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대의 "소설- 박사를 꿈꿔도 되나요"

‘박사우울증’이라는 게 있습니다. 많은 대학원생이 흔히 겪는 우울한 증상을 뜻한다고 합니다. 우리 시대 ‘박사우울증’을 앓는 많은 이공계 대학원생의 삶을 소설 형식에 담아 독자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서로 이해하며 보듬을 수 있는 세상을 꿈꾸며, 카이스트 박사과정 김창대 님이 씁니다.

그러다 노는 법을 ‘잃어버린다’

연재소설- 박사를 꿈꿔도 되나요 시즌Ⅱ


s02e11.jpg » 삽화 / 박종애 님이 그려주셨습니다.

 

[지난 줄거리]

권대성 교수가 학교를 옮기게 됐다. 고민 끝에 석사 1년차와 박사 1년차 학생들은 연구실을 옮기기로 하고, 나머지 학생들은 좀 더 힘겨운 대학원 생활을 지속한다. 어느 날, 교수님께서 길영과 정원에게 마이크로(MICRO) 학회에 논문을 제출하자고 제안한다. 길영은 준상과 팀을 이뤄 논문 제출에 성공했지만, 보영과 함께한 정원은 마지막 순간에 발견된 에러 때문에 제출에 실패한다. 논문 마감 후 모두 슬럼프에 빠진 가운데, 길영과 보영은 박사 진학을 결심한다. 그리고 모두 함께 엠티(MT)에 가게 되는데….
  



#11. 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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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MT) 뭐 있나. 술이지.

공부 밖에 모르는 놈.[1] 공대생들이 흔히 받는 오해다. 하지만 혼자 노는 거라면 누구보다 자신 있는 이들이다. 게임만 해도 종류가 몇 가진가. 웹툰은 포털 별로 몇 십 가지다. 예능이라면 공중파, 종편, 케이블을 가리지 않는다. 드라마와 영화엔 국적도 없다. 자막이 올라온 것에 한해서지만. 뛰어난 컴퓨터 실력과 연구하라고 깔아준 인터넷망이 결합하면, 눈 감을 새가 없다. 지름신 영접이 취미인 이들도 있다. 전 세계 블로거들과 함께라면, 은행에서 이자 받을 새가 없다. 소셜네트워크도 있다. 새 소식의 파도와 공유의 쓰나미. 스크롤엔 끝이 없다.


하지만 엠티는 막막하다. 함께 가니까. 다 같이 뭐 하고 노나. 스타크래프트로 대동단결 하던 시절도 지났다. 모두가 안 봤지만 모두가 보고 싶어 하는 영화도 없다. 엠티를 테크노마트로 갈 수도 없고, 함께 모여 페이스북만 보기도 그렇다. 그러니 결국 술 먹는다.


여수로 엠티 가는 길 정원, 준상, 보영은 출발하자마자 대형마트부터 들렀다.

김정원(박4): 뭘 사야 하지? 술부터 사면 되나?

정원이 카트를 끌며 앞장섰다. 왼쪽 입구로 들어가서 끝까지 직진, 과일 코너가 나오면 바로 좌회전.

전보영(석2): 오빠, 어떻게 한 큐에 여기로 와요?

강준상(박4): 허구한 날 왔으니까 그렇지.

김정원(박4): 아니야, 저 위에 다 표시돼 있잖아. 그거 보고 온 거야.

강준상(박4): 솔직히 말해봐. 너 여기 몇 번째 오는데?

김정원(박4): 몰라, 야, 술이나 담아.

보영이도 있는데 그런 걸 굳이 밝혀서 뭐하나. 정원은 여섯 개 들이 소주 한 세트를 담더니 한 세트를 더 집어 들었다.

전보영(석2): 오빠, 뭘 이리 많이 사요!

김정원(박4): 모자라는 것보단 낫지 않아? 우리 엠티 가면 맨날 중간에 술 사러 가잖아.

강준상(박4): 그렇다고 사람이 6명인데, 소주를 12병을 사?

김정원(박4): 먹기 시작하면 또 엄청 먹잖아.

전보영(석2): 오빠… 그래도….

김정원(박4): 여기서 사는 게 싸단 말이야.

