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인의 "논문 읽어주는 엘레강스 펜클럽"

생물학 연구의 모델동물인 ‘예쁜꼬마선충(별칭 엘레강스)’을 연구하는 다섯 명의 젊은 연구자들이 발생과 진화를 비롯해 생물학의 굵직한 주제를 담은 최신 논문을 소개한다. 실험실 안과 밖의 진지하고 유쾌한 소통을 시작한다.

시간을 느끼는 신경, 능동적으로 늙다

[6] 노화와 신경 재생


왜 나이가 들수록 신경 재생 능력은 감퇴하는 것일까. 어린 시절에는 ‘아이 스위치’ 유전자가 켜져 신경의 연결선인 축삭이 잘 재생되고, 나이가 들면서 ‘어른 스위치’ 유전자가 켜져 축삭 재생 능력이 떨어진다는 흥미로운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그러나 새로운 발견은 새로운 물음을 던져준다.

00neuro_aging.jpg » 성장의 시간이 흐르면서 나이가 들면 신경 재생과 관련한 유전자들의 발현도 달라진다. 출처/ 한겨레 자료사진(이상엽, 2001)

이번 글의 주제 논문


Zou Y, Chiu H, Zinovyeva A, Ambros V, Chuang CF, Chang C. Developmental decline in neuronal regeneration by the progressive change of two intrinsic timers. Science. 2013 Apr 19;340(6130):372-6.




“누구나 세상을 살다 보면은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을 때가 있어.

그럴 땐 나처럼 노랠 불러봐.

꿍따리 샤바라 빠빠빠빠!”


1996년, 구준엽과 강원래의 댄스듀오 ‘클론’이 신곡 ‘쿵따리 샤바라’를 들고 혜성처럼 등장했습니다. 제가 초등학생이던 그 시절, 클론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어딜 가나 ‘쿵따리 샤바라’가 울려 퍼지고, 밤이면 ‘초련’의 야광봉 댄스를 따라 하느라 여기저기가 번쩍거렸습니다.


클론의 인기가 하늘을 찌를 듯하던 2000년, 충격적인 사건이 터졌습니다. 불의의 교통사고로 강원래씨가 척수 손상을 입어 하반신이 마비된 것입니다.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던 댄스 가수가 하루아침에 더 이상 춤을 출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믿기지 않는 현실이었고, 온 국민이 함께 마음 아파했습니다.


강원래씨가 춤을 출 수 없게 된 이유는 ‘흉추 3번’ 아래의 척추가 기능을 완전히 잃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척추 안에는 척추뼈로 보호되는 ‘척수’라는 조직이 있는데, 척수 안에 무수히 많은 신경 다발들이 모여 있습니다. 교통사고가 ‘하반신 마비’라는 치명적이고 광범위한 결과로 이어진 것은, 뇌와 우리 몸 구석구석을 연결하는 이 신경다발을 손상시켰기 때문입니다.



얼굴 위에 돋아난 유령 손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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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손끝으로 무언가를 만져 촉감을 느낄 수 있고, 손가락으로 물건을 집어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감각을 ‘느끼고’ 손가락에 ‘명령을 내리는’ 일은 중추신경계인 뇌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신경다발은 이렇게 물리적으로 떨어진 두 기관과 사건을 연결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신경세포의 신호가 전기적 신호임을 고려하면, 신경다발은 우리 몸에 구석구석 깔린 일종의 ‘전선’인 셈이지요.


