국제 학술저널에 투고하는 등 연구 실적을 만들기 위해 분투하였다.
그러므로 현 시점에서 자국 연구생들에 대한 지원 상황은 한국에 비해 일본이 낫다고도, 나쁘다고도 판단할 수 없을 것 같다. 적어도 일본에서는 연구자로 살아가기 위해선 금전적인 부분에서 각오를 해야 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평생 비정규직 연구자로 남아도 괜찮다는 각오와 여분 없이 주어지는 연구비로 지속적인 연구 성과를 낼 각오 말이다.
연구자의 ‘장인정신’이 보여주는 저력
그렇다면 열악해 보이기도 하는 일본의 연구생 지원 제도와 연구비 시스템 안에서 어떻게 학생과 교수는 일정 수준 이상의 연구를 달성해 나갈 수 있는 것일까.
나는 그 이유를 일본 연구자들의 장인정신과 연구 특성화에서 찾고 싶다. 일본 교토의 거리를 걷다 보면, 허름한 외양의 소바 집이나 전통과자 가게가 자주 눈에 띄는데, 100년도 더 된 곳이라는 말에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그런데 그런 비슷한 느낌을 일본의 여러 연구실을 방문할 때에도 받았다. 국립대와 사립대, 수도권 대학와 지방 대학에 관계없이, 연구실마다 연구의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었다. 몇 대에 걸쳐 교수들이 비슷한 연구 테마를 깊게, 혹은 잘게 쪼개어 연구해 오는 듯한데, 그게 꾸준하다 보니 가치있는 자료로 남아, 적재적소에선 발군의 힘을 발휘하였다.
가령, 이런 식이다. 일본 북해도 대학의 아무개 연구실에서는 캠퍼스 근처 천연림의 식생 천이를 100년 넘게 연구해 오고 있다. 교토 대학의 어딘가에서는 교토 시내의 담수호 하나만을 대상으로 학생들 여럿이 연구하고 있다. 내가 연구하고 있는 연구 식물이 북해도 대학 캠퍼스 근처의 천연림에 자생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고 치자. 북해도 대학의 아무개 교수에게 연락을 했더니 100년 동안 쌓인 신뢰할 만한 데이터를 마음껏 활용해도 좋다고 한다. 난 하루 만에 나의 연구 대상 식물이 천연림 내에서 겪은 생활사와 자생 조건 등등을 파악할 수 있게 된다. 내 연구 결과의 해석이 풍부해지고 깊어지는 순간이다.
물론 일본 내에서도 첨단 연구를 이끌어 나가는 대형 연구실들이 전역에 존재한다. 국가로부터 막대한 양의 재정적인 지원을 받으며 <사이언스>나 <네이처> 같은 저널에 발표할 연구를 수행하는 연구자들도 다수다. 이번에 노벨생리의학상을 탄 야마나카 신야의 연구실이 쉬운 예이다. 하지만 일본 연구계의 저력은 대형 연구실만이 전부가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다. 자기들만이 할 수 있는 연구 테마를 찾아, 철저하게, 골똘하게, 깊숙하게 파고드는 일본 연구자들의 장인정신과 연구 장인들끼리 협력해서 공동 연구를 했을 때 나오는 엄청난 시너지 효과과야말로 그런 저력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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