강준상(박4): 너 남으면 싸갈려 그러지?

김정원(박4): 아니라고! 거기 가서 사면 비싸서 그렇다니까.

합의가 어려운 게 여야가 따로 없다. 결국 소주는 6병만 샀다. 다음은 맥주. 이번엔 정원이 날치기를 했다. 1.6리터들이 피처 6개를 담았다. 이것도 부족하단다. 절제하는 거라고 했다. 준상과 보영은 사람의 다양성을 느꼈다.


먹을 것도 잔뜩 샀다. 구워 먹을 돼지고기, 상추, 깻잎, 파, 마늘 등 각종 고기의 반찬들, 안주 삼을 비빔면과 골뱅이, 아침으로 먹을 3분 카레와 라면, 해수욕장에서 먹을 과자와 과일까지. 누가 그랬나. 엠티는 ‘먹고 또 먹고’의 약자라고.[2]



은 시각, 길영은 정길, 국현과 함께 고속도로 위에 있었다. 차와 함께 메탈 음악이 달렸다. 운전 중인 정길이 좋아하는 노래들이다.


길영은 뒷자리에 앉았다. 다음 주에 있을 박사과정 면접이 걱정된다. 속으로 영어 자기소개를 준비했다. 쓰면서 하면 금방 정리할 것 같다. 그러지 못하는 게 짜증났다. 핸드폰이라도 꺼내서 적어볼까 하다 관뒀다. 형들이 유난 떤다고 할 것 같았다. 할 땐 하고 놀 땐 놀아야 한다고들 한다. 그게 쿨한 거라고 한다. 그런데 ‘놀 때’를 자기들 마음대로 정해놓았잖아. 왜 내가 지금 놀아야 하는가. 나에겐 지금이 ‘할 때’인데.


대체 엠티는 왜 가는 걸까. 작년엔 뭣도 모르고 따라 갔다. 근데 별 거 없더라. 낮에 대충 물놀이나 하다가 술이나 진탕 먹고 오더라. 단합은 무슨. 누구 한 명 주사라도 부려야, 그거 놀리는 재미에 단합되는 정도다. 대체 엠티는 뭘까? 교수님의 유흥을 돕기 위한 자리일까? 일과시간에 합법적으로 놀기 위한 행사일까? 중간에 도망 못 가게끔 멀리 가서 하는 회식일까? 단결을 가장한 수당 없는 야근일까? 아, 우린 원래 야근 수당 없지.


마침 대화도 끊겼겠다, 길영은 눈을 감았다. 메탈이 귀를 찌른다. 잠이 안 온다. 아, 귀찮아. 멍하니 바깥이나 봤다. 시간 참 아깝다.

심정길(박3): 길영아, 졸리면 자도 돼.

전길영(석2): 아녜요.

김국현(박3): 형, 우리 뭐 먹을까요?

심정길(박3): 글쎄, 이왕 여수 가는 건데, 거기 맛집 없나?

국현이 핸드폰으로 부지런히 검색을 한다.

김국현(박3): 오, 형! 게장 어때요? 황소식당[3]이라고, 여기 게장백반이 맛있다는데요.

심정길(박3): 그래? 게장 좋지.

김국현(박3): 길영아, 넌 어때?

전길영(석2): 저도 괜찮아요.

김국현(박3): 그럼 형, 여기로 갑시다. 게장 죽이겠다.

학교 근처 맛집이 질려서 엠티를 가는 걸까? 길영은 생각했다.



장은 완벽했다. 숟가락을 입에 넣자마자 게살이 숟가락을 타고 혓바닥으로 슬라이딩 한다. 아밀라아제가 미끄러지는 게살의 손을 잡아준다. 그리고 미각세포와 짝을 지어준다. 미각세포가 그들의 매끄러운 몸매에 환호성을 지른다. 이어서 매콤 달콤한 양념장이 오케스트라를 연주해준다. 웅장함에 입천장이 압도된다. 게살과 미각세포 커플들이 제각기 탱고를 춘다. 꼭 끌어안았다가, 풀었다가, 다시 안았다가, 풀었다가. 혀가 노래를 시작한다. “지금 이 순간, 지금 여기~! 간절히 쌀밥을, 원했던, 이 순간~“[4] 노래를 들었는지, 하이얀 밥이 들어온다. 어금니가 잘게 부수어 준다. 달짝지근함이 입 안 가득 퍼진다. 그제야 입천장이 긴장을 푼다. 둑 터지듯 침샘이 터진다. 홍수를 막는 방법은 단 하나다. 다음 숟가락이 들어오는 것.