가락 끝에 위치한 감각세포의 말단에서 촉감 센서들이 자극을 받으면, 이 자극은 전기적 신호로 변환돼 신경다발을 타고 대뇌로 전달됩니다. 이때 온몸 구석구석에 퍼져 있는 신경다발은 척수로 모두 모여 척추의 엄호를 받으며 감각신호를 대뇌로 올려보냅니다. 손가락을 움직이는 일은 그 반대로 진행됩니다. 뇌에서 내려진 명령이 척수의 신경다발을 타고 내려와 손가락까지 전달돼 손의 근육을 움직이게 합니다.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손가락’과 우리 뇌 속에서 심리적으로 존재하는 ‘손가락’은 신경다발을 통해 물리적 거리를 뛰어넘어 접속되고 통합적으로 운영됩니다. 손가락이 손가락이게끔 하는 것은 어쩌면 손가락 그 자체가 아니라, 손가락과 손가락 영혼 사이의 ‘연결’인 것이지요. 만약 이 연결이 끊기거나 잘못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손가락은 제대로 기능을 못하거나 아니면 엉뚱한 부분이 손가락이 되어버리지 않을까요.


실제로 그런 사례가 적지 않습니다. 사지가 절단된 사람의 무려 60~80%가 사라진 팔이나 다리의 감각을 느낀다고 합니다. 이른바 환각지(幻覺肢, phantom limb)라고 하는 ‘유령 팔다리’ 현상입니다. 환각지에 시달리는 이들은 왼손이 없어졌는데도 왼손이 아픈 통증을 느낍니다. 그뿐만 아니라 대화 중에 자기에게 없는 왼손으로 손동작하고 있다고 착각하기도 한답니다. <라마찬드란 박사의 두뇌 실험실>의 저자인 라마찬드란 박사는 잘린 팔의 ‘유령 감각’이 얼굴로 이동해 분포한다는 사실을 보고하기도 했습니다. 볼을 톡톡 두드려주면 마치 없어진 손가락을 톡톡 두드리는 것처럼 느낀다는 것이죠.


손을 잃었는데도 얼굴에서 손을 ‘환각’하게 되는 것은 손의 ‘몸’은 잘려나갔지만 머릿속에 있던 손의 ‘마음’은 그대로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이 둘을 연결해주던 신경다발이 잘리게 되면 뇌에 있는 손의 ‘마음’이 얼굴과 같은 엉뚱한 ‘몸’과 연결될 수 있고, 마치 얼굴 위로 손이 돋아난 것과 같은 감각의 재구성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신경다발의 손상은 단순히 신체 일부를 마비시킬 뿐 아니라 우리 몸에 유령을 만들어 낼 수도 있는 것입니다.



몸과 마음을 이어주는 전선, 축삭(ax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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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몸과 마음을 이어주는 이 신경다발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뉴런(neuron)이라고 불리는 신경세포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세포핵이 위치하고 신경세포에 필요한 각종 물질과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신경세포체(그림에서 C), 주변 환경이나 상위 신경세포로부터 신호를 받아들이는 수상돌기(dendrite, 그림에서 B), 그리고 전기 신호를 다음 신경세포나 근육으로 전달하는 축삭(axon, 그림에서 A)이 그것입니다. 여기서 신경다발을 이루는 전선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축삭입니다.


00neuro1.jpg » 신경세포의 구조와 축삭. http://cellularscale.blogspot.kr/2012/01/neurons-are-like-power-cords.html 삭의 길이는 신경세포마다 제각기 다르며, 척추 끝에서 시작해 엄지발가락까지 이어지는 좌골신경의 축삭은 사람 키에 따라 1 미터 넘게 자라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엄청난 길이의 축삭도 그 굵기는 다른 신경세포와 큰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대부분 1000분의 1 밀리미터 안팎의 아주 가느다란 지름을 갖고 있습니다. 아주 섬세한 전선들이 우리 몸 구석구석에 배선된 것이죠.


이 연약한 축삭이 끊어지면 어떻게 될까요? 앞에서 설명했던 대로 몸과 마음의 연결이 끊어지는 결과가 발생할 것입니다. 그렇게 끊어진 연결은 영원히 회복할 수 없을까요? 손가락 접합 수술을 생각하면 꼭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손가락이 완전히 절단된 경우라 할지라도 신속하게 접합 수술을 하면 손가락의 구조뿐 아니라 기능까지 살릴 수 있습니다. 실제로 수술 과정에서 의사는 피부나 혈관뿐 아니라 신경도 역시 물리적으로 봉합합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실제로 축삭이 접합되는 것은 아닙니다. 1000분의 1 밀리미터의 축삭을 실로 꿰맬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일어나는 일은 잘려나간 말단의 축삭은 제거되고 새로운 축삭이 손가락 끝을 향해 자라난다고 합니다. ‘접합’보다는 ‘재생’에 가까운 것이죠.