모두 공깃밥을 두 그릇씩 비운 뒤에야 정신이 들었다. 길영도 먹는 순간만큼은 즐거웠다. 식당에서 나가는데, 정원을 마주쳤다.

김국현(박3): 어? 대박.

김정원(박4): 헐, 너네 여기서 밥 먹었어?

전보영(석2): 우와, 진짜 대박이다.

심정길(박3): 뭐야, 같은 블로그 본 거야?

김정원(박4): 우리 구글 검색했는데,

김국현(박4): 검색은 구글이죠! 여기가 다섯 번째쯤 나오잖아요.

김정원(박4): 어, 맞아. 그 쯤 됐던 거 같아. 여튼, 대박이다.

심정길(박3): 여기 너무 맛있더라. 안 그래도 너네 밥 안 먹었으면 여기로 오라고 하려고 했어.

먹는다는 건 음식과 나, 둘만의 교감이다. 나만의 쾌락이다. 하지만 그 교감을 다른 사람과 공유할 때 그것은 놀이로, 유흥으로 승화된다. 한 대상에 대한 서로의 감동을 나누는 일. 음식을 먹는 것은 영화를 보는 것과 같다. 먹방, 쿡방을 푸드포르노로 비하하는 사람들이 있다.[5] 그럴 거면 ‘출발 비디오 여행’[6]부터 비판하시라.


서사는 보통 기승전결의 구조를 가진다.[7] ‘기’는 웬만하면 재밌다. 새로운 인물과 배경이 제시되기 때문이다. ‘전’도 재밌게 마련이다. 이야기꾼의 비장의 무기가 나오는 것이니까. 서사는 ‘전’을 만들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붙이느냐의 문제다.[8] ‘전’에 빠져들고 나면 ‘결’은 자연스레 흘러간다. 문제는 ‘승’이다. ‘기’와 ‘전’을 대체 어떻게 이어야 한단 말인가. 쓰는 입장에서도 힘들고, 읽는 입장에서도 가장 재미없다.


연구실 엠티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장소로 떠나는 길이 재미없긴 힘들다. 클라이맥스에 해당하는 술자리도 웬만하면 재미있다. 어떤 모임이든 입담 좋은 친구 한 명과 놀리기 좋은 친구 한 명, 주사 부리는 친구 한 명쯤은 있게 마련이니까. 다 같이 한 번 취해버리고 나면 그 다음은 자연스레 흘러간다. 자고 일어나 라면으로 해장을 하면 된다.


문제는 ‘승’, 첫째 날 오후다. 엠티 장소에서 술판을 벌이기 전까지 대체 무엇을 할 것인가. 매번 새롭고 좋은 걸 찾아보고자 노력하지만 늘 실패한다. 한국 정치처럼 말이다. 이번에도 해수욕장에서 물놀이나 두어 시간 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미 말했지 않은가. ‘승’이 쓰는 입장에서도 힘들고 읽는 입장에서도 재미없다고. 그러니 그냥 넘어가자.


침과 분침이 쭉쭉이를 하는 시간[9], 정길이 숯을 올렸다. 한 여름 태양은 아직 왕좌를 뺏기지 않았다. 바닷물을 쭉쭉 빨아올려 대기로 흩어놓는다. 공기가 말랑말랑하다. 기체이길 포기한 것 같다. 전해질까지 가득 머금었다. 내 몸에 더 가까운 습기다. 물놀이를 마치고 뽀송뽀송한 옷으로 갈아입었건만, 어느새 덜 마른 빨래를 입은 느낌이다.


준상이 고기를 꺼내온다. 정원과 보영은 야채를 씻는다. 국현과 길영이 밥을 전기밥솥에 안치고 반찬들을 테이블 위에 앉힌다.

강준상(박4): 엄청 끕끕하네요.

김국현(박3): 아오, 안 되겠다. 형님들, 시원한 맥주 하나 꺼낼까요?

김정원(박4): 아직 안 시원해졌을 텐데….

김국현(박3): 아무렴 이 날씨보단 시원하겠죠.

전보영(석2): 벌써부터 술이에요?

김국현(박3): 인생 뭐 있냐, 술 한 잔에 넘기는 게 인생이지.

강준상(박4): 어이구, 시인 납셨네.

모두 웃는다. 국현이 맥주를 꺼내온다. 종이컵에 한 잔씩 돌린다. 자신도 마신다.

김국현(박3): 키야. 산이 좋으니 술이 술술 넘어가는 구나.

김정원(박4): 연구도 이렇게 술술 넘어가면 얼마나 좋겠냐.

심정길(박3): 야, 여기까지 와서 연구 얘기 할래?

김정원(박4): 하하, 형, 죄송해요.

심정길(박3): 즐겁게 노는데 왜 우울한 얘기나 하고 그래?

펜션은 산중턱에 있었다. 앞으로는 바다가 빙 둘러 보이는, 묏자리로 좋을 것 같은 위치였다. 바비큐장 옆으론 텃밭이 있다. 주인아저씨가 뭔가를 따고 있다. 간만에 보는 1차 산업의 현장이다. 디스플레이로 둘러싸인 3차 산업의 현장을 떠나와서 자급자족의 생태계를 바라보고 있자니 도(道)라도 깨칠 것 같다.


주인아저씨가 다가왔다. 손에 쥔 고추 몇 개를 내민다.

주인장: 이거 여기서 키운 건데 고기랑 같이 먹더라고. 깻잎도 키우긴 하는데, 심은 지 얼마 안 돼서 아직 먹잘 것이 읎어. 고추는 저기 거시기하면 이따 더 다 먹고 그러라구.

심정길(박3): 어유, 감사합니다.

김정원(박4): 저희가 깻잎은 사왔거든요, 딱 고추가 없어서 아쉬웠는데, 정말 감사합니다.

모두가 인사를 했다. 주인아저씨는 집으로 들어가셨다.



살이, 삼겹살이 익어간다. 이제와 다이어트라도 하려는 듯 기름이 흘러나온다. 불이 뜨겁게 타오른다. 핏기를 남김없이 지워버린다. 고기는 생명의 흔적을 잃는다. 음식이 되어 간다.


처음 올린 고기가 다 익었을 때쯤, 야채 씻기도, 상차림도 끝났다. 정길만 계속 고기를 굽고, 나머지는 앉았다. 준상이 첫 고기를 상으로 날랐다. 국현이가 낼름 정길 옆으로 간다.

김국현(박3): 형, 이제 앉아서 드세요. 제가 구울게요.

심정길(박3): 먼저 먹어. 난 여기서 먹을게.

김국현(박3): 에이, 그래도, 맏형이 고기만 굽고 있으면 우리가 어떻게 먹어요.

심정길(박3): 난 남의 손으로 구운 고기 못 먹어.

김국현(박3): 저도 고기 좀 구워요. 회식할 때 몇 번 드셔보셨잖아요.

심정길(박3): 알았어. 이따 팔 아프면 바꿔달라고 할 게.

국현은 기어코 쌈을 하나 싸서 정길의 입에 넣어줬다. 다른 이들도 먹기 시작했다. 정원은 상추에 깻잎 깔고 고기 한 점 얹고 파와 마늘까지 얹어 쌈을 싸먹었다. 얇시리 하게 생긴 매운 고추에 쌈장 가득 찍어 한 입 깨물어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일렉기타 두 대에 이펙터 가득 걸어 연주하는 짜릿한 메탈 같은 쌈이었다. 보영은 고기만 하나 큼직한 걸로 입에 넣었다. 기름장조차 거부했다. 정확하게 불과 고기, 그 둘의 결합만을 즐겼다. 통기타에 목소리만 얹은 포크를 즐겼다.


고기를 굽던 정길이 문득 고개를 들더니 말했다.