이런 축삭의 ‘재생’은 주로 몸 구석구석에 퍼져 있는 말초신경에서는 종종 일어나는 일이지만, 뇌와 척수의 중추신경계에선 잘 일어나지 않는다고 알려졌습니다. 중추신경계에서 재생을 억제하는 인자들이 분비된다는 연구 결과도 많습니다. 만약 말초신경의 손상보다 훨씬 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중추신경의 손상을 ‘축삭 재생’을 통해 회복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신체 마비를 앓고 있는 많은 환자들에게 다시 몸과 마음을 연결해줄 수 있다면 말이죠.



"꼬마선충한테도 신경이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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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국립의학도서관에서 제공하는 학술 데이터베이스인 퍼브메드(PubMed)에서 ‘축삭 재생(axon regeneration)’이라는 말로 검색하면 1만1000건이 넘는 논문이 검색되며, 매년 발표되는 관련 논문 숫자는 점점 증가하고 있습니다. 연간 전 세계적으로 수만에서 수십만의 신경 손상 환자가 발생하는 상황이라 상당히 치열한 연구 분야라고 할 수 있지요. 그러나 여러 신경 재생 현상이나 임상적 사례들은 많이 보고되었으나, 여전히 신경 재생의 분자적·유전적 메커니즘에 대해선 알려진 바가 많지 않다고 할 수 있습니다.


2000년대 중반 들어 예쁜꼬마선충 연구자들이 이 치열한 신경재생 분야에 도전장을 내밀었습니다. 제가 예쁜꼬마선충의 행동과 신경을 연구한다고 하면 많이 받는 질문이 “꼬마선충한테도 신경이 있어?”라는 질문입니다. 아마 비전공자들한테는 신경이 포유류나 적어도 척추동물 정도 되는 고등한(?) 동물에서나 발견되는 것이라고 생각되는 듯합니다.


사실 예쁜꼬마선충에는 신경계가 있는 정도가 아니라, 이 작은 벌레를 이루는 천여 개 남짓한 세포 중 3분의 1가량이 신경세포에 해당합니다. 사람의 신경세포에 비하면 훨씬 작고 가늘지만, 신경의 발생이나 생리에 관련된 중요한 유전체계는 사람과 매우 유사합니다. 실제로 축삭이 어떻게 자신의 목적지를 찾아가는지에 대한 메커니즘을 밝히는 데 예쁜꼬마선충 연구가 큰 기여를 하기도 했습니다.

00neuro2.jpg » 나름(?) 복잡한 예쁜꼬마선충 신경계. 출처/ Wormatlas, http://www.wormatlas.org/ver1/durbinv1.2/figs/full_jpg/fig1.2full.jpg

쁜꼬마선충 연구가 축삭 재생 분야에 도입된 뒤 거둔 성과는 상당해 보입니다. <네이처>, <사이언스>를 비롯한 유력 학술지에 많은 논문이 발표됐을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다른 생명체 연구에서는 밝혀지지 않았던 새로운 중요한 사실들이 보고되기도 했습니다. 이 작은 벌레가 축삭 재생의 연구모델로 주목받게 된 이유는 다양합니다.