심정길(박3): 야, 나중에 이런 펜션 하나 짓고 살면 좋을 것 같지 않냐?

김국현(박3): 벌써 노후 계획 세우시는 거예요?

심정길(박3): 그냥, 주인아저씨가 부러워서 그래. 이런 공기 좋고 물 좋은데서 여유롭게 사는 거. 얼마나 좋아. 텃밭에서 이런 저런 작물이나 키우다가, 놀러오는 사람들 한 번씩 재워주고 돈도 벌고. 아까 그 여유 봐봐. 고추 더 따다 먹으라고. 아등바등 살질 않잖아.

김정원(박4): 그건 그래요. 으아, 나도 연구 때려치우고 여기서 살고 싶다.

심정길(박3): 인생 뭐 있냐. 늘그막에 편히 놀려고 젊어 고생하는 거지.

김정원(박4): 이런 펜션은 얼마나 할까요?

심정길(박3): 그러게. 월급쟁이로 은퇴할 때까지 모아서 이런 펜션 하나 살 수 있을까?

모르긴 몰라도, 대기업에 들어가서 정년까지 버텼는데 키울 자식도 없고 봉양할 부모도 없으면 가능하지 않을까?

심정길(박3): 국현아, 나 술이나 한 잔 더 갖다 줘라.

김국현(박3): 어이쿠, 여깄습니다.

결론은 술이다.

고기를 양껏 먹고 나서 방으로 옮겨 이어진 술자리. 오늘의 희생양은 정원이었다. 정길이 챙겨온 화투가 화근이었다. 화투 하나에 사람이 여섯이니 웬만한 게임은 무리였다. 그래서 화투 로또[10]를 했다. 돌아가면서 화투장을 하나씩 뽑다가, 미리 정해둔 번호의 화투가 나오면 술 한 잔을 마시는 게임이다. 술을 마신 사람이 다음 번호를 정했다. 게임을 시작하자마자 연속 네 번을 보영이가 걸렸다. 정말 몰카라도 찍는 것 같았다. 보다 못한 정원이 흑기사를 한 번 해줬다. 그런데 바로 그 다음 판부터 정원만 걸렸다. 댓 번 걸러 한 번쯤 다른 사람이 걸렸다. 정말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로또라도 사러 가야하는 거 아니냐고 했다. 편의점은 멀고 다들 취해서 운전을 못하는 게 한이었다.


자꾸 마실 순 없으니 쉬었다 마시자며 벌주를 빚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다음 판에 또 걸렸다. 빚만 10잔이 넘어갔다. 급기야 부채탕감 개념이 도입됐다.

김정원(박4): 아잇, 야, 내가 병샷하 테니까아, 열 짜늘 이거로 퉁쳐주라. 안 되냐?

정원이 몸치가 되어버린 혀를 애써 놀리며 말했다.

심정길(박3): 정원아, 형 있다. 큭큭큭

김정원(박4): 아, 죄소압니다. 혀님, 좀 퉁쳐주십숍.

심정길(박3): 푸하하하, 너한테 형님 소린 또 처음 듣는다. 오키오키, 퉁 쳐줄게! 다들 괜찮지?

모두 웃겨죽었다. 정원은 소주가 병맥주라도 되는 양, 병째 들고 홀짝 홀짝 마시기 시작했다. 모두 박수를 치고 난리가 났다.


결국 많이 샀다던 술을 다 비워냈다. 정원은 계속 헛소리를 하면서도 난리는 치지 않았다. 치우는 걸 돕지 못해 미안하다고 스무 번쯤은 중얼거리면서 곱게 누워 잤다.


쓰레기만 대충 정리하고 잠자리에 들기로 했다. 모두 재밌었다고 되뇌었다. 길영도 간만에 웃긴 구경 좀 했다고 생각했다. 역시, 결론은 술이다.



어 고생은 사서라도 한다는 말이 있다. 결국, 늙어서는 놀고 싶다는 거다. 늙어서 놀려면 젊어서 고생 좀 하라는 거다. 사실 속임수다. 우리는 대학 가면 놀 수 있다는 말에 속아 고등학교 때 고생하고, 취업하면 편하게 살 수 있다는 말에 속아 대학 때 고생하고, 은퇴하면 놀 수 있다는 말에 속아 회사에서 고생하고 있지 않은가.


사실, 인생의 목표는 결국 노는 거 아닌가. 하지만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우리는 놀지 못 한다. 그러다 혼자 노는 법을 잊어버린다. 스마트폰뿐이다. 다른 사람과 함께 노는 법을 잃어버린다. 술뿐이다. 우리의 목표는 어디로 가버린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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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공부밖에 모르는 놈: “공부밖에 모른다”와 “다 남자다”라는 두 가지 편견이 동시에 녹아 있다.

[2] 엠티(MT)는 원래 “Membership Training”의 약자다. 직역하면 “회원 연수”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공동체 구성원들 간의 친목과 단결력을 높이기 위해 1박 이상의 길이로 놀러 가는 것”이라는 의미로 쓰인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논다는 건 술을 먹거나 음식을 먹는 것이 핵심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MT’가 ‘마시고(M) 토하고(T)’ 혹은 ‘먹고(M) 또(T) 먹고’의 약자 취급을 당할 때도 있다.

[3] 황소식당: 여수시 봉산남3길 5 (봉산동)에 위치한 게장 전문점. 게장백반 단일 메뉴만 판다. 1인분에 8,000원이고 2인 이상만 판매. 아, 언제 또 가지… 쩝

[4]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에 나오는 <지금 이 순간>이라는 노래를 패러디 했다. 해당 부분의 원래 가사는 ”지금 이 순간 지금 여기 / 간절히 바라고 원했던 이 순간“이다.

[5] ‘먹방’은 ‘먹는 방송’의 약자로 연예인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침 흘리며 지켜봐야 하는 방송들을 말한다. ‘쿡방’은 ‘Cook 방송’, 즉 요리하는 방송을 의미한다. 요리하는 모습으로 침샘을 뜨겁게 달궈 놓고 ‘먹방’까지 보여준다. 이런 방송들은 인간의 3대 욕구 중 하나인 식욕을 남김없이 자극한다. 이를 일각에서는 ‘푸드포르노’라는 격한 표현으로 부르기도 한다. 맛칼럼리스트 황교익은 한국일보와의 인터뷰( http://interview.hankookilbo.com/v/c607ba4cca144794a8a7caf36db10589/#1004 )에서 “쾌락을 끌어와야 하는데 먹는 것 만한 게 없다. 하지만 현실에선 사먹거나 해먹을 형편이 안 된다. 해서 찾는 게 먹방·쿡방, 즉 음식 포르노다. 뛰어난 모방 본능으로 인간은 음식이 아니라 먹는 사람에게서 쾌락을 얻는 거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아시아경제의 이규성 기자는 관련 기사( 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4120907214443689 )에서 “내년에는 양의 해다. 내년에도 다른 이들의 식탐에 행복해 할지, 또 다른 욕망의 관음이 판칠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밝고 건강한 사회를 반영한 문화 소비가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라며 먹방을 ‘욕망의 관음’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6] 출발 비디오 여행: MBC에서 19년째 장수하며 방영되고 있는 영화 소개 프로그램. 홈페이지는 http://www.imbc.com/broad/tv/ent/video/proinfo/index.html

[7] 기승전결은 만화에도 널리 쓰이는 서사 구조다. 네 컷으로 이루어진 만화가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에는 웹툰을 중심으로 기승전결의 구도를 깨는 세 컷 만화나 두 컷 만화도 나온다. 세 컷 만화로 배진수 작가의 <하루 3컷>(http://comic.naver.com/webtoon/list.nhn?titleId=644180), 두 컷 만화로 작가 마인드C의 2차원 개그(https://www.pikicast.com/#!/menu=userpage&section=0&uid=4737913)가 있다.

[8] ‘전’을 만드는 것도 무엇을 어떻게 부치느냐의 문제다.

[9] 오후 6시를 의미한다.