우선 단순한 신경계를 갖고 있어서 다루기나 분석하기가 초파리나 쥐에 비해 상대적으로 간편합니다. 실제로 자웅동체의 경우 302개의 신경세포를 갖고 있으며 꼬마선충 연구자들은 개별 신경세포를 능수능란하게 다루곤 하지요. 또 이러한 신경계가 개체별로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는 점도 연구를 수월하게 합니다. 반도체 회로처럼 일종의 고정된 신경회로와 그 소자처럼 다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에 비하면 너무도 단순한 것이지만, 예쁜꼬마선충에 대한 연구는 사람한테도 도움이 되는 지식을 제공해줄 것이라는 기대도 매우 큽니다. 세포사멸, 신경 발생 등 의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문제들에 대해 예쁜꼬마선충 연구가 지금까지 기여한 바는 어마어마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기본적으로 예쁜꼬마선충과 인간의 생명현상을 조절하는 핵심 유전자들이 둘 사이에 잘 보존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축삭 재생에 대한 연구도 마찬가지로 기대해 볼 수 있습니다. 예쁜꼬마선충에서 축삭 재생의 비밀을 발견하게 된다면, 인간에게도 적용해볼 수 있을 가능성이 적지 않으니까요.



투명한 벌레 덕에 ‘노벨상’ 잡은 과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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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무엇보다도 큰 강점은 예쁜꼬마선충이 투명하다는 사실입니다. 마이크로미터나 나노미터 단위로 이루어지는 생명 현상은 대부분 현미경으로 관찰하게 되는데, 이때 빛이 투과할 수 있는 ‘투명성’은 엄청난 장점으로 작용합니다. 살아 있는 생명체 안에서 생명 현상을 관찰할 수 있다는 점이지요. 쥐나 사람의 신경을 배양접시에서 키워 실험하게 되면 관찰은 용이할 수 있으나, 실제 생명체 내에서도 마찬가지 일이 일어난다고 확증하기 어려운 한계가 있습니다.


2008년 노벨화학상을 받은 마틴 찰피 박사가 수상할 수 있었던 이유 역시 예쁜꼬마선충이 투명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얼마 전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린 학회에 참여했는데, 연사로 참가한 그와 함께 식사를 하며 노벨상을 받게 된 이야기를 자세히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예쁜꼬마선충에서 신경의 생리와 발생을 연구하고 있던 그는 어느 날 해파리에서 추출된 녹색형광 단백질(Green Fluorescent Protein, GFP)에 대한 세미나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 세미나 자리에서 유일하게 ‘투명한’ 동물은 연구하고 있던 마틴 찰피 박사만이 ‘이거 환상적인데! 이걸로 살아 있는 동물 안에서 세포를 관찰할 수 있겠어!’라고 감탄했습니다. 여러 우여곡절 끝에 그는 결국 녹색형광 단백질을 자신이 연구하던 예쁜꼬마선충의 신경세포에 발현할 수 있었습니다.

00neuro3.jpg » 녹색형광 단백질을 이용해 물리감각 신경세포를 관찰한 사진.

신경세포에서 녹색형광 단백질을 발현하자 실제로 살아 있는 벌레 안에서 신경세포를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신경세포가 모양을 갖추고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며 특히 수상돌기나 축삭이 뻗어 나가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었던 것이죠. 마틴 찰피 박사는 녹색형광 단백질을 분자생물학의 유용한 도구로 도입한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화학상까지 수상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불투명한 초파리나 쥐를 연구했다면 아마 아직 노벨상을 받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그의 주요 연구는 물리적 감각의 신경작용 및 발생에 대한 연구입니다).



레이저 수술대 위에 올라선 꼬마선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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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꼬마선충이 투명하며 녹색형광 단백질을 발현시켜 신경세포를 관찰할 수 있다는 장점은 축삭 재생 연구 분야에서 엄청난 경쟁력을 제공합니다. 살아 있는 동물 안에서 축삭이 손상되고 재생되는 과정을 생생하게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여기엔 조건이 있습니다. 우선 축삭이 손상되어야 하며, 꼬마선충의 축삭이 재생 가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떻게 축삭을 손상시킬 수 있을까요? 더 엄밀히 말하자면 연구자는 축삭‘만’을 손상시켜야 합니다. 그래야 축삭 재생에 관한 생체 반응만을 명확히 탐구할 수 있기 때문이죠. 만약 축삭을 자르기 위해 벌레를 잘라버린다면 벌레는 금방 죽어버릴 겁니다. 여기서 다시 한 번 벌레가 투명하며 신경세포를 녹색형광 단백질로 관찰할 수 있다는 장점이 큰 힘을 발휘합니다.


2004년 12월, <네이처>에 미국 스탠퍼드대학과 텍사스오스틴대학 공동 연구팀이 기념비적인 짤막한 논문을 하나 내놓습니다. 아주 낮은 에너지(40 나노줄, nanojoule)의 아주 짧은(200 펨토초, 1펨토초는 1000조분의 1초) 레이저 섬광을 이용해 예쁜꼬마선충의 축삭만을 자르는 레이저 수술에 성공한 것입니다(아래 그림 a). 지름이 100~200나노미터밖에 되지 않는 ‘단 하나의 축삭만’을 다른 생체에 별 손상을 주지 않고 ‘똑딱’ 끊어낸 것입니다.


이들은 녹색형광 단백질을 발현해 축삭을 정확히 관찰하여 조준할 수 있었고, 투명하기 때문에 레이저를 이용해 쉽게 축삭 일부를 파괴할 수 있었습니다. 연구팀은 단순히 레이저 시술에 성공했을 뿐 아니라 시술 후에 축삭이 다시 재생되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아래 그림 b). 축삭 재생을 연구할만한 완벽한 조건이 마련된 셈입니다.

00neuro4.jpg » 펨토젯 레이저를 이용한 축삭 절단 시술과 이후에 진행되는 축삭 재생. 출처/ [1]

이 연구를 통해 예쁜꼬마선충에서 축삭 재생 연구의 핵심 기반이 마련되었습니다. 연구의 장이 본격적으로 열리자 몇 년 뒤부터는 비중 있는 논문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잘 알려진 축삭 재생 관련 인자들이 예쁜꼬마선충에서도 작용한다는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고, 이전엔 알지 못하던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습니다.



생기를 잃은 늙은 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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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레이저 시술에 성공한 연구팀 일부가 2007년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후속 연구 결과를 발표합니다. 이 연구결과 중에 단연 제 눈을 사로잡은 부분은 ‘노화와 신경재생’의 관련성이었습니다. 신기하게도 어린 유충 시기에 절단하면 잘 재생되던 신경 축삭이 성체가 되면 재생 능력이 떨어진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입니다. 이미 1995년에 햄스터가 나이를 먹을수록 뇌에서 추출한 신경의 재생 능력이 떨어진다는 사실이 보고되었는데, 예쁜꼬마선충에서도 같은 현상이 관찰된 것입니다.


사실 늙으면서 생기를 잃는 건 신경만이 아닙니다. 인간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노화를 겪으면서 피부도 탄력을 잃고 눈도 점점 침침해집니다. 그렇다면 나이 든 신경이 축삭을 잘 재생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까요? 당연한 일일지라도 그럼 어쩔 수 없는 일일까요?


이가 들면서 신경이 재생 능력을 잃는 현상은 두 가지 다른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수동적 관점입니다. 신경도 나이를 먹으면서 노쇠하고, 재생을 위한 세포 기구들에 손상이 누적되고, 노폐물이 쌓이면서 수동적이며 불가피하게 재생능력을 잃는다는 것이죠. 능동적 관점은 반대로 어떤 인자나 체계가 늙은 신경의 재생 능력을 능동적으로 억압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 그런 억압적 요소가 있다면, 그 요소를 제거해주었을 때 늙은 신경은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해 축삭을 재생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나쁜(?) 유전자’는 누구일까요? 한 가지 추측해볼 수 있는 건 아무래도 이 유전자가 ‘나이듦’과 관련이 있을 거란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나이듦’과 관련된 유전자가 있다는 것일까요?