[10] 화투 로또: 술자리에 사람은 많은데 화투는 한 벌만 있을 때 재미있게 (그리고 빠르게) 술 마시기 좋은 놀이다. 본문에 간단한 설명이 나와 있지만, 여기서 자세히 설명한다. 화투 각 장에는 1~12까지의 숫자가 지정되어 있다. 이 중 하나의 숫자를 정한다. 그리고 화투를 섞고 뒤집어 놓는다. 그리고 돌아가면서 화투를 한 장씩 뽑는다. 그러다 처음에 정한 숫자의 화투를 뒤집는 사람이 술을 한 잔 마시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한 장씩을 뽑았는데도 정한 숫자의 화투가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면 한 바퀴를 더 돌게 되는데, 이 때 걸린 사람은 두 잔을 마셔야 한다. 즉, 한 바퀴를 돌 때마다 한 잔씩이 추가된다. 술을 마신 사람이 다음 판의 숫자를 정하고, 자신부터 시작한다. 화투에 있는 조커 카드를 활용할 수도 있다. 누군가가 조커 카드를 뽑게 되면 그 때부터 술이 한 잔 추가되는 것이다. 이러면 생각보다 술잔이 빨리 늘어난다. 정말 운이 없으면 소설 속의 정원이처럼 소주 병샷을 해야 하는 상황도 발생한다. 실제로 병샷을 목격한 적이 있다.


  ■ 작가의 말

사실 저는 술을 끊은 지 7개월이 넘었습니다. 그렇지만 술자리는 잘 갑니다. 안주가 맛있어서요. 흔히들 술 때문에 살찌는 게 아니라 안주 때문에 살찌는 거라고 하죠. 혹시 근거가 필요하시면 제게 찾아오시면 됩니다.


김창대 카이스트 전산학 박사과정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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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대 카이스트 전산학 박사과정
20대를 공대에서 보내고 30대도 공대에서 맞이한 전산학도. 그리고 소설 쓰는 사람. 무언가를 고찰하여 글로 표현해내는 것을 좋아한다. <용감한 작가들> 회원이며 페이스북 페이지 <글 쓰는 김창대>를 운영 중이다. https://www.facebook.com/holypsychowrites
이메일 : holypsych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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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회  연재소설- 박사를 꿈꿔도 되나요 시즌Ⅱ [지난 줄거리]권대성 교수가 학교를 옮기게 됐다. 고민 끝에 석사 1년차와 박사 1년차 학생들은 연구실을 옮긴다. 나머지는 좀 더 힘겨운 대학원 생활을 지속한다. 8월, 학회의 ...

  • 한 시간 만에 끝내버리는 건 좀 너무하지 않은가한 시간 만에 끝내버리는 건 좀 너무하지 않은가

    소설- 박사를 꿈꿔도 되나요김창대 | 2016. 05. 13

    연재소설- 박사를 꿈꿔도 되나요 시즌Ⅱ  [지난 줄거리]권대성 교수가 학교를 옮기게 됐다. 고민 끝에 석사 1년차와 박사 1년차 학생들은 연구실을 옮긴다. 나머지는 좀 더 힘겨운 대학원 생활을 지속한다. 8월, 학회의 논문 마감이 있다. 길...

  • ‘현실은 남극 속 냉동창고일 뿐이다’‘현실은 남극 속 냉동창고일 뿐이다’

    소설- 박사를 꿈꿔도 되나요김창대 | 2016. 04. 15

    연재소설- 박사를 꿈꿔도 되나요 시즌Ⅱ [지난 줄거리]권대성 교수가 학교를 옮기게 됐다. 고민 끝에 석사 1년차와 박사 1년차 학생들은 연구실을 옮긴다. 나머지는 좀 더 힘겨운 대학원 생활을 지속한다. 8월, 학회의 논문 마감이 있다. 길영, ...

  • 소설: ‘케이-알파맨’소설: ‘케이-알파맨’

    소설- 박사를 꿈꿔도 되나요김창대 | 2016. 03. 18

    김창대의 단편소설알파고 쇼크 또는 열풍이 한국사회에 휩쓸고 지나갔습니다. 아니 여전히 많은 담론과 화제를 낳고 있습니다. 사이언스온의 연재소설 작가이자 카이스트 전산학과 박사과정 대학원생인 김창대 님이 '박사를 꿈꿔도 되나요 2'의 연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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