시간 흐르면 켜지고 꺼지는 유전자 스위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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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체 등가성 혹은 동등성(genomic equivalence)이라고 부르는 개념이 있습니다. 우리 몸의 모든 세포는 똑같은 유전자를 갖고 있다는 뜻이죠(면역세포 등 예외적으로 차이가 있는 세포들도 있습니다). 이 개념에 담긴 중요한 함의는 우리 몸의 각 기관들이 서로 다른 구조와 기능을 갖는 것은 유전자 그 자체의 차이가 아니라 ‘발현’의 차이에서 온다는 것입니다. 즉, 눈이나 손가락이나 같은 유전자를 갖고 있지만 서로 사용하는 유전자들이 다르다는 뜻입니다. 눈에 ‘있는’ 유전자가 눈 유전자가 아니라, 눈에서 ‘사용하는’ 유전자가 눈 유전자인 것이죠.


마찬가지의 개념을 시간 혹은 나이에도 적용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제가 한 살 때나, 지금이나, 혹은 몇십 년 뒤 할아버지가 되었을 때도 거의 똑같은 유전자들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 때와 노인 때의 생체 활동이 다른 것은 혹시 나이마다 발현되고 사용하는 유전자가 달라서는 아닐까요. 혹시 나이 든 개체에서만 발현되는 성인 유전자 혹은 노인 유전자가 신경 재생 능력을 억압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제로 일군의 ‘나이 유전자’가 알려져 있습니다. 이시성(異時性) 유전자(heterochronic gene)가 그들입니다. 이들은 개체의 발생 단계, 즉 나이에 따라 발현 양상이 상이한 유전자입니다. 뿌듯하게도(?) 예쁜꼬마선충 연구는 이시성 유전 체계를 규명하는 데도 아주 혁혁한 공을 세운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시성 유전자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는 나중에 언젠가 꼭 한번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나이 듦’에 대한 유전자가 존재한다면 이 유전자가 나이에 따른 축삭 재생 능력에도 관여하고 있는 것일까요? 더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어른이 되었을 때 켜지는 유전자 스위치가 어릴 적 축삭 재생 능력을 억제하고 있을까요? 그렇다면 그 스위치를 꺼버리면 나이가 들어서도 축삭 재생 능력을 발휘할 수 있지 않을까요?


지난 4월, 미국 신시내티 어린이병원의 연구팀은 이시성 유전자가 실제로 나이에 따른 축삭 재생 능력의 변화를 조절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를 <사이언스>에 발표했습니다. ‘let-7’이라는 작은 유전자 스위치가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연구결과를 조금 자세히 들여다보도록 하죠.


이들은 AVM이라는 신경세포를 연구모델로 설정했습니다. (재미있게도 AVM 신경세포는 앞에서 얘기한 마틴 찰피 박사가 녹색형광 단백질을 최초로 발현한 신경세포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이 신경세포는 길게 쭉 뻗은 축삭을 갖고 있고, 주변에 다른 신경세포나 축삭이 많지 않아 연구하기가 용이합니다. AVM은 이미 레이저 시술로 축삭을 절단하면 재생이 잘 이루어진다는 것이 잘 알려져 있었습니다.

00neuro5.jpg » AVM을 이용한 축삭 절단 레이저 시술. 축삭이 잘린 후 세포체에 가까운 축삭이 새로운 줄기를 뻗어 나가는 것이 관찰된다. 출처/ [2]

우선 축삭 절단 이후 재생되는 길이를 측정해보니, 나이가 들수록 점점 AVM의 재생 능력이 감퇴한다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다음 단계로 이들은 나이가 들면 증가하는 이시성 유전자들 중 축삭 재생에 관여하는 유전자를 찾아 나섰습니다. 각고의 노력 끝에 앞서 말한 let-7이라는 작은 유전자가 나이가 들면서 켜지고, 그 결과 축삭 재생 능력이 감퇴한다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지금부터 편의상 let-7 유전자를 성체가 될 무렵에 켜진다는 의미로 ‘어른 스위치’라고 부르겠습니다.



시간을 달리는 유전자, 신경을 고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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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면서 켜지는 ‘어른 스위치’를 신경세포에서만 인위적으로 꺼버리면 어떻게 될까요? 놀랍게도 신경 재생 능력이 나이가 들어서도 별로 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관찰되었습니다. 즉, 이 스위치가 망가진 돌연변이체는 성체에서도 AVM 신경세포가 새로 축삭을 쭉 뻗어낸다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00neuro6.jpg » 절단 이후 제대로 축삭을 뻗지 못하는 정상 성체(WT)와 달리, let-7 돌연변이 성체(let-7 adult)는 몸을 따라 축삭을 쭉 뻗어낸다연구 결과 ‘어른 스위치’는 그 하위의 다양한 유전 인자들의 활성을 조절하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유충 시기에 발현되는 것으로 알려진 lin-41이라는 유전자를 억제하고 있었습니다(편의상 lin-41을 ‘아이 스위치’라 부르겠습니다). 인위적으로 이 ‘아이 스위치’를 성체의 신경에서 켜버리면 성체에서 유충처럼 축삭이 잘 재생된다는 사실이 관찰됐습니다. 인간의 기술로 유전자가 원래 흐르는 시간을 바꾸어주자 나이 든 신경도 생기를 되찾은 거지요. 비유하자면 시간을 달리는 유전자가 신경을 고칠 수 있다고나 할까요.


리하자면 어린 시절에는 ‘아이 스위치’가 켜져 축삭이 잘 재생되고, 나이가 들면서 ‘어른 스위치’가 켜져 축삭 재생 능력이 떨어진다는 흥미로운 사실이 밝혀진 것입니다. 늙어서 신경이 생기를 잃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수동적 과정이 아니라 ‘스위치’를 켜고 끄는 능동적 과정이란 것이죠. 게다가 현대의 첨단 과학은 그 스위치를 최소한 예쁜꼬마선충에서는 마음대로 껐다 켰다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인간에게도 이런 기술을 적용할 수 있을까요? 실제로 이 논문을 발표한 연구팀도 논문 말미에서 유전자 치료에 대한 전망을 내놓고 있습니다. 예쁜꼬마선충의 ‘어른 스위치’인 let-7 유전자는 인간에게도 잘 보존돼 있습니다. ‘아이 스위치’인 lin-41 역시 잘 보존돼 있을뿐더러 나이가 들수록 발현이 감소한다는 사실도 보고돼 있지요.


현상적으로도 포유류의 어린 중추신경은 축삭 재생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이를 나이 든 뇌에 이식해도 여전히 그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사실이 이미 보고된 바 있습니다. 유전자 치료를 통한 척수손상 회복이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는 아닌 듯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갈 길은 멀어 보입니다. ‘어른 스위치’인 let-7 유전자는 신경 재생 외에도 다른 발생 과정을 조절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스위치를 잘못 건드렸다가 예상치 못한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상당합니다.


무엇보다 ‘어른 스위치’는 암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잘 알려져 있습니다. ‘어른 스위치’는 정상적일 때 암을 억제하는 역할을 하며, 그 활성이 떨어지거나 망가지면 암이 생길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매우 많습니다. 자칫 신경 재생 능력을 키우려 ‘어른 스위치’를 껐다가 그 신경세포가 암세포가 되어버릴 위험성이 있는 것입니다.



신경도 나이 들면 보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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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러한 문제는 이 현상의 기저에 깔린 어떤 본질적인 문제와 맞닿아 있습니다. 도대체 나이가 들수록 신경 재생 능력은 ‘왜’ 감소하는 것일까요. ‘암’이라는 질병이 없는 예쁜꼬마선충에서도 굳이 ‘어른 스위치’가 켜져 재생을 억제할 필요는 없어 보이는데 말이죠.


여기서부터는 제 좁은 식견으로 ‘썰’을 풀어보렵니다. 제 생각엔 어릴 적엔 여기저기서 신경이 자라날 필요가 있지만, 나이가 들어서 성숙한 성체가 되면 새로 무언가를 만들어 내기보다는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메커니즘이 필요할 듯합니다. 어릴 적엔 ‘진보적’으로 축삭을 쭉쭉 뻗어 내다가, 나이가 들면 이미 펼쳐놓은 신경들을 ‘보수적’으로 잘 관리하는 것이 생명체에게 유리한 전략일 수 있어 보입니다.


노미터나 마이크로미터 단위에서 신경들이 접속된다는 점을 떠올리면 실제로 축삭이 미세하게라도 더 뻗어나가게 되면 기존의 연결이 헝클어질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신경이 드문드문 분포한 말초신경계보다 신경이 매우 밀집돼 있는 중추신경계에서 재생 능력이 낮은 것도 비슷한 이유가 아닐까요. 좁은 공간에 수십억 개의 신경 세포들이 몰려 있는데 자칫 축삭 재생이 엉뚱한 데서 일어나면, 축삭이라는 ‘발’을 엄한 데 담글 수도 있기 때문이죠. 그 결과 혹시라도 몸과 마음이 잘못 연결되었다간 얼굴에 유령 손가락이 돋아날 수도 있고요.


중추신경계는 말초신경계에 비해, 어른 뇌는 아이 뇌에 비해 신경을 더 많이 ‘가진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진 것이 많을수록, 나이가 들수록 보수화하는 것은 정치적 성향만은 아닌 듯합니다.


아무튼 궁금합니다. ‘시간을 달리는 유전자’를 이용하려는 과학의 도전이 정말 노화를 피할 수 있을지, 아니면 결국 ‘누구나 세상을 살다 보면은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을 때가 있어. 그럴 땐 나처럼 노랠 불러봐. 꿍따리 샤바라 빠빠빠빠!’라는 이치에 이를지 두고 봐야겠습니다.



함께 참고한 문헌


[1] Yanik MF, Cinar H, Cinar HN, Chisholm AD, Jin Y, Ben-Yakar A. Neurosurgery: functional regeneration after laser axotomy. Nature. 2004 Dec 16;432(7019):822.

[2] Zou Y, Chiu H, Zinovyeva A, Ambros V, Chuang CF, Chang C. Developmental decline in neuronal regeneration by the progressive change of two intrinsic timers. Science. 2013 Apr 19;340(6130):372-6.


Ramachandran VS, Rogers-Ramachandran D, Stewart M. Perceptual correlates of massive cortical reorganization. Science. 1992 Nov 13;258(5085):1159-60.

Nix P, Bastiani M. Neuroscience. Heterochronic genes turn back the clock in old neurons. Science. 2013 Apr 19;340(6130):282-3.

Chen L, Chisholm AD. Axon regeneration mechanisms: insights from C. elegans. Trends Cell Biol. 2011 Oct;21(10):577-84. doi: 10.1016/j.tcb.2011.08.003. Epub 2011 Sep 8.

Sokol NS. Small temporal RNAs in animal development. Curr Opin Genet Dev. 2012 Aug;22(4):368-73. doi: 10.1016/j.gde.2012.04.001. Epub 2012 May 9.

Wu Z, Ghosh-Roy A, Yanik MF, Zhang JZ, Jin Y, Chisholm AD. Caenorhabditis elegans neuronal regeneration is influenced by life stage, ephrin signaling, and synaptic branching. Proc Natl Acad Sci U S A. 2007 Sep 18;104(38):15132-7. Epub 2007 Sep 11.

Hammarlund M, Nix P, Hauth L, Jorgensen EM, Bastiani M. Axon regeneration requires a conserved MAP kinase pathway. Science. 2009 Feb 6;323(5915):802-6.

Wormbook, miRNA chaptor(http://wormbook.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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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한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유전과 발생 연구실, 박사과정
예쁜꼬마선충이라는 모델 생명체로 행동의 유전적 기반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성공하는 과학자보다는 성찰하는 과학자를 지향합니다. 글을 읽고, 쓰고, 나누는 데서 큰 기쁨을 얻습니다. 말하는 연구자, 글쓰는 과학자를 꿈꿉니다.
이메일 : phman11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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